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떠한 한 사람이면 좋을까(2256.2024.6.30)
롬5:12-21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사람’이라는 말이 유난히 자주 나옵니다. 12절, 15절에 두 번, 16절에도 두 번, 17절, 19절에 두번 나옵니다. 제가 정밀하게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성경 전체에서 ‘한 사람’이라는 단어는 로마서 5장에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 한 사람은 아담, 그리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성 크리소스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어떻게 한 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상이 구원받는 일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면, ‘그에게 어떻게 불순종한 한 사람 아담을 통해서 이 세상 전체가 저주받는 일이 가능했는가라고 질문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겪었왔습니다. 전 세계가 얼어붙고, 큰 피해를 입고,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분명, 이 지구상의 어느 한 사람의 몸 안에 시작된 감염으로부터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한 사람의 감염으로부터, 모든 세상의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통해서 볼 때 우리에게 만연되어 있는 이 죄와 죽음의 바이러스 또한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 세상이 죄로 망가진 것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시작됐다면 반대로 이 세상이 구원 받는 것도 한 사람으로 인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우리는 우선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죽음이 왕노릇 하는 세상으로 망가진 것이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이 세상이, 생명이 왕노릇하는 세상으로 변화되는 것도 한 사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말씀은 인류의 두 대표인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 대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아담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이러한 엄청난 결과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특별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한 사람의 죽음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의 죽으심, 그것이 어떻게 세상의 악을 이기는 사건이 되고 어떻게 모든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될 수 있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선포할 때 인류 대표인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상징하는 것들을 이해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전 축구국가 대표 팀이 아시안컵에 나가서 4강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4강전에 앞서서 손흥민과 이강인이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보도가 되었고 감독이 경질이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월드컵에서 4강까지 올라갔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대이하라고들 합니다. 우리 대표 팀 실력은 너무 허약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실망을 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2002년도 월드컵에 4강에 올랐을 때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지요? 대표 팀이 이긴 것하고 우리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그 대표 팀이 곧 우리를 대표하는 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축구경기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선수들이 지면 우리가 진 것이고 그들이 이기면 우리가 이긴 것입니다. 이것이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대표성의 원리’가 성경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대표성의 원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담 한 사람과 예수님 한사람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thanks to) 라는 말은 아름다운 말입니다. 감사, 존경, 그리고 칭찬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이런 말만 주고받을 수 있다면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 될 겁니다. 반대로 ‘때문에’(because of)라는 말을 할 때도 많습니다. 원망, 비난, 그리고 책망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많이 할수록 세상은 더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한 사람이 참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 사람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나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1.전 인류의 죄는 한 사람 때문에 들러왔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들어왔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원래 세상 속에 죄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침입해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죄를 막을 능력이 없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죄가 존재하지 않도록 장치를 해놓으실 능력이 없었습니까? 왜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죄가 들어와야만 했습니까? 왜 죄가 시작되도록 하나님은 방치 하셨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12절 본문에 ‘한 사람’은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아담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세밀하게 읽은 분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 겁니다.‘아니 아담이라뇨? 창세기를 읽어보면 먼저 불순종한 사람은 하와 아닙니까? 하와가 먼저 속임을 받아 불순종하여 과실을 먹고 아담에게 주어 아담도 합류한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한 사람’은 아담이 아니라 하와이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타락의 순서로 말하자면 하와가 제일 먼저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 ‘한 사람’을 아담이라고 보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담의 대표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창조된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고 창조된 순서와 대표성으로 인하여 그 책임성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원인과 결과로 이어집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고, 그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담 한 사람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서,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담 한 사람의 죄라는 바이러스가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었고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잘못으로 모든 사람이 죽는 건 너무 한 것 아니냐?’ 나의 선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느냐? 반감을 가질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단순히 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담은 가장 먼저 창조된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범죄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가 모든 사람의 죄가 되고 아담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분명한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범죄 했지만, 율법이 있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르지 않습니까? 법이 없는데 어떻게 법을 어기는 죄가 있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이 있기 전에 죄는 어떻게 됩니까?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13-14절에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주어지기 전까지 아담으로부터 모세 때까지의 사람들은 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범죄 했고 그들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롬2:12절‘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그 모습을 창세기에서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를 보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노아때에 의인이 노아 외에는 없었을 때 홍수로 멸망시켰고, 소돔과 고모라도 의인 10명이 없는 죄악의 도시를 멸망시키셨습니다. 율법이 없을때에도 범죄로 인해 하나님은 심판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12절‘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은 아담 한사람입니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죄가 들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를 통해서 어떻게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인간이 왜 죽게 되었으며, 왜 세상이 이처럼 불행하고 파괴되었는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자세 알려면 창2:16-17절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언약을 맺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언약에서 분명히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는 인간이 죽지 않도록 영생하는 몸으로 만드셨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영생하는 몸으로 만들어진 인간일지라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깰 때 죽음이 올 것이라는 계약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담은 범죄했습니다. 