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목사와 메릴린 히키의 가계저주론의 신관, 기독론 및 구원론, 귀신신앙, 축사 기도문, 운명론의 문제점 등을 살펴 볼 때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위배됨이 현저하고 사이비성이 농후하므로 이들의 책을 읽거나 가르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금해야 한다."(이윤호 목사의 가계저주론 관련 제 91회 통합총회가 채택한 연구보고서 결론 부분)
1999년 발간되어 센세이션과 함께 논란을 일으켰던 책 [가계에 흐르는 저주을 이렇게 끊어라]이 2001년 합신교단, 2006년 통합교단으로부터 각각 “위험한 사상”, “사이비성 농후, 금서 지정”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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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호 목사 ⓒ뉴스파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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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저주론’의 주인공 이윤호 목사(꿈의축제교회 담임)는 펄쩍 뛴다. “가계에 흐르는 축복은 인정하면서도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왜 인정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아울러 가계저주론은 “이미 전세계가 다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교단의 결정에 대해 정치적 결탁 의혹도 제기했다.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다른 사역자나 저서는 괜찮은데 왜 나만 공격하느냐”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가계저주론’에 동조하는 국내 사역자들과 교회의 실명을 거론해 논란이 예상된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한소망교회 류영모 목사, 건국대 손기철 교수, 최성욱 목사(요들송으로 유명한 김홍철 씨) 등이다.
아울러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정훈택 총신대 교수, 합신교단, 통합교단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도 안하고 치유사역 경험도 없다”며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개토론도 제안했다.
자신의 ‘가계저주론’에 대해서는 “집안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굉장히 좋은 툴(tool)”이라며 "한번이라도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보라“고 충고했다.
서강대 재학시절 선교단체 ‘네비게이토’에 몸담았던 것을 얘기하며 “10년이 지나도 뭐가 달라졌냐”며 “결국 예수 믿고 나서 더 이기적인 사람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제자훈련을 폄하했다. 풀러신학교에서 피터 와그너로부터 수학하며 회개했다고 고백했다. 사회문제에 대해 등한시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일문제를 개인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스스로를 주기철 목사의 손녀의 남편이자, 장신대 교수를 처남으로 두고 있다며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 교회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기독교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이라며 “이렇게 가다간 10년 후엔 가톨릭과 똑같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위 ‘목사 세습’에 대해서도 “목회를 제대로 못할 때 갈 수밖에 없는 게 세습”이라며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이 김동호 목사 혼자 밖에 없다”며 '쓴소리'를 했다.
이윤호 목사와의 인터뷰는 10월 17일 오전 11시부터 3시간 가까이 비교적 장시간 진행됐다. 그만큼 이 목사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참고로 인터뷰 맨 뒷부분의 3개 질문은 인터뷰를 정리하며 궁금했던 바를 이메일로 주고받은 것임을 밝혀둔다. 적잖은 분량이지만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는 만큼 전문을 싣는 것이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싣기로 한다.
뉴스파워는 조만간 이윤호 목사의 주장에 대한 반박 인터뷰도 가질 예정이다. 다음은 이윤호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
Q. 2001년도 합신총회와 2006년 통합총회에서 ‘위험한 사상’, ‘사이비성 농후’ 판정이 내려졌는데, 입장은? 책에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고 나의 입장은 “아니다”이고, 언제든지 공개토론을 하자는 것이다. 합신 같은 경우 2001년에 세 번 공개토론하자고 내용증명으로 편지를 보냈다. 아무 답장이 없었다. 전화도 없었다. 자기들은 신학교도 있는데 왜 이에 대해 답변을 못하는가? 제 입장은 언제든지 토론하자는 것이다.
제 기억으로는 2000년 10월 2일, 11월 7일에 한국의 횃불회관과 미국의 풀러신학교에서 가계의 축복과 저주에 대해서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학술세미나를 했다.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안 왔다. 공개토론 하자는 데 왜 안 오는가? 심지어 풀러신학교에서 그렇게 반대하던 한 분도 나한테 나의 공개토론 원고만 이메일로 요청하고 공개세미나엔 오지 않았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세상에서도 보면 어떤 사람이 잘못했으면 경찰이 부르지 않겠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검사한테 간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판사한테도 간다. 불복하면 재심, 삼심을 하지 않나. 소명 기회를 주지 않나. 제가 볼 때 문제 중의 하나는 소명 기회를 전혀 안줬다는 것이다. 일방적이다.
<교회와 신앙>이라는 신문이 있다(지금은 인터넷 신문으로 바꿨다). 이 신문이 나에게 소명 기회를 줬다. 류영모 목사님은 기본적으로 제 입장을 이해한다. 이것이 중간에 바뀐 것이다. 세미나에 오셨을 때 그 분한테 [가계의 복과 저주전쟁에서 승리하라]는 책을 주었다. 책을 읽어보더니 “목사님 입장이 맞다. 미안하다.”라고 얘기했다. 류 목사는 그 신문 발행인이다. 류 목사님이 “미안하다. 이 목사님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신문에 여백을 주겠다”라고 했다. 그 후 <교회와 신앙>에서 지상논쟁을 했다.
