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延邊朝鮮族自治州는 1952년 9월 3일에 성립되었으며 총면적은 42,700㎢이며 6개시 2개현 즉 延吉市, 훈春시, 圖門市, 敦化市, 龍井市, 和龍市, 安圖縣과 王淸縣 을 포함하고있으며 자치주정부 소재지는 연길시 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민족단결진보 모범자치주이다.
자치주성립이래 중국 공산당과 국가는 연변의 건설과 발전을 매우 중시하고 관심하여왔으며 주은래, 주덕, 동필무 등 로일대 무산계급혁명가들이 선후하여 연변을 시찰하였다. 다음의 11기 3중전회 이후 등소평, 강택민, 리붕 등 당과 국가영도자들은 친히 연변에 와서 시찰하였으며 연변의 발전을 다그칠 것을 고무격려 하였다. 1983년 8월 등소평동지가 연변에 와서 시찰하였으며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더욱 빨리 더욱 좋게 건설하자", "훈춘과 두만강을 개발하여 동북아 각국지간의 우호합작관계를 발전시키자"라는 제사를 제기하였다. 1991년 7월 리붕총리가 연변에 와서 시찰하였으며 "경제를 발전시키고 연변을 진흥시키자"는 제사를 제기하였다. 자치주 성립이래 공화국의 발전과 함께 연변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개혁개방 20년래 전국 각 민족 인민은 기회를 단단히 틀어지고 개혁을 심화하고 발전을 가속화 하였으며 온정을 유지하여 자치주의 경제실적이 크게 증가되었다.
1997년 전주 국내 생산 총액이 115.1억원에 도달하였으며,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7.9% 증가하였고 1952년에 비하여 13.6배 증가하였다. 그중 제1산업증가액은 18.9억원으로써 4.5%하강하였고 제2산업증가액은 47.0억 원으로써 11.6% 증가하였고 제3산업 증가액은 49.2억 원으로써 8.7% 증가하였다. 인구당 국내생산총액은 5270원으로써 지난해보다 399원 제고되었으며 지난해보다 17.6% 증가되었다. 재정수입은 13.3억 원에 도달하였으며 지난해보다 12.6% 증가되었으며 1952년보다 514.4배 증가되었다.
[주정부 소재지]
연길시(延吉, YenJi)
[위치]
중국 길림성동부에 위치함. 북한과 러시아와 접경. 연변조선족자치주는 3국 접경지대에 위치하고있으며 웅위롭고 풍경이 독특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장백산으로 하여 이 세상에 그 이름을 널리 날리고 있다. 주 내에는 자연자원이 아주 풍부하며 일정한 공업기초와 사통팔달한 교통조건 및 선진적 인 체신통신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국내외 각계 인사들이 투자하고 무역을 진행하는 이상적인 곳으로 불리우고 있다.
근면하고 열정적인 전 주 각 민족 인민들은 그대가 관광유람, 상담, 고찰길로 연변 에 오시는 것을 진심으로 반길 것이다. 또 그대에게 다방면의 양질봉사를 제공해드릴 것이다. 투자우대 정책을 토대로 두만강지대국제합작의 둘도 없는 기회 를 빌어 그대의 사업이 연변땅에서 깊이 뿌리를 박고 주렁진 열매를 맺으리라 우리들은 믿고 있다.
중국 동북 길림성 동부에 위치해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 러시아, 조선 3국 접경지대에 위치해 있고 동해에 인접해 있다. 동부는 러시아와 이웃하고 변경선의 총길이는 232.7km이며 남부는 북한(조선)과 이웃하고 변경선의 총길이는 522.5km로서 중국동북의 대외연결의 중요위치를 차지하고있을 뿐만 아니라 구라파-아시아대륙의 중심지역이다.
그리고 중국과 조선, 한국, 일본 등 나라와 왕래 함에 있어서 제일 가까운 지역이다. 연변은 동해와 제일 가까와 15km떨어져있고 러시아의 보세르만과 다만 41km떨어져 있다. 개방도시 훈춘은 동해연안의 주요항구-러시아의 보세르, 자루비노, 해삼위, 북한의 라진, 청진, 한국의 속초, 부산, 일본의 신슈꾸, 아까다 등 항구와 제일 가까이는 42km떨어져있고 제일 멀어서 해삼위를 지나 러시아 적탑일대를 지나가는데 해삼위를 지나 서부 시 베리아 철도를 에돌기보다 1500km 단축된다.