그 결과 언약대로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에게 죽음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사람은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죽었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죄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원한 형벌로서의 죽음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우리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사람’입니다. 아담은 개인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불리며 인류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모든 인간을 대표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표성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직접 하지 않았어도 대표의 원리에 의해서 마치 내가 한 것과 같은 효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사망이 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비록 아담 한사람이지만 그의 범죄는 엄청난 영향력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대표성의 원리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죄인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죄인입니다.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 한 사람의 은혜로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기름부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자기 백성을 위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를 희생하셔야만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선지자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씀대로 이루심으로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주셨고, 제사장으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대속의 은혜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으로 사람을 위협하는 마귀의 권세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완전하게 정복하셨습니다. 이제 믿는 누구든지 그 이름을 힘입어서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혜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아담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담은 오늘 본문에서는 5번씩이나 계속 구절구절 반복하여 ‘아담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16절‘심판은 한 사람으로 인해 정죄에 이르렀으나’17절‘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죽임이 바로 그 한 사람을 통해 왕노릇 하였다’18절‘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19절‘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처럼’ 아담 한 사람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정죄와 심판과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15절‘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7절‘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18절‘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19절‘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렇게 구절 구절, 한 분의 순종, 한 분이 주시는 은혜를 통해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아담과 예수님이 가져온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아담은 자신의 범죄로 죽음을 가져왔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인류에게 죽음을 선물한 한 아담과 인류에게 생명을 선물한 한 예수님. 즉 아담이 죄라는 이름을 가진 죽음의 바이러스를 모든 사람에게 전파했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으로 그 죽음의 바이러스를 이기는 항체를 주셨습니다.
왜 이렇게 대표하는 예수님과 아담이 다릅니까? 아담은 인간이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몸이지만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전 인류의 대표라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더 나아가서 아담이 전 인류의 대표로서 죄를 범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대표가 되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 이라고 부릅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 때문에 온 인류가 죄인으로 전락하고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었으나,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십자가의 희생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속한 성도들은 영원한 의와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비록 아담의 죄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졌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은혜는 다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첫 아담의 후손이었지만,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를 믿음으로 원죄에서 벗어나 속죄함을 얻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21절‘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종의 신분에서 왕의 신분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앞으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아들이자 왕의 신분임을 깨닫고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사람이 순종하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 한 사람이 둘째 아담이라 불리는 예수님입니다. 그 한사람 예수님, 그분의 은혜로 우리가 어떻게 되었나요? 15절‘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아담 한사람이 중요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고 하십니다. 그 선물이 뭡니까?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 한 사람이 우리를 대표하여 죽음의 값을 치룬 것입니다. 그로인해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군대에 훈련소에 들어가게 되면 군사훈련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단체기압’입니다. 훈련을 받다가 하나가 틀리면 전체가 기압을 받았습니다. 원산폭격이 뭔지 아나요? 머리를 땅에 박고 엎드려 뻗쳐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참 억울했습니다. 한사람이 잘못했다고 전체가 기압을 받으니 얼마나 속상합니까? 그런데 그때 교관이 말하기를 전시에는 한 사람이 잘못하면 전체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한사람의 실수는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단체기압을 준다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아담 한사람 때문에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된다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대표성의 원리로 인해 우리가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한 사람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아담 이후에 ‘죽음’‘사망의 권세’는 인간을 지배하는 최고의 권력이었습니다. 사탄이 붙잡고 있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사탄은 이 죽음을 가지고 온 인류를 협박하고 지배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수많은 인류를 잔인하게 괴롭히는 폭군이었습니다. 이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돈’이나 ‘건강’을 빼앗기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서운 폭군이었습니다. 그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죽음을 저항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죽음 이후에 찾아올 영원한 형벌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죽음의 긴 대열에 서 있었습니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돈도 권력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돈만 있으면 죽지 않고 권력만 있으면 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으로도 죽음의 공포에서 인간은 벗어 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망의 권세보다 더 강력한 생명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죽음보다 더 강력한 생명의 힘이 사망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17절‘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여기에서 ‘왕 노릇’이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왕 노릇이 뭡니까? ‘왕이 갖고 있는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사망’이 인간에게 왕 노릇했는데 둘째 사람인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생명’을 누리며 왕 노릇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8절‘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아담 안에서 절망적인 상태에 있던 인간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우리에게 생명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한사람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생명이 찾아 온 것입니다.
