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장 上帝의 成道와 奇行異蹟(상제의 성도와 기행이적)
(濟生醫世(제생의세)는 聖人(성인)의 道(도)요 災民革世(재민혁세)는 雄覇(웅패)의 술이라. 이제 天下(천하)가 雄覇(웅패)에게 괴롭힌지 오랜지라. 내가 相生(상생)의 道(도)로써 蒼生(창생)을 敎化(교화)하여 世上(세상)을 平安(평안)케 하려 하노니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마음을 그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 大人(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恒常(항상) 남을 살리기를 생각해야 하나니, 어찌 蒼生(창생)을 滅亡(멸망)케하고 홀로 잘 되기를 圖謀(도모)함이 옳으리오)
1) 上帝 여러해 동안 全國(전국) 各道(각도)를 遊歷(유력)하사 많은 經驗(경험)을 얻으시고, 各地(각지)의 民心(민심)과 風習(풍습)을 觀察(관찰)하신 다음, 庚子年(경자년:1900년)에 天文(천문)을 받으시고, 辛丑年(신축년:1901년) 陰二月(음이월)에 母嶽山(모악산) 大願寺(대원사)에 들어가서 道(도)를 修煉(수련)하여 七月七日(칠월칠일)에 大雨(대우) 熱風(열풍) 雷雨(뢰우) 不迷(불미)하시고 五龍喚風時(오룡환풍시)에 天地大道(천지대도)를 體得貫通(체득관통)하시고 貪(탐) 淫(음) 瞋(진) 痴(치) 四種大魔(사종대마)를 屈服(굴복)시키시다. 이때 主持(주지) 朴錦谷(박금곡)이 隨從(수종)을 들었더라.
2) 이해 겨울에 本宅(본댁)에서 비로소 天地運路(천지운로) 改造公事(개조공사)(이하[天地公事:천지공사]로 표현한다)를 執行(집행)하심에, 窓門(창문)에 종이를 붙이지 아니하시고, 부엌에 불을 떼지 아니하시며 홑옷을 입으시고 食飮(식음)을 전폐하사 아흐레 동안을 지내시니, 새가 벼 말리는 뜰에 내리지 않고, 이웃 사람들은 恐怖症(공포증)이 들어 방문 앞을 지나다니기를 어려워 하였다.
3) 壬寅年(임인년:1902년) 四月(사월)에 上帝께서 全州郡(전주군) 雨林面(우림면) 夏雲洞(하운동)에 사는 安東金氏(안동김씨) 太雲(태운) 金亨烈(김형열)을 찾으시니, 本是(본시) 김형열은 여러해 전부터 上帝님과 아는 사이라. 金溝(금구) 內住坪(내주평)鄭氏家門(정씨가문)에 장가들어 書堂(서당)을 열고 學生(학생)들을 가르키셨는데, 그때부터 통성명하시었다. 上帝님 幼年期(유년기)에 이미 神童(신동)이라 널리 알려지시니, 日氣(일기)의 變化(변화)와 사람들의 四株運勢(사주운세)의 正確(정확)한 判斷(판단)으로 可謂(가위) 神人(신인)이란 評(평)이 났었다. 형열이 東學亂(동학란)때 參戰(참전)했던 數年後(수년후)에 上帝님의 성도소식을 전해들었는데 한번 相逢(상봉)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차에, 하루는 院坪(원평) 장날이라. 家産(가산)이 貧困(빈곤)하여 絶糧(절량)하였으므로 돈 한냥을 빌려 장에 갔다가 마침 上帝님을 만나시니 喜不自勝(희불자승)이라. 어디로 가시는가 물었더니 忠淸道(충청도)에 간다 하시기로 식량 살 돈 한냥을 路費(로비)에 보태 쓰시라고 드리면 家族(가족)이 굶을 것이오, 아니 드리면 相親間(상친간)에 義理(의리)가 아니라서 돈을 드리니 몇 번 사양하시다가 받으시며 가라사대 歸路(귀로)에 들리겠다고 하신데, 그달 十三日(십삼일)에 夏雲洞(하운동)으로 들리시니라. 上帝께서 형열의 집에 當到(당도)하사 가라사대[그대의 집에 産氣(산기)가 있으리라]하시니 형열이 가로대[어떻게 아시나이까]가라사대[産神(산신)이 말을 몰고 들어감으로 아노라]하시고 잠시 지났을 때 안으로부터 셋째 아들의 出産(출산)을 알리어왔거늘 上帝께서 卽席(즉석)에서 이름을 지어 주시니 千里馬(천리마)더라. 그런데 이 兒孩(아해)가 태어나서 몸을 살피니 젖이 네 개더라
4) 上帝께서 형열을 데리고 감나무 아래로 가서 앉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집 亡(망)하고 네집 亡(망)한다음 天下(천하)가 바로 잡히는 工夫(공부)를 하겠는가]하고 다짐을 하니 형열이 한참 生覺(생각)하다가 마침내 應諾(응락)하더라. 上帝께서 형열의 承諾(승락)을 받은뒤에 비로소 방안에 들어서니, 형열의 아내가 전에부터 産後腹痛(산후복통)이 있어서 크게 고생하였음을 근심하니, 上帝 위로하여 가라사대[ 이 뒤로는 모든 일에 나를 믿고 근심을 놓아라] 형열이 명하신대로 오직 上帝만 믿고 근심을 놓았더니, 과연 아내의 복통이 곧 그치고, 그 밖에 喘息(서식) 咳嗽(해소)같은 다른 병들도 다 함께 나으니라.
5) 上帝 형열에게 일러 가라사대[이제 末世(말세)를 當(당)하여 앞으로 無極大運(무극대운)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操心(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말고 罪(죄)를 멀리하여 純潔(순결)한 마음으로 天地公庭(천지공정)에 參與(참여)하라. 나는 四界大權(사계대권)을 主宰(주재)하여 造化(조화)로써 天地(천지)를 開闢(개벽)하고, 不老長生(불로장생)의 仙境(선경)을 열어 苦海(고해)에 빠진 衆生(중생)을 건지려 하노라]하시고, 이로부터 형열의 집에 머무르사 천지공사를 수행하심에 형열에게 神眼(신안)을 열어주어 神明(신명)의 會散(회산)과 聽令(청령)을 參觀(참관)케 하시니라.
6) 여름을 지내심에 형열의 집이 가난하여 食事待接(식사대접)이 粗雜(조잡)하고,또 남새밭이 메말라서 菜蔬(채소)가 잘 자라나지 아니하므로 형열이 근심하거늘 上帝 일러 가라사대[山中(산중)에는 別味(별미)가 없나니 채소나 잘되게 하여 주리라]하시더니, 이로부터 약간 심어 두었던 메마른 남새들이 잘 자라서, 걷우어 가꾸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자라나서 반찬거리가 넉넉하게 되니라.
7) 六月 어느날 형열에게 [예수敎書(교서) 한권을 구하여 오라]하시거늘, 형열이 이웃마을 梧桐亭(오동정) 金京安(김경안)에게서 예수교서를 빌려다 올리니, 上帝 받아서 불사르시니라. 그 뒤에 형열이 上帝를 모시고 오동정 車允必(차윤필)의 집에 가니 경안이 와서 빌려간 책을 돌려 주시를 請(청)하므로 형열이 대답치 못하거늘 上帝 가름하여 대답하시대[곧 돌려 주리라]하시더니, 마침 한 붓장사가 지나가거늘 上帝 불러들이사 술을 먹이신 뒤에 그 붓상자를 열어 보이기를 청하신대 붓장사가 열어 보이니 예수교서 한권이 있는지라. 上帝 가라사대[ 그대는 반드시 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이 책이 쓸데 없을 지라 나에게 전함이 어떠하뇨]붓장사가 許諾(허락)하거늘 上帝 그 책을 받아서 경안에게 주시니라.
8) 그 뒤에 佛敎書(불교서) 千手經(천수경) 漢字玉篇(한자옥편) 史要(사요)와 海東名臣錄(해동명신록) 邵康節(소강절)의 觀梅法(관매법)과 大學(대학)과 형열의 債權簿(채권부)를 불사르시니라
9) 九月에 農家(농가)에서 보리갈이로 奔走(분주)하거늘 上帝 한숨지으며 가라사대[이렇게 辛苦(신고)하여도 수확을 얻지 못하리니 어찌 可惜(가석)치 아니하리오]하시거늘 형열이 이 말씀을 듣고 드디어 보리농사를 廢(폐)하였더니 癸卯年(계묘년) 봄에 이르러 氣候(기후)가 順調(순조)하여 보리가 크게 豊盛(풍성)할 徵兆(징조)가 있는지라. 金甫京(김보경)등 여러 弟子(제자)와 이웃 사람들이 모두 형열을 비웃거늘 上帝 가라사대[이 일은 神明公事(신명공사)에서 결정된 것이니, 아직 結實期(결실기)에 이르지 못하여 어찌 豊作(풍작)이라고 斷言(단언)하리오]하시더니 果然(과연) 五月五日에 큰 비로 因(인)하여 보리이삭이 다 말라서 收穫(수확)이 아주 없게되고 쌀값이 올라서 한말에 일곱냥(일원사십전)이 되니, 이로부터 모든 사람이 上帝께 信服(신복)하니라
10) 겨울에 亨烈(형열)이 上帝를 모시더니, 마침 큰 눈이 오거늘 형열이 여쭈어 가로대[傳說(전설)에 宋尤庵(송우암)이 居處(거처)하는 지붕에는 눈이 쌓이지 못하고 녹는다하니 진실로 天地(천지)의 至靈之氣(지령지기)를 타고난 사람인가 하나이다]上帝 가라사대[진실로 그러하랴 이제 나 있는 곳을 살펴보라]형열이 밖에 나가보니 날이 차고 눈이 많이 내려 쌓이되 오직 그 지붕에는 눈이 한점도 없고, 맑은 기운이 하늘에 뻗쳐 구름이 가리지 못하고 푸른 空中(공중)에 貫通(관통)되어 보이더라. 이로부터 형열이 항상 유의하여 살피니 언제나 상제께서 머무시는 곳에는 반드시 맑은 기운이 푸른 하늘을 通(통)하여 구름이 가리지 못하며, 비록 큰 비가 오는 때에도 그러하더라.
11) 매양 출타하실 때에는 神明(신명)에게 治道令(치도령)을 써서 불사르사 여름이면 바람을 불러 길가 이슬을 떨어뜨리고 겨울이면 젖은 길을 얼어붙게 하신 뒤에 마른 신발로 다니시니라.
12) 夏雲洞(하운동)은 山中(산중)으로 길이 심히 좁고 나무 숲들이 길에 우거져 얽혀서 이슬이 많을 뿐 아니라, 장마가 질 때에는 길에 물이 흘러 시내를 이루되, 上帝의 신발은 항상 깨끗하므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상히 여기니라.
13) 出他(출타)하실 때에는 반드시 洞口兩便(동구양편)이 구름기둥이 높이 서서 八字形(팔자형)을 이루므로 弟子들이 그 이유를 물은데 上帝 가라사대[이는 將門(장문)이니라]
14) 하루는 제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諸葛亮(제갈량)이 祭壇(제단)에서 七日七夜(칠일칠야)동안 功(공)을 들여 東南風(동남풍)을 불렸다는 것이 웃으운 일이라. 功(공)들이는 동안에 일이 그릇되어 버리면 어찌하리오]하시고 卽時(즉)에 東南風(동남풍)을 불러 보이시니라
15) 富坪(부평) 李善慶(이선경)의 丈母(장모)가 夏雲洞(하운동)에 살 때에 上帝 그 집에서 公事(공사)를 遂行(수행)하실 새, 그집 주인에게 일러 가라사대[네 아내가 사십구일동안 精誠(정성)을 드릴 수 있는가를 잘 의논하여 보라]주인이 아내에게 의논하니 그 아내는 벌써부터 上帝의 神聖(신성)하시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으므로 굳게 決心(결심)하고 許諾(허락)하거늘, 上帝 다시 다짐을 받게 하신 뒤에 公事(공사)를 行(행)하실 때 날마다 머리빗고 沐浴(목욕)한 후에 떡 한시루씩 찌개 하시니라. 여러날을 지남에 그 아내가 심히 괴로워하여 不平(불평)을 품었더니 이날 떡은 한짐나무를 떼어도 익지 아니하거늘 크게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모르더라. 上帝 주인에게 가라사대 [그대 아내의 誠心(성심)이 풀려서 떡이 익지 아니하여 걱정하는 듯하니 내앞에 나와서 謝過(사과)하게 하라. 나는 비록 容恕(용서)하고자 하나 神明(신명)들이 듣지 아니하느니라]주인이 아내에게 이 말씀을 전하니, 아내가 깜짝 놀래어 사랑에 나와서 上帝께 謝過(사과)한 후에 부엌에 들어가서 시루를 열어보니 떡이 잘 익었더라. 이로부터 한결같이 精誠(정성)을 들여 四十九日(사십구일)을 마치니 上帝 親(친)히 부엌에 들어가 그 精成(정성)을 致賀(치하)하시니, 그 아내가 정성을 한결같이 드리지 못하였음을 미안해 하거늘 上帝 위로하여 가라사대[그대의 誠心(성심)이 神明(신명)을 감동시켰으니 믿지 않거든 저 證標(증표)를 보라]하시니 하늘에 五色彩雲(오색채운)이 달을 끼고 있는 것을 가리켜 보이니라.
16) 癸卯年(계묘년) 七月(칠월)에 쌀값이 오르고 農作物(농작물)에 蟲災(충재)가 심하여 인심이 불안하거늘 上帝 弟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辛丑年(신축년) 이후로는 年事(년사)를 내가 맡았으니, 今年農事(금년농사)를 잘 되게하여 백성들의 食祿(식록)을 넉넉하게 하리라]하시고 크게 우레와 번개를 일으키시니 이로부터 蟲害(충해)가 그치고 농사가 크게 豊作(풍작)하니라.
17) 가을에 銅谷(동곡:구릿골) 金成天(김성천)의 남새밭에 뜨물과 석음이 일어 채소가 全滅(전멸)케 되었거늘 上帝 보시고 가라사대[죽을 사람에게 기운을 붙여 回生(회생)케 함이 이 채소를 소행케 함과 같으니라]하시고 곧 비를 내리시더니, 그 뒤에 出他(출타)하셨다가 돌아오사 金自賢(김자현)에게 물어 가라사대[前日(전일)에 뜨물과 석음으로 全滅(전멸)케 되었던 김성천의 남새밭이 어떻게 되었느냐]자현이 대하여 가로대[지난번 비로 다시 소생하여 이 부근에 으뜸이 되었나이다]가라사대[사람의 일도 이와같이 病(병)든자와 죽는자에게 기운을 붙이면 일어나느니라]
18) 하루는 院坪(원평)에서 술을 잡수시고 여러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라사대[이제 곧 雨雹(우박)이 올터이니 장독 덮개를 새끼로 잘 얽어 놓아라. 그렇지 아니하면 산산조각이 나리라]하시니 여러 사람들은 無心(무심)히 듣고 오직 崔明玉(최명옥)이 말씀대로 하였더니 果然(과연) 두어시간 후에 큰 우박이 내려서 여러집 장독이 모두 깨어지니라
19) 上帝의 아우 永學(영학)이 항상 道術(도술) 通(통)하기를 上帝께 發願(발원)하더니 하루는 上帝께서 부채에 鶴(학)을 그려서 영학에게 주며 가라사대[집에 돌아가서 이 부채를 부치면서 七星經(칠성경)을 武曲破軍(무곡파군)까지 읽고 이어서 大學(대학)을 읽으라 그러면 도술을 통하리라]영학이 부채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鄭南基(정남기:상제의 처남)의 집에 들리니 남기의 아들이 그 부채의 아름다움을 탐내어 빼앗고 주지 아니하거늘 영학이 不得已(부득이)하여 그 事由(사유)를 말하고 돌려주기를 懇請(간청)하니 남기의 아들은 더욱 탐내어 주지 아니하므로 할 수없이 빼앗기고 돌아오니라.
