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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함경_28. 포타바루경(布吒婆樓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세존께서는 생각하셨다.
‘오늘은 걸식하기에는 때가 좀 이르다. 나는 차라리 지금 포타바루(布吒婆樓) 범지의 숲에 가서 구경하면서 때를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걸식하리라.’
세존께서는 곧 범지의 숲으로 가셨다.
그때 포타바루 범지는 멀리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일어나 맞이하면서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오랫동안 오시지 않더니 오늘은 무슨 인연으로 몸소 찾아 주셨습니까? 자리에 앉으십시오.”
세존께서는 곧 자리에 앉아 포타바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여기 모여 무슨 일을 하였으며, 무엇을 강설했는가?”
[범지의 견해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제는 많은 범지와 사문 바라문들이 이 바라문의 강당에 모여 이러한 일로 서로 논쟁하고 토론하였습니다.
구담이시여, 어떤 범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이 생각[想]이 생겨나고,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생각이 멸한다.
생각에는 오고 감이 있어서, 그것이 오면 곧 생각이 생기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한다.’
구담이시여, 어떤 범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命)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생기고 명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멸한다.
저 생각에는 오고 감이 있으니, 오면 곧 생각이 생기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한다.’
구담이시여, 어떤 범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에서 한 말들은 옳지 않다. 큰 위력을 지닌 큰 귀신이 있다.
그가 생각을 가지고 가고, 그가 생각을 가지고 온다.
그가 생각을 가지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하고, 그가 생각을 가지고 오면 곧 생각은 생긴다.’
저는 이로 인하여 기억이 떠올랐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문 구담은 이전에 이 뜻을 알고 있었다. 그분이라면 반드시 상지멸정(想知滅定)에 대해 잘 아실 것이다.’”
[세존,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기고 멸하다]
세존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 모든 논자(論者)들은 다 잘못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생각[想]이 생기고,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생각이 멸한다.
생각에는 오고 감이 있어서, 오면 곧 생각이 생기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한다.’
혹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명(命)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생기고 명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멸한다.
생각에는 오고 감이 있어, 오면 곧 생각이 생기고 가면 곧 생각이 멸한다.’
혹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럴 리가 없다. 큰 귀신이 있어 그가 생각을 가지고 오고, 그가 생각을 가지고 간다.
가지고 오면 생각이 생기고, 가지고 가면 생각이 멸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다 잘못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범지여, 인연(因緣)이 있어 생각[想]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기 때문이다.
[차례로 상(想)을 멸하는 선정]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서 지진ㆍ등정각 등의 10호를 구족할 때에,
어떤 사람이 불법을 닦기 위해 출가하여 도를 행하고, 나아가 마음을 덮는 5개(蓋)까지도 멸하면,
탐욕과 같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제거하여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有覺有觀],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간다.
먼저 욕상(欲想)을 멸하고 희상(喜想)과 낙상(樂想)을 일으킨다.
범지여, 그러므로 알아야 하니,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한다.
다음에는 각과 관이 멸하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無覺無觀],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禪)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초선의 생각은 멸하고, 제2선의 생각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쁨[喜]을 버리고 집착 없는 평등한 마음을 닦고 보호하며,
생각을 오로지해 한마음이 되어 몸의 즐거움[身樂]을 스스로 알고,
현성이 구하는 바인 평정[護: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3선에 들어간다.
범지여, 제2선의 생각은 멸하고, 제3선의 생각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에는 괴로움도 버리고 즐거움도 버리는데,
이미 걱정과 기쁨은 멸하였으며, 평정[護]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간다.
범지여, 제3선의 생각은 멸하고, 제4선의 생각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체의 색에 대한 생각[色想]을 버리고 성내는 마음을 멸하며,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공처(空處)에 들어간다.
범지여, 일체의 색에 대한 생각은 멸하고 공처의 생각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일체의 공처를 초월하면, 식처(識處)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공처의 생각은 멸하고 식처의 생각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체의 식처를 초월하면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식처의 생각은 멸하고, 불용처의 생각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용처를 버리면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불용처(不用處)의 생각은 멸하고, 유상무상처의 생각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유상무상처를 버리고 상지멸정(想知滅定)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유상무상처의 생각은 멸하고, 상지멸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생각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 생각이 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생각을 얻은 뒤에 이렇게 생각한다.
‘기억[念]이 있는 것은 악이며, 기억이 없는 것은 선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할 때, 그 미묘한 생각은 멸하지 않고 다시 거친 생각이 생긴다.
그는 또 생각한다.
