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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9권[1]
[낙포 화상] 落逋
협산夾山의 법을 이었고, 예주澧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원안元安이니, 봉상부鳳翔府 인유麟游 사람으로서 성은 담淡이었다. 어릴 적부터 기양歧陽의 회은사懷恩寺에서 형인 우祐 율사에게 공부를 배웠는데, 경經과 논論에 이르기까지 해박하게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처음에 취미翠微를 뵙고, 다음에 임제臨濟를 참예하여 그들 각각에게서 얻은 바가 있었다. 나중에 협산夾山의 소식을 듣고 곧 예양으로 가서 좌구를 펴려는데, 협산이 말했다.
“여기에는 남는 밥이 없으니, 밥 짓는 앞치마를 펼 필요가 없느니라.”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둘 곳이 없습니다.”
협산夾山이 다시 말했다.
“지금이냐? 적聻!”
선사가 말했다.
“지금은 아닙니다.”
“어디서 이런 소식을 얻었는가?”
“이런 것 따윈 없습니다.”
“이런 것이라 해도 여전히 노승에게 짓눌리는 것이다.”
“학인學人 역시 화상이 계신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방 안에 노승이 없겠도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림자조차 그리지 못합니다.”
이에 협산夾山이 선사를 찬탄했다.
그대는 내 마음 알기를 손바닥 가리키듯 하고
종자기鍾子期는 백아伯牙의 거문고를 들을 수 있구나.
선사가 협산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종풍宗風을 흠모하였습니다. 한 말씀 내려 주십시오.”
협산이 말했다.
“눈앞에 법이 없느니라.”
“비껴가지 마십시오.”
이에 협산夾山이 말했다.
“만만縵縵 사리闍梨야, 산과 개울이 각각 달라 그대 마음대로 천하 사람의 혀끝을 자르지만, 혀 없는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야 어찌하겠는가? 그대는 다만 살인도殺人刀가 있는 것만 알 뿐 활인검活人劍은 없구나. 노승에게는 살인도도 있고 활인검도 있다.”
“어떤 것이 화상의 활인검입니까?”
협산이 대답했다.
“푸른 산에는 검을 걸지 않고, 검을 걸면 아는 이가 없느니라.”
선사가 또 물었다.
“부처와 마魔가 미치지 못하는 곳은 학인의 본분의 경지境地가 아닙니다. 어떤 것이 학인의 본분의 경지입니까?”
협산이 대답했다.
“촛불이 천 리 밖의 형상을 밝히는데, 어두운 방의 노승은 미혹하구나.”
선사가 또 물었다.
“아침 해는 이미 떠올랐고, 저녁달이 아직 돋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협산이 대답했다.
“용이 여의주를 물었건만 노니는 고기는 돌아보지도 않느니라.”
선사가 이 말을 듣고 갈 곳을 잊은 채, 협산에 머물러 몇 해를 모시면서 곤고로움을 꺼리지 않고 날마다 오묘함을 참구하였다. 협산이 세상을 떠나매 처음으로 낙포선원落浦禪院을 개당하고, 나중에는 소계蘇溪로 옮겨 살았다.
선사가 언젠가 상당하여 말했다.
“대체로 도를 배우는 데에는 자기의 종지宗旨를 먼저 가려내어야 비로소 기연機緣에 임하여 실수를 면할 수 있다. 봉망鋒芒)이 드러나기 전에는 옳다 그르다가 도무지 없는데, 한순간 보고 듣는 작용을 일으키면 문득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생기고, 오랑캐가 오고 한족이 가며, 4성姓이 뒤섞여 살면서 제각기 친한 이를 가까이한다. 시비가 뒤섞여 일어나 마침내 현묘한 관문을 굳게 닫히게 하고 의식의 자물쇠가 열리지 않게 하며, 의혹의 그물에 얽혀 지혜의 칼만이 겨우 자를 수 있게 된다. 만일 그 자리에서 뚜렷이 보여 주지 않으면 미혹한 무리들이 어찌 돌아갈 곳을 알겠는가? 만일 큰 작용이 활연히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당장에 모든 소견을 없애라.소견의 작용이 모두 사라지면 어두운 안개가 끼지 않고 지혜가 환하게 비치어 다시는 현상도 현상 아님도 없게 되리라.
