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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녹동고개~개금고개(11.12.10)
아침!
노르스름한 겨울햇살이 파랗게 질린 몸을 살짝 감쌀 때
바람 돌아가는 계명봉 좁은 바위 고랑에 가쁜 숨을 고른다.
저녁!
어둑한 불웅령 가파른 오름길 끝없는 길
붉은색 물감이 퍼져나가는 하늘을 본다, 그리고 하얀 실타래 낙동강.
마음을 내린다.
24차 산행
○ 일 시 : 2011.12.10. 07:35~20:25
○ 구 간 : 녹동고개~계명봉~고당봉~원효봉~산성고개~만덕고개~불웅령~백양산~개금고개
○ 구간진행시간 생략
부산시내 구간 돌입과 동시 우리들의 이동수단은 대중교통으로 바뀌었다. 07시까지 범어사 지하철역에서 만나 부산~언양행 12번 노선버스에 오른다. 녹동마을 하차. 영하권 날씨에 아스팔트길이 얼어있다. 공알산 오른쪽 지평선 위로 붉은 기운이 펴져있다. 바람이 갑자기 터져 나와 거리를 장악한다. 도저히 바람 한가운데 몸을 지탱하기란 힘이 든다. 대원2명 신호등이 바뀌자 바로 냅다 뛰어 건너편 파란대문 사이 바람막이 틈에 몸을 붙인다.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올랐다. 하루가 시작된다. 진대원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깜깜 무소식이다. 어느새 붉은 기운은 박차고 오를 태양의 받침대 역할에 충실을 다한다. 흰색 레조차 기다리는 반대 방향에서 올라온다. 어찌 된 일이람? 진대원왈 네비에 녹동교를 검색하니 양산시 하북면 고속도로 위 녹동교를 안내 하더란다. 양산시내를 벗어나도 계속 네비만을 의지하고 하북 녹동교까지 갔다 왔다나. 이른 아침시간 짝지한테 애교 작전을 동원해 운전대행으로 움직였는데 길치라는 타이틀을 여전히 달고 다니는 셈이 되었다네요.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계명봉 오르는 길은 외길이지만 가풀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기온이 떨어져 서리발이 맺히고 길은 꽁꽁 얼어 스틱이 잘 찍히지 않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산은 묵묵히 산객을 받아들인다. 산객의 희로애락과 상관없이 조용히 품에 포근하게 안아준다. 편안하다. 나목의 숲 앙상한 가지 사이로 바람은 그대로 빠져나온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바득바득 온 힘을 쏟아 붓고서야 계명봉 직전 바윗틈에 잠시 숨을 고른다. 금정산 자락에 붙기 위한 통과의례를 치루었다고나 할까! 시커먼 바위를 한바퀴 감아 돌자 계명봉.
계명봉에선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은 물론이려니와 주변의 산자락이 훤하게 내비친다. 사진을 찍고 물도 마신다. 올라온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90도 꺾어지는 서쪽으로 내려선다. 범어사 내원과 청련암쪽에서 올라오는 고스락에 닿는다. 소나무 숲에 들어 쉬엄쉬엄 오른다. 임도가 왼쪽으로 꺾여나가는 지점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아침 겸으로 삶은 계란과 고구마가 나온다. 거기다가 복분자주 한 컵 씩 하사된다.
오름의 능선길 역시 계명봉 올라설 때만큼이나 된비알이다. 땀이 흘러 얼굴을 타고 내린다. 장군봉 어깨에서 왼쪽의 능선을 따라 죽 내려간다. 주변은 온통 반질반질한 노란 억새밭이다. 남서쪽으로 송전탑들과 고당봉이 우릴 지켜보고 있다. 금정산 옹달샘을 사랑하는 사람들 팻말이 붙은 샘터를 지난다. 이곳 등산로는 올 때마다 물기를 머금어 음습함에 질퍽함을 토해내는데 차갑고 마른 날씨 탓인지 오늘은 뽀송한 길을 내어준다. 범어사 갈림길 송전철탑을 지나 오른쪽으로 정맥길로 이어가는 능선을 접어들기 위해 길을 내달려 보지만 아서라 모든 것들을 가로 막는다. 다시 돌아 나와 오르는 길따라 바로 나아간다. 범어사기(梵魚寺基)라고 각인된 바윗돌을 본다. 많은 걸음을 내딛었지만 어찌 오늘에서야 이 표석을 보게 되는지.
