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0장(효과 있는 부르심) 3-4항, 25.3.9, 박홍섭 목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0장은 총 4항으로 유효한 부르심을 다룹니다. 1항은 유효한 부르심의 기본설명, 2항은 부르심의 원인과 중생, 3항은 택함을 받은 유아들의 중생, 4항은 선택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오늘은 3항과 4항을 공부하겠습니다.
1항. 하나님께서는 정하시고 용납하신 때에 오직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하신 모든 자만을, 그들이 본성적으로 처해있는 죄와 사망의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와 구원으로,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살후 2:13-14, 고후 3:3, 6) 효과있게 부르기를 기뻐하신다(롬 8:30, 11:7, 엡 1:10-11, 롬 8:2, 엡 2:1-5, 딤후 1:9-10). 곧 그들의 지성을 구원에 이르도록 영적으로 조명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게 하시고(행 26:18, 고전 2:10, 12, 엡 1:17-18), 돌처럼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겔 36:26), 그들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이 선한 것을 향하도록 정하시고(겔 11:19, 빌 2:13, 신 30:6, 겔 36:27),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효과 있게 이끄신다(엡 1:19, 요 6:44-45).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극히 자유롭게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나아간다(아 1:4, 시 110:3, 요 6:37, 롬 6:16-18).
2항. 이 효과있는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롭고 특정적인 은혜에서 비롯되며, 인간 안에서 미리 보신 어떤 일에서도 기인하지 않는다(딤후 1:9, 딛 3:4-5, 엡 2:4-5, 8-9, 롬 9:11). 인간은 성령에 의해 소생되고 새롭게 되어 이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 부르심에서 제공되고 전달되는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전적으로 수동적일 뿐이다(고전 2:14, 롬 8:7, 엡 2:5, 요 6:37, 겔 36:27, 요 5:25).
3항. 택함받은 유아들은 죽을 때, 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으로 역사하시는(요 3:8)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하고 구원받는다(눅 18:15-16, 행 2:38-39, 요 3:3, 5, 요일 5:12, 롬 8:9). 또한, 말씀의 봉사에 의해 외적으로 부르심을 받을 수 없는 다른 모든 택자도 마찬가지이다(요일 5:12, 행 4:12).
4항. 나머지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은 비록 말씀의 봉사에 의해 부르심을 받기도 하고(마 22:14), 성령의 일반적 작용을 어느 정도 경험할 수 있지만(마 7:22, 마 13:20-21, 히 6:4-5), 결코 그리스도께 참되게 나아가지 않으며, 따라서 구원받을 수 없다(요 6:64-66, 8:24). 하물며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은 설령 본성의 빛과 자신들이 고백하는 종교의 법에 맞추어 부지런히 살더라도,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행 4:12, 요 14:6, 엡 2:12, 요 4:22, 17:3). 그러므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단언하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해롭고 가증스러운 일이다(요이 1:9-11, 고전 16:22, 갈 1:6-8).
해설
1. 신앙고백서 제10장이 다루는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effectual calling)은 다른 말로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도르트신조). Sproul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부패한 본성의 저항을 이기고 생명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은혜이기에 효과적인 부르심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합하여 ‘효과적인 은혜’라고 부르는 게 적절하다고 말합니다(사 55:10-11,Sproul,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2』, 30). 1항의 설명처럼 효과적인 은혜는 오직 택한 자들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은 영아의 구원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효과적인 부르심에서 제외됩니까?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작성된 당시는 오늘처럼 의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유아사망률이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믿는 자의 집안에서 아이가 출생하면서 죽었거나 그 아이가 아직 채 자라기 전에 죽었다면 부모나 가족의 상심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17세기 당시에 이런 유아들의 구원 문제는 중요한 신학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신앙고백서는 성경에 근거하여 이런 답으로 성도들에게 위안을 줍니다. “택함을 받은 유아들은 죽을 때, 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으로 역사하시는(요 3:8)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하고 구원받는다(눅 18:15-16, 행 2:38-39, 요 3:3, 5, 요일 5:12, 롬 8:9)”
3. 유아들 역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앞선 1항은 하나님의 효과 있는 부르심을 “그들의 지성을 구원에 이르도록 영적으로 조명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게 하시고(행 26:18, 고전 2:10, 12, 엡 1:17-18), 돌처럼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겔 36:26), 그들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이 선한 것을 향하도록 정하시고(겔 11:19, 빌 2:13, 신 30:6, 겔 36:27),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효과 있게 이끄신다(엡 1:19, 요 6:44-45).”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지, 정, 의가 완전히 자라지 않은 유아들에게 어떻게 이 원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까? 그 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으로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신다.”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신비입니다.
