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까?(2198.2023.7.2.맥추감사주일설교)
시50:22-2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금년도 6개월을 보낸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금년의 절반이 지나고 하반기가 시작이 됩니다. 해마다 7월 첫 주일은 모든 교회들이 맥추감사절로 지킵니다. 어느새 더위도 한고비가 되어서 절기상으로 하지가 지났고 이번 주 금요일은 소서입니다. 그리고 다음주 화요일은 초복입니다. 누군가 세월을 유수와 같다고도 하였고 쏜살같다고도 하였습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해마다 지나가는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맥추감사절을 지키라고 명하셨는가? 이 맥추감사절에 여러분이 지난 6개월을 감사하시고 앞으로의 삶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도록 복을 받아 누리시도록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생기의 바람이 불어서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듯이 여러분의 심령이 살아나는 역사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는 대개 4대 절기를 지킵니다.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지킵니다. 이 4대 절기가 모두 감사하는 절기이지만 특별히 부활절과 성탄절은 주님의 구속의 은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절기이며,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은 생활과 관련하여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23:19절‘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지 두 달 반 만에 신 광야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홍해의 기적을 몸소 체험하고 또 엘림에서의 기적 등등을 체험하면서 드디어 신 광야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한 신 광야는 말 그대로 광야입니다. 광야는 거칠고 황량하여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농사를 지을 형편도 안 되고 짐승들이 먹을 수 있는 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도 없습니다. 무엇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불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불평을 보면 대충 다음과 갔습니다.
배고파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 목말라 못살겠다. 마실 물을 달라고, 고기를 못 먹어서 영양실조가 되어 현기증이 일어난다. 고기를 달라고, 군것질을 하고 싶다 포도나 무화과 석류 같은 과실을 달라고, 길이 너무 험악하니 편한 길로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치 성질 나쁘고 버릇없는 아이들의 떼쓰는 것 갔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불평과 원망을 다 종합해 보면 한가지인데 ‘잘 먹고 편하게 살고 싶다’ 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어딘지도 모르고 이렇게 험한 길을 가야 한다면 그냥 애굽으로 되돌아가서 비록 종살이라도 배불리 먹으면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8:3절‘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인들 편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인들 고생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을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할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풀어서 저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어도 그때만 지나면 곧 잊어버리고 원망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만나를 내려 먹여주었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였고, 또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메추라기를 주어서 먹게 하셨습니다. 밤이면 불기둥으로 어둠을 밝혀주시고 또 추위를 몰아내 주셨습니다. 낮이면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을 가려 주셨고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와 같은 생활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절대순종해서 여러분의 삶이 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직무를 맡았던 ‘아삽’이 지은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에서 아삽은 감사의 효과에 대하여 짤막하고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미루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반성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사입니다. 반년동안 지내온 것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두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감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살려고 바둥바둥 힘써도 능력이 없어 힘들었는데 늘 감사하며 밝게 살았더니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만사가 풀리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감사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시50:23절‘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14-15절‘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공로를 생각하고 이웃이 곁에 있음을 생각하며 감사하면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감사를 통하여 풍성한 행복의 열매들이 맺히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광야에서 생활을 했지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몸소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이 일이 반복이 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나타나도 무감각해졌고 감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은혜와 똑같은 축복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하게 여겨지고, 나중에는 감사하는 마음조차 없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나온 과거와 비교해 볼 때 너무나 잘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시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감사를 ‘유카리스테오’ 라고 하는데 그 뜻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를 뜻합니다. 조금도 가식이나 부담이 없이 자원하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감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29:13절‘주께서 가라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도다’라고 지적 하셨습니다. 먼저 마음을 드리지 않으면 마음에 감사를 채우지 않으면 모든 행위는 거짓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 시점에서 내가 주님께 감사할 일이 몇 가지나 되나 감사를 헤아려 보셨습니까?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형편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신 감사는 쌓여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감사의 목록을 만들어 놓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입으로 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곧 찬양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준비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쏟아놓는 행위입니다. 롬10: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고, 히13:15에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넘치는 감사를 우리는 입으로 표현을 하여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소리가 항상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서 항상 입술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몸으로 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몸으로 하는 감사는 헌신과 봉사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는 여러분은 지금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으로 주님의 뜻을 순종하여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이 몸으로 하는 감사가 됩니다. 구약은 제사입니다. 신약적인 답은 예배입니다. 제사와 예배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왕하17:35절‘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금하셨는데 다른 표현으로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사는 제사의 대상을 섬기는 것이고, 경외하는 것이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경외하는 것이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드리는 공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예배입니다. 