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랑한 소녀
조선형
"선생님 저 오늘 ㅈ됐어요~"
7월 첫날, 오늘부터 사흘간 중학교 기말고사 기간이다.
평소 늘 마스크를 쓰고 등교를 해 왼 얼굴을 기억하기가 힘든 중학교 2학년 소녀가 나와 아침에 자주 마주친다. 소년이든 소녀이든 이름을 기억하기 쉬운 애들이 있다. 특별하게 기억하기 좋은 노하우는 아니겠지만 등교할 때 자주 지각한다든지 또는 교정에서 유독 활발하고 자기 표현이 강한 애들은 이름을 물어 내 머릿속에 저장해두었다가 교정에서 만나면 그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하면 이이들은 좋아한다. 이름을 잘 기억해주는 덕분인지
점심 급식이 끝나면 아이들이 곧잘 내 지킴이실을 찾아온다. 그러면 창을 열고 대화가 시작이 된다. 학생들과 나와의 대화의 물꼬가 창문인 셈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오늘 기말 첫시험이 끝나자마자 내 창으로 찾아온, 눈썹이 예쁜 문제의 그 소녀는 열린 창문에 대고 해맑은 표정으로
"선생님 오늘 ㅈ 됐어요" 하지 않는가.
어라? 얘가 시방 무슨 소릴 한 거야? 하며 난 이 아이 눈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남학생 대여섯이 창가로 다가와 말하다 말고 피해 가려는 이 소녀를 난 돌려세워 다시 물었다.
"너 지금 내게 뭐라 했니?"
"선생님 롯 됐어요" 하고 마치 정정이라도 해주듯 ㅈ을 ㄹ로 반복해주었다. "선생님이시니까 ㅈ되었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 하며 3학년 급식 중이라 2학년이 차례를 기다리는 곳으로 달음질 하듯 달려가버렸다.
오늘 시험 첫날부터 망쳐버렸다는 표현을 ㅈ됐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소녀.
어느날 지각해 늦게 등교한 이 아이와 창 하나 사이를 두고 얘기를 터놓고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공부가 싫다는, 그래서 학교 오기가 싫은 데다 "어떻게 4년을 더 다녀요?"하는 이 여학생과 난 이따금 상담자가 된다. 4년을 더 다녀야 한다는 말은 고등학교 3년까지를 합한 숫자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전직 교사 출신인 걸 안다. 그래서 스스럼 없이 상담자와 피상담자 간의 레포가 자연스레 생성된다.
무슨 뽀족한 대책을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그래 그렇게도 크는 거야. 건강히만 커다오. 다만 언어가 그리 상스럽게는 크지 말아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