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암의 생명 기행 28
실리콘 밸리 그리고 그랜드캐년
*미국의 작은 마을, 덴빌(Denvill)
우리가 거처를 정한 곳은 샌프라시스코의 교외에 해당하는 덴빌(Denvill) 이란 작은 마을이다. 우리의 읍(邑) 정도일 것이다. 매우 아담하고 깨끗한 도시다. 행정을 담당한 읍사무소와 경찰서 등을 둘러보았는데 공무원들이 매우 친절했다. 주민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서류를 싸들고 담당공무원을 찾아갔다. 담당 공무원은 자신의 일과 다름없이 친절하게 조언하고 편의를 보아주었다. 잠시 들른 관광객의 눈에도 화기애애한 그들의 모습을 쉽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안정된 사회여서인지 주민들의 생활은 의외로 단조로웠다. 주민의 대부분은 직장인이고 연금 수급자들이다. 주민들은 아침에 조깅을 하거나 스포츠센터에 들러 수영이나 헬스 또는 테니스 등으로 체력을 길렀다. 도시의 중심 광장에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같은 업종은 거의 없었다. 한 개의 빵집, 한 개의 커피점. 한 개의 주류 판매점, 그런 식이다. 그렇게 경쟁이 없는 사회여서인지 어딘가 생기가 덜했다. 먹고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크게 다른 점이었다.
개인 주택들은 대체로 2층 가옥이다. 옆집과는 쌍둥이 모양으로 붙어 있다. 아래층에는 거실과 식당이 있다. 2층에는 부부의 침실과 손님의 침실, 서재가 있다. 침실과 서재는 대체로 좁은 복도로 분리되어 있다. 거실에는 몇 개의 소파가 있고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식당은 식탁과 조리대, 그리고 식기를 넣는 찬장이 마련되어 있다. 현관에는 승용차 두 대 정도의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현관 반대편에 작은 정원이 있다. 잔디가 자라고 약간의 채소도 가꾼다. 바비큐 구이 정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시설도 갖추었다. 미국 중산층의 가옥이다.
길들은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고, 집 번지가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어서 집주소만 있으면 누구든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침이면 조깅을 하는 이웃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한다. 마을 옆으로 작은 언덕구릉이 있었지만 정해진 통로 이외로는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다. 평범한 풀밭인 데도 함부로 드나들지 못한다. 자연보호에 엄격한 미국의 일면이다.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 호화주택들이 있어서 차를 몰고 구경을 갔다. 그러나 길 입구에서 경비원에 의해 저지 되었다. 그곳은 사도(私道)라는 것이다. 외인은 허가 없이 출입하지 못한다고 했다. 개인 골목도 아니고 산자락을 오르는 길인데도 통제가 엄격하다.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는 미국의 치안 상태가 한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 마을의 볼거리는 자동차박물관이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2차 세계대전 때의 처칠의 승용차, 등으로 여러 종류의 자동차들이 진열되어 있고 엄격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작은 도시라 구경꾼은 거의 없었지만 나름대로 도시의 특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 도시의 특화사업인 셈이다.
관광객은 으레 대도시의 호텔에 숙박하게 되고, 관광코스도 왕궁이나 명승고적, 또는 특별한 유적지에 집중되어 있어서 정작 그 민족의 삶의 참모습을 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덴빌에서의 숙박은 미국 서민들의 생활상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실리콘밸리와 산호세
이곳에 온 김에 미국 IT산업의 핵심이 되고 있는 실리콘밸리를 견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중심도시인 산호세를 관광하기로 했다. 실리콘밸리란 샌프란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스탠포드 대학을 중심으로 산호세시 주변까지의 하이테크 단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지역은 전자산업단지로서 적당한 천연의 환경을 갖추었고, 가까운 곳에 스탠포드, 버클리, 산타클래라 등의 대학이 있어 우수한 인력확보가 쉬운 곳이다. 실리콘밸리는 현재 2천개 정도의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그리고 21세기의 유망업체인 소프트웨어, 정보통신, 바이오 등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창설자는 1946년의 푸레드릭 타만 박사이다. 이곳이 세계 정보통신계의 심장부가 된 것은 1980년대로 반도체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명성을 얻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세계 첨단의 기술연구단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주민의 36%가 해외 출생자이다. 인구는 240여 만, 주민의 69%가 대학 졸업자다. 소득수준은 미국 최고 수준이다. 미국 10대 특허 도시 중 6개가 실리콘밸리 범주 안에 있다. 산호세가 그 중심이다.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인 산호세를 방문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엘 방문하니 기존에 예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밸리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한 지역 전체가 과학단지나 공장단지로 연상했었는데 막상 가 보니 그저 평범한 시골도시다. 공장 굴뚝도 없고 특별해 보이는 연구소도 없다.
