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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아주시는 평신도(1973.2019.6.2.평신도주일)
창18:22-33
할렐루야
우리 감리교에서는 매년 6월 첫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킵니다. 평신도 주일이란 우리 감리교에서만 지키는 특별한 주일입니다. 우리 감리교에서는 일찍이 교회에서의 평신도 사역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1979년 총회에서 6월 첫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키기로 결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평신도주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979년 3월 감리교 총회의 결의에 따라 매년 6월 첫 주를 평신도 주일로 정하고 금년 41회 평신도 주일을 지키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 해 52주 주일 모두가 성도들이 주님의 전에 모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는 성일임에도 특별히 6월 첫째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킴은 평신도의 사명과 역할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진정한 감리교회와 착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세워나가기 위해서입니다. 평신도 주일을 성수하여 한 주간 동안 경건생활을 유지하고 삶의 변화를 통해 교회 성장의 동력이 되고, 시대적 소명에 책임을 감당하여 선교의 지경을 넓히고, 감리교회 성도들의 신앙 품격을 높이는데 평신도주일을 지키는 의미가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사회에 어둠이 짙어졌을 때 존 웨슬리 목사님은 평신도들이 세 가지를 실천하며 은혜 받는 평신도들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첫째는 찬양꾼입니다. 예배드릴 때 ‘찬양은 2마일, 설교는 1마일을 하라’고 강조합니다. 찬양에 은혜를 받아 뜻을 음미하며 마음을 다하여 열창을 해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꾼입니다. ‘통성기도보다 더 좋은 기도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통성기도에 견줄만한 다른 은혜의 방편은 없다’ 라며 웨슬리는 가는 곳곳마다 기도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또한 새벽기도를 강조했습니다.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는 순수한 감리교회의 전통입니다.
셋째로 간증 전도꾼입니다. 웨슬리는 집회할 때마다 간증을 하게 했는데 은혜 받은 성도들이 너도나도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말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당연히 전도가 되어 수많은 영혼들이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평신도주일의 의미를 되새겨 찬양꾼, 기도꾼, 간증 전도꾼이 됩시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꾼을 두 종류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사회의 직업을 갖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일만을 전담하는 전문신도이며, 둘째는, 일반 사회생활 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얻으면서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평신도입니다.
전문신도는 주로 교역자를 의미하는 것이고, 평신도는 일반교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신도는 마치 수레의 양쪽 바퀴와도 같아서 서로 협력과 보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만일 서로가 협력하지 못하면 그 수레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멈추고 맙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믿음이 향상되고 교회가 성장하는 목적에 대한 인식과 협력에 대한 충성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목회자 혼자만이 열심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들의 협력과 봉사와 충성이 있을 때 교회는 성장하고 부흥되는 것입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감리교 평신도가 예수님의 제자로써, 충성된 청지기로써 그리고 진정한 감리교인으로써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고 있느냐’를 재조명함으로써 교회의 성장과 성숙에 기여하도록 하며 나아가 섬김과 나눔을 통하여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평신도 주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평신도 주일은 교회에서 평신도가 자신의 사명을 재인식하고 결단을 새롭게 하는 계기인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 교회와 교역자, 인간사회의 피조물 세계의 관계성을 평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정립하는 의미 있는 한 주간입니다. 그래서 특별헌금을 해서 지방적으로 특별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에겐가 소중하게 아주 중요하게 쓰임 받는 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입니다.예로써 청와대의 대통령이 비서로 오라고 한다든지 장관으로 오라는 통지가 오면 그 사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너무도 좋아서 온 동네에 잔치도 하고 야단법석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43:1절‘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온 천하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 받고 있는데 이 사실도 가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또 기억하고 있다고 하여도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죄악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 것처럼 내가 가진 나의 재능, 나의 시간, 나의 재물,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쓰신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감리교회는 평신도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는 교단입니다. 본래 평신도란 헬라어로 ‘라이코스’라고 하는데 ‘백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즉, ‘성도’, ‘평신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인 평신도들을 부르십니다. 쓰시려고, 사용하시려고 계획하십니다. ‘라이코스’라는 말은 헬라시대의 전 시민을 가리킨 말이었으나 초대교회에서는 이방인과 대조가 되는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 (행4:10)을 가리켰고, 나중에는 신령한 이스라엘인 지상교회를 가리켰고, (행15:14). 그러다가 3세기 중엽부터 가톨릭이 제도화 되어감에 따라 교직을 가진 성직자의 위치가 강화되면서 그 당시 카르타고 감독이었던 씨프리안(Cyprian)이 비로소 ‘평신도’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감리교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단입니다. 웨슬리는 어느 신학자나 목회자보다 평신도에게 희망을 두었습니다. 평신도를 훈련시켜 말씀을 전도 사역을 감당케 했습니다.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복음만 전해진다면 말입니다. 웨슬리의 신앙과 신학은 두가지로 말 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입각한 뜨거운 성령 체험으로 이루어지는 개인성화와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돌보는 삶을 강조하는 사회성화입니다. 이 두가지는 두손과 같이 중요합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중요합니다. 하나만 있으면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웨슬리의 후예인 우리들은 개인성화를 위한 열심 있는 신앙생활과 사회성화를 위한 이웃 사랑에 열정을 다하는 웨슬리의 후예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감리교회는 이러한 웨슬리의 신앙의 토대 위에서 뜨거운 가슴과 행동하는 신앙인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김구, 이승만, 주시경, 남궁억, 이준, 이회영, 이동휘, 이동녕, 우덕순, 이재명, 윤치호, 조병옥, 정일형, 문창모 등 기라성 같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감리교 평신도들 가운데서 배출되었습니다.
