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세품경 제6권
[도와 말]
보지(普智)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도(道)는 말이 있음[有言]을 따릅니까? 말이 없음[無言]으로 이르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이 있음을 따르기도 하고 말이 없음을 따르기도 하며,
5취(趣)의 생사의 재난에 떨어지고, 5음(陰)ㆍ6쇠(衰)의 소견에 얽매이며,
12인연과 62견(見)으로 편안하지 못하게 되고, 혹은 12해(海)로 피안을 건너지 못하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은 백천 가지의 병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을 시설하여 법의 약[法藥]을 베푸신 것이니,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解)ㆍ도지견품(度知見品)과 4등(等)ㆍ4은(恩)과 37품(品)ㆍ6도무극(度無極)ㆍ12부경(部經)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과 4제(諦)ㆍ3해탈[脫]과 3보(寶) 등으로 이 모든 더러운 병을 치료한다.
약은 병을 위하여 베푼 것이라 병이 없으면 약도 없으니,
3독(毒)의 더러움은 모두 중한 병이 되지만 바르고 참된 지혜[正眞慧]에 이르면 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인연(因緣)에 속박되어 도(道)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널리 펴고 알아듣게 타이르며,
말로는 물거품ㆍ파초ㆍ아지랑이ㆍ그림자ㆍ메아리ㆍ요술ㆍ허깨비ㆍ꿈ㆍ물속의 달 등의 비유로 그 뜻을 풀이한 것이니, 이런 것들이야말로 모두 허무한 것이며 미혹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세속을 탐하지 않고 도법(道法)의 약을 익히며 6도(度)와 4등(等)과 4은(恩)으로 이러한 일[業]을 받들어 행하면 도(道)에 이르게 되고, 모든 언교(言敎)에는 본래부터 말이 없다[無言]는 것을 알게 되며, 혹은 부처님 국토에 있더라도 5음(陰)ㆍ6쇠(衰)와 3독(毒)의 인연의 속박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문자나 말[文說]이 없는 것이며, 몸도 없고 말도 없으니 텅 비고 고요하여 삼계(三界)가 없는 줄 알면 유위에 머무르지 않고 무위에 처하지도 않으며 중간에 처하지도 않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말이 없음을 따라 이른다[從無言致]고 한다.”
[2백가지의 물음에 2천가지로 대답한 까닭]
보지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지금 대중들이 와서 여기에 있는데
혹은 어떤 이는 깊이 알아서 모든 근성[根]이 명철(明徹)하고,
혹은 어떤 이는 중간 가는 사람이어서 나아갈 수도 있고 물러날 수도 있으며,
혹은 어떤 이는 하근기의 사람이라 나아가야 할 곳을 모릅니다.
통달한 이[達者]는 의심이 없으나 중간이나 아래에 처한 사람은 모두 망설임을 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아까 듣기로는 2백 가지의 일을 물었는데 보현보살은 2천 가지로써 대답하였기 때문이니,
저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사물이 번거로워서 어느 일을 받들어야 하고 버려야 할지 모르겠구나’라고 합니다.
원하건대 부처님께서 그 뜻을 분별하셔서 풀이하여 주십시오.
무엇 때문에 일에는 2백 가지가 있는데 2천 가지로 대답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묻는 바가 어찌 그리도 시원스러우냐?
장차 오는 의심을 결단하여 모든 배우는 이로 하여금 경에 대해 어둠[經罔]이 있지 않게 하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를 위하여 이 뜻이 나아가는 바를 해설하겠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가지[二]가 있기 때문에 짐짓 2백 가지를 물은 것이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신식(神識)과 탐내는 몸이 있으면서 우리[吾]와 나[我]가 있으며 안[內]이 있고 바깥[外]이 있으며 있는[有] 데에 있고 없는[無] 데에 있다고 헤아리기 때문에 2백 가지로 물은 것이다.”
또 다시 여쭈었다.
“이런 헤아림이 있기 때문에 생사(生死)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정중하게 2백 가지의 일을 물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 2백 가지로 물은 일은 우리와 나ㆍ안과 바깥ㆍ있음과 없음을 제거하면 곧 방편 지혜로 깨우쳐 교화함이 끝이 없으니 안팎을 얻을 수 없어야 비로소 지극한 도[至道]를 얻으며 모든 것을 깨우쳐 교화한다는 것이다.”
