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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내내 가장 인기 있는 산행이 계곡산행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산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장마철에도 마찬가지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계곡의 그늘은 쉽게 지치기 마련인 산꾼의 피로를 덜어준다. 크고 작은 소와 폭포, 바위틈으로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소리만 들어도 발걸음이 가볍다.
본격적인 여름을 맞아 계곡산행에 나섰다. 지리산 자락 서북쪽 끝에 걸쳐 있는 전북 남원시 구룡계곡(九龍溪谷)과 덕운봉(德雲峰·745m)을 이은 코스다. 지리산의 계곡이라고 하면 흔히 뱀사골, 피아골, 대원사계곡, 대성골 등을 떠올리지만 구룡계곡은 지리산 주능선의 계곡들과는 또 다른 맛을 준다. 길이는 짧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수많은 소와 폭포가 만들어내는 비경은 여느 계곡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한국자연보존회가 선정한 '한국의 100명수(名水)'에 선정됐을 정도이니 계곡 자체만으로도 격조가 느껴지는 곳이다. 구룡계곡이라는 이름은 4월 초파일에 아홉 마리의
그림 3) 구룡계곡 최상류의 구룡폭포. 30m짜리 와폭인 구룡폭포 중간 구름다리에서 용이 내려와 계곡의 폭포에서 놀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
이번 코스는 계곡길은 물론이고 산중 고원의 들판길, 백두대간길, 지리산 둘레길 등 다양한 길을 한꺼번에 밟게 되는 '길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코스여서 더욱 이색적이다. 구룡계곡 산행을 할 때는 백두대간에 속하는 여원재(치)에서 시작해 수정봉, 덕운봉을 거쳐 구룡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통상적이지만 취재팀은 점점 늘어나는 자가용 이용자들을 염두에 두고 구룡계곡 원점회귀 코스를 만들었다는 점을 참고로 밝혀 둔다.
전체 산행은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지리산국립공원 북부관리사무소 앞 육모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육모정(춘향묘·용소)~삼곡교~구시소~챙이소~사랑의다리~비폭등~구룡폭포~구룡사 앞 갈림길~차도(천룡교)~회덕~노치마을 백두대간 합류점~노치샘~덕운봉 정상~구룡봉~노치산성~지리산 둘레길 합류 삼거리~구룡치~개미정지~내송마을 앞 도로로 이어지는 총 14㎞ 코스다. 걷는 시간만 5시간, 휴식과 식사를 포함하면 6시간30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원점회귀 산행(개념도 참조)에 가깝다.
들머리인 구룡계곡 하류 육모정(六茅亭)은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 속한다. 경치가 너무 좋아 호경리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지는 동네다. 육모정은 조선 중기부터 지역 선비들이 모여 의리 예절 도덕을 기치 삼아 학문을 닦고 시대를 논하던 향약인 '원동계(源洞契)'와 관련이 깊다. 당초에는 계곡 바닥의 널따란 반석 위에 건립됐는데 지난 1961년 홍수 때 떠내려가자 1997년 계곡 옆 현재 위치에 다시 지은 것. 바로 앞 계곡의 용소(龍沼·제2곡)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건너편에 있는 용호정(龍湖亭)과 마주보고 있다.
육모정에서 산 쪽으로 보면 춘향묘가 멋스럽게 조성돼 있어 '춘향이의 고장' 남원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육모정에서 60번 지방도의 아스팔트길을 따라 5분쯤 가면 삼곡교라는 다리가 나오는데 왼쪽 비석 아래로 내려서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10분쯤 가면 구시소라는 작은 소가 나온다.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아주던 '구유'의 이 지역 사투리인 '구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2분 후 만나는 챙이소는 곡식을 빻아서 알갱이와 껍데기를 분리하던 '키'의 이 지역 방언이 '챙이'라는 점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넓고 편평한 모양의 바위를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데 소 앞의 작은 바위인 '서암'과 어우러져 구룡계곡의 제4곡을 이룬다.
구룡교와 영모교를 건너 한 굽이돌아 10분쯤 가면 제법 높게 걸린 다리가 하나 더 나오는데 그 이름이 절묘하다. '사랑의 다리'. 주변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구름다리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그 사랑이 정말로 이뤄질 것만 같다. 소설 속에서 춘향이와 몽룡이가, 아니면 영화 '방자전'에서처럼 춘향이와 방자가 이 다리 주변에서 사랑을 속삭였을까.
