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을 맞아 전 국민이 바다로 산으로 심지어는 해외로 대이동을 하고 있다.
주5일제가 전 업종으로 확산되면서 이미 레저나 휴가에 대한 인식이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2006년 여름은 또 다른 피크닉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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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구판장. 광부들의 생필품을 제공하며 운영하던 광업소직영 매점이다. |
안산인터넷뉴스는 여름의 더위를 까맣게 잊을 만한 기상천외한 장소를 공개하여 안산시민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휴가가 되는데 일조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가장 획기적인 전하(환)기를 맞이한 격동기는 누가 부정하든 1970년대와 80년대라 할 것이다. 이시기는 정치, 문화, 경제, 에 있어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과도기적 현상이 두드러지게 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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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광작업에 따른 목욕시설은 필수적이다. 샤워기가 전부인 공중몽욕시설. |
이른바 386세대의 전형적인 성장시기로써 한때 드라마 “모래시계”가 시청율을 올려 그 시절의 인기를 대중적으로 알렸고 영화 “친구”가 때를 맞춰 흥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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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유흥가 한 켠에 자리한 7080이라는 주점들이 곳곳에서 짭짭(잘)한 재미(?)를 보는 등 격동의 시기에 대한민국을 일으킨 세대들에게 야망의 시대였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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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부터 흥행을 맞이한 탄광촌 광부사택. 주소마져 "정목"이라 칭했었다. |
이 무렵 가장 호황기를 맞이한 곳을(은) 어느 곳보다 강원도의 산골의 탄전지대 “태백” 이었다.
알(일)제 강점기시절부터 철도가 놓여지고 석탄이 생산되면서 부흥기를 맞이한 태백은 1970년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으며 1981년 7월 인구 12만명 으로 시 승격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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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들에게 탄광의 일면을 소개하며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홍보하고있다. |
당시 대체연료가 (마땅이 없어)석탄에 의존했던 국내연료시장은 검은 노다지로 알려질 만큼 전국 각지에서 채광업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으며 이후 태백은 “지나는 개도 돈물고 다닌다”고 할만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시골로 변모해갔다.
마땅한 문화시설이 없었던 태백은 유흥가와 소비가 넘치는 탄광촌으로 알려졌고 지하의 검은 진주를 캐기 위한 채굴작업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검은 석탄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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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수천미터의 갱도에서 목숨을 잃는 광부들을 위로하는 충혼탑(위령탑)이 세워졌다. |
석탄의 생명은 그리 길지 않았고 약 20년이 지난 90년 부터는 석유와 가스가 대체연료로 부상했다. 고귀한 생명은 연탄가스중독이라는 어이없는 후진국 형 사고로 목숨을 앗아갔고 사용 후 발생되는 연탄재는 또 다른 처리문제를 낳는 등 석탄이 가진 재(제)반 단점들이 석유와 가스의 장점에 의해 차츰 밀려나기 시작했다.
특히 가격경쟁력에서나 생산, 유통, 소비의 과정에서 비교할 바가 못 되는 상황이었으며 결국 석탄은 정부의 석탄합리화사업정책에 의해 하나둘씩 정리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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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8)년 올림픽 개최를 기원하는 복권을 사기위한 행렬이 줄을 잇고있다. |
짧은 부흥기가 짧은 쇠퇴를 전제로 한 것인 마냥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을(은) 급속히 발빠른 정부의 단계적 작업에 맞춰 진행됐고 마땅한 대안 없이 진행된 당시 정책은 태백 지역사회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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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수와 석탄을 함께 퍼올려 생산하는 수갱준공식이 20년전 거행됐다. |
총성 없는 대량학살이나 다름없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연일 이어졌고 거리에는 곳곳에 버려진 아동(?)이나 폐가로 변해가는 탄광촌의 광부사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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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7월 태백은 인구 12만명의 시로 승격되면서 부흥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
81년 당시 약 12만명의 인구는 10년만에 6만명으로 줄어버렸고 호황을 맞이하던 당시의 “약속의 땅” 은 “잃어버린 제2의고향” 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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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태백에 소재한 장성여자고등학교의 등교 모습이다. 현재 50세의 중년정도. |
