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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 바를 시
바로, 바르다, 옳다
是의 금문 是의 주문 是의 전문
是의 금문 자형은 早(이를 조)와 止의 합자이며, 주문 자형은 旦(아침 단)과 正의 합자이며, 전문 자형은 旦과 止의 합자입니다. 공동으로 나타나는 日에 특별한 의미나 어기가 있는 것은 아니며, 足에서 파생된 正에 구분자로 덧붙인 것입니다. 是의 가장 대표되는 뜻은‘옳다’이며, 이는 正의‘바르다’의 또 다른 뜻이며, 正에서 구분자 日로‘바로(/다름이 아니라 곧)’의 뜻도 나타냅니다.
是非(시비 ; 옳고 틀림)과 正否(정부 ; 바르고 그렇지 않음)의 두 예에서처럼 正이 절대적인 ‘바름’의 뜻이라면 是는 상대적인‘옳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是認(시인 ; 어떤 내용이나 사실이 옳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함 ; 옳다고 인정하다), 是正(시정 ;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 옳고 바르다), 實事求是(실사구시 ;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 ; 실과 사로 옳음을 구하다) 등에서도 是가‘옳다’의 뜻입니다.
國是(국시 ; 국민의 지지도가 높은 국가 이념이나 국가 정책의 기본 방침), 校是(교시 ; 학교의 기본 교육 방침) 등에서는 是가‘올바르다(/[북한어]옳바르다)’로 쓰였습니다.
亦是(역시 ; 어떤 것을 전제로 하고 그것과 같게), 或是(혹시 ;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일에), 必是(필시 ; 아마도 틀림없이), 本是(본시 ; 처음부터 또는 근본부터) 등에서는 是가‘올바로(/[북한어]옳바로]’로 쓰여,‘바로’의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色卽是空(색즉시공 ; 현실의 물질적 존재는 모두 인연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서 불변하는 고유의 존재성이 없음을 이르는 말)은‘색이 곧 바로 공이다’의 뜻입니다.
是가 지시사(指示辭)로 사용되면, 此(이 차)가‘쪽 긋다’라는 구체적으로 표시된 위치로부터 비롯된 반면, 是는 旦과 止의 합으로‘밝음이 머무는 곳’,‘밝은 상태’로 관념적인 지시(指示)를 나타냅니다. 彼此(피차)의 예에서처럼 근칭의 지시사 此는 원칭의 지시사 彼에 대응되지만, 是는 대응관계를 가지지 못합니다.
주관적인 관념을 글자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글자란 어디까지나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말, 즉‘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뜻’의 모방이어야 합니다. 절대적인‘바름[正]’과 관념적인‘옳음[是]’에 각기 해당하는 독특한 표현이 말로 구현되고 있어야만 구분된 글자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是는 처음부터 지시사로 비롯된 글자가 아닙니다.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書經』
덕(德)이 있어야 이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어야 이에 토지가 있고, 토지가 있어야 이에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어야 이에 쓰임이 있다.
상기 서경(書經)의 예문에 사용된 此는 접속부사로‘이에, 이리하여’의 의미입니다. 만약 此를 是로 바꾸어,‘有德是有人’로 한다면‘有德’이‘有人’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어기가 발생하여,‘덕이 있어야 바로 사람이 있게 된다.’는 뜻을 나타내게 됩니다. 확인된 진실이나 진리가 아니라, 관념적인 가르침을‘직접적인 원인’의 방식으로 나타낸다면, 문맥이 조금은 어색해지기도 합니다.
日月·星辰·瑞曆, 是禹舜之所同也. 『荀子』
해, 달, 별의 순환은 바로 우순(禹舜)의 때와 같은 바인 것이다.
상기 순자(荀子)의 예문에 사용된 是를 기존의 문법에서는 근칭의 지시사로 취급하고 있지만,‘是 A 也’는 강조용법으로‘바로 ~인 것이다’의 뜻입니다.
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 是故古之王者 建國君民 敎學爲先. 『禮記』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으며,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바로 그래서 옛날의 왕자(王者)는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다스릴 때 교학(敎學)을 우선으로 삼았다.
