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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6-1932)[3권 합본 1938]
브레이어(Emile Bréhier, 1876—1952)
제4권. 17세기, Le dix-septième siècle 1-702
제2장, 프란시스 베이컨과 경험 철학 Francis Bacon et la philosophie experimentale 18-40.
1절 베이컨의 생애와 작품들18-20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국새(國璽) 관장자인 니꼴라 베이컨(Nicholas Bacon, 1510-1579)의 아들이며, 그의 아버지에 의해 국가 공무원의 길로 정해졌다. 1584년에 지역 선거구 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여왕의 특별 자문위원으로 지명되었다. 그는 제임스 1세(James I, 1566–1625)의 지배 동안에 사법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 따라서 베이컨은 법률가의 이력을 걸었다. 1582년에 변호사가 되었고, 1589년부터 런던의 법학 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1599년에 영국 법률들의 법제화를 준비하는 법의 격언들을 작성하였다. 야망을 지니고 음모적이면서, 유용한 모든 급변에 준비가 되어 있으며, 제임스 1세의 절대주의적 목표들에 아첨하면서, 그는 조금씩 승진하며, 1607년에 법무부 차관, 1613년에 법무부 장관, 1617년에 국새 관장자가 되었다. 1618에는 상원의장[대법관]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1618년에 베루람의 백작이 되었고, 1621년에 세인트-알반스의 자작이 되었다. 항상 그는 왕실 특권의 방어자였다. 그는 아일랜드 의회 의원인 탈보(Talbot, 1560–1638)를 단죄했는데, 탈보는 폭군제거의 합법성에 관한 사상을 지닌 수아레즈(Suarez, 1548–1617)를 시인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율법에 관련된 소송사건에서 그는 심판관들이 그들의 판결에서 유예하고 왕과 상의하러 가야 하는 원칙 덕분에 승리 했는데, 각 경우마다 왕은 계류 중인 소송에 그의 권력을 개입하여 평가할 수 있었으리라. 1621년에 의회의 회합이 있었고, 그 의회는 베이컨의 운세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하원의원에 의해 횡령으로 고발당했으며, 그는 결국에는 선고판결재판에서 소송인들의 제시물들을 받아들인다고 시인했다. 상원회의는 그를 4만 파운드의 벌금형을 내렸으며, 이와 더불어 어떠한 공적인 업무에 개입하는 것도, 의원이 되는 것도, 궁정 가까이 거주하는 것도 금지하였다. 베이컨은 늙었고 병 들었으며, 파산하였다. 그는 자신을 회복하려고 헛되이 시도했다. (19)
매우 요동치는 생애의 한 가운데서, 베이컨은 과학들의 개혁하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베이컨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파악해보면, 하나의 특이한 국면을 제공한다. 그는 아마도 매우 일찍이 그의 작품 일체에 대해 결론 지었는데. 그는 그 일체를 나중에 거대한 재구축(1620)이라 불렀다. 이것의 계획 속에는 신 기관(1620)의 서문이 있다. 왜냐하면 1625년의 한 편지에서 그는 40여년 전에 이미 최대 산출의 시대라는 소품을 작성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런 주제를 다루었다: 말하자면 이 소품은 아마도 거대한 산출의 시대, 즉 자연의 해석()과 동일할 것이며, 이것은 사후에 출판되는데, 거기에서 사람들은 신 기관의 서문과 거의 동일한 계획을 발견한다. 어찌되었던 간에, 그 마지막 계획은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 과학의 분류; 2) 신 기관, 즉 자연 해석의 지표들; 3) 보편 현상들, 즉 철학적 요약으로 된 자연사와 경험사: 4) 지적 단계들, 즉 미로의 실, 5) 전조들, 즉 부차적 철학의 예상참여들. 6) 이차 철학, 즉 활동적 과학이다. 이 계획의 실현은 일련의 논저들을 허용했다. 논저들은 과학의 현실적 상태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모든 공백들을 보태어서(I), 아리스토텔레스의 기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관을 연구했다(II). 그리고 나서 사실들의 조사 작업을 서술했다(III). 그리고 법칙들의 탐구를 거쳐서(IV), 인식이 우리에게 자연에 관해 시험하게 허용해 주었던 모든 작용들에게로 내려간다(V, VI). 베이컨은 한 인간이 혼자서 실현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체의 작품들 중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논저들은 마치 흩어진 단편들(disjecta membra)과 같다. 우리는 이것들 중의 매우 많은 것들을 인용하며, 이것들을 거대한 재구축(1620)에 따라서 분류한다(그러나 순서에 따라 쓰여지지 않았다). 첫째 부분만은 그 자신의 고백에 따라 완성되었다. 즉 그것은 1623년에 출간된 지식의 품위와 증가(1623)(9권)이다. 이 저술은 1605년 영어로 된 신적이고 인간적인 지식의 숙달과 진보(1605)의 라틴어 번역본이다. 게다가 그의 필사본들은 동일한 주제에 관한 여러 초고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1603년경에 쓴 최종 가치는 1736년에 출판되었고, 1612년에 쓴 지적 세계의 묘사는 1653년에 출판되었다. 둘째 부분은 신 기관, 즉 자연 해석을 위한 진실한 지표들은 1620년에 나타났다. 셋째 부분에서, 그 부분의 목표는 신 기관의 연속으로 출판된 소품들 속에 지적 되어 있는데, 자연적이고 경험적인 역사의 서설은 1622년에 철학적으로 요약된 자연적이고 경험적인 역사, 즉 보편 현상 속에 다루어졌다. 이 작품은 많은 양의 독백들을 알려준다. 그 독백들 중의 어떤 것은 장관에서 추락한 후에 밑그림으로 또는 초고로 쓰여졌다. 삶과 죽음의 역사는 1623에 출판되었다. 촘촘하고 성긴 역사는 1658년에, 공기의 역사는 1622년에 쓰여졌다. 재료들의 수집으로 실바 실바룸은 1627년에 출판되었다. 넷째 부분에서, 1608년에 미로의 실, 즉 운동의 합법적인 탐문이 작성되었으며, 1653년에 출판되었다. 빛과 조명의 탐구 주제는 1653년에 출판되었다. 자석 탐구는 1658년에 출판되었다. 다섯째 부분에서 선구자들, 다음 철학의 예상들은 1653년에 출판되었으며, 바다의 밀물과 썰물은 1616년에 작성되었으며, 천체론은 1612년에 작성되었다. 마지막으로 다가올 제2차 철학은 자연 해석에 관한 사상들과 결론들, 생산적 작업들의 과학의 목적이며, 1653년에 출판된 거대한 산출의 시대의 셋째 권의 목적이었다. (20)
이런 거대한 작품에게, 이것의 부분에 속하지 않는 작품들이, 즉 1736년에 출판된 철학들의 반박과 특히 1627년에 출판된, 과학적 탐구들의 조직화의 기획인 새로운 아틀란티스가 관련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 문학적 저술들을, 즉 시론들(1597)을 덧붙여야 할 것이고, 이 작품들의 각각의 새로운 판본(1612년과 1625년)은 앞서 나온 판본에 덧붙여졌다. 또한 역사적이고 법률적인 수많은 저술들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20)
그것은 새로운 정신의 전조가 행한 문학 활동이며, 나팔수의 문학 활동이다. 그 나팔수는 자연에 관한 인간의 지배를 보장하면서, 정신들을 각성하게 하고, 인간적 삶을 변형해야 하는 운동의 주도자가 된다. 그는 열정이 대단하였고, 잊을 수 없는 특성으로 규범들을 각인하는 강한 상상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법률학자이며 또한 행정가이다. 그는 조직화의 정신을 가졌으며, 거의 자질구레한 데도 신중하였으며, 그가 시작한 백주년이 될 작품에서 각자에게(관찰자, 실험자, 법칙 발명가) 정확하고 제한된 임무를 분배할 욕망도 가졌다. (20)
2절 베이컨의 이상: 오성과 실험(경험) 과학
- L’idéal baconien : entendement et science expérimentale 21.