1981년 태백이 정책적으로 배제되던 그 시기, 안산은 반월공단의 설립과 함께 각지에서 공업에 종사하려는 근로자들이 대거 운집하던 시기였으며 이 같은 인력의 수급사태는 태백의 실업난 과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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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도 태백지역의 장성국민학교. 당시 전교생은 2,000여명을 기록했다. |
현재 안산시에 거주하는 태백의 이주민들이 상당수 도시민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은 20년전 당시의 산업전사의 열정을 가진 가족과 이웃이기에 가능한 환경적 요인은 배제할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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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 혁명당시의 광업소전경. 군부시절의 살벌함이 광부들을 조여오던 시절이다. |
2006년 안산은 인구 70만 명의 새로운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과거 태백이 석탄의 부흥기를 맞이한 것 과 같이 공업도시로써 해양관광도시를 꿈꾸는 서해안의 거점도시로써 거대한 꿈틀거림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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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우측의 군복이 박정희 재건국민회의장. 영동선 개통식이 거행되고 있다. |
최근이주해온 안산시민들에게 사리항구가 생소하듯 태백의 탄광에서 한때 국내 연료시장을 석권하며 산업전사들이 목숨 받쳐가며 수천미터 지하갱도에서 흘린 땀을 현재의 국민들이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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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부들의주택과 탄전지대는 별다른 구분이 없었다. 요즘같으면 환경문제로 난리다. |
하지만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캐기 위해 직업적으로 입항한 수많은 산업전사들의 노고를 20년이 지난 현재 느껴볼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여행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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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시 동점동 돌구지지역 광부사택. 당시 각주택마다 화장실이 갖춰진 시설이었다. |
과거 문화탐방이나 역사유적을 돌아보며 많은 관광객들이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는 일차원적인 볼거리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바다나 산도 자연이 인간에게 준 훌륭한 선물이지만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역사와 땀의 산실을 함께 공유해보는 것 또한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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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30여년전 탄광의 저탄장은 곳곳에 검은 석탄을 날리며 산재해 있었다. |
탄광에서의 지하갱도체험은 단순한 시원함이나 호기심을 넘어 암울했던 석탄산업의부흥기와 신세대들이 연탄가스에 대한 추억을 들려줄 수 있는 현장이자 가장 가까운 역사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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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 전경.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
대한민국 최대의 탄전지대 “태백” 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족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겪어보는 2006년 여름을 위해 태백시청에서 새로운 관광상품 으로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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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도 홍수가 단칙(닥친) 태백. 40년이 지난 현재도 자연재해앞에 인간은 무력했다. |
안산인터넷뉴스에 본 상품을 소개할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해준 태백시청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석탄으로 부흥했던 태백이 관광으로 또다시 새로운 발돋움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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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0년전의 태백 철암저탄장과 석탄을 싣으려는(실으려는) 철도청의 운반차량이 대기중이다 |
이번 폐갱도 체험은 평소 석탄을 채광 하던 곳으로 이미 상당기간 폐쇄하여 광업용으로 사용이 불가한 지역을 선정, 안전점검을 거친 뒤 일정코스를 관광지역을 선정한 갱도로써 평균기온이
18℃의 선선한 체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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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암지역은 철도로인한 석탄의 운반수송출발지로써 지역 상권이 발달한 편이다.(발달했던곳이다) |
특히 석탄박물관은 석탄채광 당시의 지역상황을 생생하게 재연함으로써 주민들의 생활상이나 주거환경 등 탄광촌의 시대적 발전상까지 여과 없이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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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에 소재한 황지연못. 이곳은 낙동강 700리의 발원지로도 유명하다. |
이용시간은 09:00-18:00으로 날씨에 관계없이 연중무휴로 관람할 수 있다.
소요시간은 약 40분간이반 가까운 태백산이나 용연동굴 등 태백지역의 특수한 생태계를 함께 볼 수 있는 장점을 니지고 있다.
갱도체험은 어른 1.000원, 단체700원, 어린이 500원 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아래는 태백시청 관계기관에서 보내온 상품설명에 관한 세부내용을
게시하여 관광객의 이해를 돕기로 한다.
