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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비담심론 제7권
8. 정품(定品)[4], 선(禪)ㆍ무색(無色)의 세 가지 성취
[선(禪)ㆍ무색(無色)의 세 가지 성취]
지금부터는 선(禪)ㆍ무색(無色)의 세 가지 성취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알아야 한다. 미리욕(未離欲)은
미상응선(味相應禪)을 성취하고
아랫경지를 벗어나 윗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정선(淨禪) 등 여러 선정을 성취한다.
‘알아야 한다. 미리욕(未離欲)은 미상응선을 성취한다’라고 한 것은
만약 그 경지가 아직 욕망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 경지의 미상응선(味相應禪)을 성취함을 말한 것이다.
‘아랫경지를 벗어나 윗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정선(淨禪)등의 여러 선정 성취한다’고 했는데,
욕계의 욕망을 벗어나도 아직 범천(梵天)의 세계가 아닐 경우 거기에서 성취되는 선정은 정선(淨禪)의 여러 선 및 초선의 경지의 나머지 공덕을 성취한다.
그리고 범부는 미선과 상응하는 선정 및 정선을 성취하고, 성인은 세 경지의 선정을 모두 성취한다.
알아야 한다. 높은 경지에 머물면
아랫 경지의 무루선(無漏禪)을 성취한다.
방편으로 생한 공덕은
욕망을 떠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높은 경지에 머물면 아랫경지의 무루선(無漏禪)을 성취한다’라고 했는데,
성인이 범천(梵天) 위에 태어나면 무루의 초선과 그 밖의 무루삼매와 신통력 등 여러 공덕을 성취한다.
유루의 모든 공덕에는 생처(生處)의 속박이 있으나 무루는 속박되지 아니한다. 그런 까닭에 생처를 떠난다면 유루의 공덕을 버리게 된다. 그러나 무루는 그렇지 않다.
‘방편으로 생한 공덕은 욕망을 떠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는데,
이미 낮은 경지의 욕망에서 벗어나 성취하는 여러 가지 공덕에 대해서는 설명한 바다.
하지만 그것을 얻음은 현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현재 눈앞에 나타난다면 그것은 욕망을 벗어나 얻는 것이 아니라 방편으로 얻는 것이다.
이른바 천안(天眼)과 천이(天耳)의 지(智)는 무기의 성품인 까닭에 그것은 정(淨)ㆍ무루(無漏)ㆍ미상응(味相應)하는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그 세 종류의 선정을 얻을 때는 얻지 못하니, 방편을 지은 뒤에야 비로소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여섯 가지 신통력 가운데 두 가지는 무기(無記)이다. 그 이유는 해탈도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넷은 선(善)이다.
【문】이 모든 방편으로 얻는 공덕 가운데 어떤 것이 번뇌를 끊으며 어떤 것이 번뇌를 끊지 못하는가?
【답】
근본의 정초선(淨初禪)
이것은 역시 동일한 속박이니
번뇌를 끊을 수 없다.
무량심도 또한 그렇다.
‘근본의 정초선 이것은 역시 다 같은 속박이니 번뇌를 끊을 수 없다’라고 한 것은 근본의 정초선은 자기 경지의 번뇌의 한 속박에 얽매이는 까닭에 번뇌를 끊을 수 없으며, 다른 경지에서 세속도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버리고 떠날 수 있게 된다.
비유하면 몸이 묶인 사람이 스스로 포박을 풀 수 없는 것처럼 그 번뇌의 경우도 역시 이와 같다.
자기 경지의 선(禪)의 맛에 맛들인 까닭에 버리고 떠날 수가 없으니,
마치 친한 친구는 비록 자기만 못한 사람일지라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그 선의 경지도 역시 이와 같다.
만약 여러 번뇌를 근본선으로 대치한다면 그 번뇌는 끊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끊음을 얻을 수 없다면 그 번뇌는 대치할 수 있는 번뇌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무루선으로 번뇌를 대치하며, 유루선의 경우는 방편으로 번뇌를 끊는 것이다.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이와 같다.