베이컨은 과학들의 상태들과 지적 세계의 상태들을 자기 주위에 둘러보았다. 그는 거기서 고착성과 정체성을 그리고 동시에 자기만족을 보았다(그는 게다가 자기 시대의 위대한 과학자들의 작업들을, 특히 갈릴레이의 작업들을 무시하거나 잘못 이해했다). 그 자기만족은 목적에 대한 선구자적 징후들인 셈이다. 그는 어떻게 과학이 진보를, 그리고 증가하는 생활을 다시 가능할 수 있게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였다. 그는 자기 시대의 과학들에서 무엇을 비판했는가? “[비판한 것은] 기예들에서 또한 방법들에서 과학들의 조숙하고 무모한 환원이다; 마찬가지지만 과학은 단지 거의 아무것도 심지어는 전혀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이 경구들과 관찰들로 분산되는 한에서, 과학은 증가하고 커갈 수 있다. 일단 과학은 자기 방법들 속에 갇혀있어서, 사용법에서 매끄럽고 세련되게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더 이상 덩어리로 증가하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방법들”은 다소 인위적인 전시작업의 절차들일 뿐이며, 그 절차들은 과학들을 그것들의 현실적 상태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과학은 자기의 자유로운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는데, 신 기관(1620)에서 베이컨 자신의 절차에 따라서 과학이 예견된 도식 없이 보다 자유롭게 표현될 때이다. 베이컨은 자신이 확실성에 대해 심한 두려움을 느낄 만큼이나 그렇게 고착성을 이해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여러 사색들에서 만일 사람들이 확실성에서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끝내는 의심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의심에서 시작한다면, 또한 만일 사람들이 한 동안 인내하면서 의심을 지탱한다면, 사람들은 끝내 확실성에 이를 것이다.” 이는 겉보기에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의심이지만, 실재로는 반대되는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데카르트는 실재적으로 의심자체가 함축되어 있는 확실성에서, 즉 코기토의 확실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확실성은 다른 확실성들을 생산하게 한다. 베이컨에게서 확실성은 시작이 아니라, 탐구를 마감하는 끝이다. (21)
베이컨의 비판들 모두는 다음에서 유래한다. 우선, 인문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인데, 이들은 과학들에서 문학적 발전에 맞는 주제만을 과학에서 본다. 둘째 스콜라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인데, 이들은, 마치 작은 방 속에 신체를 가두듯이, 자신들의 영혼을 아리스토텔레스 속에 가두면서, 견고한 독단들을 가지고 있다. 셋째 과학이 이미 만들어진 것, 즉 과거의 것이라고 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넷째 전문가들에 대한 비판인데, 이들은 제1철학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학문 속에 격리되어 있으면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과학이 마치 기하학자인 퓌타고라스학파들, 즉 카발리스트처럼 모든 사물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있다. 카발리스트들은 플러드(Robert Fludd, 1574–1637)와 마찬가지로 도처에 많은 이들이 있다. 분류하는 모든 것, 즉 고정하는 모든 것은 나쁘다. (22)
분류작업의 도구 자체에, 예지(l’intellectus) 즉 오성에, 반대하는 불신은 어디서 오는가? 예지는 자기 자신에게 허락하게 내버려 두고서, 구별에 관하여 구별만을 생산할 할 수 있을 뿐이다. 마치 사람들 “주지주의자들”의 토론들에서 그런 것을 보는 것과 같다. 토론들에서 물질의 희박함은 정신의 생산력 없는 연습만을 허락할 뿐이다. (22)
베이컨은 추상적이고 분류하는 예지 이외에 다른 예지를 알지 못했다. 이런 예지는 아랍인들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는 데카르트가 수학적 발명의 작업에서 발견했던 예지를 몰랐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과학이 안정되거나 풍부하게 될 수 있는 것은 오성의 내부 개혁에 의하여가 아니었다. 이점에 관해서 베이컨은 아주 깔끔했다. 인간 오성의 관념들은, 창조주가 사물들을 만든다는 신적인 관념들과 더불어 보아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또한 결코 미래에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간 정신의 우상들과 신적 정신의 관념들 사이에, 즉 헛된 우리들의 견해들과 신이 피조물에게 각인했던 진실한 도장들 사이에, 차이는 가볍지 않다.”인간적 예지와 진리 사이에 어떠한 자연적 친근성도 없다. 그것은 마치 찌그러진 거울과 같다. 도처에서 동등성, 일관성, 유비를 보는 것은, 은유 없이, 필요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베이컨은 여기서 르네상스의 가장 유명한 형이상학들을, 즉 파라셀수스(1493-1541)와 브루노(1548-1600)의 형이상학들을 정당하게 공상할 수 있었다. (22)
따라서 만일 정신의 섬세함이 자연의 섬세함과 동등할 수 있을 것이라면, 그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이런 관련을 물어야 하는 것은 자연 자체에게서 이며, 자연의 진실한 지배자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베이컨은 자연에 대한 실험과학의 전통에 집착했다. 실험과학의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이래로 서양에서 다수 분명한 방식으로 체험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로저 베이컨(1220경-1292경)에게서 중세에 그 경험과학의 전통을 만났다. 이런 과학에는 두 국면들이 있다. 한편 역사들인데, 자연으로부터 사실들을 모은 것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들의 역사, 특히 플리니우스의 자연사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편집들은 자연의 모든 영역들을 포함하며, 수세기 동안에 세계에 대해 철학자들의 이미지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살아있는 이미지를 탐구했던 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다른 한편] 역사들 이외에도, 모든 종류의 미신들을 뒤섞었던 조작적 기술들도 있는데, 이 기술은 인간의 구도들에 맞게 복종하도록 자연을 강제하게 한다고 허풍을 떨었다. 또한 의지들을 구속한다는 자연적 마술도 있고, 금을 제작한다고 애쓰는 구화학[연금술]도 있다. 이런 과학들은 마치 구천문학[점성술]처럼, 스토아주의와 네오플라톤주의에서 파생한 우주의 표상작업에, 즉 불가사의한 공간들과 반감들의 표상작업들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 이런 작업들에 대해 경험은 우리에게 그것의 비밀을 폭로할 수 있다. 이 “이야기들(histoires)”은 조작적 과학처럼 16세기를 열광시켰다. 이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 자체가 여러 이야기들과 더불어 실어 날랐던 모든 미신들에도 불구하고, 베이컨이 과학에서 찾았던 진보적이고 구체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리고 진실로 이 이야기들은 인간에게 명령할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자연에게 복종할 조건에서만, 말하자면 자연의 법칙을 안다는 조건에서만 희망을 주었다. 베이컨은 과학들 속에는 신뢰성과 사기성이 있다는 것을 전혀 잘못 인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탄없이 과학들의 목표들을 시인했다. 즉 목표들이란 “심층의 사물들에 관해 상층의 사물들의 영향”을 마치 구천문학처럼 탐구하는 것; “사색작업의 수천가지 형식들로부터 조작적 실천들의 중요성으로 자연철학을” 마치 자연적 마술처럼 상기하는 것; “그 속에 감추어져 뒤섞여 있는 물체들의 이질적인 부분들을 따로 떼어내어 추출하는 것, 물체들의 불순수성으로부터 물체들을 순수하게 하는 것” 마치 구화학처럼, 이것들은 그 만큼 인정되어야 마땅한 목표들이다. 과학들이 사용하는 수단들은, 이것들이 종종 부조리하다 할지라도, 그래도 과학들에 대한 풍성한 발견들의 기회를 적잖이 가졌다. (23)
따라서 거대한 재구축(1620)은 수학들의 계열에도, 수학적 자연학의 계열에도 속하지 않지만, 이런 학문들의 진보는 17세기를 특징 지운다. 이 저술은, 증가하는 과학들을 포기하고서, 자연에 관한 진술들로, 조작적 절차들로, 실천적 기술들로 혼재되어 있는 일체를, 실험과학들을 구성하는 일체를, 추론적으로 조직화하는 데 있다. (23) (56VKJ)
3절 과학들의 분할 - La division des sciences 24.
