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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힛짜 경((Lohicca Sutta, D12) - 질책받지 않는 법 전함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살라와띠까에 도착하셨다. 그 무렵에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까에 정착해 있었는데, 그 곳은 사람들로 붐비고 풀, 나무, 물, 곡식이 풍부하였으며,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하사품이자 거룩한 마음의 표시로 그에게 영지(領地)로 준 곳이었다.
2. 그 무렵에 로힛짜 바라문에게 다음과 같은 삿된 견해가 일어났다.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선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선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된다(선한 법을 얻었다 하더라도 선한 법을 얻은 뒤에 남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족쇄를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족쇄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것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법이)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3. 로힛짜 바라문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사꺄의 후예인데 사꺄 가문으로부터 출가하여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에 유행하시다가 살라와띠까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바르게 깨달은 분(正等覺, 正遍智)이시며, 명지(明智)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시는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느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 Buddha. 붓다)이시며, 세상의 가장 존귀하신 분(世尊)이시다
그분은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법을 설하며,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라고.
4. 그러자 로힛짜 바라문은 이발사 베시까를 불러서 말하였다.
"그대여. 베시까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께 가시오. 가서는 사문 고따마께 불편은 없으신지, 병은 없으신지, 가볍고, 힘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을 드려 주시오. -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 바라문이 고따마 존자에게 불편은 없으신지, 병은 없으신지, 가볍고, 힘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을 드립니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말씀 드리시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내일 비구 승가와 함께 로힛짜 바라문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라고."
5."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이발사 베시까는 로힛짜 바라문에게 대답한 뒤 세존이 계신 곳으로 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로힛짜 바라문은 고따마 존자께서 불편은 없으신지, 병이 없으신지, 가볍고, 힘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을 드립니다. 그리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내일 비구 승가와 함께 로힛짜 바라문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6. 그러자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그곳을 떠나서 로힛짜 바라문에게 갔다. 가서는 로힛짜 바라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존자의 이름으로 저는 그분 세존이신 고따마 존자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로힛짜 바라문은 고따마 존자께서 불편은 없으신지, 병이 없으신지,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내일 비구 승가와 함께 로힛짜 바라문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리고 사문 고따마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7. 로힛짜 바라문은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한 뒤 이발사 베시까를 불러서 말하였다.
"그대여, 베시까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께 가시오. 가서는 사문 고따마께 시간을 알려드리시오. '고따마 존자시여,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이발사 베시까는 로힛짜 바라문에게 대답한 뒤 세존이 계신 곳으로 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비구들과 함께 살라와띠까로 가셨다.
8. 그때에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로힛짜 바라문에게는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선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선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족쇄를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족쇄를 만드는 것과 같다. 남에게 전하는 이것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이러한 삿된 견해가 일어났습니다. 세존께서는 로힛짜 바라문이 이러한 삿된 견해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잘 알았느니라, 베시까여. 잘 알았느니라, 베시까여."
9. 세존께서는 로힛짜 바라문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로힛짜 바라문은 세존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맛있는 여러 음식을 자기 손으로 직접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그리고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그릇에서 손을 떼시자 로힛짜 바라문은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로힛짜 바라문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로힛짜여, 그대에게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선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선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족쇄를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족쇄를 만드는 것과 같다. 남에게 전하는 이것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이러한 삿된 견해가 일어난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0."로힛짜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살라와띠까에 정착해 있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누가 말하기를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까에 정착해 있다. 살라와띠까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그 로힛짜 바라문이 혼자서 다 누린다. 그는 남들에게 하나도 주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는 그대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장애를 주는 자인가, 주지 않는 자인가?"
"장애를 주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이익을 바라는 자인가, 손해를 바라는 자인가?"
"손해를 바라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자애로운 마음을 확립했겠는가, 아니면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했겠는가?"
"적대적인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된다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겠는가, 바른 견해이겠는가?"
"삿된 견해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태어날 곳(行處)만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이다."
11."로힛짜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까시꼬살라에 정착해 있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누가 말하기를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까시꼬살라에 정착해 있다. 까시꼬살라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그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혼자서 다 누린다. 그는 남들에게 하나도 주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장애를 주는 자인가, 주지 않는 자인가?"