상기 서경(書經)의 예문에 사용된‘是故’를 기존의 문법에서는 ‘이런 까닭으로, 이로 인해’ 등으로 풀이합니다. 是를 지시사 ‘이’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是가 나타내는 바는 앞의 말을 다시 한 번 더 노출(露出)시킴으로서 강조하는 역할로‘바로’의 뜻입니다.
唐棣之華여 偏其反而로다 豈不爾思리오마는 室是遠而. 『詩經』
당체(唐棣)의 꽃잎 나부껴 그렇게 반들거리는데, 어찌 그대가 생각나지 않으리오. 집이 바로 멀 뿐이네.
상기 예문의 是를 기존의 문법에서는‘목적어 도치의 표시’라든지,‘직접적인 뜻을 가지지 않고 어세를 조절하는 역할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도치되었음을 나타내는 표시기호’,‘해석되지 않는 부호’와 같은 개념은 사람의 말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문법이라면 이 문자언어는 처음부터 사람의 말이 아닌 수학과 같은 공식을 위한 도표로 만들어 졌다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是는‘바로’의 뜻으로 상태를 한정하거나 제한하는 역할을 합니다. 배달말에서만 직해 가능한 문장입니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孟子』
하늘이 장차 큰 품을 바로 사람에 내리려 함에야.
상기 예문에 사용된 是는 모든 풀이에서 한 결 같이 지시사‘이’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첫머리에 바로 나오는 것으로‘이, 이것’으로 지시할 수 있는 특정의 사람이 앞부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是는 부사‘바로’의 뜻이며, ‘곧장, 그대로 곧’정도의 어기를 나타냅니다.
바로 (1) 특정한 대상을 집어서, 다른 것이 아니라 곧.
(2) 정해진 격식이나 규정에 맞도록 제대로.
(3) 시간적인 간격이 없이 곧.
(4) 도리나 진실에 벗어나지 않게.
(5)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아주 가까이.
(6) 비뚤어지거나 굽지 않고 곧게.
(7) 사실 그대로.
이상(以上)의 예문 외에도 是는 각기 다른 뜻으로 풀이되고는 있지만, 배달말의‘바로’에 모두 국한됩니다. 따라서 是는 배달말의‘바로’를 나타낸 글자인데, 중국어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지시사로 잘못 오역된 것이며, 그 오역이 그대로 이 땅에 전해지는 해프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는 ‘밭다’에 조사 ‘-로’가 결합된 형태인 ‘밭로’에서 ‘ㅌ 자음탈락’을 일으킨 것입니다. 유사한 예로 ‘홀로’는 ‘홑으로’에서 ‘ㅌ 자음탈락’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하 是에 의하여 파생된 다른 글자들에서는 是가 ‘밭다’의 소릿값을 나타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寔 이 식
바투
寔의 전문
寔의 전문 자형은 宀과 是의 합자입니다. 宀은 집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宇(집 우), 室(집 실), 宅(집 택)에서처럼 직접 집을 뜻을 나타내기도 하며, 다른 글자의 요소로 사용될 경우에는‘처해 있는 입장, 상태’등의 어기를 나타냅니다. 正이‘바르다’의 뜻에서 宀을 덧붙인 定은‘正의 상태/正에 처해지다’로‘정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寔도 是에 접사가 덧붙여진 형태로‘밭다’의 소릿값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순우리말‘바로’의 어원도‘밭다’에 있습니다. 일례로‘손바로(/손이 닿을 만한 가까운 데)’의 북한어는‘손바투’이며,‘바투’는‘밭(/다)+우’가 자음접변을 일으킨 결과입니다.
밭다 (1) 시간이나 공간이 다붙어 몹시 가깝다.
(2) 길이가 매우 짧다.
(3)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심하거나 먹는 양이 적다.
바투 (1) 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
(2) 시간이나 길이가 아주 짧게.
及夫日身罪斃之後, 迷不知變, 致使楊根一境, 愚惑訛誤, 寔繁其徒. 『純祖實錄 1年 2月 26日』
대저 권일신이 벌을 받아 폐한 후에 이르러서도 미혹하여 변개를 알지 못하였는데, 양근의 한 지경의 어리석은 백성들로 하여금 미혹시켜 잘못되고 그릇됨으로 치닫게 하니, 그 무리가 바투 번다하였다.
簡賢附勢 寔繁有徒. 『書經』
어진 이를 업신여기고 권세에 붙좇으며, 바투 들끓어 무리지어 있다.