[면적]
42,700㎢, 연길시는 1,350㎢
[역사]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역사가 유구하여 일찍 26000년전의 구석기시대에 연변땅에는 <<안도인>>들이 살았다. 기원 713년에 발해국이 나타났으며 당조에 속하였고 도읍지를 오동성(지금의 돈화시)에 두었다. "연변"이란 단어는 1920년을 전후하여 나타났는데 지리적 위치가 3개나라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어 "沿邊"으로 이름지었으며 그 후 연길변무공소관할에 소속되어 이름을 연변(延邊)으로 고쳐졌다. 일본제국주의가 동북을 침략한후 1934년 12월에 연변은 간도성으로 명명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이 투항한 후 중국공산당은 연변에 인민정권을 건립하고 간도성정부를 세웠으며 그해 11월에 연변행정감동전원공소로 바꿨다. 1948년 3월 성립된 연변전원공소는 1952년 9월3일 민족자치구역의 자치를 실행하여 원래의 공소를 취소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었다. 1955년 12월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한개시 다섯개 현이였다. 1958년 돈화현이 연변에 귀속되었으며 1965년에 도문시가 설립되었다. 1985년, 1987년, 1993년에 돈화 룡정, 훈춘, 화룡등이 시로 승급되었다. 지금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연길, 도문, 돈화, 훈춘, 룡정, 및 화룡시와 왕청, 안도 두개현으로 구분되었으며 수부를 연길시에 두고 있다.
[기후]
북반부의 중온대습윤 계절풍 연평균 기온 5.3℃로서 사계절이 뚜렷하고 강우량은 709.6㎜.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산 좋고 물 좋으며 삼림이 무성하고 중온대습윤성기후에 속한다. 봄철에는 건조하고 바람이 많으며 여름철에는 덥고 비가 많으며 가을에는 시원하고 비가 적으며 겨울철에는 춥고 길다. 동쪽에 동해와 접하고 서부 북부에 또 높은 산맥이 천열병풍으로 되어 성내의 동일한 경도의 지구에 비하여 가을철이 따뜻하고 여름철이 시원하다.
년 일조시간수는 2,150~2,480시간에 달하며 평균 기온은 2도~6도, 극단최저기온은 섭씨 영하 23도~34도이며 극단 최고기온은 섭씨 34도~38도, 無霜期는 100~150일, 秋霜은 대부분 9월하순에 나타나며 春凍은 5월상순에 끝나며 11월부터 이듬해 3월은 結凍期이다.
평균 강수량은 400~650이며 장백산은 1000~1500에 달한다. 주내 평균기온은 대체로 해발고와 위도의 증가에 따라 감소되며 동부가 서부보다 높고 분지가 산지보다 높다. 중부분지와 동북산맥 골짜기의 강우량은 비교적 적고 서부 산구와 동남부 바다에 린접된 지구의 강우량이 비교적 많다.
일반적으로 가을철에 서풍, 여름철에 동풍, 풍속은 봄철에 제일 크다.
연변의 기후는 중온대 습윤성계절풍기후에 속하여 봄이면 건조하고 바람이 많으며 6월부터 8월까지 비가 많고 가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충위가 심하다. 년평균기온는 섭씨 2-6도이고 제일 추운 기온은 섭씨 령하23-34도이며 제일 더운 기온은 섭 씨 34-38도이다.년일조시수가 2150-2480시간이고 년강우량이 40 0-650mm이다. 강우량이 6,7,8월 3개월에 집중되여 전년강우량의 60%를 차지한다. 년평균바람속도는 2-4m/초이다.
[인구]
조선족 인구는 218만명(98년 기준)으로 전년대비 0.46%감소함. 연길시인구 38만명.
[민족/인종]
한족이 58.2%차지, 조선족(38.94%), 만주족(2.49%), 몽고족(0.97%). 1992년 통계에 의하면 이 가운데 조선족이 59퍼센트로 가장 많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40퍼센트도 채 안될 것이라고 한다. 다음이 한족이요 그 밖에 만주족, 몽골족, 회족 등도 조금씩 있어 모두 11개 민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자치주에는 주로 한족, 조선족, 만주족, 회족과 23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1997년말 전주 총인구는 218.4만으로써 그중 한족 58.0%, 조선족 39.2%, 만족 2.4%, 회족 0.3%, 기타소수민족이 0.1%를 차지하고 있다. 전주인구밀도는 매평방키로미터에 51명이다.
[자원 및 산업]
삼림자원과 천연약재가 풍부함. 러시아와 북한과의 변경무역이 성행. 주요농산물로는 벼,옥수수,콩,과일이 있음. 특산물로는 담배,영지,황기등이있고 야생동물로는 달비,백두산호랑이, 표범,꽃사슴 동물약재로 녹용,웅담이 있다. 금속광물로는 금,알루미늄,아연,은,구리망간,수은,몰리브덴이 있고 비금속광물로는 석탄,석유,석회암이 있다. 경공업위주의 공업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의약, 담배, 술, 방직, 건축 자재 등.
