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살차니건자소설경 제7권
8. 여래무과공덕품 ②[5]
[여래의 신통지행]
왕이 물었다.
“대사이시여, 어떤 것이 여래의 신통지행(神通智行)인지요?”
“대왕이시여, 사문 구담의 신통행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천안통(天眼通)이요,
둘째는 천이통(天耳通)이요,
셋째는 타심통(他心通)이요,
넷째는 숙명통(宿命通)이요,
다섯째는 여의통(如意通)이요,
여섯째는 누진통(漏盡通)입니다.
[천안통]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하나니,
사문 구담의 천안은 일체의 천룡팔부나 성문ㆍ연각들의 천안을 초월해서 시방 일체를 모두 밝게 보는 공덕 지혜로 이루어진 바입니다.
시방에 있는 형색ㆍ광명과 모든 형상의 거칠고 가늘고 가깝고 먼 것을 다 보며, 온갖 것을 모두 보아 분명하게 분별하니, 곧 그 안에 있는 중생들이 여러 생존의 갈래[趣] 가운데 두루 하면서 나고 죽기를 상속함을 봅니다.
가령 업과 업의 결과와 모든 근을 분별하여 남음이 없이 다 알며,
시방세계의 모든 불ㆍ여래께서 지니는 장엄정묘국토(莊嚴淨妙國土)를 보며,
그 안의 보살ㆍ성문ㆍ다섯 갈래의 중생들이 닦고 행하는 업을 남김없이 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눈은 청정하여서 보는 것이 걸림 없는 까닭이며,
이 눈은 오염되지 않아서 색에 집착하지 않는 까닭이며,
이 눈은 해탈하여서 모든 견해와 번뇌의 속박을 여의는 까닭이며,
이 눈은 청정하여서 성품이 명료한 까닭이며,
이 눈은 의지처가 없고 기댈 곳[緣]을 여인 까닭이며,
이 눈은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 끊어 버린 까닭이며,
이 눈은 때가 없어 모든 악을 끊은 까닭이며,
이 눈은 가림이 없어 의심을 끊은 까닭이며,
이 눈은 장해를 일으키지 않아 끊어 버린 까닭이며,
이 눈은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어 능히 온갖 결박을 끊은 까닭이며,
이 눈은 광명을 얻어 법을 비추는 까닭이며,
이 눈은 염(念)으로 알아 식(識)을 행하지 않는 까닭이며,
이 눈은 위가 없어 궁극의 성도(聖道)인 까닭이며,
이 눈은 걸림이 없어 평등하게 중생을 비추는 까닭이며,
이 눈은 물들지 않아 성품이 청정한 까닭입니다.
또한 왜냐하면 사문 구담은 대비심(大悲心)에 머물러서 뜻을 잘 분별하여 다툼이 없고 보거나 듣는 대로 설하며, 모든 불선을 버리고 도량으로 향하매 마음의 장애가 없는 때문입니다.
곧 아끼고 탐내는 이를 보면 재물로써 베풀고,
계행을 어기는 이가 있으면 모든 근(根)을 거두도록 권하며,
성내는 이를 보면 참고 다투지 말기를 권하며, 게으른 이를 보면 부지런히 정진하기를 권하며,
산란한 이를 보면 선정의 즐거움을 보여 주며, 어리석은 이를 보면 지혜를 닦게 합니다.
따라서 천안이 청정하여 막힘이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천안통의 지혜행이라 합니다.
[천이통]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하나니,
사문 구담의 천이(天耳)는 시방세계가 다하도록 그 안에 있는 일체의 소리,
즉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 등 인비인(人非人)의 소리를 모두 분별하며,
모든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소리를 알고, 보살ㆍ성문ㆍ연각의 소리를 들으며,
온갖 귀에 상대되는 소리, 내지는 지옥ㆍ축생ㆍ아귀ㆍ모기ㆍ등에ㆍ파리ㆍ벼룩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아듣습니다.
