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5(월)
히12:1-11. 우리는 죄와 싸웠지만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았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훈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가 책망하실 때 낙심하지 마라.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연단하시고. 아들로 받으신 사람들마다 채찍질 하신다.”(히12:5-6)
26.
1988년 대구에서 살았습니다. 교회는 서부주차장 근처의 송현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어떤 일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교육전도사님 부부가 집 마당에서 집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도사님 집 옆이 교회였는데 교회 외부 2층 난간에서 목사님이 전도사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려다 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나는 교사였습니다. 무슨일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나는 그곳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갑자기 그 시간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전도사님은 주중에 서울 총신에서 수업을 듣고 주말에 내려와서 사역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전도사님과 사모님은 고생이 심해서 얼굴에 쓰여있었습니다. 목사님의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젊은 전도사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전도사 시절 겪는 고생과 어려움을 다 이해한다는 표정, 잘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 사역자로서 통과의례이니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의 표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오늘은 이해가 됩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특히 사역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안에 뿌리 뽑아야 하는 것이 있으면 주께서 친히 뽑으시고, 치유해야 할 것이 있으면 주께서 친히 수술하셔서 치료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항하고 도망가봐야 주님의 손길은 피할 수 없습니다. 고난만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횃불은 이 부분에서 사역 멘토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친히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재학 중에 그리고 졸업 후 내 안에 처리하지 못한 아픔들로 인하여 조용히 혼자 지냈습니다. 동문들과 교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10주년을 준비하며 졸업후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몰랐던 숱한 사연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지내고 있는 분들도 계시고요. 이 이 고통은 상대적인 것일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고통이 아니지만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고통이 됩니다. 사역으로 인해서, 건강, 재정, 가정, 관계등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 훈련받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역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통과의식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소망으로 다가옵니다.
“연단을 견뎌내십시오. 아버지가 연단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아들이 받는 모든 연단을 여려 분이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사생자며 아들이 아닙니다.”(히12:7-8) 이들로 인정을 받았으니 아들로서 살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라면 우리가 받는 고난을 기쁨으로 통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잠시 연단하시만 아버지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도록 연단하십니다.”(히12:10) 이것을 통해 연단된 우리에게 의로운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신뢰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모든 짐과 얽메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합시다.(히12:1)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습니다.(히12:2)
그러니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을려고 합니다. 그분은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내가 겪는 시험을 통과하신 분입니다. 나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