연변의 삼림면적은 347.2만헥타르이고 삼림피복률은 78.2%이며 림목축적량은 3.32억립방메터이고 120여가지의 목본식물이 자라고있다. 주로 홍송, 백송, 모래불송, 낙엽송,가 문비나무, 달피나무, 봇나무 등이다.
연변은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금속광물자원으로는 연, 아연, 동, 알루미늄, 망간, 몰리브덴이 위주이다. 비금속광물로는 석탄, 석유( 저장량이 1억톤), 모래암, 용수정, 운모, 고령토,세 멘정초, 안산효암, 규소토 및 석규석 등이다. 全 주적으로 이미 탐사해낸 석탄저장 량은 12억톤에 달한다. 현재 석탄의 년생산량은 414만톤이고 년 발전량은 23.67억키로와트시로서 전력이 충족하다. 140만키로와트 의 발전능력을 구비한 훈춘발전소는 이미 20만키로와트의 발전능력을 구비하였고 60만키로와트의 2기공정은 국가계획에 들었다.
연변에는 하천이 많다. 全 주에는 크고 작은 하천이 487줄기로서 물에네르기 매장량은 140만키로와트에 달한다. 최근 물에네르기 실제 이용량은 4.7만키로와트이고 건설중에 있는 장비량은 8.5만키로와트이며 全 주의 수력자원잠재력은 아직도 상당히 크다.
연변의 지방특산물은 비교적 풍부한바 야생동물은 500야종, 야생경제식물은 1500여종이다. 인삼, 록용, 담비는 <<동북의 3가지 5 보배>>로 불리우고있다. 연변은 중국의 저명한 약재 보물고의 하나이다. 중외인의 주목을 끄는 세계원시상태의 완전한 자연종합체인 장백산과 두만강하류의 <<한눈에 3국이 안겨>오는 변경유람지역은 국내외 유람객의 유람명승지이다.
[관광]
연변은 독특한 자연인문경관을 가지고있다. 웅위롭고 풍경이 독특하 고 경치가 아름다운 장백산은 이미 중외의 이름난 유람명승지로 되였다. 주요한 유람구는 백운봉, 천지, 폭포, 온천군, 미인송과 <<닭이 울면 3국이 듣고 개가 짖으면 3개 변경이 듣는>>변경풍모이다.
최근 연변에 이미 개발된 8개 유람구로는 장백산경치관광유람구, 연길민속유람구, 훈춘변경경치유람구, 룡정력사유적유람구, 두만강변경유람 구, 화룡룡왕산유람구, 돈화륙정산유람구 등이다.
이미 개통된 12개 유람 업종은 장백산풍경유람구, 장백산동기설산유람구, 원지만족발원지유람, 연변조선족자치주민속유람, 중조변경유람, 중국-로씨야변경유람, 두만강 수상유람, 발해고대유적유람, 룡정력사유적유람, 화룡약물보건유람, 직승 비행기항공유람, 사냥유람 등이다.
주요유람지는 장백산풍경, 장백산천지 , 장백산 폭포, 거룡천(온천), 은환호(소천지), 곡지림해(지하살림), 천녀 욕궁지(원지), 방천풍경, 화룡선경대, 돈화정각사, 연명호, 룡정민속 박물관 , 안도홍기촌, 도문교두국문 등이 포함된다.
백두산, 용정, 도문, 청산리, 봉오동전적지는 연길에서 출발한다.
연변조선족지치주의 소재지로써 면적은 1,350㎢이며, 인구는 38만명이다. 19세기초에 산동성, 화북성, 조선으로부터의 이주민이 들어와 세운 도시이다. 연길시는 문화도시이며 상업도시이다. 연변가무단,조선족화극단,연길시조선족예술단등 70여개 예술단체가 있으며, 상업지구로는 서시장과 시장주변의 백화상점이 있다.
백두산 천지
우리 민족의 발원지 백두산은 16세기부터 세차례의 폭발로 용암분출이 있었다. 첫번째는 1597년 8월이고 두 번째는 1688년 4월이며 세 번째는 1702년 4월이다. 백두산 정상에 자리잡은 천지는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호수이다. 천지의 남북길이는 4.85㎞이고, 동서길이는 3.35㎞이다. 천지 수면은 해발 2,196m이고 물깊이는 204m이다. 천지는 현재 중국과 북한의 국경으로서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천지로 가는 길은 天文峰 (천문봉) 가는 길과는 별도로 二道白河公司 (이도백하공사)에서 二道白河(이도백하)가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한시간 정도 달리면 백두산온촌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하차하여 장백폭포를 보면서 산허리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한다. 지척으로 폭포의 물보라를 보며 천지입구로 접어들면 신비스런 천지가 전개된다.