총신대 정훈택 교수가 나를 전에 여러 번 비판했는데, 그래서 그와 지상 논쟁을 했다. 토론 내용에 대해 <교회와 신앙>에서 “책을 내주겠다”고 했는데 정훈택 교수가 꼬리를 슬그머니 내렸다. 왜 거절했는가? 쉽게 말해서 ‘가계의 복과 저주’에 대해서 찬동하는 사람은 많은데, 용기 있는 사람은 적은 것이다. 모든 조직신학 책에도 ‘복과 저주’란 단어가 없다. 그 얘긴 2000년 교회사를 통해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복’과 ‘저주’에 대해서 많이 나온다.
한국 찬송가에 보면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복을 좋아하는지 원문(찬송가)에는 없는 복(Bless, Blessing)이란 단어를 47군데를 첨가시켜 놨다. 제가 볼 때는 ‘축복과 저주’가 별로 의미없는 논쟁인 이유는 한국 교회가 계속해서 ‘부모가 신앙생활 잘하면 자녀가 축복 받는다’는 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잘사는 이유는 다 청교도들의 신앙 때문이다.” 이건 바로 가계에 흐르는 복이다. 줄여서 말하면 가계의 축복이다. 가계의 축복이 있으면 가계의 저주는 왜 없는가? 이것 하나만으로 논쟁 하나가 끝나는 것이다.
가계의 축복은 신자들에만 있는 게 아니다. 불신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보고에 보면 부모의 소득 1만 불로 나눠서 자녀들의 수능(SAT) 점수가 나눠진다. 부모의 소득이 높으면 자녀들의 점수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국같이 과외를 많이 시키는 나라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계에 흐르는 축복만 있는 게 아니라 국가에 흐르는 축복이 있는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이것을 ‘보편적인 축복’이라고 말한다.
“언제든지 공개토론 하자” 솔직히 말하면 미국 이민 가라고 하면 갈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저도 미국에서 13년을 살아봤지만 라이스 같은 흑인 여성이 국무장관 된다는 건 대단한 일 아닌가. 한국에선 상상할 수 있겠나. 다른 나라 사람이, 그것도 여성이 미국의 제 2인자가 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대신 북한 가라고 하면 갈 사람 있겠나. 가계에 흐르는 축복과 저주가 있듯 나라에 흐르는 축복과 저주도 있는 것이다. 필리핀 같은 경우는 2차 대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였다. 막사이사이상도 주고 그랬다. 그런데 마르코스가 맡으면서 아주 비참한 나라가되었다. 한 사람이 정치를 잘 못하는 바람에 그렇게 피폐한 나라가 된 것이다.
제가 볼 때는 가계에 흐르는 축복이 있다면 가계에 흐르는 저주도 있다는 것이다. 제가 리서치를 해보니까 가계에 흐르는 축복 자체도 실제로 제대로 연구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복을 엄청나게 강조해 왔다. 성경을 보면 실제로는 복보다는 저주를 더 많이 강조하고 있다. 밸런스가 안맞는 것이다. 중요한 건 불순종해서 저주를 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순종해서 축복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훈택 교수 같은 경우는 가계의 축복도 부인했다. 신약시대에 와서 가계의 축복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한국 목사들을 다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아닌갗라고 했다. 제가 자꾸 공개토론을 주장하는 것도 자기들이 모르고 싫으면 답변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얘기한다.
신학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는 대학 1학년부터 네비게이토에서 공부했다. 4학년 때는 팀리더도 했다. 그때부터 성경을 연구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10년을 신학공부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게 많은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전문분야라고 하는 건 모르는 게 더 많다. 어떤 면에선 깊이 공부한 사람 외에는 잘 모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가계의 축복과 저주’에 대해 거의 연구를 안했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정 교수가) 가계의 축복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책을 안내겠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하지 말고 공정하게 토론을 하자는 것이다. 제가 볼 때는 연구도 하나도 안하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이번 통합측 결정도 왜 가계의 축복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하는지 묻고 싶다. 그것은 교인들을 우매하게 만들고 속이는 것이다.
사랑의교회 같은 경우도 오정현 목사가 부임한 후 특별새벽기도회의 주제가 ‘자녀를 위한 부모기도, 자녀 평생 축복’이었다. 그 명제가 맞는가? 거꾸로 해보자.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기도하지 않을 때 자녀 평생 저주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이 맞는가? 틀렸다. 그런데 오정현 목사가 이런 말을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300명밖에 안나오던 새벽기도회에 5천 명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도 이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한다.
존 스토트는 한때 지옥을 부인했었다. 제가 알기로는 자기 동생이 안 믿고 죽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이 말을 하려면 “예수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말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복과 저주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장로교가 많은데, 장로교의 기본신학은 언약신학이다. 계약이라는 뜻이다. 즉, 계약을 지킬 때 축복을 받고, 계약을 어길 때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총신 계통에서 공부한 분들은 다 알 텐데 메리디스 클라인이라는 교수가 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 교수다. 이 분은 언약을 복과 저주로 풀어간다. 다음 책을 써보고 싶은 것은 언약 안에 있는 복과 저주의 비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신명기나 성경 여러 군데에서 나온다. 신명기 28장에도 보면 복에 대해서는 1절부터 14절까지지만 저주에 대해서는 15절부터 66절까지 써 놨다. 저주를 훨씬 더 많이 써놓은 것이다. 밸런스가 안 맞는다.
