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누구나 쓸 수 있다
이철호
문학에는 소설‧ 시‧ 희곡 ‧평론‧ 수필 등 여러 가지 장르가 있지만, 이들
중에서 특히 일반인들이 가장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쓸 때 가장 쓰기
쉬운 것 역시 수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소설이나 시, 희곡, 평론 등은 아무래도 난해한 부분이 많아 읽거나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수가 적지 않고 그것들을 쓰는 데 있어서도 그 분야에 관한 특별한 소질이나 재능, 또는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요구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수필은 이러한 것들에 비해 우선
읽는 데에 어려움이 별로 없고 이해하기도 쉬우며, 그 내용이나 소재 자체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거나
듣거나 직접 체험하는 것 등이 많기 때문에 친근감을 느끼며, 자신도 그러한 얘기에 대해서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수가 많다.
사실 소설이나 시, 희곡, 평론 등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요구된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허구성이나 독창성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문학적 상상력이나 허구세계에 대한 묘사 능력, 치밀한 구성이나 추리력, 논리성이나 연결성이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결여되어 있으면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되고 만다.
물론 수필문학에 있어서도 이러한 것이 요구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수필문학은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이러한 것들이 적게 요구되는 편이다. 더욱이 수필
문학은 원래 그 형식이나 내용, 소재의 선택, 표현 방법, 구성 등에 있어 까다롭지 않고 자유로우며 포용력이 큰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쓰기에 용이하며, 따라서 누구에게나 친근감이 드는 문학이다.
피천득이 그의 「수필」이란 작품에서,
…수필의 자료는 생활 경험, 자연 관찰
또는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막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芳香)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높직이 나타내는
문학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라고 수필의 특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한 김광섭은 그의 「수필문학 소고」라는 글에서,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일 것이다…
… 우리는 시를 쓰려 한다. 소설을 지어 보려 한다. 혹은 희곡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우리는 그때 그 어느 것에나 무심히 달려들려는
무뢰한은 아니다. 동일한 작자이면서도 그 태도가 서로 다르다. 시는
심령과 감각의 전율된 상태에서 희곡과 소설은 재료의 정돈과 구성에 있어서 과학에 가까우리만치 엄밀한 준비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수필은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평정한 심경이 무심히 생활 주변의 대상에, 혹은 회고와 추억에 부딪혀 스스로 붓을 잡음에서 제작된 형식이다.
제작이라고는 하나 수필에 있어서는 의식적 동기에서가 아니요, 결과적 현상에서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논리적 의도에서 제작된
일은 없다.
수필은 써 보려는 데서 시작되어 써진 것이다. 어느
작가가 소설이나 희곡이나 시를 써 보려는 한가로운 마음에서 쓸 것인가
그것들은 작가에게서 의식적으로 제작되었다. 진실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수필은 한가로운 심경에서의 시필쯤에 그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도 수필의 특성과 자유성, 또는 수필이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문학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가 말한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가는 대로 써지는 글일 것이다.”
또는 “수필은 한가로운 심경에서의 시필쯤에
그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구절을 오랫동안 여러 가지 논란이나 오해가 있어 왔다. 즉, 이 말이 ‘수필이란 아무렇게나 붓 가는 대로 쓰면 되는 것이로구나?’
‘수필을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글로 평가절하 시킨 말이 아니냐?’ 하는 등의
논란과 이 구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아하, 수필이란 그저 붓 가는 대로(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쓰면 되는 것이로구나’ ‘수필을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그저 심심풀이로 쓰는 글이로구나’ 하는 따위의 오해나 잘못된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김광섭이 말한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일 것이다”라거나 “수필은 한가로운 심정에서의 시필쯤에 그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 것은 결코 수필은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거나 ‘할일 없는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쓰는 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수필의
자유로운 속성과 누구에게나 친근하며 누구나 쓸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며 벽이 높지 않은 문학’이라는 사실을 좀 더 알기 쉽게, 또 문학적인 표현으로 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를 오해하거나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소설이나 시, 희곡, 평론 등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수필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읽거나 이해하기에 쉽고, 쓰기 쉬운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언어의 압축과
정제된 표현, 시어(詩語),
시로서의 형식과 음률 등에 대한 지식이나 방법, 또는 재능 등이 많이 요구되지만, 수필을 쓰는 데에 있어서는 이런 것들에 대해 잘 알거나 재능이 있으면 더욱 좋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큰
지장은 없는 것이다.
