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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뮤지컬
(레25:1-55)
오늘 우리가 함깨 부분적으로 본 레위기 25장의 말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세계 4대 뮤지컬 아시죠?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그 중에서도 특별히 캣츠 같은 경우는 브로드웨이에서 몇 년 동안 상연됐는지 아십니까?
무려 18년 동안이나 상연이 됩니다. 전 세계에서 88회 공연을 하는데 뉴욕에서는 전 세계의 외지에서 공연을 빼놓고 몇 번 공연이 됐는지 아십니까? 7397회 공연 되었답니다. 티켓 매출만 해도 4억 달러 가까운 매출을 올리면서 18년 동안 공연을 허다가 마쳤습니다.
그 캣츠에 나오는 뮤지컬 가수들의 주인공역을 맡았던 사람들도 몇 번씩 바뀌고 그러면서 18년 동안이나 한 스토리가 반복돼서 공연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8년 동안이나 공연되었지만 결국 그것은 허구적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뮤지컬입니다. 그래서 18년 동안 그것이 공연되다가 없어지고 나면 결국은 역사적인 기록만 남지 그 공연장에서조차 캣츠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아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현실의 삶과 비교해볼 때 캣츠라고 하는 뮤지컬은 한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임시적인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 내용이 18년 동안 반복해서 브로드웨이 가에 공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 이러한 이야기를 좀 더 확장시키면 마찬가지 이야기를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22년 2개월 동안 지속됐던 TV드라마가 있습니다. 다 아시죠? 전원일기.
그 전원일기에 아역으로 나왔던 사람들은 중간에 바뀌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군대갈 때까지 계속 이어서 출연하기도 하고 거기 나오는 최불암씨와 김혜자씨는 22년 2개월 동안 부부로 나옵니다. 진짜 김혜자씨의 남편 최불암씨의 아내되시는 분보다 김혜자씨와 최불암씨가 부부로서 불러가면 연기를 했던 이 시간들이 인생에서 훨씬 더 길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촬영 한번 하려면 요즘도 대하드라마 같은 경우는 아주 녹아난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또 밀도 깊게 촬영을 끝내야 되는 그런 미니시리즈 같은 것은 배우들이 아주 녹초가 된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새벽에 경부선 타고 올라오다 보면 가끔 MBC, KBS, SBS 촬영차량 이렇게 해갖고 밤중에 올라오는 게 있어요. 그래서 어떤 버스들은 차창으로 보일 때가 있거든요. 대부분 선팅을 해서 안 보이게 하는데 근데 어떤 것은 보이는데 다 늘어져서 자고 있는 거예요. 밤새도록 지방에서 촬영을 하다가 올라오는 거지요. 그렇게 하다 보면 김혜자씨나 최불암씨 같은 경우는 정말 부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22년 동안을 부부로 지내도 그것은 역시 본래성이 아닙니다. 최불암씨 한테는 본래 아내가 있고 김혜자씨 한테는 본래 남편이 계십니다. 뮤지컬이 오랜 기간동안 공연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본래성이 아니에요. 본래성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희년의 의미가 거기 있다는 것이에요. 7년마다 안식년을 당하면서 토지 경작음 멈추게 됩니다. 그래서 6년째 소출을 가지고 1년 동안 먹게 됩니다. 근데 이런 7년을 7번 반복하면 7년마다 안식년이고 그 7년을 또 7번을 거친 다음에 49년이 지난 50년째는 희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해방의 해로 지켜가는 것입니다.
이 해방의 해가 뭐냐?
예를 들어,
내가 가난해져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분배받은 우리 가문의 토지를 팔았습니다. 그러면 내 토지를 산 사람은 50년 동안 그 토지를 갖고 있다가 예를 들어 희년 한 30년 전쯤부터 토지를 샀다 그러면 30년에서 소유하다가 희년이 되면 토지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됩니다.