윤동주 시비
대성중학교(현 용정초중)교내에 윤동주시비가 세워졌다. 저항시인 윤동주는 1932년 4월 16세에 송몽규, 문익환등과 함께 은진중학(현용정초중)에 입학하여 급우들과 함께 교내 문예지를 꾸렸다. 학교웅변대회에서 윤동주는 「땀 한방울」이라는 자작 원고로 1등상을 받았다.
일송정, 용문교, 혜란강, 용두레
모두 「선구자」에 나타나는 지명인데 용정시 소재지안에 있다. 용정시 입구에 들어서면 혜란강과 그 위에 놓인 용문교를 지나게된다. 근처에 오늘날 용정 지명의 유래가되는 용두레가있다. 일송정은 용정시에서 승용차로 10분거리에 있
다.
청산리·봉오동 전적지
청산리 전적지는 화룔현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있다. 1920년 10월 21일 독립군 800여명이 홍범도, 김좌진 장군의 지휘 하에 일본 침략군 3,000명을 매복 습격하여 그 중 2,000명의 일본군을 사살했다. 대패한 일본군은 보복으로 청산리 직소라는곳부터 3㎞에 이르는 지역민을 모조리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봉오동 전적지는 도문시 봉오동저수지 동북쪽 산골안에 있다. 1920년 6월 27일 독립군 북로 제1군의 홍범도 장군의 지휘하에 400여명의 독립군을 이끌고 토벌나온 일본수비부대 300여명을 매복 습격하였다.
-----------------------------------------------------------------------
면적 4만 3547㎢, 인구 219만 5000명(1998)이다. 주도(州都)는 옌지시[延吉市]이다. 조선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렀다. 1952년 9월 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고, 1955년 12월에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옌지[延吉], 투먼[圖們], 둔화[敦化], 허룽[和龍], 룽징[龍井], 훈춘[琿春]의 6개 시와 왕칭[汪淸], 안투[安圖]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 중 조선족이 41%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한족(漢族), 만주족(滿州族), 후이족[回族]의 순이다.
지린성 동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헤이룽장성[黑龍江省]과 접한다. 창바이산맥[長白山脈]과 라오예링산맥[老爺嶺山脈] 경내로 뻗어 있고, 그 사이에 옌지분지가 펼쳐진다. 이 때문에 해발고도 500∼1,000m 지점이 많다. 이 산지에서 흘러 나오는 하천은 둥베이수계[東北水系]의 근원이 된다.
주요 하천으로는 투먼강·쑹화강[松花江]·무단강[牡丹江]·쑤이펀강[綏芬江] 등이 있다. 투먼강 유역에 있는 중국의 국제개발지인 훈춘경제개발지를 ‘동북아 금삼각주(東北亞金三角州)’라고 부른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이나 변화가 잦고, 강수량은 산지가 많기 때문에 하천의 수량이 풍부하다. 연평균기온 2∼6℃, 1월 평균기온 -14.1℃, 7월 평균기온 21.6℃, 연평균강수량은 500∼700mm이다. 농업은 주로 곡저평지(谷底平地)에서 이루어지며, 쌀·콩·조 등의 곡물을 생산한다. 특히 벼농사는 한국인이 이주한 뒤에 발달하였으며, 90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또 잎담배는 지린성 생산량의 4분의 5를 생산하며, 그밖에 특산물인 인삼과 과일도 많이 난다.
산지에는 삼림이 우거져 중국의 중요한 임업지대를 이룬다. 투먼·둔화·다스터우[大石頭]에 3대 제재소가 있으며, 그밖의 여러 곳에서 목재공업이 이루어진다. 또 이 목재를 원료로 하는 제지공장이 투먼, 스옌[石硯], 카이산툰[開山屯] 등에 산재한다.
동부에는 각종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그 중 허룽과 훈춘의 석탄, 왕칭의 오일셰일(유혈암), 톈바오산[天寶山]의 구리·납, 훈춘의 금 채굴이 손꼽힌다. 공업으로는 농업기계, 철강, 정유, 전자 분야의 발전이 두드러지며, 공장은 옌지 등의 시 지역에 분포한다.
교통은 창춘[長春], 지린, 투먼을 잇는 창투철도[長圖鐵道]가 지역안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옌지에서 허룽과 카이산툰으로 지선(支線)이 분기한다. 또 투먼에서 무단강과 함경북도 온성(穩城)으로 통하는 무투철도[牡圖鐵道]가 갈라진다. 도로는 철도를 따라 뻗어 있는데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항공편으로는 옌지공항이 있는데, 국내선으로는 베이징, 창춘, 선양까지 운항하고, 국제선으로는 한국 부산까지 운항한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은 독립운동의 근거지였으므로 청산리항일전승지(靑山里抗日戰勝地)·봉오동(鳳梧洞)항일전승지, 일송정(一松亭) 등 유적지가 많다. 그 밖에 백두산천지, 정줴사[正覺寺], 전샤오공주묘 [眞孝公主墓], 룽후석조각[龍虎石刻], 이커당아비[依克唐阿碑], 시구청[西古城], 아오둥청[敖東城], 바롄청[八連城] 등의 고대유적이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연변대학, 연변의과학원, 연변사범대학, 연변예술학원, 농업학원 등이 있다.
