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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5국 9일
여행지 ;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체코
일 정 ; 2007년 5월 16일 - 5월 24일 (8박9일)
인원 ; 33명(T/C 인솔자포함)
금액 ; 1,990,000원 x 2인 = 3,980,000원
제1일 5/16 비엔나
동유럽을 갔다 온지도 벌서 2개월이 넘었다. 요즈음은 엊그제 일도 깜빡 깜빡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벌써 동유럽 갔다 온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 한다.
시차가 7시간이 나는 동유럽에 시차 적응은 이번에 잘 할 가 근심하며 12시간 이상 걸리는 비행기에서 얼마나 잘 참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비엔나행 대한항공 937편에 올랐다.
공산정권이 들어선지 50여 년 동안 동구가 얼마나 낙후됐을 가 궁금해 하며 오후1시반에 비행기 트랩에 오르니 꽉 찬 비행기의 여행객은 거의 다 우리나라 사람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여행객 수도 세계에서 무시 못 할 정도로 급상승하였다.
장시간의 비행시간에 몸이 얼마만큼 참아 줄 가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예상외로 잘 참고 다른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데 몸의 이상이 전혀 없어 여행 시발의 예감이 좋았다. 이제 다리 통증과 비행기 착륙할 때의 머리 아픈 것은 신경을 안 써도 되겠다.
집사람은 장시간 비행기에서 시간 보낸다고 쪼각 헝겊으로 퀼트를 하며 여유롭게 시간을 활용하고, 나는 신문을 보고, 주위 승객은 집사람이 퀼트하는 것을 힐금힐금 보며 스튜어디스도 와서 무엇 하냐고 물어본다. 킬트 바람에 집사람은 동네 아줌마에게 자랑할게 더 생겼다.
꿈의 도시 비엔나에 도착하니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잘 때에 저녁을 먹고 호텔에 투숙하는 시간이다.
제2일 5/17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외곽 트렌드호텔인데 아침에 일어나 호텔 주위를 걸으니 길거리 수풀에 달팽이가 무척 많다.
청정한 곳에 만 있다는 달팽이 인데 프랑스 고급 요리인 달팽이가 이렇게 많은걸 보면 잡아다 팔아먹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아침에 현지 가이드가 오지 않아 비엔나의 쉔브른 궁전 앞에서 기다리는데 여기 날씨는 써늘하다. 북유럽 여행할 때 같이 추운 날씨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아닌지 은근히 근심된다.
오스트리아 쉔브룬 여름궁전
합스브르그 왕가의 여름 별장이라는 쉔브른 궁전은 넓은 터에 궁전 뒤쪽의 정원까지 갖춰져 있어 관광객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정원의 조각상중에 이스람인의 목을 밟고 있는 것은 옛날에 원수지간이라 치가 떨렸을지 모르나 조각상에 넣은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좀 거부감이 느껴진다.
뒤 정원을 보고 나오다 가래침을 뱉었는데 앞에 가던 외국인 모자가 뒤돌아본다. 되게 무식한 놈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 서부 국립공원을 구경하다가도 눈 위에 가래침을 뱉었는데 외국 젊은이가 유심히 본적이 있어 부끄러웠는데 외국 가서 두 번 뱉은 가래침을 다 들키고 말았다.
인후에 문제가 있어 피곤하면 더욱 목이 막히고 코가 말라 무척 조심을 하려고 하여도 생리적인 문제로 변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빈의 상징이라는 슈테판 사원이나 시 청사 앞을 가도 관광객만 있고 시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음악의 도시인 비엔나는 거리에 다니는 사람은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들고 다니고 의상도 오페라 의상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다수인줄 알았더니, 도대체 음악을 하는 거리 같은 냄새가 나질 않는다.
음악도시가 아니고 일반 도회지와 별 차이가 나질 않아 정말로 음악을 하는 도시인가 하고 의심이 간다.
모차르트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멍청한 놈이 알지도 못하고 별 근심을 다 하네, 라고 비웃을까.
헝거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다뉴브강가에 있는 국회의사당
부다페스트
점심 후에 헝거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로 이동하였다. 다뉴브 강에서 크루즈에 탑승하여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이나 제일 멋있다는 건축물들을 보니 공산치하에서 헐벗었다는 말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서구라파의 대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북구 보다 더 건축양식은 앞서있는 것 같다. 동구를 여기 사람들은 유럽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고 동구라는 말을 반기는 것 같지 않다.