또 아니면 내가 빚을 졌는데 갚지 못해서 내가 종으로 어느 집으로 들어가 일하게 됐다. 그러면 희년이 되면 그 사람을 종의 자리에서 놔줘서 본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성경 본문을 기본으로 해서 성서적인 토지 공개념을 사회적으로 실현시키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희년신학이라고 하는 것도 이야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특별히 23절 같은 경우가 그런 희년신학의 근간이 될 수 있는데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영구히 파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희년이 3년 뒤다. 근데 내가 토지를 팔아야 된다면 3년 동안 소유할 수밖에 없는 땅이기 때문에 이 낮아지는 겁니다.
이렇게 희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다 돌아가져야 된다고 하는 차원에서 이런 말씀을 근간으로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희년의 사상을 토지 공개념 같은 것에만 국한시켜서 현실적으로 이 땅에 제도적으로 부동산 억제정책에 사용할 수 있는 이런 것에 희년의 정신을 국한시키는 것은 너무 좁게 보는 것이라는 겁니다.
희년의 기본정신은 어디 있느냐?
신앙인에게 있어서 본래성의 회복을 본래성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오늘 본문에 보면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거류민이라고 하는 것은 aliens 즉 이방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동거하는 자라고 하는 것은 tenants 즉 세입자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토지라고 하는 것 땅이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 관한 말씀을 이렇게 하십니다. 죄를 지은 아담에게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죄를 지은 인간의 본래성은 흙입니다. 땅에 속해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본래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래성이 하늘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운 바』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본래성은 우리가 어떻게 된다는 얘기입니까? 하늘로 본래로 회귀한다는 것이에요.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내 사건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우리가 땅이 본래성이 아니라 하늘이 본래성이 된 사람들로 바뀌어버린다는 겁니다.
이제 회귀하게 되는데 그러면 본래성으로 하늘나라로 돌아가게 되기 전까지 이 땅에서의 삶 그러니까 우리가 죽는 것이 희년이라고 하면 그 희년 이전의 그 삶은 뭡니까?
본래성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마치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공연과 같은 것이고 TV 드라마의 전원일기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지금 내가 아내와 같이 삽니다. 그러나 내 본래성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면 본래성 이전 희년 이전에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이것은 다 뭡니까?
뮤지컬 공연과 같은 것이고 드라마의 역할과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희년을 통해서 우리의 본래성을 회복하는 것이에요. 내 천국 집을 회복하는 것이고, 본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회복하는 것이고, 본래 형제 자매되는 즉 천국에 올라온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 예수님이 그러지 않습니까? 『누가 내 형제요 자매냐?』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말씀대로 사는 자들, 말씀을 듣는 자들이 내 형제요 자매라고 말합니다.
지금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도 불교를 믿는 우리 자매가 있고 형제가 있습니다. 그건 본래적인 게 아니에요. 그와 함께 내가 지금 형제요 자매가 된 것은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본래적인 게 아닙니다.
심지어는 남편과 아내도 끝까지 한 사람은 믿고 한 사람은 안 믿는다고 그러면 이것은 남편과 아내라고 하는 역할의 뮤지컬 공연에 불과한 것이고 김혜자씨와 최불암씨의 부부관계에 속하는 것이지 본래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그런 말씀 밴쿠버에서부터 계속 들여옵니다. 교회가 자꾸 프로그램을 하는데 삶에서부터 교인들의 시간을 빼앗아서 예배당 울타리 안에 머물도록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시간을 다 허비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미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우리에게는 프로그램이 주어져 있다는 겁니다. 무슨 프로그램이 주어져 있느냐? 가정이라는 프로그램이 주어져 있다는 거예요.
아내의 역할이라는 게 하나의 프로그램이지 그게 본래적인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게 영구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누구의 엄마라고 하는 것도 영구적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에요. 영구적 의미와 본래성은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이지 내 자식과 아니면 내 부모님과의 관계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게 다 뭐냐 하면 뮤지컬 공연의 하나의 역할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프로그램이에요. 어떤 프로그램입니까?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 천국에 대한 본래성의 의식 이것들을 표현해내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거예요.
자녀를 대하는 엄마. 그러면 내가 본래 엄마가 아니에요. 지금 자녀 앞에서 엄마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고 뮤지컬 공연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 즉 하늘의 본래성에 마음이 다 가있는 나의 이 땅에서 떠나있는 마음의 상태를 자식이라고 하는 계기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지요.