흡사 그림이나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이론을 잘 모르고도 누구나 그 사람을 그릴 수 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듯이 수필은 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이론을 잘 모르고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쓴 글이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문학성‧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수필 작품으로서 대접받을 수 없겠지만, 일단 수필의 형식을 어느
정도 갖춘 글이라면 넓은 의미에서 수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수필은 비단 전문 수필가뿐만이 아니라
사무직 근로자, 생산직 근로자, 경찰관, 의사, 운전기사, 상인, 건설현장 근로자, 학생, 주부
등 누구나 쓸 수 있다. 심지어 나이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이나 나이 많은 노인들까지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필이다.
또한 굳이 ‘수필’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사보 같은 곳에 실리는 ‘사원 문예란’의 글들, 평소 쓰는 일기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도 넓은 의미에서는
얼마든지 ‘수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수필은 어느 특정인들만이 읽고
감상하거나 쓸 수 있는 문학이 아니라 누구나 읽고 감상하며, 또 쓸 수 있는 문학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의식하였든 의식하지 못했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신문‧ 잡지‧ 책 등을 통해 수필과 자주 접해왔고, 학교
다닐 때의 작품 시간이나 일기, 편지, 혼자 사색하며 쓴
글 등 ‘수필’에 속하는 글들을 이미 써본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소설을 읽자면 아무래도 긴 시간이
요구되고, 시를 읽는 데에는 그 내용이나 의미가 난해한 경우가 많아 망설여지고, 희곡이나 평론은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며 읽고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도 따르지만, 수필은 아무 데에서나 간편하고 부담감 없이 읽고 감상해도 그 내용이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수필이다.
이 같은 이유와 수필의 특성 때문인지 수필을
읽고 즐기거나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 또는 자신이 수필을 써보고자 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문학이 외면되고, 특히 시를 읽는 사람은 너무나
적다” 또는 “소설은 소설가가 써서 독자들이 읽고, 시는 시인이 자기가 써서 자기가 읽는다”라는 말을
하지만, 그래도 수필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공유하는
문학인 것이다.
이처럼 수필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접근이
용이한 문학이다. 또한 누구나 읽고 즐기고 공감할 수 있으며 누구나 쓸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문학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수필을 읽고 즐기고
공감하며, 또 직접 쓰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일 뿐만 아니라 보다 확산되고 적극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나라의 메마르고 소외된 문학풍토를 기름지게 가꾸고 발전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며, 국민의 정서 함양과 인격 증진,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과 의식 개혁, 나아가서는 그릇된 사고방식의 배격과 추방, 범죄예방 등에까지도 큰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보다 수필을 잘 읽고 잘 감상하며, 좀 더 나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수필문학에 대한 공부와 꾸준한 습작, 자기계발과
의식개혁 등의 노력 또한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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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사장님 약력
소설가,
수필가, 시인, 문학평론가. 1962. 4. <계간문예>에 소설「배리」로 천료.
(사)새한국문학회 이사장. 김소월문학기념사업회 이사장. 종합문예지 『한국문인』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회장 역임. 저서- 장편소설집 「야누스의 고뇌」,「겨울산」,「태양인 이제마」(전 3권) 및 수필집 「살림만 하기엔 억울해」, 수필교재 「수필창작의 이론과 실기」외 다수. 한국문학상, 노산문학상, 후광문학상, 사회봉사부문
대통령상 수상. 국민훈장목련장, 국민훈장동백장
수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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