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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2장
목사와 가장의 기도의 보호 아래 순종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교회와 가정
(찬송 시편 130편-악보는 맨 뒷장에)
2023-10-10, 화
맥락과 의미
디모데전서는 1차적으로는 목사인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오늘날에도 목사 직분자들이 이 성경의 가르침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2차적으로는 다른 성도들에게도 순종할 교훈을 많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특히 2장에서는 교회와 목사의 사명,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사명에 대해 가르칩니다. 목사는 이러한 가르침을 잘 전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이 가르침에 순종하여 가정과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1. 교회와 목사의 사명: 기도(1-7절)
2. 남자와 남편의 사명: 기도(8절)
3. 아내의 사명: 복종과 배움과 자녀 양육(9-15절)
1. 교회와 목사의 사명: 기도(1-7절)
1)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1-2절)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인 디모데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도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쫓겨나고 예수 믿는다고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그때 로마 황제는 많은 성도를 학살한 네로였습니다. 정말 기도해주고 싶지 않은 황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서를 쓴 지 한 두 해 후, 네로 황제 때 순교하였습니다. 그런 왕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왕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우리 나라, 내가 속한 회사, 사회의 중요한 지도자를 위해 기도합시다. 국민을 위해 기도합시다.
2절에서는 이렇게 기도하는 목적이 나옵니다. 성도들이 평화롭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안정되어야 합니다. 이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레미야 29장도 바벨론에 유배되어 가 있던 구약 성도에게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성읍이 평안해야 백성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렘 29:7).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사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웃 사랑이기도 합니다.
2)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3-7절)
원래 3,4절은 한 문장입니다. 기도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진리를 아는 데로 나아가는 것을 원하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받으실 만한 것이다”로 읽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한 부분을 이루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은 영원한 예정 가운데서 택하신 자들만을 구원해주시고 어떤 사람들은 버려둔다고 하십니다(롬 9:15,16).
따라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한 명, 한 명 다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서 원하시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이 본문의 뜻은 모든 인류, 모든 민족, 성별, 재산 등 차별하지 않고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우리는 어떤 개인을 구원하시기로 하나님께서 정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단순히 신뢰하며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 됩니다.
구원은 오직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합니다(5절). 7절에서, 나는 이방인을 가르치는 사도라고 하는 말로써 끝냅니다.
2. 남자와 남편의 사명: 기도(8절)
각 처에서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명령합니다. 성도들은 모여서 공적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곳곳에서 그리고 자기가 사는 곳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남자는 남편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남편의 중요한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손을 드는 것은 구약 성도가 기도하는 일반적 자세입니다. 오늘날 목사가 예배 중에 기도하거나 축도할 때 손을 드는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분노가 없이 기도하라고 합니다. 분노할 일이 있으면 겸손히 아뢰어서 화를 제거해야 합니다. 서로 분쟁하기보다는 기도하는 데 열중해야 합니다.
“거룩한”은 “성도”라는 뜻도 됩니다(행 2:27, 시 16:10). “성도”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결과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이 사람 안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로서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은 가정을 대표하는 가장으로서, 교회의 일원인 성도로서 하나님께 어려운 일을 아룁니다. 성도가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도를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항상 찬송과 함께 올려드립니다. 남자들이, 남편과 아버지로서 기도하여 가정을 지킵시다. 가정에 말씀을 공급합시다. 가장이 가정의 목사로 서길 바랍니다.
3. 아내의 사명: 복종과 배움과 자녀 양육(9-15절)
1) 거룩함과 지혜로 선행을 하며 자녀를 양육(9-10절, 15절)
9절: “이와 같이” 기도하는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을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과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머리카락에 금실을 넣어 땋거나, 옷과 몸에 보석을 걸치고 비싼 옷을 입은 여성을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사치스럽게 치장하는 여성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6장 마지막에 부유한 성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치스러운 옷은 자기를 과시하고, 다른 사람을 유혹하기도 합니다.
여자 성도들이 아름답게 꾸미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꾸며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아름답습니다. “소박함”은 “부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상한 것을 추구하는 것” 입니다. 자매들은 인격에 품위가 있어야 하고, 품위 있게 옷을 입어야 합니다. 정절(9절)은 성적인 순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실제적인 지혜를 말합니다. 15절에 “정숙”이라는 말로 나옵니다.
10절: 자매들이 가져야 할 아름다움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은 사람을 향한 “선한 행동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15절은 자매들의 아름다움은 믿음과 사랑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매들을 아름답게 합니다.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자매님들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삽니다. 마음이 공허해서 옷이나 다른 것으로 치장하는 여성들과 다릅니다. 자매님들의 아름다운 몸은 장식용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15절: 구원이 “해산함으로”, “해산함을 통해서” 옵니다. 해산은 자녀를 낳는 것뿐 아니라 양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 사람을 향한 사랑, 자기 영혼의 거룩함, 이 모든 좋은 것이 지혜롭게 절제하는 어머니로부터 자녀에게 흘러갑니다.
이미 구원 안에 들어와 있는 자매님들은 아름다운 삶과 자녀 양육을 통해 구원 안에서 자라갑니다. 자신의 몸을 화려한 것으로 치장하지 않고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사용하는 여러분이 진짜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몸매보다 경건한 후손을 선택한 여러분이 귀합니다. 좋은 직장과 돈 버는 일이 아니라 가정을 세우는 일에 헌신한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영웅들입니다.
