|
Good morning 36!
가을은 생각의 계절인 것 같습니다. 인생에 대해서도 다른 계절보다는 폭 넓고 깊이 있게 접근하게 됩니다. 기온이 한 낮에는 26~8도 정도 되지만 아침으론 11~14도 정도로 재킷을 입습니다. 이제 이 추석연휴가 지나고 나면 계절은 가을을 한창가고 있을 겁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햅쌀로 송편을 빚으며 우리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며 추석의 풍성함을 노래했습니다. 지난여름은 참 많이 더웠습니다. 우리 연로하신(?) 친구 여러분들 지난 더위 견뎌내시느냐고 참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그건 그렇고, 10월3일(토)춘천 가실 거죠?^^~ 아침8시30분에 춘천 가는 전철 맨 앞 칸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제가 굴렁쇠 굴리기에 도전 해 보렵니다.
며칠 전 어느 대학병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테이블위에 식기 받침으로 사용하는 종이판위에 정신건강을 위한 10가지 충고란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내용에 공감이가서 잠시 옮겨봤습니다.
“정신 건강을 위한 10가지 충고“
1. 정당한 비판이라면 받아들이는 객관성을 가져라.
2. 대인관계를 원만히 하는 기술을 익혀라.
3.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부딪혀라.
4. 관심분야를 넓혀라.
5. 여가를 선용하라. 권태와 단조로움으로부터 벗어난다.
6. 계획을 세워 행동하라.
7. 분노와 좌절감이 들 때 건설적인 배출방법을 찾아라.
8. 머리가 복잡할 때는 격렬한 운동을 해라.
9.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빨리 받아들여라.
10. 먼저 감사의 조건을 찾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시간 내서 가기 쉽지 않은 스페인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얘길 하다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올레길 얘길 꺼내 들었습니다. 조금만 틈을 내면 다녀 올 수 있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올레길. 여러 친구분들께 '제주올레길' 을 꼭 한번 걸어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특별한 목적을 찾지 마시고 한달에 한번, 또는 두 달, 세 달에 한번정도 바람 쐐시는 기분으로 올레길을 그냥 걸어 보십시오. 특히 가을에 걷는 기분,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제주도, 정말 천혜의 경치를 자랑하는 참 아름다운 섬이지요. 1코스가 됐던 중간의 10코스가 됐던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아침 첫 비행기로 가시면 한 코스 또는 두 코스를 걸으시고 저녁비행기로 올라 오실수도 있지요. 때론 한라산도 올라보십시오. 쏜 살같이 지나가는 세월, 너무 안타까워만 마시고 그냥 잠깐 이라도 일상을 벗어나 아름다운 세상을 느껴 보십시오!
Have a good time!
제주 올레길이야기는 제1일차에서 제3일차까지는 지난번에 언젠가 들려 드렸지만 이번에는 1일차에서 12일차까지 입니다.
제주 올레길이야기 / 12일간의 순례거리: 321.4km (1코스 ~ 19코스)
제1일차: <3월20일 화요일>날씨: 맑음/바람 *33km걷다.
시흥초등학교(출발)--------------(33km)----------- 은평포구
시흥초등학교(출발)①(1.1km)말미오름(2.2km)알오름(3.2km)종달초교(0.4km)종달리옛소금밭(1.6km)목화휴계소/시흥해녀의집(3.0km)성산갑문>성산포항입구(0.7km)성산마을제단(1.7km)수마포(1.7km)광치기해변②(1km)내수면뚝방길(2km)식산봉(1.1km)오조리성터입구(2.1km)성산하수종말처리장(0.8km)고성윗마을갈림길(2.5km)대수산봉입구(2.1km)대수산봉뒷길?(1km)말방목장(2.9)혼인지(1km)은평초등학교(1.3km)환해장성(0.3km)은평포구 주) ①은 1코스 ②는 2코스 구간을 말함
올레길 안내소에서 패스포드와 길 안내책자(합해서15,000원)를 사서 배낭덮개 안에 넣고 복장을 여민 후 오래도록 벼려왔던 올레길 트레킹의 첫 발을 내 디뎠다. 9시40분에 올레1코스출발점을 나서서 잠시 걷자니 바로 '말미오름'이란 푯말이 나온다. 코스 중에 '오름'이나 '~봉'이란 이름이 나오면 일단 산을 오르는 것이다.
요새 마트에서 파는 무는 거의 전부가 제주도산이라더니 제일먼저 들판의 넓은 무밭이 눈에 들어온다. 굵직한 녹색윗부분을 흙 위에 내놓고 무성한 잎을 뻗치고 있는 제주 무는 맛도 달다. 푸른 제주 봄 들판을 걷는다. 얼마만의 걷기인가, '두 번째 '카미노데 산티아고' 봄 순례를 2010년5월에 다녀왔으니 이번의 걷기는 거의 2년만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힘 들 때나 또는 스스로 답을 내놔야 할 때 마다 걸었고 그리고 걸으면서 물었고 길에서 답을 구해왔다. 어떤 날은 하루 40km이상을 걸은 적도 있으니 올레1코스 15.6km걷기는 내게 그리 큰 부담이 되는 거리는 아니다.
