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귀촉도(歸蜀途)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銀河)ㅅ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춘추} 32호, 1943.10)
제목 ‘귀촉도(歸蜀途)’는 새의 이름으로 두견새, 소쩍새, 자규, 촉조, 촉백, 풍년조 등으로 불린다. 이름의 의미는 촉도(蜀道)에서 돌아오라이다. 촉도는 파촉 땅에 들어가는 길로 이 길은 절벽 중간에 난 길로 구름다리처럼 밑에 기둥이 없는 잔도로 된 아주 험한 길이다. 이 길은 몹시 험하여 조금만 실수해도 절벽에 떨어져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하여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저승길의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귀촉도는 저승에서 가다가 이승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인 귀촉도는 저승에 가신 임 다시 돌아오기를 화자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임을 저승으로 보낸 화자는 슬픔에 눈에 ‘눈물 아롱아롱’하다. 슬프다. 그러나 화자는 임이 자신이 뿌리는 사랑을 상징하는 ‘진달래 꽃비’를 밟고 즐겁게 피리 불며 극락세계인 ‘서역(西域) 삼만 리’로 가셨다고 생각한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 ‘흰 옷깃 여며 여며’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저승길을 ‘가옵신 님을’ 자신의 사랑인 ‘진달래 꽃비’로 전송한다. 임께서 저승을 가시는데 아무런 염려 없이 즐겁게 ‘피리 불고’ 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겉으로는 임이 즐겁게 가도록 온갖 배려를 하였지만 본심은 임을 보내기 싫었고 임이 자신과 헤어져 저승에 가는 것을 몹시 슬퍼한다는 것을 알려 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이 마음을 알리기 위해 ‘신이나 삼아 줄 걸’하고 후회한다. 화자가 임에게 삼아 줄 신은 보통 신이 아니라 화자의 ‘머리털’로 만든 신이다. ‘은장도 푸른 날로’ ‘ 부질없는 이 머리털’을 망설임 없이 ‘이냥 베어서’ ‘이 머리털 엮어’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신이나 삼아’ ‘엮어 드릴 걸’ 하고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여인에게 ‘머리털’은 아름다움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머리털’로 신을 삼아 주므로 임이 없는 이 세상에서는 자신의 아름다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임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머리털’의 ‘올올’ 만큼 한 없이 슬프다는 것을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임이 저승 가시는 길에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라는 마음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롱에 불빛’은 화자가 저승에 가신 임을 잊지 못하고 임이 혹시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불가능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지친 밤하늘’은 밤이 깊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깊은 밤에 우는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화자의 귀에는 ‘불여귀’가 아니라 ‘귀촉도’로 들린다. 이는 화자의 본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화자는 두견새의 울음 소리를 ‘굽이굽이 은하(銀河)ㅅ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로 표현하여 자신의 상태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굽이굽이 은하(銀河)ㅅ물’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굽이굽이’ 흘러 건너가고 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목이 젖은 새’는 ‘은하(銀河)ㅅ물’에 ‘목이 젖은’ 것이 아니라 ‘제 피에 취한 새’에서 알 수 있듯이 ‘제 피에’ ‘목이 젖은’ 것이다. 이 피는 임을 목이 막힌 상태에서 애타게 부르다 피를 토한 것을 말한다. 화자는 두견새처럼 피를 토하진 않았지만 임을 잃은 슬픔으로 통곡하다 목이 부어 임을 부를 수 없고, 끝없는 눈물을 흘리다 눈이 부어 ‘눈이 감겨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런 화자를 대신하여 두견새가 ‘귀촉도’하고 운다. 화자의 본심인 ‘임이여 저승에서 나에게 돌아오라’고 대신 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두견새는 화자의 감정을 대신 표출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자신을 대신하여 임에게 돌아오라는 말을 하는 두견새의 울음이 화자의 마음인 줄 알아주기를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을 불러 표현하고 있다.
‘진달래 꽃비’는 저승으로 가는 임이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게 배려하는 화자의 마음을 의미한다. 진달래는 두견화로 우리나라에서는 두견새 설화를 바탕으로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진달래 꽃비’로 뿌려 임이 가시는 저승길을 아름답게 하고 임이 자신의 사랑을 즐거운 상태에서 밟고 가도록 하려는 마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를 창조적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역(西域) 삼만 리’에서 ‘서역’은 역사적으로는 ‘중국의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처가 있던 인도를 뜻하기도 하고, 부처가 있는 이상향 또는 저승의 극락세계의 다른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저승의 극락세계를 의미한다. ‘삼만 리’는 이승에서 저승까지의 거리를 말하며 실제 거리가 아니라 아주 멀다는 의미로 쓰여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를 나타낸다.
‘흰 옷깃 여며 여며’는 먼 길을 가려고 행장을 단단히 차린 모습을 말한다.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파촉(巴蜀)’은 지금의 사천 지방으로 이 곳으로 가려면 험난한 잔도를 통과해야한다. 이 길이 너무 험해 죽음의 길로 통하였다. 이로 인하여 후세에는 저승으로 가는 저승길의 의미로 쓰였다. 이 시에서는 저승을 의미한다.
‘메투리’는 미투리의 사투리로 우리나라 장례 풍습에 죽은 자와 죽은 자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가 저승길을 가는데 사용하라고 미투리를 만들어 집 앞에 거는 풍속이 있다. 이러한 풍속과 연관된 표현이다. 같이
‘초롱에 불빛’은 장례 때에 집 앞에 장명등을 걸어놓아 혼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풍속과 관련되고 화자가 잠을 못 이루고 임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제 피에 취한 새’는 화자를 달리 표현한 것으로 ‘제 피에 취’했다는 것은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20061019목전1144 흐림 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