태백체험공원
1. 위 치 : 태백시 소도동 산3번지 일원
2. 건립배경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1993년 12월 20일 폐광된 함태탄광은 연간 약 378만톤의 생산과 890여명의 종업원으로 이루었던 관내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탄광이었다. 이러한 함태탄광이 폐광 당시 대체산업 조성을 불가피하게 못하게 된 대신 현장 부지 및 건물 일부를 태백시에 기부 채납하여 소도동 산3번지 일원 61필지 124,228평방미터에 탄광지역종합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으로 나누어져 공공부문은 2000년 11월 30일 실시설계 용역을 시작하여 단지조성으로 진입교량, 주차장, 조경시설 등에 이어 현장학습관과 탄광사택촌을 관람시설로 2005년 12월 10일 공사를 모두 완료하고 2006년 4월 7일 개장하였다.
3. 소 개
태백체험공원은 폐광지라는 지역적 특색을 살려 조성된 체험관광지이다. 현장학습관과 탄광사택촌, 체험갱도등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어 생생한 탄광체험을 할 수 있으며, 태백산 자락에 위치해 태백산도립공원과 연계한 휴가지로도 손색이 없다. 과거 국가 기간산업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현재는 사양 산업이 된 석탄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광부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현장학습관>
폐광된 실제 탄광사무소에 재현된 체험위주의 현장학습관은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도 석탄생산에 종사한 광부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피어났던 그들의 꿈과 희망을 볼 수 있는 생생한 현장체험공간이다. 현장학습관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존 에너지 자원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으나 지속된 경제성장으로 인한 청정고급연료에 대한 선호로 사양의 길로 접어든 태백석탄의 역사와 광부들의 삶을 체험을 통해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탄광사택촌>
태백체험공원 내에 위치한 탄광사택촌은 1950년부터 1970년대까지 국가기간산업의 원동력이 되었던 석탄을 채탄했던 광부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시대별 주거시설을 복원 및 재현하여 당시 사택촌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광들의 집단거주지였던 시대별 사택과 함께 배급소, 빨래터, 상점등 탄광촌의 모습을 재현하고 사택에 기거했던 사람들의 직접 사용했던 생활도구 및 가구류 등을 배치하여 당시의 삷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체험갱도>
1972년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1981년도에 완공한 수갱의 심도는 730미터이고 권양기는 1,250마력의 힘으로 운전되었다. 갱도의 벽과 레일, 침목은 사용하던 시설 그대로 보존하였고 갱내수 배수로는 새로 정비하였고 인차 및 광차를 재현하였다. 또한 우리 현장학습관은 국내에서 실지 사용하던 갱도를 그대로 복원하여 입갱하고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이용안내
이용시간 : 09:00~18:00(연중무휴)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이 가능합니다.)
◈ 관람시 소요시간 : 40분
◈ 관람요금표
구 분 |
어른 |
청소년 ・ 군인 |
어린이 |
비 고 |
개 인 |
1,000원 |
700원 |
500원 |
|
단 체 |
700원 |
500원 |
300원 |
30인이상 |
◈ 교통안내
▷ 승용차
수도권 |
중부고속(호법IC)→영동고속(남원주IC)→중앙고속(제천IC)→영월→태백 |
영남권 |
경부고속(금호분기점)→중앙고속(영주IC)→봉화→태백 |
호남권 |
88고속→금호분기점→중앙고속(영주IC)→봉화→태백 |
충청/전북권 |
대전→충주→제천→영월→태백 |
▷ 시외버스
출발 |
첫차 |
막차 |
소요시간 |
횟수 |
동서울 |
06:10 |
18:30 |
4시간30분 |
23회 |
북대구 |
07:00 |
22:15 |
4시간40분 |
12회 |
원주 |
07:00 |
20:30 |
3시간30분 |
25회 |
강릉 |
07:40 |
19:50 |
2시간30분 |
27회 |
▷ 열차
출발 |
첫차 |
막차 |
소요시간 |
횟수 |
청량리 |
08:00 |
22:00 |
4시간30분 |
6회 |
동대구 |
05:40 |
15:35 |
4시간40분 |
2회 |
부산 |
09:10 |
- |
6시간40분 |
1회 |
강릉 |
04:00 |
22:00 |
2시간 |
11회 |
◈ 문의처
현장학습관 : 550-2718, 554-0266
탄광사택촌 : 550-2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