‘무량심도 또한 그렇다’라고 했는데, 무량심으로는 번뇌를 끊지 못한다. 그러나 중생들을 연하기 때문에 법상(法相)65)을 말한다면 번뇌를 끊는다. 다시 4무량심(無量心)은 해탈도에 포함되기에 무애도에 속한다면 번뇌를 끊을 수 있다.
다시 현재를 연하고 있기에 삼세를 연한다면 번뇌를 끊을 수 있다. 잠시 번뇌를 다스리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자무량심(慈無量心)은 노여움을 끊는다”라고 경전에서 말씀하셨다.
잠시 다스린다고 함은 여러 결박이 잠시 쉬게 된다는 것이니, 이는 마치 빚 갚을 기한을 늦추는 것과도 같다.
알아야 한다. 다섯 가지 배사와
여덟 가지 승처(勝處)와
열 가지 일체처는
번뇌를 끊을 수 없다.
공처(空處)와 식처(識處)의 일체처 및 비상비비상처의 배사 등, 이 법들은 근본선에 속하는 것으로서 번뇌를 끊을 수 없으니, 이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멸수상(滅受相)의 배사는 마음과 서로 다르기 때문에 번뇌를 끊지 못한다. 색의 배사와 승처와 일체처도 역시 번뇌를 끊지 못한다. 독자적인 모습의 경계이기에 끊지 못하니, 번뇌를 끊는 것은 공통된 모습의 경계에서 끊는 것이지 독자적인 모습의 경계에서 끊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의해사유(意解思惟)인 까닭에 끊지 못하니, 진실사유가 번뇌를 끊는 것이지 의해는 아니다. 또한 가상사유(仮想思惟)인 까닭에 끊지 못하니, 불가상사유가 번뇌를 끊는 것이다. 또한 일의 경계이기 때문에 끊지 못하니, 비사사유(非事思惟)66)가 번뇌를 끊는 것이다. 또한 해탈도에 포섭되기 때문에 끊지 못하니, 무애도에 속하는 경계만이 번뇌를 끊는 것이다.
스물세 가지 종류의 정수(正受)가 있으니, 여덟 가지는 미상응(味相應)이고 여덟 가지는 정(淨)이고 나머지 일곱 가지는 무루(無漏)이다.
【문】이 삼매의 하나하나는 몇 종류의 원인이 있는가?
【답】
이른바 무루정(無漏定)의
하나하나는 일곱 종류의 원인이 되며
미상응(味相應)의 인은 하나이고
이른바 정(淨)도 또한 그렇다.
‘이른바 무루정의 하나하나는 일곱 종류의 원인이 된다’라고 한 것은
무루의 초선의 경우 무루의 초선에 있어서 상응인과 공유인(共有因)과 자분인(自分因)이 되며,
무루의 세 가지 선정과 세 가지의 무색정(無色定)에서 자분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무소유처에 이르기까지도 마찬가지이니, 이는 총체적인 설명이다.
초선에 포섭되는 길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수신행(隨信行)과 수법행(隨法行)과 신해탈(信解脫)과 견도(見到)와 시해탈(時解脫)과 불시해탈(不時解脫)이 그것이다.
수신행의 도는 여섯 가지 원인이 되고
수법행의 도는 세 종류의 원인67)이 되고
신해탈의 도는 네 종류의 원인68)이 되고
견도의 도는 두 종류의 원인69)이 되고
시해탈의 도 역시 두 종류의 원인이 되고
불시해탈의 도는 곧 불시해탈의 원인이 된다.
‘미선의 상응인은 하나가 된다’라고 한 것은
미선과 상응하는 초선은 다름 아닌 미선과 상응하는 초선의 원인이 됨을 말한 것이다.
초선의 원인은 서로 닮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경지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며 인과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 미선과 상응하는 선정에 다섯 가지 종류가 있으니,
고제(苦諦)를 밝혀서 번뇌를 끊는 선정에서부터 도를 닦아서 번뇌를 끊는 선정에 이르기까지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고제를 밝혀서 번뇌를 끊는 선정은 고제를 밝혀 끊는 것의 원인이 된다.
일체가 모두 이와 같다.
‘정선도 또한 그렇다’라고 한 것은
정선과 상응한 초선의 선정은 정선과 상응한 초선의 원인이 됨을 말한 것이다.
