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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1절] 문제의 제기 La position du problème 253
[2절] 수학들의 기술적 개념작업 La conceptions technique des mathématiques 257
[3절] 시간과 공간의 형식들 Les formes de l’espace et du temps. 262
[4절] 선험적 연역과 도식주의 La déduction transcendentale et le schématisme 265
[5절] 수학적 인식의 상대성 La relativité de connaissance mathématique 269
[6절] 수학들과 자연의 형이상학 Les mathématiques et la métaphysique de la nature 276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1절] 칸트로부터 꽁트로 De Kant à Comte 282
[2절] 분석적 역학 La mécanique analytique 286 .
[3절] 분석 기하학과 분석 열이론 La géometrie analytiqueetthermologie analytique 293
[4절] 추상 수학 La mathémitique abstraire 296
[5절] 실증주의에서 수학 La mathémitique dans le positivisme 299
제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 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단원 A. 합리적 역학의 개념작용. La conception de la mécanique rationnelle. 304.
단원 B. 비유클리드 기하학들Les géométries non euclidiennec 310
[1절] 사케리의 선구자들 Les précurseurs de Saccheri 313,
[2절] 신부 삭케리 Le P. Saccheri. 315
[3절] 로바체프스키와 리만 Lobatchevski et Riemann 318
[4절] 메타기하학 Les métagéométries 321
단원 C. 분석학 과 연속성 L’analyse et la continuité 325
[5절] 18세기에서 문제 Le problème au XVIIIesiècle 325 §194
[6절] 뽕슬레에게서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Poncelet 327 §195
[7절] 꼬쉬의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Cauchy 330 §196 §197 §198
[8절] 분석의 자치 L’autonomie de l’analyse 334 §199 §200. §201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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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 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단원 C. 분석학 과 연속성 L’analyse et la continuité 325
[분석학은 물체(입자)의 다양한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함수들을 제시한다. 함수와 대수학의 결함으로 이루어진다.]
5절, 18세기에서 문제 Le problème au XVIIIesiècle 325
[18세기 말에 데카르트와 뉴턴의 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운동의 문제들이 제기된다.]
[19세기는 수학들의 다양한 발명이 있다. 4차원과 복소수(행렬) 등이 메타수학이라는 용어를 창안했을 것이다. - (1843년) 해밀턴(1805-1865)의 4원수(quaternion)의 이론, (1844년) 그라스만(1809-1877)의 확장(extention)의 계산]
§194. [18세기 수학자들, 베르누이(Daniel Bernoulli, 1700-1782), 오일러(1707-1783), 달랑베르(1717-1783), 몽뛰클라(1725-1799). 이들의 문제, ]
마치 합리적 역학과 기하학에 관해서처럼, 분석학에 관해서, 우리는 과학에 대한 칸트의 또는 꽁트의 개념작업들 과 현실적 개념작업 사이에서 단절점들을 표시하고자 애쓴다. 그러한 것을 위하여, 특히 우리는 연속성의 관념의 진화에 스스로 집착해야 한다. 게다가 광경은 가장 교훈적인 것들 중의 하나이며, 사유의 역사가 그것을[하나를] 제공할 수 있다. 순수 관념들만 문제인 과학에서, 정신이 자기의 초기의 연속적 성공에 부여되었던 틀들을 깨뜨리면서, 인간의 자연적 태도인 게으른 독단론을 흔들면서, 그리고 직관의 혼동된 종합들 대신에 진실한 합리성의 토대인 명석하고 엄밀한 분석으로 대체하도록 강제하는 과학적 진보에 의해 태어났던 난점들 자체에 의해서, 관념들의 자연(본연)으로부터 솟아나는 내속적 필연성을 사람들은 본다. (325)
18세기의 수학자들은 무한소 계산의 형이상학적 정당화를 제공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그들은 좌초했다. 그러나 실천적으로 그들은 스스로 단단한 지평 위에 있다고 느꼈다. 이들은 분석적 정식과 기하학적 표상 사이의 상관관계를, 즉 데카르트 과학의 원리들이었던 상관관계를 초월적 영역으로 확장하였다. 한편으로 후자[표상, 변수]의 무한히 작은 것의 증가들과 전자[정식, 함수]의 무한히 작은 것의 변화들 사이에 연결에 의한 추상적 질서 속에서 표출되는 함수와 변수의 연대성은 공간과 시간의 연속성에서 그것[연대성]의 확정과 예시를 발견한다. [다른 한편] 상호호환하여[상보적으로], 공간의 연속성을 밝혀질 것이고, 또는 만일 사람들이 그것[연속성]에 함수의 통일성을 표현하고자 부과한다면, 적어도 그 연속성은 수학적 용도를 위하여 제한된다.이리하여 오일러는 유일하고 동일한 함수의 도움으로 분석적으로 번역되는, 말하자면 상수[항상]인 법칙에 복종하는, 곡선들을 마치 연속(contimues)처럼 고려한다. 곡선들은 그것들의 차이의 몫들이 x의 다른 함수들의 표현들을 위한 것과 같은 것들이라고 할 때, 이 곡선들은 불연속적이고, 다시 말하면 “혼합되고 비규칙적(mixtes et irrégulières)”이다. 그런데 곡선들은 이렇게 정의된 연속성의 영역에 즉각적으로 제한되어 있던 분석학의 직접적인 대결들(les prises)을 회피한다. (325)
오일러의 개념작용은, 만일 사람들이 “진동으로 팽팽한 끈으로 형성된 곡선”에 관하여 달랑베르의 탐구들에 의해 열려진 토론을 참조하게 된다면, 정확하게 된다. [한편] 달랑베르(1717-1783)는 “진동하는 끈의 다른 모습[형상]들이 유일하고 동일한 방식 안에 갇혀있을 수 있는 경우들을 위하여”해결책을 지적했다. 다른 한편 다니엘 베르누이(D. Bernoulli, 1700-1782)는 방정식의 종합적 검토를 다시 했다.그는 “진동의 혼합(le mélange de vibration)”에 대한 수학적 표현에 특히 집착했다. 진동 혼합에는 조화로운 소리의 현상이 상응하다. 그리고 그는 “진동하는 끈의 곡선이 항상 길어진 바퀴모양(trochoïde) 또는 정현곡선(sinusoïde)이거나 또는 그러한 바퀴모양들로 조성된 것으로서, 사람들이 곡선에 부여했던 어떤 처음의 모습들이다.”달리 말하면, “만일 시간 t에서, 한 끈(길이 λ)의 점들의 좌표계(x, y)는 다음 방정식을 검증[측정]한다.
