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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밤거리
나짱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다고, 아쉬워하는 아내를 달래며 하노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땅을 박차 올라 다시 북으로, 북으로 향하는 비행기. 이제 우리는 곧 있으면 베트남의 수도, 호치민이 잠들어 있는 하노이에 도착한다.
기내에서 나눠주는 음료수를 마시고 1시간쯤 갔을까? 방송에서는 이내 호치민 도착을 알렸고 사람들은 일어서서 짐을 챙기며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옷이 가관이다. 나짱에서 탔을 때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반바지에 나시를 입었던 사람들이, 우리가 서울에서 출발할 때나 입었던 그런 두꺼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하노이가 그렇게 추울라고? 아무리 베트남이 길다고 하지만 하노이 역시 중국 해남도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해 있는걸. 06년도 태국 여행에서 들었던 영상 5도에 얼어 죽었다는 태국인과 마찬가지로, 워낙 따뜻한 남국에 사는 사람들이어서 약간의 추위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려니.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접한 하노이의 공기는 매우 찼다. 그야말로 한반도의 봄 기온과 비슷했다. 이러니 긴 소매, 긴 바지는 기본이요, 종종 파카를 입은 사람들이 보일 수밖에. 호치민, 나짱과는 전혀 다른 하노이의 날씨. 어쩌면 베트남 남북의 차이와 다른 인식은 이와 같은 기후의 차이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으레 추운 지역의 사람들은 더운 지역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편견을, 더운 지역의 사람들은 추운 지역 사람들이 딱딱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우리는 하노이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까지 갔다. 더 이상 호치민 공항에서와 같은 실수는 없었다. 우리는 온갖 삐끼들을 물리치고 택시기사 정복을 입은 기사의 택시에 올라탔으며 택시비를 흥정하는 대신에 미터기를 꺾자고 이야기했다.
호치민과 달리 하노이 공항은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물론 택시 기사가 지름길을 두고 뱅 둘러 가는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창밖 풍경이 점점 화려하고 번잡해지는 것을 보아 우리가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가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비록 어두웠지만 하노이의 거리 풍경은 호치민의 그것과 달리 정돈된 모습이었다. 좀 더 오랫동안 공산주의 치하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제약받았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가옥들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사람들 역시 호치민처럼 활기차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움츠러들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라는 나의 편견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윽고 도착한 호텔. 그 겉모습은 호치민에서 묶었던 호텔처럼 화려했지만 정작 우리가 묶는 방은 단출하기 짝이 없었다. 여행사가 스케줄을 짜면서 나짱의 리조트 스위트룸에서 출혈이 심했기에 그만큼 호치민 호텔 급을 낮췄는가도 싶었지만,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았던 호치민과 달리 하노이는 계속해서 공산주의 치하였던 터, 그만큼 검소함이 사람들의 생활 속에 배겨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다.
두 유 워너 붐붐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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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의 화려함 화려함에 가려진 하노이의 이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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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짐을 풀자마자 우리가 향한 곳은 호텔 마사지숍이었다. 아내가 워낙 피곤해 했기에 전신마사지는 차치하더라도 발마사지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시간도 너무 늦었고 예약도 안 된 터라 발마사지 1명밖에 안 된다는 마사지숍 직원. 별 수 있는가. 아내만 20달러에 발마사지를 받기로 했고 나는 방으로 올라왔다.
홀로 주섬주섬 가방을 풀다가 문득 집에다가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호텔 로비로 향했다. 호치민과 달리 나짱에서는 제대로 작동하는 공중전화를 찾지 못해 전화를 한 번도 못 드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했다고 한들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처럼 모두 핸드폰을 들고 있지는 못 할 텐데 왜 이리 공중전화 서비스가 엉망인지.
로비에서는 공중전화를 찾을 수 없는 터라 호텔에서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낯선 베트남 사내가 내게로 걸어와 말을 걸기 시작한다. 물론 짧은 영어.
처음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자 그 사내는 박지성을 안다느니, 한국축구가 매우 훌륭하다느니 하면서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내가 공중전화를 찾고 있다고 하자 공중전화가 있는 플라자까지 태워주겠다며 자신의 오토바이 뒤에 타라고까지 이야기하는 친절한 그 사내. 너무도 갑작스럽고 생뚱맞은 호의에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의 정체가 뭐지?
그의 호의에 내가 주저하고 있자 갑자기 그가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은근히 묻는다. "두 유 워너 마사?" 잉? 마사지? 호텔보다는 길거리에서 받는 마사지가 훨씬 싸고 좋을 거란 생각에 얼마냐고 되물었다. 20달러에 전신마사지가 다 된다고 대답하는 사내. 호텔에서 20달러에 발마사지만 받고 있는 아내를 떠올리니 분명 좋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그 사내가 이번에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묻는다.
"두 유 워너 붐붐마사?"
순간 난 멍할 수밖에 없었다. 붐붐마사? 물론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지만 그 뜻을 짐작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붐붐마사'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 사내는 예의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짧은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한다. fuck, suck…. 역시 그것은 우리나라의 퇴폐 안마시술소와 같은 성매매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이 포함해서 50달러라며 내 손을 잡아끄는 그 사내.
베트남 하노이에 대한 환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미 자본화 되어가고 있는 하노이에 매춘이 없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막상 바로 내 눈 앞에서 매춘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내를 보고 있자니 착잡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사회주의의 이상을 이야기하고, 호치민을 모시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 아니던가. 차라리 자본주의의 수혜를 받았던 호치민이었으면 그 충격이 덜 했을 것을.
사내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많은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에 와서 붐붐마사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의 한류를 운운함에는 약간의 제국주의적인 감수성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막무가내로 나의 옷깃을 당기기 시작했지만 지금 내가 신혼여행 중이라고 밝혔더니 그제야 아쉽다며 음흉한 웃음과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아직까지도 충격을 수습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놔둔 채. 역시 하노이에 대한 나의 막연한 동경은 한낱 착각일 뿐이던가. 어쨌든 그 뒤로 한국에 와서도 '붐붐'은 술자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단어가 되었다.
호치민 보러 가는 길
나짱에서 하노이까지 오는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는지 우리는 늦은 시각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갑자기 쌀쌀해진 탓도 있었겠지만 따뜻한 이불 속을 벗어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치민을 보러가야 한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겨우겨우 기어 나온 나. 호텔 창밖으로 처음으로 마주친 하노이는 화창하고 청명했던 호치민, 나짱과 달리 우중충하고 음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날씨 때문이었겠지만 나의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 역시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우리가 향한 곳은 호치민의 묘소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하다가 호치민 묘소는 매일 오전만 개장하고 월요일에는 휴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그래도 호치민을 보겠다고 베트남까지 왔는데 정작 호치민의 모습을 놓쳐서야 되겠는가. 바쁜 마음에 택시를 잡아타고 향한 호치민 무덤. 다행히 하노이 거리는 호치민의 거리보다 덜 붐볐기에 우리는 늦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막상 무덤가에 도착하고 나서 벌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한데 호치민 무덤으로 들어가는 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바쁜 마음에 무덤 앞 잔디밭을 가로지르려 하니 옆에 서 있던 군인이 뭐라 소리를 지르며 제지했다. 그러고 보니 무덤가 곳곳에는 군인들이 깔려 있었다.
일요일 오전이어서 참배 온 사람들이 많은 것인가? 외국인 보다는 내국인이 더 많은 것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많은 듯 했다. 우리는 참배객 줄의 끝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헌화하기 위함인지 많은 사람들이 꽃을 팔고 있었고, 우리는 몇 블록이나 걸어서야 그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드디어 호치민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