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명 수군 제독 진린 길들이기
거금도의 일출
아들아, 아빠가 이번엔..고흥에 가서 만났던 또 하나의 역사 이야기를 풀어주려한다.
전남 고흥군은 남해안의 서남부..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흥반도와 주변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란다.
고흥반도의 서남쪽 끝에는 거금도란 섬이 있고, 거금도는 완도 관할의 금당도와
고금도와 연접해 있단다.
지도를 보면..고흥반도의 끝부분 도양읍에는 옛 전라좌수영 소속 종4품의 무관인
녹도만호가 관할하는 녹도진(鹿島鎭)이 있었고, 고흥 도양읍과 거금도의 중간에는
작은 섬이 있으니..그게 바로 소록도란다.
거금도 서쪽에 있는 완도에 딸린 섬, 금당도도 보일 것이다.
거금도의 옛 이름은 절이도(折爾島)라 했고, 옛날 군마를 기르던 목장이 있었고,
작은 성터의 흔적이 있다는 구나.
절이도 해전도
거금도와 소록도, 도양읍 그리고 고금도 서쪽의 금당도 까지..
이 해역은 1598년 7월, 절이도 해전의 현장이었단다.
1597년 9월, 명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칠천량해전에서 전멸혔던
조선 수군함대를 수습해서 겨우 13척의 전함으로 적선 30여척을 격파하고
130 또는 330여척의 왜 함대를 몰아낸 기적의 승리를 이루셨단다.
그리고 약 1년에 가까운 기간에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전북 군산의 고군산군도까지
함대를 북상시켰다가 남하하여 해남의 전라우수영지를 회복하고, 3도 수군통제영을
완도와 전남 강진 사이 고금도에 두어 조선 수군함대를 재건하여 판옥선 약 80여척까지
전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했지.
도도 다카도라와 가토 요시아키가 이끄는 왜 수군함대 1백 여척이 고금도의 조선함대를
기습하고자 넘어왔지만,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왜 수군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금당도에
우리 수군함대를 전진 배치하고, 절이도 해역에 함대의 일부를 복병으로 숨겨두어
일시에 왜 함대를 들이치니..
왜 수군은 약 50여척의 함대가 격파되고 수군 수천명을 잃고 쫓겨났지.
충무공 이순신 제독 (아산 현충사)
절이도 해전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가 있는 전투였단다.
먼저 명량해전 후 전력을 회복한 조선 수군의 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절이도 해전은 명량해전 이후 조선과 왜 함대 사이에 벌어진 최대 규모의, 가장 치열한
해전으로..그 해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남해바다의 제해권을 조선 수군이
다시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조명연합수군의 최초 승리라는 것이다.
그런데..조명연합수군 최초 승리라지만, 사실상 이 해전에서 명 수군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구경만 했으며, 전투 후 조선수군의 전공을 가로채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지.
아들아, 아빠가 네게 하고 싶은 말은..단순히 절이도 해전을 소개하려는게 아니라,
연합군으로 참전해 놓고, 걸림돌만 되고..껄끄러운 존재인 명 수군을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관심있게 한번 보라는 것이다.
1598년 7월 16일, 명의 수군도독 진린(陳璘,1543~1607)은 휘하장수인
총병 등자룡(鄧子龍,1531~1598)과 더불어 5천의 수군을 이끌고 고금도 삼도수군통제영에
합류했단다.
그런데..명 수군을 이끄는 주장인 진린이란 사람, 대단한 사람이었지.
좋은 의미말고..나쁜 의미로. 아주 오만하고 성질 사납고, 거기에 탐욕도 대단했지.
7년 조일전쟁 때 참전해서 들어온 대다수 명나라 장수들이 그랬듯이..일명 '갑질'을
심하게 했단다.
명 수군 제독 진린
어떤 갑질을 했냐면..당시 전시재상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던 서애 류성룡 선생이 쓴
징비록에 나오는 얘기가 있다. 진린의 부하장수가 명 사신과 명군을 접대하던 업무를
하던 조선의 관리, 찰방(종6품 외관직) 이상규의 목에 새끼줄을 매어 끌고 다녀서
피투성이가 되어 그 모습이 처참했지.
그리고 남의 나라 관리들을 무슨 개, 돼지 취급하며 구타하는 등 행패부리기 예사였지.
보다 못해..류성룡 선생이 통역을 통해, 중단할 것을 부탁했지만, 들은척도 하지 않았고
그냥 무시 당했단다. 한 나라의 재상이 직접 부탁한 것인데도 말이다.
서애 류성룡 선생은 이런 진린 제독이 이끄는 명 수군이, 과연 조선 수군과 연합해서
제대로 싸울수나 있을런지..강직한 원칙주의자, 지나치게 꼿꼿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
저런 위인인 진린 제독과 화합할 수나 있을런지..잘못되어서 또 화(禍)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단다.
하지만..또 누구도 쉽게 생각지 못한 반전이 벌어졌어.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 그 어지간한 선조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한 성깔을 가진
진린 제독을 어떻게 휘어 잡았는지, 그 얘기를 한번 들어보려무나.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명의 수군 진린 제독을 맞아 그야말로 상상 외로 융숭한 대접을
하며, 그들의 환심을 샀단다.
안그래도 나라에서 지원 받는 것은 없이 농사짓고, 소금 생산하고 그렇게 군비를 마련해
나라에 물품을 바치고 또 명나라 군에 제공할 군량도 바치고 전선과 화포, 총통 만들고..
