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 무법가득분 (無法可得分)>
- 정해진 모양이 아니라서 없다고 한다
이분에서는 진리에 대해 설법 하십니다.
아무리 진리일지라도 얻었다고 하면 벌써 집착이 생기므로 ,
수보리존자는 '얻은 바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의 말이 옳다고 하고 덧붙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보리여,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에 있어 어떠한 조그마한 법도 가히 얻은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하느니라"
이를 자세히 풀어보면, 부처님께서 처음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한 생각과 집착을 내셨다면
그것을 '얻었다' 라고 하셨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에 대한 집착이 없으셨으므로 '얻은 것이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실로 어떤 사람이 자기가 '견성했다' 라는 생각이 남아 있으면 그는 아직 견성하지 못하였고,
우리가 심중에 '내가 복을 닦았다, 혹은 보시를 했다' 라는 생각이 남아 있으면 그것은 올바른 복덕과 보시가 될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집착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탁 털어버려야 참된 복덕, 참된 보시가 된다 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집착으로 인해 생긴 응어리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로 불상 조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조선중기 안동의 봉정사에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사건이 일어날 무렵 그 절에 불상 조성이 있었습니다.
불상 조성을 하고 난 뒤 매일 스님들께서 자고나면 싸움질을 하며 머리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스님께서 객방에서 조용히 관찰을 해 보았답니다.
놀랍게도 한밤중이 되자 법당문이 열리면서 흰소복을 한 여인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잠시 뒤 스님들께서 잠에서 일어나 싸움질을 해대다네요.
객방에서 이를 살펴본 스님께서 얼마전 봉정사 불상 조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에 스님께서 법당문을 잠그시고 불상을 도끼로 쪼개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불상속에 흰 소복이 나왔습니다. 스님은 그 소복을 태워버리니 이후 봉정사에는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합니다.
실로 불상조성을 하는 부처님 복장에는 경책이나 진언 등을 넣어야지,
불자들의 그릇된 집착이 담긴 물건은 넣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불사를 할 때에도 불자들은 어떤 과보도 바라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를 해야 합니다.
진리는 아무런 걸림이 없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한없는 복덕도 나오고 영광도 생기고 부처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엇인가가 있고 걸림이 있으면 안된다 합니다.
없기 때문에 부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인사 선원방 방장으로 계시는 효담스님께서는 이런 말을 하시었지죠... 깨달음이 따로 있습니까?
” 무심(無心)이 곧 안심(安心)이다 “
생각하지 않으면 그게 깨달음이고 그게 부처이고
그게 본래면목 아니겠어요? 라고요...
효담스님이 하셨던 말씀과 일맥 상통하는 듯 해서 옮겨 봅니다.
그런데, 법이 없다 하시면 어떻게 닦고 증득하고 부처라는 차원까지 갈수 있는가?
이것 또한 마찬가지라 합니다. 어떤 것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나투어 내고 최상의 차원까지 갈 수 있는 것이라...
그래서 진리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합니다.
없기 때문에 진리요 법신 부처님이라 합니다.
나무 금강반야바라밀경
<핵심 사항>
TO DO:
진리는 아무런 걸림이 없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 아무런 집착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행하여 참된 복덕, 참된 보시가 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수보리 백불언
"세존 불득 아누다라삼먁삼보리 위부소득야?"
불언
"여시여시 수보리 아어아누다라삼먁삼보리
내지무유소법가득 시명아누다라삼먁삼보리"
이것이 무엇 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