내걷기에는 내 나름의 원칙이 몇 가지 있다. 해 뜨면 걷기를 나서서 해 질 때까지 걷는다(그러니 잠자리를 미리 예약 할 수가 없다).날씨를 핑계로 걷기를 미적거리지 않는다(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걷는다). -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설혹 물건을 두고 왔더라도)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남녀노소불문하고 내가 먼저 인사한다(안녕하세요?^^).자주 쉬지 않는다(쉬지 않고 걷데 천천히 그리고 최소3시간 걷고10분만 쉰다)
말미오름(해발146m)길을 오르는데 몇 발치 앞서가는 젊은 남녀가 보인다. 새삼 내가 혼자라는 순간의 고독을 느낄 사이도 없이 가파른 오름을 올라서니 눈 아래 시골집들이 정겹다. 말미오름을 내려서 억새들판을 지나고 다시 알오름을 오른다. 오르고 내려오고 들판을 지나서 해변도로로 들어서니 1시 반, 점심때가 지나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나친 마을들에는 식당이 없었고 구멍가게조차도 보이지 않았었다. 앞으로 더 나아갈 수밖에, 바닷가도로옆길이라 규모를 갖춘 콘도들이 제법 눈에 뜨인다. 목화휴게소근처 식당에서 전복 해물탕(12,000원)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성산일출봉 쪽으로 뻗어 난 코스를 따라 걷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유채꽃 밭이 이어져있다. 나는 제주도하면 항상 넓은 들판을 노랑색으로 채워놓는 유채꽃밭을 제일먼저 생각한다. 3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해 4월 중순까지 길게 피고 지는 유채꽃은 초록대궁과 잎 그리고 노랑꽃이 조화를 이루고 맑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다. 유채꽃밭에 들어가서 사진 찍는 값으로 주인이 원두막 같은 햇빛 가리기 안에서 1000원씩을 밭고 있다. 1코스 종점인 광치기해변에 도착한 시간이 2시반 이고 15.6km를 걸어왔다. 계속해서 2코스를 접어들어 해질 녘까지 걷기로 했다. 2코스 종점인 은평포구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6시 동네입구에 게스트하우스란 간판이 보이기에 들어갔다.
도미토리(Domitory/기숙사)형식의 규모가 작은 숙소다. 작은방 한 칸에 2층 침대가 2세트, 그러니까 최대 4명이 한 방에 묵을 수 있는 숙소인 것이다. 아직 바람이 차가운 3월의 제주 올레길엔 순례자가 드물다. 일박에 15,000원이란다. 2만원을 줬더니 잔돈이 없느냐고 물어온다. 좀 전 들어올 때 열린 안방 문 사이로 주인아주머니가 식사를 하고 있던 걸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잡숫던 대로 주시면 되니까 그 5천원으로 저녁식사를 주시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찬이 마땅치 않다고 미적거린다. 밥 먹으러 나가기도 싫고요 아, 그냥 잡숫던 반찬 그대로 주시면 됩니다. 오히려 내가 사정하는 투로 부탁을 했다. 갈치젓, 날 오이와 쌈, 무채, 배추김치, 무 된장국에 잡곡밥이 나왔다. 어쩜 내 식성하고 이리도 잘 맞을까! 늦도록 게스트 하우스에는 나 이외의 순례객은 들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어두워서 창 밖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넘실대는 검푸른 제주 밤바다를 바라보며 제주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제2일 차 순례여행 <3월21일 수요일>날씨: 맑음(15도/바람) *30.5 km걷다.
은평포구③--------------------(30.5 km)------------- 토산초등학교
은평포구③(▶1.4)중산간입구(▶3.2)난산리(▶1.8)통오름입구(▶0.7)통오름정상>독자봉입구(▶5)김영갑갤러리/두모악(▶1.3) 하천길삼거리 (▶0.8) 우물안개구리옆길 (▶0.9) 신풍신천 바다목장 (▶1.1)신천리해녀탈의장(▶0.9)신천리마을올래(▶1.3)하천리/배"樗병摸?(▶1.2)소낭쉼터(▶1.1)표선해비치해변④(▶0.7)거웃개/당케포구(▶1.5)갯늪(▶1.6)흰동산(▶1.8)거문머처(▶1)해녀탈의장(▶0.8)해병대길(▶0.6)토산포구(▶1)산여리통입구(▶0.8)토산초등학교
은평포구 '올레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조식(날계란1알+식빵 한 조각과 커피한잔)과 내게 있는 미숫가루와 사과 한 알로 아침식사를 하고 7시 반에 길을 나섰다. 바람이 약간 거세다 그러나 하늘은 맑고 쾌청하다. 통오름을 올라 긴 산길을 돌아 '김영갑갤러리두모아' 입구에 오니 11시 반이다. 아뿔싸, 매주 수요일은 휴관하는 줄 몰랐다. 김영갑은 사진작가다. 1957년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중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작품 활동을 하던 김영갑은 제주도에 매료되어 1985년 아예 제주도에 정착한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구입하여 사진 갤러리로 꾸미던 중 그는 루게릭병에 걸려서 2005년 유명을 달리했다. 제주도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며 그의 사진에 없는 것은 제주도에는 없는 것일 정도로 제주도의 모든 풍물을 그는 사진에 모두 담았다. 2002년에 개관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에는 그의 혼이 깃든 많은 작품이 진열되어있다. 특히 그는 생전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을 즐겨 사진에 담았다.
아래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홈페이지(www.dumoak.co.kr) 에서 캡춰 해온 '하순희시인이 쓴 '갑자기….가을날의 그리움'이란 시다. * 두모악은 한라산을 일컫는 제주도 말이다.
갑자기……가을날의 그리움 - 하순희 -
가을날의 그리움, 까닭 모를 아픔들.. ....
지난여름 난생 처음 만났던,
지금은 가고 없는 님의 갤러리에서 받았던 아픔과 그리움이
이 밤에 불 밝히고 서성이게 합니다
한 생을 불태웠던 순수와 열정이,
그런 사람이 그리운 날입니다.............
풀길 없는 그리움은 제주를 베고 누웠네요
민들레로 피어나
한라산에 뿌릴 내렸네요!!!