거대한 재구축(1620)의 첫째 임무를, 즉 지식의 품위와 증가(1623)속에 해결되었던 임무를 연구해 보자. 이것은 현존하는 과학들 사이에 질서를 정하는 것이라기보다 아직도 모자라는 과학들을 지적하기 위해 마련한 과학들의 등급 매기기이다. 가장 일반적인 분할은 역사(Histoiria), 즉 기억(la mémoire)의 과학; 시학(Poésie), 즉 상상작용(l‘imagination)의 과학; 철학(Philosophie) 즉 이법(la raison)의 과학으로 분할이다. 역사와 철학의 각각은 구별된 분명한 두 대상들을, 즉 자연과 인간을 갖는다. 따라서 역사는 자연사와 시민사로 하부적으로 분할된다. 철학은 자연의 철학과 인간의 철학으로 하부적으로 분할된다. (24)
자연사는 이번에 현 세대들의 역사, 앞선 세대들의 역사, 기예들의 역사로 분할된다. 이런 분할은 대(大)플리니우스의 분할이다: “현 세대들의 역사”는, 플리니우스의 둘째 권처럼, 천상의 사물들에, 기후들에, 결국에는 동일한 요소로 혼성된 덩어리들에 – 바다, 강들, 땅, 화산현상들에 - 상대적이다. 이어서 “앞선 세대들의 역사”, 즉 괴물들의 이야기가 있고, 그리고 “기예들의 역사(historia artium)”가 있다. 이 기예들에 의해 인간은 자연의 과정을 변화 시킨다: 이는 플리니우스의 제7권의 두 대상들이다(2권과 7권 사이에 포함된 부분은 지리학을 다루고 있었다). 따라서 베이컨의 장점은 자연사 속에 비정상적인 경우들과 기예들의 경우들의 연구를 포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연구가 호기심을 일으키는 사실들의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는 것을 확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괴물들과 기술[기예]들은, 자연적 세대들 속에서 더 많이 감추어져 있었던, 동일한 힘들을 분명하게 밝히기 때문이다: 자연이 모든 것들을 이끈다(natura omnia regit). 예를 들어 인간은 기예들 속에서 자연 속에 있지 않은 어떠한 힘도 창조하지 못한다. 인간의 유일한 능력은 물체들을 서로서로 가까이하고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자연적 힘들의 작용을 위하여 이렇게 새로운 조건들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베이컨이 정당화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신이며, 베이컨이 아직은 모자라지만 갈구하는 과학들 가운데 두 가지 하부 분할로 위치시킨 것이다.(2권, 2장.) (24)
시민사에 관하여, 이 역사의 하부분할들은 역사적 문학 장르에 해당한다. 베이컨은 이것을 당대에 실행되었던 것들을 찾아냈고, 게다가 다소 먼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이것들은 에우세비오스(Eusèbe, Εὐσέϐιος, 265-339)가 정립했던 교회사이고, 또한 유용한 기록들에 따라서 베이컨이 세분화한 소위 말하는 시민사이다. 기록들이란: 즉 기념일들, 고대 유적들, 요셉(Josèphe, Ἰώσηπος, 37-100)의 유대 유적들(93)과 같은 고대 역사들, 그리고 전기들, 통치 연대기들, 이런저런 사건의 관계와 같은 정당하고 완전한 역사 등이다. 베이컨이 여기서 도식을 그린 것은 박학한 탐구들의 폭넓은 조직화였다. 여기에 그는 무엇보다도 기술들과 과학들의 진보의 역사이라 생각하는 “문학 역사”를 보태었다. 17세기 전체의 박학다식은 다른 설계 계획이 아닐 것이다. (25)
역사 이후에 철학의 분할들을 고려해 보자.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분할들은 전통적이나, 그 분할들의 정신은 새롭다. 베이컨이 선언하기를 “나는 고대인들이 말하는 견해들 또는 방식들로부터 나를 가능한 한 적게 틈을 벌릴 것을 바란다.”(3권, 4장, 1절) 말하자면 신, 자연, 인간(또는 그가 말하듯이, 중세의 전망주의자들을 상기하면, 빛의 근원, 굴절된 빛살, 반사하는 빛살이다), 바로 이것들이 세 가지 중요한 철학적 과학들의 세 가지 대상들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할, 즉 신학 또는 제일철학, 자연학, 도덕학으로 분할이다. 그러나 정신은 이것과 많이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제1철학 또는 형이상학은 공리들의 과학과 동시에 모든 감각적 또는 지성적 실체의 원인들 또는 원리들의 과학이며, 신의 과학이다. 사람들은 베이컨에게서 모든 요소들을 재발견하나, 아주 다른 성향을 지닌 과학들을 재발견한다. 그는 공리들의 과학에 제1철학의 이름을, 원인들의 과학에 형이상학의 이름을, 신의 과학에 신학의 이름을 예약했다. (25)
제일철학 또는 공리들의 과학은 신, 자연, 인간이라는 세 가지 과학들의 공통의 몸통이다. 이 “공리들”은, 베이컨에게서는 신적이고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사물들에 동등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일종의 충분히 보편적인 격언들이다. 이 다음으로 “사물들의 질서를 가장 잘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또한 잠재적으로 가장 잘 보존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자연학에서 지상의 덩어리에서 빈 것의 공포가 나온다; 정치학에서 개별자들의 관심을 능가하는 국가의 보존적 힘들의 우월함이 나온다; 신학에서 인간들 서로 사이에 연결하는 무상보시 덕목의 우월성이 나온다. 결국에는 베이컨은, 사람들이, “논리적으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담론이 아니라 자연 법칙들에 따라서” 보편적 용어들을 다루기를 원했다. 예를 들면, 적은 것(le peu)과 많은 것(le beaucoup)을 능가하는 격언들은 우리에게 왜 마치 황금과 같은 그러한 생산물이 드물고, 철과 같은 다른 생산물이 풍부한가를 이해하는데 이용하게 한다. (26)
