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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
본문: 시27:1-14
오늘 시편 27편 말씀 중심으로 플라세보효과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Placebo effect. 플라세보라고 하는 말은 라틴어입니다.
그런데 이 뜻은 만족시킨다. 아니면 즐겁게 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그런 단어입니다.
그러면 이 Placebo effect가 여러분, 뭡니까?
여러분 다 아시는 내용이에요.
약리적으로, 약리적, 그러니까 약학적으로 볼 때 독도 아니고 약도 아닌 물질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젖당이나 녹말, 그리고 우유, 증류수나 식염수 같은 것들, 독도 아니고 약도 아닙니다.
그런데 환자에게 당신이 걸린 병에 이것이 아주 특별한 효능을 갖고 있는 그런 아주 좋은 약이다. 라고 확신을 시킨 다음에 설득을 시켜서 그 플라세보를 먹일 때 환자에게 30%정도 회복률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이걸 바로 플라세보효과라고 그래요.
실질적으로 병이 걸려있는 육체는 아무런 작용이 없어요.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요.
그런데 환자의 마음이 아, 내가 그렇게 의사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그렇게 좋다고 하는 약을 내가 먹었으니까, 하는 그 안도감으로인해서 병에 걸려서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러다 병신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이러다 골병들지. 내가 이러다 말지.
이러한 불안감과 걱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마음이 벗어날 때 치료율이 30%나 증가할 수 있다. 하는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Placebo effect, 플라세보효과는 단순히 환자를 치료할 때뿐만 아니라 약을 새로 개발했을 때 그 약의 효능을 시험하기도 한다는 것이에요. 시험하는데 비교를 한다는 거예요.
일련의 사람군에는 플라세보를 주고 또 일련에는 그 약을 줘서 부작용과 또 긍정적인 약리작용을 비교검토하고 이러기도 한다는 것이에요.
때로는, 때로는, 이중맹검법이라 그래갖고 그 플라세보를 의사조차도 플라세보인 것을 모르고 그냥 그 증세에 좋은 약인 줄 알고 줄 경우가 있어요.
이걸 이중맹검법이라 그러지요. 의사도 모른 채로 플라세보를 사용하게 됩니다.
자, 여기서 여러분 우리가 알 수 있는 두 가지 기능이 있어요. 플라세보효과에서.
첫번째 기능은 말씀드린 대로 마음이 병이 걸렸다고 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 걱정, 이런 것으로부터 마음이 벗어나서 안도의마음상태가 될 때. 안심하는 마음상태가 될 때 몸에도 그런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첫 번째 효과라면 두 번째 부정적인효과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냐?
실제로도 아무것도 아닌데 몸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플라세보를 먹고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발진이 난다든지 발열이 나는,아니면 구토가 난다든지 설사가 난다든지 하는 그런 부정적인 효과가 있고 또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자, 우유를 위장약인 줄 알고먹고 위장이 아주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우유로 만들어진 그 약을 찾을 수가 없게 될 때 이 환자가 불안해집니다.
실제로는 그 우유는 먹으나 안 먹으나 아무 문제가 없고 아무 영향력도 없는데 한번 플라세보효과가 일어난 뒤로는 그 다음에는 그것이없으니까 거기서 안타까움이 일어나고 그것만 있으면 내 위가 아픈 것이 해결이 될 텐데, 하는 착각 속에 빠져서 괴로워할 수있다는 것이에요.
이 두 가지 긍정적인 기능과 역기능, 부정적인 기능을 보면서 오늘 다윗의 시편 27편을 우리가 이해하면 신앙에 있어서 플라세보효과의 양면성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오늘 다윗의 시편은 역시 평생 동안 다윗에게 붙어 다녔던 정적들에 의해서 생긴 환란 가운데 하나님께 노래 부른 비탄시입니다.
그런데 이 비탄시의 특징은 뚜렷이 두 가지를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뭘 구분하느냐?
마음의 행방과 몸의 행방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환란 가운데 우리도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는 삶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건강문제, 돈 문제, 자식문제, 사업문제, 친구문제, 뭐 결혼문제, 취직문제, 끝없이 문제가 다가오는 가운데 그러한 환란과 걱정과근심거리들이 쌓여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마음가짐을 가져야하는가를 너무나 뚜렷하게 다윗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에요.
먼저는 플라세보효과 1번의 그 긍정적인 차원에서 볼 때 다윗은 지금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 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라는 말을 합니다.