보고 싶은 산하! 보고 싶은 사람! 평안히 쉬소서!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굳게 닿친 김영갑갤러리를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갤러리근처 동네를 벋어나는 지점에 돈까스식당이 있어서 잠시 갈등했으나 좀 더 가다가 한식을 먹을 생각으로 발걸음을 채근했다. 그러나 점심은 돈까스식당에서 해결했어야 했다. 이날 나는 식당을 만나지 못했고 길가 편의점에서 삶은 계란과 빵으로 점심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올레길에는 가다 보면 해병대길이란 팻말을 가끔 보게 된다. 이 길은 대개가 해변 가 숲길이며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장병들이 닦아놓은 길이어서 해병대길이라고 부른다. 해병대길을 나와 나는 오늘밤을 묶을 숙소를 찾기로 했다. 토산포구를 지나 오리쯤 걸으니 “알토산게스트하우스(www.altosan.com)”란 숙소가 있다. 제주특유의 돌로 지은 귤 창고를 개조해서 멋진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부부가 주인이다. 숙박비20.000원, 저녁식사5.000원 그리고 아침식사3.000원이다. 젊은 부부답게 카페 안이 아기자기하다. 저녁을 먹고 카페의 따뜻한 난로 가에 앉아 젊은 주인부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하루의 피로가 확 풀린다.
토산리 마을은 웃토산 과 알토산(아래토산)으로 나뉘는데 제주에서 밀감을 최초로 재배한 마을이란다. 토산리에 살다가 일본으로 간 사람이 토산리에 남아있는 친척에게 밀감나무를 보내주면서 제주의 밀감농사가 시작됐단다. 알토산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여행객은 나와 서울에서 온 사십대의 '오름' 전문 여행객 해서 둘이다. 오름 여행객과 나는 오름 여행에 관해서도 많은 얘길 나누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틈을 내서 오름을 오르려고 제주도를 찾는다고 했다. 어찌나 그가 그의 오름 여행을 신명 나게 들려주는지 나는 단번에 오름에 빠져들었다. 어머니 젖가슴 같은 오름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내 여행에서 만나는 오름을 오를 때 마다 나는 그 오름의 둥그스럼한 모습을 보며 어머니 젖가슴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오름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설명 했듯이 오름은 제주 지역에 있는 기생화산(寄生化山)을 이르는 제주 사투리다. 제주에는 이런 오름이 380여 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름(기생화산)은 산이라고 부르긴 좀 그렇고 그냥 동산 같은 봉우리들로 한라산을 제외한 조그만 산들을 다 오름이라고 부른다. 마그마가 올라올 때 가장 약한 지점을 먼저 크게 뚫고 올라오는 것이 큰 화산이다. 그런데 큰 화산 말고 큰 화산의 중턱이나 기슭의 약한 부분을 뚫고 올라온 작은 화산을 기생화산이라고 하며 이런 동산 위의 분화구를 제주도에서는 오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제주도 밭들은 토질이 비옥하다. 해안가에 있는 밭들은 거센 제주바람이 모래를 안고 와서 뿌려대는 바람에 토질이 좋지 않은 모래밭이다. 그러나 해안을 벗어나 조금 내륙 쪽으로 들어오면 흙색갈이 검고 기름져 보여 첫눈에도 비옥한 토질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일이란 참 알 수 없는 것, 부모는 큰 아들에게 내륙 쪽의 비옥한 땅을 유산으로 주고 작은아들에게는 해안가 모래땅을 유산으로 줬단다. 그래서 큰 아들은 비옥한 땅에다 무를 심거나 귤나무를 재배했다. 작은 아들은 모래땅에 딱히 재배할 작물이 마땅치 않아서 묵히거나 땅콩 등을 심었단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희한한 현상이 일어났다. 기름진 땅에 심은 무는 때때로 가격이 폭락하여 품삯도 건지지 못해서 그냥 갈아엎을 때가 태반인데 해변 가 모래밭은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외지인들이 해안에다 별장이나 위락시설을 지으면서 땅값을 달라는 대로 주고 매입하는 것이다. 당연히 작은 아들은 부자가 됐다.
제3일 차 순례여행 <3월22일 목요일>날씨: 종일 비/바람 *30.6 km걷다
토산초등학교----------------(30.6 km)----------------- 보목포구
토산초등학교(▶2)망오름입구/망오름정상(▶2)거슨새미/영천사(▶2.6)방구동/삼석교(▶2.4)태흥2리포구(▶2.1)태흥1리쉼터(▶2)남원포구⑤(▶1.2)큰엉입구(▶0.6)제주올래안내소(▶1.7)신그물(▶1.1)수산물연구소(▶0.9)곤내골올래점방(▶1.6)조배머들코지(▶2.9)넙빌래(▶0.9)공천포쉼터(▶0.7)배고픈다리(▶0.4)망장포구(▶0.8)예촌망(▶1.9)쇠소깍⑥(▶2.6)제지기오름정상(▶0.2)보목포구 = 30.6km
게스트하우스의 젊은 주인부부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7시 반에 길을 나서는데 가랑비가 옷을 적실만큼 내린다. 간밤에 오름 얘길 들려준 오름 여행객이 보이지 않는다. 비를 맞으면서 망오름을 오르는 동산 입구를 막 접어드는데 어젯밤 그 젊은 오름 여행객이 내려오고 있다. 서로에게 좋은 하루가 되길 빌며 헤어졌다. 망오름을 오르고 내리며 제법 오래 산길을 타고 영천사를 거쳐서 제4코스 종점이자 제5코스 시발점인 남원포구에 들어섰다. 점심때다. 제주도에서는 식성에 맞는 메뉴를 찾아 식당에 들기가 쉽지 않다. 내 식성이라야 청국장, 된장국이나 가정식 백반 정도지만 이런 메뉴를 내 건 식당이 흔치 않고 젤 흔한 메뉴가 12,000원하는 전복해물탕이다. 한 두 번은 모를까 그것도 그렇다. 올레길 각 코스 종점이자 다음 코스 시작점이 되는 지점에는 올레길 안내소가 있다. 이 안내소에서는 올레길 책자나 수공예 품 같은 기념품을 팔고 있다. 남원포구 올레길 안내 부스에 들려 이곳을 지나갔다는 증명이 되는 스탬프를 올레 여권에 찍고 나서는데 바로 앞에 작은 식당이 신장개업이란 팻말을 걸어놓고 있다. 해수정식(6,000원)을 시켰더니 미역국에 두루치기 그리고 여러 가지 밑반찬이 나와서 괜찮은 점심식사를 했다.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한다. 어느 길이나 마찬가지지만 순례여행길에서는 항상 비 맞고 걸을 준비를 하고 다녀야 한다. 산티아고길에서도 그렇다. 한 달을 걷는다면 5일에서 1주일 정도는 비를 맞고 걷는다. 제주도의 마을 지명은 참 이채롭다. 거슨새미, 큰엉입구, 신그물, 조배머들코지, 넙빌래, 배고픈다리, 쇠소깍 등등 나름대로 다 특별한 뜻이 있는 지명 일 것이다. 오후4시 반에 5코스 종점이자 6코스 시발점인 쇠소깍까지 왔다. 쇠소깍은 지하에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면서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물이 맑고 나무가 우거진 계곡의 풍광이 아름답고 바다로 이어져있는 호수다. 쇠소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투명 카약(Kayak)을 즐기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아직 물놀이하기엔 좀 이른 삼월이기도 하고 또 비 오는 날이라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은 없었다. 투명 카약은 배 전체를 투명한 강화플라스틱으로 제작해서 물이 맑은 곳에서는 발밑으로 물속이 훤히 보이도록 설계한 카약이다. 카약은 2012년 런던올림픽 경기 종목에 속해 있는 정식 수상 스포츠다. 카누와 카약은 비슷하게 생겼는데 구분하는 방법은 여럿 있지만, 흔히 노가 양쪽에 있으면 카약, 한쪽에만 있으면 카누로 부른다.