제가 그것도 자식이라고 꼬맹이 하나 있는 거 그 아이에 관한 얘기를 자꾸 합니다. 또 집사람에 관한 얘기를 자꾸 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자랑하려고? 제가 집사람이나 아이를 자랑하는 투로 말하는 것이 있으면 한번 말씀해보시지요. 왜 그 얘기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가 맡긴 뮤지컬 공연장이에요.
그러므로 그 아이 앞에서 믿음을 표현해내지 못하면 나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설교하고 교회 일을 하는 동안에 목사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마는 신앙인이 아니에요.
신앙인은 어디서 나타납니까? 자식 앞에서 나타나는 거예요.
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의 자리에 확고하게 서게 되는 사건이 자식을 죽이는 사건이 됩니까? 이게 다 뮤지컬이에요. 공연이에요. 본래적인 게 아니라는 겁니다.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이 나를 마음에 품고 계시다가 이 땅에 태어나게 된 연한은 몇 억년이 될지 모르는 겁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측정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내가 내 자식을 만난 것은 불과 20년 20년 40년이에요. 어느 게 더 본래적인 것입니까?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몇 십년 만나고 있는 자식 때문에 내 마음을 다 뺏기고 있습니다. 그것도 세상이 가르쳐 준 방식대로 세상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세상이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대학 들어가야 잘 살지. 자삭한테 그 믿음을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너 좋은 대학 들어가야 잘 살아.” 이러면서...
그래서 자식 앞에서 남편 앞에서 아내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표현되지 않고 내 본래적인 소속인 천국이라고 하는 사실이 의식되는 상태가 아니면 믿음이 아니에요. 그걸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희년의 본래 정신이 어디 있느냐?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거예요.
너희의 본래성을 회복하라는 겁니다.
자,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어줍니다. 본래 받은 기업이요 땅입니다. 가나안 땅이 무엇으로 상징되고 있습니까? 천국으로 상징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의 역사 출애굽의 역사와 같은 구원의 사건인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내가 받아들일 때 내가 가나안 땅을 허락받게 됩니다. 그게 천국이에요. 그리고 그 본래적 기업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계속 말해요.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사람도 말합니다. 어떻게 말해요?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기업이라』그 영원한 기업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본래성을 갖고 있는 겁니다. 정말 짧은 생을 살고 있는 거예요.
몇 억년 몇 만년 하나님의 품에서 내가 계획되어지고 있다가 잠깐 7,80년 살다가 몇 억년 몇 십억년 아니 영원한 세계를 우리가 살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70년 참으로 비본래적인 삶을 사는 겁니다. 잠깐 공연하는 것이에요. 아무리 남편이 소중하고 부인이 소중하고 자식이 귀하고 부모가 귀해도 그것은 비본래적인 것이고 전부 하나님에 대한 본래의 세계 천국에 대한 나의 믿음이 표현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이에요.
자식이 있다면 자식 앞에서 “얘야. 네가 지금 실패하고 있고 이 세상에서 직업을 못 구하고 있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러나 이 땅의 삶으로 너무 마음을 끓지 말거라. 너의 본래의 기업은 천국에 있다. 그러므로 네가 아무리 망해도 아무리 안 돼도 천국보다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없는 한 너는 성공한 아이다. 네가 비록 좋은 대학은 못 들어갔지만 너는 이미 천국에 들어갔어. 천국입시에 합격한 아이야. 대학 못 들어간 것 때문에 네가 그렇게 속 끓을 필요가 있니. 성적이 안 나온 것 때문에 그렇게 속 끓을 필요가 있니.”
이렇게 말해야 될 텐데 아이가 자기의 성적이 나쁜 것 때문에 속 끓을 기회가 없는 거예요. 짬이 없는 거예요.
왜? 엄마가 들이대고 있거든요. “너, 성적 이래가지고 되겠어? 너 이래갖고 살겠어?” 이러면서 말입니다.
