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꽃 향기
오월 중순인데도 기온은 마치 7월의 한낮 인양 30도를30 거뜬히 넘어섰다. 직장 쉬는 날 이어서 오늘도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갑천변에 갔다. 대전의 보물이자 생태하천인 갑천 상류에 하얀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백색 피부를 자랑이나 하듯, 그네 타는 처녀처럼 치마폭 휘날리며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자연스레 초등학교 때 즐겨 부르던 과수원길 동요가 생각났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솔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잠시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아카시아꽃에다 코를 깊숙이 묻었다. 코끝 깊숙이 느껴지는 달콤한 꿀 향이 한낮의 더위도 잊게 해 준다.. 초등학교 시절 등하굣길에 신작로에서 맡았던 달콤한 꿀 향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의 황홀했던 꽃 향을 지금도 맡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오늘이 새삼 고마운 하루다. 소꿉친구들과 아카시아에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매달린, 하얀 꽃송이를 한 움큼씩 따서 흡족하게 씹어먹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정말 집안에 먹을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길가에 널린 아카시아꽃만 실컷 따 먹어도 배부르고, 집에 오는 십 리 길도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신작로 길가에 아카시아 꽃이 피기 시작하면, 향긋한 향기를 맡으며 뚜벅뚜벅 자갈길을 걸었다. 달콤했던 하얀 꽃은 향기와 더불어 달착지근한 맛까지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간식이었다. 예닐곱 개씩 달린 아카시아 잎줄기를 딴다.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 이기는 사람은 잎을 하나씩 따낸다. 게임에서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책보를 가져다주는, 이런 내기를 많이도 했었다.
배가 몹시도 고프던 날, 시장기 달래려 과식했던 아카시아꽃으로, 배탈이 나 무척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그때 매일 먼 길이었지만 열심히 걸어 다녔기에, 지금까지 다리가 튼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통하게 잘 여문 아카시아꽃 서너 줄을 따서 입에 넣어 봤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달콤한 향은 그대로다. 오랜 세월 도시 생활에 젖어, 차창으로만 쳐다보던 아카시아 꽃을 직접 따서 맞본 것이 얼마 만인가.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로 알고 있는 것이 실은 "아까시나무"인데, 사실은 다른 식물이라고 한다.
아카시아는 미모 사아과 고,, 아까시나무는 콩과이다. 본래 한국에는 없던 나무로, 북미가 원산지다. 아까시나무는 6.25 전쟁 이후에 산림녹화를 위해 대량으로 심어졌다. 농촌의 온 동네 사람들이 온종일 아까시나무 심기에 동원되었다. 하루 품삯으로 귀한 미국 원조 밀가루가 한 포대씩 지급되기도 했다. 그때 밀가루 한 포대면 대가족의 일주일 치 식사가 해결되기도 했다. 아까시나무에는 장점이 많다. 꽃 모양과 꼬투리에서 알 수 있듯, 콩과 식물이라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질소를 고정해 준다.
비료를 안 줘도 잘 자라고 토양을 비옥하게도 한다. 황폐해진 민둥산의 토질을 향상하는 데는 최적인 셈이다. 같이 심으면 주변 식물들도 덩달아 잘 자란다고 한다. 5월경이면 피어오르는 꽃의 향기도 좋고, 심은 지 4년이 지나면 꿀도 채취할 수도 있다. 마른 장작은 오랫동안 타고 화력이 강하며 연기가 적어 땔감으로도 아주 좋다. 일제강점기 전후에 산에 많이 심은 이유도 부족한 연료를 채우기 위한 연료림 목적이었다고 한다. 잎은 영양가가 높아 가축 사료로도 사용한다.
꿀 따는 양봉업자들한테 아카시아는 최고의 보물이다. 대한민국 꿀 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5월이 되면 양봉업자들은 좋은 장소를 선점하려고 쟁탈전이 벌어진다고 한다. 양봉 농가에 연간 11천억 원 이상의 수입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밀원식물이다. 찔레꽃과 더불어 멀리까지 향기를 전하는 아카시아 꽃. 그 꽃이 필 때면 양봉가들은 남쪽으로부터 피는 꽃을 따라올라. 오게 되고, 일 년 중 제일 많은 양의 꿀을 따는 시기가 된다.
국립 산림과학원 자료에 의하면 아까시나무가 온실가스 흡수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아까시나무의 이산화탄소 저장량은 약 917만 톤으로, 이는 승용차 약 380만 대에서 1년 동안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에 해당하는 양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까시나무의 꽃말은 "아름다운 우정과 청순한 사랑"이란다. 우리 인생사에 있어 사랑과 우정만큼 값진 가치도 없다고 본다. 동요 “과수원 길” 노랫말처럼 유년 시절의 추억, 향기로움과 함께 평생을 함께해준 고귀한 우리 생활 속의 나무다.
우리가 일생을 살며 경험하는 희로애락처럼 아까시나무에도 숱한 애환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심어진 나무라고 욕을 먹었다. 매년 베어내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왕성한 생명력으로 생태계를 교란하는 나쁜 외래수종이라고도 했다. 어쩌다 묘지 근처나 주택가 근처에 불행히 태어나기라도 하면 가장 무서운 제초제 세례는 물론이고, 날카로운 곡괭이에 무참히 생명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에게 고급 꿀을 많이 내주고 꽃도 향기도 좋아, 나만 보고 사는 우리보다, 훨씬 인간애가 넘치는 나무다.
가난했던 60년대. 억척스럽게 살아온 우리 부모님들처럼 고난의 세월을 이겨온 가엾은 식물이지만, 고귀한 추억 속의 나무이기도 하다. 몇 년 전 프랑스 여행 중 에펠탑이 있는 파리 시내 중심가에 아카시나무가 가로수로 심겨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선 쓸모없는 황무지 척박지 땅에만 심어 홀대하고 있는데, 이 나라에선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검정고무신에 책보 둘러메고 학교에서 나누어 준 강냉이죽 사이좋게 나누어 먹던 시절. 아까시나무는 향기로운 꽃과 달콤한 꿀만 준 게 아니라, 나에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와 배고픔까지도 해결해준, 참으로 고마운 나무였다. 우리에게 사는 날까지 향기나는 꽃처럼, 벌을 살려주는 꿀처럼, 그렇게 살라고 전한다.
첫댓글 저도 아카시아 꽃을 참 좋아합니다. 유년기에 얽혀 있는 꽃이지요.^^ 안동엔 이때쯤이면 온 도시에 아카시아향이 가득하고 민들레 홀씨가 날아다녔어요. 먹기도 자주 먹었구요. 그러면서도 저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떨쳤습니다. 향기와 꿀을 나눠주는 아카시아. 새로운 이미지를 품어봅니다.^^
김 선생님!
여수 여행 잘 다녀 오셨어요.
병산서원 도산서원이 있는 유서깊은
양반고장 안동이 고향이시군요.
파리 중심가의 아카시아 가로수라면 유럽에서도 흔한 수종인가 보네요. 여행 중에 우리나라에서 보던 동 식물들을 만나면 어찌 그리 반가운지요. 그 나라와 우리나라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강 선생님 안녕하세요.
유럽에서 더 잘자라고 있었어요.
아카시나무 가로수가 어찌나 하늘 높이 자라는지
행복해 보였어요.
우리나라는 조금 크려고 올라오면 마구 짤라 내 잔아요.
곧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하겠지요~
모셔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