한국 교회는 계속해서 강조해 온 게 ‘부모가 신앙생활 잘하면 자녀가 축복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신학화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 얘기를 전혀 안해 왔다는 것이다. 메릴린 히키가 처음 나와서 한 말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것이었다. 한국 교회가 깜짝 놀란 것이다. 10만 부 정도 팔렸다. 그만큼 한국 교회에 충격이 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메릴린은 제가 볼 때 성경을 깊이있게 공부한 분은 아니다.
이번 통합측 결정의 문제 중 하나는 메릴린과 나를 섞어서 공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메릴린 히키는 오순절 계통의 여자 목사로서 신학을 깊이있게 공부한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합측에도 얘기하고 싶은 건 공론화하자는 것이다. 합신 같은 경우 전화 한 통도 안 왔었다.
그런데 당시 합신 이단사이비대책위원(박형택 목사)의 교회 홈페이지에다가 올린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니까 조금있다가 그 글을 바로 지워버렸다. 내 기억으로는 거기에 이렇게 되어 있었다.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는 이론엔 세 가지가 있다. 대표설(아담과 하와가 인간의 대표이고, 대표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든인류가 죄를 지었다는 것), 실제설(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을 때 태어나지 않은 모든 사람도 죄를 지었다는 것), 유전설(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타락한 성품과 죄책이 출생법에 의해 유전됐다는 것). 거기에 이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대표설과 실제설을 믿지 유전설은 믿지 않는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그럼 믿지 않는다고 해야지 틀렸다고 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다. 교회사를 통해 세 가지 설이 다 유효한 것으로 되어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웨스트민스터 강해에는 유전설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설 이야기는 안한다. 저는 침례교에서 안수받은 침례교 목사이다. 자기들이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웨스트민스터 강해를 부인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유전설이 없다고 말한다. 없긴 왜 없나? 유전설이 맞는 것은 유전학이나 지놈 프로젝트를 공부해 보면 굉장히 맞아 떨어진다는 게 나온다. 놀랍게도 신학교 심리상담학 같은 경우는 펠라기우스 이론을 자꾸만 가르친다. 펠라기우스 이론은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게 원죄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방해 의해서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교회사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심리학과 상담학이 대부분 모방설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가 없다.
칼빈니즘과 알미니안니즘은 기본적인 입장이 다르다. 칼빈니즘은 타락한 성품과 죄책이 후손들에게 전가되었다는 입장이고, 알미니안니즘은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 장로교를 뺀 대부분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타락한 성품만 내려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타락한 성품을 가지고 죄를 짓게 되면 죄인이 된다고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논쟁을 해보니까 침례교 목사인 나는 오히려 칼빈니즘이고, 딴 사람들이 오히려 알미니안니즘 주장을 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가계의 축복과 저주’는 굉장히 논쟁적인 이슈다. ICM 교회 같은 경우 셀만 55,000개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다. 순복음교회도 마찬가지다. 피터 와그너, 두란노 아버지 학교 등 모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고 가르친다.
랄프 네이버는 셀의 이론가이다. 랄프 네이버가 필요로 했던 것은 셀을 통해 굉장히 성공한 교회를 보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ICM 교회다. ICM 교회를 보니까 굉장히 잘하는 데 비결은 바로 축사 사역과 가계 저주를 끊는 것을 일찍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짐 에글리한테 리서치를 시켰다. 그 책이 이렇게 시리즈로 [내적치유 수양회(학생용•리더용) 두 권의교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게 세계에서 받아들이는 것을 왜 안 받아들이느냐는 것이다. 지금 국내에서 셀교회, G12 사역 교회들이 다 가계의 축복과 저주를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그 분들이 저보다 앞서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제가 연구하고 싶었던 이유는 공격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왜 다른 나라에서는 다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안되느냐는 것이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Q. 위에서 말한 한국의 교회들 같은 경우 목사님께서 관여하신 곳이 있나? 관여하진 않았다. 온누리교회 같은 경우는 굉장히 미묘한 입장이다. 나한테 제일 많이 피해를 준 교회이다. 통합측에서 이번에 잘못 발표한 게 <빛과 소금>에서 비판했다고 했는데, 1998년도엔 긍정적으로 다뤘다. 그때 ‘세대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제목도 내가 줬다. 그 후에 온누리교회의 입장이 바뀌었다. 지금은 좀 어정쩡한 입장이다.
지금 온누리교회가 추천하는 분은 딘 셔먼, 크리스 해리슨 같은경우 매년 온다. 이들이 와서 하는 얘기가 가계 저주를 끊으라는 것이다. 온누리교회 교인 중 한 분이 나한테 상담을 받으러 왔다. 영어를 잘했다. 그래서 자기가 말하기를 ‘크리스 해리슨 목사를 만났다’는 것이다. 해리슨 목사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 집회에서 또 만나서 상담했더니 또 그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끊어야 하나?’고 물으니 ‘시간이 없으니까 한국에서 나오는 책을 읽어 봐라’ 해서 내 책을 읽고 온 것이다.