공산시절 우리는 동구라파를 서구라파의 대칭으로 사용해 와서 동구라는 말이 구드러진 것 같다.
우리는 다뉴브 강이라는 말에 익숙해 있는데 여기서는 도나휴강으로 부르며 더 친숙해 있다.
다뉴브강을 크루즈로 항해하는 중에 유명한 요한 스트라우스의 도나휴강의 왈츠는 계속 흘러나온다.
도나휴강의 북쪽은 구시가지로 부다, 남쪽은 신시가지로 페스트인데 남쪽은 북쪽보다 훨씬 개발이 덜 되여 있고 모든 시의 공공시설은 북쪽에 모여 있다.
발전된 서구 문명을 간직한 이런 나라들을 우리는 경시하고 그 중요도를 모른 그런 무지가 창피하다.
저녁을 현지식인 호이리게로 하는데 베이콘과 빵이다. 이 베이콘이 어찌나 짠지 독일에서 짜게나온 베이콘을 뺨친다. 우리나라 음식의 짠 것하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짜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오니 밴드 3인조가 와서 푸른 도나휴를 시작해서 우리나라 가요들이 계속 나온다. 우리가요는 이 친구들이 악보를 확인 못해서 그런지 음이 어색하다.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우리가요를 거리의 악사가 들려준다면 우리나라 관광객이 그만큼 많이 왔다는 징조다.
식당에서 이 악사에게 얼마의 팁을 줘야하는지 경험이 없는 우리는 불안하다. 차라리 노래 안 듣고 밥만 먹었으면 좋으련만 문화의 차이로 그럴 수도 없고 나는 1유로만 주었다. 제주도 팀이 5유로 주는 것 같다.
어쨌건 음식이 너머 짜서 더 먹을 수도 없고 허기를 면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제3일 5/18 타트라.
시차 적응에 실패하여 자기 전에 서울서 가지고 간 소주한잔하고 잠을 자도 새벽 3시면 깨여 체력 유지하려고 억지로 침대에서 버둥거리다 일어나 일찍 식당에 가니 일행들은 벌써 식사가 끝난 것을 보면 이들도 시차적응에 완벽하지 못한 모양이다.
조식 후에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 도나휴강을 보니 정말로 아름답다.
집사람을 배경으로 열심히 카메라 앵글을 맞추는데 실제의 아름다운 느낌이 안나온다.
마자르족을 상징하는 7개의 고깔 모양의 탑이 있는 어부의 요새를 보며 사진이 멋있게 나올 것 같아 8백만 화소짜리 디카로 열심히 구도를 잡으나 역시 예술가 들이 찍어야 될 것 같다.
집사람이 외국인과 앉아 쉬고 있는 장면을 하나 건졌다.
헝거리의 7개의 마자르족장을 상징하여 7개의 성을 지었다.
우리나라가 이조시절에 농경국가로 춘궁에 보릿고개로 허덕일 때 이들은 이런 대규모로 토목공사를 하였으니 그 국력이 대단한 것이나 50여년의 공산치하에서 주춤했을 뿐이다. 19세기에 번영했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뒤로하고 슬로바키아의 타트라로 향하였다.
타트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 독립하여 농업이 주산인 슬로바키아는 이중에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였다. 동유럽에서 아름다운 알프스라는 타트라로 향하는데 산중으로 5시간을 계속 가니 산속의 아름다운 호텔이 나왔다. 이 넓은 산에 나무가 꽉 차있는데 그 절경이 대단하다.
한참 산을 오르다보니 그 많은 나무가 온통 쓰러져 있고 일개 면 정도의 넓이가 황폐화 되였다.
몇 년 전 태풍에 이 많은 나무가 몽탕 쓰러져서 그렇단다. 땅이 기름져 나무가 뿌리를 깊이박지 않고 자라기만 하여 모처럼 태풍이 몰아치니 그 큰 나무들이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몽탕 쓰러졌으니 황량하고 안타깝다.