신학은 철학적 과학들 중의 첫째 과학이 된다. 이 신학 다음에 자연의 과학이 오고, 자연과학은 형이상학과 종적인 자연학으로 세분화 된다: 형이상학은 형상적 원인들과 목적적 원인들의 과학이며, 종적인 과학은 효과적인 원인들과 질료적인 원인들의 과학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형상들의 인식을, 즉 사물들의 진실한 차이들의 인식을, 마치 인간정신에게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했는지를 안다. 따라서 베이컨이 창조하고 싶었던 것은 형이상학의 이름 하에서 새로운 과학이며, 자연에 관한 탐구에 내밀하게 연결된 새로운 과학이다. (26)
철학적 과학들의 셋째이자 마지막 과학은 인간의 과학이며, 이 과학은 인간적 능력들에 따라서, 예지의 과학, 즉 논리학으로, 의지의 과학, 즉 윤리학으로, 마지막으로 사회에서 재통합되는 인간들의 과학으로 세분화된다. 여기서 베이컨은 사회들의 과학과 도덕론을 따로 구별하였다. (26)
베이컨의 논리학은 자연의 진행방식들의 서술과 다른 것이 아니다. 우선 발명, 즉 진리들의 발견, 경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발견이 있다(지식 경험, 말하자면 그 경험으로부터 사람들은 쓴 것에 의해 상황들을 주목한다.) 그리고 귀납, 즉 신 기관의 특별한 대상이 있다. 발명 이후에 제안된 진리들의 판단이 온다. 그 판단의 중요한 도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인데, 이 논법은 정확한 기능을 갖지만 제한된 기능이며, 제안된 진리들을 보편적 원리들로 귀착시키는 기능이다. 논리학은 또한 궤변론을 반박하는 것을 알려준다. 논리학은 일반적 단어들에서 다양한 의미로 적용하는 부정확한 사용을 피하게 하여, 조금(peu)과 많이(beaucoup), 동일한(même)과 잡다한(divers)과 같은 모든 토론들을 유용하게 한다. 결국 논리학은 인간 정신의 “우상들(idoles)”을, 다시 말하면 정신의 오류 추론들을 알게 한다. (26)
베이컨의 도덕론은, 자신의 자연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대립되는 만큼이나 고대인들의 도덕론에 대립된다. 그는 고대인들이 제안 했던 목표에 도달할 어떠한 실천적 수단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우리가 최고선을 찾도록 크리스트교에서 배우는 매래의 삶에 대해 무지 속에서 최고선에 관해 사색했다고, 특히 선이 사회의 일부를 이루는데 개인의 선을 사회의 선에 종속시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런 무지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활동적 삶보다 우월한 사변적 삶을 거짓으로 선언했던 것이고, 고대 전체는 공통의 선을 생각함이 없이 개인 영혼의 고요함 속에서 최고선을 찾았던 것이고, 에픽테토스 같은 이는 현자가 자신 속에서 자기 행복의 원리를 찾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는 베이컨의 고대 개인주의의 거부이며, 사적인 삶 속에, 즉 자유로운 사업 속에 스스로를 거주하게 하는 그의 욕망과 함께, 그리고 그가 영혼의 위대함보다 정숙함을 선호하는 것, 또한 자기 저술들에 의해 밝히는 능동적 선행보다 수동적 향유를 선호하는 것과 함께 거부하는 것이다. 베이컨의 도덕론은, 그의 과학과 마찬가지로, 사변적이라기보다 조작적이다. 그는 환희 없이 무기력한 덕목을 지닌 후기 스토아학파의 현자보다, 사랑 자체를 위한 권능의 사랑을 지닌 마키아벨리의 참주를 선호했다. 테오프라스토스(Θεόφραστος, 전372경-288경)의 성격론(전319경)보다, 역사가들이 소재로서 다루는 정념들에 대한 진실한 논저를 더 선호하였다. 결국 그는 인간의 과학을 도덕론과 구별하며, 국가의 이론과 권력의 이론인 정치학으로 마무리 한다. (27)
역사학과 철학과 더불어, 베이컨은 셋째 과학으로서 시학(la Poésie), 즉 상상작업의 과학을 인정했다. 사람들은 어떤 호감을 가지고 르네상스가 신화들과 우화들의 해석으로 되돌아왔는지를, 또한 어디에서 사람들은 과학을 수수께끼와 이미지에 의해서 발견했는지를 안다. 데카르트 그 자신은 젊은 시절에 환상들에게 어떤 주의를 부여했다. 고대인들의 지혜(1609)의 대상인 것은 환상들이고, 여기에서 베이컨은 큐피드의 우화에서, 원자들 서로들 간에 거리를 둔 작용의 관념과 더불어 원자들의 기원적 운동의 관념을 찾는다. 오르페우스(Ὀρφεύς)의 노래 속에는, 붕괴하는 사물들의 복원과 개조를 제안하는 자연철학의 원형이 있다. 이 모든 우화들의 일체는 과학들의 중요한 개혁의 의미로 해석되었으며, 이를 베이컨은 시학이라 부른다.
그러나 세 가지 과학들, 역사학, 시학, 철학의 밑바탕에는 과학들의 형성과정에서 정신의 세 가지 연속적인 진행 방식들이 있다. 역사학은 재료들의 축적의 방식이며; 시학은 첫 작업으로는 아주 공상과 닮아서 과학에 대한 일종의 꿈이며, 고대인들은 여기에 머물러 있으며; 마지막으로 철학은 이법에 대한 견고한 구축이다. 이처럼 사물들이 베이컨에게 나타나는데, 그는 지식의 증가에서 목록으로 만든 모든 과학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진실로 전념했던 하나의 과학만을, 즉 자연의 과학만을 생각했다. (27)
4절 신 기관 - Le Novum Organum 28.