∂2y/∂t2= μ2∂2y/∂x2 (μ constant)
베르누이는 …을 제시할 것인데, 방정식은 사인(sinus)과 코사인(cosinus)의 생산물들에 의해 만족되고, 그것은 방정식을 마치 계열[순열]을 일반적 적분처럼 다루는 방식으로 이끌 것이다.
y= ∞/ n=1 Σ (ancos nπμt/λ + bnsin nπμt/λ) sin nπx/λ.
t = 0인 경우에, 이런 관계는 끈의 도입[초기] 지위[위치]를 부여해야 했다. 이런 위치는 임의적이었다. 임의적 함수는 삼각법의 계열에 의해 재현될 수 있었다.” (326)
그러나 이런 결론은 베르누이의 동시대인들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주기적인 초월(une transcendante)계열(une serie)이 비주기적 함수들을 재현할 수 있었을까? 오일러의 눈에는 “바퀴모양들의 조합으로부 끌어낸 해결책은 매우 특별한 것처럼 간주될 수 있을 뿐이리라.”사람들이 곡선을 방정식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필연적인 조건, 이것은 “도형ADB[호 곡선](도형 12 참조)은 자연적 조건이 반복된 다른 부분들 모두를 이끄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베르누이의 바퀴모양은 이런 조건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 곡선의 비슷한[닮은] 여러 다른 부분들은 어떠한 연속성의 법칙에 의해서도 부분들 사이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이 부분들이 함께 접합되어(joints)있다는 서술에 의해서 일뿐이다.” (327)
6절, 뽕슬레에게서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Poncelet 327
§195. [뽕슬레(Poncelet, 1788-1867)는 연속성의 공리를 제안하여, 사영기하학을 창안했다. 꼬쉬(Cauchy, 1789-1857)가 원뿔 속에서 다룰 것이다.]
이리하여, 이것은 우리가 토론으로부터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18세기의 수학자들은 감정을 가졌는데, 즉 연속성에 대한 완전히 직관적인 용어 위에 근거하는 분석학이 자연적 현상들의 복잡성에게 부적합한 채 남아있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감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갇혀있었던 원을 부셔버리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327)
더 많은 것들이 있다. 분석학의 외관[모습]을 변형했던 관념을 그것의 범위와 그것의 독창성에서 파악하기 위하여, 직관적 영속성의 단계에 아직 머물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뽕슬레가 기하학적 방법들의 확장을 위하여 그것[연속성의 단계]으로부터 끌러낼 수 있는 방책[당파]을 강조하는 것이, 편리하다. 과학의 역사 속에 기대하지 않은 에피소트가 있다. 19세기의 시초에 분석학은 공간적 연속성의 기초 위에 구성된 것으로 나타난다. 극단적 과감하게 [원운동처럼] 회전하는 운동에 의해서, 뽕슬레(Poncelet, 1788-1867)는, 연속성의 공간적 경험이 회피하는 특별한 경우들을 위하여, 분석학에게 공간의 과학자체를 넓힐 것을 그리고 풍부하게하기를 곧 요구할 것이다. 그는 분석학에게 이상적(idéal) 연속성의 용어를 빌려준다, 그는 공간적 몇몇 이미지들의 실재적 비연속성 대신에 이 연속성의 용어로 대체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어떤 연속성의 공리를 선언한다. 이 공리는 그에게 몽쥬(Monge, 1746-1818)의 서술적 기하학을 다시 다룰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거의 완전히 새로운 과학을, 즉 사영 기하학을, 그것으로 만드는데 까지 그 기하학을 넓게 하는 것을 허락한다. (327)
이런 연속성 공리의 정의와 발생은 퐁슬레가 떼르껭(Terquem, 1782-1862)에게 보낸 1818년 11월 23일의편지에서 가장 확실하고 깔끔하게 지적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검토된 공리는, 토대에서 사람들이 그 공리를 어떤 관점 하에서 고려했을 때, 영속성의 원리(principe de permanence), 또는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계속에 의해 변할 수 있는 크기들에 대한 수학적 법칙들의 무한정한 연속성일 뿐이고, 그 연속성은 동일한 체계의 몇몇 상태들을 위하여, 순수하게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방식으로 종종 존속할 뿐이다.” (327)
이 원리는 순수 대수학의 토대이며, 퐁슬레가 덧붙이기를 함축적 토대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완전히 무료(gratuit)이다.왜냐하면 계산들이 관여하는 문자들의 모든 상태들로 심지어는 상상적 상태로 무매개적으로 넓혀진다는 것을, 대수학의 기본적 조작[계산]들이, 정의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얼마나 이런 의지적 확장이 여기까지 거의 증명되지 않았는지를 안다. 그리고 확장이, 수학적 발명들과 작업들의 두 세기의 경험이 그것[대수학]에게 각인했던 확장만을 확신한다는 것을 다 안다.”이런 점으로부터 이런 일반적 질문이 나온다. “사람들은 자문한다. 왜 기하학은 기하학의 개념작업에서 매우 제한되는가? 그리고 만일 그것[제한]이 가능하지 않을지라도, 어떤 점에까지 기하학을 대수적 분석학과 동일한 장점들을 즐길 수 있는가?” (328)