숲 속에 아름답게 지어진 호텔들이 나무가 몽탕 없어지니 호텔의 몰골이 처량하게 보인다.
이 산꼭대기로 길을 잡은 것은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가기 위해서는 이 타트라 산맥이 제일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타트라라는 첩첩산중마을에 위치한 그랜드호텔은 방도 넓고 일류급이다. 여기서 며칠 쉬다 가면 좋을 것 같은데 가이드가 놔둘 리 없다.
제4일 5/19일 비엘리치카
전 면적이 평야로 이루어진 폴란드는 얼마든지 곡식을 재배할 수 있는 농토가 무궁무진하니 발전 할 수 있는 여력도 얼마든지 있는 나라다.
폴란드의 광산마을 비엘리치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리스트 1호로 지정되어 있는 소금광산은 관광의 중요코스다.
집사람은 소금광산 하니 바다에 소금은 모르나 산에 무슨 소금인가하고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광산하면 석탄을 캐어 내는데 소금광산이 무언가하고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광산이니 그렇겠지 뭐 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막상 소금광산에 들어서자 ‘아니 이게 다 소금이야’ 하고 경탄해 마지않으며 광산 굴을 들어가며 벽을 찍어먹어도 짠 소금이고 계속 지하로 내려가도 모든 굴이 흙이 아니고 소금이니 놀란다. 중간 중간 광장에 소금조각도 세워놓고 벽화며 소금 성당도 있다. 진짜 옛날에 예배를 올리던 성당이란다.
소금광산을 안내하는 여자도 안전모에는 광부로 쓰여 있다. 여자광부가 얼굴이 둥그런데 집사람과 웃으며 사진을 찍으니 집사람과 비슷하게 닮은 데가 있다.
이 돌소금이 국력부강에 큰 역할을 했지만 옆의 국가에서 뺐으려고 얼마나 전투를 했겠나. 이 광산 속에 귀족들이 놀며 휴가를 즐기던 장소도 있으니 얼마나 귀하고 유익한 소금광산인가.
또 유네스코에 등록된 크라카우.
시 전체가 도시계획이 잘된 문명도시다. 버스는 시내에 들어가지도 못해 바벨성 외곽에 대여 놓고 강 언덕에 있는 바벨성은 외관만 멀리서 보고 시내 중심으로 걸어갔다.
중앙 광장 중심에 섬유홀이 크게 자리 잡았는데 지금은 여기가 시장이고 호박이나 보석류가 판을 친다. 동구에서 폴란드가 호박(Amber)이나 Garnet이 싸다.
집사람은 어김없이 호박으로 반지와 쁘럿지를 샀다. 자유시간이 조금만 더 있어도 보석과 시장 눈요기를 더 하는 건데 아쉽기는 하다.
성모 마리아 성당에 들어가니 다른 성당에서 볼 수 없는 타원형의 불빛으로 조명 되여 특이한 멋이 난다.
시청광장에 12세기에 지었다는 작은 규모의 아덜버트 성당과 시청 탑이 있는데 시청은 없다.
여기 시가지 중심에는 집을 더 지을 수도 없고 더 지을 때도 없고 옛날에 완벽하게 도시계획 되여 멋있게 지은 집들이라 옛날에는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는 최고의 도시겠으나 현세에는 차도 들어갈 수 없는 정말로 옛날의 골동품 도시다.
중앙광장에는 관광객만 바글바글하다. 광장 옆의 카페에서는 가게 앞에 의자를 놓고 죽 앉아서 요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전형적인 서구의 모습이다.
그 옛날에 수도도 아닌 외곽 도시인 크라카우를 이렇게 완벽하게 도시계획을 하여 아름다운 고급 건물로 도시 전체를 완공 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역사다.
여행 오기 전엔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는 도시 크라카우가 이런 정도니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다.
제5일 5/20 아우슈비츠 감옥
폴란드인이 자기나라에 있다고 억울해 하는 오슈비엥칭에 있는 독일이 세운 아우슈비츠 감옥을 갔다. 유태인 감독인 스틸버그가 제작한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촬영지이기도한 이 강제수용소는 우리는 유태인만 죽인 것으로 알았으나 설명을 들으니 초기에는 폴란드 정치인과 쏘련 군인들이 다량 학살되고 계속 감옥을 확장하며 각국의 유태인을 강제 이송시켜 학살한 것이다. 살상자의 2/3가 유태인이다. 6백만 유태인 홀로코스트인 것이다.