예배는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내가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알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휩싸여서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로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과 영생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어떻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조금만 낮추면 감사가 나옵니다. 마18:4절‘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니 천국이 오더라는 진리입니다. 마음의 천국을 원하십니까? 자기를 낮추어 보세요. 그러면 행복의 예수님이 들어오십니다. 기대치를 낮추면 낮출수록 감사하게 되고 더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눈높이를 낮추면 친구가 많고, 눈높이를 낮추면 존경을 받고, 감사가 넘쳐나고, 일치를 이루고, 평화가 임하고, 언제나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고. 사랑을 받고, 안전하고, 복을 받으며, 경제적이고, 장수하게 된다고 합니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감사가 나옵니다. 시116:12절‘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깨달은 자의 고백입니다. 롬8:28절‘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전후문맥을 보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 만들기 위해 온전케 하시려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조금만 더 은혜 받으면 감사하게 됩니다. 단6:10절에 다니엘이 왕의 금령을 어기고 계속하여 기도하고 감사한 것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믿고 감사할 일밖에는 없습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십시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조금만 더 낮추고,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조금만 더 은혜를 받고, 조금만 더 감사의 훈련을 해서 진실로 감사하는 신앙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제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을 기뻐하십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빌4:18절‘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사도 바울은 빌립보교우들이 보낸 선교헌금을 받고 그것이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질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잠3:9-10에‘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하였고, 신16:16에 보면 ‘빈손으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미래에 주실 것까지 포함해서 감사드리라 하셨으면서 물질을 드릴 때는 이미 주신것으로 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리한 물질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마6:21절에 ‘네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물질을 드리면 마음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숫자나 액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진심을 다하는 감사, 받은 것을 따라 드리는 정직한 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르게 감사를 드리는 것을 감사의 제사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을 깊이 생각해보면 감사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을 헤아려볼 때마다 감사가 저절로 쌓여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감사의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사드릴 때마다 놀라우신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드리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담대하게 제물로 드렸습니다. 아들을 드릴 수 있다면 못 드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년에 한 번 맞이하는 맥추감사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담대한 헌금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담대한 헌금입니까? 그건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평화가 있으려면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2.신앙생활에 감사를 잃어버리면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삽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요, 가장 큰 죄 일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잊고 살면 하나님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은 자는 하나님을 알고 믿었으나 ‘하나님을 등진 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잊은 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잊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것, 하나님을 외면한 자들에게는 벌주시는 것을 잊고 사는 자를 말합니다. 당연히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습니다.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멀리하고 선포되는 말씀에도 회의적입니다. 믿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지식, 자기 경험, 자기 판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보다 자기 만족, 자기 기쁨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22절의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라는 말씀은 만약 이 충고까지도 거절한다면 이제는 너희를 찢을 수밖에 없다는 하나님의 최종적 경고입니다. ‘찢는다’는 것은 육식동물들이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 진노의 맹렬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자기가 당하는 고난의 혹독함을 하나님께서 자기를 찢으셨다고 표현했습니다(욥16:9). 그러므로 ‘찢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벌하신다면 아무도 그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는 본문의 ‘생각하라’는 마음속에 깊이 새기라는 뜻입니다. ‘잊어버리다’란 알고 있었고 갖고 있었는데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머리에서 생각이 떠나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은 원래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알고 있던 자들로서 도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거나,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떠난 까닭은 관심이 다른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은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며 하나님께 불순종함은 물론이려니와 하나님의 능력을 잊은 자들이기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 믿음도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삶을 자기의 힘과 수단으로 살아가는 줄로 착각하고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기 때문에 내 속에 하나님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믿음을 잊어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다른 관심거리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며, 다른 사랑의 대상이 생겼기 때문이고 다른 신뢰의 대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과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생각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베푼 은혜가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아라’,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보살폈는지 생각해 보아라’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모든 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며 지혜의 근원이 되시고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신데 그 만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면 이처럼 불행한 사람은 또다시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결코 하나님을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다른 것과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면 기꺼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잠16:3절‘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인간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왔고,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하나님을 잊고 그 은혜를 망각하면 하나님의 괘씸죄에 걸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으리라’의 의미입니다. ‘찢으리니’란 맹수가 굶주린 상태에서 다른 짐승을 찢는 모습을 말합니다.
