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그림책으로 되살아난 권정생의 동심
『강아지와 염소 새끼』(권정생 시, 김병하 그림, 창비 펴냄, 2014)
1. 시와 그림의 만남, 시 그림책
옆집 개는 풀 죽은 듯 앞발 위에 턱 괴고 있다가도 누가 지나갈라 치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컹컹 짖어 댔다. 그때마다 목줄은 당겨져 목덜미를 가로 눌렀고, 그걸 보는 내 목까지 갑갑했다. ‘저것 좀 끌러 놓으면 안 되나’ 하다가도 나한테 달려들면 어쩌지, 차라리 묶여 있는 게 안심되었다.
하루 종일 졸다가 맴돌다가 먹다가 짖어 대다가 또 졸다가…… 밥그릇을 넘보는 고양이나 참새도 귀찮다. 집으로 돌아온 식구들이 차례로 쓰다듬어 주는 손길만이 살아가는 힘이다. 자기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종속된 존재는 슬픈 눈을 가졌다. 밤같이 까만 눈동자와 까만 털을 가진 염소 새끼는 풀밭에 매인 채 무얼 보고 있는 걸까? 그림책 『강아지와 염소 새끼』 표지에서도 순해서 더 슬퍼 보이는 그런 염소 한 마리를 만난다.
『강아지와 염소 새끼』는 권정생의 동시에 김병하가 그림을 그린 시 그림책이다. 특유의 재치 있는 해학이 인상적인 캐릭터와 함께 되살아나 ‘권정생의 동시가 아이들 앞으로 바짝 다가왔구나’ 하는 느낌이다. 시의 언어가 군더더기 없는 만큼 세부 묘사를 생략한 절제된 그림과 어울려 간결하다. 권정생의 작품이 그림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처음은 아니다. 『강아지 똥』이 그림책으로 선보인 이후로 『훨훨 간다』, 『오소리네 집 꽃밭』, 『아기 너구리네 봄맞이』 같은 그림책은 탄탄한 서사 구조와 그림이 어우러져 우리 창작 그림책의 수준을 높인 바 있다.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한 시 그림책은 시나 전래동요를 그림책 안에 담아낸 것을 말한다. 시를 그림책으로 만들어야 할까? 개인적으로 동시집 안의 그림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다. 시는 읽으면서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문학이다. 그런데 시 감상을 가로막는 그림을 친절하게도 바로 옆에 제시하면 독자는 상상하며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 볼 기회
를 빼앗긴다. 왜 일반 시집에는 없는 그림을 동시집에는 고집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동시를 한 편 들려주고 떠오르는 것을 그려 보라고 하면 어울리는 그림들을 어찌나 잘 그려 놓는지 그 재기발랄함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제일 좋은 동시집은 ‘그림 없는 동시집’이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러나 그림책은 조금 다르다.
원종찬은 백석, 윤동재의 동화 시 또는 이야기 시는 운율과 재미로 인해그림책으로 꾸며도 좋을 ‘장르 혼합의 독특한 형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1). 기왕에 나온 백석의 『여우난골족』, 『준치 가시』, 윤석중의 『넉 점 반』, 제주도 꼬리따기 노래 『시리동동 거미동동』, 고은의 『5대 가족』 등의 시 그림책은 그림책의 새로운 성취를 보여 주었다. 그전까지 동시 한 편에 어울리는 그림 한 점씩을 엮은 동시집은 있어도 시 한 편을 여러 장의 그림책 안에 펼쳐 늘어놓는 것은 낯설면서 새로웠다. 사실 동시와 다른 장르의 결합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백창우는 이원수, 권태응, 이문구, 김용택의 동시, 어린이시 등에 곡을 붙여 요즘 아이들의 정서에 맞는 장르 혼합을 시도하였고 근래에 창작되고 있는 동시들도 부지런히 노래로 지어 부르고 있다. 외국의 사례에서 모리스 센닥이나 랜돌프 칼데콧, 찰스 키핑도 시나 전래동요를 가지고 그림책을 만들었다. 동시가 아이들에게서 멀어진 지금에 있어서 시 그림책이나 백창우의 시 노래는 한걸음 아이들 앞으로 다가선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시는 음악성 못지않게 회화성도 가지고 있다. 시 그림책은 시에 그림을 입힌 것이 아니라 시와 그림이 결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서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2. 놀이로 표현된 동심의 글 서사
권정생의 동시 「강아지와 염소 새끼」는 읽을수록 정겹고 동심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시는 동시집 동시 『삼베 치마』2)에 수록되어 있는데, 동화작가로 알려진 권정생이 전쟁 직후였던 열다섯 전후의 나이에 문학의 꿈을 키우며 썼던 시 중 하나이다.