베이컨이 체계적 지위를 부여한 새로운 과학들 속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동일하게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다. 그 도구를 창조해야만 했던 것이 신 기관(Novum Organum)이다. 신 기관과 지식의 증가 사이에 차이가, 과학들의 체계적인 도식과 과학들을 진작시킬 수 있는 보편적 방법일체 사이에 있는 차이가 있는가? 전혀. 실재상으로 신 기관의 내용은 지식의 증가의 몇몇 부분들과 매우 정확하게 일치한다. 만일 사람들이 이 작품으로부터 역사학과 시학에 연관 있는 모든 부분들을 걷어낸다면, 또한 만일 사람들이 철학에 관한 몇 장들에서 신학을 다룬 모든 것을 걷어낸다면, 인간과학에서 도덕론과 정치학에 연관있는 모든 것을 걷어낸다면, 자연과학과 논리학의 계획만이 남는다. 그러면 신 기관은 정확하게 그와 같으며,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자연 과학들의 계획이 남는데, 계획에 관련있는 논리학의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상들의 이론이 목표삼은 오류들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만든 관점에만 오직 관계있을 뿐이다. 그런데 기관 즉 도구는, 마치 콤파스가 손을 돕듯이, 자연의 과학에 오로지 연관 있을 뿐이다. (28)
“우상들” 또는 자연적 도약을 이어가는 정신의 오류들의 서술로 되어 있다. 이런 서술에 의해 신 기관이 시작하며, 따라서 서술은 우리에게 이런 도구의 필연성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시의적절한 서곡인 셈이다. 거기에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종족의 우상들이다. 정신에 속하는 자연적 착오에 관한 것으로, 일종의 게으름과 무기력이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경우들만을 고려하면서 일반화한다. 이리하여 점성술과 같은 미신들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언들이 좌초하는 경우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용어들이 실현되는 것을 보기를 원하는데, 이 용어들이 그것들의 단순성과 획일성에 의해서 우리 정신과 가장 잘 틀을 만들어서, 이렇게 고대의 천문학과 카발라(베이컨의 시대에 로버트 플러드(1574–1637)에 의해 영국에서 개조된 카발라)의 거짓 과학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천문학은 별들에게 원 운동과 다른 모든 궤적 전체를 거부했고, 카발라는 실재성들이 수적인 조합들과 대응하게 하기 위하여 현존하지 않는 실재성들을 상상한다. 우리는 우리 인간적 활동성의 전형에 근거하여 자연의 활동성을 스스로 표상하고, 연금술은 사물들 사이에서, 마치 인간들 사이에서처럼, 공감들과 반감들을 발견한다. 둘째는 동굴의 우상들 이다. 이것은 일단 습관들과 교육의 타성에 젖는 것이다. 정신은 타성의 죄수이며, 마치 플라톤의 동굴에서와 같다. 셋째는 공공장소의 우상들이다. 이것은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개념작업을 지시하는 단어들이다. 우리는 사물들을 분류하기를 원하는가? 통속적 언어는 이에 대립되며, 이미 완전히 만들어진 언어의 분류작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혼합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실재성에 전혀 응답하지 못하는 단어들이 심지어 얼마나 많은가(우리가 우연에 대해, 또는 하늘의 천구들에 대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넷째로 극장의 우상들(Idola theatri, idoles du théatre)이다. 이는 철학적 이론들의 특권에서 오는데, “소피스트들 중의 최악”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의 특권과 같은, “농담하는 사람,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시인, 열정적인 신학자”인 플라톤 이론의 특권과 같은 데서 나온다. 게다가 베이컨은 경험주의자들과 동등하게 합리주의자들도 비난했다. 전자들은 사실들을 모으면서 마치 자기의 식량들을 모으는 개미와 같다고 하고, 후자들은 모든 경험 바깥에서 자기들의 이론들을 거미줄 치듯이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상들은 소피스트주의와 추론의 오류들이 아니라, 정신의 악순환 같은 성향들이다. 이는 마치 일종의 원죄와 같은데, 원죄는 우리에게 자연을 무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29)
베이컨의 목표는 소위 말해서 인식이 아니라, 자연에 관한 능력 즉 조작적 과학이다. 그러나 인식은 수단이며, 수단의 규칙들은 제기된 목표에 종속된다. 베이컨은 이렇게 목표를 진술했다. 목표는 “하나 또는 여럿의 새로운 자연들을 생겨나게 하는 것, 그리고 자연들을 주어진 물체 속에 도입하는 것”이다. 자연을 통해서, 베이컨은 이렇게 종별화된 성질들을 이해했다. 밀도 있는 것과 희박한 것, 더운 것과 차가운 것,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휘발하는 것과 고착된 것과 같은 것 등으로 짝을 이룬 성질들을 이해했는데, 이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상학의 4권에서 목록을 부여한 것이고, 이 목록은 모든 자연학자들의 모델로 사용되어 왔었다. 조작적 기술은, 특히 구화학의 기술은 하나 또는 다수의 성질들을,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은 다른 하나의 물체로 생겨나게 하는데 있으며, 그 물체를 열있는 차거움으로 또는 휘발하는 고착으로 등등으로 되게 하는 것이다. 베이컨은,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이런 자연들의 각각이 그것[자연들의 각각]을 생산하는 어떤 형상 또는 본질의 드러남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형상의 주인들이라고 가정한다면, 따라서 우리는 성질들의 주인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형상을 인식할 때만, 우리가 주인들이 될 것이다. (29)
여기에서 신 기관의 적극적 임무가 개입된다. 그 책의 목표는 형상들의 인식에 있으며, 형상들의 현재화는 자연들을 생산한다. 우리는 제1권에서(151쪽 이하에서), 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문제 속에서 좌초했는지를, 어떻게 그 좌초가 토마스주의에 의해 인정된 것처럼 되었는지를 보았다. 우리는 차이들에 의해 종별 본질을 정의하기 위하여 하나의 류를 규정하는데, 그 차이들은 “진실한 차이들”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베이컨이 도달했다고 자찬하는 차이들이다. 형상, 진실한 차이, 사물 그 자체, 생산하는 자연, 유출의 근원, 순수 작동의 규정성, 법칙 등은 베이컨이 의도를 잘 표시한 만큼 동등한 많은 표현들이다. 사람들은 본질과 법칙을 규정하기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단들 중의 하나가 귀납법이었다는 것을 또한 상기한다. 그런데 또한 베이컨이 동일한 목적에 사용한 것은 이런 추론작업이다. (30)
따라서 신 기관은 옛 기관과 외적으로 동등한 도안이다. 형상들, 즉 본질들의 인식은 사실들에서 출발해서 귀납방식의 수단에 속한다. 그러나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좌초했던 거기에서 성공했다고 허풍 떨었다. 더욱이 그는 형상들의 인식으로 사변적 필요에 대한 만족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천적 조작의 서곡을 만들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30)
형상들의 탐구는 베이컨에 의해서 구화학자[연금술사]의 작품에 비교되었다. 구화학자는 일련의 조작들에 의해서 자신이 얻고자 원하는 순수 물질을, 그 물질이 섞여있는 형상들과 분리했다. 이런 이유로 관찰은,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형상을 찾으려는 하는데, 다른 자연들과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 있는 그 자연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런데 관찰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자연이 아닌 모든 것으로 분간하면서 만이, 관찰방식을 얻을 것이다. 귀납법은 제거의 절차이다. (30)