15절의 자매들의 성품, 곧 “믿음, 사랑, 거룩함”은 목사의 성품인 “사랑, 믿음, 정절(거룩함)”과 같은 내용입니다. 아내와 어머니의 직분은 목사의 직분과 같이 귀중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거룩한 행실을 드러냅니다. 여자는 순종함으로 배워야 하며 가르치도록 허락을 받지 않습니다(12절).
2) 고요함 가운데 순종함으로 말씀을 배움(11-14절)
소박하고 지혜로운 것(8-10절), 믿음, 사랑, 거룩함으로 살며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도(15절), 그 사이에 말씀을 배우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11-14절).
11절: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에베소 교회 여자 성도들 가운데 자녀를 낳거나 양육하는 일도 하지 않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면서 가르치려 했습니다. 선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만 만들었습니다. 특히 그런 여성들에게 권면합니다.
교회에서 “조용히 배우라”의 “조용히”는 2절의 “평안한 생활”의 “평안한”과 같은 말입니다. 성도는 모든 사람과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면서 평안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남자들도 “조용히 일하여” 자기 가정을 부양해야 합니다(데살로니가후서 3:12). “조용함”은 남자와 여자 모든 성도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남자 성도도 교회에서 배울 때 조용히,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12절: 그런데 여자에게는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주관하는”, 곧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배하면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도가 남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종으로서 섬기라고 하셨습니다(마가복음 10:42-44, 에베소서 5:21). 그래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다 항상 지배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섬기면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여자에 대해서만 복종하라고 합니다. “여자는 남자를 주관하면서 가르치지 말라.” 그 이유는 무엇일가요?
13절: 하나님이 남자인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다음에 여자인 하와를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남자인 아담을 여자보다 먼저 창조하셨고, 아담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그 뒤에 창조된 하와에게 자기가 받은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남자가 말씀을 전하고 여자는 들어야 합니다. 또 아내인 하와는 남편을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고, “남편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14절: 또 아담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를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다시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세기 3:16)라고 새롭게 말씀하셨습니다.
타락 이전에도 남자를 먼저 되게 하셨고, 타락 이후에는 더욱 더 남자가 다스리는 위치에 있게 하셨습니다. 죄 때문에 이런 질서를 다시 더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어도 우리는 왜 여자는 교회에서 가르쳐서는 안 되는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며 가르치는 일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므로,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순종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목사, 장로, 집사 등 교회를 대표하여 사역하는 공적인 직분에 여성을 세우지 않습니다.
이 본문은 남편과 아내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여자”는 “아내”와 같은 뜻입니다. 아내는 남편 위에서 아래 사람에게 지시하듯이 가르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대화하고 말씀의 지혜를 나눕니다. 하지만 항상 남편이 최종 결정을 하게 하고 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약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아내가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 집사로서 일한다면 자기 남편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것은 가정의 질서를 해칩니다.
그러나 여성들도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여성 모임이나, 소그룹 모임을 인도하며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공적인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일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구약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데 쓰인 말입니다. 제사장은 율법을 가르치고 보존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 말씀의 임무를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맡겼습니다. 사도들은 목사를 세워서 말씀을 전수하게 하셨습니다. “가르친다”는 말의 특별한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사도가 가르친 말씀을 공적으로 가르치고 전수하는 일은 남자에게 맡겼습니다.
남자, 혹은 남편은 가르치면서 결코 위세를 부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종으로서 섬기며 가르쳐야 합니다.
남편은 가정의 전체적인 영적 틀을 만들고, 가족을 부양합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가정을 세웁니다.
아내는 가정에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고귀한 노동을 합니다. 또한 여성 자신도 구원을 얻습니다. 자녀를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여성 자신이 거룩한 백성으로 성장합니다.
4:16에서 목사가 복음을 잘 전할 때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교회와 목사의 기도와 말씀 전파를 통해 교회와 하나님 나라가 성장합니다. 모든 성도가 고요하고 단정한 가운데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장이 말씀을 공급하고 거룩한 기도를 하여 가정의 틀을 세웁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에 수고합니다. 이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순종합시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반드시 우리가 공동체로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만들어주십시다. 땅을 다스리며 평화를 누리게 하십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3절, “받으실 말한 것”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는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받으실 만한 것”은 구약에서 제사 제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할 때 쓴 단어입니다.
구약의 제사 중에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제사(속죄제와 속건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한 번에 영원히 드렸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속물로, 죄를 위한 제물로서 주셔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구약 제사 중,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는 지금 우리 교회가 계속 드립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입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받으실 만한 것”과 비슷한 단어가 1:15에 나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복음의 말씀을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하고, 그 중에 먼저, 우리 성도가 이 말씀을 받아들여 교회로 모였습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은 이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받으실 만한 제물을 드리기 원합니다.
<참고> 8절, “거룩한 손”
‘거룩하다’라는 뜻으로 여러 단어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호시오스’ (히브리어로 하시드)입니다. 이것은 성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행 2:27, 시 16:10). 구약에서 하나님의 은혜(헤세드)를 받은 결과로 나타나는 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거룩함(하시드)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3:34,35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거룩한 자입니다. 이사야 55:3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은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편 16:10에서 주의 거룩한 자(하시드)를 썩지 않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즉 그리스도를 썩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성도에 대한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시편 97:10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도(하시드)를 지키실 것을 찬양합니다. 시편 149:2,5,9에서는 성도(하시드)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입니다.
성도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 유튜브에서 “정영철 시편 130편”을 검색해서 들으며 연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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