"장애를 주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이익을 바라는 자인가, 손해를 바라는 자인가?"
"손해를 바라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자애로운 마음을 확립했겠는기, 아니면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했겠는가?"
"적대적인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된다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겠는가, 바른 견해이겠는가?"
"삿된 견해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태어날 곳(行處)만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이다."
12."로힛짜여, 이처럼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까에 정착해 있다. 살라와띠까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그 로힛짜 바라문이 혼자서 다 누린다. 그는 남들에게 하나도 주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는 그대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장애를 주는 자이고,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손해를 바라는 자이고,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며,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다."
13."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선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선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족쇄를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족쇄를 만드는 것과 같다. 남에게 전하는 이것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자는 다음 두 가지에 장애를 주는 자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을 전승하여 선남자들이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하여 예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일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불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아라한됨을 실현하기도 하는 이러한 것에 장애를 준다. 그리고 천상의 존재들에 태어나기 위해서 천상의 모태(母胎)에 대한 과보를 닦는 자들에게도 장애를 준다.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손해를 바라는 자이고,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며,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니라.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태어날 곳만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이다."
14."로힛짜여, 이처럼 '빠세나디 꼬살라왕은 까시꼬살라에 정착해 있다. 까시꼬살라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그 빠세나디 꼬살라왕이 혼자서 다 누린다. 그는 남들에게 하나도 주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는 빠세나디 꼬살라왕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장애를 주는 자이고,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손해를 바라는 자이고,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며,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다."
15."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선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선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족쇄를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족쇄를 만드는 것과 같다. 남에게 전하는 이것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자는 (다음 두 가지에) 장애를 주는 자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을 전승하여 선남자들이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하여 예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일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불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아라한됨을 실현하기도 하는 이러한 것에 장애를 준다. 그리고 천상의 존재들에 태어나기 위해서 천상의 모태(母胎)에 대한 과보를 닦는 자들에게도 장애를 준다.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손해를 바라는 자이고,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며,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다.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태어날 곳만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이다."
16. "로힛짜여, 물론 세상에는 질책받을 만한 세 종류의 스승이 있다. 이러한 스승들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 어떤 것이 셋인가?"
"로힛짜여, 여기 어떤 스승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사문됨)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다. 이런 그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으면서도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그런 스승은 이와 같이 질책받아 마땅하다. '존자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의 목적을 그대는 아직 성취하지 못했다. 이런 그대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으면서도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대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이는 마치 떠나는 여인에게 매달리는 것과 같고, 얼굴을 돌리는 여인을 안으려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이것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로힛짜여, 이것이 첫 번째 스승이다. 이러한 스승은 세상에서 질책받아 마땅하며,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
17. "로힛짜여, 여기 어떤 스승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사문됨)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다. 이런 그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으면서도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스승은 이와 같이 질책받아 마땅하다. '존자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의 목적을 그대는 아직 성취하지 못했다. 이런 그대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으면서도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대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자신의 밭을 버리고 남의 밭의 잡초를 뽑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그와 같이 이것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로힛짜여, 이것이 두 번째 스승이다. 이러한 스승은 세상에서 질책받아 마땅하며,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
18. "로힛짜여, 여기 어떤 스승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사문됨)의 목적을 성취한다. 이런 그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한 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그런 스승은 이와 같이 질책받아 마땅하다. '존자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의 목적을 그대는 아직 성취하였다. 이런 그대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한 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대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이는 마치 이전의 속박을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속박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로힛짜여, 이것이 세 번째 스승이다. 이러한 스승은 세상에서 질책받아 마땅하며,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
19.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로힛짜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 있습니까?"
"로힛짜여,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 있다."
20.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입니까?"
"로힛짜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바르게 깨달은 분(正等覺, 正遍智)이며, 명지(明智)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이시며(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느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깨달은 분(佛. Buddha. 붓다)이며, 세상의 가장 존귀하신 분(世尊.세존)이다.
그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린다.