미선과 상응하는 것은 아니고 무루선과 상응한 경계도 아니다. 그것은 경계가 서로 닮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경지의 정선의 원인도 아니니, 자기 경지에 결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선(淨禪)의 초선에 네 가지 종류가 있으니,
퇴분(退分)과 주분(住分)과 승분(勝分)과 결정분(決定分)이다.
여기서 퇴분은 네 가지 원인이 되고 주분은 셋, 승분은 둘의 원인이 된다.
결정분은 오직 결정분의 원인이 될 뿐 다른 것의 원인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뒤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경지도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문】그 하나하나는 차례로 몇 종류를 일으키는가?
【답】
무루의 선과 무색정(無色定)은
역순과 순서와 초월과 차제가 된다.
차제에 여섯 가지를 일으키고
또 일곱ㆍ여덟ㆍ아홉ㆍ열 가지가 된다.
무루의 초선 다음에는 여섯 종류를 일으키는데, 자기 경지의 정선 및 무루이다.
제2선 및 제3선의 경우도 역시 이와 같다.
무루의 무소유처(無所有處) 다음에는 일곱 가지를 일으키는데, 자기 경지의 두 가지와 윗경지의 한 가지와 아랫경지의 네 가지가 그것이다.
무루의 제2선 다음에는 여덟 가지를 일으키는데, 자기 경지의 두 가지와 아랫경지의 두 가지와 윗경지의 네 가지가 그것이다.
무루의 식처(識處) 다음에는 아홉 가지를 일으키는데, 자기 경지의 둘과 윗경지의 셋과 아랫경지의 넷이 그것이다.
나머지 무루(無漏)의 차제에서는 열 가지를 일으킨다.
비지품(比智品)에 포섭되는 선 다음에는 무색(無色)이 현전하지만 법지품 다음은 아니다. 법지품은 낮은 경지의 의지처이며 낮은 경지의 연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으로 무색이 현전하지는 않는다.
여섯에서 열한 가지에 이르니
이른바 정선의 차제생(次第生)이다.
다음으로 둘을 낳고 열 가지에 이르니
미선과 상응하며 세 가지는 아니다.
‘여섯에서 열한 가지에 이르니 이른바 정선의 차제생(次第生)이다’라고 한 것은 청정한 비상비비상처 다음에 여섯 종류가 생함을 말한 것이다. 자기 경지의 미상응(味相應)과 정선 그리고 아랫경지의 네 가지 삼매가 그것이다. 곧, 정선(淨禪)과 무루선(無漏禪)으로 미상응선은 아니다. 욕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청정한 초선 다음으로 일곱 가지를 낳으니, 자기 경지의 세 가지와 윗경지의 네 가지로 이른바 정선과 무루선이다.
청정한 무소유처 다음으로 여덟 가지를 낳으니, 자기 경지의 세 가지와 윗경지의 하나와 아랫경지의 네 가지이다.
청정한 제2선 다음으로 아홉 가지를 낳고 청정한 식처(識處) 다음으로 열 가지를 낳는다. 그 밖에는 열한 가지를 낳는다.
이것은 방편득과 이욕득을 설한 것이지 생득(生得)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윗경지나 아랫경지의 미선과 상응하는 생득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청정한 목숨이 끝나는 다음 차례에 모든 경지의 미상응을 낳는다.
【문】어떤 것이 청정한 초선(初禪) 다음으로 성도를 일으키는 것인가?
【답】이른바 결정분이다. 이것과 다르다면 거기에서는 네 종류70)가 건립되지 않는다.
‘다음 둘을 낳고 열 가지에 이르니, 미선과 상응하며 세 가지는 아니다’라고 한 것은 미선과 상응하는 초선 다음으로 두 가지를 낳는다는 것이니, 즉 자기 경지의 미상응 및 정선이다. 그러나 무루선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으니, 번뇌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 높은 경지가 아니니, 아직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세 가지는 아니다’라고 한 것은 세 가지를 일으키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만약 세 가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제2선의 미상응 다음으로 네 가지를 낳는다. 무루선을 제외한 자기 경지의 두 가지와 아랫경지의 두 가지이니, 미상응 및 생득정(生得淨)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2선에서는 애착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청정한 초선의 경지에 의해 스스로를 수호하게 된다.