플라세보효과에서 마음을 우유를 먹고도 어쨌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로 마음을 몰아가는 것처럼 지금 다윗에게 나타나는 모습이 군대가나를 대적하여 진치고 전쟁이 나를 둘러칠지라도 원수들이 나를 포위할지라도 내 마음은 태연하리로다. 라는 말을 합니다.
마음이 태연한 곳에, 마음이 안심할 수 있는 곳에 머무른다는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에요. 이게 플라세보효과의 긍정적인 면에서 마음을 몸에서 분리시켜버립니다.
몸에 안 좋은 상태로부터 마음을 떼내버립니다. 안심하게 합니다.
지금 상황은 전쟁이 일어난 것이에요. 전쟁이.
그런데 그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전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이 태연하다는 거예요. 내 마음이 태연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할 때는 올바른 삶의 태도라고 볼 수가 없어요.
전쟁이 일어났고 군대가 쳐들어와서 포위하고 있으면 어떻게 이 포위망을 부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인가.
뭔가 해야 되잖아요.
마음이 안심하며 태연하다는 걸 노래하면 뭐할 거예요.
그런데 아는 거예요. 다윗은. 뭘 아느냐?
내 마음이 안심하고 내 마음이 태연할 수 있을 때 몸에 해당하는 내 이 삶의 현실도 향상되고 극복되는 것을 믿는 겁니다.
이 믿음에는 비밀이 있는 것이에요.
먼저 어떻게 해서 마음을 안심시키는 자리로 갈 것이냐?
지금 당장에 돈 문제가 급하고 무슨 뭐 건강문제가 쳐들어오고 자식문제가 난리가 나고 다 뒤집어지고 난리인데 내 마음만 안심하면 뭐하겠느냐 하지만 어쨌든 다윗은 안심하는 곳으로 몰아내는 겁니다.
몸이 당하고 있는 이 현실을 마음이 떠나버리는 거예요. 어디로 떠나냐?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어떻게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냐?
4절부터 5절 한번 보세요.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한 가지 소원이 있다는 것이에요. 마음이 이제 옮겨가는 겁니다. 플라세보효과에서 마음이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마음이 옮겨가는데 어떻게 옮겨가느냐?
소원을 따라 옮겨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 소원이 뭐냐 하면.
한 가지 소원이 있다 그래요. 한 가지 소원. 한 가지 소원이 뭐냐 하면.
여호와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성전에서 여호와를 사모하는 것이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있는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하나님의 매력에 흠뻑 빠져가지고 그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이게 평생의 소원이래요.
이 소원을 노래할 때가 아니잖아요. 지금 여러분.
군대가 와서 나를 진치고 둘러치고 전쟁이 나를 감싸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내 소원을 노래하면 뭐하겠다는 거예요?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여호와의 매력에 빠져가지고 그를 사랑하며 살겠다.
뭐하자는 겁니까?
그 다음 말은 거 가관이에요. 점입가경이지요.
5절 보면 환란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위에 두시리로다.
이게 왕입니까?
지금 전쟁이 나를 둘러쳤으면 왕의 소원은 태평성대라든지, 전쟁의 승리라든지, 영토확장이라든지, 부국강병이라든지 우리 삶으로 갖고와보면 똑같아요. 자식을 기르는 엄마 같으면 뭐 일류대학을 들어간다든지 장가를 잘 보낸다든지 시집을 잘 보내고 취직자리를 잘하게한다든지 이런 소원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그런 것들이 다 문제요, 위기인데 지금 다윗이 하는 말은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그게 내 마음을 숨긴다는 얘기에요. 지금.
Placebo effect에서 마음이 안도할 수 있는 상태로 빠져나가는 것, 그것을 지금 원하는 거예요.
이거 비겁한 거 아닙니까? 소위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에서 볼 때.
건전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그런 직장인의 자세에서 볼 때 이거 비겁한 거 아니에요?
은밀한 곳에 나를 숨겨달라는 거예요.
전쟁이 일어나서 나라가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데.
그런데 영적인 Placebo effect를 이해하는 거예요.
내 마음이 하나님의 은밀한 장소에 들어가서 지금 이 환란의 상황을 벗어나서 걱정하고 근심하고 불안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품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거예요.
지금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고 험상궂게 나를 삼키려고 달려드는 걱정거리들을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에 빠져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은밀한, 은밀하다는 건 뭐예요?