살상자 4천만의 스탈린이나 홍위병에 의한 2천만의 모택동에 비하면 6백만이란 인원은 별로겠지만 지금 전 세계를 주무르는 유태인 입장에서 더 많은 홍보를 하여 유태인만 피해를 당했다고 전 세계인에게 인식시킨 결과이다.
2차대전 말기에 허물어버린 감옥 외엔 현재 남아있는 아우슈비츠 감옥만으로도 폴란드는 좋건 싫건 간에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14세기에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무수한 인원이 죽어갈 때 흑사병의 원인이 유태인 때문이라며 무차별로 유태인을 학살할 때 유태인을 받아준 나라가 폴란드다.
유태인과 폴란드 간에 협상으로 이루어져 유태인이 다수 이동한 결과로 유럽에서 유태인의 인구밀도가 많은 곳이 폴란드이다.
일본 관동 지진 때 한국인 때문이라며 무수한 한국인이 학살당한 것 과 유사한 일이다.
지금은 미국의 뒤에서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유태인의 상술은 계속될 것이다.
흑사병의 마녀사냥에서 살아남고 흑인과 유태인을 몰아내자는 미국의 KKK단에서도 살아남고 히틀러의 유태인 종족 말살정책에서도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고난에서 살아남은 더욱더 끈질긴 생명력으로 1900년 만에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에 세우고 미국의 엄호 하에 아랍 국가를 떨게 하는 막강한 힘의 국가로 부상하였다.
아우슈비츠감옥이 있는 오수비엥칭을 떠나 여행의 백미인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가기위하여 브르노에서 호텔을 잡았다.
집에 혼자 있는 혁범이에게 한번도 전화를 못 걸어 호텔 로비에 있는 컴퓨터로 혁범이에게 서툰 영어로 한줄 이-메일을 보냈다.
전에 월남 전적지 방문 때는 호이안 비치호텔에서 열심히 여러 줄 집사람에게 영어로 썼는데 이-메일이 전송이 안 되어 실패 했는데 이번에는 이-메일 전송에 성공했다. 한글 좌판이 없는 곳에서 영어로 하자니 컴퓨터 사용하는 게 서툴다. 여기 영어자판은 Y와Z가 바뀌어 있어 한참 쩔쩔맸다.
여행객
비엔나공항에 도착하여 지금까지 관광버스로 이동하는데 버스의 앞좌석은 노인층이 뒷좌석은 제주도 팀이 고정되어 있고 우리는 중간 완충역할을 하였다.
브르노호텔에서 짐을 풀고 호텔 옆의 공터에 갔는데 우리 일행인 칠십대의 노인네들이 나와서 저녁 조깅을 한다. 지금쯤이면 여행에 녹초가 되여 호텔방에 쓰러졌을 텐데 칠십 노인들이 조깅을 한다는 것은 보통이 넘는 사람들이다. 이 노인들이 여행을 하며 열심히 메모도 한다. 조용히 말은 안하고 있는 노인들이지만 배울 점이 있다.
동구에 여행을 왔다는 것은 여러 국가를 다녀본, 여행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많은 사람이 여행하며 모이라는 시간에 어겨본 사람도 없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도 없어 여행스케줄에 이상이 없으니 단련된 사람들이다. 33명이 몰려다니면 대 부대인데 제주도 팀의 초등학생 2명까지 잘 쫓아다니며 서로 불편 없게 잘한다.
가이드
현지가이드는 각 나라 갈 때마다 가이드가 바뀌는데 서울서 간 T/C 가이드가 없으면 무척 불편을 격을 번 했다. 관광 철에 가이드가 수입이 꾀 괜찮은 모양이다. 현지의 가이드는 시간을 쪼개서 일을 해야 할 정도니 성수기의 현지 가이드의 몸값은 치솟는 모양이다.
