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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성 야누아리우스
야누아리우스(Januarius)는 로마 달력에서 1월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불꽃의 창을 들고
내 영혼의 얼음을 깨트리는 그대,
내 영혼을 환호성을 지르며
지고한 희망의 바다로 내달린다.
더 밝고, 더 건강하게
사랑으로 충만한 운명 속에서 자유로이
그대의 기적을 내 영혼을 찬양하노라.
더 없이 아름다운 1월이여!
이 시는 4부 전체를 대하는 니체의 감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니체는 운명이 사랑으로 충만하다고 느끼며 1월이 아름답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는 새해에(276) 사물에 있어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자 하며,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1월이 아름다운 것은 니체가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이 자신의 사랑이 되었습니다(276). 사랑은 배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소한 것 일지라도 그 눈길과 표현을 참아내고, 그것이 지닌 기이함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천천히 자신의 베일을 벗고 말할 수 없이 새롭고 아름다운 자신을 모습을 드러냅니다(334). 니체가 그 눈길과 표현을 참아내고, 기이함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기에 운명이 자신의 베일을 벗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렇게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놀」에서 니체가 그 가치를 지하 끝까지 파내려 가며 운명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목격해서인지, 니체의 즐거움에 더한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야누아리우스는 기독교의 순교자의 이름이기도 한데, 월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n)은 프로이드의 책에서 “나폴리에는 야누아리우스의 (응혈된) 피가 유리병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특정한 축제날에 그것은 기적으로 다시 액화될 것이다.”라는 말을 빌려, 니체가 자신의 피가 다시 흐르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4부에 “성 야누아리우스”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말합니다. 니체는 오랜 병에서 나은 것처럼 생동감 있습니다. 버나드 윌리엄즈(Bernard Williams)는 야누아리우스는 또한 문과 입구의 신인 야누스(Janus)를 가리킨다고도 합니다. 니체는 이 책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새롭게 인식하는 그 입구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습니다.
4부에서 “너는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341)”라는 영원회귀 개념이 등장합니다. 니체는 ‘이 최종적 봉인만이 있을 때 어떻게 자신과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가?(341)’라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4부 여기저기에서 이에 대한 자신의 답을 꽤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그 중에서도 단기적 습관(295)에 관해 모두 공감했습니다. 새로운 습관을 맞이하기 전에, 평화롭게 서로에게 감사하며 기존의 습관과 헤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4부 마지막 절(342.비극이 시작되다)에서는 차라투스트라가 산을 내려와 몰락을 시작합니다. 베풀고 나누고 싶어서. 사람들 가운데서 지혜롭다는 자들이 새삼스레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기뻐하고, 가난한 자들이 새삼스레 자신들의 넉넉함을 기뻐할 때까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저 아래로 내려가고 몰락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즐거운 니체가 사람들을 만나서 어떻게 베풀고 나눌지 다음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몹시 기대됩니다.
다음주에는 5장과 부록 포겔프라이 왕자의 노래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