경전의 설명에 따르면
“모름지기 초선의 염리(厭離)와 함께하는 사유정수(思惟正受)에 의지할지라도 제2선의 열등한 사유71)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다.
제3선은 다섯을 낳는데, 자기 경지의 둘과 제2선의 둘과 초선의 하나이다.
미선과 상응하는 제4선은 여섯을 낳고 공처는 일곱 가지가 된다. 식처에서는 여덟 가지, 무소유처에서는 아홉 가지, 비상비비상처에서는 열 가지가 된다. 자기 경지에서 두 가지, 무소유처에서 두 가지, 그 아랫경지에서의 미상응의 여섯 가지이다. 그것은 즉 생을 받을 때[受生]의 번뇌 때문이다.
【문】하나하나는 몇 가지를 연하는가?
【답】
정선(淨禪)과 무루선(無漏禪)은
모든 경지를 연하고
자기 경지의 유루법(有漏法)은
미선과 상응하는 소연이다.
‘정선과 무루선은 모든 경지를 연한다’라고 한 것은 정선과 무루선은 모든 경지의 모든 종류를 연함을 말한 것이다. 곧, 그 경계가 넓기 때문이다.
무루선의 경우 비지품(比智品)은 여덟 가지 경지72)를 연하고 법지품(法智品)은 한 경지를 연하며 방편선근은 사제(四諦)를 연한다.
‘자기 경지의 유루법은 미선과 상응하는 소연이다’라고 한 것은 미선과 상응하는 초선은 자기 경지의 미선과 상응하는 경지 및 정선을 연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경지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내용은 사품(使品)에서 이미 상세히 설명한 바로, 무루선이나 다른 경지를 연하지 않는다.
무색이 곧 연하지 않는 것은
아랫경지의 유루의 종류인데
근본에 선함이 있음을 말한다.
오염된 것은 미선(味禪)과 같다.
‘무색이 곧 연하지 않는 것은 아랫경지의 유루의 종류인데 근본에 선함이 있음을 말한다’라고 한 것은 무색계에서의 근본의 정정(淨定) 및 무루정은 아랫경지의 유루법을 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색법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는 자기 경지와 윗경지만 연하게 되는 까닭에 아랫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지(比智)의 품계에서는 아랫경지의 무루(無漏)를 연하기 때문에 유루의 종류가 아니라고 말한다.
방편으로 거두어들인 무애도(無閡道)는 아랫경지를 연하기 때문에 이것을 근본선이라 표현한다.
세속의 도로 번뇌를 끊는 무애도는 아랫경지와 연하고 해탈도는 윗경지와 연한다.
또한 미선과 상응하는 자기 경지를 연하는 까닭에 이를 선함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오염된 것은 미선과 같다’라고 한 것은 가령 미선과 상응하는 선은 자기 경지의 미상응을 연하듯이 무색정의 경우도 역시 이와 같다는 것이다.
색계는 나머지가 있고
무량의 여러 공덕
이것은 곧 욕계와 인연함은
가장 뛰어난 분의 말씀이다.
4무량심(無量心) 등73) 여러 가지 공덕이 욕계를 연함은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신통을 제외하는 까닭에 무량 등의 여러 공덕이라 말한 것이다.
그 5신통(神通)은 욕계와 색계를 연한다. 즉 초선에 속하는 것은 초선 및 욕계를 연하지 윗경지를 연하지는 않는다.
나머지도 이와 같이 그 의미에 따라 설명되는 것이다.
정선(淨禪)은 세 종류로 구분되니,
첫 번째는 번뇌가 몸에 밴 경우이고
두 번째는 도가 몸에 밴 경우이며
세 번째는 부동(不動)74)이다.
번뇌가 몸에 밴 경우란 퇴분을 말한 것이다 유루(有漏)의 세계에는 번뇌의 기(氣)가 있기 때문에 번뇌가 몸에 밴다고 표현한 것이다.
도가 몸에 밴다는 것은 도에 훈수(熏修)되는 것을 말한 것이며, 나머지는 몸에 배는 것이 아니다.
【문】그것은 어떤 선이 능히 몸에 밸 수 있는가?
