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무치에서 카스까지, 그 방대한 여정을 준비하던 순간부터 걱정은 이미 짐 속에 먼저 들어가 있었다.
쉽지 않은 일정과 적지 않은 인원. 누군가의 작은 불편이 전체의 공기가 되고,
한 사람의 피로가 열 사람의 표정으로 번지는 단체 여행의 속성을 잘 알기에,
출발 전부터 마음 한켠에는 묵직한 돌멩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중국을 여행한다는 것,
특히 신장위구르의 땅을 걷는다는 것은 그 대지가 품은 복잡한 결들을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도처에 드리운 통제의 그림자와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지층 같은 갈등들.
그것을 외면한 채 그저 풍경만을 소비하는 것은 이 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불어오듯, 이 땅의 거친 역사도 그렇게 우리 곁을 서늘하게 스쳐 지나갔다.
타클라마칸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사막 횡단도로는 끝없이 이어졌다.
버스 창밖으로 모래언덕이 파도처럼 물결치고, 좌석 등받이에 기댄 몸은 고스란히 노면의 진동을 받아냈다.
식사 시간이 미뤄지고, 예정된 경로가 바뀌며, 때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낯선 길로 꺾어지는 상황,
여행이란 본디 혼돈을 기꺼이 마주하는 일이라 스스로를 달랬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체력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말을 타고 달리며 산을 바라본다는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는 말이 이토록 정확하게 들어맞는 여정이 또 있을까.
눈이 풍경을 다 담기도 전에 발걸음은 이미 다음 장소를 향해야 했다.
석두성(石頭城) 유지의 황량한 흙빛 성벽 앞에서, 무즈타그아타의 서늘한 만년설 아래에서,
그리고 라왁 사리탑이 품은 천년의 침묵 속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을 해야 했다.
아쉬움을 음미할 여유조차 사치였던 혼돈과 이동의 연속.
그 격렬한 리듬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이 여행의 속도에 몸을 맞춰갔다.
늦은 밤 도착한 숙소에서의 잠은 늘 짧았다.
몸을 제대로 뉘기도 전에 새벽이 창문을 두드렸고, 다시 캐리어를 꾸려 어둠 속으로 나서야 했다.
육체가 갈리는 것인지 정신이 닳아지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밤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지독한 피로의 한가운데서 오히려 선명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고단함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자 감각은 도리어 날카롭게 깨어났다.
카스 구시가지 골목에서 마주친 이국적인 얼굴들, 시장에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쌓여 있던 수박 더미,
국경 너머로 아득하게 이어지던 파미르의 장엄한 능선—그 파편들이 유독 또렷한 낙인처럼 마음속에 남았다.
마지막 밤이 지나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여행 가방을 꾸리는 손길이 평소보다 무겁고 느렸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기억들을 하나씩 접어 넣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는 순간, 묘하게도 이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 그 거친 길 위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더 깊고 긴 여행이 시작됐다.
자료집 속에 갇혀 있던 딱딱한 활자들과, 두 눈으로 마주했던 압도적인 풍경들을 하나씩 꺼내어 맞추는 일이다.
활자 위에 풍경을 얹고, 풍경 위에 역사를 채워 넣는 내면의 여정은
실제의 발걸음보다 훨씬 느리지만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롭다.
좋은 여행 뒤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 남는다.
수많은 변수와 무리한 요구 속에서도 끝내 따뜻한 미소와 책임감을 잃지 않았던
가이드 경광 씨에게 이 글을 빌려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낯설고 고된 길을 묵묵히 함께 걸어주신 동행자분들께도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함께 나눈 고단함과 웃음, 그리고 광활한 대지 앞에서 공유했던 잠깐의 침묵들이,
언젠가 삶의 어느 무심한 오후에 문득 떠올라 작은 위로이자 기쁨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길 위의 여정은 끝났다.
그러나 이 여행은 이제, 우리 각자의 안에서 비로소 시작되어 계속 흘러갈 것이다.
마실정회동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여행때놓친걸 글을보며
채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작가님, 신장여행관련 한권의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항상건강한 모습으로 많은 여행후기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