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 16,24)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 의사에 맡겨 두시기를’ (집회 15,14) 원하셨고, 창조주를 자유로이 따름으로써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를 바라신다.”
“자유는 최고선이신 하느님을 향할 때 그 행위의 완전함에 이른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43-4)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뜻입니다. 사람의 의지는 사람을 지배하는 역할을 하여 선을 행하게도 하고 악을 행하게도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려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인간의 뜻만 남고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인간의 뜻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죽고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버리는 희생, 자신의 뜻에 생기를 주지 않는 희생을 할 때 하느님의 뜻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뜻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 때 자신의 뜻을 잘 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이란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인간의 뜻을 말합니다. 원래 인간은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된 인간의 뜻으로만 살도록 창조되었기에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인간의 뜻은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이 주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뜻 (의지)의 중요성
13-22,9 사람의 뜻은 사람을 자기 창조주와 더욱 닮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사람의 뜻 안에 내 무한성과 능력의 일부를 담아 주었고, 그것에 영예로운 위치를 부여하여 사람의 전 존재를 지배하는 여왕이 되게 함으로써 사람의 일을 전부 맡아 간직하게 했기 때문이다.
14 이 때문에 내가 그 무엇보다도 사람의 뜻을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진 셈이 되고, 견고한 성채를 정복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14-4,12 사람의 의지는 그의 정신 안에 있으면서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이 원하지 않는데 그의 눈이 보고 손이 일하며 발이 걷는다고 말할 수 없다. 반면에 그가 원하면 눈이 보고 손이 일하며 발이 걷는다. 모든 지제가 조화롭게 일치를 이룬다.
16-2,6 보아라, 사람 안에 있어서도 최고권을 가지는 것은 그의 뜻이다.
7 사람에게 있어서 뜻은 생각이 아니면서도 그의 정신 자세에 생명을 주고, 눈이 아니면서도 그의 시선에 생명을 준다. 왜냐하면 뜻이 있으면 눈이 보기를, 즉, 사물을 알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눈이 있어도 생명이 없는 눈과 같은 것이다.
8 마찬가지로, 뜻은 말이 아니지만 모든 말에 생명을 주고, 손이 아니지만 활동에 생명을 주고, 걸음이 아니지만 걸음에 생명을 준다. 또한 사랑이나 소망이나 감정이 아니지만 사랑과 소망과 감정에 생명을 준다.
16-27,16 인간의 다른 모든 것은 표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이든지 악이든지 그것의 원천과 뿌리와 실체는 인간 뜻의 깊은 곳에 있다.
16-30,9 딸아, 모든 악은 의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네가 아직 깨닫지 못했구 나. 인간을, 곧 인간의 본성을 짓누른 것은 의지였지, 본성이 의지를 짓눌렀던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제자리에, 내가 창조했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의지 곧 그의 뜻이었다. 인간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뜻에 대립하였고, 이 반항적인 뜻이 그의 본성을 짓누르며 허약하게 하고 더럽혀서 극히 천박한 정욕의 노예로 만들었다.
2, 자신의 뜻을 버려야 하는 이유
1-11,7 네가 너 자신 안에서 가장 먼저 없애야 하는 것은 너의 뜻이다. 네 안에 있는 그것은 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탐하므로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런즉 내 앞에 너의 뜻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바쳐야 너의 뜻과 나의 뜻이 하나가 될 수 있다.
11-24,2 네 자리에, 곧 너의 허무 속에 머물러 있어라. 그래야 모든 것이 네 안에서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3 너는 내 뜻 안에서 완전히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1-65,2 딸아, 두 뜻이 대립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십자가가 된다. 나와 사람1 사이가 바로 그렇다. 그들의 뜻이 나의 뜻과 대립할 때면 나는 그들의 십자가가 되고 그들은 나의 십자가가 되는 것이다.
12-152,2 여기 (나의 뜻 안) 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단지 그 자신의 뜻이라는 작은 돌을 치우기만 하면 된다.
3 영혼이 자기의 뜻이라는 그 작은 돌만 제거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안으로 흘러들고 나도 그 영혼 안으로 흘러든다.
14-43,5 너의 뜻은 나의 뜻 앞에서 사라져야 한다.
6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에는 길이나 문이나 열쇠나 방이 없다.
7 즉, 이를 원하고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버리기만 한다면 하느님의 의지가 영혼이 호흡하는 공기가 되어 영혼에게 생명을 주고, 이 의지의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줄 것이다.
15 너의 뜻을 없애 버리면 내 ‘피앗'이 모든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17-30,8 영혼이 자기의 뜻에 생기를 주는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고 그것을 아예 제쳐놓으면, 그때에는 내 뜻이 그 영혼의 주인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군림하여 명령을 내리며 다스린다.
3, 행복한 하느님의 뜻과 불행한 인간의 뜻
8-8,2 내 뜻은 무척 행복한 것이기에 우리 (성삼위)의 지복을 이루는 반면 인간의 뜻은 몹시 불행한 것이어서 이것이 혹시라도 우리의 뜻 안에 들어올 수 있다면 우리의 행복을 파괴하면서 우리와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14-38,2 자기 자신의 뜻을 완전히 비우지 않은 사람은 내 뜻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지 못하기 마련이다.
16-23,15 인간의 모든 선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고, 모든 악은 인간 자신의 뜻을 행하는 데 있는 것이다.
16-55,7 하느님 뜻과 인간 뜻의 일치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잇는 첫 연결 고리이고, 이것으로부터 하느님의 제(諸) 덕이 도관을 통과하듯 피조물 안으로 내려오면서 그 사람 안에 자기 창조주에 대한 참된 흠숭과 완전한 사랑이 생겨나게 한다.
23-11,22 나의 뜻이라는 공기는 창조주의 태 안에서 나온 것이기에, 생명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거룩하고 아름답고 튼튼하게 보존하지만, 인간의 뜻이라는 치명적인 공기는 가련한 인간을 흉하게 변모시키고 그 자신의 기원에서 추락하게 하므로, 인간이 동정심을 일으킬 정도로 병약하고 허약하게 되는 것이다.
4, 인간의 뜻이 주는 해악
12-28,9 얼마나 훌륭한 것이건 내 뜻을 벗어난 행위들이 어떻게 내 마음에 들 수 있겠느냐? 그것은 항상 천박하고 인간적이며 유한한 행위들이다.
12-118,6 오직 인간의 뜻만이 모든 악의 씨를 내포하고 있다
13-1,9 오직 인간적인 뜻만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불일치를 가져온다.
15-37,8 과연 나의 뜻은 어디든지 있다. 그러나 영혼은 인간의 뜻이라는 그늘 때문에 그 강렬한 빛과 열을 느끼지 못하고 이 뜻이 지닌 모든 선도 감지하지 못한다.
19-53,20 딸아, 인간의 뜻은 영혼 안의 내 뜻의 생명을 마비시킨다.
19-55,18 인간의 뜻이 하느님과의 모든 유대와 친족 관계를 파괴하고, 온갖 욕정의 반사적 (충동) 속에서 살게 하기에, 그 모습이 추하게 일그러진 지옥 원수의 딸이 되는데, 그것은 원수가 저의 추한 모습을 그 영혼 안에 새겨 넣으려고 힘쓰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 자신의 뜻이 얼마나 많은 악을 초래하는지! 그것이 모든 선을 황폐하게 하고, 모든 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0-25,6 인간의 뜻은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
17 인간의 뜻이란 것이 얼마나 엄청난 악을 저지르는지!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분별을 잃게 하고, 가난해지게 하며, 인간 자신을 살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