빽빽한 전나무 조림지를 지나서 능선의 끝으로 난 길을 따르니 오른쪽으로 가산리 마애불, 공룡발자국 바위가 훤하게 드러난다. 일부 대원들 자주 볼거리에 발길을 멈추고 관찰하는 바람에 뒤따른 대열은 어느새 흐트러졌다 한참 만에 다시 응집이 되고 고당봉으로 향한다. 맥 길을 고집하는 진대원 고당봉 봉우리로 큼직한 바윗돌이 박힌 암릉을 타고 기어오른다. 갑자기 거대한 화강암괴, 석화성인 고당봉 정상이 위용을 발한다. 잠시 자세를 가눈다. 낙동정맥종주! 태백 삼수령을 출발하여 줄곧 1년의 세월을 달려 이제야 천리아래 모든 강을 품에 담은 낙동강의 완결 편을 보는 감동. 무언이로다.
고당할머님에게 우리가 태백에서 이곳 부산의 진산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에 도착함을 알리고 마지막 산 걸음에 안전산행을 도와주십사하고 삼배의 절을 올린다. 태양은 환하게 비추고 하늘은 푸르고 흐르는 낙동강물도 푸르다. 예전 태백산맥의 개념이라면 첫 출발점이자 귀착지가 되었던 곳 금정산은 범어사의 진산으로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한 마리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 하여 금빛 우물이라는 산이름과 범천의 고기라는 절 이름이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고당봉에서 금정산성 일대와 부산시가지를 둘러보는 조망은 여느 명산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장쾌하고 변화무쌍하고 드넓은 조망을 준다.
계단으로 내려서면 빨간 칠을 한 돌담에 둘러싸인 고모영신당 뒤편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잠시 입가심을 한다. 힘이 비축도 되었는지라 북문 내림길을 내달린다. 북문 금정산장은 새로 단장하여 금정산 산림보호소를 바뀌었다. 돌계단길을 올라서자 산성이 정맥과 나란히 한다. 금정산성 재보수로 석성이 마치 긴 띠를 두른 듯 유려한 선을 이으며 모습을 드러낸다. 금정구 일대의 고층아파트 건너로 회동저수지가 거대한 산정호수가 되어 아름답게 내비친다.
금정산 긴 능선을 마을 뒷동산 거니는 듯 활개를 펼치고 대장님 앞장으로 뒤따라 냅다 뛰다 다시 종종걸음으로 오름길을 오르다 휑하니 내림길을 달려 내려서니 어느새 산성마을 갈림길 동문. 우리도 동문위에 걸터앉아 일행을 기다리며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다시 산성도로가 있는 곳에 이르니 차도를 건너지 않아도 되었다. 동물이동통로가 이어졌다. 이어 돌계단을 지나치면 옛 성곽을 따라 나서게 된다. 서서히 경사도를 올리던 길은 왼편으로 전망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바위 두어 개를 지나쳐 편편한 바위 대륙봉에서 증명을 남기고 산길을 이어나간다.
꾸깃꾸깃 이리저리 굽돌며 1300리 낙동강 물길의 근간을 이루던 정맥도 이젠 바다를 향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마지막 여력을 모아 금정산으로 솟구친 정맥은 낙동강과 나란히 손잡고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을 일구며 조용히 바다로 스며들고 있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산도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오른쪽 건너로 삐죽삐죽 바위를 일궈낸 상계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2망루에서 임도를 건너 숲으로 잠시 들었다가 다시 임도로 나와 정맥을 이어간다. 펀펀한 남문마을 입구 사거리에는 식수대와 화장실, 먹거리를 파는 간이매점들이 보인다. 날씨도 춥고 배도 고파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아치형 천막 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따끈한 오뎅 국물과 라면2개 생탁을 주문하고 배낭에서 밥을 끄집어내어 푸짐한 상차림을 한다. 재열공 서비스.