어릴 적 억이랑 주야랑 내 이웃들 재미있게 여기다 적었습니다.
열다섯 전후의 어릴 적 그때의 생각은 어땠을까
슬픈 일 기쁜 일 많았습니다.
동시집 『동시 삼베 치마』(문학동네, 2011)
동시집 맨 앞에 남긴 위의 말처럼 권정생의 초기 시는 소년의 감수성으로 대상을 새롭게 보고 재미있게 쓴 시들이 많다. 동시 「강아지와 염소 새끼」에서 ‘“에에에 엠 요놈 죽이인다!” 염소 새낀 밧줄을 떼려고 기를 쓰지’에서 그 무렵 권정생의 펄펄 살아 있는 원초적 힘과 같은 정서가 느껴진다. ‘강아진 좋아라고/용용 놀리고/염소 새낀 골이 나서/엠엠 내젓고’는 소리내서 읽다 보면 리듬감이 살아 있고 말맛이 느껴진다. 지금은 자주 쓰지 않는 우리 고유의 흉내 내는 말을 잘 살려서 생동감과 새로움을 준다.
사물을 인식하는 시선의 남다름은 ‘냐금냐금 먹음쟁이 염소 새끼’, ‘꾀보쟁이 강아지’라는 염소나 강아지가 가진 속성을 깊은 통찰로 파악하고 각각의 성격을 부여한 것에도 나타난다. 김상욱은 ‘동화 속 인물로 등장하는 동물들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동물 자체가 아닌 것처럼 인물이 되는 순간 동물들은 인격을 부여받으며, 특정 인간의 전형화된 성격을 표현하는 간접화된 대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였다.3) 놀자고 다가오는 ‘강아지’와 듣기 싫다고 못 본 체하는 ‘염소 새끼’는 각각 어떤 인물을 전형화한 것일까?
고삐에 매어서 제 가고 싶은 대로 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풀밭에 앉아 풀을 뜯거나 멍하니 먼 산만 바라봐야 하는 염소의 모습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고 부모의 과잉 기대에 얽매여 사는 아이를 닮았다. 반항하거나 저항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은 채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아이다. 뚱해 있는 염소 새끼의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어제처럼 놀자고 치근대는 강아지는 자기 본성대로 자유분방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닮았다. 주변에 비슷한 아이가 있다. 주눅 들고 무력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아이는 자주 고립되어 있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러다가 누가 놀리기라도 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주면 숨겨진 분노가 폭발하면서 ‘염소 새끼 봐아라/정말 골이 났네/쬐끄만 뿔대가리 쑥 내밀고/꽉 떠받았지’처럼 공격성을 드러낸다.
한참 놀리고 겅중거리고 싸우는데 느닷없이 제트기가 호통치며 나온다. 이 장면은 유쾌한 상상력으로 밝고 활기찬 반전을 만들어 냈다. 제트기가 날아가면서 내는 귀를 찢을 듯 하는 굉음은 그대로 폭력적이다. 귀가 먹먹해지고 온몸에 전율이 일며 곧 내게 돌진할 것 같은 공포감이다. 까불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존재와 억눌리고 자유를 억압당한 존재가 대결 구도로 있다가 어려움에 직면하고 함께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시적 발상의 참신함과 비유로 생동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동심의 정서로 눈에 보이듯 순수한 정서를 선명하게 그려 낸 것도 눈에 띈다. ‘“엄마야!”/강아진 귀를 오므리고/깨갱 깽 달아났다//염소 새끼도/눈이 뗑굴/하늘을 쳐다봤다’라는 표현에서 보듯 읽는 이에게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 실감을 안겨 준다. 아이들에게는 놀이 세계에 한참 빠져 있다가 외부 세계로 나오는 것도 간단하다. 제트기가 한 번 지나가면 ‘골대가리’도 ‘다 잊어버’리고 갈등이 종료된다. 동심이란 무엇인가? 1교시 쉬는 시간에 치고받고 싸우다가 수업종이 치고 한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다음 쉬는 시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함께 노는 게 아이들이다. 다음의 동시는 「강아지와 염소 새끼」가 시인의 어떤 마음 바탕에서 나왔는가를 보여 준다. 화자는 아이들의 싸움과 앙금으로 남은 미움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말끔하게 잊히는 동심이 드러난다.
