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 공희원, 강규빈, 정도제, 안재준, 류다정, 강규빈, 정지영, 정승후, 차원 & 말로
<야성의 부름> 두 번째 모임을 가졌어요.
사실 <야성의 부름>은 150페이지 정도 되는, 아주 짧은 작품이에요.
그런데도 모임을 두 번으로 나눠서 한 이유가 있어요.
그건 작품을 '꼼꼼히 읽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작품을 꼼꼼히 읽지 않아요.
줄거리 위주로 읽는 경우가 많고, 조금 긴 묘사가 나오면 뛰어넘어가 버리죠.
하지만 고전으로 알려진 세계문학 작품들은 묘사가 뛰어나서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많아요.
<야성의 부름>에는 아름다운 묘사도 많고 파워풀한 묘사도 많죠.
그런 묘사들을 몇 개 뽑아서 모임 자료를 만들어 보았어요.
대표적인 예를 꼽자면,
(자료 1페이지에도 나와있지만) 알래스카-유콘 강에 찾아온 봄을 묘사하는 대목이에요.
언덕 비탈마다 맑은 물이 똑똑 떨어지며 보이지 않는 샘의 노래를 불렀다. 모든 것이 녹고 굽이치며 펄떡였다. 유콘 강의 강물은 팽팽히 불어나 자신을 짓누르던 얼음을 깨뜨렸다. 강물은 아래서부터 얼음을 먹어치웠다. 햇볕은 위로부터 얼음을 먹었다. 공기 구멍이 생기고 틈이 만들어져 쭉쭉 뻗어가는 사이, 얇은 얼음은 강물 속으로 송두리째 가라앉았다. 이 모든 것이 갈라지고 찢어지고, 타는 듯한 태양 아래서 나지막이 한숨 쉬는 산들바람처럼 두 남자와 한 여자, 허스키들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 <야성의 부름>, 펭귄클래식, 98쪽
모임에서 이 대목을 읽어주었어요.
그러고 나서 이 묘사가 무엇에 대한 묘사인지 알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규빈이가 계절 변화에 대한 묘사라고 답했던 것 같아요.
(실은 계절...... 이라고 말하고 뒷말은 얼버무렸죠. 생각은 정확히 맞게 했는데 아직은 어색한 모임의 분위기상 말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제가 도와주었네요. ^^)
다음으론 저 묘사를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뭔가 이상하다...? 싶은 점은 없는지를 물어보았어요.
힘들어 보인다, 우울하고 황량해 보인다 등의 대답이 나왔어요.
틀린 답은 물론 아니죠.
하지만 위의 묘사에서 정말 재밌는 점, 뛰어난 점은 따로 있어요.
저 묘사를 읽고 "아? 뭔가 이상하다...?" 라고 느꼈다면 제대로 읽은 것이고, 바로 그 점이 뛰어난 점과 연결이 돼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모임 시간에 얘기했으니 여기서는 밝히지 않고 남겨두기로 할게요.
* 혹시 누군가 저 묘사의 이상하면서도 뛰어난 점에 대해 댓글로 잘 설명해준다면
소소한 선물을 증정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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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첫 번째 모임 때는 소설에 등장하는 개들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이번 두 번째 모임에서는 등장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보았어요.
주인공 개 벅이 만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아요.
1) 밀러 판사와 그의 가족들
2) 붉은 스웨터의 남자
3) 정부 문서 배달원 페로와 프랑수아
4) 할
5) 머세이디스
6) 존 손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 인물들이 내 주변의 사람들과 닮은 점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많은 멤버들이 붉은 스웨터의 남자나 할 같은 선생님이 꽤 있다고 말해주었어요.
음... 이 두 인물들은 벅에게 몽둥이(채찍)을 휘두르는 인물들인데...
학교에는 '매가 약이다'라고 생각하는 선생님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인가봐요.
다음으로는 '나는 나중에 어떤 유형의 어른이 될 것 같은지'와 '... 어떤 유형의 어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았어요.
'될 것 같은' 유형으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의외로 머세이디스였어요. 순위표는 아래와 같아요.
1위 - 머세이디스 / 3표
2위 - 할 / 2표
2위 - 붉은 스웨터의 남자 / 2표
3위 - 붉은 스웨터의 남자 + 머세이디스 / 1표
머세이디스나 할, 붉은 스웨터의 남자는 주인공도 아닌 부정적인 캐릭터인데 의외로 많은 표를 얻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여러분의 솔직함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해요.
