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투어 여행기] 퍼플섬(반월도 & 박지도)
이번 남도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 되는 오늘의 일정은 '신안 퍼플섬(Purple Island) 투어' 한 곳이면 마무리가 되니, 시간은 여유가 있고 마음조차 느긋한 게 느껴진다. 본시 느긋한 사고방식과 느릿한 동작이 몸에 밴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짐을 꾸려 지난밤 객고를 풀었던 W모텔을 나선다. 오전 9시 무렵이면 근로자들에게는 한창 일 할 시간이 되겠고, 과객이나 여행객에게는 다음의 행선지를 향하여 부지런히 본격적인 행보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그러나 아침 식사를 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전 9시가 다 돼가는데도 아직 영업을 개시하는 식당이 눈에 안 들어온다. 꼭두새벽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식당은 거개가 기사식당이나 해장국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아닌가. 어쩌다 눈에 띈 해장국집을 들어서니 삼사십 대로 여겨지는 얼굴이 다소 거뭇하고 감때사납게 생긴 사내가 홀 서빙을 하는 식당이다. 식당 주인 선 보러 온 게 아니고 아침 식사를 해결하려 들린 식당이니 음식 맛만 어지간하면 될 터이다.
전장 380m의 보행교와 반월도 전경
그러나 차린 음식은 맛을 무시한 게 역력하다. 욱여넣다시피 해치우고 오늘의 행선지 퍼플섬(반월도& 박지도)을 향하여 애마를 몰아댄다. 목포시에서 서북 방향의 2번 국도를 따라 압해대교를 넘어서면 목포시를 벗어나 신안군 압해도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압해대교를 넘어서자 생경한 입간판이 간간이 여행객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전장 925m의 보행교와 박지도 전경
2번 국도 변으로 이따금씩 대문짝만 한 파란색 바탕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거였다. 국내에서 필자가 생전 처음 만나는 화장실 안내 입간판이었으니 꽤나 신기한 거였다. 낯선 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나 과객들의 말 못 할 급한 사정을 손을 걷어붙이고 해결해 주려는 친절한 안내가 아닐 수 없다. 화장실 출입문을 자물쇠로 굳게 채워놓는 대부분의 처사에 비하면 '천사의 섬'이라는 말이 허투루 한 게 아닌 거였다.
압해도에서 서쪽 방향으로 급커브를 그리며 꼬리를 잇는 2번 국도를 좀 더 따르면 천사대교가 기다린다. 천사대교! 우리나라에서 건설된 교량 중 영종대교, 인천대교, 서해대교에 이어 4번째로 긴 전장 7224m의 해상교량이다. 천사대교를 건너가면 암태도가 , 암태도에서 다시 좌측 방향인 남쪽으로 뻗어있는 805번 지방도로를 따르면 다시 중앙대교를 건너 팔금도에, 내처 805번 지방도로를 따라 팔금도를 뒤로하는 신안 1도를 거푸 넘어서면 퍼플섬의 관문 격인 기좌도의 남단 해변가 안좌면 소곡리 두리 선착장에 득달하게 된다(11시 40분).
맞은 쪽 건너 반월도 전경
오늘의 목적지 퍼플섬(반월도& 박지도)을 보행교를 이용하여 원점회귀 행보를 즐길 수 있는 입장매표소가 있는 기좌도의 남단 해변가, 안좌면 소곡리 두리 선착장. 매표소(입장료 5000원) 도착하기 전에 미리 '퍼플샵'이란 간판의 기념품 가게를 들러 보라색 물품(손수건, 스카프, 모자 등) 1개쯤을 몸에 걸치면 입장료가 면제가 된다.
우리 일행은 보라색 손수건을 구매하여 목에 두르고 퍼플섬 원점회귀 여행을 즐길 셈이다. 소액에 불과하지만 물품을 구매하여 흐뭇하고 공짜 입장이라 더욱 즐거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인 거였다.
연보라색 버들마편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양회포장도로를 따르다 보면 누런 황금알 같은 여의주 한 개를 손아귀에 잔뜩 움켜쥔 연보라 색깔의 한 마리 용이 '여의주를 만지면 당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며 스킨십을 주문하고 있다. 그곳에서 좀 더 발걸음을 보태면 퍼플섬 매표소가 기다린다. 예상한 대로 목에 두른 연보라색 손수건이 입장권을 대신하는 거였다.
반월선착장
기좌도 두리매표소 쪽에서 반월도를 도보로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는 보행교가 매표소를 벗어난 여행객들을 기다린다. 바닷바람은 설렁설렁 부드럽게 불어오는데, 반월도(半月島)에 이르는 보행교 아래는 썰물로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낸 갯벌이 아닌가. 출렁출렁 파도가 남실거려야 제맛인 바다는 밤톨만 한 게 들만이 제구멍을 들락거리며 분주하다. 총길이 380m의 보라색깔 '퍼플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보행교를 다 건너가면 반월선착장이다.