손기철 교수(건국대)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치유와 권능]이라는 책이 있다. 그 분도 책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해서 써놨다. 하용조 목사가 추천서도 썼다. 그 책엔 내가 얘기하는 게 다 들어 있다. 그러면서 저자가 하는 말이 "이런 논쟁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확실히 믿는다. 그리고 이 분야에 있어 한국에서는 이윤호 목사와 구요한 목사가 지도자다.' 이렇게 써 놨다. 두 번이나 만나서 '어떻게 이걸 하 목사가 추천해 줬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니까 온누리교회에서는 자기네가 하면 능력이고 남이 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통합측 결정은 교인들을 속이는 것” 통합측에서도 이 같은 결정이 나온 것은 알파코스 때문이라 생각한다. 무슨 얘기냐 하면 알파를 하다 보니까 남전도회, 여전도회가 자꾸만 없어지게 된다. 그건 셀을 하는 데는 다 그렇다. 알파와 셀이 같이 가기 때문이다. 남전도회, 여전도회는 전국적인 조직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기득권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실은 기득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교회가 자꾸만 혁신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자꾸만 알파를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온 얘기가 알파에서 내 책을 필독서로 쓴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필독서로 쓰는 건 아니고, 알파 사역하는 분들이 가계치유 사역을 인정을 하는 것이다.
류영모 목사(한소망교회), 최성욱목사(요들송으로 유명한 김홍철 그룹의 맴버, 사모는 ‘산까캄를 부른 최안순) 등이다. 최성욱 목사는 1996년도에 내 치유 세미나에서 은혜를 받았다. 지금은 알파코스의 주강사다. 전에는 알파가 강력하지 못했던 이유가 성령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알파를 하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알파엔 성령사역과 치유사역이 들어가 있다. 류 목사님이 원래는 성령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같이 친하게 지내다보니까 영향을 안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루는 자기 교회에서 알파를 하는데 굉장히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자기는 치유사역을 안하는데, 알파 코스에 치유사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가슴이 튀어나온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줬는데, 들어간 것이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기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본인도 깜짝 놀란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파를 공격하다 보니까 알파의 주강사들이 '가계의 축복과 저주'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G12, 셀사역하는 전 세계의 모든 교회와 사역자들이 다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르게 믿는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다 제껴두고 '가계의 축복과 저주'만 공격하는 것이다.
Q. 통합측 결정이 정치적 기득권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는 말인가? 당연하다. 또한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Q. 합신측 결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합신이 굉장히 폐쇄적인 것 같다.
Q. 거론하신 정훈택 교수는 총신대에 몸담고 계신데, 그렇다면 합동측으로부터 결정은 없나? 없었다. 내가 관심있는 것은 뭐든지 일방통행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Q. 알파코스가 주로 통합측 교회에서 실시되는가? 그렇진 않다. 초교파적인 프로그램이다. 알파코스 외에 한국의 목사님들이 제일 많이 가는 곳이 김성곤 목사(풍성한교회)가 하는 D12세미나이다. 풍성한교회의 모델이 바로 ICM교회에서 따온 것이다. 풍성한교회의 전인치유 책은 ICM교회 책을 거의 그대로 하는 것이다. 물론 ICM교회는 2박3일 하고, 풍성한 교회는 토요일 하루만 하는 게 다르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인적 치유수양회에서 사용하는 교재에 사탄이 구축한 견고한 진의 하나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언급하고 있다(31면).
물론 디테일한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자꾸 공격한다면 어느 누가 자유롭겠는가?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가계의 축복과 저주'에 대해 공격하면서 한번도 가계치유 사역경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학적으로도 전혀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전문가가 아니지 않은가. 아까도 신학이 어렵다고 한 건 사람들은 그냥 쉽게 감성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쓰는 표현으로는 그것은 '느낌표 신앙'이다.
통합측 주장이 재미있는 것은 '가계저주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저주로 해석한다'고 제일 처음에 언급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저주란 표현을 썼나, 심판이라는 표현을 썼나? 심판은 안나온다. 저주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저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알라'로서 심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통합측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심판은 더 폭넓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저주라고 하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한다. 단어를 연구해 보면 이런 비슷한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 전혀 연구를 안하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Q. 목사님의 가계저주론이 '슬픔의 영, 분노의 영' 식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이것은 김기동 목사의 귀신론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사람들의 의혹도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관점과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하는 비판이 있는데? 나는 가계치유론을 이야기하지 저주론을 말하지 않는다. 제가 논쟁을 많이 해보면서 느끼는 건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주장하지도 않은 얘기를 주장할 것이라고 예측하여 말한다는 것이다.
이번 통합측 보고서엔 '모든'이란 말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모른다. 이건 학문적으로 환원주의다. 그렇다면 축사사역을 얼마나 해봤냐고 묻고 싶다. 세계적인 축사사역자들이 쓰는 '영'에 대한 용어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경이 말하는 영이고, 또 하나는 '기능영 또는 감정영'이다. 예를 들어 분노의 영, 슬픔의 영 등을 말한다.
나는 축사사역을 7~800명 정도 해봤다. 제가 경험을 왜 중요하게 여기냐 하면 1950년대에 메릴 엉거란 사람이 있었다. 달라스 신학교 교수였는데, 할레이 성경핸드북과 엉거 성경핸드북이 쌍벽을 이룰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이 분이 1952년도에 [성서적 마귀론]이란 책을 쓸 때 "그리스도인들은 귀신에 들리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나서 빗발치는 항의를 받았다. 제일 먼저는 선교사들로부터의 항의였다. '선교지에서 사역을 해보니까 신자들도 귀신에 들린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엉거가 참 겸손한 분이셨던 것 같다. 직접 선교지를 찾아간 것이다. 확인을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돌아와 사역을 해보니까 신자들도 귀신에 들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분이 1970년대 쓴 두 권의 책을 썼는데, 그 중 하나인 [성도들을 향한 귀신들의 도전]이란 책에 보면 "경험이 성경을 앞서갈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이 끊임없이 경험과 배치된다고 하면 그것은 성경 해석이 잘못 된 것이다."라고 썼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축사사역하는 분들치고 그리스도인들이 귀신에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몇 명만이라도 축사사역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저는 3대째 기독교 집안이고, 벌써 1971년도에 네비게이토를 만났다. 인간적으로 죄를 짓긴 했어도 그렇게 많이 짓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축사에 대해 공부해 보니까 내 안에 있는 나쁜 영들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쫓아보니까 나갔다는 것이다.