‘나는 이제 차라리 염행(念行)도 하지 않고 사유(思惟)도 일으키지 않으리라.’
그가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으면, 미묘한 생각도 멸하고 거친 생각도 생기지 않는다.
그가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아, 미묘한 생각도 멸하고 거친 생각도 생기지 않았을 때, 그는 곧 상지멸정(想知滅定)에 들어간다.
어떤가? 범지여, 그대는 태어난 이후로 이렇게 차례로 생각을 멸하는 인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가?”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태어난 이후로 이와 같이 차례로 생각을 멸하는 인연에 대해 진실로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유상(有想)이다. 이것은 무상(無想)이다. 혹은 다시 유상이다.’
이런 생각을 한 뒤,
그가 ‘기억[念]이 있는 것은 악이며, 기억이 없는 것은 선이다’라고 한다고 하면,
그가 이렇게 생각했을 때, 미묘한 생각은 멸하지 않고 거친 생각이 다시 생깁니다.
그러면 그는 또 ‘나는 이제 차라리 염행(念行)도 하지 않고 사유(思惟)도 일으키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아야, 미묘한 생각도 멸하고 거친 생각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가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아, 미묘한 생각도 멸하고 거친 생각도 생기지 않았을 때라야, 그는 곧 상지멸정에 들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 현성법 중에, 차례로 상(想)을 멸하는 선정이다.”
[위없는 생각]
범지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생각 가운데, 어느 것이 위없는 생각[想]입니까?”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불용처상(不用處想)이 위없는 것이다.”
범지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생각 가운데, 어느 것이 제일 위없는 생각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들 유상이라 하고 모두들 무상이라고 말할 때, 그 중간에서 능히 차례로 상지멸정을 얻으면, 이것이 제일 위없는 생각이다.”
범지는 또 여쭈었다.
“그것은 한 생각입니까, 많은 생각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생각만 있고, 많은 생각은 없다.”
범지는 또 여쭈었다.
[생각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있다]
“먼저 생각이 생긴 뒤에 지혜가 있습니까,
먼저 지혜가 생긴 뒤에 생각이 있습니까,
아니면 생각과 지혜가 동시에 함께 생깁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생각이 생긴 뒤에 지혜가 있다. 생각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있다.”
[어떤 사람을 나라고 하는가]
범지는 또 여쭈었다.
“생각은 곧 나[我]입니까?”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떤 사람을 나라고 말하는가?”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사람이 나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4대(大)ㆍ6입(入)으로 이루어진 색신(色身)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가 낳아 젖을 먹여 기르고 옷으로 장엄한 것으로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마멸(磨滅)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을 바로 나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4대ㆍ6입으로 이루어진 색신은, 부모가 낳아 젖을 먹여 기르고 의복으로 장엄한 것으로서, 무상하며 마멸하는 법이라고 말하고, 이런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했다.
범지여, ‘이것이 나이다’라는 말은 일단 그만두라.
다만 사람의 생각[想]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이다.”
범지가 여쭈었다.
“저는 ‘사람이 곧 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욕계천(欲界天)이 곧 나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욕계천이 곧 나이다’라는 말은 일단 그만두시오.
다만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이다.”
범지가 여쭈었다.
“저는 ‘사람이 곧 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색계천(色界天)이 곧 나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색계천이 곧 나이다’라는 말은 일단 그만두시오.
다만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이다.”
범지가 여쭈었다.
“저는 ‘사람이 곧 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스스로 공처(空處)ㆍ식처(識處)ㆍ불용처(不用處)ㆍ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ㆍ무색천(無色天)이 나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처ㆍ식처ㆍ불용처ㆍ유상무상처ㆍ무색천이 바로 나다’라는 말은 일단 그만 두시오.
다만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이다.”
[생각이 생기고 멸하는 것은 알기 어렵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제가 어떻게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을 알고자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다.
무슨 까닭인가?
그대는 다른 소견[見]과 다른 습관[習]과 다른 인(忍)과 다른 수(受)로 다른 법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다른 소견과 다른 습관과 다른 인과 다른 수로 다른 법을 의지하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 생기고 사람의 생각이 멸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도,
그것은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런 견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 세간과 목숨과 여래에 관한 잘못된 견래들]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무상(無常)하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영원한 것도 아니며 무상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끝이 있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끝이 없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와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며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 목숨[命]이 곧 몸[身]이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목숨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몸과 목숨은 다른 것도 아니며,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목숨도 없고 몸도 없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사라진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사라지기도 하고 사라지지 않기도 한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부처님의 말씀, 그것들을 확인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나는 확언하지 않는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왜 확언하지 않으십니까?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 확언하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법에도 맞지 않는다.
