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산은 충주공업고등전문학교 현 충주대학
기계과를 졸업하고 4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조선백자연구의 필요성을 깨닫고
1975년 교직생활을 뒤로하고 이천 전통도자기 고장의
백석 이정하 선생(작고)에게 2년간 사사하였다.
1977년 신세계화랑 개인전을 열며
현 항산도예연구소를 세운 후 지금까지
전통 장작가마 등요를 지키며 진사의 연구에 전념하며
2002년 도자기공예기능사를(7890등급) 취득하고
2004년 도자기공예부문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었다.
2005년 진사안료의 제조방법과
그 안료의 발명특허 0506119를 등록하고
1997년에는 정밀기술 진흥대회에서
도자부문 금상 (통산업부장관 임창열)을 수상하였다.
주요 전시회 및 경력으로는 신세계화랑개인전을 시작으로
일본 동경 구보타 개인전 (1995년),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 (2002년)
미국 LA, 코스모스백화점 전시회(19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브르그전 (1997년),
예술의전당 진사백자전 (2009년),
일본 조선진사백자전 (2010년) 등
개인전 14회. 공동전 21회 개최. 중요대전 15회등
총 50여회 이상의 전시회를 열거나 출품하였다.
현재는 항산도예연구소장으로
명자대산업대학원 도자기술 학과에 출강하고
한국금융연수원 강사를 역임하고 있다.
항산 임항택 명장은 장녀 임창랑에게
조선백자 연구의 모든 것을 이어 받을 수 있도록
수석 전수자로서의 인격과 능력을 갖추도록 지도하고 있다.
백자진사청화채매화문호 白磁辰砂靑華彩梅花紋壺
크 기 / 높이 37 지름 31㎝
백자청화포도문호 白磁靑華彩葡萄紋壺
크 기 / 지름 幅 23㎝. 높이高 23.5㎝
백자진사청화채계손문호 白磁辰砂靑華彩蓀紋壺
크 기 / 지름幅 23㎝ 높이高 24㎝
도자기명장 항산 임항택 "진사백자"
도예가 항산(恒山) 임항택은
'진사 백자' 분야에서 알아주는 도예가다.
2004년 정부로부터 '도예부문 명장(名匠)' 칭호를 부여받은
항산 선생은 최근들어 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진사(辰砂)백자'를 30여년 넘게 연구해왔다.
지난 2009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사 백자를 모아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던 그는
진사로 다양한 꽃들과 홍시, 소나무 등을 그려넣은
백자 작품을 빚고 있다.
진사백자란?
산화구리는 환원번조에 의해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진사백자라고 하지만 진사(朱砂라고도 하며
수은과 황의 화합물로서 염료나 약재의 원료)는
도자기의 안료인 산화구리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동화(銅畵)백자라고도 한다.
산화구리를 유하채(釉下彩)로 처음 사용한 것은
14세기 중기 중국의 징더전 요[景德鎭窯]에서 제작된
유리홍(釉裏紅)백자이다.
그러나 중국의 유리홍은 청화백자와
저화도(低火度) 유상채(釉上彩)인
오채(五彩)의 성행으로생산량이 적다.
우리나라의 진사백자는 대부분 18, 19세기의 것으로
수량이 적은 편이다.
진사는 청화백자에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와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릇의 전면에 채색을 하고 백자유를 씌워서
적색유(赤色釉)의 효과를 내는 진사채도 있다.
간송미술관 소장의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靑華白磁鐵砂辰砂菊花紋甁:국보 제294호)은 청화와 함께
진사를 사용한 것으로 문양이 양각된 부분은
청색·적색·갈색의 안료로 채색되어 있고,
제작수법도 정교하여 경기도 광주시 분원 관요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문방구와 같은 작은 그릇에 많이 사용했으며,
민화풍(民畵風)의 단순한 그림을 소재로 한 것에는
산화구리를 단독으로 사용했다.