用之寔難 已之易矣. 『國語』
쓸 지라면 바투 어렵지만, 끝낼 지라면 쉽겠다.
상기 두 예문에 사용된 寔은 기존의 풀이에서는‘확실히, 정말로’의 뜻으로 새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의‘바투’의 소릿값을 나타냅니다.
현대국어에서‘바투’는 거리나 시간이 썩 짧거나 가까움을 의미하지만,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바짝/바싹’은‘바짝/바싹 긴장하다’의 예에서처럼‘아주, 매우’등의 어기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상기 예문들에서의 寔도‘바투’로‘아주, 매우’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寔景(식경 ; 매우 좋은 경치)에서 寔이‘바투’로‘아주, 매우’의 어기를 나타냅니다.
多士寔寧. 『千字文』
많은 인재(人材)들로 바투 안녕하다.
상기 천자문의 구절에 사용된 寔도‘진실로, 정말로’등으로 풀이하지만, 실제 나타내고 있는 소릿값은‘바투’로 여기서는‘조금도 빈틈없이 가득하게’정도의 어기(語氣)를 띠고 있습니다.
寔來者何? 猶曰是人來也. 『公羊傳·桓公六年』
‘바투 왔다/식래(寔來)’라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사람이 왔다는 것과 같다.
상기 예문의 寔을 기존의 풀이에서는 지시사‘이, 이것’의 뜻으로 봅니다. 다음에 이어지는‘是人’을‘이 사람’으로 풀이합니다. 하지만 이는 둘 다 오류이며,‘寔來’란‘바투 오다’로 망설이거나 지체함이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왔다는 뜻이며,‘是人’에서의 是도 지시사가 아니라 부사‘바로(/곧장, 그대로)’의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湜 물맑을 식
바투바투
湜의 전문
湜의 전문 자형은 水와 是의 합자이며, 水는 流의 축약으로‘흐름’의 뜻을 나타내며, 是의‘바투[/→바루→바로]’와 더하여,‘바투바투’의 뜻을 나타냅니다.
바투바투 (1) 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아주 썩 가깝게. 또는 모두 다 사이가 썩 가깝게.
(2) 시간이나 길이가 아주 짧게. 또는 모두 다 시간이나 길이가 아주 짧게.
(3) 물이 많지 아니하고 매우 적게. 또는 모두 다 물이 많지 아니하고 적게.
상기‘바투바투’에 대한 국어사전의 정의는 현재 사용되거나 확인된 문헌에 따른 것이며,‘바투’나‘밭다’에는‘더 이상 여지가 없는 상태’의 어기를 속으로 담고 있습니다.
淸湜(청식)은 현재 사전적으로‘물이 맑다’는 식으로 뜻을 풀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맑고 밭다’로 여기서의‘밭다’란‘가득하여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상태’로‘지극히 고요한 상태’정도의 어기를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열이 바치다’란 표현에서‘바치다’는‘거슬리다’의 방언 정도로 정의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밭다’의 활용 형태입니다.
涇以渭濁 湜湜其沚. 宴爾新昏 不我屑以. 『詩經』
경수는 위수로써 흐리고, 바투바투 그 물길. 그이는 신혼에 즐거워 나를 달가워 않는다네.
상기 예문의 湜(물맑을 식)은‘물이 맑다’로 보아,‘湜湜其沚’를‘맑디맑은 그 물가’로의 풀이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앞 구절‘涇以渭濁’는 경수와 위수라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대한 표현을‘바투바투’로 두 물길이 서로 만나 강하게 일렁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여, 이는 자신을 버려두고 다른 사람과 결혼한 임 때문에 생겨난 자신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맑디맑은 그 물가’란 뜬금없는 내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沚는‘물가, 내 가운데 생긴 작음 섬’등의 뜻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止는 제자리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는 상태의 의성의태어를 나타냅니다. 齒에 보이는 止가 아래의 나란히 나 있는 이들이 씹을 때의‘질겅질겅’의 동작을 나타내는 것이며, 肯(즐길 긍)자는 止의 아래에 肉이 붙어 있는 모양으로‘질겅이다’는 어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沚도 물이 물가의 지면에 일렁이고 있음을 나타내며, 앞의‘湜湜’은 배달말의 ‘바투바투’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提 끌 제
밭게 붙이는 손 ; 끌다
提의 전문
提의 전문 자형은 동작이나 행동을 의미하는 手와, 是의 합자입니다. 是의‘밭다(/[북한어] 맺고 있는 관계가 매우 가깝다)’에서 밭는 동작/행위로‘밭아(/다잡아) 붙이는 손’에서‘끌다(/이끌다 ; 목적하는 곳으로 바로 가도록 같이 가면서 따라오게 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提供(제공 ; 무엇을 내주거나 갖다 바침), 提示(제시 ; 어떠한 의사를 말이나 글로 나타내어 보임), 提起(제기 ; 의견이나 문제를 내어놓음), 提案(제안 ; 의안으로 내놓음) 등은 상대방 앞에 직접 끌어와서 바치거나 보여줌을 의미하는데, 여기서의 是가‘밭게(/바싹/썩 가깝게)’를 나타내며, 手로 동작 행위‘붙이다’를 나타내어, ‘끌다’를 의미합니다.
