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열전 14
제14대 선조(이화)의 여자들
의인왕후 박씨!
인목왕후 김씨!
후궁 6명
공빈 김씨!, 인빈 김씨!
그리고 + 4명
자녀(25명) : 왕자 14명, 공주 11명
경복궁 뜰에서 양팀으로 축구를 해도 될 정도다.
나머지는 주심, 부심, 비디오 분석,
이 분도 일주일이 빠듯하다.
부인들이 여덟이다.
하루는 안식해야 하는데...^^♡
의인왕후 박씨!
명종 10년(1555년) 4월에 나주 박씨
박응순과 전주 이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5세에 18살의 선조와 결혼했다.
대비인 인순왕후는 선조가 명종 국상 중이고
중전을 맞이하기 전에 후궁을 들이면
후사에 복잡한 왕위계승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여자를 멀리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혼인이 늦었다.
그러나...
선조는 이미 소주방(음식 만드는 주방)
나인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이 대목에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
라는 말이 왜 떠오를까~?
후에 임해군과 광해군를 낳은 김상궁이다.
그래서 광해가 튼실했나보다.
엄마가 무수리과여서..
의인왕후 박씨는 성품이 부드럽고,
검소했으며 욕심도 적었고 미인이었다.
하느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 모양이다.
집안 좋고, 맘씨 착하고,
이쁘기까지 한데 하나가 부족했다.
그것은 박씨가 애를 못낳는 석녀라는 것이다.
石女(석녀)!
돌같은 여자?
우짜나... ㅠㅠ
인순왕후인 대비는 어쩔 수없이 선조가
후궁을 들이는 것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공빈 김씨이고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는다.
그러다 선조 10년에 병을 얻어 죽는다.
애 못낳는 의인왕후 박씨는
후궁들이 낳은 자식들을 잘 보살폈다.
그래서 평판이 좋았다.
그러나 그녀의 속은?
잘 모르겠다.
여자가 아니라서... ㅠㅠ
의인왕후 박씨가 후사를 못 이으니 후궁들이
지 애들을 세자로 만들려고 각축전을 벌인다.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는 원래
여우들이 왕노릇 하려는 법이다..
공빈 김씨의 첫아들 임해군은 광폭하고,
둘째 광해는 성품이 온화하여
왕과 왕비는 광해 쪽으로 세자책봉이 기운다.
그런데 인빈 김씨가 왕자 네명과
옹주 다섯명을 낳자 사태가 복잡해진다.
인빈 김씨!
세번째 후궁인데 선조가 매우 이뻐한다.
무신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 방×술?
김씨, 자식 욕심도 대단했다.
꼭 아들을 왕으로 만들겠다는...
결론적으로 나중에 아들 정원군이 낳은
손자 능양군이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다.
"아시 는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원래 권력의 크기는
오너와의 거리에 반비례 한다.
가까울수록 힘을 크게 발휘한다.
인빈 김씨는 선조를 잘 구워 삶았다.
1592년 4월 13일!
일본의 20만 대군이 9개 부대로 나뉘어
조선을 침범하는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도망갈 때
본부인 의인왕후 박씨를 데리고 의주로
간 것이 아니라 공빈 김씨를 데리고 피난을 갔다.
부인들 중에서 제일 이뻐서...?
의인왕후 박씨는 홀로 평안도 강계로 피난을 갔다.
광해는 강원도로...
선조는 도망가면서 후사를 미룰 수 없어
광해를 세자로 책봉한다.
인빈 김씨가 낳은 광해의 라이벌 신성군이
피난 도중 죽어서 대안이 없었기도 했다.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번에도 선조는
본부인 대신 인빈 김씨만을 데리고 피난을 갔고,
본부인 의인왕후 박씨는 홀로 해주로 피난갔다.
"이거 어케하나?"
열받은 의인왕후 박씨!
선조의 박대로 마음고생이 심해서 결국
병을 얻어 1660년(선조 33년) 6월 46세로
소생 없이 한많은 이 세상을 떠난다.
아~ 불쌍한 의인왕후 박씨여,
박복하구나!
박씨라서 그런가? (농담하면 안되는데..ㅠㅠ)
남편 복도, 자식 복도 없다.