기덕이가 쑥떡을 주었다/보리고개 겨우 넘기고//배가 너무 고팠던 그 때/
칡뿌리 때문에/나하고 싸움했던 기덕이가//창포꽃 피는 단오날/쑥떡을 주었
다//기덕이하고 싸운 것/말끔 잊었다//그 단오날이 그립다
권정생, 「쑥떡」 전문
3. 성격이 다른 두 캐릭터가 보여 주는 그림 서사
그림책에서 그림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시 그림책도 다를 바 없다. 앞표지에는 풀밭에 앉아 있다가 막 일어서려는 염소 새끼가 보인다. 입에 미소를 짓고 꼬리를 살짝 들어올린 것이 우선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고개를 살짝 모로 두고 귀를 모은 것이 소리 나는 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시선을 따라가 보자. 풀밭을 따라 뒤표지까지 활짝 펼치면 저만치에 강아지가 물구나무를 서며 장난을 치고 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도 두둥실 경쾌하다. 앞으로 펼쳐질 강아지와 염소의 이야기도 이렇게 경쾌하겠구나.
속표지의 흰색 배경은 까만 염소와 대조되는 단순하고 강렬한 효과를 준다. 흰 배경에는 주인공의 그림자인 듯 회색빛이 어른거리는데 자칫 허전해 보일 수 있는 배경의 밋밋함에 율동을 만든다. 흰 바탕으로 일관하던 화면이 마지막에 이르러 갑자기 채색을 두루 입힌 마을 전경을 펼침면에 보여 주며 분위기를 쇄신하고 있다. 서사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해 질 녘의 노을 물든 하늘과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골마을풍경이 소박하다. 알고 보니 이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은 권정생이 평생 살았던 조탑리 마을의 빌뱅이 언덕이다. 작가 자신도 다음과 같은 시에서 그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노래했다. 마을의 풍경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권정생의 이미지를 그림에 오버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해거름 잔솔밭 산허리에
기욱이네 송아지 울음소리
찔레 덩굴에 하얀 꽃도
떡갈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하늘이 좋아라
해 질 녘이면 더욱 좋아라
권정생, 「빌뱅이 언덕」 부분
주인공이 강아지와 염소 새끼인 만큼 인상적인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도구의 차이는 그대로 성격의 차이를 뚜렷이 보여 준다. 온 몸이 검은 염소는 유분 섞인 콩테로 진하고 연하게 명암을 주었다. 콩테는 강한야생의 느낌을 주면서도 어린 염소기 때문에 부드러움도 잃지 않아야 하는 염소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재료다. 갈색 파스텔로 드로잉한 강아지는 가볍고 발랄한 모습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언덕 위에서 두 캐릭터가 뛰어오르고 잡으려고 용쓰는 움직임의 역동성이 다양한 동작으로 표현되었다. 귀여운 캐릭터의 탄생은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것이다. 등에 올라타고 귀를 물고 하는 강아지는 친구를 약 올리며 못살게 구는 나쁜 아이로 볼 수도 있다. 약이 올라 씩씩거리고 밧줄에 매달려 괴로워하는 염소 새끼의 표정에서 아이들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4. 그림책에서 시와 그림의 관계
동시 「강아지와 염소 새끼」는 가만히 읽어 보면 그대로도 그림이 그려지는 회화성이 있다. 시 그림책 『강아지와 염소 새끼』는 이미 시 원문이 있었고 그림책으로 옮겨 왔기 때문에 우선은 글이 그림을 이끌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림은 주로 서사의 구체적인 실감을 더하면서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의 연과 행을 해체해서 재배치하고, 그림이 염소와 강아지의 움직임을 리듬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각각의 리듬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전체 서사의 리듬을 새롭게 형성하였다.4) 가령 제트기가 갑자기 호통 치며 나오자 글은 ‘엄마야! 강아지는 귀를 모으고 깨갱 깽 달아났’고 ‘염소 새끼도 눈이 뗑굴 하늘을 쳐다’보면서 각기 독립적으로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진술한다. 글도 면을 나눠서 제시했다. 그러나 그림은 다른 이야기를 보여 주고 있다. 놀랍고 무서운 상황에서 강아지는 염소 밑으로 숨고
염소는 강아지를 감싼 모습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서로가 바람막이가 되어 주며 현실을 견딜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그림이 말하고 있다. 자기를 놀리고 골나게 했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는 보듬는 성숙한 마음이란 사실 작가 권정생의 마음이기도 하다.