그는 법을 설한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21.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막혀있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동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떠나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잘못됨을 보며, 학습계목들을 받아지녀 닦는다. 선한 몸의 업과 말의 업을 잘 갖추고, 생계를 청정히 하고, 계를 구족하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마음새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고,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22. "로힛짜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계를 구족하는가?
[짧은 길이의 계: 모두 26가지로 계를 지님]
[중간 길이의 계: 모두 10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멀리함]
[긴 길이의 계: 모두 7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함]
로힛짜여,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잘못됨을 보지 못한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관정(灌頂)한 끄샤뜨리야 왕은 적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잘못됨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서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는 곳에서도 잘못됨을 보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로힛짜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구족한다."
23. "로힛짜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의 근을 잘 지키는가?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그 표상(相)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세세한) 느낌(受)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근(眼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간탐과 고뇌) 삿되고 선하지 않은 형색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귀의 근(耳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소리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귀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코의 근(鼻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냄새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코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혀로 맛을 보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혀의 근(舌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맛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혀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도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몸의 근(身根)이 보호되어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감촉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몸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마음으로 (마음현상)을 지각하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음의 근(意眼))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렵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로힛짜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24. "로힛짜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는가?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갈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 서면서 · 앉으면서 ·잠들면서 · 잠을 깨면서 · 말하면서 ·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로힛짜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잘 갖춘다."
25. "로힛짜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하는가?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머문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양 날개를 가진 새는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오직 자기의 양 날개만을 짐으로 하여 날아간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머문다.
로힛짜여, 이와 같이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한다.
로힛짜여,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비어있는 장소등의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며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26.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선한 법들에 아무런 의문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장사하다 성공하여 빚을 갚은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성공하여 오래된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의 재산도 생길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장사를 했다. 그런 나는 장사에 성공하여 이제 오래된 빚을 다 갚았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의 재산도 생겼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다 병이 회복된 사람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음식을 먹을 수 없어 그의 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병에서 회복될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힘도 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렸다.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나의 몸에 힘이라고는 하다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병에서 회복되었다.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힘도 다시 생겨났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옥에 갇혔다가 얼마 뒤 옥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옥에 갇혔다. 그런 나는 이제 옥에서 풀려났다. 나는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노예가 되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속박되어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얼마 뒤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자유롭게 되어 더 이상 남에게 속박되지 않고, 그가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노예가 되어 내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속박되어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이제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났다. 이제 나는 자유롭게 되어서 더 이상 남에게 속박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어떤 부유한 사람이 재물을 가지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막을 걷넨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얼마 뒤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장소인 마을에 도착을 했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부유하고 재물을 가지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막을 걸었다. 이제 나는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마을에 도착을 했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제거되지 못한 것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진 사람(욕심) , 환자(악의), 옥에 갇힌 사람(해태와 혼침), 노예(들뜸과 후회), 사막을 걷는 사람(의심)로 여긴다. 그러나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도착한 사람으로 여긴다."
27. "로힛짜여, 그는 자신에게서 다섯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겨난다. 환희로운 자에게는 희열(기쁨)이 생긴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편안하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즐거움)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일으킨 생각(尋. 거친 사유)과 지속적인 고찰(伺. 미세한 사유)을 지닌, 분리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 喜)과 즐거움(행복 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목욕하는 사람이 그릇에 목욕가루를 가득히 담아 놓고는 물을 알맞게 부어가며 계속 반죽을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목욕가루에 물기가 스며들어 안팎으로 물기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尋. 거친 사유)과 지속적 고찰(伺.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물로 채워지는 호수가 있다. 그런데 그 호수에는 동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북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남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다. 또 하늘에서 때때로 소나기마저도 내리지 않는다. 그러면 호수의 밑바닥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그 호수를 차가운 물로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할 것이다. 그러면 호수의 어디라도 차가운 물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다시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바, 평정과 마음지킴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기쁨이 사라진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기쁨이 사라진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피어있는 호수에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이 물 속에서 생기고 자라서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물 속에 잠긴 채 무성하게 자라 있는데, 차가운 물에 의해 그 꽃들을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그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의 어떤 부분도 차가운 물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기쁨이 사라진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기쁨이 사라진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힌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다시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지킴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고루 미치게 하고서 앉아 있다. 온 몸 어디라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사람이 발끝에서 머리까지 온 몸에 하얀 천을 덮어쓰고 앉아 있다면, 그의 몸 어느 부분도 하얀 천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고루 미치게 하고서 앉아 있다. 온 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28. "로힛짜여,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철저히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성장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의식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로힛짜여, 예를 들면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하늘 색 보석이 흠이 없고 완전한 품질을 갖추었다. 거기에 파란색이나 노란색이나 붉은 색이나 흰색이나 갈색의 실이 묶고 있다. 그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 손에 놓고서 생각할 것이다.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하늘 색 보석은 흠이 없고 완전한 품질을 갖추었다. 거기에 파란색이나 노란색이나 붉은색이나 흰색이나 갈색의 실이 묶고 있다.'라고 살펴보는 것과 같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한다. 그는 이와 같이 철저히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성장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의식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힌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다른 몸을 만든다. 모습을 지닌, 마음으로 이루어진, 일체의 수족과 뼈마디와 온전한 감관을 만든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사람이 문자 풀로부터 갈대를 뽑아 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문자 풀이고 이것은 갈대이다. 문자 풀과 갈대는 다르다. 그러나 문자 풀로부터 갈대를 뽑아냈다.'라고.
