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에게는 두 갈래 길이 있으니, 괴로움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다. 즉, 자기를 성취하거나 아니면 자기를 파멸하는 것이다. 두 갈래 길은 매우 분명하니, 어느 길로 가고 어느 것을 따를 것인가?
衆生有兩條路:入苦或出苦, 也即是成就自己或毀滅自己. 兩條道路分明甚, 何去何從?
여기서 하 선생님은 물음표를 하나 찍습니다. 일체중생에게 바로 두 갈래 길을 말씀합니다. 한 갈래 길은 괴로움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입고(入苦)”이고, 또 한 갈래 길은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출고(出苦)”입니다. ‘출고’는 자기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성취하지 않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입고’는 바로 자신을 파괴 소멸하는 것입니다. 금생에 기회를 놓치게 되면 “차회약착진성착(此回若錯真成錯)”, 이번에 또 잘못하면 정말로 큰 잘못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자기를 파괴하여 소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은 선근⋅복덕⋅인연으로 이런 기회를 얻었는데, 이 기회를 잡지 않아 여전히 벗어날 수 없고 또 큰 바다로 빠지러 간다면, 바로 스스로 자신을 훼멸하러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이번에 잘못하면 정말로 잘못됩니다. 그러므로 두 갈래 길은 매우 분명합니다. 자기를 성취할까요? 아니면 자기를 파멸할까요? “하거하종(何去何從)”, 당신은 ‘어느 갈래의 길을 선택할까?’ 하고 물음표를 하나 찍어야 합니다. 하 선생님은 겸허하시기에 스스로 탄식하여 말씀합니다.
항상 있는 날을 가지고 없을 날을 생각하라, 없는 때가 되어서야 있던 때를 생각하지 말라. 점검해 보니, 자신은 수십 년 세월을 도대체 어디에 소비하였고, 무엇을 얻었는가? 매번 탄식하고 넘긴다.
常將有日思無日, 莫待無時想有時. 檢點起來, 自己幾十年光陰究竟花到哪裏去了, 取得了什麽?每付之一嘆.
진정한 수행인은 자기가 자부하고 흡족하게 느끼는 일이 없고,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상장유일사무일(常將有日思無日)”, 이것은 『조금구(釣金龜)』의 두 마디 대사(臺詞)인데, 늙은 아낙네 역이 창하는 것을 하 선생님이 불교에 사용하였습니다.
우리가 “유일(有日)”, 이 숨이 붙어 있는 날에는 이 숨이 없을 날을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연세가 많은 분은 그럴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막대무시상유시(莫待無時想有時).” 숨이 멎을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숨이 붙어 있고 싶지만, 그때는 더이상 숨이 붙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숨이 있다면 응당 아기가 되어 있거나 이미 강아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축생이 되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축생조차도 되지 못해 괴롭기만 할까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무궁한 업보 가운데 다음 한 편의 생이 무엇일지 모르고, 금생과 이렇게 연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량겁 이래 당신의 행위가 원인이 된, 많은 일들이 모두 잘 정리 배열되어 있습니다. 다음 일생에 당신의 원수나 채권자[冤家債主]가 세상에 태어나 오게 되어 있으면, 당신도 태어나 와서 빚을 갚아야 합니다. 이것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지, 완전히 당신 자신만의 일은 아닙니다. 금생의 일이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다생의 문제입니다. 금생이 끝나는 것으로 다음 생도 없다면 너무나 간단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다음 한 편의 생이 무엇일지 모릅니다. 내생뿐만 아니라, 금생도 오늘 당신은 내일의 일을 모릅니다. 내일 이 한 편의 생이 무엇일지, 펼쳐지지 않았으니 무엇이든 다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있는 날을 가지고 없을 날을 생각하십시오.
게다가 오늘날은 우리에게 불상이 있고, 도량이 있으며, 들을 수 있는 불법이 있는 때이니 언제나 이로써 우리는 최대한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후 저는······, 제 아내를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라고 제가 다그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녀를 죽도록 다그쳤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하하하······, 그때만 해도 당신이 믿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진정으로 느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아직 깨닫지 못하오? 당신이 숨이 있을 때를 이용하여 뭔가를 잘 하지 않으오······. 나중에 저는 알게 되었는데, 제가 그녀를 잘못 탓했으며, 많은 사람이 그녀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좋은 점에 이르도록 다그쳐졌고, 다그쳐져서 왕생했습니다. “항상 있는 날은 없을 날을 생각하라”, 오늘날 우리의 경우 이렇게 다들 건강하고, 한가한 몸이 있습니다. 한가하면서 선근⋅복덕⋅인연 등 불법 수학의 조건들이 다 갖추어진 원만한 한 몸[暇滿身]은 또 수행할 수 있으니, 우리는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이 주인께서 정성스러워서 점심 식사를 준비했으니 우리 식사 후에 다시 이어서 얘기하겠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하나는 반야심경에 제가 여기서 사족을 붙이고자 한 것입니다. 본래 하 선생님은 이를 강의하지 않기로 하고 이미 잘 마쳤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족을 붙여서 약간의 해석을 조금 더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하 선생님의 또 한 차례의 모임도 저의 집에서였고 염불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역시 이를 모아서 정토로 귀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필기에서는 조금 언급만 하여 말씀하기를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는 바로 참 반야이다. 이는 가장 깊은 비밀의 핵심이고, 파초 잎을 벗겨서 보는 속마음이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에서 이 구절에 대해 약간 해석도 했지만 그리 충분하지 않았고, 다음에서 또 깊은 내용들이 있고, 그 또 한 차례 하 선생님의 염불 법문을 제가 요점을 골라 보충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반야심경을 간단히 조리 있게 풀이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또 한 차례의 모임에서의 하 선생님 염불 법문의 요점을 골라 보충하여 채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