산호세는 평범한 전원도시다. 굴뚝 없는 공장 산업. 컴퓨터 등의 산업체가 많다지만 외형적으로는 식별되지 않는다. 특별해 보이는 건물도 없고 이렇다 할 간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평범한 시골 도시가 실리콘밸리의 중심이란다. 이 곳에서 미국의 활력이 나온다고 한다. 한창 불황기 때 이곳의 과학자들이 창업한 곳에서 세계 유명 브랜드의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가진 돈이 없어도 기술만 있으면 이곳에서 값싼 아파트를 빌려 창업을 한다. 국가는 이들에게 세금 감면, 창업 지원금 등의 각종 혜택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많은 과학자들이 몰려들어 특별한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어낸다.
이곳에도 한국인 집단 식당들이 있었다. 시가지의 로타리에 한국 음식점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식 뷔페집을 찾았다. 이 식당의 점심 뷔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다. 한국인들이 주류이지만 외국인들도 상당히 있었다. 그들도 한국 음식에 익숙해 진 모양이다. 한글 간판에 많은 손님들. 외국인도 낯설지 않았다.
점심 후에 실리콘밸리의 연구단지로서의 특성을 찾아 시내를 몇 바퀴 돌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한국인 식당에 들어가 물어도 모두 관심 밖이었다. 특별히 조성된 연구단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평범해 보이는 보통 건물의 사무실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업적은 평범함 속에 배태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업적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인근에 스탠포드 대학과 같은 유명대학의 인력이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스탠포드 대학
산호세 인근에 스탠포드 대학이 있다. 이 대학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역임한 리랜드 스탠포드에 의해서 1891년에 설립되었다. 그는 총명했던 아들이 17세의 어린 나이로 여행 도중 요절하자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대학을 설립했다고 한다. 스탠포드 부부는 학교를 세우면서 3가지 기준을 정했다. 첫째가 종교적으로 자유롭고 둘째, 실용적인 학문을 할 것, 셋째 세계 최고가 될 것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스탠포드는 대부분의 학문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이 대학교의 캠퍼스는 아름다운 에스파냐 풍이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인물들 상당수가 이 대학교 출신이다. 9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11명의 미국과학상 수상자들이 몸담고 있으며 미국 대학총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1987년)에서 미국내 가장 우수한 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졸업생의 평균 평점이 4.0만점에 3.36이다. 7개의 전문학부로 구성된 대학학부 학생수는 6천500명, 대학원생 6천500명에 교수가 1천300명이다. 매년 1만5000명 정도가 지원하며 그중 2천500명에게 입학 허가가 나가며 이들 중 1천600명 정도가 입학 하고 있다.
이 대학의 설립동기를 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부부가 하버드 대학 총장실을 찾았다. 그리고 총장과의 면담을 청한다. 총장 비서는 이들의 허름한 옷차림 때문에 총장과의 면담을 주저했고 그리하여 이들은 종일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면담이 허용되었는데, 그 부인이 말했다. “아들은 하버드를 대단히 사랑하였고, 여기에서 무척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약 일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제 남편과 저는 캠퍼스 내에 그 애를 위한 기념물을 하나 세웠으면 합니다.”