쇠소깍에서 숙소를 찾아 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란 생각에 좀 더 걷기로 하고 지나쳤다. 해변을 따라 한 시간쯤 걸었을까, '보목포구'란 동네가 나오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진다. 어디 잠깐 처마 밑에서 굵은 비를 피할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데 바로 앞에 '구름민박'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종일 비바람을 맞으며 30km넘게 걸어왔다. 오늘은 이쯤에서 쉬자는 생각이 밀려들어 열려있는 민박집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주인을 찾았으나 인기척이 없다. 민박간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민박집주인과 통화를 시도했다.
“혼자십니까?”
“안 잠겨있으니 그냥 현관문 열고 들어가서 화장실 바로 옆방을 쓰시고 우선 샤워부터 하시면 곧 들어가서 방에 보일러 틀어드릴게요”
“샤워는 온수가 잘 나올 겁니다”
나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더운물로 샤워를 한 후 한 숨 돌리며 젖은 옷을 빨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들어왔다. 보일러 작동방법과 세탁실사용법 그리고 이것저것 하루 묵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알려주고 숙박비(30.000원)를 받아 챙기고 다시 나간다.
“편히 묵고 가세요!”
“문은 안 잠가도 됩니다”
“낼 아침 나가실 때 보일러는 꼭 끄고 가세요”
세탁물을 널고 따뜻해진 방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있자니 조름이 다가온다. 굶고 잘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민박집신발장 한 켠에서 우산을 찾아 쓰고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밖으로 나섰다. 작은 포구지만 식당도 몇 곳 있고 동네 가운데 있는 작은 구멍가게 홀에서는 몇몇 주민들이 모여서 술 타작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나는 '해녀식당'에서 내 건 미역국이란 메뉴에 끌려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식당은 텅 비어있었고 연세가 지긋한 노인 세분이 식사를 하시다가 맞아준다. 처음 먹어보는 생선 미역국(8.000원)인데도 전혀 비리지가 않다. 좀 더 달래서 두 그릇을 먹었다. 비바람은 여전히 소리 내며 창문을 두드린다.
올레여행 삼일 째 날이 저물어간다.
고 이중섭화백
제3일차 여기까지는 전에 보내드린 글입니다.
---------------------------------------------------------------------------------------------
제4일 차 순례여행 <3월23일 금요일>날씨: 종일 비/바람. * 25.1km걷다
보목포구-----------------(25.1km)--------------월평마을/아왜낭목⑧
보목포구(▶1.4)구두미포구(▶0.9)보목하수처리장(▶1.7)검은여(▶0.9)제주올레사무국(▶0.4)정방폭포(▶1.2)이중섭거주지AB갈림길(▶1)서귀포항B(▶1.1)새연교주차장(▶1.1)시공원출구AB합류(▶0.4)심매봉입구(▶1.2)오톱개⑦(▶1.6)톰배낭길(▶2.3)속골/수봉로(▶0.9)법환포구(▶1.4)일강정바담올레(▶1.8)서건도앞/악근천다리(▶0.6)강정천(▶1.7)중덕갈림길/강정포구(▶1.6)월평포구(▶1.9)굿당산책로/월평마을/아왜낭목⑧
월평마을은 7번 코스 종점이지만 묵을 숙소가 없다. 고심 끝에 버스(5#순환버스)를 타고 걸어서 지나쳐 온 서귀포항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가 이번에 정차 할 곳은 여성회관 앞이라는 안내를 하는데 창 밖으로 모텔들이 몇 개 보인다. 나는 내려서 길가 동명모텔(30.000원)에 들었다.
네거리식당에서 갈치국(10.000원)을 시켰다. 배추국에 생 갈치를 넣고 매운 고추와 호박을 넣어 끓인 국인데 선입견과는 달리 전혀 비리지가 않다. 뜨끈한 국물과 더불어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기에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한테 꼭 해장국 같네요, 했더니, 맞습니다. 갈치국은 제주도 해장국이지요, 한다.