20) 그 뒤에 남기의 아들이 그 부채를 부치면서 大學(대학)을 읽으매, 문득 神力(신력)이 통하여 能(능)히 神明(신명)을 부리고, 물을 뿌려 비를 오게 하는지라. 南基(남기)가 기뻐하여 아들을 敎唆(교사)하여 [姑母夫(고모부)의 道力(도력)을 빠았으라]하고 아들을 데리고 夏雲洞(하운동)에 이르니, 上帝 그 일을 알으시고 남기의 無義(무의)함을 꾸짖고 그 아들의 神力(신력)을 다 걷우신 뒤에 돌려 보내시니라.
21) 甲辰年(갑진년:1904년) 正月(정월)에 白南信(백남신)이 官厄(관액)에 걸려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居處(거처)를 감추고 김병욱을 통하여 上帝께 풀어주시기를 懇請(간청)하거늘 上帝 가라사대[富者(부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십만냥을 喜捨(희사)하겠느냐]남신이 곧 십만냥의 證書(증서)를 올렸더니, 그 뒤로 남신의 官厄(관액)이 곧 풀리는지라. 뒤에 上帝께서 그 증서를 불사르시니라.
22) 甲辰年(갑진년) 正月(정월) 十五日(십오일)에 上帝 술을 드시고 昏夢(혼몽)히 주무실 때, 張興海(장흥해)의 幼兒(유아)가 急病(급병)으로 죽게 되므로 興海(흥해)의 夫(부) 孝淳(효순)이 급히와서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거늘, 上帝 누워 일어나지 아니하시고 昏夢中(혼몽중)에 [냉수나 먹이라]고 말씀하셨더니, 효순이 病兒(병아)에게 냉수를 먹임에 곧 죽는지라. 효순은 본시 性質(성질)이 사나워서 府中(부중)사람들이 天動(천동)이라고 부르는 터인데, 病兒(병아)가 죽으니 크게 怒(노)하여 上帝를 원망하여 가로대[이는 故意(고의)로 藥(약)을 그릇 일어준 탓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일으키며, 말 한마디로 위태한 병을 고침을 내가 直接(직접)본바이니, 만일 故意(고의)가 아니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神異(신이)한 道術(도술)로 能(능)히 낫게 하였을 것이라]하고 드디어 곤봉을 들고와서 上帝를 亂打(난타)하여 유혈이 낭자케 한지라. 上帝께서 비로소 잠을 깨어 일어나시니, 효순이 上帝를 결박하여 刑房廳(형방청)으로 갔다가 문득 뉘우친듯이 끈을 풀어 가로대[이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幼兒(유아)가 急病(급병)으로 죽었거늘 어찌 先生(선생)을 怨妄(원망)하리오]하고 前交(전교)를 回復(회복)하기를 간청하면서 자기집으로 동행하기를 구하거늘, 上帝 듣지 아니하시고 徐元圭(서원규)의 藥房(약방)으로 가서 주무시고, 다음날 李直夫(이직부)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효순)이 上帝를 용서하여 형방청으로부터 돌아 가시게 한 것은 백남신으로부터 받은 돈 십만냥의 증서가 있음을 알고 돈을 要求(요구)하려 함이더라.
23) 다음날에 효순이 원규의 집에 가서 上帝가 아니 계심을 보고 대노하여[殺人犯(살인범) 逃亡(도망)하였다]하고 사방으로 搜索(수색)하더라. 그때에 上帝의 家族(가족)은 全州郡(전주군) 雨田面(우전면) 花亭里(화정리) 이경오의 집 협실에 移居(이거)하였는데 효순의 가족이 花亭里(화정리)에 와서 行悖(행패)하니라.김형열은 효순의 일을 알지 못하고 上帝의 消息(소식)을 들으려고 花亭里(화정리)에 오니, 효순의 집사람들이 형열을 結縛(결박)하여 원규의 집으로 가서 上帝의 行方(행방)을 묻되 말하지 아니하므로, 그들은 더욱 憤怒(분노)하여 형열과 원규를 무수히 毆打(구타)하니라 이로 因(인)하여 上帝의 가족은 泰仁(태인) 屈峙(굴치)로 避(피)하시고 형열은 원규의 집에서 밤중에 도피하고 원규는 그들의 連日(연일) 행패에 견디지 못하여 藥局(약방)을 廢業(폐업)하고 가족을 거느리고 益山(익산)으로 몸을 避(피)하니라.
24) 하루는 弟子들이 여쭈어 가로대 [先生(선생)의 權能(권능)으로 어찌 장효순의 (난동)당하였나이까]上帝 가라사대[敎中(교중)이나 家中(가중)에 紛爭(분쟁)이 일어나면 神政(신정)이 紊亂(문란)하여 지나니, 그대로 두면 世上(세상)에 큰 災殃(재앙)를 끼치게 되므로 내가 몸으로 그 氣運(기운)을 받아서 解消(해소)함이로다]하시니라(장효순의 난동이 있기에 앞서 古阜家庭(고부가정)에 紛亂(분란)이 있었음)
25) 하루는 이직부의 집에 계시더니, 직부의 부친 治安(치안)이 그해 身數(신수)를 묻거늘 上帝 백지 한 장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다시 글을써서 密封(밀봉)하여 주시며 가라사대[急(급)한일이 있거든 떼어보라]하신지라. 치안이 깊히 감춰두었더니 그 뒤에 며느리가 難産(난산)으로 危境(위경)에 빠졌음을 듣고, 이 일을 가르치심인가 하여 封書(봉서)를 들고 간즉, 이미 順産(순산)하였거늘 다시 감춰 두었더니, 歲末(세말)에 치안이 병이들어 위급한지라. 직부가 封書(봉서)를 떼어보니 小柴胡湯(소시호탕) 二貼(이첩)이라 썼거늘 그 藥(약)을 써서 곧 나으니라.
26) 二月(이월)에 밤재에 계실 때, 永學(영학)에게[大學(대학)을 읽으라]하였더니, 영학이 듣지 아니하고 術書(술서)에 마음을 쏟으므로 上帝 歎息(탄식)하여 가라사대[멀지 아니하여 영학을 못보게 되리라]하시고 이도삼을 보내사[骨暴沙場纏有草 魂返故國弔無親(골폭사장전유초 혼반고국조무친;뼈는 모래사장 위에 잡초와 뒤엉켜 널려 있고 혼은 고국으로 돌아오나 조문해 줄 자손하나 없구나]이란 글 한수를 傳(전)하여 영학으로 하여금 살펴 깨닫게 하시되 영학이 終是(종시) 살펴 깨닫지 못하니라.
27) 그 뒤에 永學(영학)이 病(병)들어 危急(위급)한지라. 上帝(상제 들으시고 金甲七(김갑칠)을 데리고 밤재에 가실 때 중도에서 한 주막에 드시니 한사람이 허리가 굽어서 엎드려 기어다니거늘 上帝께서 그 허리 펴지못하는 이유를 물으시니 대하여 가로대[十餘年前(십여년전)부터 곱추가 되어서 고치지 못하였나이다]하거늘 上帝 손으로 그 허리를 주물러서 펴주시고 謝禮(사례)로 돈 열닷냥을 가져오라 하시니, 그 사람이 기뻐뛰놀며 가로대[선생은 실로 再生之恩人(재생지은인)이오니, 이 은혜를 갚으려 할진대 태산이 오히려 가벼우나 지금 몸에 지닌 돈이 없아오니 무엇으로 갚으리까] 上帝 가라사대[物品(물품)도 可(가)하니라] 그 사람이 가로대[내가 널 장사를 하오니 널로 드림이 어떠하나이까 널 한 벌값이 열닷냥이나이다]上帝 가라사대[그도 좋으니 잘 자려두라]하시고 집에 돌아가시니 영학이 이미 죽었거늘 그 널을 가져다가 葬事(장사)지내시니라.
28) 보름날 金甲七(김갑칠)을 데리고 扶安(부안) 古阜(고부) 等地(등지)를 巡遊(순유)하실 때, 저녁에 古阜(고부) 검은바위 酒幕(주막)에 들리시니 이때에 火賊(화적)이 많이 일어나서 대낮에 橫行(횡행)하므로 巡檢(순검) 한 사람이 私服(사복)차림으로 夜巡(야순)하려고 들렸거늘 上帝 주모에게 일러 가라사대[저 사람에게 酒食(주식)을 주지말라. 만일 술과 밥을 먹였다가 값을 받지 못하면 넉넉지 못한 營業(영업)에 損害(손해)가 아니냐]하시니 巡檢(순검)이 이 말씀을 크게 성내어 上帝님을 毆打(구타)하며 無禮(무례)한 말을 한다고 꾸짖거늘 上帝 웃어 가라사대[다죽은 송장에게 맞아서 무엇이 아프랴]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니, 주모가 순검에게 이르되[저 양반의 말씀이 異常(이상)하니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라. 나가서 謝過(사과)하고 그 緣由(연유)를 물어보라] 하거늘 순검이 옳게 여겨서 상제님 뒤를 따르며 謝過(사과)한 뒤에 연유를 물으니 上帝 가라사대[오늘 밤에 事務(사무)를 廢(폐)하고 다른 곳으로 몸을 避(피)하라]순검이 명하신대로 몸을 피하였더니 이윽고 밤이 갚음에 火賊(화적)들이 몰려와서 주모를 拘束(구속)하여 순검의 간 곳을 물으니, 이는 곧 여러 화적들이 순검을 죽이려고 미리 약속한 일이 있음이라. 이튿날 순검이 上帝님 계신 곳을 찾아와서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하니라.
29) 오월에 상제 밤재에 계실 때 甲七(갑칠)이 구릿골로부터 이르거늘 上帝 물어 가라사대[너의 지방에 農沆(농항)이 어떠하뇨]갑칠이 대하여 가로대[가뭄이 심하여 移種(이종)을 못하므로 民心(민심)이 소란스럽나이다] 上帝 가라사대[네가 비를 빌려 왔도다. 네게 雨師(우사)를 붙이노니 곧 돌아가되 길에서 비를 맞을지라도 피하지말라. 이는 네 몸에 天地公事(천지공사)의 任務(임무)를 띄고 가는 緣故(연고)니라]갑칠이 명을 받고 돌아갈새. 얼마 아니가서 비가 내리드니 暫時(잠시) 동안에 냇물이 넘치는지라 이로부터 물이 풍족하여 수일안에 모 심기를 마치니라.
30) 六月(유월)에 亨烈(형열)을 데리고 태인 新培(신배)를 지나실 때 그 마을 어떤 집에 불이나서 모진 바람에 기세가 크게 성하거늘 上帝 可憐(가련)히 여겨 가라사대[저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온 마을이 재가 되리니 맞불을 놓아 끄리라] 하시고 형열을 命(명)하사 섶으로써 불을 피우시니 곧 바람이 자고 불이 꺼지니라.
31) 八月(팔월) 二十七日(이십칠일), 益山(익산) 萬聖里(만성리) 黃士成(황사성)의 집에 이르시니 마침 어떤 사람이 怒氣(노기)를 띄고 있거늘 그 마을 鄭春心(정춘심)의 집으로 옮겨 가시니라. 본시 사성의 父親(부친) 叔京(숙경)이 全州(전부) 龍進面(용진면) 용바위 黃參奉(황참봉)에게 빚이 있었더니 황참봉이 죽은 뒤에 그 아들이 사람을 보내서 빚을 재촉하며, 만일 갚지 아니하면 警務廳(경무청)에 告訴(고소)하여 獄中(옥중)에다 썩히면서 받겠다고 威脅(위협)하는지라. 이날 밤에 士成父子(사성부자)가 春心(춘심)의 집에 와서 上帝께 이 일을 아뢰며 無事(무사)하도록 끌려주시기를 懇請(간청)하거늘 上帝 숙경에게 命(명)하사, 무명베 한필을 사다가 옷 한 벌을 지어 입으시고, 숙경에게 일러 가라사대[일이 잘 풀리리니 근심을 놓아라 무명베 한필은 債權(채권)과 債務(채무)사이에 길을 닦는 것이니라]하시더니 그 뒤에 순검이 와서 숙경을 잡아 가려고 하거늘 숙경이 순검과 함께 債權者(채권자)의 집에 가서 갚을 期限(기한)을 늦추기로 하고 和解(화해)를 청해도 채권자가 듣지 아니하고 固執(고집)하거늘, 그 母親(모친)이 아들을 불러 꾸짖어 가로대[저 어른은 네 父親(부친)의 親舊(친구)인데 이제 獄(옥)에 가두려 하니, 이는 禽獸(금수)의 行爲(행위)를 하려함이로다]하고 그 證書(증서)를 빼앗아 불살라 버리니 채권자가 할 일없이 숙경에게 謝過(사과)한 뒤에 드디어 告訴(고소)를 取下(취하)하고 빚을 蕩減(탕감)하여 버리니라.
32) 九月十日, 咸悅(함열) 會仙洞(회선동) 金甫京(김보경)의 집에 가시니, 보경이 여쭈어 가로대[이 近處(근처)에는 요사이 盜賊(도적)이 出沒(출몰)하여 밤마다 村落(촌락)을 터는데 저희 집이 비록 넉넉지는 못하나 밖에서는 富者(부자)인줄 알므로 實(실)로 두려워서 마음을 놓지 못하오니 請(청)컨대 盜賊(도적)을 물리쳐 주옵소서]上帝 웃으시며 문앞에 침을 뱉으시고 일러 가라사대[이 뒤로는 마음을 놓으라 도적이 저절로 멀리 가리라]하시더니, 과연 그 뒤로는 도적의 자취가 없어지니라.
33) 十一月에 全州府(전주부)에 이르시니 마침 民亂(민란)이 일어나서 人心(인심)이 騷動(소동)하는지라. 甫京(보경)에게 일러 가라사대[金秉旭(김병욱)이 國家(국가)의 重鎭(중진)에 處(처)하였으니 動搖(동요)된 人心(인심)을 잘 鎭壓(진압)하여 그 責務(책무)를 다하여야 할지라. 그 方略(방략)을 어떻게 定(정)하였는지 물어오라]보경이 병욱을 찾아 命(명)하신대로 傳(전)하니, 병욱이 上帝께 와 뵙고 가로대[無能(무능)한 저로서는 물끓듯 하는 民擾(민우)를 鎭壓(진압)할 수 없아오니, 오직 先生님의 힘만 믿나이다]上帝 가라사대[내가 가름하여 鎭壓(진압)하리라]하시고, 이날 저녁부터 비와 눈을 크게 내리시며 氣候(기후)를 酷寒(혹한)으로 變化(변화)시키시니 防寒設備(방한설비)가 없이 모였던 群衆(군중)들은 할일없이 解散(해산)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비와 눈은 삼일동안 계속 하므로 군중들은 다시 모이지 못하고 騷動(소동)은 스스로 鎭定(진정)되니라.
34) 十二月에 院坪(원평)에 계실새 그때에 御使(어사) 朴齋斌(박재빈)이 全羅北道(전라북도) 일곱 고을의 郡守(군수)를 罷免(파면)하고 장차 全州(전주)에 出道(출도)하려함에 군수 權直相(권직상)의 地位(지위)도 危殆(위태)하게 된지라. 金秉旭(김병욱)은 이때에 全州(전주) 陸軍將校(육군장교)로서 권직상과 親分(친분)이 있을뿐 아니라. 권직상이 罷免(파면)되면 자기의 일에도 또한 狼狽(낭패)될 일이 많으므로 그 이일을 근심하여 上帝께 그 對策(대책)을 묻거늘 상제 가라사대[그 일은 無事(무사)하도록 끌러 주리니 근심치 말라]하시더니 그 뒤에 朴御使(박어사)가 권직상을 罷免(파면)하려고 전주부에 들어오자 때마침 박어사의 免官秘訓(면관비훈)이 전주부에 이르니라.