사람들은 이런 제거작업에 도달하기 위하여 어떻게 관찰방식을 유도해야 할 것인가? 그러면 자, 무엇보다 먼저 관찰을 전념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베이컨은 관찰자체로서 파악된 좋은 관찰의 조건들이 어떤 것인지 자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파악하는데 비판적 주의사항들이 어떤 것인지도 결코 자문하지 않았다. 이점에 관해서 그는 모호하고 피상적인 논평들만 남겼다. 실천면에서 그는 사실들을 전적으로 손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각오했는데, 그런 방법에 대해 전문적인 과학자들이, 마치 독일 화학자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1873)처럼, 그를 생생하게 비난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 그것은, 정신이 고정되고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경험들을 다수화하고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판 신의 사냥의 절차들, 즉 관찰들의 추적이 나온다. 탐구자의 통찰력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이는 마치 고대의 우화에서 판(Pan, Πάν, 모두) 신의 통찰력이 베이컨에게서 곡물의 신 케레스(Cérès, lat. Ceres)를 재발견하는데 사용하는 것과 같다. 경험들을 변하게 해야만 하는데, 예를 들어 마치 사람들이 과일 나무를 만드는 것처럼 숲의 나무들을 접붙이기를 한다든지, 만일 사람들이 용연향을 덥힌다면 문질러 덥혀진 용연향의 인력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본다든지, 경험 속에서 사용된 원자재들의 양을 변하게 해본다든지 말이다. 경험을 다시 다루어야만 하는데, 예를 들어 첫 증류작업에서 나온 주정을 한 번 더 증류하는 것이다. 경험을 넓혀야 하는데, 예를 들어 약간의 신중함을 보태어서 동일한 그릇 속에서 술과 분리된 물을 유지한다든지, 또한 할 수만 있다면 포도주 속에서 보다 가벼운 부분들로부터 보다 무거운 부분들을 구별한다든지 말이다. 경험을 자연으로부터 기술로 이동하게 해야만 하는데, 이는 마치 사람들이 물의 낙하에서 인위적으로 무지개를 만드는 것과 같다. 경험을 거꾸로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열기는 상승하는 운동에 의해 퍼진다는 것을 확정한 후에, 냉기가 내려가는 운동에 의해 퍼지는지를 찾는다. 경험을 제거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자석과 철 사이에 개입된 어떤 물체들이 당기는 힘을 제거하지 않는지를 찾는 것이다. 경험을 적용(응용)해야 하는데, 말하자면 어떠한 유용한 성질을 발견하기 위하여 경험들을 이용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다양한 장소에서 또는 다양한 계절에서 부패의 다소 빠른 속도 때문에 공기가 건강에 적합한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결국 다양한 경험들을 통합해야 하는 것인데, 마치 드레벨(Cornelis Drebbel, 1572–1633)이 1620년에 얼음과 질산나트륨을 혼합하면서 물의 어는 점을 낮추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도 경험의 우연들은 남는다. 예를 들어 떠도는 공기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연소를 닫힌 용기 속에서 만들어보는 것 같은, 이 우연들은 경험의 조건들을 가볍게 변하게 하는데 있다. (31)
위의 여덟 가지 실험적 절차들은 주어진 결과들을 생산하는 방식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변화와 반복 등등이 무엇을 생산하는지를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변화의 항목에서, 베이컨은 무거운 것의 낙하 속도가, 그것의 무게가 증가할 때도, 증가할 것인지를 찾기를 제안 하였다. 그리고 (게다가 갈릴레이의 유명한 실험들을 몰랐던 것 같다), 그는 응답이 긍정인지 부정인지를 선천적으로 예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판 신의 사냥의 경험들은 번식력있는 경험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결과가 기대에 응답하는지를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나는 경험들은, 우리가 가정한 거짓 연결들을 우리에게 알아보게 할 수 있고 또한 그 거짓의 제거를 준비할 수 있다. (32)
현전표, 부재표, 정도표 라는 세 가지 목록들 속에 경험들의 분담은 귀납법의 목표에 훨씬 더 명백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전 즉 본질의 목록에서, 경험들이란 모든 경험의 상황들 속에 위탁되어 있으며, 그 경험들 속에서, 자연이 스스로 생산되고, 사람들은 그 자연에서 형상을 찾으려한다. 부재 또는 거절의 목록에서, 경험들 안에서 동일한 자연이 없는 경우이다. 정도 또는 비교의 목록에서, 경험들 속에서 자연이 변한다. 사람들은 현전표 안에서 경험을 도입할 것이고, 그 경험에서 자연은 매우 다양한 가능성인 주체들 속에 현존한다. 그리고 부재의 목록 속에서, 사람들은 현전표 속에서 경험들로 있을 수 있는 가장 잘 닮은 경험들을 주목할 것이다. (32)
귀납법은 이 목록들의 검사에서 전체로서 있고 그리고 전체 때문에 있다. 목록들 사이에서, 자연을 동반하는 수많은 현상들이 현상들 그 자체로부터 그리고 일종의 역학적 확신과 더불어 감춰진 형상으로부터 제거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비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현전표의 모든 경험들 속에 있지 않은 모든 현상들을 제거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또한 사람들을 남아있는 현상들 가운데서, 부재표의 모든 경험들 속에 현재 있는 모든 현상들을 제거할 것이다. 결국에는 사람들은 또한 정도표에서 자연이 변할 때 변할 수 없는 모든 현상들을 제거할 것이다. “알 맞는 방식으로 거부와 배제를 일단 하고 나면,” 형상은 영속하는 잔여물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될 것이다. 예를 들어 열의 형상을 규정한다고 해보자. 베이컨은 열이 생산되는 스물일곱 경우들을 규정한다. 그리고 앞의 것들과 유비적으로, 열이 생산되지 않는 서른둘의 경우들을 규정한다(예를 들어 땅을 덥히는 태양에 대해 그는 부재의 경우로서 만년설을 녹이지 않는 태양을 대립시킨다). 또한 열이 변하는 마흔하나의 경우를 규정한다. 제거를 하고 난 뒤에도 영속하는 잔여물, 그것은 진동과 같은 운동이다. 사람들은 그 운동의 효과를 불꽃 속에, 또는 물의 끓음 속에서 확정한다. 그리고 베이컨은 이렇게 정의한다. 확장적이고, 또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운동은 물체의 전체에 도달하지 않지만, 물체의 보다 작은 부분들에 도달하고, 그리고 그것은 교대하고 진동하는 생성의 방식으로 밀어내었던 운동이다. (32)
이런 조작작업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과 무엇에서 다른지를 보는 것은 쉽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은 단순한 열거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경우들을 나열했는데, 그 경우들에서 어떤 상황(담즙의 부재)이 그가 원인으로 찾았던 현상(수명)을 동반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전표에서 베이컨이 배열했던 경우들에 만 그쳤다는 것이다. 부정적 경험들의 이용 작업은 이 영역에서 베이컨의 진실한 발견물이다. (33) (56VLG)
5절 형상: 베이컨의 메카니즘 – La forme: le mécanisme de Bacon 33
그의 귀납법이 성공한 조건들 중의 하나는, 형상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찾았던 불가사의한 사물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이고, 또한 사람들이 감관들에 의해서 또는 마치 현미경처럼 감관을 돕는 도구들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상은 결론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찰의 대상이다. 귀납법은 관찰이 있게 되는 영역에서 단지 관찰의 영역을 점점 더 좁히도록 해준다. (33)