반월 선착장에서 전동카트를 타고 반월도의 해변 일주도로를 즐기려면 전동카트 탑승장을 이용하면 되지만 우리 일행은 좌측의 해안 도로를 따라 반월도와 이웃한 박지도를 잇는 보행도 입구 쪽까지의 도보 답사를 즐길 셈이다.
해안도로 우측으로는 도로와 엇비슷한 폭의 보라색 산책로가 나 있는데, 사철 푸른 후피향나무를 이용한 가로수가 싱그럽다.
후피향나무 산책로
후피향나무! 사철푸른 잎은 타원형의 자그마한 주걱 모양이며, 두껍고 진한 초록빛이다. 여름 철이면 동전만 한 흰꽃이 처음으로 피고 차츰 연노란색으로 변한다. 가을이 되면 비로소 작은 구슬 크기의 빨간 열매가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알려준다. 후피향나무의 보라색 산책로 우측의 해발 210m의 어깨산 산기슭 일대에는 보랏빛 일색으로 꾸며진 퍼플잔디공원이 여행들의 눈길을 모은다.
퍼플잔디공원! 어깨산 산기슭 경사면의 너저분한 잔돌, 잡초 등을 걷어내고 버들마편초 꽃단지를 조성하고 좀작살나무 등을 식재한 뒤, 남겨진 넓은 경사면을 다시 친환경 인조잔디로 덮음으로서 퍼플잔디공원이 탄생한 것이다. 퍼플잔디공원 우측으로 반월도 토촌마을의 주택들의 지붕색도 온통 보라색이다. 반월도 일주도로 해안 쪽으로 'I PURPLE YOU'조형물이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반월도의 상징 조형물
BTS의 '뷔'가 만들어낸 말로 '일곱 빛깔 무지개의 마지막 색처럼 끝까지 사랑하자'는 의미라고. 후피향나무의 산책로는 감탕나무 산책로로 이어지고, 머지않아 반월도를 형상화한 조형물 앞으로 여행객은 자연스레 안내가 된다. 인공 조형물만 눈에 띄면 사족을 못 쓰는 세 자매들의 사진촬영을 고분고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빈번하다.
어느 틈에 박지도를 횡단할 수 있는 보행교 앞이다. 주변에는 어깨산 산기슭에 터전을 마련한 반월도 카페가 번듯하다. 때는 정오를 훌쩍 넘겨 오후 1시 무렵이다. 다들 출출한 모양이다. 주변에 있는 정자에서 배낭에 갈무리한 빵과 참외 등의 간식거리로 출출함을 해결한다.
건너 쪽이 박지도
우리들이 워낙 사진촬영에 허비한 시간이 많았는지라 우리 일행들보다 사뭇 늦게 도착한 단체 여행객들의 오가는 숫자가 꽤나 늘었다. 현재의 반월도에서 박지도 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915m의 보행교로 들어선다. 아직도 아쉽기만 한 남실거리는 바닷물이 눈에 어른어른거린다.
바닷바람이 좀 더 거세진 느낌이다. 여행 후에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연신 포즈를 취하며 사진촬영을 강제하는 세 자매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바닷바람을 탄다. 보행교 아래쪽의 갯바닥을 보니, 어느 틈에 밀물이 밀려오기 시작하는지 누런 흙탕물 같은 바닷물이 불어나기 시작하는 거였다.
박지리 배기마을 동구
915m의 퍼플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보행교를 다 건너가면 박지도(朴只島) 배기마을이다(13시 50분). 진흙 벌판 같은 갯벌에도 밀물이 시나브로 밀려들어 미흡하기는 하지만 풍광은 어지간히 진전이 된 느낌이다. 배기 마을의 동구이기도 한, 이곳 박지도 배기 마을과 바다 건너 기좌도의 두리 마을을 넘나드는 보행교의 들머리이기도 한 배기마을을 뒤로하고 전장 547m의 보행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밀물을 몰고 오는 바닷바람이 옷깃을 아금받게 파고든다. 밀물이 1시간쯤 일찍 행동에 나섰더라면 퍼플섬 여행의 즐거움이 좀 더 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이란 어느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여도 으레 남아 있기 마련 아닌가. 박지도와 기좌도의 소곡리 두리선착장 어름의 널찍한 주차장 사이를 잇는 보행교를 벗어나니 주차장에는 이미 관광버스와 자가용 차량들이 그들먹하다. 우리 일행이 도착할 무렵에는 거의 텅 비어있던 주차장이었는데 말이다 (14시 10분).
보행교 끄트머리가 두리주차장
퍼플섬 여행의 출발지인 기좌도 두리주차장으로 다시 되돌아옴으로써 퍼플섬 여행은 비로소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2박 3일의 남도(해남, 목포, 신안) 여행도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귀로의 여정이 되겠다. 3개의 섬(팔미도, 암태도, 압해도)을 차례로 지나고, 4개의 대교(신안 1교, 중앙대교, 천서대교, 압해대교)를 거푸 넘어서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거쳐서 우리 일행의 귀로의 중간기착지인 익산시 막내집으로! 고개너머 주막집의 아가씨가 그리워 달려가는 애리조나 카우보이의 마차처럼 달려갈 것이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더 묵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202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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