이 기획[프로그램]을 채우기 위하여, “순수 기하학의 결과들을 자연적으로 박탈했던 확장의 성격과 일반성의 성격에 도달하기 위하여,”뽕슬레는 “원초적 도형을 위하여 발견된 성질들의 적용을 … 원초적인 도형과 도형의 상태들의 상호연관이 단순하게 간접적이며 또한 실재적 귀결이 된, 도형의 상태들에게뿐만 아니라, 또한 이리하여 부분들의 개체적이고 기하학적인 현존을 상실하면서 도형의 몇 부분들이 0(nulles)으로, 허수로, 무한으로 되는 모든 상태들에게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체계의 원초적 상태와 이상적(idéale)상호관계만을 보존하려하는 모든 상태들에게” [적용을] 운반한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다음처럼 말하고 생각한다. 즉 “동일 평면에 위치하거나 않거나 간에 여러 평행하는 직선들의 다발은 무한에 자리 잡은 그것의 경쟁점을 갖는다.” 그리고 “동일한 이유에 의해서 사람들은 말하고 생각한다. 즉 공간에서 주어진 어떤 점과 경쟁점의 거리는 무한하다(infinie). 그리고 이 거리는 다른 평행선 위에 명증하게 측정된다.”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어떤 연속적 곡선을 자르는 직선의 운동을 고려한다면, “…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실재적인 교차점들 사이의 어떤 두 점은 연속적으로 접근되며, 끝내는 혼동되고, 귀결로서 구별되기를 그만둔다. 그런데 이때에 이 점들의 상호거리는 사라질 것이고, 모든 기하학적 현존을 상실할 것이다. 이런 것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lui)에게 적어도 이상적 현존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어서 상응하는 교차하는 두 점들을 개념작업에서 구별하기 위하여, 마치 점들이 이전에도 현존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점들이 주어진 모든 거리보다 작은거리에 있다고, 무한히 작은 거리에있다고 말하고 또 생각한다.” 동일한 운동의 연속성에 의해서 “사람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교차하는 두 점들은, 무한히 작은 거리에 접근한 후에, 그것들의 현존을 갑자기 또 동시에 사라지게 한다. 왜냐하면 직선은 상응하는 곡선의 몫(부분)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 때문이다. 이때에 담론 속에서 그리고 개념작업 속에서 그것[두 점]들에게 적어도 이상적인 기호의 현존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어서 마치 교차점들이 예전에 구별되었던 것처럼 개념작업에서 상응하는 두 교차점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그것들이 전적으로 주어진 거리보다 더 많이 작은 거리에, 즉 무한히 작은 거리에 있다고 말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담론에서 개념작업에서 적어도 이상적인 기호의 현존을 두 점들에게 보존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두 점들이 [허수처럼]상상적이 되는 동시에, 또한 주어진 두 실재적인 모든 점으로부터 두 점들을 분리하는 거리들도 그만큼 상상적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두 선들의 공통 교차 속에서 무한정한[정의 되지 않은] 관념이 확립된다.”
이런 개념작업들로부터, 뽕슬레는 실용적 관점에서 생각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증거를 확실하게 제공한다. 왜냐하면 그가, 근대 기하학이 되었던 것의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발전을, 그 관점에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329)
그럼에도 그가 과학들 아카데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과물들 중의 몇 가지를 포함하고 있는, 「원뿔 분할의 투사[사영]적 성질들에 관한 논문(1822)」을 발표했을 때, 그는 꼬쉬(Cauchy, 1789-1857)의 「보고서」[1812]에서 연속성의 범위에 관한 아주 말끔하지만 그에게는 매우 잔인한 유보사항을 발견했다. 꼬쉬가 쓰기를 “이 [연속성의] 원리는 맞춤으로 말하자면 강한 귀납법일 뿐이다. 이 귀납법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몇 가지 제한들 덕분에 그리고 이 동일한 제한들이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 경우에, 우선 확립된 공준들을 넓힌다. 2차원의 곡선들에게 적용되었던, 원리는 작가를 정확한 결과들에게 인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리가 일반적으로 인정될 수 없을 것이라고, 또한 기하학에서 모든 종류의 문제들에게 판명하기 않게 적용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원리에게 너무 과도한 신뢰를 인정하면서, 사람들은 가끔 드러난 오류들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알고 있기를, 한정된[정의된] 적분들의 규정작업에서 그리고 이어서 길이들, 면적들, 체적들의 평가에서, 사람들은 많은 수들의 정식들을 만난다. 그런데 그 정식들은, 이것들이 포함하고 있는 양들의 가치들이 어떤 한계들 사이에 포함된 채 남아있는 만큼만 진리일 뿐이다.” (329)
7절, 꼬쉬에게서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Cauchy 330
§196. [꼬쉬(Cauchy, 1789-1857)는 분석학으로부터 근대과학의 토대를 세우다.]
이런 계보들이 불러일으킨 머나먼 논쟁을 연장하는 것은 한가한일일 것이다. 사영기하학과 분석학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다. 기술적[조성적] 관점으로부터 일어날 수 있었던 오해들, 또는 원리에 대한 너무 간략한 진술, 또는 너무 과도한 생략의 비판 등은 흩어지기 쉽다. 다르부(Darboux, 1842–1917)가 쓰기를, “뽕슬레는 그것을 분석의 단순한 귀결로서 소개하기를 거부하면서, 그것에 잘못을 범했다. 다른 한편 꼬쉬는 아마도 몇몇 초월적 도형들에 적용할 수 있는 그 자신의 반대들이 「사영의 성질론(1822)」의 저자(뽕슬레)에 의해 이루어진 적용들에 맥없이 남아있을 것이다.”우리가 좀 전에 사용한 인문구들에 의해서, 뽕슬레와 꼬쉬는 실재성 속에서 이런 이중 필요사항(desideratum)에 만족하는데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는다. 그래도 두 인물[뽕과 꼬]을 통하여 두 가지 수학철학들이 대치되어 남아있다. 또는 보다 정확한 방식으로 그리고 우리에게는 보다 교훈적인 방식으로, 두 인물을 통하여, 수학들의 고전적 시기에 영감을 주었던 철학으로부터 근대 시대의 철학으로 이행이 파악될 수 있다.