Q. 목사님의 첫 번째 책("가계에 흐르는 저주 이렇게 끊어라") 맨 뒤에 보면 기도문에 '슬픔의 영' '우울의 영' 등등 많은 영을 언급하고 있는데, 통합측은 이런 걸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 아니겠나? 통합측은 내가 모든 걸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는데, 그건 환원주의다. 모든 걸 하나의 이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약점 중 하나는 토론할 때 '네가 지고 내가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 나도 틀릴 수 있고, 당신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틀린 건 아니고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칼빈니즘과 알미니안니즘이 끊임없이 논쟁해서 무슨 결론이 나오겠는가? 삼위일체 가지고도 몇 백 년이 걸리지 않았는가? 오순절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미국에서도 이단이라고 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그리고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신학화를 못 시킨 것이다.
세상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게 뭔가 빨리 캐치를 해서 따라간다는 것이다. 사역도 마찬가지다. 필요에 의해서 새로운 사역이 나오는 것이다. 가정이 요즘처럼 이렇게 깨져 본 적이 없다. 앞으로 더 깨져 갈 것이다. 그런데 깨지는 이유 중의 중요한 것 하나가 대물림이다.
그런데 대물림이란 말은 심리학에서 쓰는 거고, 신학교에서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그걸 저주라고 쓴다. 물론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고 쓰진 않는다. 이걸 신학화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다. 큰 범주 내에서는 문제가 없다. 또 써보니까 집안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굉장히 좋은 도구(tool)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왜 안 쓰겠는가? 실천신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상황과 사역과 성경을 끊임없이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서 제 책에 보면 끊임없이 환자들 얘기가 나오는 거다. 저희 집안도 그렇고 다른 사람 집안도 그렇고 그게 다 흘러간다. 뿐만 아니라 나라도 (복과 저주가) 흘러간다. 우리나라가 일본 사람들보다 거짓말, 사기를 60배 이상 많이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들어온 지 200년이 되었고, 일본보다 더 많은 기독교인이 있는데 말이다.
Q. 그럼 목사님이 축사사역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1993년이다. 제가 1987년도에 피터 와그너 박사를 만났다. 그 전에 제가 졸업한 신학교가 미국 서남침례신학교다. 그리고 나서 1986년에 풀러신학교를 갔다. 거기서 와그너 박사를 만난 것이다. 그 분이 교회성장학 강의를 하셨다. 그 분은 또 치유사역도 하셨다. 그 분에게 제가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내적치유나 축사사역을 배우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와그너 박사도 내적치유나 축사사역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저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선교를 하면서 아픈 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면서 몇 가지 발견한 사실은 어떤 사람들은 병이 잘 안낫는 것이었다. 나아도 재발하고. 어떤 사람은 병은 낫는데 신앙은 더 안 좋아지고. 그리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다 보니까 악한 영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조금 배운 것 가지고는 안될 것 같아 아예 축사사역은 안했다. 그리고 나서 1992년 박사학위를 위해 다시 풀러신학교로 돌아와보니까 크래프트 박사가 두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내적치유'와 '능력대결'이었다. 92, 93년 제가 그걸 공부하면서 축사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육체적 질병의 치유 사역만 했다.
여기에 대해 어떤 분들은 가계치유론을 풀러신학교에서 배웠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오해다. 솔직히 풀러신학교에서 배운 것 아니다. 사역을 하다보니까 어떤 사람들에게서 계속 반복적으로 내려오는 게 있었다.
그 사역을 계속 하다 보니까 '아 성경에서 삼 사대까지 계속 흘러간다'는 말이 굉장히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역을 하면서 신학화를 시켰는데, 내 세미나에 왔던 분들이 '모르고 축사사역을 했는데, 이렇게 신학적으로 체계를 잡아줘서 좋다'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때만 해도 초창기였는데,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제일 앞서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Q. 김기동 목사의 마귀론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나는 김기동 목사를 만나본 적도, 강의를 들어본 적도 없다. 성령사역에 대해서는 주로 와그너 박사와 크래프트 박사에게서 배웠다. 김기동 목사가 주장하는 '악한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귀신이 된다'는 이론은 전혀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1세기 때도 있던 이론이다. 축사사역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도 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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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호 목사 ⓒ뉴스파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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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축사사역을 훨씬 많이 한다. 카톨릭을 예로 들면 10여 년 전만 해도 축사를 전문으로 하는 신부가 10여 명밖엔 안 되었다. 지금은 몇 백 명이 된다. 10년 전만 해도 제가 알기로 미국에서 축사를 가르치는 학교가 10군데 정도 되었다. 지금은 훨씬 더 많아졌다.