우리 수군들도 먹여 살리고.. 그 빠듯하고 없는 살림에도 말이다.
몇번이나 주연을 베풀면서 그들의 인간적인 호의를 샀지.
게다가 또 수군에게 가장 중요한 전함, 우리의 판옥선 두척을 명 수군에게 주었고,
그것은 명 수군제독 진린의 기함이 되고 또다른 한척은 등자룡 총병의 전함이 되었지.
명 수군 함선보다 더 크고 뛰어난 전함이니까..많이 기쁘고 고마웠을거야.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진린 제독이 어디 이뻐서 그렇게 했겠느냐..다 깊은 뜻이 있었지.
그 다음엔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조선 수군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줬어.
바로 절이도 해전에서. 명 수군은 전력도 변변찮아 조선 수군보다 더 나은 것도 없었고,
군 기강도 무너진채로 실전에서 큰 도움이 안되는 존재, 그래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명 수군이 합류한지 겨우 사흘 밖에 안되었으니 쉬면서..지켜보라 했지.
그리고 조선 수군의 실력을 보였단다. 또 이후 여러 해전에서 위기에 처한 진린 제독과
명 수군을 여러번 조선 수군이 구출하며 신뢰를 쌓았다.
진린 제독이 그걸 보고 자신이 전공을 세워 출세하려면 조선 수군과 함께 해야만 한다..
그것을 느끼게 했지.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또 명군이 활약이 없어 심통난 진린 제독에게 계속해서
조선 수군이 애써 취한 전리품들을 계속 보내어 그의 전공으로 돌렸단다.
이 과정에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공식적으로 명나라까지 보고되는 전황보고서,
그리고 진짜 전황과 전공을 기록한 별도의 보고서를 올렸지.
그러니까 명 수군 제독 진린의 전공은 사실상..그의 것이 아니라, 조선 수군의 전공이고
진린의 전공보고서는 허위보고이니..
경우에 따라서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조선 조정의 마음에 따라, 진린 제독의 신상에도
큰 영향이 있을 수 있는 문제가 되는 것으로, 진린 제독의 약점을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
쥐었다는 것을 의미해.
아들아, 이런 과정을 거쳐서..명 수군 제독 진린은 어떻게 변해갔는가 하면,
그가 충무공 이순신 제독을 보는 눈이 속국의 일개 장수, 부하가 아니라 동료이고,
뛰어난 인품과 실력을 가진 대단한 장수로 평가가 바뀌고,
충무공 이순신 제독을 이야(李爺)라 호칭하는데 야(爺)는 어르신이란 뜻으로
중국인에게 대단한 존경의 의미를 담은 말이지.
또한 걸을 때도 그가 앞에, 이순신 제독은 뒤에 걷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걷는 모습으로
바뀌었지.
명 수군이 그들의 지위만 믿고 조선 수군과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조선 수군의
지휘권을 다 넘겨라 이런 말이 나오므로 이 충무공은 조선 수군에게 철거령을 내리자
진린 제독이 놀라 만류하면서 휘하의 명 수군의 행패를 단속하고 조선수군을 차별
대우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조선 수군의 지휘권에 대한 존중의 약속도 하게
만들었지.
조선의 국왕 선조도 무시하는 진린 제독이 충무공 이순신 제독만큼은 존경하고
또 한수 양보하게 만들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또다른 얼굴을 볼 수 있는 일화라 하겠다.
팩션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속의 진린 제독
진린 제독은 다른 명나라 장수들이 철수하는 왜군을 공격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의지를 알고..협력하기로 결의했단다.
노량해전 직전에는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충무공 이순신 제독에게 불길한
일이 있을 것같아 걱정하며, 이를 알렸고..명의 황제 신종, 만력제에게 청하여
선조가 이 충무공을 시기하여 걱정되므로 명의 신하로 삼으라고 주청하기도 했지.
그리고 그렇게 진린 제독은 드디어 이 충무공의 동료가 되어 마지막 노량해전을 함께
치루었지.
치열한 전투 중에 진린 제독의 전함이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자 조선 수군이 돌격하여
그를 또다시 구원했고, 전투 후에 진린 제독은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전사를 알게 되자
대성통곡하면서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추모하는 모습을 보였단다.
아들아, 지금 우리는 남북한과 대미,대중관계 등 동북아 정세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순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변덕이 심하고 예측불가한 성품의 북한과 미국 지도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또 우리의 국익에 보탬이 되도록 만들 것인가 이것이 관건이 되겠는데..
어쩌면 그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역사의 사건이..
바로 일명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명 수군 제독 진린 길들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먼저 우리가 가능한한 최대의 진심을 다해 그들의 호의를
얻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가치와 능력을 알게 하여, 우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
시켜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고.
7년 조일전쟁 기간중에 명이 우리를 따돌리고, 일본과 화의를 추진하면서 심지어
우리의 하삼도를 일본에게 넘기려 했던 사례가 있었음을 떠올려 생각해 보자.
당시 선조와 조선 조정에서 했던 것 처럼..대국에 기대어, 그들의 호의만을 바라고
그들의 처분에만 따르는 그런 처신을 보였던 이에게 우리가 배울 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과 강대국의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아들아, 아빠는 지금 중요한 이 시기에 대통령과 외교라인 당국자들이 '이 충무공의
진린 제독 길들이기' 이 고사를 잘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성자: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