시의 빛은 그림 작가의 프리즘을 통과하며 여러 결의 이야기를 펼친다. 그것은 때로는 시와 거리를 많이 두기고 하고 가깝게 두기도 한다. 동시에 없는 내용을 그림으로 보여 주는 경우가 몇 군데 나온다. 가령 골이 난 염소가 밧줄을 떼려고 한참 기를 쓰고 들이받는 시늉을 하다가 마침내 말뚝이 쑥 뽑히는 장면이 글 서사 없이 펼침면 가득 정지화면처럼 제시된다. 여기서 독자들은 염소와 강아지의 표정처럼 놀라기도 하면서 해방의 통쾌함을 한껏 맛본다. 처음 도입도 동시에는 없는 내용이다. 앞면지를 넘기면 서지정보 위에 조그만 그림이 보인다. 고삐에 매인 엄마 염소와 새끼 염소가 어디론가 끌려가면서 뒤를 돌아본다. 분할된 면을 지나, 그들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엔 주인공 염소 새끼가 눈감은 채 떠난 엄마를 생각하며 슬픈 듯고개를 묻고 있다. 게다가 묶여 있기까지 하다. 이 그림들은 뒤 이어 놀자고 등장하는 강아지를 염소 새끼가 상대하기 싫은 기분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독자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동시에서는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염소야 염소야 나랑 노자야.”/강아지가 깡충깡충/다가왔지//“듣기 싫어.”
/냐금냐금 먹음쟁이/염소 새끼 못 본 체하지
권정생, 「강아지와 염소 새끼」, 부분
이렇게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체 글 서사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독자로 하여금 글의 이해를 돕고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그림은 시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의 바람직한 관계를 보여 준다.
동시에서 연이어 두 번 반복하는 “누가 이기이나”는 그림책에서는 장면을 바꾸며 세 번 반복되고 있다. 처음엔 옳다구나 하며 염소 새끼가 바로 들이받을 것처럼 하고 강아지는 놀라서 달아나는 표정이지만 두 번째 면에서도 안 잡히고 세 번째 면에 이르러서는 벌써 ‘누가 이기이나’가 잡기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즐거운 표정이다. 이미 줄이 풀리고 뛰어다니며 골대가리는 다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림책에서는 제트기가 지나가고 한참 지나서야 ‘골대가리 다 잊어버렸다’고 말해 김이 빠진다. 동시 원작에는 제트기의 출현으로 인해 놀란 가슴에 ‘골대가리 다 잊어버렸다’라고 하는데 줄이 풀리는 반전을 새로 끼워 넣다 보니 그림 서사와 글 서사가 맞지 않는 오류를 빚었다. 제트기의 등장이 주는 강한 공포는 전쟁으로 겪었을 이 체험이 시를 쓴 권정생에게는 절실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일 수도 있다. 그래서는 골대가리 다 잊게 하는 개연성을 획득하기 어려워진다. 독자의 정서나 감정을 유발하기 위한 그림 작가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동시에 없던 그림 서사가 전체 서사의 결말을 확장하기도 한다. 원문에는 ‘골대가리 다 잊어버렸다’가 한 번 나오고 그것도 갑작스러운 제트기의 출현으로 성내던 일이 잊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림책에서는 세 번 반복되며 그림 서사를 변주한다. 그림에 의하면 두 번째 골대가리를 잊어버린 이유는 주인인 듯싶은 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참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골목길 엄마의 저녁 먹으라는 외침은 싸우던 판이건 시합에 이겨서 신 나던 판이건 단번에 상황 종료를 알리는 것처럼. 골대가리 다 잊어버렸다는 글과 나란하게 그림 속의 티격태격하던 염소와 강아지는 사이좋게 웃으면서 서로를 바라본다. 다음 장에는 어스름한 저녁, 면지 오른편 위에 하얀 조각달이 걸리며 그 아래 ‘다 잊어버렸다’는 글이 한 번 더 반복된다. 글을 읽으며 집집마다 불이 켜진 중에 멀지만 유독 환한 집 마당에 눈길이 머물고 ‘아하! 골내던 것을 다 잊어버린 이유가 저거구나’ 싶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할아버지가 염소 새끼를 쓰다듬어 주며 “염소야, 이 하루도 잘 보냈구나.” 하셨을 것 같다. 이것은 시에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작가 권정생의 작고 가련한 것에 머무는 섬세한 결을 읽어 낸 그림 작가의 눈 밝은 재구성 덕분이다.5) 권정생만큼은 삶의 모습이 작품과 따로 있지 않았던 탓에 작가를 작품 내에 참여시키는 이 부분이 도드라져 보이지만은 않는다. 