또 감리교회는 여성들의 권리와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장한 교회로서 독립운동의 햇불이 된 유관순 열사, 샘골 예배당에서 상록수 운동을 전개한 최용신, YWCA 여성운동의 대부인 박마리아, 신 여성교육 운동을 뿌리내리게 한 이화여자대학 총장 김활 란, 중앙대학을 설립한 임영신 총장과 숙명여자대학의 임숙제 총장, 만주에까지 가서 농촌계몽운동을 펼치고 최용신과 같은 여성지도자를 길러낸 황애덕,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어 의료봉사를 시작한 박에스더 등 일제의 암흑시대에 이곳저곳 에서 등불을 켜들고 서 있었던 수많은 여성들이 한국 감리교의 여성들이었습니다. 많은 크리스챤 거장들이 많이 사회역군으로 나타났습니다. 평신도주일을 맞으면서 평신도들이 일어나서 사회와, 직장, 민족을 복음화시키는 도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99%이상의 평신도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교회를 알리는 일에 있어서 평신도는 1%미만의 성직자보다도 99%의 평신도들의 역량이 더 크고 중요다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 되어 맡겨진 역할을 다할 때 교회의 존재가 분명히 들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런 평신도를 찾습니다. 여기에 합당한 부름에 응답하셔서 우리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데 일익을 감당할 수기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에서 찾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평신도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꼭필요한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뻔 한 사람입니다. 거미같이 남의 생명을 남의 것을 도적질해서 먹고사는 사람, 개미같이 열심히 일하지만 남에게 안주고 자기만 먹고사는 사람, 자기도 유익하고 남도 유익하게 하는 꿀벌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꼭 필요한 사람, 우리교회에서 꼭 필요한 평신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이 찾아주시는 평신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하나님이 찾으시는 평신도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평신도는 오늘 본문에 보면 ‘의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성을 멸하시고자 할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의인 50명만 있으면 멸하지 말라고 간청을 합니다. 다시 45명, 40명 10명까지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성은 의인 10명이 없었기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이 필요합니다. 의인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죄악된 100사람보다도 의인 1명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의인은 어두운 밤에 등불과 같이 빛나는 존재입니다. 의인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씨앗입니다. 롬3:10절‘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롬5:9절‘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했습니다.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믿고 있는 자입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자기의 뜻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정직하고 충성된자입니다. 이 의인을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를 찾고 있습니다. 행13:22절‘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이 망령되이 행하므로 버리고 두 번째 왕을 세울때에 이새라는 사람에게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 다윗이 하나님마음에 합한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자를 찾고 있습니다.