고전적 시기에는 연속성이 마치 분석학과 기하학의 공통의 뿌리처럼 나타난다. 연속성 덕분에 연합되었던 추상적 정식과 구체적 표상은 이것들의 상호 연결들에 의하여 풍부해지고, 차례로 서로서로를 넘어서게 되며, 빌려주는 자와 빌리는 자의 역할을 교대로 한다. 기하학 또는 역학은 분석학에 이 원리들을 제공했었다. 뽕슬레가 직관의 경계들을 넘어서 기하학적 관계들을 넓히려고 한 것은 분석학의 신뢰 위에서이다.
반대로 꼬쉬는, 시작에서부터 직관적 명증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분석학으로부터 근대과학에 토대를 만들었다. 직관적 명증성은 함수의 분석적 정의와 곡선의 일체 속에서 파악된 그 곡선의 연속성을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서로 지탱하도록 허용하였다. 뽕슬레의 기하학적 일반화를 넘어서, 꼬쉬는 연속성 원리의 정식과 새로운 사용에 영감을 주었던 대수적 일반화를 거부한다. 꼬쉬는 대수학적 분석학 강의(1821)의 「서문」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쓴다. “대수학의 일반성으로부터 끌어낸 근거들에 호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이유들이 충분히 공통적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특히 수렴적 계열들로부터 발산적 계열들로 이행에서 또한 실재적 양들에서 상상적 표현들로 이행에서, 그 이유들은 내가 보기에, 마치 가끔 진리를 예감하게 하는 고유한 귀납법들처럼, 그러나 수학 과학들과 거의 정확하지 않게 일치되는 귀납법들처럼 고려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이 이유들은 대수적 정식들에게 무한정적인[정의되지 않는] 너비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관찰해야만 한다. 반면에 실재성 안에서 이런 대부분의 정식들은 오로지 어떤 조건들 하에서 그리고 정식들이 갇혀있는 양들의 어떤 가치들을 위하여 존속한다.” (331)
§197. [꼬쉬의 분석학은 오일러(1707-1783)의 연속성의 영향이다.]
단지 꼬쉬를 그 자신이 주장해 왔던 것보다 더 사변가이고 더 철학자인 것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기회에 이것은 우리가 다시 그리고자 애쓴 진보의 특수한 자연을 변경하는 것이리라. 논리학자가 분석학의 지적인 재조직화로부터 절대적인 출발점을 만들고자 시도했다. 그 재조직화는 자연의 관찰이 불러일으킨 작품의 완성을, 그 자연의 관찰이 필연적이게 만든 작품의 완성을, 여기서 효과적으로 표시한다. 마찬가지로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의한 무한소 계산의 구성작업은 역학과 기하학의 지평 위에 추구되었던 노력들의 계열에게 왕관을 세운다. 마찬가지로 분석학의 근대적 개념작업은, 물리학의 문제들이 불러일으켰던 수학적 발견물에, 그리고 18세기에 허공에 매달려있던 대로 남아있던 문제들에게 해결책을 가져왔던 수학적 발견물에 연결되었다. (331)
열의 퍼짐(확산)의 조건들로부터 방정식 만들기는, 진동하는 끈들의 진동 작용들을 재작동하게 하는 정식과는 비유적(유사한) 정식으로 푸리에(1768-1830)를 인도한다. “정식들은 동일한 비결정화 된 가치에 의해서만 달라지는데, 이 비규정화된 가치는 어떤 경우에는 실재적이고 다른 경우에는 상상적이다.”푸리에는 오일러에 힘을 입은 이 논평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논평이란 “삼각법의 급수(계열)에서,
∫(x) = a1sin x + a2sin 2x + …
+ 1/2b0+ b1cosx + b2cos 2x + …
계수들은 정식들에 의해 규정된다.
an= 1/π ∫π-πf(x) sin nxdx, bn= 1/π∫π-πf(x) cos nxdx.,
그는, 함수f(x)가 완전히 임의적으로 주어질 때, 이런 규정작업이 그래도 적용될 수 있는 채 남아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우선 소위 ‘불연속적’이라 말하는 함수를 f(x)로 대체했다(한 선의 세로좌표[y]는 가로좌표 x의 어떤 가치들을 위하여 단절점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는 이리하여 효과적으로 함수의 가치를 항상 부여한 급수[계열]을 얻는다.” 그래프로 그려지는 함수는 임의적(arbitraire) 방식으로 주어질 것이다. 말하자면 변수의 어떤 간격 속에서 그 임의적 방식의 규정작업은 변수의 어떤 간격 속으로 규정작업을 이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고, 삼각법의 급수에 의해서 재현될 수 있을 것이다. (332)
푸리에가 자신의 명제에게 부여한 일반성은 그의 계승자들의 쪽에서 예기치 않은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특히 레조이네 디리히레트(Lejeune Dirichlet, 1805–1859)는, 사람들이 함수를 재현하는 급수의 수렴을 증명할 수 있기 위해서 조건들을 고정시킬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 함수는 조건들에게 만족할 수 있어야만했다. 이 수렴이란, 푸리에가 이것을 단지 가정했던 것이다.적어도 푸리에는 틀을 부수었다고 의식하고 있다. 틀 안에서 연속성과 너무 밀접한 용어가(이 연속성을 사람들은 이제부터 오일러의 연속성이라 부를 것이다) 분석학을 유지했다.푸리에는 일반적 방법을 “형성하였”다. 일반적 방법은 “분리된 함수들의 또는 함수의 부분들의 분석적 표현을 …원칙적 요소로서 삼는다. 우리는 분리된 함수에 의해 또는 함수의 부분에 의해, 함수 f(x)를 이해한다. 변수는 주어진 극한들 사이에 포함되어 있을 때, 이 함수는 존속하는 가치들을 갖는다. 함수의 가치는, 만일 변수는 두 극한들 사이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항상 영(nulle)이다. 이런 함수는 임의적 형식의 유한한 호[활]를 포함하는 선의 세로좌표를 측정하고, 그것의 경과의 나머지 전체에서 가로좌파들의 축을 혼합한다.” (333)
§198. [꼬쉬(Cauchy, 1789-1857)는 함수의 -∞에서 0 그리고 +∞까지의 연속성을 인정하다.]