환란을 당하고 있고 내가 당한 환란을 보고 있는 가정, 이웃, 누구도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안으로 마음이 들어가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어떤 얘기까지 하느냐?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원수위에서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리라.
원수들의 머리위에 들린다는 거예요. 무슨 얘기입니까?
결국은 몸이 당하고 있는 환란의 상황을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바라보며 하나님의 매력에 빠져서 사랑하는 가운데마음이 붕 떠가지고 몸의 차원, 몸의 차원, 이 평면을 뛰어넘어서 원수들과 내 몸이 함께 어우러져 난리를 치고 있는 그상황위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플라세보효과에서 마음이 빠져나가는 거예요.
현실이 좀 확실하게 나아지기를 바라세요?
그럴수록 현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로 마음이 도망가세요. 도망가세요.
그 도망갈 수 있는 확실한 길, 다윗보다 더 유리한 길이 뭡니까?
주님의 십자가에요. 내 몸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달려 죽은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죽은 현실인 것을 인정하고 마음이 도망가 버려요. 도망가 버려.
지금 막 병이 납니까? 지금 막 돈 문제가 터져나갑니까? 지금 막 일이 꼬입니까?
인간관계가 다 뒤틀려져버려요? 자식이 난리가 났어요? 애인이 막 헤어진다, 만다, 막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요?
이때, 주님의 십자가를 보고 도망가세요. 마음이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세요.
그런데 어디를 가도 안심할 수 없어요. 하나님 말고는요.
주님의 십자가만이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게 해요.
그러면 두 번째 다윗이 11절부터 보면 몸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자, 마음은 빠져나갔어요. 어디로? 하나님께로.
십자가 바라보면서 마음이 빠져나갔어요. 안심하는 곳으로 갔어요.
그러면 몸은 몸대로 아직 죽지 않았으면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13절에 보면 내가 산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더라. 무슨 말입니까?
내가 마음이 빠져나갔더니 몸의 현실, 몸이 살아있는 이 산자의 땅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마음에 전달되기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고 전달이 된다.
내마음이 이 현실을 빠져나가서 현실에서 걱정하고 근심하지 않고 빠져나가서 하나님 품에 안겨서 안심하고 있노라니 그 마음에하나님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전달되는 바, 내가 빠져나온 내 몸의 현실들, 이 세상의 문제들, 아,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그러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기다려라.
14절에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왜 기다리는데 강하고 담대합니까?
나가 싸울 때 강하고 담대해야지.
그런데 여러분, 기다리는 게 더 무서운 일이고 더 힘든 일이에요.
막 난리를 치고 있잖아요. 몸의 현실은.
내 몸이 처하고 있는 이 상황은 난리를 치고 있는데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다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마음은 하나님께로 은밀한 곳, 비밀한 곳, 가서 거기 가서 숨어서 마음은 안심하고 있고 이건 뭐 사람이 사는 태도가 아니지요. 어떻게 이렇게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비겁하게까지 보이는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믿음이에요.
내가 그 문제를 끌어안고. 이게 뭔 줄 알아요?
내가 그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대고 해결하려고 하는 게 성실한 게 아니라 지독하게 교만한 거고, 오버하는 거예요. 오버.
머리털 하나 희고 검게 할 수가 없어요. 그거 아직도 모르세요? 아직도 사람이 할 건 사람이 해야지 이러고 계십니까?
이 넌센스에요. 오버요, 주제 넘는 것이고, 자기를 모르는 것이고, 교만한 것이고, 자기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악한 것입니다. 악한 것이에요.
내 마음이 은밀한 곳, 하나님의 품안으로 가고 거기 가서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며 안심하고 평강을 누리며 있노라니 하나님이 내 마음에 전달해주십니다.
너의 몸에 현실들, 나에게 뜻이 있다. 다윗이 위에서 보니까 옆에 사람들이 난리야, 마음이 조급해서.
그런데 다윗이 마음에 느끼기를 분명히 하나님이 아주 적확한 타이밍에 당신의 뜻대로 쫙쫙 이끌어 가실 거거든요. 원수로 인하여 나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신단 말입니다.
그 간구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원을 이심전심으로 받고 하는 간구에요. 지금.
정확한 타이밍에 하나님이 움직여 가실 텐데 사람들이 기다리지를 못하는 거예요. 왜?
두려워서.
가만히 있다가 이거 망하겠다. 가만히 있다가 이거 완전히 끝장나는 거 아닌가?