제5일 차 순례여행 <3월24일 토요일>날씨: 맑음/강풍 * 22.2km걷다
월평마을/아왜낭목⑧---------------(22.2km)------------- 화순금모래해변⑩
굿당산책로/월평마을/아왜낭목⑧(▶1.1)선궷내입구(▶1.8)대포포구(▶0.8)축구장(▶1)주상절리안내소(▶0.6)씨에스호텔(▶1)베릿내오름전망대(▶2.5)중문색달해변(▶0.7)하얏트산책로(▶0.5)해병대길(▶1.4)논짓물(▶1.5)하예포구(▶1.4)대평해녀탈의장(▶0.9)대평포구⑨(▶0.3)몰질(▶1.8)박수기정/볼레낭길(▶1)봉수대/월리봉(▶1)임금내전망대(▶1)올챙이소정상/자귀나무숲길(▶0.7)인덕계곡/황개천올래화장실(▶1.3)동화동폭낭>화순선주협회사무실>해양경찰서>화순금모래해변⑩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여행 때처럼 내 등짐에는 홀로 삶에 필요한 물품이 제법 있다. 이번엔 아침식사용 미숫가루1.5kg까지 보태져서 등짐 무게가 8kg정도 나간다. 반바지1, 팬티1, 양말 2컬레, 런닝셔츠1, 긴팔 티셔츠1, 침낭, 판쵸우의, 노트 한 권, 세면도구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 하나, 비누, 샴푸 한 통(500ml), 선 크림 등등 거기다 오래된 배낭이라 그 자체무게만도 거의 2kg은 나간다. 올레길 에서의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나 민박 또는 모텔일 테니 비누나 샴푸도 필요 없고 침낭도 필요 없다. 짐을 줄이기로 했다. 판쵸우의, 침낭 그리고 올레길 안내소에서 구입한 올레길 관련 여러 책자들을 편의점 택배를 이용해서 집으로 보냈다.
등짐이 줄어드니 걸음걸이가 훨씬 가볍다. 오늘은 어제 걷기를 멈춘 월평마을 7번 코스 종점이자 8번 코스 시발점으로 가서 8번 코스를 걷는다. 어제 내린 여성회관 앞 버스 정류장 길 건너편 버스정거장에서 어제 타고 왔던 5# 순환버스를 기다리는데 도무지 오질 않는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순환버스는 왔던 길의 반대편 길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 방향으로만 뱅글뱅글 돌아다니는 버스였다.
물어물어 간신히 버스를 타고 월평마을로 가서 5일차 순례를 시작했다. 이 8번코스는 올레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알랴져서 많은 사람들로 제일 붐비는 길이다. 주로 해안 길로 바다를 끼고 걷는데 경치가 아름다워 유명한 호텔들이 들어 서 있는 길이다.
제6일 차 순례여행 <3월25일 일요일>날씨: 맑음/강풍 *16km걷다
화순금모래해변⑩----(16km)---모슬포⑪--(배로15분)--가파도(10-1)
화순금모래해변⑩(▶1)퇴적암지대>소금막(▶2.6)산방연대>설큼바당(▶3.3)사계포구>사계화석발견지(▶1.6)송악산편의점(▶1.1)송악산(▶0.9)셋알오름(▶1)셋알오름추모비(▶1.4)알뜨르비행장(▶1.4)하모해수욕장(▶1.7)모슬포항/하모체육공원⑪--(▶배로15분)--가파도(10-1코스)
화순해변가에서 하멜표류지를 거쳐서 해변 가를 쭉 걷다가 송악산을 접어드니 참 일품코스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악산 코스를 걸으면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절벽 길에는 난간이 있어서 먼 바다를 볼 수 있지 난간이 없다면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 언덕 초입에 들어서면,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 일본군 지하 동굴, 검은 모래 해변 등이 아득히 내려다보이고 멀리 가파도가 보인다. 맑은 날에는 마라도가 눈에 들어오는 송악산은 기생 화산이다(104m). 송악산을 지나 셋알오름을 올랐다 내려가는데 다시 셋알오름 4.3추모비가 발길을 잡는다. 나는 4.3추모비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추모비를 지나면 알뜨르비행장이 나타난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군용비행장으로 사용했다는데 내가 지나 갈 때는 드론(Drone) 동호인들의 놀이터로 여기저기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드론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1시40분에 모슬포항에 닿았다. 마침 가파도 가는 배 출발시간이 2시15분이다. 이리저리 오후시간을 재다가 4시15분에 가파도에서 모슬포로 나오는 배를 탈 생각을 하고 승선했다. 가파도까지 15분소요(뱃삯10,000원). 가파도의 보리밭 사이 길을 걷는 기분은 참으로 상쾌했다. 앞으로 누가 가파도를 얘기한다면 내겐 작은 섬을 온통 초록으로 물들이며 봄바람에 출렁거리던 보리밭을 먼저 떠 올릴 것이다. 섬 한 바퀴를 도는데 40여분 걸렸을까? 다시 모슬포로 돌아와서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30,000원). 많은 사람들이 올레길에서는 7코스 또는 8코스가 가장 좋았다고 들 말하지만 나는 오늘 걸은 10코스, 화순금모래해변에서 모슬포까지 오는 길이 가장 좋았다.
