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는 대신 오랫동안 살던집을 뜯어 고치는 리모델 결정을했다.
집은 작지만 4ㅡ5명 살기에는 별 불편없어 적당하다고 쭉 여겨왔다. 생각보다 견적가격이 높아아들은 가족의 일원으로 유념하뎌 거금을 내 놓아 비용을 거들었다. 노인층 부모님들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서 지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아들의 지론은 숨은 효심이 었다. 아들의 속마음을 또 한번 짚어보게 되었다.
3개월 넘게 지속되는 공사는 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나는 지치고 지쳤다. 잠자리가 어지러우니깐 정신적으로 피폐되여 가는것 같았다. 낯선 신발들이 밟고 오가는 소리, 뜯고 망치질 요란한 소음들로, 세상먼지 다 우리집에 모여있는 감이 들 정도였다. 나는 밖으로 돌았지만 아침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일꾼들을 들어 오게끔 문도 열고 통로를 펼쳐놓아주어야하고
하루종일 어수선 소음 먼지속을 들랑거려야 하는 압박감이 나를 조여왔다.
손때가 묻은 엉망인 살림 도구들이 즐비하다. 어지럽구나 그리고 버릴것이 많구나! 이제는 정리를 해야할 때가 왔구나 싶었다.
그날도 마침 아침나절에 나갈 시간이 바빠 허둥데는데 요란한 전화 벨 소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센프란시스코에 살고있는 딸이었다. 고조된 딸의 음성이 좋은 일을 직감케 했다. ' 엄마, 에이젠트의 결정이 내렸어. '출판하기위해 함께 일하자고. 그리고 한강의 작품 한강 <영문판책을 보내왔어.'
나는 숨이 멎는듯했다. 가슴이 벅찼다.
'어머나! 장하다.' 딸아!
예쁜 손녀딸 얼굴이 겹치면서 또 세상에 태어날 외손자를 생각하며 감격에 젖었다.
지나온 딸의 험난했던 학업의 길이 스쳐간다. 얼마나 집요하게 피나는 노력을 했던가?
하루도 쉼 없이 달려온 이민 2세의 지난날들이 겹친다. 컴프터. 스마트 폰 때문에 한국이나 미국이나 소설이 출판 되기는 아주 힘들다고 하는데 드디어 내 딸은 해 냈구나 싶었다.눈물이 핑 돈다.
딸애는 중학교 2학년을 끝내고 동부 엔도버에있는 필립스 아카데미 학교로 유학을 갔다.
양보모가 일을 해야하는 이민 생활이라는 환경 속에서 딸의 향학열은 대단했다.
어린딸을 3천리 밖으로 내 보내는, 비행기로 6시간 타고 보스톤에서 내린 어린 딸의 담력을 상상해본다.
나는 근 6개월 동안 고뇌에 차 경험많은 선험자 선배, 알만한사람들과 의논을하고 또 했다.
허나 딸애의 결단을 받아드려야 했던것은 또 여러 사람들의 판단은 명석하고
특이했다. 어릴 때부터 지켜본 딸에 대한 나의 판단은 딸이지만 믿고 밀어줘도 틀림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결정이 난 후 딸에 정신적 인내를 키우기위해 3개월동안 뜨개질 과 재봉틀 일을 하게했다.
원피스를 예쁘게 만든것을 대학교 입학원서에 첨부했다. 요구에 따라.
아이비리그 대학교 9군데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땐 하늘을 붕붕 나르는 기분이
였다고 딸이 표현을 했던 그 때 그 고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뜨개질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필립스 아카데미는 상상을 초월한 상류층의 학교이다. 미국 전역에서 또 세계에서 온 내노라
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명문의 학교다. 대통령부시가에도 이 학교 출신이 여럿있다. 주류속에서 경쟁 하느라 어느 땐 눈이 펑펑 쏟아지는 무릎까지 온 눈을 밟으면서, 눈을 해치며 도서관에서 밤 1시, 늦게 기숙사에 오면 너무 힘들어 침대에 엎드려 엄마! 소리치며 울었다는 딸의 고백 말이 귀에 쟁쟁 남아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절였는지 그때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딸애는 하바드 대학을 거쳐 전액 장학생으로 노들댐 대학원에서 일등을 해
거금 $20000을 받고 (양지의 노인을 쓴 작가 선배의 격려금. 해마다 일등에게 지급되는 금액) 힘든 작가의 인생길로 접어 들었다. 어느 때는 며칠동안 감자만 먹고 지냈다는 기막힌 얘기를 들었을 때 세상 어미들의 눈물뿐이었을 게다.
지혜와 경험을 담아 그 숫한 시련을딛고 두번째 책을 세상에 내 논는다니 감격이다. 감개 무량 하구나! 다음 소설은 영혼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젊은이들에게 사색을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좋은 작품을 쓰기를 기도한다.
'엔젤라' 화이팅!
들리지 않지만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를 힘껏 지른다.
대견스러움이 내 몸 구석구석 스며든다. 난장판 어지러운 집수리 공사장은 멀리, 눈에도 귀에도 들리지 않는다. 인생의 추운 겨울에도 딸은 늘 상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