提督(제독 ; 해군 함대의 사령관/조선 선조 때에, 교육을 장려ㆍ감독하려고 팔도에 한 사람씩 둔 벼슬), 提學(제학 ; 고려 시대에, 예문춘추관ㆍ예문관ㆍ보문각ㆍ우문관ㆍ진현관에 둔 정삼품 벼슬) 등의 직급명칭에서 提에 직접 지위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끌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弁彼鸒斯 歸飛提提 民莫不穀 我獨于罹 『詩經』
훨훨 저 떼까마귀, 돌아날며 바특 바특하네, 백성들과는 받지도 않아 나만 홀로 걸리네,
상기 문장의 提는 기존에서는‘새가 나는 모양’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앞의 ‘歸飛[돌아 날다]’는 떼를 지어 맴돌 듯 날고 있는 모양으로‘바특하다(/두 대상이나 물체 사이가 조금 가깝다)’로 是의‘바투’와 같은 뜻이며, 그것이 동작 상태임을 手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題 이마 제/제목 제
머리에 밭다[≒붙다] ; 붙임, 이마
題의 전문
題의 전문 자형은 是와 頁의 합자입니다. 頁은 얼굴 주위의 신체 기관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며, 是의‘밭다’의 옛말은‘다’인데, ‘붙다’뜻으로 쓰여, ‘머리에 붙이다’에서‘제목’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是의‘밭다’가‘받다’로 쓰여, 머리에서 받는 부분으로‘이마’의 뜻도 나타냅니다.
問題(문제 ;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논쟁, 논의, 연구 따위의 대상이 되는 것)는‘물음에 붙임’, 課題(과제 ; 처리하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는‘부과(附課)하여 붙임’, 題目(제목 ; 작품이나 강연, 보고 따위에서, 그것을 대표하거나 내용을 보이기 위하여 붙이는 이름)은 ‘붙이는 목차’의 뜻입니다.
敬差官朴相馨以王事, 出往未還, 遭其母喪, 極用惻然. 喪需題給. 『肅宗實錄 卽位年 11月 17日』
경차관(敬差官) 박상형(朴相馨)이 왕사(王事)로 나아가서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는데, 그 어미의 상(喪)을 만났으니, 극히 측연에 쓰인다. 상수(喪需)는 붙여 주도록 하라.
상기 문장에서‘題給’은‘붙여 주다’를 의미하며, 여기서의‘붙다’란‘어떤 일에 나서다. 또는 어떤 일에 매달리다’의 뜻입니다. ‘그 일에 붙어서 도와라, 힘센 장사 여럿이 붙었지만 트럭은 꼼짝하지 않았다’의 예문에 보이는‘붙다’와 같은 의미로, 제수(祭需)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단순하게 주어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직접‘붙어서’처리하여,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하라는 숙종대왕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앞의 用은‘쓰다’로‘마음이 쓰이다/켜이다’의 뜻입니다.
현재의 국어사전적 정의에서‘題給’은‘제사(題辭)를 매기어 줌’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제사(題辭)는‘관부에서 백성이 제출한 소장(訴狀)이나 원서(願書)에 쓰던 관부의 판결이나 지령’으로, 이 풀이에 따르자면‘[신하의 직급이나 관작의 등급에 따른 원칙에 매기어 주어라’는 식이 되어 전혀 격에 맞지 않습니다.