35) 하루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母嶽山(모악산) 龍眼臺(용안대)에 이르사 여러날 머무르실 때, 마침 눈이 크게 내려 交通(교통)이 杜絶(두절)되었는데 食糧(식량)이 두끼 지을 것 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제자들이 서로 걱정하거늘 상제 들으시고[남은 糧食(식량)으로 식혜를 지으라]하시니, 제자들은 不足(부족)한 糧食(양식)을 털어서 식혜를 지으면 더욱 부족하여 굶게될 것을 걱정하며 식혜를 지어 올린데 상제 제자들과 나누어 잡수시니 곧 눈이 그치고 日氣(일기)가 溫和(온화)하게 되어 丈雪(장설)로 쌓인 눈이 頃刻(경각)에 다 녹아 道路(도로)가 開通(개통)되므로 곧 돌아오시니라.
36) 乙巳年(을사년:1905년) 陰正月(음정월) 그믐날 亨烈(형열)과 함께 扶安(부안) 成根里(성근리) 李桓九(이항구)의 집에 가서 여러날 머무르실 새. 항구가 扶安邑(부안읍) 사람 辛元一(신원일)을 자주 薦擧(천거)하거늘 上帝께서 원일을 부르시니, 원일이 와 뵈옵고 上帝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오니, 원일의 父親(부친)과 아우는 上帝님을 믿지 아니하고 오래 머무르심을 싫어하는지라. 원일이 청하여 가로대[家親(가친)이 본시 고기잡이를 즐겨하여 해마다 經營(경영)하다가 去年(거년)에는 暴風(폭풍)으로 因(인)하여 큰 損害(손해)를 보았으니, 今年(금년)에는 風災(풍재)를 없게하여 고기잡이를 잘 되게 하여 주시면 家親(가친)을 위하여 多幸(다행)일까 하나이다] 上帝 가라사대[그 일은 어렵지 아니하니 많은 이익을 얻은 뒤에 千兩(천냥)을 나누어 오라. 將次(장차)쓸데가 있노라] 원일부자가 기뻐하여 許諾(허락)하더니, 이해에 과연 風災(풍재)가 없고 七山(칠산) 바다에서 원일부친의 고기잡이가 가장 잘 되어 큰 돈을 벌었는지라. 상제 원일부친에게 사람을 보내어 허락한 돈 천냥을 보내라 하시니, 원일부친이 앞서 한 言約(언약)을 어기고 보내지 아니하거늘 상제 원일에게 일러 가라사대[이는 大人을 속임이라. 내일은 모든 것을 神明(신명)으로 더불어 作定(작정)하는 것이므로 한가지라도 사사로히 못하나니, 이 뒤로는 그대 부친의 고기잡이가 撤廢(철폐)하게 되리라]하시니 그 뒤로는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아니하므로 마침내 고기잡이를 廢止(폐지)하니라.
37) 三月에 一進會員(일진회원)과 全州(전주) 아전이 서로 다투어 鄭昌權(정창권)이 府中百姓(부중백성)을 모아 四大門(사대문)을 잠그고 一進會員(일진회원)의 入城(입성)을 막으며 사방으로 通文(통문)을 돌려서 民兵(민병)을 모집하여 一進會(일진회)을 襲擊(습격)하려 하거늘 上帝 가라사대[어렵게 살아난 것이 또 죽게 되니 救援(구원)하여 주리라] 하시고 花亭里(화정리) 李京五(이경오)에게 돈 칠십냥을 請求(청구)하시니, 경오가 돈이 없다고 拒絶(거절)하거늘 다른데서 일곱냥을 주선하여 와서 가라사대[이 일곱냥이 능히 칠십냥을 대신하리라]하시고 형열을 데리고 전주 용머리 고개 주막에 이르러 행인을 많이 청하여 술을 먹이시고 종이에 글을 써서 그집 문 돌저귀와 문고리를 연결하시더니, 이날 석양에 이르러 일진회와 아전이 和解(화해)하여 사대문을 열고 일진회원의 입성을 허락하니라. 이 날에 쓴 돈이 여섯냥이더라 상제 형열에게 일러 가라사대[옛 사람은 바둑 한점으로 십만병을 물리쳤다 하는데 이제 나는 돈 여섯냥으로 일진회와 아전의 싸움을 끝냈으니 내가 옛 사람만 같지못하다]하시더라.
38) 이날 밤에 도적이 花亭里(화정리) 李京五(이경오)의 집을 털어서 돈 칠십냥을 빼앗아 갔다 하거늘, 상제 들으시고 가라사대[그 돈에 賊神(적신)이 犯(범)하였으므로 알고 사람 살리는 일에나 쓰기 위하여 請求(청구)하였더니 경오가 듣지 않고 없다고 拒絶(거절)하였다]하시니라.
39) 이 뒤로 두어달 동안 客望里(객망리)앞 주막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제자들의 내왕이 빈번하여 주막주인인 吳東八(오동팔)이 돈을 많이 모았더니 그 뒤에 용돈이 不足(부족)함을 보고 심히 冷待(냉대)하거늘 제자들이 그 無義(무의)함을 꾸짖거늘, 上帝 일러 가라사대[어리석은 자가 義理(의리)를 알리오 우리가 만일 그 無義(무의)함을 성내면 그가 반드시 큰 禍(화)를 입으리니, 우리가 지나는 길에 德(덕)을 흘리지 못하고 도리어 禍(화)를 끼치면 어찌 온당하리오]하시니라
40) 이 뒤에 泰仁邑(태인읍)에 이르러 밤중에 弟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공사를 행하신 뒤에 일러 가라사대[이제 大神明(대신명)들이 모였으니, 그 解散(해산)끝에는 慘酷(참혹)한 膺懲(응징)이 있으리라]말씀을 마치시자 문득 泰仁邑(태인읍)에서 群衆(군중)의 高喊(고함)소리가 나는지라. 제자들이 上帝를 모시고 산에서 내려와 事由(사유)를 探問(탐문)하니 金基年(김기년)의 주막이 군중에게 습격을 받아 세간과 술독이 모두 부서졌더라. 본시 기년이 술 장사를 함에 읍내 소년들의 동정을 얻어서 많은 돈을 벌었더니 그 뒤에 소년들이 窮乏(궁핌)하여짐에 기년이 심히 冷待(냉대)하거늘 소년들이 그 無義(무의)함에 성내어 이렇게 襲擊(습격)함이라. 이튿날 상제 기년의 집에 가시니, 기년 부부가 울며 다른데로 옮기려 하거늘 上帝 일러 가라사대[본시 利害得失(이해득실)이 모두 제 몸에 있고 位置(위치)에 있지 아니하니 이 뒤로는 삼가 모든 사람에게 溫情(온정)을 베풀라 그러면 앞길이 펴지고 영업이 興旺(흥왕)하리라]하시니라.
41) 그날 밤에 오동팔의 주막에는 뜻밖에 雨雷(우뢰)같은 소리가 나며 집이 저절로 휘날려서 쓰러지고 사람과 세간은 傷(상)한바 없는지라. 동팔이 材木(재목)을 收拾(수습)하여 다시 집을 짓다가 두 번이나 거듭 전과같이 쓰러지므로 할수없이 工事(공사)를 中止(중지)하고 장막을 치고 지내더니 하루는 어떤 사람이 지나다가 그 情景(정경)을 보고 불쌍히 여겨 자진하여 겨우 서너시간 동안에 집을 지어주고 품삯도 받지 아니하고 가더라. 대저 그 집을 지으려면 보통목수 십여일의 품이 들것이므로 이웃 사람들은 크게 이상히 여기고 제자들은 모두 태인 산위에서 상제께서 말씀하신 일을 생각하여[ 그집이 엎어진 것은 神明(신명)들이 해산할 때에 膺懲(웅징)한 바요. 다시 그 이상한 救助(구조)를 받은 것은 곧 선생님의 權能(권능)이라]고 생각하니라.
42) 매냥 天地公事(천지공사)를 行(행)하실 때 모든 弟子들에게[마음을 잘 닦아 앞에 오는 좋은 世上(세상)을 맞으라]하시므로 제자들이 하루바삐 그 세상이 이르기를 바라더니 하루는 辛元一(신원일)이 청하여 가로대 [선생께서 天地(천지)를 開闢(개벽)하여 새 世上(세상)을 建設(건설)한다 하신지가 이미 오래이며, 공사를 행하시기도 여러번이로되 時代(시대)의 現狀(현상)은 조금도 變(변)함이 없으니 제자의 疑惑(의혹)이 極甚(극심)하나이다. 先生이시여 하루바삐 이 세상을 뒤집어서 仙境(선경)을 建設(건설)하사 남의 嘲笑(조소)를 받지않게 하시고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榮華(영화)를 주옵소서]하거늘 상제 타일러 가라사대[人事(인사)는 機會(기회)가 있고 天理(천리)는 度數(도수)가 있나니, 그 기회를 지으며 도수를 짜내는 것이 公事(공사)의 規範(규범)이라. 이제 그 규범을 버리고 억지로 일을 꾸미면 이는 天下(천하)에 災殃(재앙)을 끼침이요 億兆蒼生(억조창생)의 생명을 빼앗음이라.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원일이 굳게 청하여 가로되[지금 天下(천하)가 混亂無道(혼란무도)하여 善惡(선악)을 가리기 어려우니 마땅히 속히 盡滅(진멸)하고 새 運數(운수)를 열음이 옳으니이다] 상제 괴로히 여기사, 七月(칠월)에 원일과 두어 제자를 데리고 邊山(변산) 開岩寺(개암사)에 가사,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扶安(부안) 石橋(석교)로 向(향)하여 뿌리시니 문득 그쪽으로 구름이 모여들며 큰 비가 쏟아지고 개암사 附近(부근)은 晴明(청명)하더라 上帝 원일을 명하사[速(속)히 집에 갔다오라] 하시니, 원일이 명을 받고 집에 돌아간 즉 그 아우의 집이 비에 무너져서 그 가족들이 자기의 집에 모였거늘 원일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곧 돌아와서 上帝께 그 事由(사유)를 아뢰니 상제 일러 가라사대[開闢(개벽)이란 것은 이렇게 쉬운 것이라. 天下(천하)를 물로 덮어 모든 것을 滅亡(멸망)케하고 우리만 살아 있으면 무슨 福(복)이 되리요 대저 濟生醫世(제생의세)는 聖人(성인)의 道(도)요 災民革世(재민혁세)는 雄覇(웅패)의 술이라. 이제 天下(천하)가 雄覇(웅패)에게 괴롭힌지 오랜지라. 내가 相生(상생)의 道(도)로써 蒼生(창생)을 敎化(교화)하여 世上(세상)을 平安(평안)케 하려 하노니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마음을 그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 大人(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恒常(항상) 남을 살리기를 생각해야 하나니, 어찌 蒼生(창생)을 滅亡(멸망)케하고 홀로 잘 되기를 圖謀(도모)함이 옳으리오]하시니 원일이 이로부터 두려워하여 無禮(무례)한 말로 선생을 괴롭힌 일을 뉘우치고 원일의 아우는 그 형이 上帝께 追從(추종)하면서 집을 돌보지 아니함을 미워하여 항상 상제를 욕하더니, 형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상제께 욕한 죄로 집이 무너짐이나 아닌가 하여, 이후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43) 원일의 부친이 서울 사람으로부터 몇만냥 빚을 얻어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失敗(실패)함에 債權者(채권자)가 내려와서 원일의 집에 留(유)하며 債務(채무)를 갚으라고 성화같이 督促(독촉)하더니 이때에 상제 원일의 집에 이르사 그 情狀(정상)을 보고 悶惘(민망)하게 여기사 채권자에게 일러 가라사대[오늘 비가 오고 아니 올것으로써 債務蕩減(채무탕감)할 내기를 함이 어떠하뇨]채권자가 許諾(허락)하거늘 가라사대[그대가 비 오리라 하면, 나는 아니온다 할 것이오, 그대가 아니오리라 하면 나는 온다 하리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 하시니 채권자는 구름한점 없는 좋은 日氣(일기)임을 보고 [비는 오지 않겠오]하거늘 上帝께서는 [반드시 비가 오리라]하시고 곧 비를 크게 내리시니 채권자가 할 수없이 그 빚을 蕩減(탕감)하니라.
44) 이 뒤에 古阜(고부) 立石里(입석리:선돌리) 朴昌國(박창국)의 집에 이르시니 창국의 아내는 上帝의 누이라 마침 벗은 발로 밖에 다니는 것을 보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이 집에 毒蛇(독사)가 있으니 벗은 발을 물면 어찌 하리오] 하시고 길게 휘파람을 부시니 문득 독사 한 마리가 풀밭으로부터 기어 나와서 뜰아래 이르러 머리를 들고 가만히 엎드리더니, 이윽고 창국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다가 毒蛇(독사)를 보고 깜짝 놀래어 곧 喪杖(상장)을 들어서 때려 죽이거늘 上帝 한숨지어 가라사대 毒蛇(독사)를 喪者(상자)가 보면 喪杖(상장)으로 쳐 죽이고 道僧(도승)이 보면 禪杖(선장)으로 쳐 죽이건마는 누이 한테는 아무것도 막을 물건이 없도다] 하시고 毒蛇(독사)의 피가 땅에 있음을 보고 가라사대[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면 害(해)가 있으리라]하시고 親(친)히 그 피를 밟아 毒氣(독기)를 除(제)하시니라.
45) 十二월에 咸悅(함열)로부터 구릿골로 가실 때, 길이 심히 질어서 길걷기가 어려운지라. 上帝 [勅令治道神將(칙령치도신장) 御在咸羅山下(어재함라산하) 移御于全州銅谷(이어우전주동곡)]이라 써서 불 사르시니, 진 길이 곧 얼어 붙어서 굳어지거늘 이에 마른 신발로 떠나시니라.
46) 구릿골 앞에서 술 장사하는 丁槐山(정괴산)이 극히 가난하되 매양 上帝를 至誠(지성)으로 供待(공대)하더니, 하루는 上帝께서 그 집에 가시니 괴산이 상제께 공대하려고 개솥에 개장국을 끓이다가 문득 질솥이 깨어짐에 괴산의 아내가 失望(실망)하여 울고 섰거늘 上帝 불쌍히 여기사 辛京元(신경원)을 命(명)하여 그 經營(경영)하는 솓점서 鐵(철)솓 한 개를 가져다 주었더니 이로부터 괴산의 家勢(가세)가 漸漸(점점) 넉넉하여지니라. 그뒤에 괴산이 泰仁(태인) 방아다리로 移舍(이사)할 때에 그 철솓을 環坪(환평) 鄭東朝(정동조)한테 팔았더니 괴산은 도로 가난하여지고 동조는 넉넉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그 철솥을 福(복)솥이라 부르니라.
47) 하루는 龍簧(용화동) 박봉민의 주막에 이르사 술을 찾으시니, 마침 술이 떨어졌다 하거늘 上帝 술 빚어 넣었던 독을 가져오라 하사 물을 채워 부으시고 손으로 저으신 뒤에 마시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니 그 맛이 원래 빚었던 술 맛과 같더라.