존 손턴이 주인공이고 긍정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소설적으로 낭만화된 인물이지 그리 현실적인 인물은 아니거든요.
마지막 3위는 두 사람을 합친 것인데(퓨전...?),
다정이가 이 의견을 내놨어요.
다정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인간은 이중인격적인 면, 즉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또는 기분에 따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다정이의 말을 들은 원이도 어떤 유형 하나를 선택하는 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상대가 누구냐에 태도나 성격이 달라질 것 같다, 라는 의견을 내놓았어요.
이렇게 해서... 제가 애써 만들어온 토론 문제는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어요. ㅠㅜ
후후후... 근데 뭐 저는 괜찮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토론 문제 자체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들이 모임에서 오가면 참 좋을 것 같아요. 크흑... T^T
이렇게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되고 싶은' 유형 순위도 밝혀 놓도록 할게요.
1위 - 정부 문서 배달원 페로와 프랑수아 / 3표
2위 밀러 판사네 가족들 / 2표
2위 없다 / 2표
3위 그때 그때 다르다 / 1표
3위인 '그때 그때 다르다'는 원이의 의견이에요.
1위가 정부 문서 배달원인 건 이들이 공무원이기 때문일까요? ㅋ (농담)
자기들이 맡은 일들을 책임감있게 잘 하고, (큰 애정은 없지만) 개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태도가 인기를 끈 요소인 것 같아요.
공무원으로서는 꼭 갖춰야할 요소라고 할 수 있겠네요.
2위는 역시 부유하고 평화로운 밀러 판사네 가족이 차지했어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밀러 판사가 자신이 고용한 정원사의 월급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정원사가 가족을 부양할 만한 월급을 판사에게 받지 못했다는 것... 이게 벅이 알래스카로 팔려가는 원인이 돼죠.
우리는 남들의 생활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가족의 부유하고 평화로운 생활에만 신경 쓰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학교에서 배우죠.
하지만 모임에서는 밀러 판사네 가족들이 부럽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월급에 신경을 쓰겠다, 등등의 의견들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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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어떤 건지 '아는 건'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앞으로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삶을 살겠다"라고 '마음을 먹는 건(진심으로 결심하는 건)' 어려운 일인 듯해요.
아마 그렇게 살면 뭔가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일 거예요.
사실 <야성의 부름>이 그런 세계관(적자생존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쓰여진 작품이기도 하죠.
처음에는 알래스카 썰매개로서, 나중에는 늑대로서 벅이 척박하고 폭력적인 환경을 극복하며 생존해 나가는 이야기니까요.
벅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강하고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벅 만큼 강하지 못한 개들은 모두 죽었어요.
인간에게 몽둥이로 맞아 죽기도 하고,
고된 썰매 끄는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진이 빠져 죽기도 하고,
다른 개들에게 물려 죽기도 하고......
그렇다면 오직 강하고 우월한 존재만 세상을 살아나갈 자격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어볼 수 있겠어요.
잭 런던은 진화론과 적자생존의 원칙에 바탕을 두고 소설을 썼어요.
작가의 이런 생각, 세계관을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여러분이 <야성의 부름>을 읽은 직후이기 때문에
작가의 말이 정말 다 맞다, 정말 지당하다, 라고 여겨지고,
작가의 생각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힘든데, 비판까지 한다는 것이 어렵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건 그만큼 잭 런던이 글을 잘 썼기 때문이기도 하죠.
하지만!
소설은 <야성의 부름> 같은 소설만 있는 건 아니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알래스카 같은 척박한 세계인 것만도 아니고,
우리가 썰매 개인 것은 더더욱 아니죠.
우리가 앞으로 읽을 다른 소설들에서 이 주제는 다시 언급될 것 같아요.
"오직 강하고 우월한 존재만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 것인가?"
일단 이 질문을 기억해두도록 해요.
첫댓글 오직 글 잘쓰고 우월한 존재만 후기를 쓸 자격이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확실히 떠오르긴 합니다만...^^;;
아니 무슨 말씀을.. 이전 기수 때 말로님이 올려주신 후기들이 많은 도음이 됐는 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