요즘의 학인들이 그들 눈에 띄는 것에 모두 걸리는 까닭은 대체로 남의 헤아림에 의해서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니, 남의 헤아림에 포섭되어 판단하므로 한 치도 발을 옮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보는 것은 물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듣는 것은 소리를 벗어나지 못하며,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몸의 촉감과 뜻의 법진法塵도 그와 같으니라. 설사 6근根의 문턱이 모두 정결하게 되었더라도 자기의 일을 훤히 밝히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을 것이요, 다만 자기를 밝히기만 하고, 눈앞의 일을 밝히지 못하면 이 사람은 한쪽 눈만을 갖춘 것이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과 좋고 싫음과 활달함과 얽매임을 벗어나 자유롭게 되지 못하면 매우 가엾은 이라 하노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생사를 떠날 수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물에 집착하여 생명을 이어가기를 구하면 하늘 풍악의 묘함을 듣지 못하느니라.”
“4대가 어디서 생깁니까?”
“맑은 물은 본디 파도가 없지만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인다.”
“파도는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물입니까?”
“흐리지도 않고 맑지도 않으며 고기나 용이 마음껏 뛰느니라.”
“어떤 것이 한 창고에 다 거두지 못하는 것입니까?”
“비가 와야 3초草가 수려해지지만 한 조각 옥은 본래부터 빛나느니라.”
“한 터럭이 큰 바다를 다 삼키는데, 거기서 무슨 말을 더 하시겠습니까?”
“집 안에 백택도白澤圖가 있으니, 반드시 그러한 요괴는 없을 것이니라.”
나중에 보복保福이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집 안에 백택도가 없어도 그러한 요괴는 없으리라.”
“응연凝然할 때는 어떠합니까?”
“장마철 우레가 계절에 맞춰 울려 멧부리를 흔들고, 동면하던 벌레를 놀라게 하느니라.”
“천만 가지 운동이 그 응연凝然과 다르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신령한 학은 푸른 허공 밖으로 날아갔는데, 둔한 새는 둥우리를 떠나지 못하느니라.”
“어떠합니까?”
“백발노인이 소년에게 절을 하니, 온 세상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느니라.”
선사에게 신검가神劍歌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기이하여라, 신기한 검이여. 진실로 기이하니
예부터 구하고자 하는 이 얻은 적 드물다.
갑匣에 있을 때에는 광채가 없다 말하지만
활용해 봐야 비로소 점점 빛이 더함을 깨달으리.
망설임을 깨고 의심을 없애니,
심담心膽을 장대하게 하고 정신과 자세를 안정시킨다.
6적이 이로 인해 부서지니
8만 번뇌가 모두 떨쳐진다.
삿된 무리를 베어 버리고 요망한 사귀를 소탕하니
생사生死와 영고榮枯가 일제히 결단된다.
석 자의 신령한 뱀이 푸른 못을 덮고
한 조각 맑은 광채 싸늘한 달에 비친다.
어리석은 사람이 칼을 물속에 빠뜨려서 그것을 찾으려 뱃전에 표시하고는
흐린 물에 분주히 헤매면서 공연空然히 설치나니
맑은 근원을 내버려두고 혼탁한 파도를 좇으니
어찌 신검이 흐름을 따르지 않는 줄 알리오?
다른 이의 검은 피비린내를 띠지만
나의 검은 신령한 울음소리를 머금는다.
다른 이의 검은 사람의 생명을 해치지만
나의 검은 생명들을 구제한다.
군자가 얻으면 너와 나의 차별을 여의고
소인이 얻으면 저절로 생명을 가벼이 여긴다.
저들은 나의 검을 쓰려 하지 않지만
세상의 높고 낮음이 언젠가는 평정되리라.
신검의 공덕은 다 기록하지 못하나니
마의 위협을 물리치고 생사를 결정짓는다.
얻지 못한 이는 쉬운 일도 어려워지지만
검을 얻은 이는 어려움이 도리어 쉬워진다.
펴면 법계 안에 두루 미치고
거두면 한 먼지 속으로 돌아간다.
만일 이 검으로 건곤乾坤을 진압하면
사방 어디에도 뭉게구름 일지 않으리.
복선福先이 이를 들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칼집 속에 든 검과 칼집에서 나온 검을 그대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신 말했다.