강아지와 염소 캐릭터 둘만으로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그림책에 확장된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작품에 밀도를 높였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등장과 마을 속으로의 복귀는, 한껏 발산된 해방의 환희를 서둘러 진정시키고 만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5. 아이들에게 전하는 재미와 감동
그림 작가 김병하는 권정생의 생가를 답사한 후에 “이 시의 중심이 ‘놀이’가 아니라 ‘마을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두 장면을 끼워 넣었다. 현재진행형인 지금의 아이들이 작가의 이러한 의도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두 캐릭터가 벌이는 유쾌한 반전이 넘쳐나는 재미에서 갑자기 진지하게 사람사는 세상의 따뜻함으로 넘어가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와 따뜻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 것은 아닌가. 아이들은 밥 먹고 노는 일이 하루 일과다. 숨 가쁘게 도망 다니고 쫒는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기쁨과 자유와 만족을 경험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어른들이 매어 놓은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여 자유로운 몸의 감각을 잃어 가며 아이들이 답답해하고 있는 것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위안을 주는 것이 지금 우리 어린이문학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오덕이 “동시는 웃음과 재미와 귀여움을 손끝으로 만들어 내는 재치가 아니라, 보다 커다란 감동의 세계를 창조하는 시”6)라고 말한 것처럼 시 그림책 『강아지와 염소 새끼』는 ‘웃음과 재미와 귀여움’의 시를 그림이 ‘감동의 세계’ 로 끌어올린 성취를 보여 주었다. 강아지와 염소를 앞세우고 뒷짐지고 가는 할아버지(권정생)는 이제 정겨운 마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그림책 속에 있는 ‘생각과 성격이 서로 다른 친구 간의 우정’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 주는 마을과 어른의 돌봄’이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도 있기를 바란다.
1) 원종찬 『동화와 어린이』, 창비 2004, 115쪽.
2) 1964년 권정생 선생님께서 한 자 한 자 종이에 직접 쓰고 실로 묶어서 엮은 시집. 사후에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되었다. 권정생 문학의 시원이 담긴 책. 안도현은 이 책의 출간이 “동화에 주목하느라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던 시세계의 전모가 삼베 치마의 출간을 계기로 풍성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3) 김상욱 『어린이문학의 재발견』, 창비 2006, 359쪽
4) 그림책의 글과 그림은 시간적인 연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각각의 리듬을 가질 수 있으며, 이 둘의 리듬이 합쳐져 그림책 전체 서사의 리듬을 형성한다(페리 노들먼 『그림책론』, 김상욱 옮김, 보림 2011,438쪽 참조).
5) 김병하는 소년 권정생의 마음을 고스란히 그림책으로 옮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선생님이 사시던 조탑동 마을을 그림책 배경으로 들여오고, 해 질 녘에 강아지와 염소를 마중해 집으로 데려와 돌보는 일을 선생님께 맡겼습니다. 그림 속 언덕 아래 주황색 지붕의 작은 집은 선생님이 실제 사시던 집입니다(그림책 『강아지와 염소 새끼』 가 만들어진 이야기, 해설 인용).
6) 이오덕, 『시정신과 유희정신』, 창비 1977.
박은경
2011년 〈어린이와 문학〉 동시 추천 완료되었고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춘천교대 대학원에서 아동문학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