다시 계단을 오르내리며 5분만 가면
골짜기는 더욱 깊어진다. 10분 후 높이 10m가량의 폭포가 멋진 비폭등(飛瀑嶝·제7곡)을 지나면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곧이어 칼날 능선이 이어지는데 우측 아래로 구룡계곡 깊은 물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칼날능선을 지날 즈음 3개의 정육면체 바위가 포개져 있는 신기한 바위를 만나는데, 특별한 이름이 없어 이창우 산행대장이 '장군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계곡을 지키는 늠름한 장수의 모습을 닮았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면서. 다시 계단을 내려섰다가 5분쯤 가면 마침내 계곡의 최상류에 위치한 구룡폭포다. 꿈틀거리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양의 높이 30m짜리 와폭인 구룡폭포는 지리산에서도 하동 불일폭포 다음으로 긴 폭포로 이름이 높다. 긴 계단을 올라서 만나는 상단부 폭포 왼쪽 바위에 누군가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이라고 음각해 놓았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폭포 서쪽으로 난 오르막을 3분쯤 오르면 구룡사 앞 삼거리다. 길이 갑자기 넓어졌다. 연못을 끼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언제 그렇게 깊은 계곡을 지나왔느냐는 듯 들판길이 나온다. 임도를 따라 10분쯤 찬찬히 걸으면 천룡교 앞 아스팔트 도로에 닿는다. 정면에 보이는 높은 산줄기는 바래봉 세걸산 큰고리봉 정령치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 왼쪽으로 꺾어 아스팔트길을 따라 회덕마을로 향한다. 회덕마을 입구 못 미쳐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를 만나면 둘레길 구간에 합류한 셈이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회덕마을 입구를 지나 좀 더 가면 소나무 10여 그루가 늘어선 곳에 둘레길 이정표가 하나 더 있다. 왼쪽 10시 방향 소로로 들어선다. 곧이어 나오는 이정표에서는 다시 왼쪽으로 90도 꺾어 산 아래 마을쪽으로 들어선다. 마을 뒷산이 덕운봉이다.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마을 입구에 산행 리본이 유난히 많이 매달린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곳이 바로 백두대간 종주길에 합류하는 지점이다. 왼쪽으로 꺾어 30m가량 가면 또 한 번 갈림길. 왼쪽의 마을 안 정자나무를 향한다. 오른쪽은 운봉읍 방향으로 가는 지리산 둘레길 구간이지만 이곳에서 둘레길과 잠시 이별하고 백두대간길을 따르는 것이다.
정자나무 아래에는 특이한 내용의 표지석이 있다.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국내 유일의 마을'이라는 내용이다. 얼핏 의미심장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 마을이 그 유명한 노치마을이다. 대간 능선이 통과하는 길 서쪽은 주천면에 속하고 오른쪽은 운봉읍에 속하는, '한 마을 2행정구역'의 특이한 마을이기도 하다. 정자나무 뒤로 돌아가면 종주꾼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샘터인 '노치샘'이 있는데 물맛이 참 달다. 골목을 통과해 마을 뒤로 오르면 수령 500년 된 소나무 다섯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당산제전. 매년 칠월 백중에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15분가량은 된비알을 타며 한바탕 땀을 쏟은 후 순한 능선길을 5분만 더 가면 덕운봉 정상이다. 정상석은 없다. 진행 방향으로 30m쯤 가서 만나는 움막에서 구룡폭포 구룡사 방향인 왼쪽 내리막 능선으로 길을 잡는다. 백두대간에서 이탈하게 되는 셈이다. 움막에서 계속 직진하면 수정봉, 여원재로 이어지는 대간 종주길이다.
왼쪽 내리막을 10분가량 타면 안부가 나오는데 다시 15분쯤 오르막을 치면 739봉. 등산로가 잘 닦여져 있어 걷기 편하다. 3분 후 728.2봉에 닿는데 지역 주민들은 이 봉우리를 일명 '구룡봉'으로 부른다. 5분 후 산성 흔적이 역력한 봉우리를 넘는데 이곳이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노치산성이다. 사실 덕운봉과 노치마을과 회덕마을, 정령치 만복대 등은 삼한시대와 삼국시대를 거치는 동안 중요한 국경 방어지역이었고 노치마을의 경우 한국전쟁 때 공비 토벌 명목으로 마을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 비운의 고장이기도 하다.