南方曰蠻 雕題交趾 有不火食者矣. 『禮記』
남방(南方)을 만(蠻)이라고 하며, 이마를 새기고 발을 교차한다. 화식을 않는 경우가 있다.
상기 문장에서 題가‘이마’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기존에는‘雕題’를‘이마에 문신하다’는 식으로 풀이되고 있지만, 雕가‘문신하다’의 뜻으로 쓰이지는 않으며, 실제 뜻하는 바는‘이마(쪽의 머리카락)을 새긴 듯이 하다’로 이마 부근의 머리카락을 마치 면도하듯이 해 놓은 것에 대한 표현이며, ‘交趾’는 ‘깍지다리’로 앉을 때의 모양을 나타냅니다.
匙 숟가락 시
한 쪽씩 받는 것 ; 숟가락
匙의 전문
匙의 전문 자형은 是와 匕의 합자입니다. 匕는 배달말의‘쪽’ 소릿값을 나타내는데, 여기서는‘쪼개진 물건의 한 부분’으로‘일정한 분량’의 어기를 나타내며, 是의 ‘밭다’에서‘받다(/흐르거나 쏟아지거나 하는 것을 그릇 따위에 담기게 하다)’로 쓰여, 한 쪽씩 받는‘숟가락’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받다’는‘뱉다(/입속에 있는 것을 입 밖으로 내보내다)’의 함경도 방언이기도 한데, ‘한 입’의 분량을 함의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匙箸(시저 ; 수저), 匙楪(시접 ; 제상에 수저를 담아 놓는 놋그릇) 등에서 匙가 ‘숟가락’의 뜻입니다.
翨 칼깃 시
밭은 깃
翨의 전문
翨의 전문 자형은 羽와 是의 합자이며, ‘칼 깃, 사나운 새, 사납다’등의 뜻을 나타냅니다.
칼깃 ; 새의 날개의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는 빳빳하고 긴 깃털. 날개의 골격에 직접 연 결되어 단단하며, 새가 양력을 얻어 비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칼깃이란 새의 다른 부분의 깃털보다 유난히 촘촘한 깃털인데, 이 상태를 是의‘밭다’로 ‘빳빳하다(/물체가 굳고 꼿꼿하다)’를 표현한 글자입니다.
睼 볼 제
붙이는 눈매 ; 쏘아보다
睼의 전문
睼의 전문 자형은 시각을 의미하는 目과, 是의 합자입니다. 是가‘붙이다(/남의 뺨이나 볼기 따위를 세게 때리다)’로 쓰여, ‘붙이는 듯한 눈매[目]’라는 것에서‘쏘아보아(/날카롭게 노려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是見 볼 제
붙이는 듯한 견해(見解) ; 쏘아붙이다
是見의 전문
是見의 전문 자형은 是와 見의 합자이며, 見이‘견해(見解)’의 뜻을 나타내며, 是가‘밭다’에서‘붙이다’로 쓰여, 붙이는 듯한 견해라는 것에서‘쏘아붙이다(/날카로운 말투로 상대를 몰아붙이듯이 공격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尢爪是 부축할 제
붙들다
尢爪是의 전문
尢爪是의 전문 자형은 尢와 爪와 是의 합자이며, 尢은 就(나아갈 취)의 축약이며, 是기‘밭다’에서‘붙다’로 쓰이고, 爪로 是의 뜻을 보조하여, ‘붙들다(/놓치지 않게 꽉 쥐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醍 맑은술 제
밭은 술
醍의 전문
醍의 전문 자형은 酒(술 주)의 축약인 酉와 是의 합자이며, ‘맑은 술, 우락’등의 뜻을 나타냅니다. 是가‘밭다(/건더기와 액체가 섞인 것을 체나 거르기 장치에 따라서 액체만을 따로 받아 내다)’로 쓰여, ‘밭은 술’, 즉 걸러낸 술을 의미합니다.
醴酒在室,醍酒在堂,澄酒在下. 『禮記』
예주(醴酒)는 실(室)에 있고, 제주(醍酒)는 당(堂)에 있으며, 징주(澄酒)는 아래에 있다.
상기 예문에서 ‘醍酒’가 ‘맑은 술’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밭은 술’, 즉 정제(精製)한 술을 의미합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澄酒’가 ‘맑은 술’입니다.