서울에서 간 T/C 이남식 가이드가 독일에서 공부했다는데 구라파 역사지식이 해박하다. 보통지식이 아니라 전문가 수준이다. 구라파 역사지식이 약한 우리에게는 이런 가이드가 걸린 것이 복이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브르그 왕가, 발칸반도의 티토, 이차대전의 히틀러, 서양의 비사 등 책을 한번 읽어서 이야기하는 수준이 아니고 통달하여 전문가적 입장에서 결론까지 내는 수준이니 적당히 안내만 하는 가이드와는 완연히 차이가 난다.
세계 1차대전 까지 합스브르그 왕가가 오스트리아 제국을 지배하고 2차대전에 체코는 폴랜드를 뮌헨조약에서 히틀러에게 양보하고, 체코왕족이 단절되고 유럽의 각 왕가나 귀족들의 이전투구 하는 역사의 이야기책을 읽어보면 참 흥미 있을 것 같다.
이번 여행도 버스의 이동거리가 멀어 버스 속에서 몇 시간씩 가야 하는데 이 많은 시간을 가이드가 자기의 지식을 다 풀어 놓으니 얼마나 많이 이야기 했겠나, 피곤하여 자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참 유익하게 잘 경청하였다.
예쁘지도 않은 얼굴에 이런 해박한 지식을 갖이고 있으면, 가이드가 얼마나 많은 수입이 될지 모르나 자기 인생의 길을 다른 길로 들어서야 될 것 같다. 자기의 임무인 가이드일은 완전히 하려고 두세 번 첵크하는 것은 필요이상으로 열심히 하여 오히려 피곤하게 하는 면도 있다.
옥에 티는 그 많은 시간에 관광객 개인의 소개할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 여행객간 서로 정보파악 하느라고 신경을 쓰는 일도 생겼다.
체코 프라하 관장
프라하 관장에 있는 12사도 시계
제6일 5/21일 프라하
체코 현지가이드와 만나 프라하성에 입성하였다. 체코의 성이 이렇다는 것을 확인하며 천문시계까지 오니 12시 종이 울린다. 종이 울릴 때 시계상단의 문에서 12사도가 나와 회전을 한다는 시계다.
세계에서 오직 하나의 시계만을 만들고 이 아름다운 시계를 더 만들지 못하게 왕이 시계를 제작한 기술자의 눈을 멀게 하였다는 시계다.
이 시계 앞에 왔는데, 종소리는 나는데 시계가 어데 있는지 찾지를 못하고 종소리가 끝날 때에 이게 시계로구나 하고 찾았을 때엔 이미 12사도가 회전을 끝낸 후이다.
어찌나 서운한지 현지 가이드가 원망스럽다.
천문시계가 시청사 탑의 꼭대기에 있으면 얼른 찾았는데 하단 부분에 있어 밑에 있으리라곤 생각 못한 것이 불찰이긴 한데 현지 가이드가 중요도를 알고 또 12시 정각에 왔으면 시계를 목표로 안내해야 하는데 일행을 광장으로 몰고만 간다.
프라하 최대의 번화가이고 명품 판매소가 즐비한 체코의 바츨라프광장,
68년 ‘프라하의 봄’ 이라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하고 시민의 봉기로 민주화 꽃이 피였다고 대서특필 되였던 프라하 광장,
쏘련에 의해 프라하의 봄은 즉시 제압당했지만 지금 이 광장엔 관광객의 홍수와 고식건물에 상점이 빽빽하여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30분 자유시간을 주었을 때 광장 구경은 뒤로하고 우리는 스왈로브스키 매장으로 직행하여 집사람이 쁘럿치를 샀다. 집사람이 오면서 이 매장에 유심히 관심을 두었던 모양이다.
황금소로라고 도시 안엔 살지 못하고 변두리에서 연금술사와 금은 세공사들이 살던 골목거리로 갔다. 지금은 관광의 한 명소로 자리매김하여 입장료도 받는다. 빈민들이 살던 곳이라 대단할 것도 없지만 지금은 조그만 상점들이 자리 잡고 관광객에게 물건을 파는데 물건이 많거나 싸지도 않다.
프라하의 야경을 보기위하여 구시가 천문시계 앞을 또 지나게 되였다. 오전에 우리 현지 가이드였던 아가씨가 시간제로 했는지 우리와 결별하고 다른 한국팀의 가이드를 하여 까를교 앞에서 우리와 마주쳤다. 서울 T/C가 저런 정도면 돈을 많이 벌 거란다. 가이드란 직업도 이젠 한몫하는 직종인 모양이다.