‘뛰어난 사람을 찾고’있습니다. 나다나엘 처럼 앞에 ‘참’자가 붙여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요1:47절‘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해서‘참’자를 붙여줄만한 사람을 찾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여러분만큼은 ‘참’자를 붙여줄 사람이라고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백부장을 뛰어난 믿음을 가진자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마8:10절‘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해서 백부장은 이방나라 장교인데도 뛰어난 믿음을 가진자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인처럼 큰 믿음가진자를 찾고 있습니다. 마15:28절‘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주님은 이렇게 뛰어난 믿음있는 자를 찾고 있는데 오늘 평신도 주일을 보내면서 여러분이 뛰어난 믿음과 신앙인이 되셔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평신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세례받은 자를 찾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15번째의 아들로 태어나서 성경을 보고 기도하고 전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생활은 몽땅 실패했습니다. 그는모든 것을 다 얻었어도 성령세례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한자가 되었지만 성령을 사모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어느날 로마서 강해를 듣다가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을 했고 세계를 상대로 복음을 전하며 감리교를 창설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왕 때에 중대한 위기속에서 기도하다가 악이 제하여지고 죄가 사하여지는 불세례를 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전도의 불을 받았습니다.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안하겠다고 했는데 그 심중이 견딜 수 없이 중심에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불세례받으면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못견딥니다. 사도바울은 기적의 불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가는곳곳마다 기적이 일어나는데 손수건만 얹어도 병이 낳아버렸습니다. 오순절에 뜨거운 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찬송하고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세례를 받으면 어떤 환경속에서도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무디라는 사람은 열마디 말하면 일곱마디 실수하던 사람이었다라고 합니다. 국민학교 2학년 때에 중퇴한 불행한 사람이지만 성경대로 살았습니다. 하루는 산에가서 기도하다가 성령불세례를 받아서 목사도 전도사도 신학교를 나온 사람도 아니지만 100만명을 예수믿게 한 엄청난 사람이되었습니다. 빌리그리함 목사님은 교회는 다녀도 못된일을 하는 문제의 청년이었지만 잭슨이란 목사가 부흥회하는데 참여했다가 성령세례받고는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시대시대마다 사용하시는 사람은 성령세례받은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41:10절‘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뛰어난 사람, 성령세레받은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상주감리교회에서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는 사람중의 사람다운 사람을 찾습니다. 상주교회에서는 평신도중에서도 이런 사람이 꼭 필요하고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여기에 합당한 성도가 되셨으면 합니다. 상주교회에서는 사람중의 사람, 평신도중의 평신도를 찾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신용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상주교회가 부흥되고 성장되는데 꼭 필요한 것은 신용을 잘지키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상주감리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신용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기자신은 물론이지만 작은 상주안에서 교회의 이미지도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남보다 노력하는 사람인 무서운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지식이나 기술이나 사업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발전이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인정받고 쓰임을 받으려면 실력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안 알아준다고 해야 실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실력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또한 충성된 사람을 찾습니다. 무슨일이건 교회에서 맡겨주시면 아멘하고 순종하며 충성할 수 있는자를 찾고 있습니다. 과감하게 자기개혁을 하고 잘못된 일을 지적받으면 당장 고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있고 발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지적해주면 자기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없기에 그런 사람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불행중에서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갖는 사람을 찾습니다. 일곱번 넘어져도 오뚜기 같이 일어설 수 있는 자를 찾습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린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날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실패를 거듭하기에 산속에 들어가서 앉아 있었는데 거미가 나타나서 줄을 치더라는 것입니다. 거미줄을 여섯 번이나 끊어도 거미줄을 또 치는 것을 보고는 나는 거미만도 못한 사람이었구나 하고 용기를 내서 성공했다고 합니다.
상주교회의 평신도중에 남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불행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하기 힘든 사람일지라도 나를 구속하시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주신 주님을 생각하면 백번천번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망가운데 빠진이를 위로하고 용기를 복돋아주는 격려자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사는 사람을 찾습니다.
목숨걸고 기도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최대무기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바꾸어주십니다. 불행한 모든 것들이 바꾸어집니다. 이사야는 기도하다가 심령이 변화되고 솔로몬은 기도하다가 두뇌가 변화되고 히스기야왕은 기도하다가 체질이 변화되어 등창암으로 죽을자리에서 살아나고 한나는 기도하다가 생리적 기능이 변화되어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상주교회 성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남의 영혼에 관심을 갖고 그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을 쓰는 자를 찾습니다. 평신도 주일에 상주감리교회 평신도 여러분 교회에는 지금 이런 일꾼이 필요하고 이런 일꾼들을 찾는데 여러분이 이런 일에 쓰임받는 평신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적극적인 사고생각을 가진 평신도를 찾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남들은 다 성공하는데 우리는 왜 실패합니까? 다른교회는 다 부흥되는데 상주감리교회는 왜 부흥이 되지 못합니까? 안된다고 낙망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교회의 부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평신도가 되시고 상주감리교회도 부흥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생각으로 영혼구원 하시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는 변화된 평신도를 찾습니다. 사람들은 무수히 변하고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은헤받고 변화되어서 기뻐뛰는데 항상 제자리 걸음마를 걷고 있는 사람은 후퇴하는 것입니다. 나중된자가 먼저된다는 말이 실감나게 들리는 것입니다. 나는 변화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만 변화기를 바라기에 그 사람에게는 발전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은혜받고 내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가 되면 다른것도 변화됩니다.