4. 모든 유아가 아닙니다. 택함을 받은 유아들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으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행 2:38-39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니라”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장성한 성인만 아니라 우리 주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이라면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에게 얼마든지 적용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근거해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앙고백서 작성자들은 하나님은 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으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 택함을 받은 유아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중생의 은혜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5. 고백서의 이런 설명은 천주교의 답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17세가 당시 로마 천주교는 아담의 죄책을 가지고 태어나는 유아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세례라고 하면서 유아들에게 최대한 빨리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받지 못한 유아들은 ‘유아 림보’를 통해 해결했습니다(림보는 낙원도 아니고 음부도 아닌 제3의 장소로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는 없지만, 자연적인 기쁨을 최고로 누릴 수 있는 중간 장소였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도들은 ‘선조 림보’에 있고 유아들은 ‘유아 림보’에 있다고 성경에 없는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성경에 없는 림보의 원리로 유아의 구원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고백서 제10장 3항에 따르면 세례를 받지 않은 유아라도 선택을 받았다면 구원이 확실합니다. 그럼 그 아이가 선택받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해 고백서는 직접 답하지 않지만, 도르트신조가 참고가 됩니다. 도르트신조 제1장 17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그분의 말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데, 그 말씀은 신자의 자녀가 거룩하되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모와 함께 참여하는 은혜 언약에 의해서 거룩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는 하나님께서 유아기에 이생에서 데려가시는 자녀의 선택과 구원에 관하여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고재수, 세례와 성찬, 부모들은 확신할 수 있는가? 도르트 신조 제1장 17조의 배경과 의미, p.31-43.)
6. 유아들의 구원에 대한 고백서의 답은 말씀의 봉사에 의해 외적으로 부르심을 받을 수 없는 성인들, 즉 지적 장애인이나 그 밖에 특별한 사정(치매 등)에 처한 자들에게도 같은 원리로 작용합니다. 이를 고백서 10장 3항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또한, 말씀의 봉사에 의해 외적으로 부르심을 받을 수 없는 다른 모든 택한 자도 마찬가지이다(요일 5:12, 행 4:12).”
7.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이 오직 예정 받은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은혜라면,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구원 가능성은 없습니까? 여기에 대해 고백서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4항을 보십시오. “나머지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은 비록 말씀의 봉사에 의해 부르심을 받기도 하고(마 22:14), 성령의 일반적 작용을 어느 정도 경험할 수 있지만(마 7:22, 마 13:20-21, 히 6:4-5), 결코 그리스도께 참되게 나아가지 않으며, 따라서 구원받을 수 없다(요 6:64-66, 8:24). 하물며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은 설령 본성의 빛과 자신들이 고백하는 종교의 법에 맞추어 부지런히 살더라도,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행 4:12, 요 14:6, 엡 2:12, 요 4:22, 17:3). 그러므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단언하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해롭고 가증스러운 일이다(요이 1:9-11, 고전 16:22, 갈 1:6-8).”
8. 선택받지 못한 자들도 말씀의 외적 부르심을 받고 어느 정도 성령의 일반적인 작용을 경험합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예배를 통해 종교적인 감흥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세례를 받고 직분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기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마 7:22).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행하는 사역과 일들이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그들의 사역은 구원과 상관없는 일반적인 종교의 활동에 불과하며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9. 불교, 유교, 이슬람, 유대교, 힌두교 등도 기독교 못지않은 오랜 역사와 신도 수와 종교적인 열심과 헌신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이런 종교들의 보존과 왕성한 활동은 모두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결과이지 구원을 위한 특별 은총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런 종교들을 통하여 죄에 대해 어느 정도의 경각심을 갖고 도덕과 윤리의 필요성을 깨닫고 일상적인 선과 의를 행할지라도 거기에 생명과 진리와 구원은 없습니다(정요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 상, p.437). 하나님께서 천하 인간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예수 외에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행 4:12).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고 진리고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택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령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고백서 제10장 4항은 여기에 대해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단언하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해롭고 가증스러운 일이다(요이 1:9-11, 고전 16:22, 갈 1:6-8).”라고 아주 단호하고 격정적으로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아무 자격과 조건이 없는 우리에게 이런 일방적인 은혜를 주셨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감사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와 성령의 부르심과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택하시고 효과 있는 부르심으로 불러서 중생시키시며 구원을 주신 삼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믿음에 굳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