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잡은 머슴
서 정 오
옛날에 한 사람이 살았는데, 이 사람이 남의 집 머슴을 살았어. 허우대가 껑충 듬직하고 팔다리가 굵직굵직해서 힘깨나 쓰게 생겼는데 속은 약골이라 쌀가마니 하나도 잘 못 들어. 입은 멀쩡 번드르르해서 큰소리는 제법 잘 치는데 속은 겁이 많아서 뉘 집 강아지 짖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헛장군이야.
하루는 저녁을 먹고 날이 어둑어둑한데, 저 건너 산을 쳐다봤더니 산꼭대기에 불이 빤하거든. 그게 무척 높고 험한 산이라 사람이 살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그런 데서 불빛이 빤히 새어나오니 예삿일은 아니지. 이 사람이 그만 궁금증이 버쩍 나서, 그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건너편 산으로 달려갔어. 그런데, 산이 어찌나 높고 험한지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기슭에서 빙빙 돌다가 날이 저물어서 그냥 돌아왔어. 그 다음날도 가서 기슭에서 빙빙 돌다가 날이 저물어 돌아오고, 그 다음날도 또 그러고……. 이러니 뭐 올라가려는 산에는 한 발짝도 못 올라가고 사람 싱거운 꼴만 났단 말이야.
이 머슴이 그만 오기가 턱 나서,
“에라, 내가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저 산에 기어이 올라가고야 말겠다.”
하고 작정을 아주 단단히 했어. 그러고 나서 주인더러 말을 하기를,
“오늘부터 일하는 사경은 돈도 필요 없고 쌀도 필요 없고, 그저 하루에 누룽지 한 숟갈씩만 주십시오.”
그랬거든. 밥솥에 누룽지 눌어붙은 것, 그걸 하루에 한 숟갈씩 얻어다 모으는 거야. 봄부터 가을까지 내쳐 일을 해 주고 사경으로 날마다 누룽지 한 숟갈씩 얻어다 모았더니 큰 자루로 한 자루가 됐어.
그걸 양식 삼아 짊어지고 이 사람이 그 길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어. 누룽지 자루를 짊어지고 그 높고 험한 산을 오르는데, 가다가 배가 고프면 누룽지 한 줌씩 집어먹고 날이 저물면 자고, 이렇게 하면서 올라갔어. 몇날 며칠 동안 허위허위 걸어 오르고 기어올라서 산꼭대기까지 다 갔어.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조그마한 초가집이 한 채 있고, 거기서 불빛이 빤하게 새어나오더래. 들어가서 주인을 찾으니 몸집이 커다란 젊은이가 나오는데, 등에는 활을 메고 허리에는 칼을 찬 것이 영락없는 사냥꾼이야.
“손님은 뉘시며, 이 험한 곳에 무슨 일로 찾아왔소?”
주인이 묻기에 이러저러하고 이만저만해서 왔노라고 말을 하고,
“댁은 어찌 이 산 속에 혼자 사시오?”
하고 물었지. 그랬더니 하는 말이 부모 원수를 갚으러 왔다고 그러거든. 이 사람이 본래 저 아래 마을에 살았는데, 하루는 이 산에 사는 천 년 묵은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와서 부모를 다 물어갔다는 거야. 그래서 그 원수를 갚으려고 산에 올라와서 일 년이 다 되도록 호랑이와 싸우고 있는데 아직 호랑이를 못 잡았다, 이런 얘기지.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보아하니 손님은 기운도 세고 담도 큰 것 같은데, 나를 도와 호랑이를 잡지 않겠소?”
하고 권하는데, 머슴이 사실은 겁 많은 헛장군이지마는 큰소리 하나는 잘 치거든.
“아이 뭐, 그까짓 호랑이쯤이야 나한테 맡겨 두시오.”
이렇게 해서 머슴은 그 집에서 머물면서 사냥꾼과 함께 호랑이를 잡기로 했어. 그런데 뭐 어떻게 잡으려는 건지 아무 일도 않고 그저 밥만 퍼먹고 낮잠만 자는 거야. 몇날 며칠 동안 그러다가 하루는 사냥꾼이 말하기를,
“이제 이만하면 기운이 돋았을 테니 내일은 호랑이 사냥하러 갑시다. 당신은 아무 말 말고 내가 호랑이하고 싸울 동안 가만히 숨어 있다가, 한창 싸울 때 그저 다른 말은 말고 ‘네 이놈, 호랑아!’ 하고 한 마디만 해 주시오. 그 소리에 호랑이가 탁 돌아보면 그 틈에 내가 호랑이를 해치울 테니.”