까를교 끝인 구시가의 출입문이며 화약저장소였던 화약탑 앞에서 만나기로하고 자유시간을 갖었다.
유럽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까를교는 볼타바 강위에 있는데 처음 프라하 성을 보고 다리 밑을 거쳐 중간에서 다리로 올라 올 때는 아름답다고 하는 다리를 못 느꼈는데, 위에 올라와 전체적인 다리를 보고 강을 보니 아름답기는 하다.
다리위의 조각품들이 공원의 조각상 같이 다리 양편에 늘어서 있는데 다리에 공을 분수이상으로 들인 것 같다. 다리위엔 개인 조각품을 파는 상인들과 집시의 밴드까지 있고 저녁인데도 관광객이 들이닥쳐 다리 위에서는 다리라고 느껴지지 않고 시장바닥 같다.
근처에 보석상들이 많아 폴란드에서 못 구한 호박을 사려고 상점에 들어갔더니 폴란드보다 호박이나 가넷이 약 30%정도 비싸다. 먼저 가격을 알고 컾스버튼이라도 살려고 하니 마음이 동하지 않아 못 사고 말았다.
체코의 맥주가 세계적이란다. 미국의 버드바이져 맥주도 체코가 원산지란다. 체코의 유명한 맥주4병을 사서 맞을 보았는데 나는 맥주의 감별사가 못 되는지 얼마만큼 좋다는 감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보다 오히려 이 체코의 프라하에 오니 오페라 구경하라는 전단이 많고 복장도 예술인 차림의 복장이 많이 눈에 띠는 것을 보면 비엔나 보다 프라하가 음악에는 더 앞서 있는 것 같다. 60년대 서울에서 키타들고 보헤미안 노래를 부르던 본 고장이 체코인 것을 이제 깨달았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답게 프라하가 유럽의 중심이 되였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프라하와 비엔나가 유럽을 다스렸다는 것을 우리는 등한히 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되여 더 돌지 못하고 화약탑으로 오니 일행이 다리가 아픈지 모두가 동상 앞에 앉아서 갈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 다리 위에서 프라하성 야경을 보는 것도 그렇지만 천문시계 앞에서 프라하 광장의 시장건물 야경도 멋있다. 조명이 흐려서 그런지 휘황찬란한 서울거리만 못한 것 같은데 프라하 야경이 명소란다.
제7일 5/22일 체스키크롬로프
동구의 문자들은 독일어 비슷한데 대충 영어로 읽어도 도무지 뜻이 안 통한다.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봐도 로마자이긴 한데 무엇이라고 썼는지 모르겠다. 도시의 이름도 못 읽겠다. 돈의 단위도 각 나라마다 틀려 How much euro dollar? 하는 말 외엔 다른 도리가 없다.
다리위에서 본 체스키크롬로프
체스키크롬로프.
성 탑에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체스키크롬로프라는 마을을 내려다보니,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동화에 나오는 중세의 아름다운 마을 그대로다.
13세기에 만들어 졌다는 마을이 하나도 파괴되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있다는 것은, 현대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최대의 행운으로 봐야한다.
지붕은 빨간 테라코타 기와와 주택은 중상급 정도의 시민이 살 수 있는 고급 주택으로 마을을 S자로 흐르는 볼타바강을 끼고 들어서 있는데 성탑과 어우러져 정말로 멋있는 소형 도시다.
도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여행자는 꼭 한번 들리라고 권하고 싶은 소도시다.
짤쯔캄머굿
오스트리아의 호수도시 짤쯔캄머굿.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산이 아름다운 것은 익히 알은 바이다. 호수를 끼고 짤쯔캄머굿으로 계속 가는데 호수와 산의 경치가 잘 어울려져 있고 가끔씩 가다 나오는 마을이나 산의 집들도 아름답게 어우러져 오스트리아로 휴양오라고 유혹하는 게 몸속에서 느껴진다.
호수에서 배를 타고 주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이 넓은 호수 반대쪽에 배를 대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부두 근처의 상점들을 구경하고 쇼핑을 하였다. 무슨 바람으로 타조알 공예도 샀다.