진짜 교회 안에서는 전부 열심히 생활해요. 근데 가정에 돌아가서 자식 앞에서 남편 앞에서 아내 앞에서는 도대체 믿음이 있는 사람과 같은 삶을 살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남편만 보면 인상 쓰는 부인들이 있어요. 그게 믿음이에요? 믿지 않는 남편, 말썽 피우는 남편, 술 마시고 행패부리는 남편 그 사람 앞에서 신앙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믿음입니까?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자식을 보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지 라고 씨름하지 않는 엄마와 아빠라면 그게 어디 믿음입니까? 믿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간증을 하시려면 내가 남편 앞에서 어떻게 믿음을 표현했다, 내가 자식 앞에서 어떻게 믿음을 표현했다, 내가 아내 앞에서 또 치열하게 돈을 벌어야 되는 사업의 현장에서 내가 어떻게 믿음을 표현했다. 이게 간증입니다. 이런 간증이 없으면 아직도 본래성이 없는 것이에요. 본래성에 대한 의식이 없는 거예요. 희년의 과정을 겪지 못한 것이라는 겁니다.
자, 안식년이면 땅을 경작하던 것을 멈춥니다. 그리고 50년째 희년이 되면 그 땅을 멈추고 모든 걸 다 돌려 보냅니다. 다 죽는 거예요. 오페라 캣츠가 다 끝나는 것처럼 다 죽는 거예요. 마치 공연하던 것을 끝내는 것처럼 다 본래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 사건이 뭡니까? 주님의 십자가에요.
바울은 매일을 희년으로 살았던 것이에요. 주님의 십자가로 죽음과 동시에 내 마음이 본래성에 회구해버립니다. 천국으로 마음이 가버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뭐라고 한다구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운 바 되었다는 겁니다. 지금 마음은 하늘에 앉혀진 상태에서 이 땅을 사는 것이라는 거예요.
오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잠깐 사는 세입자다. 저는 전세로 살고 있거든요. 2년 계약했어요. 잠깐 살고 떠나는 겁니다. 세입자로 살고 있는 거예요.
다 내 것임이니라.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내가 마음이 본래성으로 회귀해서 천국에 있지 않습니까? 하늘에 앉히운 바 되었잖아요.
근데 내가 마음이 떠난 이 땅은 누구 것이라구요?
토지 뿐만이 아니에요. 토지로 상징되는 이 땅의 삶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식과의 관계를 하고 있는 동안에 엄마로서 있는 게 아니라 세입자로 있는 거예요. 자식과의 관계에서 세입자고 이방인으로 와서 거류하는 겁니다. 진짜 자식에 대한 관계를 주인 삼아서 주인으로서 헤나가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토지는 다 내 것이다. 좀더 확대하면 이 땅의 삶은 다 내 것이다. 너희 것이 아니다. 너희는 세입자다.
남편입니까? 세입자로 있는 거예요. 세입자로서의 남편이라는 거예요. 남편이라는 방에 세입해 들어있는 것이에요. 아내라는 방에 세입해 들어있는 것이고, 사업가라는 방에 세입해 들어있는 거예요. 전세자로 세입해 들어 있는 거라는 겁니다.
다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매일을 희년으로 살고 매일을 마음이 천국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천국으로 배부른 상태에서 내 몸은 박제가 되어서 마치 내 안은 그리스도가 사는 것 그래서 이 땅을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고 주인이 이 땅을 사는 겁니다.
이게 희년의 정신이라는 것이고 주님의 십자가에서 희년이 날마다 매 순간마다 선포되고 있고 그러므로 나는 이 땅의 것을 소유하고 내가 팔고 사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본래성인 천국을 마음에 갖고 이 땅을 살아나갈 때 어떻게 살아갑니까?
본래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내가 마음에 천국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계기로 자식을 대하고 남편을 대하고 아내를 대하고 이웃을 대하고 교인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하고 일을 하고 사업을 하는 것이지요.
희년의 정신. 아주 복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이렇게 오늘 하루 아직 자고 있는 아이들이 있지요? 일어나면 그 아이 앞에서 뮤지컬하는 겁니다.
♬내 아들아~ 잘 잤냐~ 오늘 무엇을 할 것이냐~ 엄마가 밥을 차렸다~ 맛있게 먹고 가거라~~
이렇게 뮤지컬 공연하시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070705)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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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젼.놀.ㅇㅣ.ㅌㅓ. 추.천.합.니다.
Z. M. M. 6 .9 닸.켬 (추,천,인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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