실천적 귀결들로부터 꼬쉬는 이론적 문제를 분간해 냈다. 르베스그(Lebesgue, 1875-1941)가 말하기를 꼬쉬가 다음을 주목했다. 즉 “프리에의 탐구들로부터 결과로 나오는 난점들이, 사람들이 매우 단순한 표현들만을 사용할 때, 소개되었다는 것이고, 말하자면 함수를 부여하기 위하여 사용된 진행과정에 따라서, 함수가 마치 연속인 것처럼 또는 아닌 것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꼬쉬는 예로서, +x (긍정 x)에, -x(부정 x)에 동등한 함수를 인용한다. 이런 함수는 연속적이지 않고, 이 함수는 +x 와 +x라는 두 연속적 함수들의 부분들로 형성되었다. 반대로 이 함수는 마치 연속적인 것처럼 나타나는데, 이때는 사람들이 함수를 +√x2라고 표기할 때이다.”
이로부터 연속성이란 용어의 개작(la refonte, 재주조)이 나와야만 했다. 그것[함수]의 일체 속에서 파악된 곡선의 또는 함수의 성질이, 즉 수학적 주제에 내재하는 속성이 되는 대신에, 연속성은 함수의 연구를 위하여 도구로 사용하는 요소적 관계가 된다. “변수 x의 함수 f(x)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주어진 두 극한[한계] 사이에 매개적인 x의 각각의 가치를 위하여, 이 함수는 한결 같이 유일하고 유한한 가치를 인정한다고 가정하자. 만일 이 극한들 사이에 포함된 x의 가치로부터 출발하면서, 사람들은 변수 x에게 무한히 작은 증가 a를 부여하고, 함수 자체는 차이를 증가로서 받아들일 것이다.
f(x + a) - f(x)
이 차이는, 동시에, 새로운 변수 a에 와 x의 값에 의존할 것이다. 이렇게 제기되면, 함수(fx)는 x에 할당된 두 극한 사이에서 이 변수의 연속적 함수가 될 것이다. 만일 극한들 사이 매개적인 x의 각각의 값을 위하여
f(x + a) - f(x)
차이의 수적 가치가 a의 가치와 더불어 무한히 감소한다면 말이다. 다른 말로하면 함수 f(x)는 주어진 극한들 사이에서 x에 연관하여 연속된 채 남아있을 것이다. 만일 이 극한들 사이에, 변수의 무한히 작은 증가는 항상 함수 자체의 무한히 작은 증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함수 f(x)는, 변수 x에 속했던 특별한 가치의 이웃하는 자리에서, 이런 변수의 연속적 함수이다. 그런데 매번, 함수 f(x)가 x의 두 한계들 사이에서, 심지어 매우 근접해있으면서 중요한 가치를 가두고 있는 한계들 사이에서, 연속되어 있을 때이다.” (334)
이러한 정의들은 매우 중요하다. 함수의 용어는, 적어도 그것의 분석적 용어를 사용하기 위하여, 연속성의 가설에게 종속되기를 그만둔다. 이 함수 용어는 이론적으로 수학자들 그 용어에게 이미 할당되었던 모든 일반성을 기술적으로 다시 덮는다. (334)
다른 한편으로, 함수가 주어지면, 연속성이 함수에게 부여될 수 있는지를 결단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 문제는 함수의 과정에 대한 실증적 연구 덕분에, 그리고 변수의 정의된[한정된] 간격들에 연관하여 해결된다. 이리하여 꼬쉬에 따르면,함수 ax는 변수 x에 속해있는 유한한 모든 값의 이웃에서 연속적이다. a/x는 극한들 ①(x= -∞, x=0) 과 ②(x=0, x= +∞)사이에서 오로지 연속적이다. (334)
8절, 분석학의 자치 L’autonomie de l’analyse 334
§199. [새로운 분석학은 꼬쉬의 개선 이후에서, 기하학을 떠나서 그래프와 대수를 통해 움직임(연속성)과 양편(+, -)의 과정(궤적)을 설명한다.]
만일 우리가 습관적 과정에 따라 원문들의 비교를 우리가 거부한다면, 꼬쉬는 연속성의 철학적 개념작업을 새롭게 했다는 것을 명증하게 하는 것이 쉽다. 1847년에 쿠르노(Cournot, 1801-1877)가 쓰기를 “근거의 관점에 의해서, 연속성의 관념은, 이어서 연속적 크기의 관념은, 절대적 엄격함에서 파악되었다. 이리하여 움직이는 물체에서 정지하고 있는 물체의 거리 또는 움직이는 두 물체의 거리는, 무제한 수(數)로 또는 무한한 수(數)로, 크기의 모든 매개적 상태들을 통과하면서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필연적으로 생각한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체들의 통과 동안에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335)
1874[1875]년에 다르부(1842–1917)는 불연속 함수들에 관한 보고서(Mémoire sur les fonctions discontinues, 1875)에서, 다음을 주목 했다. “불연속 함수들이 있으며, 이 함수들은 사람들이 연속적 함수들로부터 구별된 성격처럼 가끔 바라보는 성질(une propriété)을 다룬다. 그 성질은 다룸에서 모든 매개적 값[가치]에 통과함이 없이는 하나의 값에서 다른 값으로 변할 수 없다.”이것은 가장 단순한 예로서, 즉 “x=0일 때 사인 1/x에 동등한 함수의 경우로서, 그리고 x=0일 때 간격(-1, +1)의 그 어떠한 가치에도 동등한 함수의 경우로서”삼을 수 있을 것이다. (335)
분석학의 새로운 개선[재개선]이 언어에서 보다 더 정확하게 관념에서보다 더 명석하게 기여한다는 것은 이의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장점을 알고자 원한다. 사람들은, 재개선이 수학적 실재성의 보다 깊은 침투에 상응하는지를, 재개선이 사실들(les faits)속에서 그것의 인정[봉헌, 축성]을 발견하는지를 알고자 원한다. 철학에서 중한 질문인 이런 질문에게 꼬쉬 이래로 수학의 진보는 의미 있는 응답의 요소들을 제공한다. (335)
§200. [꼬쉬(1789-1857)는 기울기에서 접선을 구해내고, 그 (기울기가 아닌, 극한에서) 접선 점의 무한소 양을 적분한다. 독일의 리만(1826-1866)의 정적분과 프랑스의 다르부(1842–1917)의 합.]