“우선 ‘갑에서 나온 검을 노형과 더불어 따져 봅시다’ 하라. 알겠는가?”
어떤 이가 물었다.
“여러 성인들이 그렇게 오셨으니, 무엇으로 공양하오리까?”
선사가 대답했다.
“촌 노숙이 석장을 짚었으나 바라문은 아니니라.”
“서천에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만 전하여 피차가 함축된 언사를 드리우지 않는다고 하니, 누가 그 참뜻을 아는 자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촌 노인의 문전에서는 조정의 일을 의논하지 않느니라.”
“조정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특별한 이를 만나지 않으면 끝내 주먹을 펴지 않느니라.”
“어떤 사람이 조정에서 오지 않았다 하면 그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동떨어진 근기는 부질없이 눈을 마주친다.”
“어떤 것이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지도 않고 계를 지키지도 않느니라.”
“출가하지도 않고 계를 지니지도 않은 지 얼마나 됩니까?”
“허공을 쪼개어 가려 보아라.”
“지금은 어떠합니까?”
“그대에게 거짓으로 배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 망라하지 못합니다.”
“그대가 거듭 그리 말하도록 놓아두지 않겠다.”
“어떤 것이 거룩한 사람의 모습입니까?”
“시방에 자리 잡고 앉아서 고개도 까딱하지 않느니라.”
“활짝 트인 세계인데 어째서 눈앞의 법을 가리지 못합니까?”
“먼동이 트기 전에는 사람들이 깨어나려고 하지만, 날이 환히 밝은 뒤에는 광명을 대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경지에 이르기를 미루지는 않습니까?”
“이르니 못 이르니 따위의 말은 말고 그저 나에게 말해 보아라.”
“스님의 종지를 논박할 수 없습니다.”
“논박하지 않으면 가까워지느니라.”
“범부와 성인이 이르지 못하는 곳은 묻지 않겠습니다. 범부와 성인이 다하지 못한 곳은 어떠합니까?”
“사자 굴에 다른 짐승이 없고, 코끼리 가는 곳에 토끼의 자취가 없느니라.”
“깜짝하는 사이에 문득 보일 때는 어떠합니까?”
“새벽 별이 아침 빛을 밝힌다 해도 어찌 태양이 빛나는 것과 같으랴?”
“어떤 것이 본래의 것입니까?”
“한 톨의 씨앗이 밭에 있으니, 김을 매지 않아도 싹이 절로 빼어나느니라.”
“계속해서 김을 매지 않으면 풀 속에 묻히지 않겠습니까?”
“살찐 뼈대는 땔감과는 다르고, 피는 끝내 값진 곡식이 되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창문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대는 서리를 겪어도 추워하지 않느니라.”
그 스님이 다시 물으려는데, 선사가 말했다.
“다만 바람 치는 소리만 들을 뿐, 몇천 개의 대나무인 줄은 알 수 없느니라.”
“부사의한 곳에 이르렀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푸른 산은 항상 걸음을 옮기나 흰 달은 잠시도 자리를 바꾸지 않느니라.”
“대중이 구름같이 모였습니다. 스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주먹을 펴서 옛 보물을 밝히고, 주먹을 쥐어서 오늘을 감사하느니라.”
“어떤 것이 사문의 행입니까?”
“부처를 만나면 당장에 앉느니라.”
“갑자기화상을 만났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그대가 올 때에는 노승은 없을 것이니라.”
“해가 뜨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곧은 나무에 들쭉날쭉한 가지가 없어서 영양이 뿔을 걸기 어려우니라.”
“어떤 것이 운수雲水의 뜻입니까?”
“달덩이 하나가 오만 가지 형상을 골고루 비추느니라.”
“달이 움직이는 일은 어떠합니까?”
“못 속에는 그림자가 없고 문 밖에 진귀한 보물을 두지 않느니라.”
“조사의 뜻과 경전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무리해서 출중한 이는 뿔을 쓰지 않고, 세 가지 다른 운은 같게 할 수 없느니라.”
“의기가 투합하려면 구절에 의지해야 하는데, 이 어찌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매우 뛰어난 기술은 바다 밑을 재나니, 3상湘이 깊다 해도 잔질[酌]을 할 수 있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움직임은 법왕의 싹이요, 고요함은 법왕의 뿌리다’ 했는데, 싹은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법왕의 뿌리입니까?”
