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쪽 그림은 신고전주의파의 대가 앵그르가 그린 오달리스크고, 아래 쪽 그림은 신윤복의 미인도다.
위 두 그림을 보고 당신이 뭘 느낄까.
먼저 두 여인의 공통점은 양반이나 귀족의 신분이 아니고 신분이 천한 여인이라는 점이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Odalisque)'란 이슬람의 오스만제국의 황제 술탄의 시중을 들던 여자노예나 술탄의 쾌락을 위해 하렘(harem)에 머물던 후궁들을 뜻한다.
단지 후궁들의 시중을 들던 여자노예를 뜻한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지체 높은 귀부인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앵그르가 나신 裸身의 오달리스크를 그린 때가 1814년이다.
고야가 그 말썽 많은 마야부인을 그린 때가 1800년이므로 오달리스크는 이보다 10년도 더 뒤에 그린 그림이다.
1800년에 벌써 마야 부인이 다 벗고 나왔으니 오달리스크는 이에 비하면 한 참이나 뒤처진 셈이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나신의 뒤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보다 앞선 고야의 마야 부인보다 오히려 덜 개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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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벗은 마야부인
앙드레 말로가 마야부인을 보고「추하지 않고 에로틱하게 그려진 최초의 유화」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더 섹슈얼리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궁금하지 않다.
(앙드레 말로 정도되니 이렇게 말했지 이 그림이 발표될 당시 아주 난리가 났었다).
관심은 오달리스크와 미인도다.
오달리스크(몸종)을 그린 화가는 많다. 그중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를 가장 첫번째로 쳐준다.
허리가 길어 관능적이고 그래서 더 감각적인 포즈, 그리고 섬세한 붓 터치 때문이다.
누군 말한다.
앵그르는 욕망의 대상으로 여인의 나신을 그렸으나 신윤복은 여인 자체를 그렸다.
그래서 앵그르의 여인은 남자가 언제나 소유할 수 있으나 신윤복의 여인은 남자라로 함부로 소유하지 못한다고....
아마도 오달리스크는 나체를, 신윤복의 미인도는 성장은 아니라도 옷을 갖추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누군가는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남자의 우월적 시선으로 그렸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시선은 다분히 폭력적이다.
특히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다른 화가의 오달리스크에 비해 상당히 도발적이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를 보아라.
오달리스크는 한 점 망설임도 없이 화가와 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오달리스크에게 부끄러운 점도 없다.
오달리스크는 말한다.
너를 유혹은 하지만 쉽게 휘둘리지 않겠다. 내 뒤나 보다가 가거라...
금방 손부채를 들어 나갈 곳을 가르킬 것만 같다.
그래서 잘 그려진 그림이지만 정감이 없다.
더욱이 더 이상 상상할 것도 없다.
그녀도 내가 별로 겠지만 나도 그녀와 친해지고 싶지 않다.
오리엔탈리즘의 시초로 서양이면서 동양같은 터키 일대의 오달리스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