우선, 적분작업(l’intégration)의 용어를 받아들이는 확장에 관해 강조하는 것이, 그것의 귀결인 무한소의 모습에서 변형[변환]론에 관해 강조하는 것이, 내속적인 그것의 중요성의 이유로, 알맞다. 꼬쉬와 더불어, 한정된 적분의 기하학적 재현작업은 적분법의 초기 계산 작업을 불러왔으며, 한정된 적분은 분석적 정의(定義)를 받아들인다. 한정된 적분은 “기호∫아래에 위치되었던 미분표현의 무한히 작은 값들의 합계(la somme)이다. 무한히 작은 값들은 문제 중인 한계들 사이에 갇힌 변수의 잡다한 가치들에 상응한다… 이런 비슷한 적분은 유일하고 유한한 값을 갖는다. 이런 경우들 마다, 변수[a – n => h]의 두 극한들이 유한한 양들이기에, 기호∫아래에 함수는, 극한들 사이에 포함된 모든 간격 속에서 유한하고 연속적인 그 자체로 남는다.” (335)
중요한 것은 연속성의 영역 바깥에서 정의된 적분의 용어를 넓히는 것이다. 꼬쉬는 특이점으로 정의된 적분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일한 변수들에 부여된 몇몇 값들에게, 말하자면 무한히 큰 값들에게 또는 기호∫아래 함수가 그것[값]들을 위해 무한하거나 또는 비결정적이 되는 그 값들에게, 무한히 접근하는 한계들 사이에서 하나의 변수에 또는 여러 변수에 상대적으로 파악된 적분(une intégrale)을”말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함수가 점c 에서를 제외하고 간격(a, b)에서 연속적이다. 우리는 적분들을
∫ac-hf(x)dx 와 ∫c+hbf(x)dx
형성할 수 있다. 만일 두 적분들이 규정된 한계들을 향한다면, 이때 [간격] h는 0(제로)으로 향할 때, 이 한계들의 그 합은 적분으로 재현될 것이고,
∫abf(x)dx,
그리고 우리는 방정식을 제시할 것이다.
∫abf(x) dx = lim [∫ac-hf(x) dx +∫c+hbf(x) dx ]
h=0
사람들은 간격(a, b) 속에서 파악된 적분을 얻을 것이다. 부분의 간격들인 간격(a, b)을 단일한 점만이 있다는 것처럼 나누면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앞선 방법을 적용하면서, 바로 이때에 여러 불연속성의 점들(points de discontinuité)이 있다고 할 때이다. (336)
레조이네-디리히레트(1805–1859의 교육에서 이런 고찰들을 길어 올릴 수 있었던 리만과 더불어, 적분의 용어는 훨씬 더 큰 확장을 받아들이러 나갈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르베스그(1875-1941)의 진술을 따라가, 르베스그가 말한 [꼬쉬의 글을 따르면], “리만은 계산의 진행절차에 관해 주의를 기우렸다. 그 진행절차는 연속적 함수의 경우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근사치와 같은 것과 더불어 적분을 계산하도도록 허용한다. 그리고 그는 어떤 경우에 불연속적 함수들에 적용된 이 절차가 규정된 수를 주는지를 자문한다.” (336)
규정되어 있는 함수 그리고 주어진 간격 안에 경계 지워저 남아있는 함수를 고려해 보자. 그 함수는 상위[우측] 한계, L과 하위 경계 l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는 간격을 일련의 부분적 간결들로 나누어가질 수 있다:
(ax1) (x1, x2) (xn-1b) x1<x2… < xn-1. (336)
각 간격에서 함수는 상위[우측] 한계(L1, L2, …Ln-1) 그리고 하위[좌측] 한계(l1, l2, …ln-1)를 갖는다. (337)
따라서 우리는 합계들을 얻을 것이다.
Sn= (x1-a) L1+ (x2- x1) L2… + (b-xn-1) Ln.
sn= (x1-a) l1+ (x2– x1) l2… + (b-xn-1) ln.