48) 二十一日에 신원일이 와서 여쭈어 가로대[제가 일찍 宮監(궁감)이 되어 宮睹租(궁도조) 百數石(백수석)을 橫取(횡취)하였더니 그 宮所(궁소)에서 扶安郡守(부안군수)에게 付託(부탁)하여 督促(독촉)이 甚(심)할 뿐 아니라, 將次(장차) 家産(가산)을 沒收(몰수)하려 하므로 할 수없이 避(피)하여 왔나이다]上帝 가라사대 [그 일을 끄르기는 쉬우니 이곳에 머물러 있으라]원일이 가로대[이 일으 끄르러면 國權(국권)을 變革(변혁)하거나 法制(법제)를 고치거나 두가지 方法(방법)밖에 없아온데, 한사람의 禍厄(화액)을 免(면)하기 위하여 이렇듯 重大(중대)한 일을 이루기가 어렵지 아니하나이까] 上帝 가라사대[한 사람의 소리가 곧 大衆(대중)의 소리니라]하시더라. 원일이 달포를 머무른 뒤에 上帝를 모시고 서울을 다녀와서 집에 돌아가니 宮土(궁토)의 制度(제도)가 改革(개혁)되고 따라서 여러 宮監(궁감)의 犯罪(범죄)도 모두 赦免(사면)되었거늘 원일이 여러 사람을 대하여 말하되[나로 인하여 까다로운 宮弊(궁폐)가 없어지고 여러 宮監(궁감)들이 모두 살길을 얻었도다]하더라
49) 하루는 金山寺(금산사) 靑蓮庵(청련암)의 중 김현찬에게 [明堂(명당)쓰기를 願(원)하느냐]현찬이 대하여 가로대[平生所願(평생소원)이로소이다] 가라사대[믿고 있으라]하시고 그 뒤에 또 김병욱에게 일러 가라사대[明堂(명당)을 쓰려느냐]병욱이 대하여 가로대[固所願(고소원)이로소이다]가라사대[믿고 있으라]하시더니, 그 뒤로 수년이 지내도록 다시 말씀치 아니하시므로 두 사람은 다만 上帝의 뜻만 바라고 있다가 하루는 병욱이 여쭈어 가로대[前(전)에 許諾(허락)하신 明堂(명당)은 언제나 주시려 하나이까]상제 가라사대[네가 아들을 願(원)하므로 그때에 명당을 썼나니, 이미 發蔭(발음)되었느니라]하시니, 본시 병욱이 자식이 없음을 한하다가 명당을 허락하신 뒤에 소실을 얻어서 아들을 낳았더니 그 일을 이르심이라. 병욱이 몹시 실망하게 여기거늘 가라사대[先天(선천)에는 白骨(백골)을 묻어서 葬事(장사)하였으되 後天(후천)에는 白骨(백골)을 묻지않고 葬事(장사)하느니라]하시더라 그 뒤에 현찬이 또 묻거늘 가라사대[明堂(명당)은 이미 써서 發蔭(발음)이 되었느니라]하시니 대저 현찬도 명당을 허락하신 뒤에 退俗(퇴속)하여 장가들어 아들을 낳았으므로 이 일을 이르심이더라.
50) 김갑칠이 親山(친산)을 移葬(이장)하려고 모든 기구를 準備(준비)하였더니 上帝 일러 가라사대[내가 너를 위하여 移葬(장사)하여 주리라]하시고 준비한 널과 모든 物品(물품)을 모두 불사르신 뒤에 [그 재를 앞냇가에 버리며 하늘을 보라]하시거늘 갑칠이 命(명)하신대로 하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니 문득 異常(이상)한 기운이 북쪽에서 남쪽까지 뻗쳤더라.
51) 丙午年(병오년:1906년) 陰正月(음정월) 五日에 모든 弟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오늘은 好笑神(호소신)이 올것이니 너희들은 웃음을 操心(조심)하라. 만일 웃는자가 있으면 이 神明(신명)이 公事(공사)를 보지 아니하고 돌아 가리니 그가 한번 가면 어느때 다시 올지 모르리라]하시거늘 여러 사람이 特別(특별)히 조심하더니 뜻밖에 정성백이 웃으므로 一座(일좌)가 다 함께 웃으니라. 그날 오후에 성백이 문득 惡寒大痛(오한대통)하여 三日間(삼일간)을 臥席(와석)하였더니 上帝께서 앞에 뉘이시고 어루만지시니 곧 나으니라. 이때에 상제 날마다 公事(공사)를 보시면서 物形圖(물형도)를 그려서는 불사르시니라.
52) 서울에 가셨을때에 진고개에 있는 日本人(일본인) 劇場(극장)에 가셔서 여러 가지 魔術(마술)을 보시다가 그 입으로 불덩이를 먹고 또 洋紙(양지)를 오린 긴 종이를 한없이 뽑아내는 것을 보시다가 여러 제자들에게 [왼손을 허리춤에 넣고 있으라]하시므로 그대로 하였더니 그 術士(술사)가 문득 昏倒(혼도)하여 극장안이 크게 混亂(혼란)하여 서로 밟고 넘어지므로 憲兵(헌병)까지 출동하였으나 쉽게 鎭壓(진압)되지 않는지라. 上帝께서 다른 곳으로 옮기사 冷水(냉수)를 머금어 품으시니 곧 큰 비가 쏟아져서 대중이 스스로 흩어지게 하시니라.
53) 十月에 全主(전주) 문태윤이 와서 뵈업거늘 上帝 그 가지고 온 보따리를 보시고 가라사대[이 방은 閑寂(한적)한 工夫房(공부방)이라. 속 모르는 사람을 그대로 들이지 아니하나니 그 보따리를 끌어보이라. 그 속에 반드시 戰爭(전쟁)의 張本(장본)이 있으리라]태윤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보따리를 끄르니 그 叔姪間(숙질간)에 財産關係(재산관계) 訟事(공사)하는 文書(문서)가 들어 있는지라. 태윤이 여쭈어 가로대[이런 좋지못한 일이 있으므로 先生(선생께 解決策(해결책)을 물으려 와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차마 아뢰지 못하였나이다]上帝 가라사대[戰爭(전쟁)은 家族戰爭(가족전쟁)이 큰 것이니 한집안 亂離(난리)가 온 天下(천하)의 亂離(난리)를 끌어내느니라]하시고 한 封書(봉서)를 주시며 가라사대[이 封書(봉서)를 그대 조카의 집에 가서 불사르라]하시거늘 태윤이 그대로 하였더니 그 뒤에 과연 和解(화해)되니라.
54) 淸道院(청도원)에서 淸國公事(청국공사)를 行(행)하시고 구릿골로 돌아오시어 가라사대[風雲雨露 霜雪雷電(풍운우로 상설뢰전)]을 일으키기는 쉬우나 오직 눈 뒤에 곧 비 내리고 비 뒤에 곧 서리치게 하기는 天地造化(천지조화)로도 오히려 어려운 법이라 내가 오늘 저녁에 이와같이 일을 行(행)하리라]하시고 글을 써서 불 살으시니 과연 눈이 내린 뒤에 비가 오고 비 개이자 곧 서리치니라.
55) 이달에 신원일이 乾材藥局(건재약방)을 開設(개설)하고 藥(약)을 사로 公州營(공주영)에 갈 새 上帝께 와 뵈옵고 여쭈어 가로대[지금 길이 젖어서 길 걷기가 극히 어려우니 請(청)컨대 公衆(공중)의 交通(교통)을 便利(편리)하게 길을 얼어붙게 하여 주사이다]上帝 許諾(허락)하시고[술을 가져오라]하여 마시니 그날 밤부터 길이 얼어 붙어서 歲末(세말)까지 녹지 아니하니라
56) 藥房(약방)에 계실 때 하루는 早朝(조조)에 해가 떠서 앞 帝妃山(제비산) 봉우리에 반쯤 떠 오르거늘 上帝께서 여러 제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이러한 難局(난국)에 處(처)하여 靖世(정세)의 뜻을 품은 자는 能(능)히 日行(일행)을 멈추게 하는 權能(권능)을 가지지 못하면 不可(불가)할지니 내가 이제 試驗(시험)하여 보리라]하시고 젖은 담배 새 대를 갈아 피우시되 해가 山嶺(산령)을 솟아 오르지 못하더니 上帝께서 담배대를 떼어 땅에 터시니 해가 문득 數丈(수장)을 솟아 오르니라.
57) 김익찬을 데리고 全州(전주) 細川(세내)를 지나실 때 日本(일본)사람 사냥꾼이 기러기떼가 많이 앉은 곳을 향하여 銃(총)을 겨누고 쏘려하거늘 上帝 가라사대[君子(군자) 차마 보지못할 일리라]하시고 왼발로 땅을 한번 구르며 서시니, 그 銃(총)이 쏘아지지 아니하는지라. 사냥꾼이 이유를 알지 못하고 총을 檢査(검사)하고 헤매는 사이에 기러기떼가 모두 날아가거늘 이에 발을 옮겨 걸으시니 총은 그제야 發射(발사)되니라.
58) 佛可止(불가지) 김성국의 집에 머무르실 때 텃밭에 꿩떼가 많이 내리거늘 성국이 김덕찬으로 더불어 홀치를 많이 만들어 그 밭에 놓아 잡으려고 하는지라. 上帝 가라사대[너희는 잡을 工夫(공부)를 하라 사는 살릴 工夫(공부)를 하리라]하시더니 이로부터 꿩떼가 만히 내리되 한 마리도 홀치에 걸리지 아니하더라
59) 佛可止(불가지)로부터 全州(전주)로 가실 때 東南(동남)으로부터 큰 비가 몰려 오거늘 上帝 길 가운데 흙을 파고 침을 밷어 묻으시니 몰려오던 비가 문득 두갈래로 나누어져 한갈래는 東(동)쪽으로 향하고 한갈래는 西(서)쪽으로 향하여 몰려가니라.
60) 황응종 김갑칠을 데리고 院坪(원평)을 지나실 때 원평앞 다리를 지나시면서 왼발로 길을 한번 구르시고 길가에 서시더니 이윽고 말탄 사람 세명이 오다가 다리 건너편에 말발굽이 땅에 붙어서 옮기지 못하므로 馬夫(마부)가 無數(무사)히 힘들여 끌다가 할수 없이 멈추고 섰더니 한 마부가 고삐를 놓고 다리를 건너와서 上帝께 절하고 비켜 서시기를 빌거늘 上帝 웃으시며 비켜 서시더니 말이 비로소 달려 가니라
61) 丁未年(정미년:1907년) 四月에 古阜(고부) 客望里(객망리:손바래기)로부터 泰仁(태인)으로 가실 때 먼저 원일을 보내어 旅舘(여관)을 정하게 하시고 이튿날 손바래기를 떠나 그 앞 주막에 이르사 형열에게 일러 가라사대[나는 여기서 자리니 너는 먼저가서 원일과 함께 자고 내일 아침에 下馬亭(하마정)에서 나를 기다리라]형열이 命(명)을 받고 태인에 이르러 원일을 함께 자고 이튿날 원일과 함께 하마정에 이르니 마침 장날이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더라 上帝 형열과 원일을 만나 길가 주막에 앉으시고 원일에게 일러 가라사대[내가 오늘 벼락을 쓰리니 술을 가져오라]원일이 술을 올림에 上帝 잔을 들어 두어번 돌리신 뒤에 마시니 문득 바람이 일어나고 소나기가 쏟아지며 雨雷(우뢰)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더니 이윽고 비가 개이거늘 원일에 명하사 가라사대[신경원의 집에 가면 消息(소식)을 들을 것이니 빨리 다녀오라]원일이 명을 받고 경원의 집에 가니 마침 나무장수가 비를 피하여 경원의 집에 들어와서 말하되[나는 오늘 놀라운 일을 보았노라.오는길에 늙은 여인과 젊은 여인이 다투며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그 內容(내용)을 들은즉 젊은 여인은 늙은 여인의 며느리라. 아들을 낳은지 이레가 못되어 어제밤에 喪夫(상부)하였는데 初喪(초상)도 치루지 아니하고 갓난 애를 버리고 逃亡(도망)하므로 늙은 여인이 쫒아와서 어린애를 데리고 가서 기르라고 애걸하되 며느리가 듣지 않고 서로 다투다가 문득 벼락을 맞아서 며느리가 죽었으니 이로 볼진대 天道(천도)가 昭明(소명)하도다]하거늘 원일이 돌아와서 들은 말을 아뢰니 가라사대[내가 오늘 아침에 物望里(물망리) 주막에 지날 때에 한 젊은 여인이 이슬을 털며 빨리 지나가더니 그 뒤로 늙은 여인이 달려오며 젊은 여인의 자취를 묻는고로 그 事實(사실)을 자세히 들으니 實(실)로 人道上(인도상) 용서치 못할 罪惡(죄악)이라 하물며 그 作配(작배)는 저희들끼리 스스로 지은 것이라하니 대저 부모가 지어준 것은 人緣(인연)이요 스스로 지은 것은 天緣(천연)이라. 인연은 오히려 고칠 수 있으되 천연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어늘 이제 人道(인도)에 거슬리고 天緣(천연)의 義(의)를 저버리니 어찌 天罰(천벌)을 면하리오]하시니라
62) 五月 端午節(단오절)에 제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上帝를 뫼시고 學仙庵(학선암)으로 消風(소풍)하러 가실 때 中路(중로)에서 소나기가 크게 몰려 오거늘 上帝 담뱃대로 몰려오는 비를 向(향)하여 두르시니 문득 비가 다른 곳으로 몰려 가더니 學仙庵(학선암)에 이른뒤에 비로소 비가 몰려 오니라.
63) 六月(유월)로부터 두어달 동안 大興里(대흥리) 차경석의 집에 계실 때 박공우가 入門(입문)하기 달포전에 川原(천원)장에서 耶蘇敎人(야소교인)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서 가슴뼈가 傷(상)하여 한참동안 昏倒(혼도)하였다가 겨우 일어나서 十餘日(십여일)동안 治療(치료)를 받은 뒤에 겨우 다니기는 하되 아직까지 가슴에 손을 대지 못하고 크게 古痛(고통)하는 중임을 아뢰니 가라사대[네가 이전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가슴을 쳐서 死境(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잘 뉘우치라 또 네가 몸이 完快(완쾌)한 뒤에는 加害者(가해자)를 찾아서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傷害(상해)한 척이 그에게 붙어서 갚은 바이니 오히려 그만하기라 多幸(다행)이라. 네 마음을 잘 풀어 加害者(가해자)를 恩人(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나으리라]공우 이 말씀에 크게 感服(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던 마음을 풀어버리고 後日(후일)에 만나면 반드시 잘 待接(대접)하리라는 생각을 두었더니 몇일 후에 川原(천원) 耶蘇敎會(야소교회)에 열두고을 牧師(목사)가 모여서 大傳道會(대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리거늘 上帝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네 傷處(상처)를 낫게하기 위하여 열두고을 牧師(목사)를 움직였노라]하시더니 그 뒤 사흘만에 공우의 傷處(상처)가 完快(완쾌)되니라.
64) 하루는 가물치 회를 올렸더니 上帝 잡수신 뒤에 문밖에 거니시다가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웃어 가라사대[그 기운이 빠르다]하시거늘 제자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같은 異常(이상)한 기운이 가물치 貌樣(모양)을 이루어 東(동)쪽을 向(향)하여 떠 가더라.
65) 하루는 제자들이 琴師(금사)를 불러서 伽耶琴(가야금)을 타게하고 愉快(유쾌)히 놀더니 上帝 禁止(금지)하사 가라사대[저 虛空(허공)을 보라 나는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제자들이 모두 우러러 보니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伽耶琴(가야금)타는 形狀(형상)과 五六人(오육인)이 벌려앉은 貌形(모형)을 이루어 虛空(허공)에 떠 있더라.
66) 中伏(중복)날 제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오늘 번개가 나지 아니하면 蟲災(충재)가 생겨서 農作物(농작물)이 큰 被害(피해)를 입으리니 잘 살피라]하시거늘 모두 注意(주의)하여 저물도록 살피되 번개가 나지 아니하거늘 上帝 하늘을 보시며 가라사대[天地(천지)가 어찌 生民(생민)의 災殃(재앙)을 이렇듯 돌보지 아니하느뇨]하시며 가라사대[北方(북방)사람만 살고 다른 地方(지방)사람은 다 죽어야 옳으리요]하시니 다시 四方(서방)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라.