【답】
만약 모든 선이 몸에 밸 수 있다면
이는 제4선에 의지한 것이며,
세 경지에서의 애착이 다하였기 때문에
정거천(淨居天)에만 오직 과실(果實)이 있다.
제4선에 의지해 초선을 훈습한다. 왜냐 하면, 여덟 가지 일[八事]75)의 뇌란을 벗어나 모든 의지처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섯 종류의 몸에 배는 차별이 있나니, 즉 하(下)ㆍ중(中)ㆍ상(上)ㆍ상지중(上之中)ㆍ상지상(上之上)이 그것이다. 이는 다섯 종류의 정거천(淨居天)에서 생겨나고, 그 아랫경지에도 역시 다섯 종류의 훈습이 있다. 제3선의 경우 애착이 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랫경지는 정거천에서 생겨나지 않으니, 그곳에 의지할 경우 몸에 배는 경지가 일어날 수도 있고 혹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 차별이 곧 출정(出定)과 불출정(不出定)의 차별이다.
방편은 무루의 제4선의 경지가 마음에 흘러들어옴으로써 삼매가 구족된다. 그런 다음에 유루(有漏)의 세계로 돌아갔다가 다시 무루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면 그 흐르던 것이 점차로 줄어들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무루의 경지가 두 찰나 계속되고 다음 또 유루의 경지가 두 찰나 눈앞에 나타나게 되니, 이것이 곧 유루무루(有漏無漏)의 훈선방편(勳禪方便)이 성취된 것이다.
만약 한 찰나만 무루의 세계가 나타나고 또 한 찰나는 유루의 세계가 나타났다가 다시 한 찰나 무루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이것을 훈선(勳禪)의 성취라고 말한다.
여기에 열다섯 가지 마음이 있는데 다섯 가지는 유루의 마음이고 열 가지는 무루의 마음이다.
【문】어떻게 선이 몸에 배게 하는가?
【답】
혹 정수를 염원하는 경우도 있고
혹 여러 번뇌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고
혹 생을 받음을 즐기는 경우도 있으니
이는 각기 내용 따라 설명된다.
선정이 몸에 배게 하는 데는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 ‘정수를 염원한다’고 하는 것은 수행자가 정수를 사랑하고 염원하는 것으로 현법낙주(現法樂住)76)로 삼는 까닭이다.
두 번째 ‘번뇌를 두려워한다’고 하는 것은 경지에서 후퇴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생을 받음을 즐긴다[樂受生]’고 하는 것은 정거천(淨居天)에 태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신해탈(信解脫)은 세 가지 인연의 정수를 갖추게 된다.
견도(見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번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해탈(時解脫)도 역시 두 가지를 갖추니 생을 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일체의 생에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불시해탈(不時解脫)은 오직 한 가지가 존재하는데 삼매를 사랑하고 염원하는 인연을 말한다. 번뇌를 두려워 하지 않으니, 퇴법이 아닌 까닭이다. 태어남을 즐거워하지 않으니, 일체의 생에서 등을 돌린 까닭이다.
몸에 배인 선정은 5음의 성품을 지닌다. 유루 및 무루이고 사제(四諦)를 연한다.
이처럼 자세히 설명되니,
무루심이 유루심을 훈(勳)함은 마치 꽃을 영묘(靈廟)77)에 흩뜨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루로써 유루를 흩어지게 한다.
이것은 마치 꽃을 영묘에 흩뜨리는 것과 같으니, 훈(勳)이란 이같은 의미이다.
【문】이미 세 종류의 정수를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얻는가?
【답】
욕망을 여의고 생을 받아
정선(淨禪)을 얻는다.
오염된 것은 퇴(退)와 생(生)이 되며
무루는 오직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욕망을 여의고 생을 받아 정선을 얻는다’라고 한 것은 정초선(淨初禪)은 두 시기에 얻음을 말한다. 곧, 욕계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일과 윗경지에서 사라져 범천에 태어나는 일이 그것이다.
【문】물러설 때도 역시 얻게 된다. 즉 초선에서 욕망을 벗어났다가 그 경지에서 물러서게 되면 초선에서 물러선 몫에 해당한 선근(善根)을 얻게 되는데 이 일은 왜 말하지 않는가?