이리하여 우리는 간격(a, b)의 함수로부터 상위 한계(limite supérieure)의 개념들과 하위 한계(limite inférieure)의 개념을, – 다르부의 명명 방식에 따르면 초과 적분(intégrale par excès)과 결함 적분(intégrale par défaut)을 형성한다. 만일 이 두 한계가 동일한 값을 갖는다면, 한계의 공통 값은 정의상으로 또한 적분 값이다. (337)
§201. [연속적 함수들 중에 도함수(미분 접선)갖지 않는 것이 있다. 쁘왕소를 거쳐서 바이에르스프라스에 의한 새로운 분석학의 성립. ]
여기서 이 분석학은, 결정적(단호한, déecisif) 사실을 생산하기 위하여, 분석학 자체로 방향을 돌릴 것이다. 연속성의 직관적 용어가 적분을 가둔 채 유지되는 곳인 경계들의 적분을 벗어나게 만들고 난 후에, 분석학은 용어 속에서 착각(illusion)과 허위(fausseté)의 근원을 분간해 낼 것이다. 결국에는 만일 적분을 허용할 수 있는 불연속적인 함수들이 현존한다면, 도함수를 갖지 않은 연속적인 함수들이 있다.그런데 함수의 연속성이 도함수의 현존을 이끌어내었다는 것, 그것은 무한소 계산의 직관적 개념작업 안에서 근본적인 명제였다. (337)
예를 들어, 쁘왕소는 그의 “에콜 폴리테그닉의 강의”의 한 단편에서, 다음의 방식으로 도함수의 현존을 확립하였다. “사람들은 심지어 말할 수 있다: 동질적인 두 사물의 연관은 연관의 동일한 정의에 의해서 그것들의 자연[본연]에도 그것들의 절대적 크기에도 의존하지 않는데, 양(Δy : Δx)은 항상 극한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게다가 곡선과 곡선의 접선의 고찰이, 그것의 현존을 의심하지 않지만, 최종적인 명증성을 가지고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더하여, 「도함수의 몇 점들에 관한 탐구들(1806)」 등의 제목으로 나온 1806의 논문 속에서, 암페르(1775–1836)는 다음을 증명했다고 자화자찬 했다: 즉 x와 i의 함수는,
f(x + i) - f(x) / i [이 함수]
“사람들이 i= 0을 만들 때, x의 모든 가치들을 위해서 0(nulle)도 무한도 될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베르트랑(Bertrand, 1822–1900)과 가르세(Garcet 1815-1871)의 대수론(1876)에서 1878년 판에서 빌려온 몇 줄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어떤 연속적 함수가 하나의 도함수를 갖는지를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응답할 것인데, 우선 사실상 그 다음 단락에서 중요한 함수들의 도함수들을 곧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후천적(a posteriori) 함수들의 현존을 증명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함수가 연속적이기에, 방정식 y = f(x)는 직각인 두 축에 관련된 연속적인 평면 곡선을 재현[제시]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분석 기하학에서, 도함수는, Ox축과 더불어, 점(x, y)에서 곡선의 접선이 만든 각도의 삼각함수의 접선을 재현[표시]한다. 마치 각 점에서 연속적 곡선이 잘 규정된 접선을 갖는 것처럼, 함수는 도함수[미분]을 인정한다.”
그러나 1872년부터 바이에르슈트라스(1815-1897)는 베를린 과학ㄷㄹ 아카데미에게, 어떤 간격에 포함된 변수의 값들의 일체에서 도함수를 갖지 않는 연속적 함수의 예를 알렸다.
문제가 되는 함수는 cos πx + b cos aπx + b2cos a2πx + b3cos a3πx + …라는 급수[계열]에 의하여 재현[표현]된다. 이 급수에서 x는 실재적인 변수이며, a 는 1보다 더 큰 홀수 완전수이며, b는 무한에서 하부 긍정[x축의 +방향] 상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은 이런 식을 얻을 것이다.
F(x) Σn=∞n=0bncos (anπx).
이 급수는 획일적으로(uniformément) 수렴한다. 왜냐하면 이 항목들은 Σbn진행의 의 항목들의 넘어서지 못한다. Fx는 연속적 함수이다. “만일 사람들이 ab<1이면, F(x)는 다음 계열을 도함수로 갖는다.
F’ x= - Σn=∞n=0(ab)nsin (anπx).
그러나 만일 (ab) 가 1 + 3π/2를 넘어선다면, F(x)는 더 이상 도함수를 갖지 않는다. 결국에는 도함수의 현존은 다음과 같은 분수가
Δ = | F(x+h) - F(x) / h | [즉 미분계수, 접선의 극한으로서 도함수가]
|h|<δ의 모든 값들을 위하여 ε의 하부에 남아있기를 요구했을 것이며, [이때에] ε는 임의적이고 그리고 δ는 정해진 수이다. 그런데 충분히 단순한 변형론들(역학들의 변환론)은, 고려된 경우에서 이 가설이 다음 공식을 이끈다는 것을 제시한다.
[가설:] | h| < 3 / 2 am[로 표현되며,]
[다음 공식:] Δ > (2/3 - π/ab–1) (ab)m.”
말하자면, h의 절대 값은 0(zéro)으로 향하고, 완전수 m은 무한정하게[정의되지 못하고] 증가한다. 그리고 Δ는 그것[m]과 더불어 증가한다. 따라서 함수 F(x)는, x가 어떤 것이라고 하더라도, 도함수를 갖지 않는다. (339)
바이에르슈트라스(Weierstraß, 1815-1897)의 발견은 결정적 실험의 가치를 갖는다. 이 발견은 분석학을 공간적 직관의 형식들로부터 독립적인 학문으로서 또는 자연의 일반적 사실들에 대한 관찰의 학문으로서 신성한 자리매김하는 사건이었다[1872년]. 이 발견은 그 학문의 방법들의 엄격성을 증가하기 위해서만 그 학문의 자치를 요구할 뿐인데, [게다가] 완전수 급수[계열]의 수렴에 관한 아벨(Abel, 1802-1829)의 근본적 탐구들이 19세기의 수학자들에게 어떤 의미로는 부과되었다고 하는 이런 요청에 따르면 말이다. 이리하여 분석학의 진화를 인도한 결론은 역학의 개념작업들과 기하학의 방법들의 검토가 우리에게 제공했던 결론을 완성하였다. 반면에 후자의 방법들은 명백한 단순성과 동질성을 상실한다. 이것들[단순성과 동질성] 위에 [칸트의] 비판주의와 [꽁트의] 실증주의 토대를 이루었었다. 분석학은 그것의 고유한 계산을 위하여 이 원리들의 재검토를 기획한다. 그리고 분석학은 응용에 의해 암시되었던 무매개적 관점들의 영역(la sphère)을 넘어서기에 이른다. 레조이네 디리히레트의 심오한 말[단어]에 따르면, 그것의 경향성은 계산(le calcul) 대신에 관념들(les idées)로 대체 하는 것이다. (339)
독창적인 원문들에 가능한 만큼 가까이 다가가 근대 수학의 운동을 따르면서 우리는 운동이 사실들의 실재성 속에서 그것의 뿌리를 갖는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운동이 상응하는 방향정립은 기하학자들에게 그리고 분석가들에게, 거의 그들 자체에도 불구하고 또 100년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부과되었다. 그들은 그 전통을 무매개적 직관으로 삼는 경향성을 가졌다. 이 발전의 결과는 수학들의 철학에 관하여 결과들의 반향을 갖는데 부족할 수 없다. 이 결과물은 관념들의 서로 간에 예전에는 함축되어 있었던 관념들의 내부에 결정적인 단절들과 마주하여 철학을 놓았다.그리고 단순한 범주들에 만족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또 순비 또는 실증철학 강의의 수학적 학설을 과거 속으로 되던지는, 한정된 분해들(dissocitionsdéfinitives)과도 마주하여 철학을 놓았다. (340)
(14:33, 59QLJ)(13, 59R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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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700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 1700-1782) 스위스 의사, 물리학자, 수학자. 쟝(Jean Bernoulli, 1667-1748)의 아들, 쟈크(Jacques Bernoulli, 1654-1705)의 조카, 니꼴라(Nicolas Bernoulli, 1710-1790)의 형이다.