그런데 한국엔 거의 없다. 불행한 일이다. 베드로의 이방인에 대한 관점과 바울의 기독론이 깨진 건 체험에 의해서였다. 성령도 마찬가지다. 경험과 신학을 같이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실천신학에 있어 어느 책이든 내 책처럼 공격했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실천신학 자체가 사람들에게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처음 제 책이 나왔을 때 많은 공격이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답변을 못했다. 그게 뭐냐 하면 히브리서 7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는데, 이것이 나중에 레위인이 축복받는 걸 설명하고 있다. 가계저주가 흘러가는 통로 중의 하나가 유전설이라고 내가 썼는데, 조직신학을 공부해 보니까 두 가지 이론이 있었다. 하나는 유전설이고 또 하나는 영혼창조설이다. 영혼창조설은 뭔가 하면 몸은 부모로부터 받지만 영혼은 잉태와 출생 사이에 하나님께서 불어넣었다고 하는 것이다.
유전설은 부모로부터 영혼육을 다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유전설을 증명하는 구절로 히브리서 7장 1-10절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제가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웨스트민스터 강해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영혼창조설의 약점은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언제 타락했느냐는 것이다. 물론 두 이론 다 논쟁적인 부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는 것이다.
나와 끊임없이 논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죄는 흘러가는 게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다'라고 한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른다. 원죄설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원죄설과 개인 책임 두 가지를 다 얘기하고 있다. 한국 법엔 부모의 빚이 자녀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것에 대해 위헌을 제기했다. 그 사람 주장대로라면 부모에게서 상속받는 것도 잘못 아닌가. 뭐든지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하나는 얘기하고 하나는 얘기 안하는 꼴이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거(축복)는 얘기하고 저거(저주)는 얘기 안한다.
Q. 그렇다면 목사님은 개인의 책임, 다른 요인으로 인한 질병 등을 부인하지는 안는다는 건가? 그렇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치유사역을 하는 학자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와그너 박사, 크래프트 박사 모두 Ph.D.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불행스럽게도 학자면서 이런 사역을 하는 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대개 신학도 제대로 안한 분들이 하다 보니까 도매금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늘 논쟁을 위한 논쟁을 하지 말고 시달림 당하는 분들의 입장에서 고민해 보라는 것이다. 몇 명만이라도 치유사역을 해봐라.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신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인 저주 가운데 있다. 어떤 집은 개별적인 저주가 흘러간다. 제가 강조하는 건 성화다. 그런데 통합측 주장은 구원이 다 끝났다,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건 구원파와 같은 주장이다. 하나님은 끝났지만 우리는 안 끝났다. 실제로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끝나는 것이다.
“내가 한국 최초 금이빨 사역 시작” Q. 올 8월쯤 모아실 페레이라 목사가 내한해서 집회를 가진 바 있다. 소위 말하는 금이빨 사역을 했다. 어떤 입장인가? 정확하게 말하면 제가 한국에서는 제일 처음 시작한 것 같다. 1999년 7월에 시작했다. 창조론을 봐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금이빨로 되었다고 그게 무슨 대수인가?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교회의 특징은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준다는 것이다.
제가 어느 교회 집회엘 갔는데, 목사님의 이빨이 다 흔들리는 것이다. 이걸 다 바꾸려면 미국 같으면 수억이 든다. 기도했더니 한꺼번에 치료가 되었다. 남미에서는 없는 이빨이 채워지기도 한다. 제가 읽은 책에 보면 '두세 개는 간증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이빨이 새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 같은 경우 이빨 빠진 대로 그냥 사는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한국이니까 금이빨이 나지, 남미 같은 경우는 없는 이빨이 난다.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건 제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Q. 그런데 왜 굳이 금이빨인가? 다른 병도 나을 수 있지 않나? 제가 사역을 해보니까 다른 병 같은 경우는 보여주거나 증명하기가 어렵지 않나. 제가 복음을 얘기할 때 세 가지를 얘기하는데, 듣는 복음, 보는 복음, 느끼는 복음이다. 한국 교회의 약점은 듣는 복음만 얘기하지 보는 복음, 느끼는 복음이 없다는 것이다. 보는 복음은 기적에 대한 것이고, 느끼는 복음은 이미지에 대한 것이다. 기자분이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누구보다도 사회에 관심이 많다. 풀러에서 공부하면서 두 가지를 회개했다. 하나는 기적을 부인한 것, 또 하나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개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Q. 신길교회 이신웅 목사님 같은 경우 금이빨사역 때문에 교회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있던데? 그건 아니다. 금이빨 사역은 (이신웅 목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빌미일 뿐이다. 전혀 아니다. 내가 볼 때는 그 교회 자체는 워낙 목사님을 쫓아내는 교회다. 목사님이 참으로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행정권, 인사권, 재정권 없이 목회한다는 게 어려운 일 아닌가. 동양선교교회 강준민 목사님 같은 경우도 행정권, 인사권을 뺏긴 것이다. 그래가지고 뭘 할 수 있겠나. 부목사들도 1년마다 재신임하겠다는데 그렇다면 장로 말 잘 듣는 사람을 세우겠다는 것 아닌가.
제가 한국 교회를 볼 때도 목회를 제대로 못할 때 갈 수밖에 없는 게 대물림, 즉 세습이다. 안 물려 준 데가 몇 군데나 있나? 교회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어디에 희망이 있겠나? 교리도 중요하지만 올바르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교회가 자정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다. 세상보다도 못하다. 이렇게 가면 앞으로 10년 정도면 가톨릭과 똑같아질 가능성이 많다.