67) 하루는 원일,공우외 서너 사람을 데리고 泰仁(태인) 살포정에 이르사 주막에 들어 쉬시니 문득 뇌성이 일어나며 번개가 크게 일어나 집에 내리려 하거늘 上帝 虛空(허공)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뇌성과 번개가 곧 그치는지라 공우는 大興里(대흥리)에서 글을 써서 壁(벽)에 붙여 雷聲(뢰성)을 크게 일으키시고 또 이번에 뢰성과 번개를 꾸짖어 그치게 하심을 보고는 비로소 上帝께서 天地造化(천지조화)를 마음대로 쓰시는 줄알고 이로부터 더욱 敬畏(경외)하더니 하루는 공우에게 일러 사라사대[네가 오랫동안 食告(식고)를 잘 하였으나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食告(식고)는 네게로 돌릴 지어다]하시니 공우 더욱 기뻐하여 平生所願(평생소원)을 이룬 줄 깨달으면서 곧 [그리 하겠나이다]하고 대답하니라. 원래 공우는 東學信徒(동학신도)의 통례와 같이 [大神師應感:대신사응감]이라는 식고를 하지 않고 항상[하누님 뵈여지이다]라는 發願(발원)으로 食告(식고)하더니 이제 상제께서 말씀하신 바를 듣건대 반드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通察(통찰)하심이며, 또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쓰시는 것을 볼진대 분명히 하느님으로써 降臨(강림)하심이 疑心(의심)없다고 생각하니라.
68) 하루는 경석에게 일러 가라사대[네 先祖(선조)의 뫼 九月山(구월산) 金盤死雉(금반사치)의 기운을 옮겨 오리라]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춤추게 하시고 공우로 하여금 북을 치게 하시니라.
69) 하루는 정남기의 집에 이르시니 남기의 아들이 무슨 일로 父親(부친)에게 꾸지람을 듣고 不順(불순)한 말로 대답한 뒤에 밖으로 나가다가 다시 안으로 향하여 들어오더니 문득 문앞에 우뚝서서 움직이지 못하고 땀을 흘리며 連(연)달아 소리를 지르매 온 집안 사람들이 크게 놀래서 어찌할바를 모르는 지라 이윽고 上帝 돌아보시며 가라사대[어찌 그렇게 苦痛(고통)하느냐]하시니 그제야 能(능)히 움직이며 精神(정신)을 돌리거늘 집안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하여 가로대[뜻밖에 精神(정신)이 昏迷(혼미)하여 지며 숨이 막혀서 呼吸(호흡)을 통하지 못하여 骨節(골절)이 굳어져서 屈伸(굴신)을 못하였읍니다]상제 물어 가라사대[그 때에 네 가슴이 답답하더냐]대하여 가로대[甚(심)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더이다]가라사대[네가 당한 바로써 네 父親(부친)의 가슴을 헤아려 보라. 네 부친에게 그렇게 不敬(불경)한 말을 하였으니 그 가슴이 어떠하였으랴 이 뒤로는 허물을 뉘우쳐 다시는 그리하지 말지어다]하시니라.
70) 하루는 경석에게 일러 가라사대[너는 降靈(강령)을 받아야 하리라]하시고 [元皇正氣 來合我身:원황정기 래합아신]을 읽히시며 방문을 열으시니 경석이 문득 소리를 내어 痛哭(통곡)하다가 이윽고 그치거늘 가라사대[그 울음은 神明(신명)에게 罰(벌)을 받는 소리니라]하시니라
71) 上帝, 大神明(대신명)이 들어설 때마다 손을 들어 머리로 올려 禮(예)를 票(표)하시니라.
72) 박공우가 大興里(대흥리)에서 上帝를 뫼시고 구릿골로 올때 科橋里(과교리)를 지나다가 문득 울음이 나오며 東學(동학)으로 多年間(다년간) 苦生(고생하던 일이 生覺(생각)나서 더욱 서럽게 울어지는지라. 上帝 돌아보시며 가라사대[무슨 일로 그다지 우느냐]공우 목메인 소리로 대하여 가로대[어쩐 일인지 不知中(부지중)에 울게되고 전날 苦生(고생)하던 일이 낱낱이 生覺(생각)나서 능히 그치지 못하나이다]가라사대[잘되게 하여 주리니 그만 그치라]하시니 울음이 곧 그쳐지더라
73) 十一月(동짓달)에 구릿골에 계실 때 공우가 뵈이러 오는 길에 偶然(우연)히 興(흥)이나서 [모시러 가자 모시러 가자 하느님 모시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하고 노래를 불렀더니 구릿골에 이르러 上帝께 뵈이니 가라사대[내가 네 집에 가기를 願(원)하느냐]하시거늘 공우 기뻐하여 가로대[所願(소원)이로소이다]하고 上帝를 뫼시고 돌아오다가 龍岩里(용암리) 물방아집에 들어쉬실 때 上帝 門(문)을 열고 南(남)쪽하늘을 바라보시며 [높다 높다]하시거늘 공우가 바라보니 구름이 가득 끼었는데 하늘이 방석 한닢 넓이쯤 通(통)하며 바람이 쓸쓸히 불고 눈이 내리거늘 上帝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나와 親舊(친구)로 지내자]하시니 공우는 그 말씀이 惶恐(황송)하기도 하고, 異常(이상)히도 여겼더니 또 가라사대[기운이 적다]하시거늘 공우가 不知中(부지중)에 여쭈어 가로대[바람을 좀더 불게 하여이다]하였더니, 果然(과연) 바람이 크게 부는지라 또 가라사대 [나와 親舊(친구)로 지내자]하시며[기운이 적다]하시거늘 공우 또 가로대[바람을 더 높아지게 하여이다]하였더니 그때는 바람이 크게 일어나서 모래와 돌을 날리는지라. 上帝 가라사대[龍虎大師(용호대사)의 기운을 공우에게 붙여 보았더니 그 기운이 적도다]하시니라.
74) 하루는 공우를 데리고 井邑(정읍)으로 가실 때 공우에게 [마음으로 風雲造化(풍운조화)를 외우라]하심으로 공우가 그대로 외우다가 문득 잊어버리고 그릇[天文地理:천문지리]를 외우더니 上帝 돌아보시며 가라사대[그릇 외우니 다시 생각하라]하시거늘 공우 놀래어 생각하니 果然(과연) 그릇 외웠는지라 이로부터 고쳐 외우며 大興里(대흥리)까지 왔더니 이날밤에 비와 눈이 섞여 오거늘 가라사대[네가 한번 그릇생각함으로 因(인)하여 天氣(천기)가 한결같지 못하도다]하시니라.
75) 하루는 井邑(정읍) 수통점에서 留宿(유숙)하실 때 공우가 모셨더니 이도삼이 와서 그 이웃 버들리에서 이십세쯤 된 여자가 범한테 물려갔다는 말을 고하거늘 상제께서 공우에게 [하늘에 蟲星(좀별)이 보이는가 보라]하시므로 공우 나가서 우러러 보고 나타나 있음을 아뢰니 上帝께서 木枕(목침)으로 마루를 치시며 [좀별아 어찌 사람을 害(해)하느냐]하시더니 이튿날 그 여자가 살아왔는데 衣服(의복)은 破裂(파열)되었으나 몸의 傷處(상처)는 크지 아니하더라
76) 十二月에 古阜(고부) 臥龍里(와룡리) 신경수의 집에서 公事(공사)를 보실 때,신원일에게 일러 가라사대[네가 일찍이 東天(동천)을 向(향)하여 붉은 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앉은 사람에게 四拜(사배)한 일이 있으니, 이제 다시 그와같이 절하라 내가 곧 그 사람이다]원일이 곧 일어나서 四拜(사배)하거늘 제자들이 원일에게 緣故(연고)를 물으니 대답하여 가로대[年前(년전)에 偶然(우연)히 病(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더니 精神(정신)이 恍惚(황홀)한 가운데 어떤 큰 사람이 四人橋(사인교)를 타고와서 내게 말하되[네가 새 옷을 입고 門(문)밖에 나가서 東天(동천)에 붉은 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앉은 어른에게 절하라 그러면 네 병이 낳으리라]하므로 그 말대로 새 옷을 입고 門(문)밖에 나가서 東天(동천)을 바라보니 果然(과연) 붉은 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앉은 어른이 계시므로 四拜(사배)를 올렸더니 그때부터 病(병)이 곧 나았는데 집안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밖에 나가는 것을 怪異(괴이)하게 여겼다]하더라
77) 戊申(무신:1908년) 二月에 제자들을 데리고 어디를 가실 때 보리밭 가에로 지나는데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이 세상에 貧富(빈부)의 差別(차별)로 인하여 穀物(곡물)가운데 오직 먹기 어려운 보리가 貧民(빈민)의 糧食(양식)이 되어, 먹을 때에 항상 괴로움을 느끼니 보리를 없이하여 버려야 먹는데 差別(차별)이 없이 平等(평등)하리라]하거늘 上帝 들으시고 가라사대[너희들의 말에 一理(일리)가 있으니 보리를 없이하여 버리리라]하시더니 四月에 크게 가물어서 보리가 다 말라죽으니 農民(농민)들이 크게 騷亂(소란)하는지라 제자들이 이 일을 아뢰어 가로대[이제 만일 보리 凶年(흉년)이 들면 굶어죽는 자가 많으리라] 하시거늘 上帝 꾸짖어 가라사대[前(전)번에 너희들이 보리를 없게하여 버림이 옳다하고, 이제 다시 보리凶作(흉작)을 원망하느냐 나의 일은 비록 弄談(농담) 한마디라도 度數(도수)에 밝혀 天地(천지)에 알려지나니, 이 뒤로는 모든 일에 실없는 말을 삼가라]하시고 全州(전주) 龍(용)머리 고개에 가서 金洛範(김락범)에게 命(명)하여[거친 보리밥 한 그릇과 된장국 한 사발을 가져오라]하사 가라사대[窮民(궁민)의 飮食(음식)이 이러하리라]하시고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다 잡수시니 문득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비가 내려서 보리가 다시 生氣(생기)를 얻어 豊作(풍작)을 이루니라
78) 공우가 從事(종사)하므로부터 上帝의 公事巡行(공사순행)에 많이 모시고 다녔는데 어디서든지 머무르시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실 때에는 밤이면 달머리가 나타나고 낮이면 햇머리가 나타나는 것을 徵驗(징험)하였으므로 언제든지 달머리와 해머리만 나타나면 出行(출행)하실 줄 알고, 먼저 신발과 行裝(행장)을 團束(단속)하여 분부를 기다리면 반드시 부르사 [가자]하시며 떠나셨나니, 大抵 (대저)上帝께서는 어디를 가시든지 미리 말씀을 아니 하시니라
79) 金甫京(김보경)이 곰개에 작은 집을 두고 本家(본가)를 돌보지 아니하거늘 上帝 글을 써 주시며 가라사대[네 작은댁을 바라보고 불사르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보경이 그대로 하였더니 뜻밖에 淋疾(임질)이 생겨서 本家(본가)로 돌아와서 달포를 머물렀더니 그동안에 작은 댁이 다른 곳으로 갔는지라. 上帝 보경을 불러 警戒(경계)하여 가라사대[이제는 집안이 便安(편안)하여 좋은 運數(운수)가 열리리니, 本妻(본처)를 사랑하여 저버리지 말라]하시고 임질을 낫게하여 주시니라
80) 하루는 여러 제자들을 데리시고 裡里(이리:솜리)를 지나실 때, 나룻터에 이르니 槎工(사공)이 없고 빈 배만 떠있거늘 上帝 몸소 노를 저어 건느신 뒤에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웃으시거늘 모두 우러러 보니 구름같이 異常(이상)한 기운이 노저어 가는 模型(모형)을 이루어 천천히 떠 가더라
81) 이 뒤에 泰仁(태인) 今上里(금상리)를 지나실 때 마침 날이 가물어서 모심기를 못하더니 東學信徒(동학신도) 柳漢弼(유한필)이 그 전날 구름이 끼임을 보고 비가 올까하여 마른 논에 호미로 모를 심었더니 비가 오지 아니하여 모가 마르거늘 몹시 걱정하여 가로대[가뭄이 이렇게 심하여 비올 뜻이 없으니 호미심기를 갈아 엎어서 콩이나 심을 수 밖에 없도다]하며 嘆息(탄식)하거늘 上帝 들으시고 가라사대[모심은 것을 갈아엎어 다른 穀食(곡식)을 심는 것이 變怪(변괴)가 아니냐]하시고 漢弼(한필)을 앞세우고 그곳에 가서 慘酷(참혹)한 光景(광경)을 보시고 西(서)쪽 하늘을 向(향)하여[萬修:만수]를 불으시니 문득 검은 구름이 피어오르며 소나기라 내리거늘 한필은 무슨 까닭인지 말지 못하고 다만 미리 아는 法(법)이 있는가 하여 異常(이상)히 여기더라.
82) 어떤 여인이 姦夫(간부)를 보아 子息(자식)을 낳았으나 本夫(본부)는 모르더니 하루는 上帝 그 여인에게 일러 가라사대[저 兒孩(아해)가 血統(혈통)이 바르지 못하니 어찌 事實(사실)을 감추어 큰 罪(죄)를 짓느냐]하시니 그 여인이 事實(사실)을 自白(자백)하니라
83) 六月에 김병욱이 사람을 보내어 백남신의 親山(친산)에 墓賊(묘적)이 들어서 頭骨(두골)을 훔쳐갔다는 경위를 아뢰거늘 上帝 등불을 밝혀 사흘밤을 徹夜(철야)하며 喪家(상가)와 같이 지내시고 남신에게 말씀을 傳(전)하여 가라사대 [頭骨(두골)을 찾으려 힘쓰지 말고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外人(외인)과 交際(교제)를 끊으라 處署節(처서절)에 이르러 스스로 頭骨(두골)을 가져오게 하리라]하시더라. 이때에 사흘밤 徹夜(철야)하심을 제자들이 즐겨하지 아니하며 가로대[이같이 힘을 들이되 當事者(당사자)는 알지 못하니 무슨 功勞(공로)를 알아 주리까]가라사대[頭骨(두골)만 찾게 할 따름이오 그의 알고 모름은 關係(관계)할바 아니니라]하시더라 남신이 命(명)하신대로 깊숙한 白雲亭(백운정)에서 날을 보냈더니 七月에 그 墓下村(묘하촌)에서 洞長(동장)이 自發的(자발적)으로 洞會(동회)를 열고 의논하여 가로대[우리가 이 墓下村(묘하촌)에 살면서 無心(무심)히 지낼 수 없으니 온 마을 사람이 나서서 이 附近(부근)을 搜索(수색)하여 만일 頭骨(두골)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墓主(묘주)에게 말하여 賞(상)을 주게함이 可(가)하다]하고 온 마을사람을 動員(동원)하여 近處(근처) 산기슭을 뒤지니, 이때에 墓賊(묘적)이 생각하되[墓主(묘주)가 돈을 들여서 頭骨(두골)을 찾으려 하지 아니하니, 차라리 이 기회에 頭骨(두골)을 찾아가면 盜賊(도적)이란 이름도 免(면)하고 많은 賞(상)을 받으리라]하고 두골을 가지고 동장한테 가서 말하되[내가 여러곳을 수색하여 다행히 찾았노라]하거늘 동장이 그 사람을 데리고 白雲亭(백운정)에 오니 이날이 곧 處署節(처서절)이더라.
