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5권
17. 무량품[2]
[여래의 세 가지 행]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들아,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다시 여래의 세 가지 행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여래의 선정은 세속의 선정이 아니고, 또한 아라한ㆍ벽지불의 선정이 아니고, 또한 1지와 2지 내지 10지의 선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선정은 한정이 있지만 여래의 선정이란 한정이 없기 때문이니라.”
[선정의 네 가지]
그때에 부처님께서 월광조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세속의 선정을 하겠는가, 배움이 있는 선정을 하겠는가, 배움이 없는 선정을 하겠는가, 1지에서 나아가 10지까지 이르는 선정을 하겠는가?”
[세속의 선정(?)]
월광조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여래에게서 들은 바 그 중의 여러 가지 일과 여러 가지 있음[有]을 따르겠나이다.
남자든 여자든 욕계의 중생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성불(成佛)에 이르기까지 처음 도의 경지에 있어서 보살의 지위에는 처하지 못하는데,
그 가운데서 문득 과거의 선(禪), 미래의 선, 지금 현재의 선이란 세 가지 선을 얻나이다.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비록 이 세 가지 선을 얻어서 바로 몸 가운데의 과거 몸, 몸 가운데의 미래 몸, 몸 가운데의 현재 몸을 스스로 알 수 있지만,
다른 몸 가운데의 과거 몸은 능히 알지 못하고,
다른 몸 가운데의 미래 몸도 능히 알지 못하고,
다른 몸 가운데 지금 현재의 몸도 능히 알지 못하나이다.
이와 같은 선남자나 선여인이 어떻게 몸 가운데의 과거 몸을 아나이까?
그래서 세존이시여, 만일 앉아 참선할 때 문득 스스로 몸을 관해서 청정하지 못한 생각을 일으킨 뒤
문득 스스로 생각하기를
‘애달프다, 나의 이 몸은 마멸의 법에 있구나’ 하고
한뜻, 한마음으로 오직 청정하지 못함만 알 뿐 그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나이다.
그때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 몸을 버리고 나서 마땅히 다시 관(觀)을 구하여야 한다.
가령 나의 지금 몸은 나 없음[無我]을 이해해 알았지만,
그러나 바깥 물건[外物]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낱낱이 분별하여 있는 바가 모조리 없다고 안다’고 하는데,
이것을 현재의 몸에서 문득 과거와 미래를 사유할 수 있다고 말하나이다.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은 스스로 자기 몸과 외물(外物)을 관하고 나서 이 마음을 버리고
마땅히 다시 관(觀)을 구하여야 하길
‘나는 이제 이 몸을 다 분별하니,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다.
저 중생이란 나의 몸과 같은가, 같지 않은가?’ 하고서,
문득 바깥사람 안의 과거 몸을 분별하되
‘애달프고 슬프도다, 이 몸의 마멸도 오래지 않겠구나’ 하고
문득 청정치 못한 상념을 일으키는데,
이미 청정치 못한 상념을 내었다면 외부 사람 안의 과거 몸은 자기와 다름없음을 알게 됩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이 바깥사람 안의 과거 몸을 버리고 나서는 다시 마땅히 관(觀)을 내어야 하니
‘어떻게 이 사람 안의 과거 마음은 무엇으로부터 생겼으며 무엇으로부터 멸하게 될까’ 하고서,
다시 스스로 사유하여서 바깥사람 안의 과거 마음을 버리고
문득 다시 바깥사람 안의 미래 마음을 생각하기를
‘애달프다 이 몸이여,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부터 멸하는가’라고 하니,
이것을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보살의 지위에 있는 이가 문득 세 가지 선의 행[三禪行]을 능히 갖추었다고 말하나이다.”
[학인의 세 가지 선법]
부처님께서 다시 월광조보살에게 물으셨다.
“어떻게 배움의 경지에서 세 가지 참선의 법을 닦느냐?”
월광조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믿음의 경지에 있으면 이를 일러 ‘배우는 사람[學人]’이라 하니,
문득 앞으로 나아갈 길을 향하고자 하는데,
바로 여섯 군데 고요한 곳이나 혹은 나무 밑이나 무덤 사이에 한가한 곳 그리고 허공이나 맨 땅에 나아가
결가부좌하고서 단정한 마음으로 사유하면서 세 가지 참선의 행법을 스스로 갖추고자 하나이다.
이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스스로 속으로 생각하기를
‘스스로 안의 과거 몸을 관하니, 본래 어디로부터 왔으며 다시 어디로 사라질 것인가?’라고 하면서,
다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애달프다, 이 몸은 본래 생겨난 바가 없고 본래 멸한 바가 없구나’ 하나이다.
선남자나 선여인은 곧 이 몸을 버리고 나서 다시 관(觀)을 구하는데,
‘나의 지금 이 몸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를 따라 멸하였나. 미래의 몸도 또한 마찬가지인가?’ 하고,
문득 스스로 생각하기를,
‘안의 미래 몸은 어디로부터 나며 어디를 따라 멸할 것인가?’ 하면서
문득 스스로
‘이 안의 미래 몸도 또한 생겨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멸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내옵니다.
이것을 선남자나 선여인이 배움의 경지에서 안의 몸에 세 가지 선을 갖추었다고 말하나이다.
[유학지의 세 가지 선법]
어떻게 하면 배움의 경지에서 남의 몸에서 안의 몸을 관하여 세 가지 선을 갖추겠나이까?
이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몸을 버리고 나서 바깥 몸을 스스로 관하면서
‘안의 과거 몸은 본래 어디로부터 났으며 본래 어디를 따라 멸할 것인가?’ 하면서
문득 스스로 생각하기를
‘애달프다, 남의 안의 과거 몸은 어디로부터 났으며 어디를 따라 멸할 것인가?’ 하고,
다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안의 과거 몸은 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는다’고 하나이다.
다시 이 몸을 버리고 나서 다시 관(觀)을 구하는데,
‘이 안의 과거 몸이 이미 다시는 나지 않고 이미 다시는 멸하지 않는다.
이 안의 미래 몸은 어디로부터 날 것이며 어디를 따라 멸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문득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안의 미래 몸도 또한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고 하나이다.
이것을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른 몸 안의 과거와 미래의 몸에서 세 가지 선[三禪]을 갖추었다고 말하나이다.”
[무학지의 세 가지 선법]
부처님께서 월광조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배움이 없는 자리[無學地]에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세 가지 선[三禪]을 갖추는가?”
월광조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번뇌의 자리에 나아가서 무루의 법을 끊고자 하여 문득 스스로 생각하면,
즉 결가부좌하고서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안의 과거 몸은 어디로부터 났으며 어디를 따라 멸할 것인가?’ 하고서
다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안의 과거 몸도 또한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고 하나이다.
이때에 배움이 없는 선남자나 선여인은 이 관(觀)을 버리고 나서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안의 과거 몸을 이미 보았으니,
마땅히 다시 나와 나의 과거 몸도 멸함을 보지 않고 또한 생겨남을 보지 않으며,
또한 겁도 있지 않고 또한 나고 죽음도 없고 또한 나라[刹土]도 없다고 관해야 한다’고 하나이다.
이것을 선남자나 선여인이 배움 없는 자리에서 세 가지 선을 갖추는 것이라 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