왜 그런가 하면 가톨릭은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성장하는 종교다. 다른 나라는 다 가톨릭이 신교로 넘어오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 개신 교회가 너무 엉망이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대물림에 대해 비판하는 목사가 누가 있나. 김동호 목사 한 사람 외에는 별로 없다
. 물론 나는 어떤 잣대로 그것이 100퍼센트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느끼는 복음’이 빵점이 되는 것이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불신자들에 어떤 종교를 갖겠는가 질문하면 가톨릭, 불교 다음으로 기독교다.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이다. 회개도 마찬가지다. 말로 하는 게 무슨 소용 있나. 결국 희망이 없지 않은가?
이번 통합측 결정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가계의 축복과 저주'도 원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다 하던 것이다. 1998년도 <빛과 소금>에서 '세대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주제를 긍정적으로 다룰 때 반대측 필진을 세울 때 안석모 교수와 한세대 교수가 있다. 그런데 그 한세대 교수는 늘 가계의 저주에 대해 비판해 왔지만 그 때는 글 쓰지 않았다. 2001년 6월호 <목회와 신학>을 보면 '가계의 복과 저주'에 대해 긍정적인 주장은 한 명도 없다. 생각해 봐라. 70~80페이지에 걸쳐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비판한 것이다. 이건 온누리교회가 입장을 바꿔버린 것이다.
장신대 같은 경우 몇 년 전에 오성춘 교수 주관으로 포럼을 했었다. 나는 없었는데, 가계저주론에 대해 찬성하는 측에선 논산에서 치유사역을 하고 있는 김종주 장로가 나갔다. 만약 나한테 연락했다면 미국에서라도 참석했을 것이다. 결국 오성춘 교수의 결론은 '신학적으론 문제가 없다. 다만 성도들이 저주신드롬에 휘말릴 염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어떤 것이든지 마찬가지다. 방언, 제자훈련, 셀도 마찬가지다. 네비게이토가 제자훈련 할 때도 얼마나 한국 교회가 많이 반대했는 줄 아는가? 심지어 구원의 확신까지도 반대했다. '건방지게 무슨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그러느냐?'는 식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지금은 제자훈련 안한다는 교회가 어디 있나?
나도 네비게이토에 있었지만, 10년이 지나도 뭐가 달라졌냐는 것이다. 결국 예수 믿고 나서 더 이기적인 사람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 같은 경우 얼마나 일을 잘했나. 사회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복음주의라고 하는 건 결국 내가 예수 믿고, 내가 축복 받고, 내가 천국 간다는 건데, 그러나 내가 성령사역을 해보면서 느끼는 건 이제는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와그너 박사 같은 분들도 같은 생각이다. 물론 접근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목사님의 '지역영' 개념인데,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영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약점은 교회 밖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도 문제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그러니까 사회적인 영향(임팩)이 없는 것이다.
금년 봄에 주기철 목사님이 노회에 의해서 복권되셨다. 신사참배 문제로 파직되셨었다. 가계치유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조상의 죄를 대신 회개하는 것이다. 그게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 과거사 문제도 그렇다. 일본한테 책임지라고 하는데, 실제 당사자들은 없지 않나. 한국 교회나 정치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채운 것도 독일 같은 경우도 나치 협력 교회들이 많았다. 그런데 고백운동을 통해 그들은 다 2선으로 물러갔다. 그리고 나치 항거 교회들이 전진 배치됐다. 우리 같은 경우는 교회도, 정치도 신사참배했던 사람들이나 친일파가 주류세력이 되었다. 단추를 잘못 채운 것이다. 여기에 대한 반성도 별로 없다.
더군다나 5공, 6공 지나면서 아부했던 세력들이 교회의 주류세력 아닌가. 광주사태 때도 난 공군장교였지만 전혀 그런 감이 없었다. 누구도 나한테 그런 영향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죄를 많이 지었구나' 하는 걸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다. 내가 볼 때는 지금도 똑같다. 이것이 내가 친일파를 연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친일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고난을 당했다. 웃긴 얘기 아닌가. 주기철 목사 건도 보면 대부분의 교파가 공범자다. 물론 순복음교파 같은 경우는 나중에 생겼지만. 그러니까 고신측만 열심히 연구한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신학이 따라오지 못할 때 과거사 문제에 대한 부분은 신학적으로 다룰 수가 없다. 우리는 그냥 덮으려고 한다. 구약을 연구해 보면 부흥이 있을 때마다 회개가 있었고, 회개 때마다 조상의 죄를 언급한다.
총신에서 상급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정훈택 교수는 차등 상급을 부인하는 입장이다. 이것을 <목회와 신학>에서 버젓이 실어주기도 했다. 물론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권성수 교수 같은 경우는 상급신학에 대해 Ph.D. 논문으로 썼다. 물론 이런 논쟁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학교를 나갔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학교 문제가 얽혀 있긴 했지만, 교수들이 둘로 갈라졌다고 한다. “구원 자체가 상급이다, 아니다 차등상급이 있다.”