이른바 북간도에 해당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어느 속을 가더라도 우리나라 60년대를 연상케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인구의 40% 남짓을 차지하는 조선족이 그 중심을 형성하지만, 그 밖에도 한족 만주족 등을 비롯하여 19개 민족이 섞여 있다. 이 자치주에는 연길 도문 돈화 용정 훈춘의 5개시와 안도 화룡 왕청의 3개현이 있으며, 이 자치주의 주도가 연길시다.
延吉(연길)
연길역에 도착하면 우리말로「연길에 오시니 반가워요」라고 역건물 위에 크게 쓰여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이곳 사람들은 우리말로 말하고 여자들은 한복을 입고 다닌다. 이 곳에 사는 중국인들은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시내 중심에 있는 인민 공원에 가면 한국 유행가가 흘러 나오기도 하는데, 이따금씩 눈에 띄는 경찰들이 떠들어대는 중국말만 없다면 한국의 어느 지방도시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질 정도이다.
조선족이 그 주류를 이루는 연길시는 명실공히 연변자치주의 문화 교육 경제 중심지로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연변대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어로 강의를 한다. 연변의 인민공원에는 교포들이 유람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가는 곳마다 유행가가 흐르고 노인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延吉西市場(연길서시장)
북간도의 후예들이 우리말을 크게 외치며 장사하는 곳으로 60,70년대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을 연상케 한다. 중국에 와서 말이 통하지 않던 것이 이곳에 오면 시원하게 해결된다. 동포끼리라는 것을 내세워 물건을 비교적 싼값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연길사람들은 중국의 다른곳에 사는 교포들로부터 연변깍쟁이라느 말을 들을만큼 똑똑하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시장 안에는 연변특산품을 미롯하여 순대와 족발 등을 파는 곳까지 있어 발길이 닿는 곳마다 흥취가 난다. 전통적인 한국음식도 여기에서는 싼값에 사먹을 수 있다.
龍井(용정)
연길에서 버스를타고 40분을 달리면 해란강이 흐르는 용정에 닿을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일송정 큰 솔의 그림자는 없지만 해란강을 보며 선구자를 불러보는 감격을 누릴 수 있다.용정이란 이름은 전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용정에는 원래 물이 없었다고 한다.『한 착한 소년이 물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을 파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지쳐서 우물가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 그후에 우물가에 무지개가 비치고 천둥소리와 함께 용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샘물이 솟았다. 그후로 이곳에 마을이 생겼고 용정이라 명명하였다』는 것이 전설의 내용이다.
圖門(도문)
연길에서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을 달려 도문에 이르면 두만강 건너편의 북한땅이 보인다. 두만강을 건너는 도문강대교의 국경경비초소를 보면 국경선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유람선을 타고 도문강을 따라 가면 북한쪽 강가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과 부녀자들이 강가에서 빨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까운 곳은 서로 큰소리로 몇마디 말도 건넬 수있을 정도로 가깝다. 연길에서 도문까지는 열차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하며, 도문역에서 도문강대교는 도보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도문시는 작은 변경도시이므로 도문역 주변에 있는 도문賓館(빈관)에 숙박해야 한다. 여권 신분증확인등 복잡한 수속절차를 거쳐야 한다.일반여관에는 투숙이 불가능하다. 식사는 도문시 자유시장(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에는 한국식 전문 식당에서 삼계탕, 보신탕, 된장찌개나 불고기, 야채등을 먹을 수 있다.
白頭山(백두산)
연길에서 자동차편으로 용정을 거쳐 5시간을 달리면 미인송 소나무들의 발그레한 줄기들이 미끈미끈하게 뻗어 있는 장관이 전개된다. 공기가 너무 맑아 선경에 온 것 같다.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려면 새벽에 가는 것이 좋으므로 대개 이곳에 있는 二道白河公司(이도백하공사)에서 경영하는 호텔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이튿날 새벽 5시쯤 일어나 중국쪽 백두산 정상인 천문봉으로 올라가는 중국군 소속 지프를 타면 편리하다. 안개속을 뚫고 30여분을 지그재그로 오르면 침엽수림이 점점 작아지다가 이끼로 변한다. 화산암만이 널려 있는 곳에 차가 멈추면 거리서부터 50m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二道白河(이도백하)를 따라 배두산천지로 가다 보면 멀리 장백산온천이 있다. 이 온천은 온도가 83도나 되서 계란을 삶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이곳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는데, 피부병에 아주 효험이 좋다고 한다.