도대체 이 부두 마을은 휴양하러 오는 마을 인지 옛날 어촌인지 조그만 마을은 맞는데 마을에 비해 제법 상점도 많고 숙박시설도 제법 보이고 사람들도 정갈하고 깨끗하게 차려입었으며 조그만 학교도 보인다. 조그만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모두 소득수준이 높은 것 같아 어떻게 여유롭게 사나 궁금하다.
저녁식사에 가이드가 일행에게 맥주 한 병씩을 냈다. 미아가 되어 점심을 굶은 우리 부부의 문제도 발생했고 여행도 끝나가는 중이라 인심을 쓴 것 같다. 우리가 어울린 식탁에 잉크회사 이광모사장이 합석했는데 소주를 좋아해 우리가 서울서 가지고 온 소주까지 합하고 옆 좌석의 ‘제수씨’ 하며 권씨 부부까지 끌어들여 한잔 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니 모두다 흥이 났다.
이번 여행에 집사람이 나름대로 여자들 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보기도 좋고, 자기식대로 안하면 분위기를 망치기 일쑤인데 오히려 분위기를 잡아가니 천만 다행이다.
카라얀 저택앞 다리에서 촬스브르크성을 배경으로
제8일 5/23일 짤스브르크
환갑여행에 서구라파 관광할 때 한번 들른 짤스브르크이기 때문에 생소하지가 않다. 전에 들른 길을 그대로 답습해서 걷는 것이다.
모차르트를 팔아먹는 도시 짤스브르크. 모차르트의 탄생, 생가, 외갓집까지 성당도 모차르트의 세례 받은 성당하며 안내를 한다. 저녁이라 세계에서 제일 작다는 상점이나, 골목 상점의 물건을 표현하는 조형물 간판이나, 명품거리를 둘러보았다. 이스터데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 치장하는 겨란 만 파는 상점이 여럿 있는데 상점도 크고 알록달록한 겨란 도 많아서 인상적이라 카메라에 담았다.
아침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인 미라벨 정원으로 갔다. 참 예쁘게 정리된 정원은 전에 왔던 곳이라, 카메라의 포인트를 알아 일행에게 전체적인 배경으로는 위쪽이 좋고 분수대나 꽃은 저쪽이라고 하니 시키는 대로 모두 한 컷 씩 한다. 영화에서는 백작집의 정원으로 나오는데 참 멋있게 봤다.
20세기의 명지휘자 카라얀 저택 앞의 강다리에서 짤스브르크성을 배경으로 해서 한 컷 해도 멋있게 나온다. 환갑 때 왔을 때는 정원을 보고 경탄을 하고 황홀해 했는데 지금 보니 그때만큼 감흥이 안나온다.
장식 겨란
멜크 수도원
모든 일정을 끝내고 비엔나 공항으로 가는 길에 시간도 있어 가이드가 멜크수도원을 추가로 안내한다. 일정 외에 관광도 기분 좋거니와 입구에서 보는 멜크수도원의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입구로 들어가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규모가 상당히 커서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외딴 건물에 기도하는 곳 정도로 생각했는데 성을 보는 건지 대형 성당을 보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2층은 입장료를 별도로 받아 생략하고 다시 나오는데 수도원이 아니라 공원을 구경하고 나오는 것 같다.
제9일 5/24일 귀국
비엔나에서 어제 밤 9시에 인천행 대한항공을 타고 잠을 청하려고 애를 썼다. 집사람이 우리 앞좌석에 한 남자를 가리키며 길을 잃어버렸을 때 전화도 안 빌려준 가이드라고 하여 찬스 봐서 한마디 해 준다고 하다가 잊어버렸다. 외국에서 길을 잃어버려 헤매는 자국민을 보고 가이드란 자가 외면을 했다는 것은 가이드의 자격이 없는 놈이다. 집사람도 피곤한지 비엔나 갈 때는 킬트를 하더니, 올 때는 자려고 애를 쓴다.
이번 여행은 등한히 생각했던 동구에 대해서 얻어듣고 깨달은 바가 많다. 여행도 즐거웠고 더욱 집사람이 일행과 잘 어울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즐겁게 분위기를 띠워 여행다운 여행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