한 순배로 불어 오른 뱃심으로 서둘러 움직인다. 우측 건너로 상계봉 하얀 바위로 병풍을 두른 듯한 "병풍사"사가 산 중턱에 단아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건너다보인다. 만덕동 일대며 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으로 월드컵 축구경기장이 지척이고 건너로 백양산을 비롯하여 만덕고개로 올라오는 구불구불한 차도까지 한눈에 아우를 수 있다.
“여기는 낙동정맥 구간입니다“는 글자 눈에 띈다. 포장도로가 관통하는 만덕고개에 내려선다. 간이화장실도 이용하고 잠시 휴식을 가진다. 건너편 초입으로 향토 순례코스 안내판과 어린이공원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뒤로 통나무 계단길이다. 만덕고개, 철학로를 통과. 송전탑이 있는 오르막계단을 올라 선다. 멧부리에 바위 몇 개가 돌출되어 있는 359.6봉이다.
동래구와 북구를 알리는 표식이 있고 사직구장 일대와 시가지의 고층아파트가 모두 발 아래로 펼쳐진다. KBS 만덕TVR 송신소 중계탑을 지나쳐 내려오면 왼편으로 갈래길이 있는 분지성 안부에 이른다. 넓은 길을 따라 유유자적 진행을 한다. 오른쪽 산능선을 우회하여 직진으로 나서지만 정맥능선은 우측 봉우리를 올라섰다가 다시 주등산로와 합류한다. 오솔길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나간다. 넓은 우회로를 버리고 금정봉을 향하는 오르막을 올라서 아늑한 무덤가를 지나 정면으로 직진한다. 넙적 바위들이 산길을 차지하고 있는지라 그대로 밟고 오름길을 올라서니 금정봉 아미산이다.
바로 아래로 어린이대공원 어린이 회관이 보인다. 정맥길 이어짐이 흐트져버렸다. 금정봉은 정맥의 주로가 아닌 것을 인식 없이 나아가다 그랬다고 대장님 자책. 다시 뒤돌아 내려선다. 2개조가 갈라져 내림길을 선택한다. 좌측으로 90도 꺽어 급사면으로 내려서고 민둥봉까지 나가 주등산로를 따라 내려선다. 돌담길을 따라 산불초소 슬라브건물을 지나 벤치가 마련된 4거리 갈림길 앞에서 다시 2개조 합류하여 잘못 된 부분을 시정하고 넓은 방화선이 시작되는 284봉을 내려서니 성지곡수원지 "만남의숲"이다. 만남의 숲은 "만남의광장"으로도 불려지는 곳으로 운동시설과 석축이 담을 이룬 고갯마루로 5거리를 이룬 곳이다.
왼편 아래로 내려서는 길은 어린이 대공원과 우리나라 상수도시설의 시초인 성지곡수원지로 내려서는 길이다. 편백나무 울창한 만남의 숲을 뒤로 하고 불웅령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을 정비되어 있다. 계단을 벗어나 넓은 방화선을 이룬 된비알이다. 그 가파른 오름을 꾸역꾸역 온 힘을 다해 오른다. 잠시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는 길은 발길 멈추는 곳이 바로 전망대다. 발 아래로 어린이 공원 놀이시설과 성지곡 푸른 물이 내려다보이고 그 건너로 금정봉을 비롯하여 지나왔던 금정산 고당봉이 아득하기만 하다. 비지땀을 흘리고서야 커다란 돌무더기 탑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에 올라선다. 건너로 백양산이 지척이다.