그것은 범행(梵行)이 아니며, 무욕(無欲)이 아니며,
무위(無爲)가 아니며, 적멸(寂滅)이 아니며,
지식(止息)이 아니며, 정각(正覺)이 아니며,
사문이 아니며, 열반[泥洹]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확언하지 않는다.”
[확인하는 것, 4성제]
범지가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이치에 맞고, 법에 맞는 것이며,
어떤 것이 범행의 처음이고, 어떤 것이 무위(無爲)이며,
어떤 것이 무욕(無欲)이고, 어떤 것이 적멸(寂滅)이며,
어떤 것이 지식(止息)이고, 어떤 것이 정각이며,
어떤 것이 사문이고, 어떤 것이 열반이며,
어떤 것이 확언(名記)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諦]ㆍ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苦集諦]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苦滅諦]ㆍ괴로움의 벗어남에 대한 진리[苦出要諦]를 확언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
범행의 시초이고, 무욕ㆍ무위ㆍ적멸ㆍ지식ㆍ정각ㆍ사문ㆍ열반이기 때문에, 나는 확언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범지를 위하여 설법하시고 가르쳐 보여 이롭고 기쁘게 하셨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다른 범지들의 반론]
부처님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다른 범지들이 포타바루 범지에게 말했다.
“그대는 왜 사문 구담의 말을 듣고, 구담의 말마다 옳다고 인정하였는가?
구담이 말하기를,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들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확언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는데,
너는 왜 그 말을 옳다고 인정하였는가?
우리는 사문 구담의 이러한 말을 옳다고 하지 않는다.”
포타바루가 모든 범지들에게 대답했다.
“사문 구담은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말에 이르기까지, 그 말들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확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도 이 말을 옳다고 인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 사문 구담이 법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법으로써 말하며 법으로써 출리(出離)하시니, 내가 무슨 수로 이 지혜로운 말을 거역하겠는가?
사문 구담의 이렇게 미묘한 법의 말씀은 어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후 포타바루 범지는 또 다른 때에 상수사리불(象首舍利弗)과 함께 세존께 나아가 인사를 드린 뒤 한쪽에 앉았다.
상수사리불도 부처님께 예배하고 앉았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지난번 저의 숲에 계시다가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여러 다른 범지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왜 사문 구담의 말을 듣고 말마다 옳다고 인정하였는가?
구담이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그 말들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확언하지 않는다〉라고 했을 때,
너는 왜 이 말을 옳다고 인정하였는가?
우리는 사문 구담의 이런 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사문 구담은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말들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확언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나도 또한 이 말을 옳다고 인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 사문 구담께서 법에 의지하여 법에 머무르고, 법으로써 말하며 법으로써 출리(出離)하시니, 내가 무슨 수로 이 지혜로운 말을 어기겠는가?
사문 구담의 이렇게 미묘한 법의 말씀은 어길 수가 없다.’”
[결정기와 비결정기]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범지들이 ‘너는 왜 사문 구담의 말을 듣고, 그것을 옳다고 인정했는가?’라고 말했다는데, 이 말에는 잘못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법에는 결정기(決定記)와 불결정기(不決定記)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불결정기라고 하는가?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거나, 나아가 여래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는 말들이다.’
나도 이런 말을 설하나 확정지어 말하지는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법에도 맞지 않으며, 범행(梵行)의 처음도 아니며, 무욕도 아니며, 무위도 아니며, 적멸도 아니며, 지식도 아니며, 정각도 아니며, 사문도 아니며, 열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범지여, 나도 비록 이런 말은 하지만 확정지어 말하지는 않는다.
어떤 것을 결정기라고 하는가?
나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諦]ㆍ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苦集諦]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苦滅諦]ㆍ괴로움의 벗어남에 대한 진리[苦出要諦]를 확언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법에도 맞고 이치에도 맞으며, 그것은 범행의 처음이고, 무욕ㆍ무위ㆍ적멸ㆍ지식ㆍ정각ㆍ사문ㆍ열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설하고 확정지어 말한다.
[잘못되 견해의 다른 예들]
범지여,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일처세간(一處世間)에 대하여,
‘한결같이 즐겁다’고 말한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분명히 일처세간은 한결같이 즐겁다고 말하였는가?’
그는 내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일처세간의 한결같은 즐거움을 보아서 아는가?’
그는 내게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일처세간 모든 하늘의 한결같은 즐거움을 그대는 본 적이 있는가?’
