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 코르테스의 온두라스 원정로(1524~1525)
아스텍 제국이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tres)에게 정복되고 4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스페인인들의 멕시코 지역 지배는 점차 확대되어갔습니다. 코르테스는 국왕인 카를로스1세로 부터 멕시코 총독으로 임명받았으며, 그 일대를 정복할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코르테스는 아스텍 정복당시 활약했던 부관 크리스토발 데 올릿(Cristobal de Olid)에게 군대를 주고 오늘날의 온두라스 일대는 탐사및 정복하라고 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온두라스에 도착한 올릿은 코르테스의 예상밖의 행동을 하고야 맙니다. 바로 반란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온두라스 지역의 지배자로 군림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코르테스는 분개하여 1525년 10월, 직접 140명의 스페인보병, 3000명의 원주민 동맹군, 150마리의 군마와 돼지, 군견을 이끌고 크리스토발 올릿을 징벌하기 위해 온두라스 원정길에 나서게 됩니다.
코르테스에게 반란을 일으킨 크리스토발 데 올릿. 그는 아스텍정복당시 상당한 활약을 한 부관이었습니다.
역사가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Bernal Diaz del Catillo)에 따르면, 코르테스는 이 원정길 대수롭지 않은 반란군 토벌이라 여겼고 최대한 편안하고 안락한 여정이 될수 있도록 요리사, 식료계, 음료 담당, 과저 담당, 의사 외과의, 매 사냥꾼 곡예사, 인형극 기술자, 악사등 병사가 아닌 자들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불행하게도 온두라스 원정은 매우 지옥길 여정이나 다름없었는데, 빽빽한 정글을 길도 잘 모른채 해매야 되었고 이곳은 과거 아스텍 제국의 손길이 만힝 닿지 않았던 곳이라 '코르테스가 아스텍을 정복한것을 알지 못하는' 적대적인 원주민들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코르테스는 과거 아스텍 정복때 처럼, 원주민들을 최대한 구슬리면서 자신에게 복종하게끔 만들었는데, 일부 원주민들은 코르테스에게 복종하면서 그의 원정길을 돕기도 하였습니다.
코르테스의 원정군이 '타이샬'이라는 마야부족의 땅에 진군했을때 일입니다. 코르테스는 자신이 대동한 악사들을 동원해 찬송가를 낭독하면서 화려한 음악연주를 계시했는데, 이에 타이샬 부족의 추장 카넥(Canec)는 찬송가의 웅장함에 감동?하였고 즉시 기독교로 개종하겠다고 자처하였습니다. 또한 카넥은 코르테스의 일행을 자신의 도시로 초대하였고, 코르테스는 그의 초대를 흔쾌히 받아들였으며, 원정대는 타이샬 부근에서 사슴사냥을 할정도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사슴사냥 도중, 군마 한필이 다리에 말뚝이 박히는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원정길에 대동했던 역사가 베르날 디아스는 당시 상황을 '말의 상처부위에서 지방질이 계속 흘러내려 멈추지 않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어쨋든 이 검붉은색의 군마는 심한 부상을 입었고 이제막 떠날 채비를 할 코르테스 군대내에서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코르테스는 자신을 초대한 타이샬 부족의 추장 카넥에게 부상당한 군마를 맡기며, '최대한 성심을 다해 잘 보살펴주길 바란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카넥은 이에 동의하면서 떠나는 코르테스의 군대를 배웅하였고, 부상당한 군마는 타이샬의 마야인들에게 맡겨지게 됩니다.
이후 군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디에고 로페스 데 코고유도(Diego Lopez de Cogollugo)는 자신의 저서에서 부상당한 군마의 나중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마야인들에게 맡겨진 군마는 그들로 부터 정성스럽게 돌보아졌으나, 결국 부상의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고야 맙니다. 약조를 했지만 대뜸 군마가 죽어버린 탓에 추장 카넥은 두려움을 느꼈고, 이 군마와 비슷한 우상을 제작하기로 했습니다(분명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아이러니한 상황...)
타이샬 부족은 코르테스에게 스스로 기독교로 개종하겠다고 자청하였고, 이에 코르테스는 십자가까지 선물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추장 카넥이 코르테스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제작한 군마의 우상이 오히려 100여년이 지나, 원주민들이 믿는 기독교를 압도해 버렸습니다. 이 우상은 치만착(Tziminchac)이라는 천둥 번개의 신으로 숭배받기에 이르게 됬죠.
군마를 본딴 이 우상은 한동안 타이샬 부족에게 숭배받았지만, 1618년 프란페스코 수도회의 후안 데 오르바타(Juan de Orbita)와 바르톨로메 데 푸엔살리다(Bartolome de Fuenzalia)가 선교를 위해 마을을 방문하던 도중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후안 데 오르비타는 원주민들의 우상숭배에 분노하여 스스로 직접 몽둥이로 내려쳐 박살내 버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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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1. 코르테스는 온두라스에서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이 토벌하려는 부관 크리스토발 데 올릿은 이미 암살당해 죽은 뒤였습니다. 결국 아무성과도 얻지 못한채 멕시코로 되돌아갔습니다.
참고자료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의 신 스페인 정복의 역사
에르난 코르테스가 카를로스1세에게 보낸 편지: 다섯번째 보고서
디에고 로페스 데 코고유도의 유카탄의 역사
첫댓글 말을 신성시하는 우상이 생기다니 ^^ 잘 봤습니다.
잘봤습니다. 다만 사진에 엑박이 떠서 수정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