솔로몬 왕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말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망령되이 살아가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왕조를 찢으시니 솔로몬의 왕조가 남북으로 나누어져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영적 상태의 탈진은 말씀묵상, 기도, 찬송, 교회가 멀어졌습니다. 감사의 부재는 원망, 불평, 짜증, 이기적인 미움만 생깁니다. 사단의 지배는 나의 마음에서 기쁨, 감사, 소망, 평안함이 없어집니다. 진단 결과 위 항목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한시라도 빨리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우리 자신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통로는 막고 자신과 연결된 통로만을 열어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감사하는 자에게는 감히 침범치 못합니다. 우리 모두는 한결같은 감사 생활로써 사단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통로를 완전히 폐쇄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입니다. 시50:16-21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은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인정하지만 그의 생활은 자기 방식과 생각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자신에게 손해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들은 불의한 일을 만날 때 불의와 손잡고 어울리며, 형제를 헐뜯는 자들로서 세상에서 교회를 향한 비난의 빌미를 제공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의 행위를 다 아시면서도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은 이러한 기다림도 잊은 채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의 때가 있습니다. 이제 생각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인생을 멈추고 돌이켜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난 6개월동안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진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님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얼마나 가졌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영혼은 영원한 때에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때가 늦으면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지난 세월동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 왔는지, 아니면 자기 멋대로 살아 왔는지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때가 늦기 전에 지금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을 잊어버린 삶을 살아 왔다면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는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아도 재산을 탕진한 탕자가 뒤늦게 고향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집을 찾아갑니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자신을 내쫓지 않고 종의 모습으로라도 아버지 집에 있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 온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납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돌아오기까지 아버지는 끊임없이 기다리십니다. 혹시 하나님 아버지를 잊어버렸다면 다시 찾아야 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시50편의 앞부분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제물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의 짐승들이 다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시50:5절‘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명절에 자녀들을 보며 기뻐하는 부모님들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밝은 낯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즉 짐승의 제물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구실일 뿐 그 제물들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감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 감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감사는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 감사는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라는 말씀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자입니다. 시50:5에 보면 성도들은 제사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예배를 통해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예배가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림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예배의 핵심이 감사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과 기도와 예물 속에는 진정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예물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열심히 제사와 제물을 드렸지만 감사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제사를 항상 제물을 준비해서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감사가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귀신과 우상에게 제사 지내는 습관과 관념을 따라서 마치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궁핍할 것을 염려하듯이 잘못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려고 하는 것이지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우리에게 예물을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기르시며 소유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예배드리는 자에게 보여주실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감사의 제사만이 아니라 의롭게 사는 성도들에게 구원하심을 보여 주시리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예배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감사드리는 사람이 감사한 마음을 지닌 자답게 생활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이 세상은 죄로 어두워져서 옳은 길과 잘못된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매일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주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시50:14-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했습니다. 감사는 인생의 보약이요 영양제입니다. 감사는 신앙과 정비례하며 또 축복은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즉 감사하는 만큼 신앙도 성장하고 감사하는 만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감사는 고백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감사의 고백은 인간의 생활에서도 하나님과의 생활에서도 꼭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신앙인은 하나님께 기도로, 찬송으로, 말로, 물질로, 시간으로,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감사를 드리십시오. 진정한 감사는 산 제물을 바치는 것 즉 희생적으로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감사는 나를 희생하는 재물을 드릴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생명까지 드릴 수 있는 입체적인 제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재물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항상 가난하여 만족이 없지만, 재물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 자는 언제나 부유하면서 참 만족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시91:16절‘구원을 보이리라’, 출14:13절‘구원을 보라’ 이는 누구에게 향하는 말씀입니까? 감사하는 자들입니다. 어느 때입니까? 홍해, 곧 죄, 질병, 강자의 핍박, 전쟁, 가난 등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죄는 기억지 아니하시며, 하나님을 잊고 거역하는 악행 또한 잊지 아니하십니다. 이처럼 맥추감사절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사진을 찍으면 배경에 따라 사람이 다르게 느껴지듯이, 나의 삶의 배경을 감사로 하면 감사의 사람이, 불평으로 하면 불평의 사람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감사란 바로 그리스도임을 나타내는 표시인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내게 있는 것에서부터, 보잘 것 없는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뒷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 봅시다. 시50:23절‘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여기서 행위를 바르게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소유권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넘김으로써 세상의 온갖 잘못된 유혹과 죄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구원’, 즉 최종승리가 보장됩니다.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불행이 닥쳤을 때 오히려 더 뜨겁게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넘치는 감사로 말미암아 날마다 밝고 아름답게 변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맥추감사절로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아직도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를 잊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에게 행복한 삶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믿음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을 모든 환란에서 구해주십니다. 감사의 신앙이 열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깨닫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부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의 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