제7일 차 순례여행<3월26일 월요일>날씨: 맑음 * 35.5km걷다
모슬포항/하모체육공원⑪-------(35.5km)------- 용수포구⑬
모슬포항/하모체육공원⑪(▶1)산이물(▶1)암반수마농마을/동일리(▶1.2)청소년수련관>대정여고(▶1)모슬봉둘레길>모슬봉숲길(▶3.1)모슬봉내린길>보성농로(▶2.7)정난주마리아성지(▶1.4)신평사거리(▶0.6)신평곶자왈(▶1.8)정개와광장(▶1.5)무릉곶자왈아름다운숲길(▶1.5)무릉2리효자정려(▶1.2)무릉생태학교⑫(▶2.5)평지교회(▶1.7)신도생태연못(▶1.3)농남봉정상(▶0.7)산경도예(▶2.2)신도바당올례(▶1)신도포구(▶1.6)소낭길(▶0.6)한장통마을회관(▶0.9)수월봉정상(▶0.8)엉알길입구(▶1.3)용운천>자구내포구(▶0.7)당산봉입구>당산봉정상(▶0.8)생이기정(▶1.4)용수포구⑬
숙소에서 나와 순례길을 알려주는 리본을 따라 걸으니 해변으로 가는 길이다. 한참을 걷자니 리본이 다시 모슬봉쪽으로 발길을 인도하는 것 같다. 모슬봉은 지난밤 내가 묵었던 모텔 뒤쪽으로 조금 떨어져 보이던 모슬포에선 제일 높아 보이는 봉우리다. 숙소에서 해변으로 갔다가 처음 출발했던 쪽으로 발길을 되돌려 모슬봉을 오르게 하니 맥이 조금 빠진다. 모슬봉을 올랐다 내려오며 정난주 마리아성지를 거쳐서 신평사거리에서 신평곳자왈 숲 속 길을 접어들었다. 곶자왈이란 숲 속 길을 일컫는 제주도 말이다. 울창한 삼림은 아니지만 태초에 숲이 생긴 이래 지금껏 아무도 들어와 보지 않은 것 같은 정적 속에 가끔씩 산새소리만이 고요를 깨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족히 5km는 이어지는 숲 속 길을 걸어 나왔다. 제주도에 이런 숲이 여러 곳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오후3시 이후에는 출입을 하지 말라는 곳자왈 입구에 세워진 올레길 안내표지판의 의도를 알겠다. 이 구간은 혼자보다는 길동무와 같이 걸으면 길을 잃을 리도 없고 고요가 주는 무서움도 느끼지 않고 여러모로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곶자왈을 나오니 시장기가 느껴진다. 시간도12시 넘어 꽤나 됐다. 식당을 찾아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외양이 아주 괜찮아 보이는 설렁탕집이 나온다. 주인내외분은 제주도가 좋아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식당을 차린 지 몇 년 됐다고 한다. 내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 다녀 온 얘기며 내 여행에 대해서 잠시 늘어놓자 안주인이 나를 자기 화실 겸 카페라며 식당 옆 아담한 공간으로 안내한다. 안주인은 화가이고 바깥주인은 서울의 큰 호텔 쉐프(Chef)였는데 안주인이 제주도에서 살기를 소원해서 제주도로 왔단다. 그런 그들 부부얘길 듣고 있자니 부러움이 들었다. 안주인이 커피를 내려서 내게 준다.
다시 길을 나서서 해안을 돌고 마을을 지나서 용수포구 '성 김대건신부 제주 표착기념관‘ 까지 왔다. 많이 걸었다는 생각과 함께 피로감이 느껴진다. 제주교구 용수성지는 그 당시 김대건신부가 탔던 배 라파엘호의 모습을 따서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을 짓고 김대건 신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날이 어두워서 기념관을 둘러 볼 시간이 없다. 표착기념관에서 운용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들려 저녁을 먹고 오늘밤을 묵기로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하는 50대 후반 여성 천주교신도와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그분은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 나에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라고 했다. 많은 세월을 병상에 누워만 있다가 일어나 발 딛고 선지 얼마 안됐다고 했다. 25세에 순교한 김대건신부, 평생을 병상에 누워 살다가 두 발로 선지 얼마 안 됐다는 아주머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작은교회
제8일 차 순례여행<3월27일 화요일>날씨: 맑음 * 30km걷다
용수포구⑬---------------(30km)-------------금능포구/해수욕장
용수포구⑬(▶1.9)충혼묘지사거리(▶0.4)복원된밭길(▶0.9)용수저수지(▶1.7)특전사숲길(▶1)쪼른숲길(▶0.7)고목숲길(▶1)고사리숲길(▶0.9)고망숲길>하동숲길(▶1.1)낙천리아홉굽마을(▶1.5)올레농장(▶1.1)뒷동산아리랑길>분화구숲길>용선달리(▶1.8)지지오름둘레길(▶0.9)지지오름정상(▶1.6)저지마을회관⑭(▶1.7)나눔허브제약(▶0.7)소낭숲길(▶1.6)삼거리(▶0.2)오시록헌농로(▶1.1)굴렁진숲길(▶1.9)무명천산책길1(▶0.2)월령숲길입구(▶0.7)무명천산책길2(▶2.2)월령선인장자생지(▶0.6)월령포구(▶1.1)해녀콩서식지(▶1.5)금능포구/해수욕장
8시 반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들길을 걸어가다 보니 외지고 한적한 길가에 ‘순례자의 교회’라고 이름붙인 작은 교회(2.5평)가 세워져있다. 교회가 얼마나 작게 보였으면 순간, 내 자신은 마치 거인 걸리버 같고 교회는 성냥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저 안에 들어가서 기도 할 수 있을까?! 들어가 보기로 했다. 교회 안엔 옅은 등불이 밝혀있고 강단엔 성경책이 놓여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들길을 걸어 지지오름을12시40분에 올랐다. 14코스, 저지마을회관을 지나서 농로와 좁은 산길을 걷는다. 좁은 길이 돌로 가득해서 등산화 아니면 걷기 힘들겠다. 4시에 숲속 침상에서 잠시 휴식을 갖고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선인장이 자생하는 ‘월령선인장자생지’를 지나 아담하게 꾸며진 카페에 들려서 선인장주스를 한 잔 마셨다. 월령포구에는 고급펜션만 있고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집이 없다. 30분을 더 걸어서 금능포구에 오니 마린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 지금까지 봐온 게스트하우스 중에서 시설이 월등히 좋고 규모가 크다. 숙박비20,000원에 저녁식대로 6,000원을 지불했다.