일반적으로 청주(淸酒)라고 하면, 다 익은 술에 긴 대바구니 같이 생긴 용수를 넣어서, 그 속으로 밭아 나온 술을 의미합니다. 이런 개념으로 볼 때, 지금의 청주(淸酒)는 일본의 술, 정종(正宗)으로 잘못된 명칭입니다.
醍는‘우락(牛酪)’, 즉 ‘버터’의 뜻도 나타내는데, 이는 是가‘밭다(/액체가 바싹 졸아서 말라붙다)’를 의미합니다.
鞮 가죽신 제
밭은 가죽
鞮의 전문
鞮의 전문 자형은 革과 是의 합자이며, 是가‘밭다(/액체가 바싹 졸아서 말라붙다)’로 쓰여, 가죽을 가공하는 방법을 나타내어, 물기를 바싹 말려 딱딱하게 만든‘가죽신’의 뜻을 나타냅니다.
禔 복 제
밭다(≒바듯하다)
禔의 전문
禔의 전문 자형은 기원(祈願)이나 바람의 뜻을 나타내는 示와, 是의 합자이며, ‘복’의 뜻을 나타냅니다.
是가 ‘밭다’에서 유사한 소릿값과 어기를 가진‘바듯하다(/어떤 한도에 차거나 꼭 맞아서 빈틈이 없다)’의 뜻을 나타내며, 그러한 기원[示]에서‘행복’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와 유사한 글자로는 福(복 복)자가 있으며, 畐(찰 복)도 가득차서 부풀어 있는 주머니의 모양입니다.
堤 둑 제 隄 둑 제
밭은 흙 ; 둑
밭은 언덕 ; 고개
堤의 전문
隄의 전문
堤의 전문 자형은 土와 是의 합자이며, 隄는 阜와 是의 합자입니다. 후대에 와서 두 글자를 동일자로 취급하고 있지만, 전문이 처음 배포될 때 같은 글자를 각기 다른 형태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堤는 是의‘밭다(/다붙어 몹시 가깝다/졸아서 말라붙어 있다)’로 흙을 아주 촘촘하고 단단하게 다져넣은 형태의 둑, 즉 판축(版築) 공법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둑(/높은 길을 내려고 쌓은 언덕)’을 의미하며, 隄는 언덕과 언덕이 밭은(/간격이 몹시 가까운) 형태로 늘어서 있는 지형으로‘고개(/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를 의미합니다.
堤防(제방 ; 물가에 흙이나 돌, 콘크리트 따위로 쌓은 둑), 堤堰(제언 ; 댐), 堤塘(제당 ; 물가에 흙이나 돌, 콘크리트 따위로 쌓은 둑) 등에서 堤가 ‘둑/고개’의 뜻입니다.
踶 밟을 제
발로 받다 ; 발길질
밭은 발 ; 발버둥
踶의 전문
踶의 전문 자형은 足과 是의 합자이며, 是가‘밭다’에서‘받다(/머리나 뿔 따위로 세차게 부딪치다)’로 쓰여, ‘발로 받다’로‘발길질’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是의‘밭다’에서‘밭은 발’로‘발버둥’의 뜻도 나타냅니다.
喜則交頸相靡, 怒則分背相踶. 『莊子』
기쁘면 목을 교차하여 서로 문지르고, 노여우면 등을 돌려 서로 발길질한다[발버둥 친다].
及至聖人, 蹩躠爲仁, 踶跂爲義, 而天下始疑矣. 『莊子』
성인에 미쳐 이르러 안달하며 인을 행하고, 발버둥 치며 의를 행하니, 천하기 비로소 기울이게 된 것이다.
상기 문장에 사용된 踶는 일반적으로‘힘쓰다, 심력을 기울이다’등으로 풀이합니다. 하지만 이는 배달말의‘발버둥’에 대한 중국어식 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跂(힘쓸 지)의 支(지탱할 지)도‘버티다’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踶跂’는 밭은 발길질과 힘을 주며 버티는 듯한 발동작으로‘발버둥 치며 버티다’의 뜻입니다.