그래서 14절에 강하고 담대하여 기다리라. 강하고 담대하여 나가 싸우라. 강하고 담대하여 계획을 세우고 박차고 현실적인 난국을 타개하라. 이게 아니라 강하고 담대하여 기다리라. 기다리라.
재미있지 않아요, 여러분? 이 시편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뭐 비슷비슷한 말 같아도 시편마다 다 특징이 조금씩 있습니다. 서로 다른 특징이.
그래서 여러분 플라세보효과를 얘기를 마치자면 이런 거예요. 부정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우리 몸의 현실,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이 땅에서의 문제들에 대한 우리들의 처방은 실제로는 플라세보에요. 실제로 효과가 없는 거예요.
자, 혼동이 일어날 수 있어요, 여러분.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가운데 첫 번째 플라세보효과의 긍정적인 면은 마음이 안심하는 자리로 가는 게 중요하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신앙인은 마음이 궁극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하나님께로 도망가야 된다는 겁니다. 현실을 끌어안지 말고.
두 번째 플라세보효과는 실제로는 그 약효는 없는 거예요. 약효가 없는 거예요. 속임수지.
그러므로 플라세보효과로 나아진다고 하는 게 한계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마음이 안심하는 곳으로 간다고 할 때 참으로 안심하는 것, 여기 다윗이 오늘 보면 나의 바위라 그러잖아요? 바위?
높은 바위위에 두시리로다.
그렇게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하나님께로 가는 것, 이게 플라세보효과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실제로 약효가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돈이 있어야 행복할 텐데, 우리 자식이 일류대학을 들어가면 만족할 텐데. 멋진 애인이 180cm이상 되면 애인이 생기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은 플라세보에 불과하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적인 처방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고 이웃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그런 처방전들은 플라세보에 불과한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없어서 우리는 난리가 나는 거예요.
돈이 없어서 큰일인줄 압니다. 지금.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 큰일인줄 아는 거예요.
시집가고 장가가지 못해서 난리난 줄 아는 겁니다.
그게 다 플라세보라는 걸 모르는 거예요.
그럼 뭐냐?
하나님의 뜻만이 이 땅에 대한, 산자의 땅, 이 몸이 움직여가며 살고 있는 몸의 현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만이 진짜 약입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처방전은 다 플라세보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이 말을 기억할 수 있어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때 그 세상이라는 말이 여러분, 내 마음이 구원을 얻는 사건이 십자가사건이면서 동시에 이 몸의 현실을 하나님이 사랑하세요.
우리가 사랑하면 안돼.
우리가 사랑하는 건요, 평생의 소원, 다윗의 소원대로 여호와의 집에서 여호와를 앙망하며 여호와를 바라보다가 아, 그여호와하나님아버지의 아름다움에 홀딱 빠져가지고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는 미치광이와 같은 사랑에 빠져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사랑해야 되는 현실이고
이 세상은 내 자식, 내 사업, 내 인생, 내 결혼, 이런 건 다 내가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당신의 뜻을 갖고 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그걸 실제로 효과도 없는 이 세상에서 만들어놓은 플라세보를 가지고 해결하려 그러니까 조금 괜찮은 듯 했다가 또 걱정이밀려오고 서울대 들어가면 괜찮은 줄 알았다가 들어갔더니 또 걱정이고 서울대 들어가 데모하다가 꼴이 터지고 계속해서 궁극적인 약이아닌 플라세보로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겁니다.
자, 플라세보효과.
마음이 안심할 때 몸에도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몸의 현실을 끌어안고 걱정근심하지 말고 마음이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그러기 위해서 몸의 현실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내 마음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자.
두 번째, 플라세보에 매이지 말자. 그건 실제로 약이 아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놓은 모든 처방은 실제 약이 아니다. 오직 내 현실에 대한 약은 하나님만이 갖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의 뜻이 산자의 땅, 내 육체의 현실에 나타날 때까지는 강하고 담대하여 기다리자. 기다리자.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아버지!
너무나너무나 영적으로 비효율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 육체의 현실 속에 환란이 주어지고 심지어 전쟁이 나를 둘러칠지라도 여호와하나님의 은밀하신 그 가슴 안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기 위하여 날마다 십자가에서 이 몸의 현실에 대해 죽게 해주시옵시고 그리고 다시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실제로는 아무 효과도 없을 플라세보가 없다고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첫댓글 flute 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카페가 한층 더 활기찹니다.
님의 수고를 통하여 행복한 글 읽음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