진사백자는 대부분 백자진사연화문호
(白磁辰砂蓮花紋壺:국립중앙박물관)와 같이
단순한 연화무늬를 그릇의 전면에 간략하게 그려넣었으며,
기형은 관요의 조형을 따르고 있지만
제작기술이 다소 뒤떨어진다.
진사백자는 문방구와 같이 정교한 소품(小品)에 한정되어 있으며
상형(象形)·음각·양각·청화 등의 장식기법과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백자양각진사채쌍학문연적
(白磁陽刻辰砂彩雙鶴紋硯滴:국립중앙박물관)은
전면에 진사채를 하고 쌍학문만 양각을 한 다음
백자유약을 씌운 것으로 분원 관요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진사백자의 생산량이 적었던 것은
청화백자에 대한 선호와 산화구리 처리상의
기술적인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백자진사목단문 특대호
백자진사홍시문 특대호
백자진사청화채 매화문 특대호
백자진사연화문 특대호
백자진사새우문 대호
백자진사산백합 특대호
저는 30여 년 전 조선 백자의 연구에 뛰어들면서
그때 무심코 관찰하던 한 편의 도자 파편에 대한
충격스런 감정을 지금도 지울 수 없습니다.
조그만 붉은 진사색의 파편,
온몸을 태워 버릴 듯 한 처절한 선혈의 붉은색이
먼 우주의 미로로 내 자신을 빨아들이는 전율,
그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줄곧 이 진사의 색채는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도토를 개고 물레를 돌리면서도,
장작불을 때면서도 이 빛깔의 재현은
멀고도 아스라한 길처럼 아득해보였습니다.
수없는 시행착오와 실험의 결과로서
2005년에는 조선백 자안료의 제조방법 및
그 안료로 특허를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제조방법과 그 안료를 독점하려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는 막연한 실체를
확실하게 후학들에게 전하고자는 뜻에서였습니다.
도자를 빚고 굽는 일은, 집착과 분별이 빚어내는
숱한 번뇌나 아픔을 잊게 합니다.
우리 삶의 모서리에서 부딪히는 삶의 질곡들을 잊게 합니다.
아픔이 나 슬픔도 치유해주는 안온함이 스며있습니다.
흰빛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푸른 붉은 빛이 섞여있는 백자에는
그 빛깔만큼의 애환과 상처가 무르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진사에는 한국인의 혼과 얼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은은하면서도 순직한 멋과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미적 아름다움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저의 연구소가 위치한 이천을 중심으로
세계 도자비엔날레가 열리고,
(사)한국도자문화협회가 창립되면서 한중 도자명인 100인
<도자유혼 陶瓷有魂> 展도 열리는 등 대내외적으로
도자에 대한 관심이 점차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도자기가 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도자를 통해 표현의 다양성과 세계관을 넓혀가면서
이제는 세계인들과 호흡할 수 있는
창의적인 열정으로 매진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에 기조를 두지 않고서는 현대도 있을 수 없고
그 뿌리의 본향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전통을 현대와 접목시키는 일!
연암 박지원 선생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움에 도전하겠습니다.
늘 고마운 분들이 제게는 있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시는 도자를 사랑하시는
애호가 여러분들이 물심양면 아끼지 않으시고
베풀어 주신 충고와 사랑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항산 진사백자 연구재단 황보명진 이사장님과
김용복 부이사장님을 비롯한 많은 재단 관계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망우존인(忘牛存人)”이라고 했지요.
심우도의 열 개의 그림으로 된 이 선문답에서는
“마음의 흰소”를 찾고서는 사람으로 돌아오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흰소”를 찾았으면 됐지
소를 수단으로 물욕과 자리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스스로 위선하며 자만으로
시간을 소모하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겸허하게 낮은 자리에서 여러분이 내려주신 명장이
허명이 되지 않도록 도자기 연구의 본령을 잊지 않고
후일 가치 있는 고전으로 후학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06년 새해 아침. 임항택
첫댓글 기품이 나는 귀티가 나는 도자기
설명과 함께 잘 보고 갑니다...
시간과 혼을 녹여서 구워낸
구도자적 수행..
어느 보석이 이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