이에 선사가 불자를 일으켜 세우니, 스님이 말했다.
“이 역시도 싹입니다. 어떤 것이 법왕의 뿌리입니까?”
“용이 동굴에서 나오지 않는데 누가 그를 어찌하겠는가?”
“세계가 드넓어 끝이 없다는데 어째서 자기를 용납하지 못합니까?”
“마지막의 한 구절이라야 비로소 굳은 관문에 이르고 요긴한 길목을 봉쇄하면 범부도 성인도 통하지 못한다. 천하 사람들이 마음껏 기뻐 즐기더라도 노승은 홀로 상관치 않으리라.”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장주莊周와 나비 둘 다 꿈이라 하는데, 꿈이 어디서 오는지 그대는 말해 보아라.”
“외로운 등불이 스스로 비추지 못할 때 방 안의 일은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바늘과 실이 움직일 때는 사람들 모두 알지만 양쪽에서 뚫고 지나는 것은 도리어 아는 사람이 없다.”
“가득 찬 용궁은 거두지 못하는데 한 티끌마다 밖의 일은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세 번 뛰어서 광주리를 벗어났다 하나 구름 밖에 있는 이만 못하니라.”
“학인學人은 출사하여 귀히 되는 것을 소중히 여기지는 않습니다만 이대로 일제히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가거라. 그대는 나의 말뜻을 알지 못하느니라.”
“세 번 뛰는 것 외의 일은 어떠합니까?”
“범을 쏘아 맞추지 못하니 공연히 몰우전[沒羽箭:깃털 없는 화살]만 허비하느니라.”
“만 가지 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물을 건드려 물결을 일으키니, 그 안에서 그림자를 보기 어려우니라.”
“우두牛頭가 4조를 만나기 전에는 백 가지 새가 꽃을 물어다 공양을 올렸는데, 만난 뒤에는 어째서 오지 않았습니까?”
“현묘한 강에 눈꽃 같은 흰 파도가 일고, 불꽃 없는 외로운 등불은 어두운 밤을 밝힌다.”
선사가 부구가浮漚歌를 지었다.
가을날 비가 내려 뜰 안에 물이 고이니
물 위에 둥실둥실 물거품이 이네.
앞의 것 사라지면 뒤의 것이 생기어
앞뒤 서로 이으니 언제나 그치려나?
본래는 빗방울로 인하여 물거품 되었는데
다시금 바람 불어 거품이 도로 물이 된다.
거품과 물의 성품 다르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변하는 것에 따라 다르다고 여기네.
겉은 반짝이고 안은 비었으니
안팎이 영롱하여 보배 구슬 같도다.
맑은 파도에서는 있는 듯이 보이다가
움직이자 다시 없는 것 같구나.
있고 없고 움직이고 고요한 일 밝히기 어려우니
형상 없는 가운데 형상이 있네.
다만 거품이 물에서 생기는 줄만 알 뿐
물이 거품에서 생기지 않음을 어찌 알리오?
방편으로 이 몸을 거품에다 견주노니
5온을 허망하게 얽어서 거짓으로 사람 됐네.
5온이 공하고 거품이 거짓임을 알기만 하면
비로소 본래의 참됨을 보리라.
선사가 임종할 때 말했다.
“노승이 그대들에게 물어볼 일이 있다. 만약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두는 것이요, 만일 그것이 옳지 않다 하면 머리를 베어내고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 된다.”
이에 제1좌第一座가 말했다.
“청산에서는 발을 들지 않고 햇빛 아래에서는 등불을 들어 올리지 않습니다.”
이에 선사가 할을 하여 물리치며 말했다.
“나의 여기에는 대답할 사람이 없다. 대중 가운데 새로 온 이로서 통달한 이가 있거든 나와서 노승을 전송해다오.”
종從 상좌가 나서서 말했다.
“여기 이 두 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더 말해 보아라.”
“저는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대가 다 말할 수 있든 없든 상관치 않는다. 더 말해 보아라.”
“저에게는 시자가 없어서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할을 하여 물리치며 말했다.
“여러분, 일단 승당僧堂으로 돌아가라.”