베이컨이 해결책을 묘사했던 이러한 종류의 모든 문제들에서, 잔여물은 열(熱)의 경우에서처럼 항상 물질의 일관성 있는 기계적인 어떤 성향이라는 것을 우리가 덧붙이자. 만일 우리가 흰색의 형상이, - 눈(雪 설)에서, 거품끼 있는 물(水 수)에서, 가루가 된 유리에서,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보고 -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를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모든 경우에서, “투명한 두 물체들의 혼합이 있고, 물체적인 시각적 부분들의 단순하고 일률적인 어떤 성향과 함께” 있다는 것을 본다. 다른 곳에서, 즉 데카르트가 정신의 지도규칙에서 거의 단어 대 단어로 재생산했던 구절들 속에서, 그는 선들의 기하학적 어떤 성향 속에서 색깔들의 “형상”을 본다. 우리는 귀납법의 효과가, 형상을 발견하기 위하여 우리 경험 속에서 질적인 것, 즉 고유한 감각적인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본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베이컨이 역학자이라고 사람들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기하학적이고 역학적인 구조 속에서 자연의 사물 각각의 본질을 보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람들은 가끔 원하기를, 형상을 베이컨이 잠재적 도식화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다시 말하면 물체들의 내밀한 구성작업으로부터 구별하고자 한다. 그 도식화는 물체적 요소들의 미세함 때문에 우리를 벗어난다. 이때에 형상은 기계적 구조에, 즉 도식화에 첨가되어야 할 것이다. 도식화는 형상의 물질적 조건이지 실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베이컨은 이것들을 형식적으로 동일시하였다. 게다가, 그가 잠재적 진보에 대해, 말하자면 감각할 수 없는 조작들에 – 그 조작들에 의해 물체가 자기 성질들을 획득하는데 - 대해 말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또한 하나의 기계적 과정이다. 감춰진 구조들과 운동들이 있는데, 이것이 물리학의 진실한 대상들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17세기에 확립되었던 거대한 역학적 전통 속에 잘 들어갔다. 만일 그가 형상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에 남아있었다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형상의 탐구와는 뗄 수 없는 목적인의 탐구를 불임처녀로 취급하였을 것인가? (34)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메카니즘이다. 우선 그 메카니즘은 기대하지 않은 어떤 것처럼, 즉 귀납법의 단순한 결과처럼 나타난다. 역학적 구조, 그것은 “거부와 배제” 이후에 남는 무엇이다. 게다가 많은 형상들, 많은 역학적 구조들은 설명할 수 없는 절대자처럼 제시되었다. 데카르트와 가상디에게서는 이 구조들은 설명해야할 사물들인 반면에, 베이컨에게서 구조들은 사물들이고, 그 사물들이 설명한다. 또한 수학들은 데카르트에게서 갖는 지배적 역할을 그에게서는 갖지 않는다. 그는, 동시대인이며 카발리스트인 플러드(Robert Fludd, 1574–1637)에게서 자연에 대한 수학적 개념작업이 생산한 것을 본 후에, 수학들을 불신하였다. 플러드는 자연 속에서 도형들과 수들의 매우 임의적인 조합들을 실현하는데 만족하였다. 그리고 베이컨은, 수학들이 물리학의 도우미들로 남기를 바랐다. 말하자면 수학들이 물리학에게 척도들을 위해 언어를 제공하는데 만족하기를 바랐다. (34) (56VLH)
6절 실험적 증명 – La preuve expérimentale 34
[새] 기관으로 되돌아가보자. 베이컨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귀납법은 영역을 축소하게 해준다. 그 영역에서 찾아야 할 것은 형상이다. 그러나 만일 귀납법이 우리에게 행해야 하는데 배제할 것들을 지적해 준다면, 어떤 찰나에서 배제들이 충분한지를 귀납법은 우리에게 지적해 줄 수 없다.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새로운 배제를 우리에게 강요할 수 있으리라. 따라서 귀납법의 결과는 임시적이다. 이것은 첫째 결실이다.(34)
어떻게 한정적 결과에 도달하는가 하는 문제는 베이컨이 설명하려고 약속한 것인데, “보다 능력 있는 지원들”을 다루면서 그는 이 지원들을 이법에 부여할 것이다. 그는 이 “지원들”을 아홉 목록으로 세웠으나, 그러나 그는 첫째 목록만을 다루었다. 그 첫째를 그는 “사실들의 특정 권한들”이라 불렀다. 그는 스물일곱 종류의 “특권적 사실들”을 지적 했다. 그는 이런 표현으로 무엇을 이해했는가? 왜 이 사실들은 귀납법의 준비표들 속에 들어가지 못했던가? 예를 들어, 이것이 “외톨이 사실들”이며 다시 말하면 경험들이다. 이 경험들 안에서 감춰진 자연은 일상적으로 자기를 동반하는 상황들 중에 어떤 상황도 없이 드러나는 것이다(예를 들어 프리즘을 관통하는 빛에 의해서 여러 색깔들의 생산 작용이 그러하다). 거기에 현전표 속에 놓아야 할 하나의 사실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전하는 사실들이, 즉 자연이 갑작스레 드러내는 경우들이 있다(거품이 이는 물에서 흰색); 표면적이면서 비밀스런 사실들, 즉 자연이 최대치와 최소치에 속하는 경우들은 정도표로 되돌아간다; 단일하고 파생적인 사실들, 주어진 자연이 예외적인 국면에서 스스로 드러나는 경우(광물질들 가운데 자석, 괴물들)이며, 현전표에 속한다; 갈라지는 사실들이 있는데, 일상적으로 통합된 두 자연들이 우리에게 반목하여 이간질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보여지는 경우는(예를 들어, 약한 밀도와 열: 공기는 열이 없이는 밀도가 거의 없다) 부재표에서 자리를 발견한다. 이런 여러 표들 속에 되돌아가는 것이 그 유명한 결정적 사실들에까지는 아니다. 우리가 주어진 자연을 설명하기 위하여 두 형상들 사이에서 주저할 때, 이 결정적 사실들이 “이 형상들 중의 하나와 자연의 통합은 고정되고 분해할 수 없는 것을, 반면에 다른 하나와 자연의 통합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경구 36). 어떻게 이런 정식을 이해하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부재표의 사실들이 이런 변화성을 확실하게 증명하는지를 매우 잘 이해한다(이것이 갈라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베이컨의 논리학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고정되고 풀리지 않는 통합을 증거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들은 형상을 추구하는 영역을 축소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영역을 또 한 번 축소시킬 수 있는 지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베이컨의 눈에는, 사람들은 중력의 원인 또는 형상이 무거운 것을 지구로 끌어들이는 인력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만일 추시계가, 그 시계가 지구의 중심에 가까워 질 때, 더 빨리 간다는 것을 확정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전표에 보태야할 단순 한 한 사실이, 아마도 그럴듯한 사실이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은 다른 사실에 의해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베이컨에게서 긍정의 결정적 증거는 결코 없다. 오직 부정적인 것들만이 증명된다. 이리하여 이런 “사실들의 특정권한들”은 베이컨이 창안했던 새로운 도구들에 전혀 보태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그는 불 밝히는 사실들(instantiae lampadis)을 인용한다. 이 불 밝히는 사실들은, 마치 현미경과 망원경과 같은 감관들을 돕는 도구들에 의해서든지, 마치 질병들에서 맥박처럼 기호들(signe)들에 의해서든지, 우리 정보를 확장하는 단순한 수단들이다. 사람들은 수단들의 가능한 이용에 보다, 재료들의 끌어 모으는 수단들에 그가 더 주의 깊었다는 것을 본다. (36) (56VLH)
7절 마지막 부분들: 거대한 재구축에서 – Les dernieres parties de Instauratio Magna. 36
