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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via라는 이름이 지어진 내력에 관한 글입니다. 번역이 좀 안맞더라도 앞뒤 문귀 대략 맞추어서 읽어주시길...
In the early 19th Century gardening was still essentially a branch of collecting, of acquiring rare and spectacular plants, mainly for the pleasure of possessing them. There was huge interest in the new plants being imported into
19세기 초반 원예는 희귀하고 구경꺼리가 될만한 식물을 모으고 소유하는데 치중하였고, 전세계로부터 영국으로 새로운 식물을 들여오는게 커다란 관심이었다. 당시 영국에는 이러한 관심을 충족시켜 줄 그림식물잡지사가 10개나 되어 새로운 식물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이거나 발표할려는 그들끼리의 경쟁은 아주 치열했다.
Prominent among these magazines were Curtis's Botanical Magazine (CBM) and Edward's Botanical Register (EBR). Edwards had been trained by Curtis and was CBM's chief artist at the time he left to start up his own publication. So Curtis had good reason to want to pip EBR to the post on any new discovery.
이들 잡지중에서 커티스의 식물잡지사(CBM)와 에드워드의 식물등록사(EBR) 등이 두드러졌다. Edwards는 Curtis에게 교육을 받았고 자기 출판사를 하기위해 떠날 당시 CBM의 수석아티스트였다. 그래서 Cutis는 어떤 새로운 발견에 대해서 EBR에게서 뺏을려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William Hooker had become the Editor of CBM by 1828. He was a well-established botanist, later to be knighted for his services as Director of Kew Gardens. John Lindley, a younger man, was an up-and-coming botanist and Assistant Secretary to the Horticultural Society. He wrote for EBR and was later to become Editor. Both men were always on the lookout for new plants to publish and both were alerted later that year to a new plant which had recently flowered at Syon House, just across the Thames from
William Hooker는 1828년에CBM의 편집자가 되었다. 그는 중견의 식물학자였고, 나중에 Kew정원의 책임자로 일하도록 작위를 받았다. John Lindley는 젊고 진취적인 식물학자였고 원예학회의 서기관보였다. 그는 EBR에 기고를 했고 후에 편집자가 되었다. 그 둘은 늘상 책으로 펴낼 새로운 식물을 찾으러 다녔고, 그해 늦게 Kew에서 Thames 바로 건너편에 있는 Syon House에 꽃을 피운 새로운 식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By a curious coincidence two English botanists, Lindley and Hooker, separately published on the same day in October 1828, a new genus based on the same plant. Lindley named the new genus Clivia and Hooker called it Imantophyllum" The plant in question was an introduction from the
이상하리만큼 우연의 일치로 Lindley 와 Hooker, 두 영국 식물학자는 1828년 10월 똑 같은 날 동일 식물에 대한 새로운 품종에 관하여 각각 출간했는데, Lindley는 clivia로, Hooker는 Imantophyllum으로 이름지었다. 의문의 이 식물은 Bowie 에 의해서 동Cape에서 소개되었고, Kew의 온실과 Northumberland의 공작부인 저택인 Syon House 에서 자라났다. Lindley는 그 식물을 Clivia Nobilis라 이름 지었다. Lindley는 그것을 “Kew에서 은밀히 얻어온”식물이라고 적고있다.
Lindley wrote: "We have named this genus in compliment to her grace the Duchess of Northumberland, to whom we are greatly indebted for an opportunity of publishing it. Such a compliment has long been due to the noble family of Clive, and we are proud in having the honour of being the first to pay it."
Lindley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는 출판의 기회를 갖게 해 준 Northumberland의 공작부인의 호의에 감사의 보답으로 이 품종의 이름을 지었다. 그러한 경의의 표시는 Clive귀족가문으로 인해 오래 지속되었고 맨 먼저 그에 보답한 영광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긴다”
We can understand the dedication to Lady Clive, but why the reference to "the noble family of Clive" ? Well, it seems that Lady Clive was born into a plant-loving family. Her father, Edward Clive, First Earl of Powis (1754-1839) was a son of Robert Clive (Clive of India). He grew rare exotic plants and A was remarkable for his physical vigour, which he retained to an advanced age, digging in his garden in his shirtsleeves at six-o-clock in the morning when in his 80 th year. A blue blood with green fingers, as it were!
Lady Clive는 식물애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Edward Clive, First Earl of Powis (1754-1839)는 Robert Clive (Clive of India)의 아들이었다. 그는 귀한 이국적 식물들을 키웠고, 혈기 왕성했으며, 나이를 먹어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나이가 80이 되어서도 아침 6에 셔츠 차림으로 정원의 흙을 뒤집는, 말하자면 생생한 체력을 유지하였다.