로힛짜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칼을 칼집에서 뽑아 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다르다. 그러나 칼집으로부터 칼을 뽑아냈다."라고.
로힛짜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뱀을 뱀의 껍질로부터 벗겨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껍질이다. 뱀과 껍질은 다르다. 그러나 껍질로부터 뱀을 벗겨냈다.'라고.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다른 몸을 만든다. 모습을 지닌, 마음으로 이루어진 일체의 수족과 뼈마디와 온전한 감관을 만든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하나니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여러 가지 신통의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신통을 체험한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숙련된 도기공이나 도기공의 제자가 잘 준비된 진흙으로부터 그릇을 원하는 대로 만들고 생산하는 것과 같다.
로힛짜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상아 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상아로부터 어떤 상아 제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고 생산하는 것과 같다.
로힛짜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금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금으로부터 어떤 금제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고 생산하는 것과 같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여러 가지 신통의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신통을 체험한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신성한 귀의 계(界)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天耳通)
로힛짜여, 예를 들면 먼 길을 여행하는 자가 큰 북소리, 무딩가 북소리, 고옫소리, 빠나와 북소리, 딘디마 북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큰 북소리다, 이것은 무딩가 북소리다, 이것은 고동 소리다, 이것은 빠나와 북소리다, 이것은 딘디마 북소리다.'라고.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신성한 귀의 계(界)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하나니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을 탐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이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한(고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하지(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광대하지 않은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는 마음을 삼매를 얻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젊은 여인이나 남자가 치장하기를 좋아하며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점이 있는 것은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는 것은 없다고 아는 것과 같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을 탐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이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한(고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하지(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광대하지 않은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는 마음을 삼매를 얻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전생에 대해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벡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여러가지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사람이 자기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가 다시 또 다른 마을로 갔다가 자기 마을로 되돌아 온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우리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 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 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나는 그 마을로부터 다시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 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 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로부터 다시 우리 마을로 되돌아왔다.'라고.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전생에 대해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벡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여러가지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련한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의 세계(천상)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사거리 가운데에 높은 누각이 있는데 시력이 좋은 사람이 거기에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과 길을 걷거나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는구나, 이들은 나오는구나, 이들은 길을 걷고 있구나, 이들은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구나.'라고.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련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 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의 세계(천상)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여, 여기 비구는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아차린다.
로힛짜여, 예를 들면 깊은 산에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호수가 있고, 그곳에서 시력이 좋은 사람이 둑에서서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 멈춰있거나 움직이는 고기 떼를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호수는 참 맑고 고요하고 깨끗하구나. 여기에 이런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이 있고 고기 떼는 멈춰있거나 움직이는구나.'라고.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아 차린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29.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로힛짜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나락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사람을 머리채를 쥐고 끌어 올려서 땅바닥에 내려놓는 것과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나락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저를 끌어올려서 땅바닥에 내려놓으셨습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진리)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고,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또한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