궁궐이 깜방과 뭐가 다를 바가 있겠는가?
선조가 괘씸하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나쁜 선례를 남겼고 조강지처에게도 잘못했으니
후세에 두고 두고 욕을 먹어도 싸다.
후임으로 들어온 왕비는 저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목왕후 김씨다.
인목대비로...
인목왕후 김씨!
선조 17년(1584년) 11월에 태어났다.
김씨가 중전으로 들어올 때는 19살이었고
선조는 51살이었다.
나이차가 엄청나다.
선조는 좋았겠다~~^^♡
선조 사이에 적장자인 영창대군을 낳는다.
아들이 대군이지만 이미
광해가 세자로 책봉되어 있어 희망이 없었다.
나중에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는
적장자의 위협을 느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서궁에 유폐시킨다.
영창대군은 나이 아홉에 찜질방(?)
고온방에서 새까맣게 타서 죽는다.
참 권력이 뭔지! ㅠㅠ
서인들은 광해가 대비를 유폐시킨다는 것은
성리학을 숭상하는 조선에서 천륜을
어긴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반정의
구실로 삼는데 이것이 바로 인조반정이다.
인목왕후 김씨,
반정이 성공하자 38가지의 죄목으로
그녀는 광해를 죽이기를 원했는데 아들
영창대군을 죽인 원수를 갚으려고 한 것이다.
(친정 부모형제 복수도 함께.)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실권은 서인들이 가지고 있으니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딸 정명공주를 홍주원에 시집보내고
사위를 아들처럼 의지하고 살았다.
다행히 인조반정으로 대비로 복위했던
김씨는 1642년(인조 10년)
6월 49세로 한많은 세상을 떠난다.
참 선조의 부인들은 복들도 없다.
아니면 선조가 처복이 없는 걸까~~??
선조는 중종과 창빈 안씨 소생의
덕흥대원군의 세째 아들이었다.
하성군 시절 명종에게 귀염을 많이 받았다.
사리가 밝고 똑똑해서
위의 두 형을 제키고 왕이 된 것이다.
두 차례의 전쟁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당했고 당쟁이 심화된 시기의 왕이었다.
다행히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있어 조선을
구했지만 질투심이 강해 이순신을 핍박했다.
여자의 질투는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남자의 질투는
칼부림이 나고 전쟁이 되기도한다.
원래 질투는 못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남이 잘날 때 질투심이 생기면 자신을 성찰해 보라.
그 질투심을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고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질투!
다 쓸모없으니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자!
大林小用 小林大用
(대림소용 소림대용)
큰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작은 일에 쓰면 안 되고
반면에 능력이 부족한 자를 큰 자리에 앉히면
조직이 망가짐을 경계한 말이다.
삼국지에 보면,
방통이 노숙의 추천서를 들고 유비에게 왔다.
좀 생긴 게 그렇다고 큰 인재를
뇌양현이라는 작은 고을 현령으로 보낸다.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유비의 인재를 보는 눈이 약해서..
반면에 깜량이 안 되는 인물을
높은 자리에 올려도 안 된다.
대표적인 것이 왕위세습이다.
無德ᆞ無才ᆞ無知ᆞ無勇
(무덕ᆞ무재ᆞ무지ᆞ무용)한 자를
요직에 앉히면 그 조직은 망가지는 것이다.
유비의 뒤를 이어 촉황제에 오른 유선,
황제의 깜량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유비가 임종할 때
제갈공명에게 하다가 안 되면 아들 대신에
제갈공명이 촉을 접수하라고 했겠는가?
애비임에도 불구하고...
선조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머리도 좀 돌아가고 글도 좀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인품이 영 그렇다.
이순신 장군의 공을 질투해서 옥에 가둔 것도
한심하고 본부인에게 한 짓도 그렇고..
좀 거시기(?)한 분이다.
명종과 의인왕후가
인재를 보는 눈이 부족해서였을까?
후계자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선택!
정말 잘해야 한다.
아버지를 잘못 선택한 울 아들,
우짜나?
지는 재벌 2세가 되길 원하는데
애비는 돈 벌 생각이 없으니..
''긍게 잘 선택해서 태어나지 그랬어?"
내일 또 계속됩니다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