그는 내게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저 일처세간의 모든 하늘과 너는 함께 앉고 일어나며, 서로 말하고 정진하며 선정[定]을 닦았는가?’
그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저 일처세간의 모든 하늘에서 한결같이 즐거워하는 자가 일찍이 너에게 와서,
〈너는 소행이 순박하고 곧으니, 마땅히 저 한결같이 즐거운 하늘에 태어날 것이다.
나도 소행이 순박하고 곧았기 때문에, 저기에 태어나 즐거움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는 내게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너는 능히 네 몸에서 생각을 일으켜, 신체가 구족하고 모든 근(根)을 빠짐없이 갖춘 다른 4대의 몸을 변화로 만들 수 있겠는가?’
그는 내게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어떤가? 범지여, 저 사문 바라문의 말을 성실하고 법에 맞는다고 하겠는가?”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것은 성실하지도 않고 법다운 말도 아닙니다.”
[음녀가 사는 곳의 비유]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나는 저 단정한 여인과 서로 정을 통했다’고 하면서,
그 음녀를 칭찬하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그 여자를 아는가? 어디에 있는가? 동쪽ㆍ서쪽ㆍ남쪽ㆍ북쪽, 어디에 있는가?’
그는 대답했습니다.
‘모른다.’
‘너는 그 여자가 사는 토지ㆍ성읍ㆍ촌락을 아는가?’
‘모른다.’
‘너는 그 여자의 부모와 성명을 아는가?’
‘모른다.’
‘너는 그 여자가 찰리 종족의 여자인지 바라문ㆍ거사ㆍ수다라의 여자인지 아는가?’
‘모른다.’
‘너는 그 여자가 키가 큰지 작은지, 뚱뚱한지 여위었는지, 피부가 검은지 흰지, 얼굴이 고운지 미운지를 아는가?’
‘모른다.’
어떻습니까? 범지여, 이 사람의 말은 성실합니까?”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빈 방에 사다리를 세우는 것의 비유]
“범지여, 저 사문 바라문도 이와 같아서 성실하지 않다.
범지여, 그것은 마치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사다리를 빈 땅에 세울 때 다른 사람이 물었다.
‘사다리를 세워 무엇 하려 하는가?’
그는 대답했다.
‘나는 강당에 올라가려고 한다.’
‘강당이 어디에 있는가?’
‘모른다.’
어떤가? 범지여, 저 사다리를 세우는 사람이 어찌 허망하지 않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는 진실로 허망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문 바라문도 그와 같아서 허망하고 진실이 없다.”
[한마음으로 생각을 오로지 하면 지혜가 증광한다]
부처님께서 포타바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말했다.
‘나의 색신 4대(大)ㆍ6입(入)은 부모가 낳아 젖을 먹여 기르고 의복으로 장엄한 것으로서 무상하고 마멸한다. 이것을 나[我]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염오(染汚)라 하고 청정(淸淨)이라 하며 득해(得解)라 한다.
그대는 혹 생각할 것이다.
‘염오법은 멸할 수 없고 청정법은 생기게 할 수 없어 항상 괴로움 가운데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염오법은 멸하여 다할 수 있고, 청정법은 나게 할 수 있으며,
안락한 곳에 살면 환희하고 애락(愛樂)하며,
한마음으로 생각을 오로지 하면 지혜가 증광(增廣)하기 때문이다.
범지여, 나는 욕계천ㆍ색계천ㆍ공처천ㆍ식처천ㆍ불용처천ㆍ유상무상처천을 염오라 말하고, 또한 청정이라 말하며, 또한 득해(得解)라 말한다.
그대는 혹 생각할 것이다.
‘염오법은 멸할 수 없고 청정법은 생길 수 없어, 항상 괴로움 가운데 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왜냐하면 염오법은 멸할 수 있고, 깨끗한 법은 생기게 할 수 있으며,
안락한 곳에 살면 환희하고 애락하며,
한마음으로 생각을 오로지 하면 지혜가 증광하기 때문이다.”
[모든 세계의 몸을 동시에 받을 수는 없다]
그때 상수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욕계(欲界) 사람의 몸으로 4대(大)와 제근(諸根)이 있을 때,
또한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공처ㆍ식처ㆍ불용처(不用處)ㆍ유상무상처천의 몸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욕계천의 몸으로 있을 때,
또한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색계천의 몸, 공처ㆍ식처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유상무상처천의 몸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색계천의 몸으로 있을 때,
또한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색계천의 몸, 공처ㆍ식처ㆍ무소유처ㆍ유상무상처천의 몸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나아가 유상무상처천의 몸으로 있을 때,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욕계천의 몸ㆍ색계천의 몸ㆍ공처ㆍ식처ㆍ무소유처천의 몸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상수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욕계 사람의 몸으로 4대와 모든 근이 있다면,
그때엔 바로 4대와 모든 근만 있는 욕계 사람의 몸이 있을 뿐이지,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과 공처ㆍ식처ㆍ무소유처ㆍ유상무상처천의 몸은 아니다.