이러거든. 듣고 보니 그거 아주 식은 죽 먹기지 뭐야. 아, 아무리 겁 많은 헛장군이지마는 그까짓 일을 못 하겠어?
“걱정 마시오. 내 아주 소리를 천둥같이 질러서 그놈의 혼을 빼 놓으리다.”
이렇게 큰소리를 치고, 이튿날 날이 밝아서 둘이 함께 호랑이를 잡으러 갔어. 한참 동안 깊은 산속을 들어가니까 아닌 게 아니라 호랑이굴이 있더래. 사냥꾼이 호랑이를 부르니까 굴에서 호랑이가 나오는데, 몸집이 얼마나 큰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집채만 하더래.
사냥꾼이 달려들어 싸우는데, 엎치락뒤치락하며 한도 끝도 없이 싸우는 거야. 으르렁 쿵쾅, 소리가 요란뻑적지근하고 사방에 먼지가 자욱한데, 머슴이 나무 뒤에 숨어서 그 모양을 보니 얼마나 겁이 나는지 입이 딱 붙어서 말이 안 나와. “네 이놈, 호랑아!” 하고 한 마디 해야 할 텐데 입이 붙어서 말이 나와야 말이지. 오줌을 슬슬 지리면서 그냥 벌벌 떨고만 있지, 뭐 다른 수를 못 내.
하루 종일 싸우다가 둘 다 기운이 빠져서 더 싸울 힘이 없으니까 나가떨어졌어. 호랑이는 슬금슬금 도로 굴로 들어가 버리고, 사냥꾼이 와서는 막 나무라는 거야.
“소리 한 마디만 질러 달랬더니 왜 가만히 있었소?”
“아, 그 당최 입이 안 떨어져서 그랬소.”
집에 돌아와서 또 몇날 며칠을 밥만 퍼먹고 낮잠만 자는 거야. 그렇게 기운을 돋워서 또 호랑이 사냥을 나섰지. 이번에는 꼭 소리를 지르리라 했는데, 둘이서 사나운 기세로 싸우는 걸 보니 또 입이 딱 붙어서 말이 안 나와. 무서워서 말이야. 그래서 그 날도 허탕을 쳤어.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와서 몇날 며칠 동안 또 쉬었지. 밥만 퍼먹고 낮잠만 자고, 이렇게 해서 기운을 돋워서 또 호랑이 잡으러 갔어. 이번에는 꼭 소리를 지르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지. 사냥꾼이 호랑이를 불러내어 엎치락뒤치락 싸우는데, 아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소리를 질렀어.
“네 이놈, 호랑아!”
그런데 얼마나 겁이 났던지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를 못 하고 목구멍에 탁 걸려버렸어. 그러니까 꺼이꺼이 하는 소리만 나는 거지. 호랑이가 한창 싸우다 보니 뭐 모기소리 만한 것이 꺼이꺼이 하거든. 뭐가 이러나 하고 탁 돌아보는데, 그 틈에 용케 사냥꾼이 칼을 내리쳐서 호랑이를 잡았어. 집채만 한 것이 쿵 하고 나자빠져 죽었지.
그래서 사냥꾼은 부모 원수를 갚았어. 어찌 됐거나 머슴은 호랑이 잡는 데 큰 공을 세운 거고.
그런데, 머슴이 산에서 내려올 때 어떻게 내려왔는지 알아? 사냥꾼이 말이야, 호랑이 가죽을 벗겨서는 그 안에 머슴을 집어넣었어. 그리고 실로 가죽을 도로 꿰매서 그놈의 것을 산 아래로 냅다 던졌어. 그게 떼굴떼굴 굴러 어디 가서 떨어졌느냐면 그 머슴 살던 집 안마당에 가 떨어졌거든.
그 집 주인이 방에 있다가 뭐가 쿵 하는 소리가 나서 내다봤더니, 아 글쎄 호랑이 한 마리가 안마당에 퍼질러 앉아 있단 말이야. 혼비백산을 해서 도망가려고 하는데, 호랑이가 조그맣게 말을 하지 뭐야. 뭐라는고 하니,
“영감님, 영감님. 나 좀 꺼내 주세요.”
이러거든.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다 싶어서, 가만가만 다가가서 작대기로 한 번 후려쳤더니 실밥이 우두둑 터지면서 머슴이 탁 튀어나오더래.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어떻게 되긴. 잘 살았지. 아흔아홉 해 살고 또 아흔아홉 해 더 살아서, 그저께까지 살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