【답】여기에서는 모든 정선에서 먼저 얻지 못한 것을 얻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물러섰을 때 물러선 몫에 해당한 선근(善根)은 비록 먼저 얻지 못한 것을 얻은 것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세 종류가 먼저 성취되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이다.
[먼저는 한 가지를 잃고 세 가지를 얻었으나 지금은 세 가지를 잃고 하나를 얻었다. 먼저 모두 없었던 것이 아닌 까닭에 모든 것을 얻지 못하였다가 얻은 것이 아니다]
【문】그렇다면 무릇 청정한 초선에서 욕망을 벗어남으로써 얻고 욕망을 벗어남으로써 버리니, 물러서게 되는 것과 새로운 세계에 태어나게 되는 경우에도 또한 이와 같은가?
【답】퇴분의 초선이 된다. 이 경지에서는 욕계에서 욕망을 벗어날 때는 얻고 범천에서 욕망을 벗어날 때는 버리게 된다.
[범천에서 욕망을 벗어날 때에는 승분(勝分) 등을 얻기 때문에 퇴분(退分)을 버리게 된다].
범천에서 욕망을 여의고 물러설 때에 얻고 욕계에서 욕망을 여의고 물러날 때 버리게 된다.
또 높은 경지에서 사라져 범천에 태어날 때 얻고 범천에서 사라져 욕계에 태어날 때 버리게 된다.
이와 같이 무소유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다.
그러나 비상비비상처는 이욕득(離欲得)이지 생득(生得)은 아니니, 이미 윗경지가 없기 때문이다.
‘오염된 것은 퇴(退)와 생(生)이 된다’라고 했는데 미선과 상응하는 초선은 물러설 때에 얻는다. 즉 초선의 경지에서 욕망을 벗어난 욕계 및 범천의 얽매임[纏]때문에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생득(生得)이란 높은 경지에서 사라져 욕계 및 범천에 생하는 것이며 나아가 무소유처에 이르기까지도 그러하다. 그리고 비상비비상처는 오직 물러설 때에만 얻을 수 있다.
‘무루는 오직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한 것은 무루의 초선은 오직 욕망에서 벗어났을 때만 얻게 됨을 말한 것이다. 즉 성인이란 욕계의 욕망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순서를 밟아 경지가 높아지는 사람[次第人]을 말한 것이다.
만약 초선에 의지하여 경지를 뛰어넘어 생을 벗어나게 되면 역시 무루의 경지를 얻게 되고 나아가 일체지(一切地)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다.
【문】이 모든 공덕은 어떤 번뇌를 끊는가?
【답】
무루는 번뇌를 제거하고
또한 정수의 중간이 되며
모든 정의 중간은
사근(捨根)과 상응한다.
‘무루는 번뇌를 제거한다’라고 한 것은 무루의 근본초선은 여덟 경지의 번뇌를 대치하며, 나아가 무소유처는 두 경지의 번뇌를 대치함을 말한 것이다.
‘또한 정수의 중간이 된다’라고 했는데, 정수의 중간은 방편도(方便道)라 표현하며 이른바 아랫경지의 번뇌를 끊는다. 나아가 아직 아랫경지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근본 정수를 얻지 못한다. 나머지78)는 대치가 아니다.
‘모든 정의 중간은 사근과 상응한다’고 한 것은 모든 방편도는 사근(捨根)과 상응함을 말한 것이며 아직 얻지 못한 까닭에 기쁘고 흐뭇한 감정이 생겨나지 못하는 것이다.
【문】설해진 바처럼 “높은 경지에서는 신식(身識)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만약 높은 경지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접촉하고자 할 때에는 어떻게 보고 듣고 접촉하게 되는가?
【답】범세(梵世)의 식이 현전한다.
【문】윗경지에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인식이 없는가?
【답】앞에서 이미 설명하였지만, 높은 경지에서는 각관(覺觀)이 작용하는 분야가 아닌 까닭에 이 세 가지 식신(識身)이 없는 것이다.
높은 경지에서 보고 듣고 접촉하고자 할 때에는 초선(初禪)의 인식이 눈앞에 나타나 보고 듣고 촉감하게 된다. 그 경지는 욕계의 식이 아니니, 수과(修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어느 때 성취되는가?