84) 이튿날 아침에 龍頭(용머리)고개에 가셨더니 병욱이 와서 頭骨(두골)을 찾은 일을 아뢰거늘 가라사대[墓賊(묘적)은 어떻게 하였느냐]대하여 가로대[警務廳(경무청)으로 보냈나이다]가라사대[잘 타일러서 돌려 보냄이 옳거늘 어찌 그리하였느냐]하시고[검은 옷 한 벌을 지어오라]하사 불사르시며 가라사대[懲役(징역)이나 살게 하리라]하시더니 果然(과연) 그 사람이 懲役刑(징역형)을 받으니라. 제자들이 반드시 處署日(처서일)에 찾게 하신 까닭을 물으니 가라사대[매양 私事(사사)일이라도 天地公事(천지공사)의 度數(도수)에 붙여두기만 하면 그 도수에 이르러 公事(공사)와 私事(사사)가 다 함께 끌리나니라]하시니라
85) 김덕찬이 上帝께 대하여 항상 倨慢(거만)하더니 하루는 公事(공사)를 보실 때 크게 天動(천동)과 번개를 쓰시니 덕찬이 두려워하며 자리를 옮기거늘 일러 가라사대[네가 罪(죄)지은 것이 없거늘 어찌 두려워 하느냐]덕찬이 더욱 겁내며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그 뒤로는 上帝께 극히 恭敬(공경)하니라
86) 백남신의 一家(일가) 白容安(백용안)이 술都家(도가) 免許(면허)를 얻어 全州府(전남부)중에 있는 몇백의 술집에 술빚는 것을 禁(금)하니 이때에 上帝 龍頭(용머리)고개 金周甫(김주보)의 주막에 계실 때 주보의 아내가 가슴을 치며 가로대[다른 벌이는 없고 다만 술장사로 家族(가족)이 살아왔는데 이제 술을 빚지 못하면 무슨 벌이로 살아 가리요]하거늘 上帝 불쌍히 여기사 제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어찌 男將軍(남장군)만 있으리오 마땅히 女將軍(여장군)도 있으리라]하시고 종이에 [女將軍:여장군]이라 써서 불사르시니 주보의 아내가 문득 神氣(신기)를 얻어서 府中(부중)을 돌며 號令(호령)하여 잠시 동안에 몇백주모를 모아 거느리고 容安(용안)의 집을 包圍(포위)하여 形勢(형세)가 자못險(험)하거늘 용안이 크게 놀래어 群衆(군중)에게 謝過(사과)하고 술都家(도가)를 中止(중지)하니라.
87) 용머리고개에 盲人(맹인) 한 사람이 항상 길가에 앉아서 피리를 불어 돈을 벌더니 하루는 上帝 지나시다가 일러 가라사대[네 돈으로 술한잔을 사 먹으려 하노니 뜻이 어떠하뇨]대하여 가로대 몇잔이든지 사 잡수시기를 원하나이다]上帝 웃으시고 돈 한돈을 집어서 술 한잔을 사 잡수시면서 가라사대[불쌍하니 便(편)히 먹게 하여 주리라]하시더니 그 뒤에 얼마 아니되어 한 全州富者(전주부자)의 寡婦(과부)가 데려다가 같이 있게 되니라
88) 하루는 신경원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아뢰되[警官(경관)의 調査(조사)가 심하여 날마다 와서 先生(선생)의 주소를 묻나이다]上帝 온 사람에게 글을 써주시며 가라사대[이 글을 경원에게 傳(전)하여 한번 읽고 곧 불사르라]하시니 그글은 이러하니라
天用雨露之簿則 必有萬方之怨하고 地用水土之簿則 必有萬物之怨하고
천용우로지부즉 필유만방지원하고 지용수토지부즉 필유만물지원하고
人用德化之簿則 必有萬事之怨이니라. 天用 地用 人用을 統在於心하라
인용덕화지부즉 필유만사지원이니라. 천용 지용 인용을 통재어심하라
心也者는 鬼神之樞機也며 門戶也며 道路也라 開閉樞機하고
심야자는 귀신지추기야며 문호야며 도로야라 개폐추기하고
出入門戶하고 往來道路神하라 或有善하고 或有惡하니 善者師之하고
출입문호하고 왕래도로신하라 혹유선하고 혹유악하니 선자사지하고
惡者改之하면 吾心之樞機가 門戶道路하야 大於天地也리라
악자개지하면 오심지추기가 문호도로하야 대어천지야리라
경원이 받아 읽은 뒤에 곧 불살랐더니 그 뒤로 警官(경관)의 調査(조사)가 그치니라
89) 金秉旭(김병욱)의 差人 (차인)金允根(김윤근)이 와 뵙고 여쭈어 가로대 [요사이 날이 가물어서 農作物(농작물)이 다 마르오니 先生(선생)님은 단비를 내리사 萬民(만민)의 焦操(초조)한 마음을 풀어주소서] 上帝 덕찬을 命(명)하사 그 집에 기르는 돋 한 마리를 잡아서 제자들과 더불어 함께 잡수시니 미처 다 잡수시기 전에 天動(천동)이 일어나며 비가 크게 내리거늘 윤근이 기뻐하여 가로대 [先生(선생)님은 眞實(진실)로 萬民(만민)을 살리시는 하느님이로소이다]하니라
90) 구릿골 里長(이장) 鄭成元(정성원)이 여쭈어 가로대[제가 가난하여 살아갈 수가 없아오니 請(청)컨대 家難(가난)을 면할 길을 가르쳐 주옵소서]상제 웃으시며 가라사대[금년에 그대가 받는 마을의 稅金(세금)을 上納(상납)하지 말고 그대가 쓰라 뒷일은 내가 끌러 주리라]성원이 대하여 가로대[너무 심한 말씀을 하나이다. 國稅(국세)를 받아쓰고 어찌 生命(생명)을 保全(보존)하리이까]하고 물러가더니 그 뒤에 故意(고의)는 아니나 稅金(세금)을 몇천냥을 流用(유용)하게 되어 己酉年(기유년) 봄에 이르러 官廳(관청)에서 督促(독촉)이 심한지라 성원이 술이 취하여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외쳐 가로대[내가 國稅(국세)를 받아 썼으니 누구든지 내 배를 가르라]하거늘 上帝 들으시고 불러서 慰勞(위로)하여 가라사대[念慮(염려)하지 말라 無事(무사)하게 하여 주리라]하시니 모든 사람이 다 믿지 아니 하였더니 그 뒤에 果然(과연) 戊己年稅金(무기년세금)이 免除(면제)됨에 성원의 일이 끝리니라
91) 하루는 公事(공사)를 보실 때, 洋紙(양지)에 글을 쓰시며 보경에 命(명)하사 [東方(동방)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하시니 보경이 나가보고 들어와 아뢰되[검은 구름이 잔뜩 끼이고 별이 보이지 아니하나이다] 上帝 門(문)을 열으시고 東天(동천)을 向(향)하여 한번 부시니 구름이 흩어지고 별이 나타나더라.
92) 泰仁(태인)白岩里(백암리) 김명칠이 山中頃斜地(산중경사지)를 開墾(개간)하여 담배를 심었는데 거름을 하고 붓을 돋웠더니 문득 소나기가 오므로 명칠이 가슴을 치며 울어 가로대[내 農事(농사)는 담배농사 뿐인데 거름하고 붓한 뒤에 이렇게 소나기가 퍼부우니 沙汰(사태)가 흘러내려서 다 버리게 되리라]하거늘 上帝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 가라사대[근심을 풀으라 그 災殃(재앙)을 免(면)하게 하여 주리라]하시더니 비가 개인 뒤에 명칠이 가보니 조금도 被害(피해)가 없고 다른 사람의 담배밭은 모조리 沙汰(사태)의 被害(피해)를 보아서 이 해에 담배농사가 크게 凶年(흉년)이 들드라.
93) 하루는 정괴산의 주막을 지나실 때, 마침 古阜禍亂(고부화란)때 面分(면분)이 있던 鄭巡檢(정순검)이 이르거늘 上帝 술을 사서 待接(대접)하시더니 떠날 때 돈 십원을 要求(요구)하며 조끼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 십원을 훔쳐가는지라 上帝 일러 가라사대[모든 일을 義(의)로써 할지어늘 어찌 이렇게 無禮(무례)하뇨]하시더라 鄭巡檢(정순검)이 전주에 가서 다시 편지로 사십원을 더 청구하거늘 형열을 명하사 돈 若干(약간)을 구하여 보내시며 가라사대[義(의)롭지 못한 사람이로다]하시더라. 며칠후에 정순검이 古阜(고부)로 돌아가다가 井邑(정읍)앞 다리에서 盜賊(도적)에게 맞아 죽은지라. 상제 들으시고 가라사대[盜賊(도적)을 懲治(징치)하는 職責(직책)을 가진 巡檢(순검)이 도리어 分外(분외)의 財物(재물)을 즐기니 盜賊(도적)에게 죽음이 當然(당연)치 아니하랴 이것이 다 神明(신명)의 行(행)하는 바이니라]하시니라
94) 하루는 김영서와 정남기가 와 뵈인 뒤에 두사람이 서로 私談(사담)할 때 남기는 日本(일본)말 배운사람을 부러워하여 가로대 [요사이 일본말을 아는 사람은 成功(성공)하기도 쉽고 돈벌이도 잘 하더라]하고 영서는 徘優(배우)를 부러워하여 가로대 [요사이는 演劇(연극)을 잘하여도 돈벌이가 잘 되더라]하여 서로 그런 일에 等閑(등한)하였음을 뉘우치더니 문득 남기는 손을 흔들며 流暢(유창)한 어조로 일본말을 지껄이고 영서는 喪者(상자)라 喪巾(상건)을 흔들며 일어서서 喪服(상복)소매로 북치는 흉내를 내면서 춤과 노래를 演奏(연주)하여 등이 젖도록 땀이 흐르니 坐中(좌중)이 크게 웃는지라 上帝 웃으시며 가라사대[너희들은 빨리도 所願(소원)을 이루었도다]하시니 두 사람이 비로소 精神(정신)을 차려 부끄러워 하는지라. 上帝 다시 일러 가라사대[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正大(정대)히 하여 그칠곳을 알아야 할 것이요 한가지라도 分數(분수)밖의 생각을 가지며 실없는 말을 함이 不可(불가)하니라]하시니라
95) 하루는 김병욱의 집에 가시니 제자들이 많이 모이는지라 병욱이 그 아내를 시켜서 點心(점심)을 지을때 날이 심히 더우므로 병욱의 아내가 괴로워하여 홀로 不平하는 말을 하였더니 문득 와사증이 일어나거늘 황응종이 보고 上帝께 아뢰인데 일러 가라사대[이는 不平(불평)하는 말을 하다가 竈王(주왕)에게 罰(벌)을 받음이니라]하시고 글을 써주자[병욱의 아내로 하여금 부엌에 사르며 謝罪(사죄)하라]하시니 병욱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나으니라
96) 大興里(대흥리)에 계실 때 박공우에게 물어 가라사대[네가 남과 싸움을 많이 하였느냐]대하여 가로대[그러하였나이다]다시 일러 가라사대[豹丹(표단)이 들어서 싸움을 즐기나니 이제 표단을 빼내고 仁丹(인단)을 뱃속에 넣으주리라]하시니 그 뒤로는 공우의 性質(성질)이 溫順(온순)하게 되어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고 或(혹) 싸우는 자가 있으면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 곧 멀리 避(피)하여 가니라
97) 八月(팔월) 어느날 德贊(덕찬)이 여쭈어 가로대[오늘 제 妹家(매가)에 잔치가 있으니 消風(소풍)을 겸하여 가사이다]가라사대[내 술을 먼저 마시라]덕찬이 가로대[무슨 술이나이까]가라사대[조금만 기다리라]하시더니 이윽고 공우가 술과 水蒸鷄(수증계)를 가져와서 上帝께 올리니라
98) 이해 겨울 어느날 아침에 大興里(대흥리)를 떠나 泰仁(태인) 새올 崔昌祚(최창조)의 집으로 가실 때 공우는 해가 오르면 길이 질까하여 진 신발을 하였더니 上帝 보시고 [진 신발을 하였느냐]하시고 손으로 東(동)쪽 산마루에 떠오르는 해를 向(향)하여 세 번 누르시니 해가 오르지 못하다가 殺捕亭(살포정) 주막에 들어 쉬시니 그제야 해가 문득 높이 솟아 오르더라
99) 최창조의 집에 이르사 霹靂表(벽력표)를 묻으시니 곧 天動(천동)이 크게 일어나며 天地(천지)가 震動(진동)하는지라. 곧 거두시고 이튿날 구릿골 藥房(약방)으로 가시니라
100) 최창조의 집에서 공우에게 물어 가라사대[네가 눈을 많이 흘겨보느냐]대하여 가로대[그러하나이다]다시 일러 가라사대[집으로 돌아가라]하시거늘 공우 집으로 돌아올 때 길에서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름에 眼疾(안질)이 크게나서 달포를 앓다가 하루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이 낳았는지라 上帝께 와 뵈이니 가라사대[眼疾(안질)로 고생하였느냐] 하시고 웃으시더라 원래 공우는 성질이 사나워서 싸움을 즐기고 눈짓이 곱지 못하더니 이로부터 性質(성질)이 부드러워지고 눈짓도 고와지니라
101) 공우술이 과하여 酒僻(주벽)이 심하더니 하루는 上帝 가라사대[네가 술을 즐기니 酒量(주량)을 시험해 보리라]하시고 술을 많이 주시거늘 공우 連(연)달아 받아 마시고 醉(취)하는지라 다시 가라사대[한잔 술밖에 못된다]하시더니 이 뒤로는 한 두잔만 마셔도 곧 취하여 견디지 못하니라
102) 덕찬이 아들 婚姻(혼인)을 지내려 할때 여러 사람들이 物品(물품)과 돈으로 扶助(부조)하거늘 상제 가라사대[나는 扶助(부조)할 물품이 없으니 日氣(일기)로나 부조하리라] 하시거니 이때에 日氣(일기)가 連日(연일) 險惡(험악)하여 甚(심)히 念慮(염려)하던 중인데 그날에 이르러서는 뜻밖에 溫和(온화)하여지니라
103) 十一月(동짓달)에 형열에게 일러 가라사대[내가 井邑(정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吉行(길행)이라. 이뒤에 일을 네게 알리리라]하시더니 이날 車輪京(차윤경)이 와 뵈옵고 高夫人(고부인)이 眼疾(안질)로 苦生(고생)함을 아뢰니 가라사대[이제 돌아 갔다가 來日(내일) 泰仁(태인) 殺捕亭(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라] 윤경이 곧 돌아 갔다가 이튿날 살포정으로 오니 上帝 아직 오시지 아니하였거늘 곧 소투원 주막에 이르니 주막주인이 말하되 [先生(선생)님이 새올 최창조의 집으로 가시면서 윤경이 와 묻거든 그곳으로 보내라]하셨다 하거늘 윤경이 새올로 갈 때, 日本軍士(일본군사) 몇백명이 길에 陳(진)을 치고 그의 住所(주소와 가는곳과 出行事由(출행사유)를 묻더라 새올에 이르러 上帝께 뵈이니 날이 이미 저물더라 이날 밤에 윤경을 명하사 [밤새도록 자지말고 밖에서 돌아다니라]하시고 닭울음 소리가 난 뒤에 윤경을 데리고 白岩里(백암리)로 向(향)하여 떠나시니라.
