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거스, 떠도는 자의 노래 / W·B·예이츠
머리에 타오르는 불길 있어
나 개암나무 숲으로 갔네.
나무 지팡이를 자르고 다듬어서
실에 베리(berry)를 꿰어 걸었네.
흰 나방이 날개에 있는 동안
나방 같은 별들이 깜빡일 때
나는 그 열매를 물에 드리워
은빛의 어린 송어 하나 낚았네.
송어를 마룻바닥에 놓아두고
불을 지피러 나설 즈음,
무언가 바닥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누군가 내 이름 부르는 소리
머리카락에 사과꽃 핀
송어는 어슴푸레한 빛의, 소녀가 되었네.
소녀는 내 이름을 부르더니 이내 달아나
맑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늙고
황량한 땅과 구릉 지대를 떠돌며 지내왔건만,
그녀의 행방을 끝내 찾아내고 말아
사랑의 입 맞추고 손 맞잡으리니.
어룽진 긴 풀밭 사이 거닐며
시간과 세월이 다할 때까지 꽃을 따리니.
저 달의 은빛 사과
저 해의 금빛 사과 꽃을 (김상환 옮김)
[단상]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 Yeats, 1865~1939)는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와 함께 20세기 영문학 및 애란(愛蘭) 문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신비주의와 예언자적 능력, 관념과 현실의 감각을 하나의 시적 공간 안에 수렴하는 상징의 미학, 아일랜드의 영혼과 묵시록적 상상력, 켈트 고대 전통과 설화에 기반한 일련의 문학적 성취로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애초 그는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시인으로서 확고한 재능을 인정받은 것은 유현 표묘(幽玄縹緲)하고 켈트 고유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세계를 다룬 장편 서사시「오이진의 방랑」(The wanderings of Oisin)에서다. 하지만 서정시의 가편(佳篇)인 「앵거스, 떠도는 자의 노래」(The song of wandering Aengus) 경우는 예이츠가 도라 시거슨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자신의 최애의 시로 지목하고 있다. 더더욱 이 한 편의 시는 현재 영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 100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BBC의 북이기도 하다.
[만남-부름-소망]의 삼단 구조로 짜여진 서정적 회감(回感)의 이 시에서 젊은 시절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로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해질 무렵 숲으로 나선다. 헤이즐(hazel, 개암나무)이 있는 숲이다. 나무 지팡이를 자르고 다듬어 낚싯줄에 베리(berry, 부드러운 과일 類)를 꿰어 걸고 물 속에 드리운다. 흰 나방이 날개에 있는 동안, 하늘 저편 나방같은 별들이 하나 둘 깜박일 무렵 나는 하늘이 보낸(送) 물고기, 송어 하나를 낚는다. 사랑의 환영(幻影)으로서 은빛 송어는 잡히는 순간 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변한다. 머리카락에 사과꽃이 핀 은빛 소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는 이내 달아나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날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나는 늙고 비록 험한 세상을 살아왔지만, 꿈속 소녀를 한시라도 잊은 적이 없다. 하여 그녀의 행방을 좇아 사랑의 입을 맞추고 손을 맞잡으리라. 길게 나 있고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풀밭 사이를 함께 거닐며 꽃을 따리라. 해와 달이 빚은 금빛 은빛의 사과꽃길 따라 한없이 걸으리라 다짐한다. 궁극적 합일을 위해 사랑을 위해 방랑자 앵거스는 떠도는, 노래하는 정령(精靈)이 된다. 노래는 현존재(Gesang ist Dasein). 릴케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말한 이 명제는 노래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존재에 속한다는 사실. 진정한 노래와 시는 순수한 연관이며 모험이다. 사랑의 모험은 곧 존재의 모험인 것을.
이 시의 마지막 두 행(“The silver apples of the moon,/ The golden apples of the sun.”)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연금술적 전통에서 달과 은이 음(陰), 여성성, 직관, 수동성, 밤, 꿈과 환상을 나타낸다면, 해와 금은 양(陽), 남성성, 이성, 능동성, 낮, 실재와 열정을 상징한다. 일월(日月)과 금은(金銀)의 사과는 사랑이 그렇듯, 우주를 구성하는 두 개의 대립적 세계가 완전한 합일을 이루고, 반대의 일치와 대 순환(the GreatWheel)을 의미한다. 게다가 은과 금의 결합은 현자의 돌을 만들어내는 핵심 단계이며 영적 에스컬레이션에 해당한다. (참고로 김동리는 소설「바위」후기에서 서정시를 ‘음(陰)/음영/무주(巫呪)/영혼/영상’으로, 소설을 ‘양(陽)/개념/태양/육체/형상’으로 그 특징을 적고 있다.)
예이츠의 또다른 시「물고기 The Fish」는 평생 사랑했으나 거절당한 연인 모드 곤(Maud Gonne)을 빗댄 작품이다. 그녀는 화자인 내가 던진 사랑의 촘촘한 그물 사이로, 달밤의 파도 속으로 달아난 물고기로 무정하고 매몰찬 연인이다. 이에 반해 짝사랑하는 나의 안타깝고 쓰라린 심사가 이 시에는 잘 드러나 있다. 켈트 신화에서 여성의 이름이자, 지혜와 신비의 나무인 헤이즐과 은빛 물고기 숭어는 필멸의 인간에겐 하나의 꿈이고 사랑의 신비다. 청춘의 한 시기, 꿈속에서 만난 소녀 헤이즐을 찾아, 애슐린(Ashlin, 꿈과 환상)을 찾아 나는 어느새 검은 머리가 흰 머리 되고 말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의 애슐링(aisling), 나의 매직(magic). 마법과 오컬트, 신비주의와 여성성은 예이츠와 서정시를 읽는 또다른 비밀이다. 금빛 은빛으로 아로새겨진 하늘의 옷감은 소월의 시로 전이된다.
순은(純銀)을 잃어버린지 오래, 금은의 조화와는 더욱이 멀어진 현금이다. 세상 만물이 주관과 객관, 영혼과 육체, 이성과 감성,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 등 상반되는 요소들의 갈등과 조화에 의해 이루어지고 발전해 나간다는 예이츠의 비전(Vision)은, 제3의 지점으로서 바깥의 사건과 재난의 중성적 글쓰기를 새롭게 요청한다. 켈트 음악을 듣는 여름밤. 가난하여 가진 것이라곤 오직 꿈 뿐이라던 예이츠, 그의 묘명(墓銘)을 생각한다.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차가운 시선을 던져라
삶에, 죽음 위에
말탄 자여, 지나가라.
첫댓글 가난하여 가진 것이라곤 오직 꿈 뿐이라던 예이츠, 그의 묘명(墓銘)ㅡ 은 시의 묘처다. 시인은 꿈을 가졌기에 별을 딸 수 있고, 장미를 꽃 피울 수 있다. ㅡ 시인은 강자다. 이니스프리의 호도ㅡ는 내 문청 시절 수 많은 영감을 주었다. 예이츠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