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사도감리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박춘경
사무엘하 강해(12) 2020. 5. 6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
삼하 5:11-25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윗>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새로운 수도를 찾았습니다. 아주 적당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3면이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때부터 사사시대를 지나 사울 왕 때까지 겨의 300백년이 지나도록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것은 다윗에게는 일종의 소명과 같은 것이었고, 더불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신의 리더십을 굳건히 세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300년 가까이 예루살렘을 지켜 온 여부스 사람들은 교만했습니다. 아무리 다윗이라 하더라도 이 성을 점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6)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16:18)입니다.
다윗은 정면 대결을 피하고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수로를 발견했습니다. 그 수로를 통하여 비밀리 군사를 투입하여 결국 예루살렘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 성의 이름은 ‘다윗 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다윗이 싸움을 잘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된 일의 근본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10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이 점점 더 강성하여 갔는데, 그 이유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결론을 맺습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강성함의 비결입니다. 어느 순간 이 사실을 잊으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두로 왕 히람이 궁궐을 지어 줌>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성벽 보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왕궁을 지을 여력은 없었기에 임시 여부스 사람들이 지어놓은 집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상상하지 못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11-12절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두로는 이스라엘의 옆 나라로 해상 무역 왕국이었습니다. 두로 왕 히람이 사절들을 보내고 다윗을 위하여 왕궁을 지어주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최고의 목재로 꼽히는 백향목을 보내준 것은 물론, 최고의 목수와 석공들까지 보내서 아름다운 다윗 성을 지어 주었습니다. 두로의 왕 히람은 훗날 솔로몬 시대에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물자와 기술자들을 제공하여 주었습니다(왕상5:1-11, 대하2:1-16). 그리고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때에도 큰 협조를 해 주었습니다(왕상9:26-28, 10:11, 대하8:17-18).
그러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두로 왕 히람은 다윗에 대하여 이토록 호의적이었을까요?
이스라엘이 강대국이 되어가니 미리 조공을 바친 것이었을까요? 두로도 이스라엘 못지않게 강대국이었습니다. 단순히 두려워서 조공을 바친 것은 아닙니다. 두로 왕 히람이 이렇게 호의를 베푼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다윗의 덕과 명성을 흠모하여 우호적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자발적인 호의).
마치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스스로 찾아 온 스바 여왕처럼 말입니다(왕상10:1-10).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 마련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모습을 흠모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롬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과 딸들>
앞서 다윗은 헤브론에서 6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3:2-5). 그런데 다음 구절에서 7번째 아들부터 시작해서 왕위 계승 순서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3-16절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14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15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16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여기서 언급된 아들들은 모두 11명입니다. 도합 17명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대상3:6-7에 보면 더 많은 아들들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중동 문화권에서 한 나라의 왕은 여러 명의 처첩을 두고 많은 왕자들을 낳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왕권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국가 간의 유대강화는 왕족간의 정략결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입니다.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않아도 될 것이었습니다. 그 많은 왕자들로 인해 유익은커녕 오히려 고난만을 겪을 뿐이었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통해 보면 가장 아쉬운 대목입니다.
<블레셋과의 1차 전쟁>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 철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윗이 더욱 강성해지기 전에 무너뜨리려고 하였습니다.
17-18절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 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18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블레셋은 지중해 해양민족(크레타 섬 출신)인데 대단히 호전적이었습니다. 철기로 만든 병거와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청동기 문화였기에 이들을 당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스라엘과는 내내 앙숙 관계였습니다. 전에 다윗이 사울을 피해 1년 6개월 블레셋의 시글락이란 성읍에 머물기도 했습니다(가드 왕 아기스). 그 때 블레셋은 사울 왕의 미움을 받는 다윗을 이용해 사울을 괴롭힐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블레셋은 사울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과 여부스 족속을 쳐부수고 예루살렘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미리 싹을 자르려는 생각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블레셋 군사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르바임 골짜기를 가득 메웠습니다. 골짜기라 해서 좁은 협곡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이 넓은 평야라 하더라도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것은 다 골짜기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실상은 르바임 평야라 해야 맞습니다. 거의 인해전술 수준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첫 번째 큰 위기가 온 것입니다.
전에 사울은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니 두려움에 빠져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불렀습니다.
사실 다윗이라고 해서 두렵지 않겠습니까? 사울 왕의 정규군도 블레셋 군대에 완패했습니다. 그냥 완패 정도가 아니라 왕과 그의 아들들이 전멸할 정도의 처참한 완패였습니다.
‘공한증’(恐韓症)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축구 경기에서 중국 대표팀이 한국 대표팀을 잘 이기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국(韓)을 두려워(恐)하는 증상(症)이란 뜻으로 언론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실력도 부족하지만, ‘공한증’ 때문에 전신적으로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마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백성들은 거의 대부분 사울 왕의 다스림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블레셋의 ‘블’자만 들어도 두려움이 생겼을 것입니다(공블증).
그러나 다윗에게는 사울과 다른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신뢰)입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여기까지 왔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19절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은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우림과 둠밈).
다윗은 응답을 받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0-21절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21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자세한 전투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봇물 터지는 장면’을 상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보에 갇혀 있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장면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일방적인 승리를 표현한 말입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바알을 흩어 버린 곳)이라고 지었습니다.
블레셋 병사들이 얼마나 급히 도망을 갔는지 자기들의 우상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군대는 그 우상들을 모아가지고 불에 태웠습니다(대하14:12).
당시의 전쟁은 신의 대리전이었습니다. 전에 블레셋이 사울과 싸워 승리했을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사울의 목을 베어 블레셋 온 땅에 보내어 승리를 확인시켰습니다. 갑옷은 벗겨 전리품으로 아스다롯 신전에 두었습니다. 자기들의 신이 승리하였음을 과시하는 행위였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기 때문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윗이 이겼습니다. 아니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이기셨습니다. 패배한 블레셋은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까지 내어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형식은 달라졌어도, 오늘날도 여전히 ‘영적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엡6:10-12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세력과 싸워 반드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블레셋이 그렇게 패하고도, 다시 재공격을 해 왔습니다.
블레셋은 전열을 재정비하고는 또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
첫째는, 마귀의 세력은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족속의 끈질긴 공격은 사단의 속성을 닮았습니다.
우리는 사단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백성을 공격하는 일에 매우 집요합니다. 쉽게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 번 시험을 극복했다고 방심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늘 근신하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벧전5:8-9).
둘째,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출23: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23절, 27–28절).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 날마다 승리하며 사는 비결은 하나님으로 앞서 싸우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힘쓰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