제9일 차 순례여행<3월28일 수요일>날씨: 맑음 * 29.6km걷다
금능포구/해수욕장----------------(29.6km)-------------구엄포구
금능포구/해수욕장(▶1.4)협재해수욕장(▶2)옹포포구(▶0.7)국립패류육종센터(▶1.7)한림항비양도/도항선선착장⑮(▶0.7)평수포구(▶1.8)대림안길입구(▶1.3)영세성물>사거리(▶0.9)성로동농산물집하장(▶0.8)귀덕농로(▶2.1)선운정사>번틀못농로(▶1.7)혜린교회>남읍숲길(▶1.2)남읍초등학교/금산공원입구(▶0.8)남읍리사무소(▶1.2)백일홍길입구>과오름입구(▶1.3)도새기숲길(▶1.1)고내봉입구>고내봉정상(▶1.6)하르방당(▶1.1)하가리갈림길(▶0.9)고내교차로(▶0.5) 고내포구(16)( ▶1.5km)신엄포구(▶1.3)남두연대(▶1)중엄새물(▶1)구엄틀염전>구엄포구
토스트+미숫가루+사과1알로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길을 나섰다. 그런데 마린게스트하우스에서 키우는 아주 큰 삽살개가 나를 따라 나선다. 첨엔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이 삽살개, 한 시간 넘게 한림항까지 따라온다. 아니다 싶어서 마린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했더니 잠시 후에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삽살이를 데려갔다.
한림항은 내게 사연이 있는 포구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 3월이다. 나는 한림항에서 ‘영진호’란 39톤짜리 중선 또는 안간망어선이라고 부르는 고깃배를 타고 멀리 동지나해까지 나가서 약 3개월간 뱃사람 생활을 했었다. 안간망어선이란 긴 주머니 모양의 통그물을 조류가 빠른 바다 가운데에 큰 닻으로 고정하여 놓고 조류 에 밀리는 물고기를 받아서 잡는 어선이다. 언젠가는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내가 살아온 이야기 중에 나올 것 같아서 이번에는 생략하지만 아무튼 그 때 그 어린시절에 나는 한림항에 있었고 거기서 고깃배를 탔었다. 10시에 한림항을 지났다. 점심 후 1시 넘어 혜린교회를 지나 다시 올라가다 숲속 길을 돌아 나오면 납읍리가 나온다. 리 단위치곤 제법 큰 마을이다. 오늘도 오름과 해안 길을 번갈아 거의 30km를 걸었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까운 해변 가 경치 좋은 곳에 있는 '바다와 노을' 이라는 모텔이 눈에 들어온다. 순례객에 한정 숙박비가 특별히 싸게 40,000원이란다.
제10일 차 순례여행<3월29일 목요일>날씨: 맑음 * 31.4km걷다
구엄포구----------------( 31.4km)----------- 제주 동문로터리(18)
구엄포구(▶0.2)구엄리마을(▶1.4)수산봉둘레길(▶0.8)수산저수지둑방길(▶2.4)수산밭길(▶0.9)예원동복지회관(▶0.8)장수물(▶0.9)항파두리/항몽유적지(▶0.8)고성숲길(▶1.4)숭조당(▶1.7)청화마을(▶1.7)광령1리사무소(17)(▶2.3)무수천숲길(▶2.8)외도월대(▶1)알작지해안(▶1.1)아호테우해변(▶1.5)도두추억애거리(▶0.7)도두구름다리(▶0.8)도두봉정상(▶1.4)사수동약수물(▶1.5)어용소공원(▶1.4)레포츠공원-(제주공항/Alternative)(▶1.1)용두암(▶0.6)동한두기(▶0.9)제주목관아지(▶1.3)동문로터리/산지천마당(18)
8시20분에 숙소를 나와 구암리를 빠져나오니 제주시가 가까움을 느끼게 된다. 도로를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건널목에서 신호 바뀌기를 한참 기다려도 좀체 바뀌지 않기에 신호등 전봇대아래 버튼을 누르니 잠시 후 신호가 바뀐다. 삼수봉오름을 오르내리고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작은 봉우리를 오른다. 하늘에 비행기가 부쩍 많이 눈에 띄고 여객기 이착륙소음이 계속 이어진다. 제주공항을 끼고 돈다. 9시40분, 비스킷 몇 조각과 사탕 두 알을 먹었다. 광령1리에 12시 도착해서 광령맛집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참 좋은 날씨다. 바람이 살랑거려 걷기 좋다. 삼별초 항몽토성을 지난다. 들길산길을 걷다보니 광령1리 17코스 출발점이 나온다. 1시간 반을 내려오니 다시 해변이다. 제주시 외도동 이호테호해수욕장을 2시25분에 지나서 해변가를 돌아 산수봉을 오르니 제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제주시내로 들어와 동문로터리근처의 호텔에서 묵었다(40,000원)
제11일 차 순례여행<3월30일 금요일>날씨: 비/바람 *24.7km걷다
동문로터리(18)-----------------(24.7km)----------------함덕서우봉해변
동문로터리/산지천마당(18)(▶1)제주항(▶2)사라봉(▶1.2)사라봉내려가는길>애기업은돌(▶0.8)곤올동마을터(▶1)화복포구(▶1.3)별도연대(▶0.7)벌낭포구(▶1.2)삼양검은모래해변(▶1.2)원당봉입구(▶1.1)불탑사(▶0.6)신촌가는옛길(▶0.9)시비코지(▶1.5)닭머르(▶0.8)신천포구(▶1.3)대섬(1.6)연북정(▶0.6)조천만세동산(19)(▶2.2)조천농로>관곶(▶0.9)신흥해수욕장(▶1.7)제주대해양연구소(▶1.1)함덕서우봉해변
아침에 창문을 여니 강풍이 불고 하늘이 잔뜩 찌푸려있다. 일기예보에 남부지방과 제주도에 시간 당 80mm정도의 많은 비가 온다고 해서 잔뜩 긴장이 된다. 평소대로 하기로 했다. 7시에 준비한 과일과 미숫가루로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길을 나섰다. 어제 18코스 종착지이자 19코스 출발점인 동문사거리에서 로터리중심에 서있는 [해병혼]이란 기념탑을 한 컷 사진에 담고 발걸음을 내 디뎠다. 해변을 타고 조금 가자니 왼쪽으로 여객선 터미널이 나온다. 나는 올레 안내표지를 따라 오른편 사라봉을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다. 제주도의 모든 봉우리는 오르내리는 길이 잘 정비돼있고 공원으로 조성돼있다.