[찾아가는 방법]
연길에서 용정-송화강-二道白河 (이도백하)-백두산으로 이어지는 노선이 백두산으로 가는 최단거리 노선이다. 교통수단은 택시, 중형버스, 대형버스 그리고 헬리콥터까지 있다. 백두산 등반은 7, 8월이 적기이나 7월말부터 8월 중순경이 가장 무난하다. 백두산에는 9월초에 눈이 온다.
[天地(천지)]
천지로 가는 길은 天文峰 (천문봉) 가는 길과는 별도로 二道白河公司 (이도백하공사)에서 二道白河(이도백하)가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한시간 정도 달리면 백두산온촌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하차하여 장백폭포를 보면서 산허리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한다. 지척으로 폭포의 물보라를 보며 천지입구로 접어들면 신비스런 천지가 전개된다.
-----------------------------------------------------------------------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 동북, 길림성의 동부에 자리하고있다. 그 지리적범위는 북위 41‘59’-44‘30’, 동경 127‘27-131’18‘사이로서 중국, 로씨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3국접경지대에 위치하고있다. 동쪽으로는 로씨야연해주 변강구의 하싼구와 잇닿아있고 남쪽으로는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량강도와 서로 마주하고있으며 서쪽으로는 길림성 백산시, 길림시와 린접해있고 북쪽으로는 흑룡강성의 목단강시와 이어져있다.
전체 국경선의 길이는 755.2km인데 그중 조선과의 국경선길이가 522.5km이고 로씨야와는 232.7km이다. 변경선에는 모두 7개의 해관이 있는데 공로교와 철로교로써 로씨야, 조선 등과 통하고있다. 륙로로 조선의 중요한 항구와 라진항과 93km 떨어져있고 함경북도최대의 항구인 청진항과 171km 떨어져있으며 훈춘 장령자해관에서 로씨야 하싼구의 수도 스라크양카와는 121km, 변경구의 울라지보스또크와는 180km 떨어져있다.
연변의 총면적은 42,700평방키로메터로서 길림성 전체 면적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연변의 지형은 산지가 절반이상을 점하여 총면적의 54.8%를 차지하고 고원이 6.4%,곡지가 13.2%,하곡평원이 12.3%, 구릉이 13.3%를 차지하고있다. 특히 장백산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깊은 화산호를 갖고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연변의 지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으며 서남, 서북, 동북 3면으로부터 동남으로 경사져 동남각인 훈춘 방천일대는 해발 5m밖에 되지 않는다.
경작지면적은 주로 하곡평원에 분포되였는데 벌로는 평강벌, 세전벌, 구소하벌, 훈춘벌, 백초구벌, 대석두벌 등이 있다. 벌의 면적은 2,219평방키로메터로서 총면적의 5.2%를 차지하며 여기서는 주로 벼, 옥수수, 콩 등 작물을 재배하고있다. 원림지는 266평방키로메터로서 총면적의 0.6%를 차지하고 있는데 아세아에서 가장 큰 사과배과원도 있다. 그리고 flawl가 36,234평방키로메터 84.9%나 차지하여 장백림해를 이루고있다. 초지총면적은 389평방키로메터로서 0.9%, 수역이 632평방키로메터로서 1.5%를 차지하고있다.
연변은 북온대대륙성계절풍기후대에 속한다. 봄은 건조하고 바람이 많고 여름은 덥고 비가 많으며 가을은 서늘하고 비가 적고 겨울은 춥고 좀 길다. 동쪽은 동해에 면해있고, 서부와 북부가 높아 자연병풍으로 되어있어 성내의 같은 위도, 같은 해발고도 지구에 비해 겨울이 비교적 따뜻하고 여름은 보다 서늘하다. 년평균기온은 2~6섭씨도이고 극단최저기온은 -23~-34섭씨도이며 극단최고기온은 34~38섭씨도이다. 무상기는 100~150일이다. 년평균강수량은 450~700mm이고 장백산으 년강수량은 1,000~1,500mm로서 전 성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다. 년평균기온도 해발고도와 위도가 높아짐에 따라 좀 낮아진다.
연변에는 연길시 , 훈춘시, 룡정시, 화룡시, 도문시, 돈화시 등 6개 시와 안도현, 왕청현 2개 현이 있다. 그중에서 5개의 변경 시, 현과 642개의 변경 촌, 툰이 조선과 로씨야와 이어져있거나 마주하고있다. 2001년 통계에 의하면 연변의 인구는 218.8만명인데 그중에서 조선족이 38.4%를 차지한다.