【답】
인식이 현전하는 데 따라
높은 경지가 성취되며
버리면 성취하지 못하니
마음의 힘이 약하고 뒤지기 때문이다.
안식(眼識)이든 이식(耳識)이든 신식(身識)이든 마침내 이러한 인식이 눈앞에 나타나면 그때 성취된다. 그러나 마음이 약하고 뒤떨어지며 불은몰무기(不隱沒無記)인 까닭에 찰나에 성취된다.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고 나서는 더 이상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79)
【문】이미 선ㆍ오염의 삼매를 얻을 때와 아울러 여러 인식의 성취를 알았다.
그런데 화심(化心)은 어떻게 얻으며, 또한 일시에 몇 가지 마음을 얻는가?
【답】
생명을 받거나 욕망에서 벗어날 때
이 모든 화심(化心)을 얻나니
두 가지 세 가지 또 네 가지
또는 다섯 가지를 일시에 얻게 된다.
두 가지 인연이 있어 화심(化心)80)을 얻는다. 곧, 수생(受生)과 이욕(離欲)이 그것이니, 경우에 따라서는 한꺼번에 둘ㆍ셋ㆍ넷ㆍ다섯 가지 인연을 얻는다.
수생(受生)이라 했는데, 높은 경지에서 사라져 범천(梵天)에 태어날 경우 그때는 초선의 결과인 두 마음을 얻으니, 하나는 욕계이고 다른 하나는 초선이다.
만약 2선(禪)에 태어날 경우 세 가지 마음을 얻으니, 욕계와 초선과 자기 경지가 그것이다.
또 3선(禪)에 태어날 경우 네 가지 마음을 얻으니, 아랫경지의 세 가지 마음과 자기 경지의 하나가 그것이다.
또 4선(禪)에 태어날 경우 다섯 가지 마음을 얻으니, 아랫경지의 네 가지 마음과 자기 경지의 하나가 그것이다.
이것을 수생득(受生得)이라고 말한다.
이욕(離欲)이라 했는데, 욕계의 욕망에서 벗어나면 두 가지 마음을 얻게 된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니,
초선의 경지에서 욕망에서 벗어날 경우 세 가지 마음을 얻고
제2선의 경지에서 욕망에서 벗어날 경우 네 가지 마음을 얻으며
제3선의 경지에서 욕망에서 벗어날 경우 다섯 가지 마음을 얻게 된다.
그런 까닭에 “혹은 일 찰나에 화심(化心)을 얻으나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욕계의 욕망에서 벗어날 때의 최후의 무애도(無碍道)에서는 네 구로 분별된다. 얻었으나 끊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초선의 경지에서의 초선의 과보로 얻는 화심이 그것이다.
[욕계의 욕망에서 벗어났을 때 초선과(初禪果)의 화심을 얻는다. 이 마음은 초선의 번뇌에 속박되어 있는 까닭에 끊어지지 않는다].
끊어졌으나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욕계의 제2선ㆍ제3선ㆍ제4선의 결과로 얻는 화심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경지의 마음은 곧 욕계의 법인 까닭에 욕계의 번뇌에 얽매이게 된다.
욕계의 욕망에서 벗어날 경우 속박은 끊어지지만 초선은 아직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화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화심을 얻기도 하고 끊기도 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른바 욕계 초선의 과보로 얻는 화심이 여기에 해당한다.
얻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경우가 있으니, 나머지 다른 화심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아가 제3선에서 욕망을 벗어날 경우도 그 내용에 따라 말하면 된다.
이 열네 가지 화심(化心)에 있어서 욕계에 속하는 것이 네 가지며 색계에 속하는 것이 열 가지다. 그 가운데 욕계의 화심은 욕계의 변화를 화작(化作)하며, 색계의 화심은 색계의 변화를 화작한다. 이는 자기 몫에 해당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 화작[化]에는 여덟 종류가 있다. 즉 욕계에 태어나 욕계의 변화를 화작하는 경우 자기 몸과 다른 사람의 몸으로 화작한다.