만약에 중생들이 마음에 반연하는 바가 있어서 착하거나 악하거나 혹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님[無記]에서 나오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알며,
과거ㆍ미래의 모든 소리를 다 들어서 모두 본래의 경계[本際]를 다하니,
그것은 왜냐하면 사문 구담은 대비심에 평온히 머물러서 능히 모든 소리를 듣되 장애가 없으며, 모든 번뇌와 습기를 끊어 소멸한 까닭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천이통의 지혜행이라 합니다.
[타심통]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하나니,
사문 구담의 타심통(他心通)의 지혜행은 중생 세계에 있고, 중생들에 속하는 그 마음 그대로 생각을 합니다.
이른바 착한 마음, 착하지 못한 마음, 무기의 마음, 번뇌에 수순하는 마음, 번뇌를 등지는 마음, 성문의 마음, 벽지불의 마음, 보살의 마음, 부처의 마음, 하늘의 마음, 용의 마음, 야차의 마음, 건달바의 마음, 아수라의 마음, 가루라의 마음, 긴나라의 마음, 마후라가의 마음, 인비인의 마음, 지옥의 마음, 축생의 마음, 아귀의 마음, 야마처[閻摩處]에 있는 중생의 마음, 과거의 마음, 미래의 마음을 모두 분별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사문 구담은 대비심에 안주하여 능히 남의 마음을 알되 막힘없고 걸림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번뇌가 없기 때문이며,
모든 습기를 끊었기 때문이며,
일체 법을 비추기 때문에 능히 이와 같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타심통의 지혜행이라 합니다.
[숙명통]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하나니,
사문 구담의 숙명통(宿命通)의 지혜행은 지나간 한 생[一生]ㆍ두 생 내지 열 생ㆍ백 생ㆍ천 생ㆍ무량 백 생ㆍ무량 천 생, 무량 백천 생 및 하늘땅이 이루어지고 무너지고, 한량없는 세계가 이루어지고 한량없는 세계가 무너지고, 한량없게 이루어지고 무너진 세계와 한량없게 이루어지고 무너진 겁(劫)에서 중생들이 그 가운데 태어났음을 압니다.
곧 어떤 성, 어떤 이름, 어떤 모양이며, 어떤 수명이며,
어떻게 고통을 받았으며, 어떻게 즐거움을 받았으며,
어떻게 머물렀으며, 어떠한 의복과 음식이었으며,
이러한 곳에서 죽어 다시 이러한 곳에서 태어났으며,
저러한 곳에서 죽어 다시 저러한 곳에서 태어났으며,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서 태어났으며, 저기에서 죽어 여기에서 태어났으며,
과거의 경계를 다하도록 남음이 없습니다.
또한 과거와 과거의 경계를 다하도록 모든 부처님을 알되,
어떠한 권속ㆍ부모ㆍ처자ㆍ형제ㆍ자매였으며,
어떻게 처음에 발심하여 집을 떠나 도를 구했으며,
어떻게 원행(願行)을 닦고 모아 모든 부처님께 공양했으며,
어떻게 온갖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시키고 보리수 밑에 앉아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었으며,
어떠한 명호와 어떠한 주처와 어떠한 뛰어난 자리였으며,
어떠한 성문과 어떠한 시자(侍者)와 어떠한 하늘과 어떠한 사람과 어떠한 대중과 어떠한 외도였으며,
어떠한 설법으로 어떻게 중생을 제도했으며,
어떠한 수명과 어떠한 열반[滅度]이었으며,
어떻게 바른 법[正法]에 머물고 어떻게 상법(像法)에 머물렀는지를 모두 기억하여 압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대비심에 평온히 안주하여 업 짓는 일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지혜는 번뇌가 없으니 선정에 머물기 때문이요,
이 지혜는 두려움이 없으니 지혜를 잘 포섭하기 때문이요,
이 지혜는 자연스러우니 다른 이로부터 구하지 않고 현전에 얻어서 잘 알기 때문이요,
이 지혜는 바르게 기억하니 끝내 잃지 않기 때문이요,
이 지혜는 공덕이니 궁극의 대승이기 때문이요,
이 지혜는 선근이니 바라밀에서 나와 저 언덕[彼岸]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숙명통을 아는 지혜행이라 합니다.”