연변은 자연자원이 풍부하다. 이미 알려진것만 해도 금속광산이 40여종이나 되고 야생경제동식물이 1,460여종이나 된다. 연변은 삼림피복률이 78.2%로서 중국에서 중요한 목재생산기지의 하나로 되고있다.
연변은 주로 림목, 의약, 식료품, 에네르기 공업과 대외무역, 관광업 등이 골간산업으로 되어 특색있는 경제발전구조를 이루고있다.
연변에는 또한 유명한 관광구가 있다. 련합국에서 확정한 장백산자연보호구가 있고 천리두만강변의 독특한 자연경관, 한눈으로 3국을 바라볼수 있는 변경풍광, 진귀한 고발해국유적, 농후한 조선민속 등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있다.
연변은 통신망이 비교적 발달되였고 기초시설이 비교적 완벽하다. 전화기보유대수는 56만여대에 달하고 세계180여개의 국가, 지구와 직통할수 있다. 교통도 발달하여 주내 8개시, 현은 철도와 공로로써 서로 통하며 중국 도문에서 조선남양까지, 훈춘에서 로씨야 마하린노까지 가는 국제철도선도 있다. 연길공항은 크게 확건되여 대형비행기가 오르내릴수 있으며 년려객인수가 18.6만명에 달한다. 또한 10여갈래의 국내항선이 있고 멀지 않아 한국, 일본, 로씨야 등 국제 항선이 정식으로 개통될것이다.
두만강은 중국에서 동해로 나가는 유일한 수상통로이고 로씨야원동연해로, 더 나아가서 북아메리카주서해안에 이르는 유일한 수상통로이다. 두만강하류에 자리하고있는 훈춘은 중, 조, 로 3국접경지대에 있어 동북아경제합작의 기하중심을 이루고있다. 그곳에서 15km나가면 동해에 이른다. 훈춘 권하해관으로부터 로씨야 자르비노항을 거쳐 한국속초, 부산항에 이르는 해상운수선이 개통되었다.
독특한 지리적우세와 자원우세, 높은 소질을 갖춘 저성본로동력에 정부의 우대정책 등으로 하여 연변은 외자투자열점지구로 발전되고있다. 연변은 이상의 우세점, 선진적기술과 결합된다면 장래에 아세아주 더 나아가 전지구적경제발전에서 중요한 작용을 발휘할 것이다.
[연변특산]
연변입쌀
조선족은 이주초기부터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서 논으로 만들고 벼농사를 지었다. 100여년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현재에는 옥답으로 변했으며 평강벌과 구수하벌 같은 유명한 입쌀재배지가 소문을 떨치게 되였다. 연변입쌀은 쌀이 찰지고 윤기가 돌아서 밥맛이 이를데 없으며 최근에는 록색무공해 입쌀이 전국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있다.
영지버섯
영지버섯은 기사회생의 약효가 있다는 전설속의 버섯이며 특히 백두산의 자연산 영지버섯은 그중에서도 약효가 으뜸으로 좋아서 환영받고있다. 현재 많은 영지버섯제품이 인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출품되고있으며 앞으로도 발은 전망이 점쳐지고있다.
백두호랑이
동북지방에만 서식하는 멸종위기의 동물이다. 호랑이는 이전부터 우리민족에서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며 구전설화나 그림, 장식 등에 많이 등장해왔다. 최근에 훈춘시에서 종종 백두산 호랑이가 나타나고있으며 이에 국가에서는 훈춘을 자연동물 보호구로 지정하였다.
검정귀버섯
연변농가의 전통적 재배항목의 하나로써 검정귀버섯균을 참나무에 구멍을 뚫고 이식하여 키우고있다. 검정귀버섯은 보통 말리워서 판매하는데 찬물에 불리면 수십배로 그 크기가 불어난다. 검정귀버섯은 시원하고 오돌오돌한 맛이 있어 랭채나 무침에 많이 씌이며 선물용으로 압축하여 만든 제품도 요즘 출시되여 환영받고있다.