색계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니, 곧 색계에 태어나는 경우도 역시 이와 같다.81)
욕계의 화작은 사입(四入)82)이고 색계의 변화는 이입(二入)83)이다. 왜냐하면, 근(根)을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이다.84) 그런 까닭에 변화는 무심(無心)이니, 한 마음으로 하나 혹은 여럿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단지 하나의 경지인 것이다.
신족통(神足通)에 머무는 자는 능히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 비록 열반에 들 경우에도 화작은 따라 일어나니,
예를 들면 타표(陀驃)85) 존자가 열반하고 난 뒤에 불을 만들어 자신의 몸을 불태운 것과 같고,
또한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의 완전한 몸[全身]이 영원히 세상에 머뭄과 같다.
하지만 세존의 화작[化]과 가르침의 화작[化]은 같은 영역이 아니니, 불사를 끝내신 까닭이다.
따라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신 후 화작으로 머물지 않았던 것이다.
【문】수혜(修慧)로 화작하고 나아가 생혜(生慧)로도 화작하는가?
【답】생혜로도 역시 화작한다.
[퇴생(退生)으로 얻는 화심인 까닭이다. 이것은 앞의 욕망을 여의어 얻는 수혜이다. 마천(魔天)의 화심은 생혜이다].
예를 든다면 가령 마라[魔]가 부처님 몸으로 화하는 경우이니, 곧 마천녀(魔天女)가 몸을 화작해 부처님을 찾아오는 것과 같다.
가령 화인(化人)이 먹던 음식은 화주(化主)가 본래 스스로의 몸을 보양하고자 한다면 현재 그 음식이 남아 있어 화주의 몸 안에서 소화되게 된다.
하지만, 만약 스스로의 몸을 보양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화인이 있는 곳에 쌓여 있을 뿐인 것이다.
【문】몇 종류의 화심이 성취되는가?
【답】
혹 둘ㆍ셋ㆍ넷
다섯ㆍ일곱ㆍ아홉 가지이거나
세 가지 또는 다섯 가지가 불어나니
이와 같이 화심이 성취된다.
만약 욕계에 태어나서 욕망과 애착이 다하였으나 범천(梵天)에 대한 애착은 다하지 아니하였거나 또는 범천에 태어나 그곳에서의 애착이 다하지 아니하였을 경우 이 사람은 두 가지 화심(化心)을 성취한다.
만약 제2선의 세계에 태어나 그곳에 대한 애착이 다하지 아니하였을 경우 이 사람은 세 가지 화심을 성취한다.
만약 제3선의 세계에 태어나 그곳에 대한 애착이 다하지 아니하였을 경우 이 사람은 네 가지 화심을 성취한다.
만약 제4선의 세계에 태어나 그곳에 대한 애착이 다하지 아니하였을 경우 이 사람은 다섯 가지 화심을 성취한다.
만약 욕계와 범천에 태어나 범천의 애착은 다하였으나 제2선에 대한 애착이 다하지 아니하였을 경우도 역시 다섯 가지 화심을 성취한다.
만약 제2선(禪)의 세계에 태어나 제2선의 애착은 다하였으나 제3선에 대한 애착이 다하지 아니하였을 경우 이 사람은 일곱 가지 화심을 성취한다.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된다. 마땅히 아홉 가지 및 셋ㆍ다섯 가지로 불어남을 설명해야만 하리라. 즉 제4선의 애착이 다하고 제3선이나 제2선의 세계에 머물면 다시 세 가지 화심이 증가하게 되고, 초선의 세계에 태어날 경우 다시 다섯 가지 화심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문】가령 욕계에서 변화한 초선의 과보와 초선의 경지에서 변화한 초선의 과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색계는 경계가 뛰어난 까닭에 뛰어난 것이다.
또한 욕계의 제2선의 과보와 색계의 초선의 과보에서 욕계는 법의 뛰어남이며, 능히 2 선에 이르는 까닭에 법승이라 말한다.
색계는 경계의 뛰어남이다. 일체의 화(化)는 모두 이와 같이 설명된다.
욕망에서 벗어나서 얻는 화심과 방편으로 얻는 화심은 각각 열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높은 경지에서 낮은 경지에 태어날 때는 먼저 욕망에서 벗어나서 얻는 열네 종류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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