Her mother, Lady Henrietta Clive (1758-1830) discovered the plant Caralluma umbellata in c .1800, while in
그녀의 어머니인 Henrietta Cliv(1758-1830)부인은 남편과 인도의 Mysore에 있을 동안 Caralluma umbellata를 발견했다. 그년의 처녀적 이름은 Herbert였으며, 아마도 그녀는 구근, 특히 amaryllid에 전문가이고 훌류ㅇ한 식물학자인 William Herbert (1778-1847)목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의 이름은 구근식물에 대한 공헌한 업적으로 국제구근학회에서 수상하는 Herbert Medal로 기념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How to Grow Clivia"의 저자인 Kirstenbosch의 Graham Duncan이 최근 이 상의 수상자였다. 그의 명성으로 국제구근학회의 학회지가 "Herbertia"로 지어졌다.
The good Reverend sounds like a typical member of one of our Clivia Clubs! Crossbreeding gave him an endless source of interest and amusement , and A he thought long and hard about all aspects of the plant he wanted to create, its brilliancy of colour, its perfume, hardiness and profusion of blossom. His ideas sparked off the explosion of crossbreeding during the 1830's and 1840' s. Herbert could well have been instrumental in the acquisition of the Clivia nobilis at Syon House.
Now what about the name Imantophyllum aitonii chosen by Hooker? Imantophyllum means "strap or thong-like leaves". So far so good, but not as attractive a name as Clivia , is it?
In using the name aitonii , Hooker was being faithful to the wishes of James Bowie . Hooker records that Mr. Bowie mentioned to me a Cyrtanthus-like plant which he had found there (the
그럼 Hooker가 선택한 Imantophyllum aitonii는 “잎사귀처럼 생긴 가죽 끈 또는 띠”라는 뜻으로 아무래도 “Clivia”라는 이름만큼은 매력이진 않다.
aitonii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Hooker가 James Bowie의 바램에 따른 것으로 Hooker는 Mr. Bowie씨가 자기에게 Cape에서 발견해서 수입한 키르탄서스 같은 식물이 영국에서 꽃을 피우면 자신의 후원자인 Mr. Aiton의 이름을 따서 종(species)이름을 붙이고자 한다고 적고있다. 그 당시는 식물이름을 지을 때 수집가가 자기 후원자를 예우하는 뜻으로 그 이름을 붙이는게 일반적 관례였다.
William T. Aiton (1766-1849) was at Kew Botanical Gardens for 52 years, and became superintendent , succeeding his father who had been Royal Gardener before him. He had been the one to employ
윌리엄 T. Aiton (1766-1849)은 Kew 식물원에서 52 년 동안 있었고, 그리고 왕립식물원에 근무했던 아버지를 이어 식물원 관리자가 되었다. 그는 Bowie를 고용하여 Kew식물원을 위한 식물을 수집하도록 훈련을 시켰다. 1804년 그는 나중에 왕립원예학회가 된 “원예발전 for the improvement of horticulture”의 일곱 창립자 중 한명이 되었다. 일곱명중 다섯명은 새로 발견된 종에 그들 이름을 붙이는 영광을 안았다.
So there were several good reasons why Hooker should have used Aiton's name. However he had a problem; a genus, Aitonia , had already been named for Aiton senior, so that is why Hooker used aitonii as the species name, after the family name he chose of Imantophyllum .
왜 Hooker가 Aiton의 이름을 사용했어야만 했는지하는 마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Aitonia라는 속(genus)명은 이미 Aiton senior가 사용하고 있었고, 따라서 Hooker는 그가 선택한 Imantophyllum 과(family)명에 aitonii라는 종(species)명을 사용했다.
Initially, the two names Imantophyllum and Clivia ranked equally, but in due course Clivia was given precedence and Hooker's name fell away. Hence we are today the Clivia Society and not the Imantophyllum Society B or the Aitonii Club!! Had the plant flowered at
처음에는 Imantophyllum과 Clivia 두 이름이 함께 쓰였지만, 어느 때부턴가 Clivia가 더 많이 불려지고, Hooker의 이름은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Clivia학회라고하지 Imantophyllum학회 또는 Aitonii클럽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Had the plant at Syon House been "surreptitiously acquired from
JOHN VAN DER LINDE
(Clivia Society Newsletter #4 of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