3.나 한사람도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볼 사람은 ‘나’입니다. 나 한사람도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19절‘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 말은 아담과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한사람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셋째 사람인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는 우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한 사람으로 해방된 자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끝인가요? 아닙니다. 오늘 세 번째 사람인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뭘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라면 영혼을 구원하는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사람의 의지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명한 것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명령이 무엇입니까? 전도와 선교명령입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기서 모든 족속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저와 여러분은 누굽니까? 우리는 아담 한사람의 범죄로 마땅히 지옥 갈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 한분 때문에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업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죽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사탄은 쉽사리 영혼을 넘겨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발악을 하고 영혼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사탄이 베드로를 넘어트려 밀 까부르듯 하려고 청구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가지고 놀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를 위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죄를 지었음에도 그 기도덕분에 일어서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시도행전 19장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에베소의 은장색(銀匠色)이었습니다. 은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돈을 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종교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를 합니다. 바울의 에베소 전도에 대해 행19:20절‘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행 19:27) 데메드리오는 이거 안되겠다 하고서 사람들을 부추겼습니다.
우리가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적지 않은 벌이를 하고 있는데 바울 때문에 우리의 영업이 천하여지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그의 위엄도 떨어질 것 같다고 선동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선동에 따라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9절을 보면 온 시내가 요란하여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요 후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납니다. 데메드리오 때문에 에베소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울의 에베소 전도가 방해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 한사람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주님이 아시고 계시기에 우리를 위해서도 하늘보좌 우편에서 중보기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어서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청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기에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한사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 사람의 역할이 공동체 전체 운명을 주관합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모든 족속이 복을 받았습니다. 에스더 한사람 때문에 모든 유대인들이 죽음을 면했습니다. 요나 한사람이 순종함으로 모든 니느웨 사람이 심판을 면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떡 5개, 물고기 2마리 드린 한사람 때문에 5000명이 배불리 먹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한사람 대문에 부흥이 될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지만 그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사람도 수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나 한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어찌 보면 이 세상 나 한사람 죽는다고 큰일 나거나 지구가 멈추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젠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엄청난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예수님의 피값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내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게 되면 나 한 사람 때문에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 가문이 바뀝니다. 또 여러분 한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여러분 직장이 달라지고 우리나라가 달라지는 역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방법은 빛과 소금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을 여러분 옆에 붙여 주셨나요? 그 사람에게 빛을 비추라고 붙여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 한사람의 영향력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을 저평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예배에 열심을 내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나 한사람이 1년에 한사람씩만 전도하면 몇 년 가지 않아 우리나라는 온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 한사람이 저녁 예배 참석 안한다고 뭐가 문제가 되겠나? 나 한사람이 새벽예배 안 나간다고 뭔 영향력이 있겠나 생각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나 한 사람이 참석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왔을 때 모여있네 하면서 나도 해야지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일을 간혹 보게 됩니다. ‘나는 간혹 보지 않고 많이 보았어요!’, ‘나 그 사람 보기 싫어서 그 교회 안 나가!’하는 소리가 듣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기 싫은 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 그 사람을 보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어! 나도 더 열심히 교회생활 해야 하겠어’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해야 합니다. 사망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알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이 뚜렷합니다.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 맘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계신가 아니 계신가를 결정합니다. 피조물인 자기를 높이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유혹했던 마귀의 생각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것과 그런 신분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구원을 받게 하시는 예수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생에 답을 얻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로부터 세상은 구원받는 사람이 생겨나게 됩니다. 생명운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의 씨앗이 나를 통해 세상에 전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사람을 만나서 진리를 말해줘야 하고 그 삶에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자신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희생적인 사랑을 주는 한 사람으로 인해서 구원받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자녀 된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이루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성령의 권세와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노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감동하심과 그 은혜가 임하게 될 때 악한 자가 사로잡고 있는 사람을 붙들고 있는 견고한 진이 무너집니다. 인간이 약하게 될 때에 변화를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순간에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그의 영혼이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자가 있는 세상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난 한 사람으로 생명을 얻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의 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 한사람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쓰일까요? 오늘의 나 한 사람, 오늘의 여러분 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받는 상주감리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