104) 김경학의 집에 이르사 아침밥을 잡수시고 다시 井邑(정읍)으로 가실 때 혹 앞서기도 하고 或(혹) 뒤서기도 하며 너댓걸음을 걸으신 뒤에 가라사대[이 길에는 日本(일본)사람을 보는 것이 不可(불가)하니라]하시니라 井邑(정읍) 老松亭(노송정)에 이르사 가라사대[좀 遲滯(지체)함이 可(가)하다]하시고 半食頃(반식경)을 지내신 뒤에 다시 떠나사, 그 모퉁이 큰 연못가에 이르니 騎兵(기병)들이 많이오다가 되돌아간 자취가 있거늘 上帝 그 자취를 보시고 가라사대[저희들이 어찌 大人(대인)의 앞길을 달려오리요]하시거늘 윤경이 그 近處(근처)사람한테 물으니 果然(과연) 騎兵(기병) 몇십명이 달려 오다가 그곳에서 되돌아 갔다 하더라
105) 거기서 大興里(대흥리)로 가려면 길이 두갈래로 나누어져 한 길은 정읍 읍내를 지나가는 큰길이요 한 길은 샛길이라.윤경이 어느길로 갈 것을 물은데 가라사대[君子(군자)는 大路行(대로행)이라 하였으니 어찌 샛길로 다니리요]하시고 큰 길로 접어들어 井邑(정읍) 邑內(읍내)를 지나시니, 左右側(좌우측)에 즐비하게 늘어선 일본인의 상점에는 한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더라. 대흥리에 이르사 고부인의 안질을 낫게 하시고 上帝 친히 그 안질을 하룻밤 대신하여 앓으신 뒤에 이어서 戊申臘月公事(무신납월공사)를 행하시니라
106) 하루는 차경석의 검은 두루마기를 가져오라 하사 입으시고 속옷을 벗으신 뒤에 긴 手巾(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이러하면 日本(일본)사람과 같으냐]모두 대답하여 가로대[같으니이다]다시 벗으시고 가라사대[내가 어려서 書堂(서당)에 다닐때 한 兒孩(아해)와 서로 墨作亂(묵장난)을 하다가 그 兒孩(아해)가 지고 울며 돌아가서 다시오지 아니하고 다른 서당에 다니다가 그 후에 病(병)들어 죽었는데 그 神明(신명)이 寃恨(원한)을 품었다가 이제와서 나에게 解寃(해원)시켜 주기를 원하므로 어떻게 하면 解寃(해원)이 될까 물으니 그 神明(신명)이 내가 日本(일본)옷을 싫어하는 줄 알고 일본옷을 입으라 하므로 이제 내가 그 神明(신명)을 慰勞(위로)하여 주었느니라]하시니라
107) 大興里(대흥리)에서 臘月公事(납월공사)를 보시고 己酉年(기유년:1909년) 正月初二日(정월초이일) 官災(관재)를 避(피)하여 白岩里(백암리) 京學(경학)의 집으로 가셨더니 泰仁邑(태인읍)에 경학의 형이 사람을 보내어 경학을 부러 가거늘 上帝 발을 만지시며 가라사대[상말에 발 福(복)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가면 多幸(다행)이요 못가면 不幸(불행)이라는 말이다]하시고 곧 떠나서 홀로 최창조의 집에 가셨다가 다시 그 앞 솔밭을 지나 최덕겸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시니 모든 사람들이 계시는 곳을 알지 못하니라. 원래 경학의 형은 경학이 術客(술객)한테 홀려서 살림을 돌보지 아니한다는 말을 듣고 甚(심)히 念慮(염려)하던 次(차)에 官廳(관청)에 探聞(탐문)되어 그 術客(술객)과 경학을 잡으려고 간다 하므로, 이에 그 事實(사실)을 通知(통지)하지 않고, 다만 아우만 불러다가 숨기려 함이라 경학이 집을 떠나서 읍으로 가다가 中路(중로)에서 巡檢(순검)에게 붙들려서 집으로 되끌려 와서 上帝를 찾다가 계시니 아니하므로 창조의 집까지 끌려 갔다가 上帝를 찾지 못하므로 돌아가니라.
108) 다셋날 구릿골에 이르시니 몇일후에 泰仁(태인)으로부터 無事(무사)하게 된 顚末(전말)을 告(고)하거늘 上帝 가라사대[井邑(정읍)일은 하루公事(공사)인데 京石(경석)에게 맡겼더니 하루 아침에 끝내고 泰仁(태인)일은 하루아침 공사인데 京學(경학)에게 맡겼더니 하루가 걸렸으니 京石(경석)이 京學(경학)보다 낫다]하시고 또 가라사대[京石(경석)은 兵判(병판)감이요 京學(경학)은 爲人(위인)이 直腸(직장)이라 돌리기 어려우니 돌리기만 하면 착한 사람이 되리라]하시니라
109) 하루는 공우와 응종을 데리고 泰仁邑(태인읍) 주막에 이르사 辛京元(신경원)에게 일러 가라사대[오늘은 白巡檢(백순검)을 만나야 하겠으니 그를 데려오라]말씀을 마치자 백순검이 그 집앞을 지나거늘 경원이 나가서 上帝 계신 곳을 알리니 백순검이 곧 뛰어 들어와서 上帝를 捕縛(포박)하는지라. 上帝 공우에게 명하여 가라사대[네게 있는 돈 백냥을 내게 전하고 창조의 집에 다녀오라]하시니 공우 대답하고 가거늘 또 응종과 경원을 각각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백순검에게 돈백냥을 주시며 가라사대 [그대를 만나려고 이곳에거 기다린지 오래였으니 이것을 적다말고 용돈에 보태어 쓰라]백순검이 致謝(치사)한 뒤에 結縛(결박)을 풀고 물러가니, 大抵(대저) 그가 上帝를 붙들어서 돈을 빼앗으려 하는줄 알으시고 그 慾心(욕심)을 채워 주심이더라
110) 공우 上帝를 뫼시고 申京洙(신경수)의 집에 留宿(유숙)할 때 꿈에 불빛같이 빛나는 사람 數十名(수십명)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上帝 계신 문밖 뜰에서 절하고 뵈이니 공우는 두려워하여 上帝의 등뒤로 숨어있었더니, 다음날 上帝께서[꿈에 본 것이 있느냐]고 물으시거늘 공우 그 事由를 아뢴대 가라사대[그들이 곧 天上霹惡使者(천상벽악사자)니라]하시더라
111) 金京學(김경학)이 일찍이 東學(동학)에 加入(가입)하여 三個月(삼개월)동안 侍天呪(시천주)의 修煉(수련)을 하던중 어느날 꿈에 天上(천상)에 올라 上帝를 뵈온 일이 있었더니 하루는 上帝께서 [네 平生(평생)에 제일좋은 꿈을 꾼것을 記憶(기억)하느냐]경학이 일찍이 玉皇上帝(옥황상제)를 뵈옵던 꿈을 아뢰며 [先生(선생)님의 形貌(형모)가 곧 그때에 뵈업던 上帝의 모습인 것을 깨달았나이다]하니라
112) 四月(사월)에 全州(전주) 佛可止(불가지) 金成國(김성국)의 집에 계실 때 德贊(덕찬)이 모셨다가 무슨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게 알면서 거짓 대답을 하였더니 다시 일러 가라사대[이제 龍巢里(용소리) 金義官(김의관)의 집에 가서 자고 오라]덕찬이 命(명)을 받고 龍巢里(용소리)에 갔다가 김의관의 집 大門(대문)앞에서 술취한 사람을 만나 悖辱(패욕)을 많이 당하고 忿(분)을 이기지 못하여 되돌아 오거늘 上帝 대문밖에 나서사 바라보시고 웃어 가라사대[왜 자지 아니하고 돌아오느냐]하시고 술을 주시며 타일러 가라사대[사람을 사귀임에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어늘 어찌 마음을 스스로 속이느냐]하시니 덕찬이 처음에는 上帝께서 無故(무고)히 용소리에 보내어 패욕을 당하게 하신 것을 不平(불평)히 여겼다가 이 말씀을 듣고는 비로소 上帝의 말씀에 속으로는 실없이 알면서 거짓 對答(대답)한 것을 아시고 실없는 醉漢(취한)을 만나도록 懲罰(징벌)하심인줄 깨닫고 이로부터 더욱 두려워하여 비록 한번 생각함과 작은 일이라도 極(극)히 삼가니라.
113) 白岩里(백암리) 近處(근처)에 虎患(호환)이 많으므로 京學(경학)이 크게 근심하거늘 가라사대[그 짐승이 사람을 먹으니 없이하여야 하리라]하시고 虎毯褥(호담요)을 가져오라 하사 붓에 먹물을 찍어서 그 그림의 눈에 點(점)을 치셨더니, 그 후로는 各處(각처)에 虎患(호환)이 없어지니라
114) 五月(오월)에 白岩里(백암리)에 계실 때 글을 써서 경학에게 주시며[물동이에 왼쪽으로 돌려서 적신뒤에 불사르라]하시더니 그 뒤에 경학의 형 京殷(경은)의 집에서 불이나서 사나운 南風(남풍)에 氣勢(기세)를 얻어 경학의 집을 넘어 뛰어서 이웃집 아홉채를 물살랐으되 경학의 집은 無事(무사)하니라
115) 하루는 井邑郡(정읍군) 內藏面(내장면) 琴湖里(금호리)앞 모시밭가를 지나실 때 모시밭 가에 農軍(농군)들이 쉬며 앉았고 모시는 잎이 하나도 없고 대만 서 있는지라. 그 理由(이유)를 農軍(농군)들에게 물으시니 밭 임자가 對(대)하여 가로대[前例(전례)에 없던 큰 蟲災(충재)로 인하여 이러하나이다]上帝 불쌍히 여기사 가라사대[내가 蟲災(충재)를 除去(제거)하여 주리니 근심하지 말라]하시고 北(북)쪽을 向(향)하여 휘파람을 세 번 부시니 뜻밖에 새몇천마리가 모여 들어서 그 害蟲(해충)들을 쪼아 없이하더니 그 뒤로 모시잎이 다시 피어나서 例年(예년)보다 더욱 繁成(번성)하여 모시 農事(농사)를 잘 되게 하시니라
116) 六月(유월)에 구릿골에 계실 때, 하루는 경학이 이르러[오랫동안 날이 가물어서 모를 옮기지 못하여 민심이 不安(불안)하나이다]하고 아뢰인데 上帝 갑칠을 命(명)하사[淸水(청수) 한동이를 길어오라]하시고 미리 洋紙(양지) 한軸(축)에 글을 가득히 써 두었던 것을 경학에게 내어 주시며 가라사대[淸水(청수)에 적시어 가루가 되게 부벼라] 경학이 명하신대로 하여도 비가 오지 아니하거늘 갑칠에게 일러 가라사대[내게 將令(장령)을 붙여 西洋(서양)으로부터 雨師(우사)를 불러넘겨서 萬民(만민)의 渴症(갈증)을 풀어주려 하였더니 네가 어제 저녁에 나의 命(명)을 어기고 잠을 잤으므로 비가 오지 아니하니 옷을 벗고 淸水(청수)동이 앞에 合掌(합장)하고 서서 謝罪(사죄)하라]갑칠이 命(명)하신대로 하니 문득 西(서)쪽 하늘로부터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 비가 쏟아져서 삽시간에 앞 냇가가 넘치거늘 경학이 여쭈어 가로대[이만하면 넉넉하게겠나이다]上帝 이에 부채를 들어 한번 흔드시니 비가 곧 그치거늘 命(명)하사[청수를 쏟아 버리고 옷을 입으라]하시며 모든 제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들도 잘 修煉(수련)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하시니라.
117) 이때에 淸州(청주)에서 怪疾(괴질:虎列刺:호열자)이 猖獗(창궐)하고 羅州(라주)에서도 크게 盛(성)하여 民心(민심)이 뒤끓는지라 上帝 가라사대[南北(남북)에서 마주 터지니 將次(장차) 無數(무수)한 生命(생명)을 죽이리라]하시고 이에
勅令怪疾神將 胡不犯帝王將相之家 犯此無辜蒼生之家乎
칙령괴질신장 호불범제왕장상지가 범차무고창생지가호
라고 써서 불사르시며 가라사대[내가 이것을 代贖(대속)하리라]하시고 형열에게 명하여 새옷 다섯벌을 急(급)히 지어서 한 벌씩 갈아 입으시고 泄瀉(설사)하여 버리신 뒤에 가라사대[弱(약)한 자가 걸리면 모두 죽겠도다]하시더니 그 뒤로 怪疾(괴질)이 곧 그치니라
118) 院坪(원평)장터 金京執(김경집)의 집에 단골 主人(주인)을 定(정)하시고 오랫동안 머무르셨으므로 누구든지 上帝의 말씀을 憑藉(빙자)하여 술과 밥을 請(청)하면 값을 내고 아니 내고를 묻지않고 다 먹게 하더니 泰仁(태인) 청석골 강팔문이 술과 밥을 많이 먹은 뒤에 돈 가진 것을 주인에게 들켰으나 上帝의 말씀이 있다하고 거짓말을 하여 값을 주지않고 갔더니 이로부터 滯症(체증)에 걸려 몸이 퉁퉁 부어서 죽게 되거늘 신경수가 그 事由(사유)을 아뢰인데 上帝 대답치 아니 하시더라 그 뒤에 또 와서 危毒(위독)함을 아뢰니 가라사대[몹쓸짓을 행하여 神明(신명)에게 罪(죄)를 얻어 그릇 죽음을 하게 되었으니 할 수 없는 일이로다]하시더니 그 뒤에 곧 죽으니라
119) 제자들이 매양 근심된 일이 있을 때에는 그 事由(사유)를 上帝께 아뢰면 不知中(부지중)에 自然(자연)히 풀리게 되는데 萬一(만일) 아뢰인 뒤에도 오히려 근심을 놓지 아니하면 문득 慰勞(염려)하여 가라사대[내가 이미 알았으니 근심하지 말라]하시니라
120) 매양 제자들에게 일을 命(명)하심에 반드시 期限(기한)을 定(정)하여 주사 어기지 않게 하시며 萬一(만일) 命(명)을 받은 자가 혹 기한 날에 日氣(일기)가 不順(불순)하여 어김이 있을까 念慮(염려)하면 上帝 일깨워 가라사대[내가 너희에게 어찌 좋지못한 날을 일러 주겠느냐]하셨더니 大抵(대저) 上帝께서 정하여 주신 날은 하루도 좋지않은 날이 없었더라
121) 매양 제자를 어느곳에 보내시되 무슨일로 因(인)하여 보낸다는 말씀을 아니하신 때가 많이 있었나니 제자들은 恒常(항상) 그렇게 經驗(경험)하였으므로 다시 묻지 아니하고 命(명)하신 곳에 가면 반드시 무슨일이 있더라
122) 恒常(항상) 제자들을 둘러 앉히고 몸을 搖動(요동)하지 못하게 하시고,雜念(잡념)을 버리고 正心(정심)하라 하시며, 밤이면 닭이 운뒤에 자게 하시고 겨울에는 흔히 門(문)을 열어놓고 마루에 앉아 계시며 방안에 있는 사람이 추움을 깨닫지 못하며 혹 춥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卽時(즉시)에 더워지며 여름에는모기가 버리위에서만 소리내고 물지 못하며 혹은 더웁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에 서늘한 氣運(기운)을 돌게 하시며 빈대가 있는 방에 하루 저녁만 주무시면 빈대가 없어지며 길 갈때의 혹 더웁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니 부채나 삿갓으로 한번 두르시면 문득 구름이 해를 덮고 바람이 서늘하게 일어나리라
123) 가물 때에 비를 주시되 淸水(청수)동이에 오줌을 조금 타면 그비로 因(인)하여 모든 穀物(곡물)이 豊穰(풍양)하여지고 蟲災(충재)가 있을 때에는 淸水(청수)동이에 苦草(고추)가루를 풀어 넣으면 蟲災(충재)가 곧 걷히니라
124) 上帝께서 天地大權(천지대권)을 任意(임의)로 使用(사용)하시되 一定(일정)한 法(법)이 없고 매양 때와 場所(장소)를 따라서 臨機應變(임기응변)하셨나니 예를 들면 큰비가 올때 비를 그치게 하실 때 혹은 제자에게 명하여 火爐(화로)의 불덩이를 문밖에 던지기도 하시고 혹은 담뱃대를 두르기도 하시고 혹은 술잔을 두르기도 하시고 혹은 말씀으로도 항상 때와 場所(장소)를 따라 달리 하시니라
125) 더울 때에 出入(출입)하시면 구름이 日傘(일산)과 같이 太陽(태양)을 가리워 볕이 쪼이지 아니하니라
126) 달밤에 길을 가실 때에 구름이 달을 가렸으면 손으로 달을 向(향)하여 오른쪽으로 둘러 구름을 둥그렇게 열어 제치사 달빛을 내 비치게 하시며 가시는 곳에 이르신 뒤에는 다시 손으로 달을 향하여 왼쪽으로두르시면 구름이 다시 合(합)하여 原狀(원상)대로 恢復(회복)되니라
127) 매양 제자들을 胎座法(태좌법)으로 늘어 앉히시고 [조금도 움직이지 말라]고 命(명)하신 뒤에 萬一(만일)움직이는자가 있으면 비록 壁(벽)을 향하여 누워 주무실 때에도 문득 꾸짖으시니 그 밝으심이 자고 깨심과 보고 안보심과 멀고 가까움이 한결 같으시니라
128) 公事(공사)를 親(친)히 보지 아니하시고 혹은 제자들로 하여금 代行(대행)하게 하실때도 있었나니 그런때에는 그 대행하는 제자로 하여금 能(능)히 化權(화권)을 行(행)하게 하시니라.