총장은 매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인, 우리는 하버드에 다니다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해 동상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다면 이곳은 아마 공동묘지같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부인은 동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건물 하나를 기증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총장은 이 허름한 옷차림의 부부를 보고 750만 달러가 넘는 건물들로 이루어진 하버드의 특성을 설명하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부인은 남편을 보고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이라면 아예 대학을 하나 설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여 설립된 것이 스탠포드 대학교다. 학교의 이름은 스탠포드 리랜드(Leland Stanford)씨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랜드 캐년의 장관
그랜드 캐년은 아리조나 북서부에 위치한다. 20여 억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파악되는 이 협곡은 세계 제일의 규모다. 그랜드 캐년을 처음 알린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 웅장한 경관에 감탄하여 스페인어로 ‘거대하다’는 뜻으로 그랜드캐년이란 이름을 붙였다. 당시 이곳은 아파치 인디언의 선조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기원 후 5백년 경부터 이곳으로 이주해서 살아왔다.
미국은 1856년에 그랜드 캐년을 공식 탐사했고 1869년에 다시 70일간의 탐사를 통하여 협곡의 전모를 파악하게 되었다. 여유 있게 돌아보자면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기후는 해발 7000미터의 고원지대여서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여름에도 밤이 되면 서늘하다. 여름의 평균기온은 화씨 80도 정도지만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기온이 올라간다.
그랜드 캐년은 아침 일출부터 저녁 일몰까지 하루 종일 자연의 변화가 무궁하다. 아침 해와 더불어 절벽은 황금색으로 변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협곡의 경치에 도취해서 평생동안 계곡 밑으로 흐르는 콜로라도 강까지 7번이나 종주했다고 한다.
길이 447km 너비 6-30 km, 깊이 1500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다채로운 색깔의 단층, 높이 솟은 바위산과 형형색색의 기암괴석, 도도히 흘러가는 콜로라도강이 어우러져 장엄한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9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랜드캐년의 웅장한 광경에 얼을 빼앗기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툭 친다. 돌아보니 같은 직장의 K교수다. 놀랍고 반가워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안식년이어서 부인과 관광중이란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기이했다. 그야말로 이역만리에서 하필 그 시간에 서로 부딪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사람의 인연이란 이처럼 특별하다. 제각기 다른 관광팀에 끼어 있어서 라스베가스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들도 당일 숙소가 라스베가스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라스베가스 호텔의 카지노마다 기웃거리며 K교수룰 찾았지만 헛일이었다. 한국에서 명동에서 만나자는 식의 약속이었으니 어리석지 않은가?
*상전벽해, 비 내리는 사막.
그랜드캐년의 날씨는 사나웠다. 눈과 비, 그리고 바람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랜드캐년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숙소인 라스베가스까지 계속 되었다. 이 일대가 사막임을 생각하면 매우 특별한 기후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에서 바라보니 라스베가스 호텔들이 질펀한 물속에 잠겨 있다. 사막의 모래땅이던 이곳이 모두 물속에 잠겨 있으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물에 잠긴 사막,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뽕나무 밭이 변해서 바다가 된다는 경우다.
나중에 들으니 이 비는 백년만의 일이란다. 이곳 사막은 바다가 융기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바다 중에서는 지대가 낮은 곳이어서 바닷물이 증류될 때 낮은 이 지역에 바닷물이 모여 소금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나가지 못하고 모래에 뒤섞인 소금의 끈끈한 염분 때문에 그대로 고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갑작스레 큰 비가 내리면 모래밭은 그대로 바다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흔히 불가능한 것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변해도 너무 변했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그런 변화가 지척에서 일어난다. 지진으로 말미암아 산이 무너지고 길이 끊기고 도시가 그대로 매몰된 역사는 멀리 폼페이의 경우와 근래 중국의 사천성, 일본의 고베 지진의 경우에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태풍 루사나 매미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해서 영동지방을 초토화시킨 바가 있다.
이런 자연의 엄청난 변화를 돌아보면서 허약한 우리 인간의 생명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자연에 비하면 인간의 육신은 얼마나 허약한가? 그리고 그 마음은 얼마나 흔들리는 종류인가. 그런 육신과 마음으로 구성된 인간의 생명이란 너무나 가변적인 것이고 임시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겸손하고 똔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