대살차니건자소설경 제8권
8. 여래무과공덕품 ③[1]
[여의신통]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하나니,
사문 구담의 여의신통(如意神通)의 지혜행이란 삿된 견해로 완고하여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조복하여 바른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사문 구담은 능히 가지가지 신통의 교화를 내보이되,
혹은 모습으로 보이고
혹은 세력으로 보이고
혹은 변화로써 보이는 것입니다.
모습이란, 이른바 부처의 형상이나 보살의 형상, 연각의 형상, 성문의 형상, 제석환인ㆍ범천왕ㆍ사천왕의 형상, 전륜성왕(轉輪聖王)의 형상 및 그 밖의 가지가지 형상 내지 축생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중생들이 보고 감화를 받도록 능히 시현하고 설법합니다.
만약에 어떤 중생이 몸의 강력(强力)함을 믿고 교만과 성냄과 높은 체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와 같은 중생을 조복시키기 위하여 나라연(那羅延)과도 같은 큰 힘을 내 보입니다.
곧 수미산을 한 손가락에 놓고는 다른 한량없는 세계 밖에다 내던지거나 혹은 삼천대천세계를 아래로 물의 경계[水際]에 이르도록 끊어 잡아서는 한 손으로 들어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게 해 머물러 한 겁(劫)을 지내니,
이와 같은 힘을 드러내 저 교만하여 스스로 크다 하는 중생의 높은 체하는 마음을 쉬게 하고자 법을 설합니다.
변화라고 했는데, 변화의 힘으로 능히 큰 바닷물을 변화시켜 소 발자국에 고인 물과 같이 하되 바닷물이 줄지 않고 소 발자취가 커지지 않으며, 다시 소 발자취의 물을 변화시켜 능히 큰 바다를 이루게 하거나
혹은 겁이 곧 다하려 하여 화재(火災)가 일어날 적에 물을 보아야 할 이에게는 곧 변화해 물이 되게 하고, 바람을 보아야 할 이에게는 곧 변화해 바람이 되게 합니다.
수재(水災)가 일어날 적에 불을 보아야 할 이에게는 곧 변화해 불이 되게 하고,
바람을 보아야 할 이에게는 곧 변화해 바람이 되게 하며,
풍재(風災)가 일어날 적에 물을 보아야 할 이에게는 곧 변화해 물이 되게 하고,
불을 보아야 할 이에게는 곧 변화해 불이 되게 합니다.
이와 같은 가지가지 변화로써 모든 중생에게 시현하여 기꺼운 마음을 내게 하고 법을 설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신통력은 믿음ㆍ욕망ㆍ정진ㆍ선정ㆍ지혜의 모든 법에 속하는 것으로서 마음을 조복하여 부드럽게 하고 자재(自在)를 얻어 잘 닦아 모으기 때문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여의신통(如意神通)이라 합니다.
[누진통]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하나니,
사문 구담의 번뇌[漏]가 다한 신통의 지혜행이란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일체의 번뇌와 습기, 이른바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견루(見漏)ㆍ무명루(無明漏)가 다하는 것입니다.
이는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이 얻은 번뇌 다함[漏盡]과는 같지 않으니, 성문ㆍ벽지불은 번뇌 다함을 얻고도 온갖 태어나는 곳에 장애가 있어서 자재롭게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애가 있으나, 사문 구담은 장애가 없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번뇌가 다한 지혜의 신통[漏盡智通]이라 합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하나니, 사문 구담은 마침내 이와 같은 신통의 지혜행을 성취하였던 것으로, 그러므로 나는 허물이 없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