그와 같이 나아가 유상무상처천의 몸이 있을 때에는,
바로 유상무상처천의 몸이 있을 뿐,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과 공처ㆍ식처ㆍ무소유처천의 몸은 없다.
[우유의 비유]
상수(象首)여, 비유하면 우유와 같다.
우유가 변하여 낙(酪)이 되고 낙은 생소(生酥)가 되며,
생소는 숙소(熟酥)가 되고 숙소는 제호(醍醐)가 되는데, 제호가 제일이다.
상수여, 우유로 있을 때는, 오직 우유라고 이름하지 낙이나 소나 제호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제호가 되었을 때, 다만 제호라 이름하지 우유라고 이름하지 않고 낙이나 소라고도 이름하지 않는다.
상수여, 이것도 그와 같다.
만일 욕계 사람의 몸으로 4대와 모든 근이 있을 때에는,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나아가 유상무상처천의 몸은 없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유상무상처천의 몸일 때에는,
오직 유상무상처천의 몸이 있을 뿐,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과 나아가 무소유처천의 몸은 없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몸은 동시에 있을 수 없다]
상수여,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과거의 몸으로 있을 때, 미래와 현재의 몸도 동시에 있느냐?
미래의 몸으로 있을 때, 과거와 현재의 몸도 동시에 있느냐?
현재의 몸으로 있을 때, 과거와 미래의 몸도 동시에 있느냐?’
만일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상수가 여쭈었다.
“만일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과거의 몸이 있을 때는 다만 이 과거의 몸뿐이며, 미래나 현재의 몸은 없다.
미래의 몸이 있을 때는 다만 이 미래의 몸뿐이며, 과거나 현재의 몸은 없다.
현재의 몸이 있을 때는 다만 이 현재의 몸뿐이며, 과거나 미래의 몸은 없다.’”
“상수여, 이것도 그와 같다.
욕계 사람의 몸으로 4대와 모든 근이 있을 때에는,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나아가 유상무상처천의 몸은 없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유상무상처천의 몸으로 있을 때에는,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과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과 나아가 불용처천의 몸은 없다.
또 다음으로 상수여,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너는 일찍이 과거에 멸했던 적이 있는가?
미래에 마땅히 태어날 것인가?
지금 현재에 있는가?’
만일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마땅히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상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일찍이 과거에 멸했던 적이 있다. 없었던 것이 아니다. 미래에 마땅히 태어날 것이다.
태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에도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
[바라문이 부처님께 계를 받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상수여, 이것도 그와 같다. 욕계 사람의 몸으로 4대와 모든 근이 있을 때에는,
욕계천의 몸과 나아가 유상무상천의 몸은 없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유상무상천의 몸이 있을 때에는,
4대와 모든 근이 있는 욕계 사람의 몸과 욕계천의 몸과 나아가 무소유처천의 몸은 없다.”
그러자 상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제가 정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때 포타바루 범지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도 집을 나와 부처님 법 가운데에서 계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학(異學)이 집을 나와 내 법 가운데서 도를 행하고자 한다면,
우선 넉 달 동안 관찰하여 여러 사람의 뜻에 맞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집을 나와 계를 받을 수 있다.
비록 이런 법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사람을 보아 할 뿐입니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이학이 집을 나와 부처님 법 가운데서 계를 받고자 한다면,
우선 넉 달 동안 관찰하여 여러 사람의 뜻에 맞아야 하고,
그런 뒤에 집을 나와 계를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 능히 부처님 법 가운데서 4년 동안 저를 관찰하게 하고, 여러 사람의 뜻에 맞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뒤에 집을 나와 계를 받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아까 그대에게 비록 그런 법이 있다 하더라도, 마땅히 그 사람을 보아서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범지는 곧 집을 나와 정법 가운데서 계를 받았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견고한 믿음으로 범행을 깨끗이 닦아 현세에서 몸소 깨달음을 얻었다.
생사를 이미 다하고 할 일을 이미 다 마쳤으며, 후생의 목숨을 받지 않게 되는 아라한이 되었다.
그때 포타바루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