그날 초저녁이 지날 무렵 선사가 시자侍者더러 종 상좌를 불러오게 하였다. 종 상좌가 올라와서 곁에 서니,
선사가 물었다.
“종 상좌는 몇 살인가?”
“28세입니다.”
“매우 어리구나. 잘 유지하도록 하라. 고향은 어디인가?”
“신주信州 사람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오늘의 일은 그대가 설파하여 노승의 뜻을 얻었다. 여기서 몇 해 동안 세상에 나와 학인을 제접했건만 한 사람도 오늘의 사리처럼 전송해 주는 이가 없었다. 작고하신 노승의 스승께서 처음 선자船子를 만났을 때, 선자께서 묻고 스승께서 대답한 인연을 가지고 내가 고쳐서 다음과 같이 송했느니라.
눈앞에 법이 없으나
뜻은 눈앞에 있나니
그것은 눈앞의 법이 아니어서
귀와 눈으로는 미칠 바 아니라네.
이 네 구절에서 어느 것이 중심이 되는 주요한 구절인가?”
이에 종 상좌가 머뭇거리고 있으니, 선사가 말했다.
“속히 일러라. 속히 일러라. 말뚝의 아랫부분이 차가우니, 헛되게 하지 않으려거든 자취를 남기지 마라.”
종 상좌가 말했다.
“실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가슴을 치면서 곡을 하였다. 종 상좌는 내려오자마자 승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떠나서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선사가 이보다 앞서 말했다.
“자비의 배를 푸른 물결 위에 띄우지 못했는데, 검협劍峽에서는 공연히 목아木鵝를 날려 보내는구나.”
선사가 광화 2년 무오戊午 12월 2일에 열반에 드니, 춘추는 65세요, 승랍은 46세였다.
[반룡 화상] 盤龍
협산夾山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에 사셨다. 선사의 휘諱는 가문可文이다. 처음에는 반룡산에서 살다가 나중에는 상람上藍에서 살았다.
어떤 스님이 낙포落浦에게 물었다.
“한 거품이 일기 전에 어떻게 물안개를 가립니까?”
낙포落浦가 대답했다.
“배를 움직여 물의 형세를 살피고 노를 들어 물결을 가른다.”
그 스님이 이 일을 들어 다시 선사에게 물었다.
“한 방울의 거품이 일기 전에 어떻게 물안개를 가립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배를 움직여도 물을 가릴 수 없고, 노를 들면 근원을 잃느니라.”
[소요 화상] 逍遙
협산의 법을 이었고, 고안高安에서 살았다. 행장을 보지 못해 생애를 기록할 수 없다.
어떤 이가 물었다.
“이글거리는 도가니 안에 무엇을 삶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부처도 삶고 조사도 삶느니라.”
“부처와 조사를 어째서 삶습니까?”
“업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니라.”
“무엇을 업이라 합니까?”
“부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는데, 어째서 부처도 있고, 중생도 있습니까?”
“긍정하면 같은 대중이 달라지고 긍정하지 않으면 다른 대중이 같아진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분명코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했는데,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것입니까?”
“식성識性은 동일하나 함께 쓰이는 법은 없다.”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있는 것을 알게 됩니까?”
“말로써 알아차리려 하면 그 경지에 들지 못한다.”
“어떤 것이 조사 중의 조사입니까?”
“그만두고 깨뜨리지 않으려 함은 밝은 사람이 있어 해결해 주기 때문이니라.”
선사가 수어垂語하였다.
“여러분은 모두 저쪽으로 가서 불을 쪼이라.”
그리고는 또 말했다.
“불이야 그대 마음대로 쪼여도 되지만 몸까지 태우지는 말라.”
이 말에 스스로 대꾸했다.
“법신法身이 4대大를 갖추었는데, 불을 쬐는 것은 어느 것이겠는가?”
다시 수어하였다.
“예전에는 조사의 법을 전했는데, 지금은 조사의 법을 전하지 않는다.”
[선동안 화상] 先洞安
협산夾山의 법을 이었는데, 행적을 보지 못해 그의 교화한 전말을 확인할 수 없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家風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금계金鷄는 새끼를 품고 은하수로 돌아가고, 옥토끼[玉免]는 새끼를 배고 자미紫微로 들어간다.”