129) 天文(천문)을 보실때에는 구름으로 온 하늘을 덮으시고, 볕을 하나씩 나타나게 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살피게 하시니라
130) 큰 공사를 행하실 때에는 반드시 술과 고기를 장만하여 여러 사람으로 더불어 함께 잡수시며 혹은 식혜를 만들어 제자들과 더불어 함께 마시니라
131) 매양 出行(출행)하실 때에는 하루에 三十里(삼십리)를 넘겨 걷지 아니하시며 가라사대 [大陣(대진)은 하루 삼십리를 넘기지 않나니라]하시니라
132) 上帝께서는 威嚴(위엄)이 씩씩하시고 和氣(화기)가 무르녹으사 누구든지 包容(포용)되어 가까이 할수 있었는데 제자들이 저의 아버지에게 比較(비교)하면 慈愛(자애)로우시고 사랑하여 주는 형님에게 比較(비교)하면 嚴(엄)하시다 하더라 또 上帝께서는 恒常(항상) 돈 12원씩을 몸에 갈뭐 두시니라
133) 上帝께서는 얼굴이 圓滿(원만)하시고 金山彌勒佛(금산미륵불)과 恰似(흡사)하시며 兩眉間(양미간)에는 光彩(광채)가 나시고 왼 손바닥에 북방 壬字(임자),오른손 바닥에 별 戊字(무자)의 무늬가 있으시니라
※134) 上帝님의 首弟子(수제자) 金亨烈(김형열)의 號(호)는 太雲(태운)이요 銅谷(동곡)에서 生長(생장)하다가 環坪(환평)에 移去時(이거시)는 富家(부가)인데 當代家産(부대가산)이 浪敗(낭패)하여 夏雲洞(하운동) 齊室(제실)로 移舍(이사)하였으나 貧苦(빈고)를 견디지 못하여 金溝(금구) 內住坪(내주평)을 往來(왕래)하면서 農業(농업)이나 經營(경영)할까 하고 있던중 그 마을 學堂(학당)을 가보니 한 靑年訓長(청년훈장)이 있었는데 容貌(용모)가 秀麗(수려)하고 智慧(지혜)가 넘치더라 里長(이장)보고 물으니 鄭氏家門(정씨가문)의 聚客(취객)이라 하더라 學生(학생)들을 가르치심에 節度(절도)가 있을 뿐아니라, 天氣(천기)를 미리 豫告(예고)하심에 비가 오고 눈이 오며 바람이 불고 구름끼이는 일을 正確(정확)하게 알아 맞추시며 또 洞里(동리)사람들의 四柱(사주)도 評議(평의)하니 可謂(가위) 神人(신인)이라 老少(노소)는 다르나 그때 通姓名(통성명)하여 그후로부터 親面(친면)으로 지내다가 事不如意(사불여의)하여 內住坪(내주평)을 가지 못하였다.
※135) 太雲(태운)이 甲午亂(갑오란)때 東學軍(동학군)에 參加(참가)하여 淸州戰鬪(청주전투)에서 죽을 것을 上帝로 말미암아 救援(구원)을 받아 돌아온 뒤로 동학군과 연줄을 끊고 家業(가업)에만 從事(종사)하던중 先生(선생)님 親面(친면)을 不忘(불망)하다가 近年(근년)에 와서 先生(선생)께서 母嶽山(모악산) 大願寺(대원사)에서 成道(성도)하신 消息(소식)을 들으시고는 선생님 소식을 더욱 듯고저 하던차에 하루는 院坪(원평)장날에 집안에 食糧(식량)이 떨어져서 돈 한냥을 주선하여 시장에 나감에 마침 만나기를 所願(소원)하던 先生(선생)님을 相逢(상봉)하니 喜不自勝(희불자승)이라. [어디로 가십니까(何處去之乎:하처거지호)하니 忠淸道(충청도)에 가신다고 하기에 太雲(태운)이 돈을 路費(로비)로 들이면 家族(가족)이 굶을 것이고, 만일 안들이면 相親間(상친간)의 義理(의리)가 아니다 하고 들이니 받지 않으시며 노비가 있다 하시나 彊力(강력)히 들이니 不得(부득)이 받으시고 가라사대 歸路(귀로)에 訪問(방문)하실 것을 約束(약속)하시고 떠나시더라.
※136) 그달 十三日(십삼일)에 夏雲洞(하운동)으로 枉臨(왕림)하셨거늘 太雲(태운)이 방으로 들어 가시자고 하니 가라사대[君家(군가)에 産氣(산기)가 있노라][어떻게 아시나이까]하고 물으니 가라사대[너희집에 産神(산신)이 말을 몰고 들어감을 보고 알았노라. 같이 감나무 아래로 가서 앉자]하여 감나무 아래에 앉으시고 가라사대[나의 집과 너희 집 兩家(양가)가 亡(망)한 後(후)에 成功(성공)할 工夫(공부)를 하여 볼까]하시니 太雲(태운)이 한참 생각하다가 드디어 承諾(승락)함에 세 번 다짐을 받은 뒤에 방으로 드시니라. 이때 안에서 生男(생남)한 消息(소식)을 전하여 오니 太雲(태운)의 三子(삼자)라 先生(선생)께서 이 兒孩(아해)에게 [千里馬:천리마]라 命名(명명)하시니 乳房(유방)이 네 개더라. 이때 先生(선생)님의 尊齡(존령)은 三十二歲(삼십이세)요 太雲(태운)의 나이는 四十一歲(사십일세)더라
※137) 오랫동안 相逢(상봉)못한 心懷(심회)를 풀으시고 형열에게 일러 가라사대[앞으로 末世(말세)가 當到(당도)함에 天地(천지)가 降大任於是人(강대임어시인)하였으니 正心修道(정심수도)하여 天地公廷(천지공정)에 參與(참여)하라 나는 造化(조화)로써 天地(천지)를 改造(개조)하여 不老不死(불로불사)의 仙境(선경)을 열어 苦海(고해)에 빠진 衆生(중생)을 廣濟(광제)할지라. 내가 西域西天(서역서천) 大法國(대법국) 天階塔(천계탑)에 내려와서 東西洋(동서양) 統一(통일)을 시키려고 東洋(동양) 朝鮮國(조선국)을 望氣(망기)하고 全北(전북) 金溝郡(금구군) 水流面(수류면) 金山寺(금산사) 三層殿(삼층전)에서 留連(유련)하다가 古阜(고부) 客望里(객망리) 姜氏門(강씨문)에 誕降(탄강)한 것은 主人(주인)을 尋訪(심방)함이라]하시고 [無體(무체)면 無用(무용)이니 西(서)는 金(금)인고로 金氏(김씨)께 主人(주인)을 定(정)하느니라]하시니라
※138) 또 가라사대 [내가 庚子年(경자년:1900년)에 得天文(득천문)하고 辛丑年 二月(신축년 이월)에 母嶽山(모악산) 大願寺(대원사)에 入山(입산)하여 七月七日(칠월칠일)에 道通(도통)하였으며 工夫(공부)할 때 朴錦谷(박금곡)이 나에게 手從(수종)을 드럿노라 佛之形體 (불지형체)仙之造化(선지조화)儒之凡節(유지범절)로써 濡佛仙三道(유불선삼도)를 統合(통합)하리라]하시니 亨烈(형열)이 믿지않음을 아시고, 天地公事(천지공사)를 行(행)하시며 형열에게 神眼(신안)을 열어주사 神明(신명)의 會散(회산)과 聽令(청령)을 參看(참간)케 하시니 그후로 형열이 차차 上帝를 信任(신임)하니라. 다음해 癸卯年(계묘년) 三月(삼월) 晦日(회일) 형열이 銅谷(동곡)으로 移舍(이사)하니 上帝께서도 동곡으로 移臨(이림)하시니라(이상은 金自賢(김자현)가의 秘錄(비록)에서)
※139) 하루는 구릿골 마을앞 큰 버드나무 아래서 消風(소풍)하실 때, 자리에 누워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내가 지금 물밑에 누워 있노라]하시니 제자들이 그 緣故(연고)를 물은데 가라사대[앞으로 너희들은 이곳에서 배타고 고기잡으리라]하시니 果然(과연) 解放後(해방후) 이곳에 큰 湖水(호수)가 생기고 藥房(약방)앞에서 배타고 고기 잡으니라.
※140) 上帝께서 하루는 구릿골에서 本家(본가)로 돌아가실 때, 장마철에 비가 많이 와서 井邑(정읍)에서 客望里(객망리)까지의 넓은 들이 물에 잠겨 바다를 이루니 꾸불꾸불한 시골길이 물속에 잠겨 잘 보이지 않는지라. 一直線(일직선)으로 물위로 걸어 가시되 신발이 물에 젖지 아니하므로 周邊(주변) 마을사람들이 나와서 보고 [저기 神人(신인)이 가신다]하더라. 뒷날 上帝께서 물위로 걸어가신 그 발자취를 따라 新作路(신작로)가 생기니 곧 上帝께서 新作路(신작로)를 만들게 하신 測量(측량)걸음이라 하더라. (生時弟子(생시제자) 유찬명의 가훈)
※141) 하루는 銅谷(동곡)에 계실 때 [慶州(경주) 龍潭公事(용담공사)를 본다] 하시고 구릿골 마을앞에 나시어 準備(준비)한 여러개의 말뚝을 제자들로 하여금 들리시고 洞口(동구)밖에서부터 말뚝을 박아 솔개峰(봉) 기슭과 首陽山(수양산) 기슭을 連結(연결)하시고, 帝妃山(제비산) 기슭과 首陽山(수양산) 기슭을 連結(연결)하시며 가라사대[이곳이 곧 건널목이 되며, 또 너희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배타고 고기잡으리라]하시니라
※142) 上帝께서 제자들과 出行(출행)하실 때나 깊은 江(강)을 건너실 때에 배가 있으면 배를 타시고 배가 없을 때에는 제자들과 더불어 손을 잡고 물위로 걸어 가시되 신발에 물이 묻지 않으시니라.(김형열가의 가훈)
※143) 上帝께서 安乃成(안내성)에게 일러 가라사대[母惡山(모악산) 꼭대기에 燈(등)불이 밝혀지는 해가 곧 開明(개명)되는 度數(도수)와 같으리니 그리알라]하시더니 그로부터 七十年(칠십년)이 지난후에 二年餘(이년여)에 걸쳐 세운 텔레비 中繼塔(중계탑) 꼭대기에 불이 켜지니 이해가 곧 己未年(기미년:1979년)이더라(안내성의 가훈)
※144) 上帝 (동곡)계실 때, 하루는 여러 弟子들에게 首陽山(수양산)을 가리키며 가라사대[저 山(산)이 天下名山(천하명산) 首陽山(수양산)이라. 마치 오리가 알을 품고 있는 形局(형국)이나 水源(수원)이 있어야 날아오리니 水源(수원)을 만들어야 하리라]하시고 또 가라사대[옛날 白夷(백이) 叔齊(숙제)가 首陽山(수양산)에서 一心工夫(일심공부)하다가 죽었으니, 이제 그 氣運(기운)을 이곳에 옮겨와서 公事(공사)에 쓰리라]하시더니, 後日(후일) 令愛(영애) 順任(순임)이 구릿골에 와서 上帝님 祠堂(사당)을 크게 짓고 大興里(대흥리)에서 聖骨(성골)을 모셔와서 새로 移葬(이장)하니 이곳이 곧 五老峰(오로봉)의 第一山(제일산)인 首陽山麓(수양산록)[오리알터]더라
※145) 하루는 上帝로 부터 형열에게 金山寺(금산사)로 오라는 기별이 왔으므로 金山寺(금산사)로 갔더니, 절앞 다리목에 이르렀을 때 忽然(홀연)히 彌勒佛像(미륵불상)이 金(금)빛을 發散(발산)하면서 걸어 나오는지라. 형열이 놀래어 땅에 俯伏(부복)하여 몸을 떨거늘 上帝 가라사대[그만 일어나거라]하시니, 형열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니 上帝께서 웃음을 띄우고 서 계시더라. 이로부터 형열이 깍듯이 尊待(존대)의 말을씀에 다른 제자들도 따르니라.(형열의 가훈)
※146) 하루는 구릿골에 계실 때, 여러 제자들을 보고 가라사대,[大抵(대저) 國法(국법)이란 것은 서울에서 만들어서 方方谷谷(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니, 나의 일도 그러하리라. 그러므로 地方(지방)에서 만든 法(법)은 地方(지방)의 法(법)이요 서울에서 만드는 法(법)이 正法(정법)이니, 이일을 잘 銘心(명심)해두라]하시고 [聖師醫統(성사의통) 慶州龍潭(경주용담)이라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김자현의 가훈)
※147) 甲七(갑칠)이 急(급)히 돈쓸일이 있어서 사방으로 구하거늘 상제 아시고 갑칠에 명하여 돈 삼백냥을 구하여 오라 하시니, 갑칠이 달리 구할 길이 없어서 논밭 여섯두락을 急(급)히 팔아서 올리니 돈을 방바닥에 깔고 公事(공사)를 보신뒤에 돈을 도로 돌려 주시더라. 갑칠이 이 돈을 急用(급용)에 써서 없이했더니, 金堤(김제) 富者(부자) 윤휘영이가 그 논밭을 사서 갑칠에게 衛土畓(위토답)으로 맡기니 八十年(팔십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가지 그 孫子(손자) 金聲植(김성식)이 農事(농사)짓고 있더라.
※148) 院坪(원평)사람 尹成官(윤성관)이 비오는 날 아침에 이르나니 上帝께서 나막신을 신으시고 當到(당도)하시거늘 어디서 오시는 길이냐고 물은데 가라사대[益山(익산)에서 오노라] 하시거늘 益山(익산)이 여기에서 三十餘里(삼십여리)가 되는지라. 성관이 놀래어 甑山(증산)은 참으로 神人(신인)이라 하더라(윤성관의 가훈)
※149) 院坪(원평)에 사는 耶蘇敎(야소교) 靑年牧師(청년목사) 李自益(이자익)이 큰 비로 냇물이 불어 옷을 벗고 강물을 건느려 할 때, 上帝께서 다가와서 가라사대[李牧師(이목사) 내가 강을 건네주랴]하시니 이목사 황공하여 [先生(선생)님 부탁드립니다]하고 벗던 옷을 다시 입으니라. 이윽고 上帝께서 이목사를 한손으로 옆구리에 끼시고 數百步(수백보)가 넘는 넓은 강을 한 걸음으로 뛰어 넘으시니라(원평 이목사 장남 이성환의 가훈)
※150) 金贊文(김찬문)은 김형열의 장남으로써 일찍이 구릿골 學仙庵(학선암)에서 上帝님으로부터 글을 배웠던 제자로써, 上帝께서 壬寅年(임인년)봄에 首弟子宅(수제자댁)에 오신후로부터 歸天(귀천)하시고 三年喪(삼년상)을 마칠때까지 그부인 韓山李(한산이)씨와 더불어 一心奉公(일심봉공)하였으며 동곡에 계실 때는 天地公事(천지공사)에 쓰실 모든 雜務(잡무)와 日常一切(일상일체)의 侍從(시종)을 들여 十年(십년)동안을 하루같이 섬기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