제가 차등상급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안 그러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소위 번영신학의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신자의 심판에 대한 얘기도 교회에서 잘 설교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신자도 분명 심판을 받는다. 그것은 물론 지옥과 천국에 대한 것은 아니다. 복과 저주도 사실은 성화에 대한 것이고, 가계의 저주를 안 끊는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는 것도 아니다. 제자훈련의 목적도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데, 결국 변화되지 않는다. 결국 (가계의 저주가)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저주와 연결된 게 악한 영의 문제다.
예를 들어 술 마시는 것, 거기에 알코올의 영이 흘러가는 것이다. 유전적으로도 술에 강한 유전자들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웬만큼 술을 마셔도 취하지도 않는다. 콜롬비아 ICM교회 같은 경우도 10년간 제자훈련을 했지만 변화가 안 되고 개인의 문제가 그대로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을 때 초창기에 빨리 이 문제(가계의 저주)를 해결하니까 변화가 되더라는 것이다. 자기 개인 문제에 얽매어 있는데 누굴 전도하고 양육하겠는가.
지금 내가 하는 상담사역도 매주 15명~20명 정도 신청을 받아 하고 있다. 40퍼센트가 목회자다. 그 분들은 그런 문제 가지고 어디 갈 곳도 마땅치 않다. 대부분이 가계 문제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적인 문제도 보면 부모나 할아버지 때부터 성적인 문제가 계속 강력하게 흘러내려 오는 것이다. 부모가 좀 깨끗하면 그래도 자손들이 덜 공격을 받는다. 치유사역자들이 연구해 보니까 어느 집안에서 그 죄가 3~4대를 흘러가면 강력한 요새를 만들어 놓는다.
Q. 그런데 알코올의 영, 중독의 영 이런 표현을 하시는데, 영은 결국 귀신 아닌가? 그런데 세계적인 사역자들이 다 그걸 영이라고 표현한다. 거기다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기능영이라고 해서. 예를 들면, 세계적 축사사역자인 프랑크 디 하몬드와 이다 메이 하몬드의 책, [가정의 축복을 위한 선한 싸움을 싸우라]를 보라.
Q. 결국 그런 것 때문에 김기동의 귀신론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공부 안하는 영' 이라고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밸런스를 잘 맞춰가야 한다. 보험 들 때 물어보지 않는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몇 세에 돌아가셨는지 등 거기에 따라 생명보험료가 달라진다. 그걸 물어보는 이유는 임상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악한 영만 쫓으면 다 해결됐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좋은 하나의 도구(tool)라는 것이다.
Q. 목사님과 베다니출판사만 공격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목사님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역자나 책은? 1. 메릴린 히키(Marilyn Hickey).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Break the Generation Curse Part II)]. 서울: 은성 출판사, 1998. 2. 레베카 브라운(Rebecca Brown)과 다니엘 요더(Daniel Yoder). [뜻 모르고 당하는 고통의 뿌리(Unbroken Curses)]. 서울: 나침반 출판사, 2001. 3. 데렉 프린스(Derek Prince). [축복이냐 저주냐 당신이 선택하라(Blessing or Curse You Can Choose)] 서울: 베다니, 2000. 이 책들은 한국말로 번역된 뿐이지, 세계적으로 가계의 복과 저주를 지지하는 많은 학자들이나, 사역자들이나, 수 십 권의 책들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나의 책, [가계의 복과 저주전쟁에서 승리하라] [축복의 문을 여는 능력진리]를 참조하면 된다.
Q. 영혼육의 완전한 구원에 대한 목사님의 입장은? 영혼육의 구원을 설명하는 듯한 성경 구절들도 있지만(롬 8:23; 고후 5:4-5; 고후 7:1; 살전 5:23), 성경은 기본적으로 전인의 구원에 대해 설명한다. 따라서 구원은 영의 구원, 혼의 구원, 몸의 구원으로 나눌 수 없다. 전인의 구원은 칭의, 성화 및 영화의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칭의는 죄의 처벌(the penalty of sins)로부터, 성화는 죄의 세력(the presence of sins)으로부터, 영화는 죄의 존재(the presence of sins)로부터의 구원이다. 따라서 구원의 완성은 사망과 고통과 슬픔이 없는 영화 때 즉 재림 때 이루어진다(빌 3:20-21; 요일 3:2; 계 21:4; 22:3). 이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조직 신학 책은 영화와 재림을 함께 취급하고 있다.
Q. 정훈택 교수가 칭의의 관점에서 비판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칭의와 성화를 따로 뚝 떼어서 할 수 있는 건가? 칭의와 성화를 따로 분리할 수 없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전인의 구원은 칭의, 성화 및 영화의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칭의는 구원의 시작이고, 성화의 구원의 과정이고, 영화는 구원의 완성이다. ‘칭의의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단번에 이루어진다. 반면에 ‘성화의 구원’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가계치유와 관련하여, 가계치유는 신자의 성화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성화의 구원’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죄의 결과로부터의 회복, 즉 저주로부터의 완전한 구속 역시 계속 연속되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다(계 22:3).
통합측이 인용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롬 8:1-2)의 두 구절은 칭의와 종말론적 신분을 말하는 것이지, 성화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될 피조물’(롬 8:21)과 죄를 짓고, 병들고, 사망해야 할 우리의 상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계 21:4)? 통합측의 [우리가 이미 영육간에 전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저 천국의 완전한 구원을 소망함으로서]의 두 문장의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로 통합측이 인용한 빌립보서 2장 12절과 로마서 8장 24절은 성화와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