“갑자기 손님이 오시면 무엇으로 대접합니까?”
“금 과일은 이른 아침에 원숭이가 따오고, 옥 꽃은 저녁에 봉황새가 물어온다.”
[황산 화상] 黃山
협산의 법을 이었고, 무주에 사셨다. 선사의 휘諱는 월륜月輪이고, 민중閩中 사람이다.
선사가 처음 협산夾山을 뵈니,
협산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민중 사람입니다.”
“노승을 아는가?”
“학인學人은 아셨습니까?”
이에 협산夾山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대는 우선 노승에게 짚신 값을 갚아라. 그런 뒤에 노승이 그대에게 강릉의 쌀값을 갚으리라.”
“그러시다면 도리어 화상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강릉의 쌀값이 얼마나 됩니까?”
이에 협산이 찬탄했다.
“그대는 사자후를 잘하는구나.”
선사가 처음으로 개당하고 시중하여 말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셔서 특별히 이 일을 제창하셨건만 그대들은 알지 못하여서 그저 밖을 향해 간절히 구하니 적수赤水에서 구슬을 찾고, 형산에서 옥을 찾는 격이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문으로부터 들어온 것은 보배가 아니니, 그림자를 잘못 알아 머리로 여기는 것이 어찌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하였느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양나라 궁전에서는 공덕을 베풀지 않았고, 위나라에서는 마음의 자취를 숨겼느니라.”
“어찌하여야 본래의 면목을 볼 수 있겠습니까?”
“옛 거울을 매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날이 새면 닭은 절로 우느니라.”
“종승宗乘의 한 구절 법문을 스님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단풍 든 봉우리 세상 밖에 우뚝 솟아 수려하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추워지누나.”
“어떤 것이 가사를 입고 할 일입니까?”
“돌 소가 물 위에 누웠으니, 자유롭게 움직이네.”
[소산 화상] 韶山
협산夾山의 법을 이었고, 북지北地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환보寰普이고, 실록實錄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를 알 수가 없다.
어떤 스님이 와서 절을 하고 일어나 섰으니, 선사가 말했다.
“큰 재능이 비천한 경지에 숨었구나.”
그 스님이 다시 한쪽으로 가서 섰으니, 선사가 또 말했다.
“동량棟梁의 재목이 못쓰게 되었도다.”
스님이 물었다.
“실제 진리의 경지에 어떻게 걸음을 옮겨야 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윽한 골짜기의 흰 구름, 백작白雀을 숨기니, 마음을 내어 깃들이려 할 때에는 산이 막혀 길을 잃는다.”
“날이 밝든 어둡든 소산은 그 속의 일을 빌리지 않는다.”
“조사의 뜻과 경전의 뜻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는 빌리십니까?”
“등불을 켠 뒤에는 말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앞으로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그림자를 막아서 밝은 달을 빌리니, 나침반을 들지 않는다.”
충천充天 포납布納이 소산에 이르니,
선사가 감별하기 위해 물었다.
“듣건대 그대에게 하늘을 찌르는 기개가 있다 하던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그대에게는 하늘을 찌르는 기개가 있다지만 나에게는 땅을 쪼는 송곳이 있다. 그대가 깃발을 들고 올라온다면 나는 송곳 막대를 들고 대항하리라. 그대가 만일 큰 바다를 들이마신다면 나는 수미산을 등에 업으리라. 위로 향하는 한 가닥 길을 빨리 일러라. 빨리 일러라.”
다음과 같이 세 차례 다그치자 비로소 말했다.
“밝은 거울이 대臺에 놓였으니, 스님께서 한번 비추어 보십시오.”
이에 선사가 할을 하고 말했다.
“죽은 물에는 고기가 없는데, 공연히 낚싯대를 드리웠구나.”
[서현 화상] 栖賢
석상石霜의 법을 이었다. 휘諱는 회우懷祐이며, 선유仙遊 사람이다. 구좌산九座山에서 공부를 하다가 나이가 차자 구족계를 받고 제방으로 다니던 끝에 보회普會의 문하에서 비밀한 진리를 은밀히 깨달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오로봉五老峰 앞의 구절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만고천추萬古千秋니라.”
“그렇게 하면 법손이 끊이지 않겠습니까?”
“머뭇거려서 누구에게 주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