보지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보현보살은 무엇 때문에 다시 2천 가지 일로 대답하였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시방의 모든 곳에서 와서 모인 이들은 그의 마음이 저마다 다르고 뜻과 행이 같지 않아서
통달한 이는 요점을 들으면 곧 도(道)에 이르지만,
통달하지 못한 이들은 그들을 위하여 많은 말을 하고 알아듣게 타이르며 문자로 말하고 뜻을 끌어당기며 눈으로 보이고 그 뜻을 비유로 들어야 비로소 지혜를 얻게 되니,
마치 옷에 때가 많이 묻었으면 잿물로 빨되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빨아야 비로소 깨끗하게 되며 그러한 뒤에 물을 들여야 그 빛이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집을 지으려 할 적에 그 땅이 높고 낮고 하여 평평하고 바르지 못하고 뒷간에 뱀이나 독벌레들이 많이 있으면 높고 낮은 것을 평평하고 고르고 부정(不淨)한 것을 치워버리고 뱀을 쪼아버리며 담을 쌓고 기초를 다지고 나서야 비로소 집을 세우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5음과 6쇠와 12인연과 우리와 나와 모든 개(蓋)를 제거하고 큰 자비와 지혜와 좋은 권도[權]를 행하여야 법의 집[衆法舍]이 되어 세간으로부터 수호하게 되며 세간의 대[世間臺]가 된다.”
[법의 집]
보지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무엇을 법의 집[法舍]이라고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온갖 중생을 교화하되 모두 공혜(空慧)에 들게 하여 미워함도 없고 사랑함도 없으며 마음에 망상(妄想)이 없으면서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법의 집이다.”
보지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무엇을 대(臺)라고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신통(神通)으로 시방에서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들을 꿰뚫어 보고 형상 있는 것을 사무치게 들으며
또한 형상 없는 것도 자세히 살피면서 몸이 시방에 두루하되 가고 옴이 없으며 도의 마음[道心]으로 온갖 근원을 본래부터 처소가 없다고 보며
이미 본제(本際)를 보았으면서도 있고 없는[有無] 데에 처하지 않고 생사에 처하지도 않으며
멸도(滅度)에 머무르지도 않고 마음이 모든 것에 열려 모두 대도(大道)에 이르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대(臺)라고 한다.”
“무엇을 수호[護]라고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때그때 깨우치고 교화하면서 다섯 가지 길[道]에 들어가서 다섯 가지 눈[眼]을 청정하게 한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육안(肉眼)이니 세간에 머무르면서 4대(大)의 몸을 나타내어 이로 인하여 깨우치고 교화하면서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는 것이다.
무엇을 천안(天眼)이라고 하는가?
모든 천상에 있는 이나 세간에 있는 이가 지극한 도[至道]를 아직 알지 못하면 3승(乘)으로 보여서 저마다 처소[所]를 얻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혜안(慧眼)이라고 하는가?
지(智)도무극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모두 깨우치고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큰 지혜[大慧]에 들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법안(法眼)이라고 하는가?
마음이 편협하여 넓고 크지 못한 이를 모두 다 깨우치고 교화하여 법신(法身)은 하나이며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으면서 3세에 있어 평등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무엇을 불안(佛眼)이라고 하는가?
미혹된 이는 바르고 참됨[正眞]을 알지 못하고 음(陰)ㆍ개(蓋)에 가려져 있는 것이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으니, 4등(等)과 4은(恩)의 행과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와 선권방편을 보여 때에 따라 교화하고 나아감과 물러남[進退]에는 적당한 때를 따르면서 잃지 않고 저마다 처소를 얻게 하면서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도세품이란 이름, 모든 중생은 세간에 대해 닫혀 있다]
보지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어찌하여 이 경의 이름을 도세품(度世品)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은 세간에 대해 닫혀 있다.
무엇을 닫혔다[閉]고 하는가?
5음과 6쇠로 인해 가려 있어서 생사에 얽매이게 되어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는지라
선권방편과 지(智)도무극으로 5음을 녹여 없애고 6쇠를 버려서 우리와 나[吾我]를 헤아리지 않고 생사에 있지도 않으며 멸도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해와 달이 밤낮으로 광명을 놓은 것처럼 방편 지혜도 그와 같아서 홀연히 자취가 없고 덕은 마치 허공과 같아 비유조차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도세품』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보지(普智)보살과 보현(普賢)보살과 모여 있는 모든 이들과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 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모두 부처님께 예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