불웅령에 올라선다. 저녁놀은 멀리 사라지고 서부산권역에는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켜지고 있다. 옛날 구포다리도 철거되었다. 그 위가 제2 낙동대교, 도시철도 3호선, 김해로 이어지는 경전철 선로길이 불빛으로 가리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 것은 1300여리를 내쳐 달려온 낙동강의 잔잔한 물흐름이다. 이제 곧 바다에 이르러 그 이름을 잃게 되는 것이 서러워 인지 강은 마치 흐름을 멈춘 듯 고요하기만하다. 흐르는 강을 끼고 산도 흐르고 있다. 산줄기를 따라 수도 없는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며 수평 수직의 이동을 하던 우리의 발품도 이젠 그 끝을 향하여 이곳 불웅령에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불웅령에선 마치 활주로처럼 넓게 닦여진 방화선을 따라 중봉을 넘어서야 백양산 올라선다. 낙동강 바람이 오른편으로 올라선다. 높다랗게 쌓여진 돌탑 가운데로 백양산을 알리는 표석이 있고 정상 바로 아래로는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하고 있다. 부산시가지 일대를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붉게 물들인 도시의 저녁놀과 어우려지는 낙동강 물줄기의 흐름의 아름다움은 입을 벌어지게 한다. 김해공항으로 이륙과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들의 고공낙하의 불빛이 또 하나의 눈요기를 만들고 우리의 발길은 더디어만 간다. 저 멀리 엄광산, 구덕산을 잇는 마루금이 시커멓게 어림되고 오른편으로 낙동강하구 을숙도도 시야에 잡힌다.
바로 아래로 보이는 헬기장으로 내려선다. 애진봉을 알리는 거대한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표석에서 야간산행 채비를 하고 남은 음식으로 열량을 보충한다. 이제는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인 능선이다. 흙이 달아난 바닥으로 솟아나온 바위로 이루어진 길을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돌탑이 세워진 전망 좋은 봉우리를 지나 더듬거리며 삼각봉에 오른다. 사상산악회에서 세운 정상표석이 자리하고 있다. 삼각봉을 지나서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틈 사이로 비집고 내려서게 되고, 왼편으로 철탑 하나를 보내고 내려서자마자 갈림능선이다. 바위봉을 향하는 왼편으로 접어들어 능선을 이은 후 짧게 올라붙는다.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진 갓봉 발아래 개금동 일대의 시가지가 불빛을 발하고 있다. 건너편 엄광산으로 향하는 정맥마루금이 시커멓게 다가서지만 오늘은 내려다보이는 개금역에서 모든 일정을 접기로 한다.
능선과 접한 길을 몇 발자국 나서지 않아 팔각정으로 멋들어진 정자와 돌탑이 서 있는 곳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넓은 갈래 길을 만난다. 엄청난 주의력을 발휘하여 백양산 애진봉에서부터 이곳까지 지친 몸을 달래며 더듬거리며 내려왔다. 체육시설이 갖춰있는 공원으로 내려선다. 산불조심 안내판을 지나치고 시멘트길로 내려서자 도시의 정겨운(?) 소음이 몰려온다. 개화초등교 정문이다. 학교 앞 "꼬마팬시문구" 3거리에서 왼쪽 내림길인 LG아파트 옆길을 따라 도로 내려서니 개금LG독서실 앞 큰 도로변이다.
산을 내려선 지점에서 LG아파트가 자리한 곳이 정맥마루금으로 추측되어진다. 백병원을 찾아 횡단보도를 건너 육교가 보이는 큰길을 버리고 골목길로 접어들어 건물 사이사이를 비집고 나오니 경부선 철로변 방음벽이 나타난다. 그 방음벽을 따라 우측으로 나서니 백병원 입구 4거리다. 그러고 보니 횡단보도를 건넌 후 곧장 큰길을 따라 올라 왔으면 빨랐을텐데 공연히 골목길로 들어선 탓에 삥 둘러오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경부선 철로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지나 건너편으로 고려병원에 눈도장 찍고 개금지하철역 지하도 2번 출입구 앞에서 산행종료가 선언된다.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건너편 상호를 보고 횡단보도를 가로지른다. 칼국수, 삼겹살, 등심, 짜장면 등 메뉴판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지만 아래쪽 육교건너로 24시 소고기국밥집이 훤하게 눈에 들어온다. 내일 일정을 거론하며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육교를 휑하니 건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