사라봉을 올랐다 내려오며 4.3사건으로 불타 없어졌다는 '곤올동 마을터'를 지났다. 제주도 동쪽에서부터 순례여행을 시작하면서 가는데 마다 4.3위령탑을 보고 모슬포에서도 그리고 제주도 서편으로 접어들어서도 4.3위령탑을 보게 된다. 나도 6.25로 인해서 아버지얼굴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제주도 내 나이 또래의 많은 분들 역시 부모님 얼굴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 오시기전에 조금이라도 많이 걷고 싶다. 다시 해변을 걸어 '화복동'을 지나서 한참 길을 재촉하자니 배가 고파온다. 제법 큰 신천이란 마을이 나오고 동네식당에서 뼈 해장국을 먹었다.
식당을 나서니 비바람이 제법이다. 오늘 좀 멀리 가긴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18코스 종착지가 '조천만세동산'까지니 앞으로 한 시간 안짝일거다. 그때 가서 보기로 하고 해변을 타고 그냥 발걸음을 재촉했다. 2시에 조천만세동산에 올랐다. 한 바퀴 휙 돌아보고 이번 길 마지막인 19코스를 접어들었다. 걷다가 해변가 킹마트란 제법 큰 상점에서 낼 아침 먹거리로 사과1알, 방울토마토, 오이1개, 물 한 병 등을 사 갖고 함덕해변을 오르는 시간은 네 신데 빗줄기가 거세진다. 길옆에 민박간판이 즐비한 가운데 '함덕카약게스트 하우스' 란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화살표를 따라 조금 가자니 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서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마주앉아서 세상살이 얘길 나누는 가운데 주인이 카약(Kayak)전문가임을 알게 됐다. 제주일주, 제주에서 한강까지 카약항해를 한 유명한 분이다. 요즘은 여수엑스포에 맞춰서 제주 여수 간 카약 항해를 계획하고 있단다.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으로 있던 다른 한 분은 유명한 아크로배틱 패러글라이딩 파일럿이었던 고(故)함영민씨였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내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차례 다녀왔다는 얘기와 이번에 올레길을 나선 얘길 할 때 조금 떨어져서 책을 보고 있던 함영민씨를 불러서 나와 인사를 나누게 했다. 그리고 나는 함영민씨가 2012년에 KBS가 방영한 글로벌 대 기획 다큐멘터리(3부작)로 <이카로스의 꿈 - 히말라야 2,400km를 날다>에 다른 두 분과 함께 히말라야 상공을 패러글라이딩으로 횡단한 세 분 중에 한 분 임을 알았다. 함영민씨는 패러글라이딩 중에서도 고난도의 곡예비행을 하는 아크로바틱 패러글라이딩 파일럿(Acrobatic Paragliding Pilot)이었다. 그는 애석하게도 2013년12월 꽃다운 나이43세에, 네팔에서 아크로바틱 패러글라이딩 연습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우리가 만난 건 2012년3월이었다. 그때도 그는 함덕해변에서 패러글라이딩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유명한 두 분을 알게 돼서 기쁘다고 인사했고 그들은 산티아고길을 두 번(그 때는 포르투게스 길을 걷기 전이었으므로)이나 다녀 온 나를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해 왔었다.
고난도의 곡예비행을하는 아크로바틱 패러글라이딩(Acrobatic Paragliding)
제12일 차 순례여행<3월31일 토요일>날씨: 맑음 * 12.8km걷다
함덕서우봉해변----------------(12.8km)------------ 김녕서포구/어민복지회관(20)
함덕서우봉해변(▶0.7)서우봉입구(▶0.5)서우봉(▶1.8)너븐숭이4,3기념관(▶0.9)북촌등명대/북촌포구(▶1)북촌동굴(▶0.6)난시빌레(▶1.5)동북리마을운동장(▶1.9)벌러진동산>갑녕마을입구(▶0.9)갑녕농로(▶2.2)남을동(▶0.8)김녕서포구/어민복지회관(20)
비행기는 내일(4월1일)로 예약돼있지만 오늘 마지막코스 남은 길이 13km정도이니 서둘러 걷고 당일로 올라갈 생각으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제주도 서해안의 돌담길을 끼고 걸어서 김녕서포구 어민복지회관에 닿은 시간이10시다. 처음계획은 13일 동안에 19코스를 걷기로 했는데 계획보다 하루 앞 당겨 걸었다. 지금(2015년)은 김녕서포구에서 1코스 출발점인 시흥초등학교까지 올레길이 이어져 있지만 내가 걸은 2012년에는 김녕서포구가 올레길 종점이었다.
12일 동안 하루 평균27km를 걸었으며 1코스에서 19코스까지 걸은 총 거리는 321.4km다. 김녕서포구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갔다. 마침 좌석이 있어서 오후 1시 반 비행기로 올라왔다. - 끝 -
좀 더 괜찮은 올레길 순례기를 쓸 수도 있었는데 그 때 기록했던 수첩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이글은 사실 어렵게 재구성(?)돼서 좀 부실한 감이 있습니다.
첫댓글 수고하신 덕분에 좋은 구경과 자료를 접합니다.
국내외 여행을 두루 섭렵하는 병석형아가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정신건강을 위한 10가지 충고도 공감합니다.
3일 아침 전동차 맨 앞칸에서 만납시다^()^
미련 곰탱이 처럼 이렇게 긴 글을 올렸습니다^^~
누구 한 분이라도 관심있게 봐 주신다면 그걸로 족하지요.
동수형아, 결혼 기념일이 곧 이네요. 축하드립니다.
기훈형아는 모래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