1707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 스위스 출신, 수학자, 물리학자. 러시아제국의 성페테스부르크에서서 주로 활동.
1717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 Dalembert », 1717-1783)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백과전서파.
1725 몽뛰클라(Jean-Étienne Montucla, 1725-1799), 프랑스 수학자. 수학사(Histoire des mathématiques, 1758).
1746 몽쥬(Gaspard Monge, comte de Péluse, 1746-1818) 프랑스 수학자, 정치가, 에콜 폴리테크니크 창설자 중의 한사람.
1765 라크르와(Sylvestre-François Lacroix ou De la Croix, 1765-1843) 프랑스 수학자. Traité du calcul différentiel et du calcul intégral, (3 vol., 1797-1798).
1768 푸리에(Jean Baptiste Joseph Fourier, 1768-183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열의 확산 계산.
1775 암페르(André-Marie Ampère, 1775–1836),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철학자 .
1777 쁘왕소(Louis Poinsot, 1777-1859) 프랑스 수학자. 합리적 역학(la mécanique rationnelle)의 기여자 이다.
1782 떼르껭(Olry Terquem, 1782-1862) 유대가정에서 자란 프랑스 수학자, 논쟁가. 프랑스에서 자유유대주의 또는 유대교 개혁가.
1788 뽕슬레(Jean-Victor Poncelet, 1788-1867), 에꼴 폴리테크니끄 출신, 프랑스 수학자, 기술자, 장군, 기하학자.
- Traité des propriétés projectives des figures, Bachelier, Paris, 1822
[Sur les propriétés projectives des sections coniques, 1822]
- Expériences hydrauliques sur les lois de l'écoulement de l'eau, 1832.
- Applications d’analyse et de géométrie, 1862-1864.
1789 꼬쉬(Augustin Louis, baron Cauchy, 1789-1857) 프랑스 수학자, 에꼴 폴리테그니끄 교수.
- 「Recherches sur les polyèdres, 1811」, 다시 쓴 학위 논문 「Sur les polygones et les polyèdres, 1812」. 여기서 보고서란 1812년을 말할 것이다.
- 「Sur la mécanique céleste et sur le nouveau calcul qui s'applique à un grand nombre de questions diverses, 1831, 10월」
- 「Sur les rapports qui existent entre le calcul des résidus et le calcul des limites, et sur les avantages qu'offrent ces deux calculs dans la résolution des équations algébriques ou transcendantes, 1831, 11월」
1801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 프랑스 경제학자, 수학자,
1802 닐스 헨리크 아벨(Niels Henrik Abel, 1802-1829)[스물일곱], 노르웨이의 수학자. 이 천재 프랑스에 태어났으면 에콜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하여 평생을 연구했을텐데... 1830년 파리 과학 아카데미가 그랑프리를 추서하였다.
1804 야코비(Carl Gustav Jacob Jacobi, Jacques Simon Jacobi, 1804-1851), 프러시아 수학자. Gesammelte Werke. 7 Bände, Berlin, 1881-1891, Nachdruck 1969.
1805 레조이네 디리히레트(Johann Peter Gustav Lejeune Dirichlet, 1805–1859), 프러시아 수학자.
1815 바이에르스트라스(Karl (Theodor Wilhelm) Weierstrass, Weierstraß, 1815-1897) 독일 수학자.
1815 가르세(Henri Garcet 1815-1871), 프랑스 수학자, 쥘 베른(1828-1905)의 이종 사촌이다.
1822 베르트랑(Joseph (Louis François) Bertrand, 1822–1900), 프랑스 수학자, 경제학자, 과학사가.
1823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1823-1891), 독일 수학자, 논리학자.
1826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마흔] 독일 수학자. 위상학, 미분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길을 열었다.
1842 다르부(Gaston Darboux, 1842–1917), 프랑스 수학자. 프랑스 수학학회 회장. « 불연속 함수들에 관한 보고서(Mémoire sur les fonctions discontinues », ASENS, vol. 4, 1875, p. 57-112
1846 네토(Eugen Netto, 1846–1919), 독일 수학자. 조합과 그룹이론가,
1849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 독일 수학자. 1868년 새로운 공간 기하학(Neue Geometrie des Raumes), 이 공간에 플뤽커(Julius Plücker, 1801-1868)에게 주의를 끌었으며, 플뤼커가 4차원 공간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 Cf. 클라인(Morris Kline, 1908–1992), 미국 수학교수, 수학사가. 수학의 대중화에 힘씀.
1854 푸에(Edouard-André Fouët, 1854-?), 프랑스 수학자. Leçons élémentaires sur la théorie des fonctions analytiques. 1907.
1855 로젤(Léonce Laugel, 1855–1925), 프랑스 수학자, 과학 작품 번역가.
1857 자하제 (Arnold Sachse, 1857-1933). 괴팅겐 대학 박사학위 논문(1879)[스물둘]
1875 르베스그(Henri(-Léon) Lebesgue, 1875-1941), 프랑스 수학자. Leçons sur l'intégration et la recherche des fonctions primitives, 1904.
(16:34, 59QLJ) (15:15, 59RK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