이제는 제자리 걸음마에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할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하시고도 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변화되고 사람이 보기에도 변화된 모습으로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평신도와 상주감리교회에서 찾으시는 평신도를 말씀 드렸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찾고 교회에서 찾는 평신도가 되셔서 그 위치와 역할을 잘 감당해주시므로 상주감리교회가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3.성경에 나타난 평신도로서 큰 일꾼으로 쓰임받은 사람들입니다.
평신도로서 교회에서 쓰임받는다는 것은 귀중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되 내 몸처럼 사랑하고 아끼고 돌볼줄 알아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찾는 일꾼들이 되셔서 어떤 일을 하면 좋겠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일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뵈뵈와 같은 평신도가 되셨으면 합니다. 롬16:1-2절에 뵈뵈는 겐그리아 교회의 여집사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뵈뵈를 소개할 때에 롬16:1-2절‘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라고 소개를 합니다. 바울의 마음에 드는 일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인정받는 일꾼이었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의 일꾼들은 목회자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일꾼을 찾습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은 가난한자들을 돕고 교회안에서 초대교회 때에는 식사를 나누는 일에 몸소 실천한 여인이고, 병든자들을 돌아보고 과부의 마음을 달래두고 약한자에게 외롭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는 일꾼입니다. 이런 평신도로서의 귀중한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뵈뵈는 사도의 보호자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목회자의 바람막이가 된 후견인입니다. 뵈뵈는 상당한 재산도 있었는데 바울이 복음 전하다가 지치면 용기를 주고 보호해주는 영적보배였습니다. 목회자의 배후에서 끊임없이 기도로 후원하고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앞장을 섰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한 여인입니다. 뵈뵈와 같이 목회자의 자랑거리가 되는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바나바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람들을 치켜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헌신과 희생의 사람입니다. 자신을 팔아서 교회바치기도 했습니다. 인정받고 신뢰받는 사람입니다. 남을 신뢰할줄 아는 자입니다. 바나바는 주의 종들에게 순종을 잘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목회사역을 잘 도와서 일을 하고 사람들의 형편을 이해하고 믿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을 치켜세우는 일에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안드레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안드레는 말없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요1:42절에 형 베드로를 전도하고. 요6:1-14절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 때에 어린아이를 소개하고, 요12:20-22절에 헬라인도 전도했습니다. 안드레는 숨은 전도일꾼입니다. 안드레와 전도하여 온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나보다도 더 크게 쓰임받는 다는 것을 알고 전도해야 합니다. 이 전도하는 일에 우리가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있습니다. 평신도로서 교회를 가장 잘 섬긴 인물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자기몸을 내어줄 정도로 목회자를 돕는 일꾼이었습니다. 아볼로를 가르칠 수 있는 인물이지만 겸손했습니다. 교회는 목사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식이나 물질이나 사회적인 명성에서 그러나 겸손하지 못하면 교회의 일꾼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돈버는데만 신경쓴 것이 아니라 주신 재물을 가지고 주의 종을 어떻게 도울까라는 것을 생각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부부와 같은 부부가 우리교회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평신도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찾으시는 평신도 입니다. 우리는 이제 뵈뵈와 같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이, 바나바와 같이 평신도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항상 목회자 입장에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보호자가 되어 주셔서 목회자가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입니다. 동역자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의 방주라는 큰 배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배가 항해할 때 키를 잡고 있는 사람만 움직인다고 배가 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에서 땀흘려 노젖는 사람이 있어야 배는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승객이 아니라 선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승객은 조그만한 불편한 점만 있어도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선원은 그 모든 요구를 묵묵히 감당합니다. 여러분은 일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목회자와 함께 하는 동역자들이 되셔서 훌륭한 웨슬리의 후예들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회를 섬기는 평신도 선교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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