노치산성을 지나면 오르막은 거의 없다. 10분 후 김녕 김씨묘을 지나 7분쯤 더 가면 T자형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 지점이 다시 지리산 둘레길 1코스(주천~운봉 구간)와 합쳐지는 곳이다. 이 길은 옛날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는 가장 빠른 길로서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운봉과 달궁 주민들이 남원장을 오갈 때 이용했던 '지리산 옛길'이다. 길은 소달구지가 지나가도 될 만큼 넓고 부드럽다. 작은 돌멩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끔해 차라리 맨발로 걸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5분 후 구룡치를 지나고 10분만 더 가면 '14번 이정표' 기둥이 서 있는 솔정자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 내리막을 탄다. 여전히 길은 편안한 둘레길이다. 주변 솔숲 과 어우러져 걷는 맛이 일품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길 정비가 잘 돼 있어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걷기에도 안성맞춤일 것 같다.
10분 후 임도 앞의 12번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개미정지까지는 20분쯤 걸리는데 이곳을 지나면 마을에 거의 다 내려온 셈이다. 10분 후 내송(일명 안솔치)마을 입구 큰 도로 이정표에 도착, 산행을 마무리한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구간은 길 상태가 다른 구간에 비해 비교적 완벽한 옛길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 이유는 옛날부터 지역 주민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길이었기 때문에 주변 마을 사람들이 매년 백중을 전후해 구역을 나눠 꾸준히 정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떠나기 전에
- 노치마을, 백두대간 종주꾼 잊지 못할 쉼터
덕운봉 아래에 자리 잡은 남원군 주천면 덕치리 노치(蘆峙)마을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산꾼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을로 마음속 깊이 간직할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남으로 길을 잡은 종주꾼들이 험산준령을 수없이 넘어 결국 마지막 '방점'인 지리산 문턱에 닿았을 때 만나는 곳으로, 종주길 유일의 마을이기 때문이다. 마을 뒤 당산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며 들판 건너 보이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바라보고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으며 등산화 끈을 다시 맸던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노치마을의 원래 이름은 '갈재'다. 만복대에서 큰고리봉 세걸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에 허드러진 갈대가 잘 보였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한자 이름으로 바꾸다 보니 '노치'가 된 것이다. 한국전쟁 기간 마을이 전소됐지만 수령 약 500년에 이른다는 당산나무만은 불에 타지 않은 것으로 전해 온다.
산행 후 들릴 만한 맛집 한곳을 소개한다. 구룡계곡 하류 들머리에서 주천면 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육모정 바베큐가든'. 토종 흑돼지를 재료로 한 '양념불고기백반'과 황기 삶은 물에 도토리묵과 갖은 고명을 얹은 후 밥과 곁들이는 '묵밥'이 저렴하면서도 맛이 있기로 유명하다. 대형 야외 마루도 완비돼 있다. (063)626-6044
◆ 교통편
- 남원행 직행버스 하루 4회 운행, 첫 차 타야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원행 직행(무경유) 버스는 오전 9시, 11시30분 등 하루 네 차례 운행한다. 요금 1만2500원, 2시간40분소요. 진주 함양 인월 운봉 경유 시외버스는 오전 6시20분과 오전 7시35분 출발 버스가 있는데 남원까지 4시간이 소요되고 요금도 1만7000원으로 비싼 편이다. 남원터미널에서 들머리인 구룡계곡 육모정까지는 30분 간격으로 330번 시내버스가 운행한다. 산행 후에는 내송마을 입구에서 주천면소재지까지 10분가량 걸어서 시내버스 편으로 남원터미널로 간 후 부산행 버스(막차 오후 5시30분)를 타면 된다. 막차를 놓칠 경우 진주(막차 오후 6시35분) 경유 버스를 타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남해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고속도로로 옮겨 탄 후 함양분기점에서 다시 88고속도로로 옮겨 탄다. 남원IC에서 내리자마자 좌회전 한 후 2㎞쯤 가면 국도 19호선을 타고 구례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5분 후 주천면 육모정 방향 60번 지방도로 빠져나가 표지판을 보고 직진하면 10분 내에 육모정 앞에 닿는다.(2010.7.1)
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00&key=20100702.22020203029
구룡구곡
<제1곡> : 송력동폭포(약수터)
<제2곡> : 龍沼 /불영추/용호석문이라고도 하며 석문처럼 갈라진 바위틈을 뚫고 하얀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다가 그 아래 깊은 沼를 이루고 있다. 용소를 내려다보는 정자가 육모정인데 이 일대를 육모정 계곡이라고도 한다.
<제3곡> : 학서암
<제4곡> : 구시소(서암)
<제5곡> : 遊仙臺(은선병)
<제6곡> : 지주대
<제7곡> : 飛瀑洞
<제8곡> : 경천벽(석문추)
<제9곡> : 구룡폭포(교룡담)/길이 30m의 비스듬히 누운 와폭으로 남원 8경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절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