따라서 신 기관은 자연에 대한 과학들의 구성의 국면들 중의 한 국면의 묘사일 뿐이다. 거대한 재구축(1620)의 마지막 네 부분들은, 출발점인 역사에서 도달점인 조작적 과학에까지, 자연과학을 실현해야만 했다. 이 책의 셋째 부분은 「역사들」에 관한 부분이다. 이 작품에, 베이컨은 생애의 마지막에, 1624년에서 1626년까지 그의 비서 롤리(William Rawley, 1588경–1667)의 도움으로 각별하게 헌신했다. 그는 실바 실바룸에서, 그가 여행, 물리학, 화학, 의학의 책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호기심을 끄는 사실들을 참조했다. 권위들은 거기에서는 최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많을 것을 파라셀수스(1493-1541)에게서 빌려왔다. 그는 연금술사들에게서 금을 제작하기 위한 비결들을 수집했다. 그는 우연히 자석에 관하여 또는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의 작업들 속에서, 또는 드레벨(Cornelis Drebbel, 1572–1633)의 온도 측정의 실험들 속에서 최상의 안내자들을 발견했다. 실바 실바룸은 일반적 역사이다. 베이컨은 각각의 “자연”에 관하여 개별적 역사를 쓰려고 규정하였다. 그 자신은 이에 대해 몇 가지들, 예를 들면 삶과 죽음의 역사 작성했는데, 종종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와는 반대로 이끌어갔다. 하비는 결정적인 실험에 의해서 피의 순환을 막 입증했다. 직접적인 관찰에 거의 신중하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역사에서, 경험 자체보다도 소위 말하는 경험의 (플리누스에 온) 전통에 집착하여 로제 베이컨(1220경-1292경)과 동일한 오류를 범했다. (36)
거대한 재구축(1620)의 넷째 부분인 「지적인 단계들」은 그것을 응용하면서 신 기관의 주제를 다시 다루고 있다. 그것의 제목은 오성의 단계들이며, 개별적 관찰들로부터 일반적 공리들로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중간 공리들을 통과하면서 점진적으로 필연성을 암시한다. (37)
다섯째 부분은, 일반 공리들 위에 근거하면서, 여섯째 부분을 실현하는, 또한 인간에게 자연의 지배권을 부여해야 하는, 실험적 과학을 준비한다. 그러나 점점 더 그가 이 목표로 향해 나감에 따라, 작품은 다소 모호한 초벌 상태로 남는다. 그가 이해한 바로, 그의 목표는 맹목적 경험주의에 의해서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알았으나, 그러나 그가 스스로 예고자로 자처하는 지적인 혁명의 댓가를 치르는 것으로 알았다. 이런 혁명이 완수되기에 앞서서 행동으로 되돌아갈 생각이 없었음이 틀림없다. 그가 이해한 바로, 과학적 작업은 한 무리의 탐구자들 사이에 분담되어 있는 집단적 작업이며, 그는 이 마지막 작품들 중의 한 작품에, 즉 일종의 과학적 공화국의 묘사이며, 각자에게 자신의 임무를 할당하는 신 아틀란티스에 전념했다. 우선 사실들의 탐색자들(mercatores lucis)이 있다. 이들은 낯선 이에게 호기심을 일으키는 관찰들을 찾으러 간다. 약탈자들(depraedatores), 이들은 옛 책들을 세밀히 검토하는 자들이다. 사냥꾼들(venatores), 이들은 공예인들의 비밀들을 재빨리 파악한다. 개척자들(fossores)은 새로운 경험들을 수립하는 선구자들이다. 그러고 나서 세 가지 목록표에서 사실들을 분담하는 자들이, 즉 분배자들(divisores)이 온다. 그 다음으로 그것으로부터 임시적 법칙들을 추출하는 자들이 온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해야하는 경험들을 상상하는 자들이 온다. 결국에는 이 경험들을 그것들의 순서에 맞게 집행하는 자들이 온다. 또한 여기에서 상상의 관점에서는 베이컨이 아직도 실험적 과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학에서는 나머지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37) (56VMI)
8절 영국에서 경험 철학 – La philosophie experimentale en Angleterre
볼떼르(Voltaire, 1694-1778)는 자신의 철학적 편지들(1734)들에서 베이컨에 관하여, 18세기 초에 영국에서 아주 일반적이 되었던 한 견해를 내었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특이하고 최상인 작품이 오늘날 매우 덜 읽히고 또한 가장 무용하다. 나는 그의 새로운 과학의 기관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새로운 철학을 건설하는 골조이다. 그리고 이 건물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세워졌을 때, 골조는 더 이상 어떤 용도로 쓰이지 않는다. 대법관인 베이컨은 자연을 아직 알지 못했으나, 그는 자연에 이르는 모든 길들을 알았다.” 영국에서 1650년부터 사실상 새로운 철학, 즉 경험철학 또는 효과적 철학이라 불렸을 경탄할 진수가 있었다. 말하자면 자연에 대한 실험과학들의 일체가 있었다. 1645년에 세웠고 공식적으로 1662년 인가된 런던의 왕립학회,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의 물리학적 작품, 특히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의 작품 등은 이 발전의 기념물들이었다. 단지 왕립학회의 집단적 작품, 즉 이 학회가 자연의 현상들을 세우고자 시도했던 목록은 베이컨 과학인 역사의 첫째 요구를, 그랜빌(Joseph Glanvill, 1636–1680)의 과학적 허풍(1665)을, 즉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왕립학회의 예언적 기획”을 실현하기 위한 시론이었다. 그 동일한 그랜빌은 자기 작품에서 데카르트 철학이 다루는 모든 재료들에 관하여 우리 인식의 불확실성을 제시하면서, 학회의 정신을 잘 표현한다. 그 재료들이란, 영혼과 신체의 통합, 영혼의 자연과 기원, 생명체들의 기원, 원인들에 대한 무지(흄보다 앞서 그가 말하기를, 우리가 기대한 사물로부터 아니라면, 우리는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의 원인이라고 인식할 수 없다고 한다.) 등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재료들에 대해, “그의 담론이 이끌어 가 새로운 철학”의 실험적이고 실천적인 부분의 발견물들에 있는 풍요성을 대립시켰다. 모든 증명은 경험적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학회의 본질적 규준들이다. 이때부터 학회는 임시적인 결과들만을 기대하기를 원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미래 시대들의 경험들은 현재 시기의 경험과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러나 반대로 거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립학회 사무총장이었던 훅(Robert Hooke, 1635–1703)은 “비교할 수 없는 인물, 즉 베루람(Verulam, 베이컨)”의 찬미자인데, “자기들의 사상들을 오로지 베끼기를 원하는 자들, 그리고 자기들에게 개별적이지만 사물들에 대해 마치 일반적인 것처럼 주어진다고 이처럼 진술하는 자들”을 질책한다. 이 왕립학회에서 보일(1627-1691)은 뉴턴(1643-1727)에 이르기까지 가장 탁월한 회원이었다. 그런데 보일은 특히 화학에 전념하였으며, 물질에 관한 상당한 이론가였으며, 너비이자 불가침투성인 제1성질로부터 “제2성질들”을 연역해내는 소립자 이론과 역학 이론의 찬성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 경험철학의 메카니즘이다. 데카르트의 메카니즘에 대해 그는 후크에 의해 사용된 동일한 용어들로서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개별적인 관점이다: 즉 “데카르트가 성질들에 부여한 역학적 설명은 미묘한 방식으로 개별적인 용어들에 의존하는 만큼, 둘째 요소의 구형입자들에 그리고 다른 비슷한 사물들에 의존한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이 용어들을 자기 가설들의 나머지 용어와 매우 잘 엮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철학을 전적으로 채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드물게 사용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사유는 너무나 체계적이고 인격적이기에, 경험과 더불어 굴절하게 되는 어떤 사유에게는 자유로운 놀이를 질식하게 할 지경이다. 보일의 메카니즘의 출발점은 실험적이다. 이것은 기계들의 수학적 이론, 즉 “순수 수학을 생산작업에 적용하게 하는 또는 물체들 속에 운동들의 모양변화에 적용하게 하는” 이론이다. (39) (17:29, 56V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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