산삼
인삼은 사람이 재배하는 것이고 자연삼으로는 산삼이 있다. 산삼은 너무희귀해서 불로초라 고 불릴 만큼 귀하고 값도 엄청나게 비싸서 가짜가 많이 나돌 기도 한다. 고려 산삼은 북위 30~45도에 이르는 심삼산중에서 자라는 약초이다. 중국에서는 동북부의 장백산 지대와 흑 룡강 길림성 일대에 많이 자라며, 또 소련의 극동연해주에서도 자란다. 산삼은 심심산골의 음지에서 자라 성장이 대단히 느리고 번식력도 약한 특징이 있으므로 자연히 희귀약초가 될 수밖에 없다. 또 산삼은 자라다 주위환경이 않맞으면 잔다고 한다.(성장이 멈춘다고 한다) 산삼은 재배인삼과는 달리 몇 백년 된 것도 있는데, 싹이 돋은 자리에 가늘고 긴 뇌두(腦頭) 가 나이대로 매년 한 개씩 생기므로 이 뇌두로 써 성장년수를 알수있다. 몸체도 가늘고 길며 가락지 모양의 둘레가 있다. 둘레가 많을수록 좋고 비싼 산삼이다. 잔뿌리는 황금색으로 굳고 단단하고 질며 잔이슬 같이 맺힌 옥주(玉珠)가 여러개 줄지어 붙어 있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재배인삼의 뿌리는 육질이라서 부러지기 쉽지만, 산삼은 잔뿌리가 많고 억세고 질겨서 끊어지지 않은다. 인삼의 효능이 선약(仙藥)에 가깝다고 하지만, 산삼은 심신이 깨끗이 하고 온갖 정성을 자한 자의 눈에만 띤다고 하니 과연 영초라 아니 할 수 없다.
진달래
연변에는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라는 말도 전해지고있지만 참으로 우리민족은 이 땅을 개척하고 우리민족의 독립과 중화민족의 해방을 위해 불멸의 공적을 세웨 이 땅의 당당한 주인으로 자리잡게 되였다. 이른봄 찬서리를 이겨내고 연변의 방방곡곡에 활짝 피여나는 진달래는 봄의 선구자로 불리우며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잡고있다.
사과배
연변에는 1960년대 초에 나타난 유명한 사과배에 대한 노래가 있다. 그 노래말은 대략 이러하다. 연분홍 진달래야 춤추어 다오. 우리 마을 과수나무 꽃피어 난다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사과배는요 소문이 높아서 손님도 많소. 아,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사과배는요 삼복철 스리 살살 녹는 꿀맛이라네. 사과배는 연변의 명물이다.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 연길현 로투구의 한 조선족농민이 조선 함경남도 북청에서 배나무가지를 가져다가 당지의 야산에 자라는 야생돌배나무 세그루에 접목한 것이 겨울을 나니 한그루가 죽고 두그루가 살았다. 이 연변 사과배나무의 원조는 아직도 로투구에 있다. 이 두그루의 배나무가지를 접목한 돌배나무가 연변사과배나무의 단초를 열어놓았다고 한다. 사과배는 연변의 야생 돌배에 비할 바 없이 크고 달며 심지어 북청의 배보다 더 크고 달뿐만 아니라 또 배 껍질이 두꺼워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봄철이면 마치 대설(大雪)이 내리기라도 한 듯이 몇 십리 이어진 帽兒山 산자락을 사과배꽃이 뒤덮는것은 연변의 유명한 경관중의 하나이다.
연변황소
연변황소는 바로 원산지 지리특징을 소유하고있는 우량품종으로 전 연변지역에 분포되여 있다. 자료기재에 따르면 연변황소의 형성 력사는 이미 100여년, 주민들이 알심들여 양육한 소 우량종 자원으로서 우리나라 5대 지방우량소중의 하나로 국내외에 명성이 높다. 연변은 산이 많고 삼림이 많으며 비탈진 초원 또한 많아 방목조건이 좋다. 연변황소는 적응성이 강하고 내한성이 좋으며 거친 사료도 잘 먹는 특점이 있어 기나긴 세월동안 줄곧 농촌의 주요 농경 동력과 비료 원천으로 되였다. 이외 연변황소는 골격이 발달되고 근육부착률이 높으며 살찌운 다음의 육질 또한 부드러워 최고로 불리우고있다. 18개월 내지 24개월 되는 연변황소를 단기 사육한후의 도살율은 평균 58%에 달하며 순 고기율도 평균 46%나 돼 고기소 발전 및 양육 면의 우량종자원으로 적합하다. 국가에서는 연변황소 유전자원에 대한 보호 및 개발에 아주 중시를 돌리고있는바 농업부는 연변황소를 국가품종자원 보호목록에 넣어 중점보호를 실시하고있다. 연변은 시종 연변황소 산업을 발전시키는것을 농촌경제의 전략적 돌파구로 삼고 보호를 틀어쥐는 동시에 발전을 틀어쥐는것을 견지하여 연변소 산업을 유력하게 추진하고있다. 2003년말까지 전 주의 연변황소는 이미 1980년의 16만 1000마리로부터 72만 6000마리로 늘어났으며 출란률은 25만 4000마리 생산액은 2억원에 이르러 전 주 목축업 총 생산액의 18.5%를 차지하고있다. 연변황소 사육은 당지 농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치부에로 가는 중요경로의 하나로 되고있다.
자료출처:차이나인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