褆 옷두툼할 제
밭은 차림 ; 두툼하다
褆의 전문
褆의 전문 자형은‘차리다’의 뜻을 나타내는 衣와, 是의 합자이며, 是의‘밭다’가 촘촘하거나 빈틈없음의 어기를 나타내어, ‘밭은 차림’에서‘두툼하다(/꽤 두껍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居家則力行恭儉, 仕宦則避遠顯要, 以爲褆身保家之地, 至佳. 『肅宗實錄 20年 5月 29日』
집안에 있음에 곧 공손과 검소를 힘써 행하고, 벼슬길에서는 현관(顯官)과 요직(要職)을 피하고 멀리함으로써, 몸을 두툼하게 하고, 집안을 보호하는 처지로 여긴다면 지극히 갸륵하겠다.
趧 오랑캐춤 제
밭게 달리다 ; 총총대다
趧의 전문
趧의 전문 자형은 走와 是의 합자이며, ‘오랑캐 춤’의 훈(訓)은 설문(說文)에 따른 것으로 실제 그런 의미로 사용된 용례는 확인하기 어려우며, 是의‘밭다(/간격이 매우 짧다)’에서‘밭게 달리다’로 배달말의 ‘총총대다’를 나타내는데, 이를 일종의 춤사위로 분석한 것입니다.
徥 걷는모양 시
밭게 움직이다 ; 잰걸음
徥의 전문
徥의 전문 자형은 行의 축약인 彳과 是의 합자입니다. 徥가 문장에 사용된 예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是의‘밭다(/간격이 매우 짧다)’에서 짧은 보폭으로 걷는 걸음으로‘잰걸음(/보폭이 짧고 빠른 걸음)’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합니다.
媞 안존할 제
밭은 자세 ; 빳빳하다/뻣뻣하다
媞의 전문
媞의 전문 자형은 姿의 축약인 女와, 是의 합자이며, 是의‘밭다’에서, ‘밭은 자세’로 ‘빳빳하다, 뻣뻣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현재의 훈(訓) ‘안존하다’는 설문(說文)에 따른 것입니다.
緹 붉을 제
밭은 색 ; 빨갛다
緹의 전문
緹의 전문 자형은‘수놓다’의 뜻을 나타내는 糸와, 是의 합자이며, 是의‘밭다’가‘빨’로 쓰여, ‘빨갛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밭다’는‘시간이나 공간이 다붙어 몹시 가깝다’의 뜻인데, ‘빨빨대다(/바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의 어기와 통합니다.
諟 이 시
밭다
諟의 전문
諟의 전문 자형은 言과 是의 합자입니다. 言은 [말]이란 것에서 겉으로 드러난 속마음의 뜻으로, 是의‘밭다’가 ‘어떤 사물에 열중하거나 즐기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로 쓰였음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顧諟天之明命 以承上下神祗. 社稷宗廟 罔不祗肅 天監厥德 用集大命 撫綏萬方. 『尙書』
하늘의 밝은 명을 되돌아보고 밭게 하여, 상하의 귀신과 땅귀신을 잇는다. 사직(社稷)과 종묘(宗廟)로써 공경과 엄숙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하늘이 그 덕행을 살피며, 따라서 대명(大命)을 모아 만방(萬方)을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한다.
顧諟惟精 靈承惟恭. 『宋史·樂志』
되돌아보고 밭게 오직 자세히 하며, 엄숙히 받들어 오직 공손히 한다.
기존의 문법에서 상기 두 예문의 諟는 지시사로‘이. 이것’로 보아, ‘諟天’을‘이 하늘’로 풀이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지시의 대상이 없이 지시사가 나타나는 것은 어법의 기본에 맞지 않으며, 그렇다고 비한정의 강조용법으로 쓰인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의 諟는‘밭다’의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須勤太甲之顧諟, 必自强不息, 健行如天. 『明宗實錄 2年 2月 7日』
모름지기 태갑(太甲)의 되돌아보고 밭음에 근면하다는 것은 반드시 스스로 억지하여 쉬지 않으며, 하늘처럼 강건하게 행한다.
상기 실록의 예문에도‘顧諟’가 나오지만, 諟가 지시할 수 있는 대상은 없습니다. 여기서는‘顧諟’가 마치 하나의 성어(成語)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諟가 지시사의 한 종류라는 것은 오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살피다, 자세히 하다’로 풀이하지만 이 역시 의역에 지나지 않으며, ‘밭다’가 본연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